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실격 쏜살 문고
샬럿 퍼킨스 길먼 지음, 이은숙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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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이자 페미니스트인 '샬럿 퍼킨스 길먼'의 글쓰기는 번번이 나를 놀라게 했다. 표제작인 「엄마 실격」 이외에도 일련의 단편들 속에서 그녀는 작가로서 그리고 한 명의 여성으로서 기존과는 다른 행보를 보인다. '길먼'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작가 '버지니아 울프'가 강조한 것처럼 경제적 기반이 충분하고 때로는 전문직의 여성으로서 살아가며, 가십거리를 몰고 다니는 한편으로 놀라운 상상력으로 여성들의 유토피아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녀들이 자신의 남편과 더 나아가 세상에 하는 복수는 더없이 짜릿하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 독자들의 시샘까지 유발한다. '길먼'의 작품이 출간된 이후로 꽤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부 여성들은 여전히 냄새나고 '누런 벽지'에 갇혀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길먼'의 작품에서 가장 탁월하다고 생각했던 점은 '여성들의 연대'를 이끌어 내는 대목들이었다. 종종 여성의 적은 여성으로 간주되어 왔을 정도로 여성들은 같은 여성에게도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고립된 상황에 처해 있었다. 하지만 '길먼'의 작품에서는 전혀 다르다. 뻔히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방치한 사람들, 즉 남성들에게 잘잘못을 따진다. 여성들은 다른 여성들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나고 성장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자기 자신다운 삶을 꾸려나가게 된다. 「벌들처럼」에서 우리는 연대의 힘이 얼마나 큰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지 예상할 수 있다. "경제적 기반은 매우 다양할지라도, 몇백 명의 여성들이 함께 뭉치면 어디서든 결집된 노동력으로 부를 낳을 수 있고, 공동육아로 질서와 안락과 행복을 얻고, 인류의 삶을 개선할 수 있을 터였다.(139쪽)"





· 「예상치 못한 일」

놀라운 반전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여성의 지위나 활동 영역을 당대의 편견과 다르게 한 곳으로 고정시키지 않았다. 그 대신에 여성도 분명히 사회적으로 큰 업적을 남길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일깨우고 있으며, 여성들끼리의 연대를 넘어서서 여성들과 남성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내가 '길먼'의 시대에 살았다면 이 작품에서 살아갈 동기를 부여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멸종된 천사」

숱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일방적인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슬퍼할 겨를이 없는 여성들을 '천사'에 비유한 작품이다. 여성들이 억압받는 과정 속에서 자아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멸종된'이라는 수식어구로 표현하고 싶었을까. 무지와 복종만을 강요받는 여성들의 처지를 여성 밖의 시선에서 서술하려고 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 「누런 벽지」

사회적 위치가 고정된 채로 갑갑한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과 그녀들을 향한 외부의 시선을 묘사하고자 한 작품이다. 단순한 벽지가 아니라 누렇게 바래고 냄새나는 곳에 갇힌 여성들의 목소리를 세상은 들어주려 하지 않고, 치료되어야 할 증세를 앓고 있는 것처럼 취급한다.

· 「비즐리 부인의 증서」

작품 속에서 '마리아'라는 여성은 남편인 '비즐리' 씨가 완고하게 우위를 점하고 있는 세상을 살아간다. 단 한 번도 벗어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던 세계로부터 그녀를 구출하는 것은 백마 탄 왕자가 아니라 전문직 여성인 '로런스 양'이다. 작품을 통해 여성에게 있어 충분한 경제적 기반과 전문직 직업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유추할 수 있다. '로런스 양'과 '마리아'의 연대로 여성 간 협력을 강조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 「반전」

대부분의 경우 한 사건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더 많은 책임을 추궁당한다. 하지만 '마로너' 부인은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오래된 편견과 달리 순수하고 순종적인 '게르타'보다도 의도적으로 상황을 방치한 자신의 남편에게로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이 작품 속에서도 여성 간 연대의 중요성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러한 연대는 오로지 여성들의 확고한 결심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점을 일깨운다.

· 「발상의 전환」

육아와 가사노동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구원자는 또 다른 여성일 수 있다는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세대 간 화합까지 일어내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 「영문학과 학과장」

작가 '길먼'의 글에서 여성들은 순종적이지만은 않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현명하고 독립적으로 상황을 타개해 나간다. 위기를 기회로 순식간에 전환시키는 '빌 부인'의 센스가 흥미롭게 다가오는 글이다.

· 「벌들처럼」

서로 다른 지적 능력을 가진 여성들이 새로운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모습을 그려낸 작품이다. 여성들의 연대를 격려하는 글들이 앞에도 있었지만, 여기에 이르러서 완전히 그 가능성이 폭발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 「오래된 이야기」

이번 단편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주축이 된다. 한 사람의 무지와 욕심으로 인해 일련의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는 연민과 애정이 살아남았다. '길먼'은 여성들에게서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을 중시하고 그로부터 생겨나는 어떤 강력한 힘을 포착해낸 작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엄마 실격」

표제작인 「엄마 실격」은 모성에 덧대어진 사람들의 환상을 까발리려는 작품이다. 여성들은 전부 엄마가 되기를 강요받고, 또 자신의 아이만을 위해 살아가기를 종용 받는다. 엄마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평가받는 한 여성에 대한 사람들의 대화를 통해 무엇을 모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독자에게 묻고 있다. 이는 화가이자 작가였던 '나혜석'의 「모 된 감상기」를 떠올리게 한다.

‘아빠를 선택하는 일‘이라뇨! 아이들을 낳기 위한 아빠에 대해 생각하는 게 젊은 여성이 꼼꼼하게 해야 할 적절한 일이라니!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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