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받다 대담 시리즈 2
김용석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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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읽은 책은 대담이라는 소재의 특이한 책이다. 서양철학자와 동양철학자 간의 대담을 엮은 것인데 무엇보다도 출판기획의 뛰어남과 패널의 열린 마음 등이 잘 어우러진 책이었다. 주제는 서양철학자와 동양철학자 간의 철학적 사고 차이와 그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 제시 쯤으로 해야 하나? 서양과 동양 간의 진정한 대화가 많지 않던 풍토였기 때문에 전문적인 부분까지 세부적으로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동서양 간 대화의 물꼬를 틀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책의 기획의도에서도 나타냈지만 성급한 결과 도출을 위해 우격다짐식 봉합의 자리가 아닌 서양과 동양의 서로 간의 오해의 원인과 근본적 의식 차이를 이해하고 파해치는 작업이 이처럼 아름다운 영화와 같이 펼쳐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반가웠다. 아마 이 책이 더욱 빛나는 이유는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이나 종종있는 대담 프로그램에서 패널의 자질 부족과 또한 진행 미숙으로 얼굴 찌푸리기 다반사인 우리나라의 토론문화 부재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요즘 토론 프로그램을 보면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패널이 나와 무조건 우격다짐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며 마냥 수평적이거나 원론적인 이야기만 해대는 경우가 많고 진행자는 성급하게 미리 준비한 각본 혹은 모범 답안을 토론이 끝나기 전에 펼쳐보인다. 수술을 하다가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수술이 끝나기도 전에 수술한 부위를 다시 봉합하는 듯한 진행자의 무성의가 눈에 거슬린다. 그러나 이 책의 경우 패널의 해박한 지식과 진리를 향한 열린 마음 그리고 열정이 보인다. 또한 그렇게 상대를 이해하고 앞으로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면서도 쉽사리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봉합하려 하지도 않는다. 단지 그 문제는 다시 앞으로 열정을 가지고 연구해야 할 과제이며 그때 필요한 것은 이런 것이다라는 문제 제시와 과제 제시를 할 따름이다. 따라서 이 책은 진실하다.

토론을 하다 보면 대개가 자기 주장만 일 삼는 데다 동어반복은 그 발언자의 지식 혹은 지성 혹은 교양 혹은 개인의 역량 부족에서 기인한다. 그런 자는 자신의 역량이 금방 드러날까 두려워 문제의 진실에 들어가지 못하게 마련이다. 이는 곧 토론의 빈곤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진정한 토론이란 자신의 지식과 역량 모든 것을 내비칠 수 있어야 하며 그렇게 내비침으로써 자신을 비우고 거기에 새롭고 더욱 더 정교한 지식을 쌓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지식이 다 드러나도록 집중하고 토론에 빠져야 토론이며 대담이 되는 것이다.

그런 토론이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우선 자신의 역량이 다 드러나는 일이기 때문에 자존심이라는 이유로 쉽사리 그런 결정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오히려 이 책 같은 경우는 패널이 자신의 모든 지식과 역량을 쏟아냈으나 그 시간과 지면의 한계가 따라가지 못한 듯하여 아쉬운 면도 있다. 다만 그 댐이 터져 쏟아지는 지식의 물줄기를 보며 난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고 또한 그 물줄기에 내 몸을 맡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해진 듯 싶다. 두 학자는 물꼬를 틀었다.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물길을 잡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물꼬를 틀고 물길을 잡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의 공감대를 가지고 관심 있게 지켜보며 그 물길을 보고 감상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하겠다. 이런 소중한 기회를 물거품으로 만들면 안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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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할미 - 개정판 전통문화 그림책 솔거나라 3
정근 지음, 조선경 그림 / 보림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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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동화책 보는 재미에 빠졌다. 좋은 책은 이럴 때 사뒀다가 나중에 우리 아기 태어나면 다 줄 거다.

마고할미는 한마디로 천지를 창조한 여성 설화의 주인공이다. 크기도 엄청 크고 또 그만큼 힘도 세고 먹기도 많이 먹고 싸기도 많이 싼다. 마고할미가 손으로 땅을 주욱 그으면 파인 부분에는 물이 흐르고 솟아오른 부분은 높은 산이 되고 오줌을 싸면 홍수가 일어나고 찢어진 옷을 기우려면 옷감 수백 필로도 모자란다. 만주벌판 백두산 한라산 모두 마고할미의 작품! 이렇게 크고 큰 우리의 마고할미. 우리가 아직 마고할미의 품에서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림이 너무 뾰족뾰족, 마고할미의 얼굴도 우락부락(남성미가 물씬 풍긴다), 색감도 어둡고.. 좀 더 둥글게 따뜻하게 마치 할머니 치맛속에 안긴 느낌이 들도록 그렸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개정판의 표지로 사용된 제일 마지막 그림처럼..

허나 그런 아쉬움을 모두 덮을 이 책의 최대장점은 판형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동화책은 처음이다. 마룻바닥에 좍 펼쳐놓고 봐야 제맛이 나는 동화책. 오른쪽 왼쪽 모두 펼쳐 놓으면 2미터쯤 되는 책 속의 마고할미는 정말 그야말로 거대하다. 어른인 내가 볼 때도 우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데 아직 1미터도 안 되는 어린아이들의 눈으로 보자면 마고할미는 산을 세우고 강물이 흐르게 한 신화창조의 인물 그 자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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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실 존 그리샴 베스트 컬렉션 6
존 그리샴 지음, 정영목 옮김 / 시공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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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 교수님께서 강의 도중 당신이 읽은 책의 한 구절을 연설처럼 외치신 적이 있다.

"깜둥이나 백인이나 피는 붉다."

오래 된 일이라 정확한 부연 설명은 기억나지 않지만 흑인의 인권 운동을 소재로 한 소설이었는데 그 주인공이 한 말이라고 기억한다.

내 가족이 옆집 이웃보다 더 소중하듯 내 민족, 내 인종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애정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내가 소속되어 있고 없고를 떠나 단지 생명체이기에 공평하게 소중하고 지켜져야 할 것들이 있고 또 인간이기에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할 부분이 있다. 그런 것을 바로 인권이라고 하는 것이고 이 인권이란 국가와 민족, 인종을 떠나 인간이기에 누구에게나 지켜주어야 하고 누려야 할 권리다. 그러나 역사는 그렇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것이 옳다는 것을 알지만 심리적인 거부 반응으로 인해 더욱 거세게 그것을 부정하고 증오하는 경우도 있고 또 시대적으로 이런 인권에 대해 무지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가스실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변호사가 되어 KKK 단원이었던 할아버지의 변호를 맡게 되면서 그는 할아버지를 증오하게 된다.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사람을 죽였던 할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오히려 그런 손자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한다. 단지 할아버지는 당시 옳다고 생각했던 것을 했을 뿐이었고 그런 행동을 했던 당시는 그것이 큰 죄도 아니었다. 그렇게 살았고 그런 역사를 체험한 것뿐이다.

그러나 그도 안다. 시대가 바뀌었고 인권이 무엇인지를.. 그가 한 행동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어떤 것을 평가할 때 현재의 잣대와 기준으로 과거를 잴 수는 없다. 시대에 맞는 윤리가 있는 것이고 기준이 있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기준으로 비평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를 평가하고자 한다면 그 측정자 역시 과거의 그것과 같아야 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과거의 죄를 현재의 잣대로 벌하고자 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는 잘못되었음을 깨닫긴 했지만 분명 그 당시만 해도 옳다고 생각해서 한 것이고 그래서 그를 벌주고자 한다고 해서 굽힐 생각이 없는 것이다.

그는 역사의 또 다른 슬픈 희생양이다.

역사란 그렇게 흘러 영웅도 만들고 전설도 남기고 희망도 남기지만 이런 희생물도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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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 SBS 희망교육 프로젝트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1
SBS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 제작팀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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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프로그램인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책으로 옮긴 것이다. '어휴~ 자식이 아니라 웬수가 따로 없군!'이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들 만한 문제아(?)들을 그야말로 개과천선하게 해주는 내용이었다. 선정성 오락성 위주의 TV프로그램에서 '우아달'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 프로그램의 요지는 아이의 모든 문제는 결국 부모에게 있다는 것! 부모가 은연중에 저지르고 있던 잘못이, 아니면 생활 때문에 방임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인데 TV프로그램이기 때문인지 출연자들은 정말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드는 아이들이었다.

어떤 부모라도 자기 아이가 전혀 문제 없는 아이라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애들 같지는 않더라도 부모 마음에 안 드는 버릇 한둘 없는 아이가 어디 있겠는가? 이 책도 바로 그런 생각으로 그 프로그램을 봤을 부모들을 타깃으로 삼은 것 같은데 한마디로 말하자면 TV 프로그램을 책으로 만드는 것에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게 마련인가 보다. 출판사나 제작진으로서는 어떻게든 색다른 면을 부각시키기 위해 이것저것 육아에 필요해 보이는 팁을 집어넣었는데 그다지 실용적이거나 구체적이지 않고 에릭슨의 사회심리발달이론 등 좀 생뚱맞은 자료도 눈에 보인다. 육아 관련 사이트를 조금만 돌아다녀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이 정도 붙여 놓고 심층적으로 다루었다니.. 추천사를 쓴 어떤 이는 아이 앨범과 함께 오랫동안 보관할 책이라고 하던데 육아에 대한 기본적인 가이드북이 아니라 단순히 사례모음집일 뿐인 이 책이 과연 그렇게 오랫동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수 있을까? '우아달' 연출자의 우려(?)대로 방송 프로그램의 후광을 믿고 독자의 눈을 흐려놓은 책이 만들어졌다.

가장 싫었던 점은 책 제일 마지막 페이지에 함소아의 광고를 실은 것이었다. 단행본 출판사에서 광고까지.. 대학 시절에도 교지에 기업 광고가 실리는 것은 이상하게 보기 싫었다. 드러내놓고 '돈'을 밝힌다는 느낌 때문이었을까? 이 광고 페이지 때문인지 이벤트로 추첨을 통해 썬크림을 준다고는 하는데.. 나는 아무래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아 그 페이지는 찢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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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전집 1 - 시 김수영 전집 1
김수영 지음, 이영준 엮음 / 민음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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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 부러워하던 /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  사람이면 알지 / 노고지리가 / 무엇을 보고 / 노래하는가를 / 어째서 자유에는 /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 혁명은 /  왜 고독한 것인가를 //

혁명은 /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

다소 도발적인 말로 시작되는 이 시는 젊은 날 나를 매혹시켰던 시 중 하나다. 시적 재능이 없는 나는 시를 음미하고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이 시만큼은 예외다. 아마 그 이유는 강렬하고 직설적이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이 시의 특징 때문일 듯 싶다.

시를 잘 모르고 아니 좀 더 솔직하자면 관심도 없지만 시는 그 기교보다는 그 시 속에 작가의 터질 듯한 열정과 세상을 보는 올바른 시각이 얼마나 깨끗하게 담겨 있느냐가 생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김수영의 이 시는 단연 최고다.

고고히 나는 노고지리를 사람들은 자유롭다고 부러워하지만 그 자유를 얻기 위해 노고지리는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쳐야 했는가? 김수영은 혁명의 성공보다는 그 이면을 보여줌으로써 혁명의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희생에 애정 어린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는 시인이 진실을 바로 보는 능력과 그것을 표현할 용기와 무엇보다도 그런 약자 편에 선 혁명가에게 애정을 가졌기에 가능하리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는 푸른 하늘을이란 이 시지만 이 외에도 좋은 시가 많다. 시 한편 한편마다 민중에 대한 사랑과 혁명에 대한 열망을 그렸던 그는 그 자신도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세상을 떠났기에 더욱 시가 빛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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