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네델란드가 그때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기는 없었다. 지혜와 꾀에 의존해서 살아야 했던 이 작은 나라의 외교 노선은 철저한 평화 정책이었다. 그들은 정통에서 벗어난 사조에 대해서도 비교적 관대했다. 마치 1930년대에 나치에게 쫓겨난 유럽 지식인들이 대거 망명해 오는 바람에 톡톡히 덕을 보았던 미국처럼, 온갖 검열로 사상의 자유를 억압받던 당시의 유럽 지성인들에게 네델란드는 뮨자 그대로 이상향이었다. 그래서 17세기의 네델란드는 아인슈타인이 존경해 마지 않았던 위대한 유대인 철학자 스피노자의 안식처일 수 있었다. 어디 그것뿐인가. 수학사에서 한 획을 그은 데카르트에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한편 페인, 해밀턴 애덤스, 프랭클린, 제퍼슨과 같이 철학적 성향의 혁명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정치학자 존 로크에게도 네델란드는 안식처였다. 위대한 예술가, 과학자, 철학자 그리고 수학자 들이 홀란드라는 땅에 그때처럼 넘쳐났던 시대는 아마 없을 것이다. 당시의 네델란드 공화국은 렘브란트, 베르메르, 프란스 할스 같은 걸출한 화가들과, 현미경을 발명한 레벤후크, 국제법의 창시자 그로티우스, 빛의 굴절 법칙을 발견한 스넬 같은 사람들의 활동 무대이기도 했다.p23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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