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만나는 경영의 절대지식 50
야마시타 히사노리 외 지음, 황소연 옮김 / 새로운제안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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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때는 다른 전공에 비해 체계적이지 못한 또는 이론화되지 못한 학문체계를 느낄 때였다. 그런 느낌이 든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나의 학습량 부족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작정 나에게만 모든 원인을 돌리기는 어려운 것이 경영학 자체가 다른 학문과 달리 정확한 공식의 틀에서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또 다른 사회과학 이론처럼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거쳐 통상적으로 인정될 만한 이론이 지배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국가나 정치체제와 달리 하나하나의 기업마다 천차만별인 요소와 환경을 가지고 있고 더욱 큰 문제는 그 요소와 환경이 시도 때도 없이 변하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포드의 대량생산방식이나 호손실험과 같은 다소 오랫동안 그 유효성 또는 의의를 지니는 이론 역시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다른 학문과는 비교가 어렵다.

어쨌든 그런 차에 졸업을 앞두고 정리를 한다는 의미에서 총체적으로 경영학에 대한 복습을 하고자 산 책이 있다. 평소 몇 일 만에 끝낸다던가 한 권으로 정리한다는 제목의 책들을 신뢰하지는 않지만 리뷰들이 좋았고 소개글 역시 좋아 눈 감고 산 책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돈 낭비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마치 경영학원론서를 요점정리한 듯한 느낌이 드는 책으로, 차라리 잘 쓰여진 원론책 한 권을 보는 것이 더 유용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시대순으로 그리고 각 이론순으로 그 이론에 대한 간단한 배경과 설명을 해놓았다. 물론 이런 구성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구성은 이론의 흐름을 느끼면서 정리하는 듯한 느낌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론에 대한 글이다. 단지 네이버 지식검색이나 백과사전 검색을 한 듯한, 이론에 대한 단순한 해설로만 가득한 책은 사실 돈을 내고 살 이유가 없다.

언젠가 경영학을 복수전공하던 타과 학생이 매슬로의 욕구5단계설을 설명하는 강의 도중 친구와 잡담하는 것을 들었다. 내용은 경영학 수업을 들으면 별것도 아니고 쓸모도 없는 매슬로의 욕구5단계설을 수업마다 한다는 것이다. 물론 욕구5단계설의 내용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크게 적용할 수 있거나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욕구5단계설은 경영이론이라기보다 심리학 이론이다. 그럼에도 경영학에서 욕구5단계설이 중요한 것은 경영학에서 각 분야에 적용할 하나의 시야를 제공하고 또 깊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욕구는 각 단계가 있고 하위 단계가 충족되면 그 상위 단계를 충족시키고 싶어한다는 단순한 개념이지만 그것은 그 말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런 사고방식이 조직구성이나 조직개발 또는 생산관리, 인적자원관리, 마케팅을 접근할 때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제공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개념이라는 데 있다. 따라서 수업시간마다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는 이론을 왜 배우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한 그 학생은 경영학을 복수전공했지만 경영학의 기본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다. 경영의 절대 지식 50은 경영이론을 각각 해설해놨지만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각각의 이론이 왜 경영학사에서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지, 그 의의를 현대적인 시각에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현대경영환경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가 생략되었기 때문에 이 책은 단순히 종이에 글자가 적혀 있는 것 이상의 가치를 갖지 못한다. 이 책은 간단히 경영학에 어떤 이론들이 있고 그것을 한눈으로 보고 싶지만 인터넷이나 원론서를 볼 시간이 없을 때 훓어보는 용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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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없다 2
전여옥 지음 / 푸른숲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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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없다란 제목.. 흥미로운 제목이다. 우선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에 대해 전면 부정하는 '없다'란 단어. 주어와 서술어는 있지만 어떻게 없다 혹은 어떤 것이 없다가 아닌 단지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가 없다라는 함축적 의미를 지닌 이 제목은 도대체 독자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결국 일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책에 핵심이 없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단지 일본에 대한 개인의 나쁜 감정을 많은 대중에게 수다 떨고 싶었다고 하는 것이 더 솔직하지 않을까? 일본에 대해 객관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마치 음식을 가리는 어린아이가 맛도 보지 않고 음식을 가리는 것과 같은 형국이다. 분명 일본은 없다라는 베스트셀러는 전여옥을 수많은 독자에게 알렸지만 그의 무지와 무교양 역시 알리는 책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아야 할 것이다.

전여옥은 자신이 진보주의자라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진보와 보수가 무엇일까? 누가 과격하고 편협하며 대안 없이 불만만 가득한 자를 진보라고 명하였단 말인가? 그건 진정한 진보를 훼손하는 말이다. 그녀는 단지 이야기의 핵심이 빠진 그냥 남을 헐뜯기나 하는 그런 수다 떠는 자에 불과하다. 다만 칭찬할 만한 점은 숨어서 뒤통수치듯이 뒤에서 헐뜯는 것이 아니라 마치 당당하고 소신이라는 허세를 위시하여 당당히 자신의 무지를 자랑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그녀의 가장 큰 장기는 존재하는 상대를 부정하는 특별한 능력이다. 단 몇 년간의 일본 체류 동안 일본의 국가 존재마저 당당히 없다라고 말하던 자가 이제는 우리나라의 대통령 자체를 부정하기까지 하니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의 선택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후 말 실수를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는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기 때문에 국정수행능력에 큰 무리가 없는 한 그의 실책을 비판을 할지언정 대통령으로서의 존재가치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될 자가 대통령이 되어서 앞날이 암담하다는 체념은 그저 용기가 없어서 행동하지 못하는 주제에 뒤에서 상대를 욕하는 재미로 비아냥거리는 것으로 밖에 안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전여옥이 노무현 대통령을 욕할 자격이 있는지를 되묻고 싶다.

그녀가 피를 토하듯 열변하던 내용 중 노무현 대통령이 방미간 저자세 및 기타 대통령 못 해먹겠다고 내뱉은 말실수 등등을 들며 그렇게 함부로 자신의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자의 도덕성을 의심해야 하며 그런 자가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이 있느냐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럼 그녀가 지지했던 대통령 후보자는 누구였는가? 정몽준 후보 아니었는가? 정치란 것이 더럽다고 해도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라도 믿음과 신의로 움직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국민을 상대로 후보 단일화를 약속하고도 투표 전날 돌연 취소한 사람은 지지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은 그렇게 욕할 수 있는 이중적인 자세는 어디에서 온 몰상식인지.. 그런 사람이 책을 쓰고 신문에 칼럼을 쓰는 지금 우리 사회 현실이란.. 그녀는 단지 남을 헐뜯는 데서 쾌감을 얻는 자에 불과하다. 어쩌면 지적성장과정 중 커다란 피해의식이 자리 잡고 있어 무엇이든지 상대를 헐뜯는 데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식받는 자일지도 모르겠다고 느꼈다.

누군가 이 사회에서 진정한 비평이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깝다고 한탄했다. 실제로 텔레비전 토론만 봐도 서로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든가 논점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이끌어 핵심을 흐린다든가 혹은 원론적인 그러니까 누구나 할 수 있는 발언으로 가득한 것을 보면 전여옥 한 사람만 무어라 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다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잘못까지는 부정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부정하는 것이 자신의 특기라 할지라도 편협된 사고라는 주변의 말까지도 부정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말만 많고 이야기에 핵심이 없는, 들을 땐 꽤나 달변이다 혹은 꽤나 흥미롭다 해도 다 듣고 나서 가만히 그녀의 이야기를 정리하고자 할 때 단 두 줄로 그 나라는 없다 혹은 그는 절대 그것을 할 수 없는 파렴치범이다 라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왜 없다가 빠진, 왜 그는 잘못했다가 빠진 그런 핵심 빠진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충고마저 부정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진정한 진보란 그런 것이다. 자신이 진보주의자라고 이야기하고 싶다면 적어도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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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방 일곱 동무 비룡소 전래동화 3
이영경 글.그림 / 비룡소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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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열리는 도서전에는 꼬박꼬박 가곤 한다. 이번에도 역시 안 가면 아쉬울 것 같아서 나들이하듯 도서전에 마실을 나갔는데 거기서 산 책이 바로 이 아씨방 일곱동무다. 내가 읽을 책 한 권 사려고 했는데 딱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어 초등학교 1학년인 친척동생 줄 요량으로 어린이책을 샀다. 도서전은 갈 때마다 느끼는 건데 해가 갈수록 어린이책 위주로 바뀌는 것 같아 좀 아쉽기도 하다.

아씨방 일곱동무는 규중칠우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표지에서도 전래동화 분위기가 팍 풍기는데 삐죽이 열린 문 사이로 여섯 여인들의 얼굴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큰 문 사이로는 골무 할미의 얼굴도 보인다. 음..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

이 책의 주인공은 바느질을 좋아하는 빨간 두건 아씨와 자, 가위, 바늘, 실, 골무, 인두, 다리미 등의 규중칠우다. 본문 첫 페이지를 넘기니 빨간 두건 아씨는 곤히 잠을 자고 있고 규충칠우가 하나씩 나서서 자기가 최고라고 떠들어대기 바쁘다. 큰 키의 부인은 자, 바늘 각시는 머리 장식으로 뾰족한 바늘을 사용했고 홍실 각시는 얼굴도 자태도 곱기만 하다. 저마다의 특징에 맞게 일곱 동무의 그림을 그려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는 재미도 있다.

게다가 일곱 동무가 자기 자랑하기 바쁜 소리에 슬며시 잠에서 깨는 발간 두건 아씨의 표정도 너무나 생생하다. 친척동생에게 이 동화책을 읽어줄 때 아씨의 표정도 함께 지적해 주었더니 너무나 좋아한다. 하품하는 얼굴은 무섭다며 얼른 넘기기도 하고..^^ 결국 잠에서 깬 아씨는 규중칠우를 나무라며 자신이 없으면 바느질이 되겠냐고 화를 낸 후 뒤돌아 누워버리고 일곱동무는 저마다 서러워 눈물을 흘리고 만다. 성미 급한 가위 색시가 뛰쳐나가려는 걸 뜯어말리는 골무 할미의 모습도 어찌나 코믹하던지~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장면은 빨간 두건 아씨의 꿈속으로 이어진다. 꿈속에서 아무리 아무리 찾아도 규중칠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결국 울고 마는 아씨.. 일곱동무는 자면서 울고 있는 아씨를 깨우기 위해 꼬집기도 하고 귀에 대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는데 그 중 다리미 소저는 누가 다리미 아니랠까 봐 물이 가득 든 대야를 들고 급히 뛰어온다.

일곱 동무 덕에 악몽에서 깨어난 빨간 두건 아씨는 자신이 화낸 걸 사과하고 모두가 함께 해야 훌륭한 바느질이 된다는 걸 깨닫는다. 아씨와 일곱동무는 다시 흥겹게 바느질을 시작하고 책의 마지막 장면은 일곱동무 아니 여덟동무의 협동으로 만들어진 치마, 저고리, 버선 수저집 등 아름다운 수예품이 그려져 있다.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지 못하고 책을 덮으니, 이런! 뒷표지에도 선물이 숨어 있다. 바로 앞 표지에서 얼굴만 삐죽이 나왔던 일곱 동무의 뒷모습들~!!

이런 동화책이라면 이제 다 커 버린 나도 쌍수를 들고 환영이다! ㅎㅎ 참 재미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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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타카 - [할인행사]
앤드류 니콜 감독, 우마 서먼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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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가타카라는 영화를 봤다. 상당히 재미있는 영화였다. 오래 전 영화라 내용이 주는 참신함을 백프로 느끼지는 못했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쫓고 쫓기는 스릴러식 전개와 운명을 개척하는 드라마적 요소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듯하다. 다만 다소 진지하고 깊은 생각을 해야 할 주제를 놓고 가볍게 터치하듯 혹은 무책임하게 문제점만 툭 던진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조금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내게 있어 이 영화가 주는 의미는 주인공이 남긴 단 하나의 대사 때문이다.

"넌 알고 싶겠지. 난 되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아서 널 이기는 거야."

영화는 가까운 미래에 유전자 조작을 통한 자녀 출산이 빈번한 때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빈센트처럼 자연적인 출산을 한 사람은 유전적으로 열성이기 때문에 하층부에 또 빈센트의 동생처럼 유전조작을 통해 출산한 사람은 뛰어난 유전 형질로 인해 상류층으로 신분이 구분된 사회다. 실제로 유전적으로 열성인 빈센트는 어릴 때부터 많이 앓았고 동생과의 바다 수영 시합에서 항상 지곤 한다.

그럼에도 빈센트는 자신의 유전 형질로는 될 수 없는 우주비행사의 꿈을 꾼다. 결국 빈센트는 뛰어난 유전자를 가진 사람으로부터 유전자 신분을 사게 되고 자신의 노력을 더해 우주 비행사의 꿈을 이루려는 찰나 형사가 된 동생에게 신분이 들통난다.

그때 동생과 빈센트는 바다 수영을 한다. 바다 수영은 바다를 향해 수영을 하는데 먼저 포기하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다. 육지와 한참 멀어져 목숨이 위태롭게 되자 동생이 게임을 포기한다. 뛰어난 유전자를 가진 동생이 열등한 유전자를 가진 빈센트에게 진 것이다.

 그때 던진 빈센트의 말이 바로 "넌 알고 싶겠지. 난 되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아서 널 이기는 거야."다.

되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는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자신의 한계를 넘는 것은 곧 운명을 넘는 것이고 또한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승리이다. 난 내가 되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고 질주한 적이 있던가?

이카루스가 어리석다고 말한 사람은 더 어리석다. 비록 그는 떨어졌지만 결국 그보다 더 태양에 가까이 다가간 사람이 있던가? 그렇게 살고 싶다. 내가 비록 바닷물에 빠져 죽더라도 내 날개의 밀랍이 녹아 추락하더라도 단 한 번만이라도 내 운명을 뛰어넘을 수 있다면 아니 뛰어넘을 가능성이라도 볼 수 있다면 내 모든 것을 투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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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주체성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6
탁석산 지음 / 책세상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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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치하 이후 미군정 실시 현재는 미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현실에서 주체성에 대한 이야기는 자주 대두되어 왔고 또 논란의 핵이 되는 이야기임이 틀림없다. 심지어 우리 역사를 바라보며 주체성의 상실을 이야기 함에 있어 신라가 당과의 연합을 주체성 상실의 증거로 보는 이도 있으며 조선시대 사대정치라는 정치 구도를 주체성 상실의 역사적 증거로 제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탁석산 씨의 한국의 주체성이란 책은 참으로 흥미로운 책이 아닐 수 없다. 친구랑 서점에 갔을 때 내가 책을 유심히 보자 선물로 받은 것인데 지하철을 타면서 쉬는 시간 짬짬이 시간 내서 읽기가 편한 책이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허나 책의 내용에 있어서 나와는 많은 차이를 발견한 책이었기에 그리 호응하기는 힘들지만 두고두고 그 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다. 국어를 전용으로 사용하자와 핵무기를 보유하자 그리고 강대국에게 할 말은 하고 살자가 가장 큰 주장들이었는데 물론 그의 주장들이나 몇몇 사례는 지엽적으로 동의하나 대부분의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 두드러지지 않았나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우선은 국어를 사용함에 있어 한자 및 영어의 사용을 금지하자는 주장에서는 현실성이 없으며 그가 제시한 안은 지엽적인 몇몇 사례에 불과하다. 한자에 대해 지나치게 과소평가를 한다던가 영어를 사용함에 있어 모든 것을 한글화시키자는 주장 등은 납득하기 힘들었다. 예를 들면 그는 이 책에서 한글 전용 국어사전 편찬을 제시했는데 가령 사과라는 단어를 찾을 때 사과 : 과실류의 종류 사과 : 자신이 실수를 했을 때 그 실수를 상대방에게 인정하는 행위 이렇게 분류되어 있는 현재 사전편찬에서 사과 : 1) 과실류의 종류 2) 자신이 실수를 했을 때 그 실수를 상대방에게 인정하는 행위와 같이 그 단어의 근원을 구분하지 말고 동음이의어로 보고 한 단어로 보아 사전을 편찬하자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사전이라 함은 단어의 뜻을 알고자 하는 용도도 있지만 그 단어의 파생의미나 혹은 그 단어의 생성원리도 유추할 수 있는 용도로 사용함을 감안할 때 동음이의어란 의미로 한 단어에다 모든 뜻을 부여할 땐 사전의 유용성을 제한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주장함에 있어 동음이의어가 많을수록 언어의 풍부한 의미로 인해 문학적으로 문화적으로 다양한 효용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한자를 사용함에 있어 그것이 과연 불가능한가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가령 피서를 위해 난 피서를 했다 라는 문장을 농담함아 했다 치자. 공부하는 사람이 여름에 피서를 위해 피서를 했다 피서하면 더위를 피한다라는 뜻이 있지만 여기서 한자를 변화시켜 서를 책 서로 쓴다면 더위를 피하기 위해 책을 피하다란 뜻이 된다. 한자를 사용함에 있어 더욱더 많은 언어적 유희를 추구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한 언어학자는 명사를 제외한 단어는 절대 다른 단어를 대체할 수 없다고 했다. 이는 약간 극단적인 주장이지만 이 주장을 따르면 단어의 변역이란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가령 슬프다란 단어를 들면 영어로 sad가 가장 옳겠지만 그 속에 담겨진 분위기나 의미는 약간 다르다. 이는 영어사전을 유심히 바라보면 쉽겠다. 따라서 일상 언어야 대체되겠지만 가령 섬세한 번역이 따르는 것이나 학술용어일수록 가능하면 억지로 번역을 하는 것보다 차용해서 사용하는 것도 필요할 때가 있는데 그런 것까지 부정하고 무조건식 한글 전용 사용을 주장하는 것이란 무리가 있다고 판단된다.

핵무기 보유 주장은 워낙 미묘한 문제이기 때문에 쉽사리 이야기할 거리가 되지 않아 여기서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다. 이 책에서 가장 맘에 들지 않는 주장 중 또 하나는 정보강국에 대한 우리나라의 포부를 너무 쉽게 부정한다는 점에 있다. 정부의 정보통신 강국을 위한 계획에 대하여 사소한 오류를 확대 해석하고 어떤 데이타나 혹은 논리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감정이나 짐작으로 부정하는 듯하여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정보통신망 구축에 대하여 고속도로만 쌓고 실제로 차는 해외차만 다닐 거라며 정보통신망 구축을 돈들여 쌓아 놓으면 그 통신망 이용은 다 외국일 것이라는 비관적인 이야기는 동의하기 힘들었다. 핸드폰을 예로 들 수 있겠다. 핸드폰이란 하드웨어를 개발하면서 이와 동시에 그 핸드폰 콘텐츠 시장이 발전되었고 또한 핸드폰뿐만이 아닌 다른 산업 전반에 걸친 발전을 가져온 계기가 되었다. 정보통신망도 마찬가지다. 전국적인 정보통신망 구축은 인터넷 대중화를 이끌었고 따라서 대중화됨으로 인한 인터넷 내에서의 가치시장 규모는 커졌으며 마치 발명가가 발명을 하듯이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 중이고 이미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콘텐츠가 세계시장에도 모범이 되는 것 또한 다양한 것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각 나라마다 정보통신발달 분야가 다르고 따라서 직접적인 비교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분야에서만큼은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앞서 나가는 것이 사실이며 또한 그렇지 못하는 것일지라도 적어도 세계 유수의 기업에 도전을 하고 있는 것도 많다는 사실이다. 다만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환할 때 농사짓는 사람이 공장에 가면 막연한 두려움으로 그것이 어떻게 우리 밥벌이를 해주냐며 비관적으로 바라보듯이 탁석산 씨 역시 정보통신에 대한 무지가 이런 어이없는 주장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책에서 논리가 맞지 않는 분야는 철학자가 마냥 비현실적이며 관념적이라고 주장을 하다가도 자기 논지를 주장함에 있어 유리하다 싶으면 철학자가 배제된 우리 사회는 잘못되었다고 주장함은 논리의 일관성에서 오류가 있다.

하여간 그의 책에서 드러난 오류는 이와 같다.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것이 우러나서 쓴 글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먼저 자신이 제목을 지어놓고 나서 그 제목에 맞는 논지를 수집하고 짜 맞추다 보니 논리를 폄에 있어 매끄럽지 못하고 극단적인 사고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분명 그의 글은 흥미롭지만 그 흥미가 고개를 끄덕이게 하지는 못한다. 못난 사람이 자신의 가족을 흉본다고 자기에 대해 똑바로 보아야 한다는 논리로 마냥 근거없는 자기 나라에 대한 혐오적인 접근법은 분명 잘못되었다.

참고로 책에 있는 그 사람의 이력 중에서 학력고사는 잘 나왔는데 내신이 안 좋아서 서울대학교에 떨어졌다는 건 왜 쓴 걸까? 갑자기 궁금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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