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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시계
앤 타일러 지음, 장영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무것도 아닌 얘기를 가지고 400쪽이 넘게 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작가의 역량이다. 그것도 지루하지 않고 읽는 내내 으응~ 그렇구나 하는 식으로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게 쓴다는 것은!
주인공은 40대 초중반, 결혼한 여자고 남편과 그럭저럭한 사이에 아직 철 덜든 아들과 딱부러지지만 엄마를 싫어하는 딸을 둔 사람이다. 평범하고 평범하다. 적당히 속물이고 그다지 악한 짓 한 것 없이 괜찮은 아내, 엄마로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자신의 주장을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편은 아니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위해 은근 집요하게 공작(ㅋㅋ 읽어보면 안다)하기도 하는 보통의 주부이다.
난 여자이지만, 20대고 미혼이고 가정보다는 개인적 성공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심리나 성격, 상황등에 공감이 갔고 재미있게 읽었다. 정말 뛰어난 역량의 작가라고 본다. 누구나 흔히 느끼는 감정, 일상이 주제이긴 하지만 아는 것을 글로 풀어낸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것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내가 20년쯤 더 살고나서 이 소설을 다시 읽으면 다른 생각이 들 것이다. 분명히- 경험한 만큼 느끼고 안다는 것처럼 내가 이 주인공을 이해한다해도 그건 내 생각과 경험내에서로 한정된다.-, 그치만 지금 읽고나서는 난 절대 주인공 아줌마 같은 사람이 되기 싫다는 것이다.
왜 자꾸 주변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걸까-.-; 아이들이 자꾸 내게서 멀어져가고, 안타깝고, 뭔가 어긋나버린 것 같은데 그걸 다시 원상태로 돌려놓고 싶은데 잘 되지 않고 허탈하다. 그래서 난 이렇게 노력하는데 다들 오히려 신경질만 내고 일은 더 꼬여만 간다-
아, 읽는 내내 답답했다 진짜!! 당신이 그랬기 때문에 멀어져버렸노라고, 아이들이 자라고 커가는 만큼 더이상 품안의 꼬맹이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이 크면서 만드는 그들만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봐 줘야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녀는 나이는 먹었지만 여전히 소녀적 생각 그대로이다. 또 자꾸 소녀적 생각으로 회귀하려고 한다고 생각된다. 귀엽긴 하지만 성숙하진 못하다. 나이가 들면서 얻게되는 현명함은 자연스레 얻어지는 게 아니다. 예전엔 저절로 얻어진다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살아온 내 경험에 미루어 결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어릴 적보다 나이들수록 더욱 노력해야 하고 귀기울여야 하고 이해하려고 애써야 했다.
나는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적어도 나이만큼의 현명함을 갖추고 늙고 싶다. 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다. 성숙하고 현명한 엄마가 되고 싶다. ㅋㅋ 하지만, 나의 엄마도, 또 세상의 다른 수 많은 엄마들도 이렇게 생각했을 텐데 그렇지 못하는 걸 보면 확실히 어려운 일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