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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읽고 난 후에 줄거리가 남는 책도, 인물이 남는 책도 있다. 무엇이든 간에 '남았다'는 게 중요한 점이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시간만 날아가는 책도 많으니 말이다. 그럼 이번 책은 무엇이 남았는가 물어본다면, 글쎄, 밝고 투명한 회색이라는 색깔이 남았다. 오후 네 시쯤
린넨 커튼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만 남아 모든 것이 숨죽이고 있는 시간,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어떤 무채색이 떠오르는 소설이었다. 줄거리나 인물이
아니라 한 공간이 기억에 남는 소설은 내게 정말로 드물다. 그것도 소설 속에서는 묘사된 적도 없는 공간이 떠오르는 것은 말이다.
때문에 이 책의 감상을 쓰려 해도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무언가를 글로 나타내기가 어렵다. 말을 잃은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 사이의
어떤 시간을 묘사한 작품이라고 하기엔 이 문장이 담아내는 의미가 너무 작다. 이 소설은 가녀리다. 몽환적이다. 지루하지 않고 허세가 없다.
일본의 일부 여작가들의 소설을 싫어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단어들이 한 작품을 묘사하는 데 쓰인 것이 놀라울 것이다. 나만 하더라도 주인공의
감상만을 아름답지도 재미있지도 않게 그저 늘어만 놓은 소설들은 책에 쓰인 나무의 생명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다르다.
분명 다르다. 왜일까?
소설의 초점은 여자와 남자에게 번갈아 맞춰진다. 그들의 접점은 희랍어 수업뿐이다. 말을 잃은 여자는 새로운 언어를 깨우침으로써 말을
되찾고자 하고,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는 사랑하는 사람도 잃고 인생의 반을 살아온 외국에서 다시 한국어로 돌아와 희랍어를 가르친다. 죽은 언어를
통해 살아 있는 시간을 공유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독특한 색깔로 펼쳐진다. 뻔하지 않다. 두 사람이 사랑을 해서 아픈 상처를 껴안고 치유하게
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보다 훨씬 섬세하다. 깨지고 다친 몸의 상처야 흉터를 남기는 일은 있더라도 깨끗하게 나을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이
깨지고 다친 흔적은 그저 상처라고 말할 수 없다.
말을 잊게 할 정도로 강렬했든, 실제로 몸의 상처를 남길 정도로 과격했든 간에 그 흔적들은 시간과 깊게 맞닿아 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대개 아주 아름답거나 슬프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도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흔적들이다.
끔찍하게 헤어진 연인이라도 그와 손을 잡고 걸었던 밤공기의 냄새를 잊고 싶진 않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기억은 아직 되돌아보기 두렵지만
할아버지가 나를 태우고 동네를 한 바퀴 돌던 빨간 자전거가 떠오를 때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무리 숨을 막히게 하는 기억들이라도 시간과 함께
버릴 바에야 상처로 안고 가는 게 낫다.
이 소설의 투명한 문장들, 가녀린 아름다움보다 내 마음에 더 와닿았던 것은 인물들의 상처가 담고 있는 아름다움까지 묘사해 놓은 작가의
섬세함이다. 세상 사는 일이 그리 쉽지 않은 것은 우리가 시간을 먹으며 성장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