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 나씽 - 북아일랜드의 살인의 추억
패트릭 라든 키프 지음, 지은현 옮김 / 꾸리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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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 나씽』은 '북아일랜드'의 "분쟁"과 그 주역이었던 급진파 'IRA'의 역사를 복원하고, 이를 기반으로 '북아일랜드'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려는 시도다. '브렉시트' 이후로 '북아일랜드'의 내부 갈등은 재점화되었으며, 또한 서로 다른 이상에 갇힌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의 모습은 우리와 닮아 있기도 하므로 현대의 한국 독자들에게 이 책이 가지는 의미는 더없이 크다. 분할된 역사를 가진 국가의 국민이 아니라고 해도, 목숨을 걸고 역사적 사실에 관해 진술하려는 사람들을 외면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미친 삶으로부터 가까스로 벗어나 평화와 자유, 희망을 되찾는듯했던 '북아일랜드'가 다시 맞닥뜨린 혼란 속에서 과연 이전처럼 폭력을 동반하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동반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면서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그건 단지 '북아일랜드'만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에게 있어서는 '평행세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모든 게 다 역겹소. 그것은 나와 같은 사람이… 그 모든 죽음에 대해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는 뜻이오.(316쪽)


'북아일랜드' 분쟁의 중심에 서 있는 'IRA'에게 '진 맥콘빌'이라는 여성이 납치된다. 평화롭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실종 사건이 『세이 나씽』의 시발점이다. 'IRA'의 상징과도 같았던 '프라이스' 자매가 처음부터 과격하고 폭력적인 방식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점잖고 평범했던 사람들은 통제 불능의 상태에 휘말려 급기야 'IRA'의 총잡이가 되었고, '피의 일요일'을 겪은 이후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전술을 취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잘못이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분쟁' 동안 무고한 민간인들이 수도 없이 희생되어야만 했다는 것이 'IRA'에게 치명적인 오점으로 남았다. ' IRA' 때문에 민간인 사상자 수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폭력적인 수단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마찬가지로 늘어나면서 '어떤 순간에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라는 말은 거의 사실처럼 보였다.


성인이 되고 나서 온 생애를 IRA에 바친 사람의 삶이란 게 그랬다. 휴즈는 트워미가 말년을 보내고 있는 열악한 환경을 보면서 문득 운동에 퇴직연금제도는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285쪽)


'IRA'의 폭력성은 북아일랜드의 민간인들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주었지만, 'IRA' 대원 본인들에게도 그랬다. 당시 대원들은 모두 아주 젊었고, 그야말로 애들이었다. 제일 나이가 많다고 해봤자 29살에 불과했다. "어리고 날씬하고 비밀스러운 데다 독실하면서도 테러에 헌신(209쪽)" 하는 어린 대원들은 '북아일랜드'의 해방을 위해 투신하면서도 자신들만의 이상에 갇혀 스스로를 극도로 괴롭혔고, 투옥과 단식투쟁은 그들의 몸과 마음에 커다란 흉터를 남겼다. 그들은 수시로 자신들이 몸 바쳐 온 과거와 "분쟁"을 전체적으로 되돌아보곤 했다. 그러고는 자문했다: "'이러려고 우리가 목숨을 바쳤나? 도대체 이게 다 뭐지?(339쪽)'" 물론, 자신들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죽음들에 대해서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태초에 그들이 품었던 조국을 향한 열망의 의미는 퇴색했고, 이상에 갉아먹혀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종말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한국'이나 '아일랜드'의 종교적·이념적 "분쟁"의 의미를 이성적으로 따져봐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우리가 "주장했던 이상에 지나칠 정도로 절실하게 헌신하며 살았다(428쪽)".


관광객들에게는 "분쟁 관광"도 인기를 끌었다. 전투원이었던 택시운전사들은 유명한 전투와 순교자들과 무장괴한들이 그려진 벽화들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며 관광객들을 그 몹쓸 세월의 화약고로 안내했다. 그 효과는 "분쟁"을 머나먼 역사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었다.(431쪽)


'프라이스' 자매, '브렌든 휴즈' 등 이전 급진파 'IRA' 세대는 막을 내렸다. 아일랜드 국기는 이제 그다음 세대에게 넘겨졌다. 누군가는 'IRA'가 사라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폭력적인 과거를 미래 세대가 숙고할 수 있도록 아일랜드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세대가 거듭될수록 "분쟁"은 관광산업으로서만 사람들의 주목을 끌게 될지도 모른다. 한국과 북한 사이의 긴장감보다도 'DMZ' 관광이 내외국인의 애정을 받고 있듯이 말이다. "분쟁"이 문화 콘텐츠나 산업 자원으로 자리 잡고, 머나먼 역사로 남게 되는 때에 이르자 '아일랜드'와 '대한민국'을 겹쳐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두 국가 모두에게 가장 큰 과업은 폭력적인 개입을 배제한 채로도 통일된 국가를 이룩해낼 수 있는지의 여부일 것이다. 그리고 스무 해가 넘는 시간 동안 '대한민국'에 거주하면서 한 번도 그 일은 쉬워 보인 적이 없었다. 현 세대 내에서 어떤 식으로든 숙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조차 예측하기가 어렵다. 적어도 미래 세대에 한 편의 범죄 스릴러 영화 같은 글은 남기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만큼은 확실하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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