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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다섯 조각
조안 해리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제목에서 궁금증이 일었다. 오렌지 다섯조각이라니... 네 조각도 아니고 세 조각도 아니고 왜 하필이면 다섯조각일까? (그건 책을 읽다 보면 알게된다)
오렌지를 상큼하고 향기롭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언뜻 오렌지의 신내가 와닿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귤이나 오렌지는 상큼하고 향기롭게 느껴질 수 있는 동시에 그만큼이나 비릿한 내음에 구역질이 치밀 수도 있다. 나는 종종 겨울에 밀폐된 공간에서 귤을 까거나 할 때의 비릿함이 떠오르면 헛구역질이 난다. 그래서 예전엔 귤을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겨울에 먹는 귤을...
주인공의 어머니는 물론 병이 있어서겠지만,, 나만큼 오렌지의 비릿함을 잘 파악했던 사람같다. 병적으로 오렌지를 싫어하고, 발작을 일으키는 것은 한 번 뿌리박힌 그 신물나는 기억이 내내 뇌리에 남아 반복적으로 진행되면서 노이로제로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주인공인 9살짜리 영악스럽고 고집스런 바짝마른 여자아이가 오렌지를 이용하여 엄마의 간섭에서 벗어나는 꾀를 쓰면서 점차 진행된다. 이 아이는 무섭도록 치밀하고 잔인하다. 그건 어린아이들이니까 가능한 것인데, 그들은 자신의 행동이 후에 어떤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지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단히 잔혹하게 굴 수 있다. 또한 주인공의 바짝 말라서 고집만 남은 아이 시점의 음식묘사라서인지 풍요롭고 군침도는 프랑스의 각종 요리들에 대한 묘사를 읽으면서 군침이 돌지 않을 만큼 건조하고 말라있다.
아이이기 때문에 무서울 정도로 집착하고, 단순하게 치밀하며, 그 순진함 때문에 여러 사람을 곤란에 빠지게 한다. 아,, 진짜 나는 이래서 아이들이 싫다. 나도 어린 시절 이런 아이였을 것 같긴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아이들의 가장 무서운 면이 바로 이것이다.
책을 다 읽고나니 오렌지의 신내가 목구멍으로 훅 끼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큼하다. 하지만 뛰어나다. 오렌지의 신내는 내게 있어서 영원히 잊지 못하는 기억인만큼, 두고두고 이 책도 기억날 것이다. 아마도 앞으로는 오렌지의 신내가 떠 오를 때마다 책의 이야기도 함께 떠오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