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장 폴 사르트르 지음, 방곤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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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란 것.. 많이 따분하고 또 때로는 자기 논리에 빠져 있는, 자기 세계에 빠져 있는 학문같이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철학이 중요한 것은 그 시대에 팽배해 있는 철학사조에 따라 우리의 삶의 양식이 많이 달라질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철학이란 붕 뜬 관념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 각각의 개인에, 우리의 가정에, 우리의 나라에, 그리고 우리 지구촌 가족에 즉, 우리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학문이다. 그것을 우리가 인지하든 아니든 말이다. 과학 역시 철학사조에 따라 발전의 방향이 달라지며 우리가 만든 법과 삶의 양식도 달라진다. 따라서 철학을 학문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다.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는 현재 철학의 주류나 관심 연구 분야도 아니며 다른 사조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많은 논리적 허점을 지적당했고 또 역사적으로 이미 검증받은 학풍인 실존주의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은 당시 실존주의에 대한 많은 비난에 대응하고 또 진정한 실존주의의 의미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주장하고자 한다.

실존주의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자면(아주 교과서적인 표현이지만) 당시 혼란스러운 시대에 인간의 존재에 대하여 연구를 했던 학풍으로 가장 실존주의를 잘 표현한 말로는 실존은 본질을 앞선다라는 사르트르의 발언이 있다. 실존 즉, 존재가 존재하는 것의 의미보다 더 우선적이다, 라는 뜻으로 이는 인간이 기계나 공구와 달리 우선 인간이 이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이 먼저이지 가위처럼 종이를 자르기 위해 즉, 인간이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그런 인간은 우선적으로 이 실존을 자각해야 하는데 이 자각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가 실존주의자의 연구과제였다.

이 실존 인식에 따른 학풍마다 무신론적 실존주의자와 유신론적 실존주의자로 나뉘는데 사르트르는 개인적으로 무신론적 실존주의자에 속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책은 전체적인 실존주의에 대한 의미와 설명을 하기 때문에 무신론적이다 유신론적이다, 라는 것에 대한 구분은 없다. 당시 실존주의가 주류를 이루면서 바로 암울하던 시대적 배경에서 탄생했기에 그에 대한 오해가 많았는데 그것에 대한 반론이 바로 이 책의 핵심이다.

책에 대한 배경 말고도 저자인 사르트르는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 아주 흥미로운 사람이다. 당시 최초로 개약결혼이라는 것을 했었고 또 까뮈와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가 학문적 이견으로 인하여 절교를 하는 등 그의 개인적인 행동들 역시 지켜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흥미를 유발했다. 그는 당시 살아 있는 지성으로, 지성을 대표한다는 명예로운 호칭도 얻었고 또한 소설가로서도 명망을 얻었던 사람이다. 이 책 외에도 구토라는 소설이 유명하며 그 책 또한 그의 사상과 소설적 상상력과 재미가 훌륭한 책이다.

실존주의를 뒤늦게 접한 우리나라의 경우는 실존주의를 진정한 의미에서 접하지 못했고 변형되어 원래의 학풍과는 엉뚱한 방향으로 받아들여서 좌절주의나 혹은 비관주의의 철학으로 오해했다. 실제로 60~70년대  이후에도 실존주의적인 소설과 시라고 불리는 우리나라의 소설과 시들은 당시 우리나라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 대한 비관적 대안책으로 제시되어 창작되었다.

실존주의가 진정한 의미로 받아들여졌든지, 아니면 오해가 발생하여 다른 방향으로 접했든지 간에 우리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던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역사와 잘못된 길을 바로잡는 것이 후세의 도덕적 의무라면 바로 그 작업을 위해서라도 바른 의미와 바른 뜻을 알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실존주의에 대한 개론서 역할을 하는 책으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가 가장 적합할 것 같다. 실존주의에 대해 또 철학책의 딱딱한 문체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금방 지루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에 대한 보상으로 사고의 폭이 넒어짐과 동시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철학사조를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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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평전 역사 인물 찾기 10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 실천문학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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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정치, 역사적 특수성을 감안하고도 우리 사회의 레드콤플렉스는 지나치다. 물론 소위 말하는 빨갱이에 의해 가족이나 친지가 다치거나 죽음을 겪은 사람의 고통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빨갱이'에 대한 결벽성은 도를 지나쳤다. 진실을 말하고 정의를 추구하는 것마저 정부의 의견과 일방향을 같이 하지 않는다면 그 색깔을 넘어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마녀사냥을 한 것이 우리네 역사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빨갱이'는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를 폄하해서 부르는 것을 넘어 없어지고 타도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빨갱이'인 체 게바라에 대한 지난 몇 년간 우리의 관심은 극히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이제야 비로소 사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정신적인 여유를 찾았다고 해야 하나? 안타깝게도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체 게바라에 대한 지난 열풍의 핵은 역시 20~30대이며 이들은 이념과 정치에 다소 무관심한 계층이다. 이 무관심이 반공주의에서 벗어났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더 지독한 반공주의에 사로 잡혀 있는 경우도 많다. 다만 이들이 본 체 게바라는 각박해져 가는 우리네 삶 속에 마치 동화나 흥미로운 영화 같은 구실을 했을 것이란 생각이다.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도시가 아닌 정글을 돌아다니며 강자와 싸우는 체 게바라의 모습에서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낀 것이 아닐까?

따라서 난 체 게바라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하다. 체 게바라의 진정한 저항정신과 못 가진 자와 인민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한갖 감상의 도구로 전락시킨 것 같아서이다.

체 게바라 평전을 읽으며 우리나라의 체 게바라라고 할 김산에 대한 관심도 깊어졌으면 한다는 생각을 했다.오래 전에 읽어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우리의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주의자, 공산주의자였던 김산의 평전인 님 웨일즈의 <아리랑> 역시 체 게바라 평전과 같은 많은 호응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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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화 비밀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 5
모니카 봄 두첸 지음, 김현우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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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소설이나 시나 수필 등 글로 된 예술은 접하기 쉽고 그런 것에 대한 연습이 평소에 잘 되어 있다. 또 음악은 그냥 귀로 듣고 즐기면 되기에 거부감이 없는 반면 미술이나 조각은 갤러리에 가야 하고 또 보통 이런 문화에 접하기 어려운 점이 있어 거부감이 있거나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냥 선과 색상과 기하학적인 도형으로 가득 찬 그림에 대해 난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 참 우습다고 느끼기도 했고 또 답답함도 느꼈다. 이런 사람들에게 그런 그림과 조각이 왜 아름다우며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자세히 이야기해주고 또 그것이 위대한 이유를 설명해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예술이란 것은 느끼는 것이지 머리로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 옳으냐는 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잠깐 달리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소설을 즐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글을 읽고 쓸 수 있어야 한다. 글을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쳐주지도 않고 또 배우지도 않고서 소설책을 툭 던져주고 소설이란 독자가 읽고 느끼는 예술이지 그 소설을 가르쳐줄 수는 없다고 한다면 설득력 없는 행동일 것이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이 그림의 의미는 이렇다라고 설명해주는 것은 참고의 의미이지 그 그림을 좋아할지 말지는 감상자의 마음에 달려 있다. 모니카 봄 두첸의 이 책을 바로 글을 못 읽는 사람에게 글을 가르쳐주는 소설처럼 받아들였으면 한다. 단지 조금 아쉬운 것은 그 책이 자신이 좋다고 느낀 작품 일부만 소개한 것이기에 전체적인 미술을 이해하는 데는 부족하지만 일 더하기 일이 이라는 것을 알면 이 더하기 이는 사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아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이 소개한 명화 감상법만 이해한다면 독자의 관심 정도에 따라 미술을 보는 눈이 생길 거라는 생각이다. 

나 역시 미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어서 항상 관심을 갖는 수준에만 머물 뿐이지만 이 책을 읽고 아! 이래서 별것도 아닌 것 같은 작품이 이렇게 사람들의 사랑과 추앙을 받는구나, 하는 느낌과 또 작품을 만든 작가의 시대적 배경이라던가 하는 것을 좀 자세하게 알게 되면서 미술작품의 단순한 예술적 의의 뿐만 아니라 역사적 의의 또한 느낄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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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푸른 점
칼 세이건 지음, 현정준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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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은 코스모스란 책으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유명한 천문학자다. 칼 세이건이 쓴 창백한 푸른 점은 다름 아닌 지구를 뜻한다. 칼 세이건이 말하는 지구에 대한 이야기, 태양에 대한 이야기, 우주에 대한 이야기가 일반 독자가 읽어도 무난하게 또 단편적인 흥미 위주의 책이 아닌 과학적 근거와 작가의 과학관, 인생관이 스며 있는 책이다.

칼 세이건은 과학자라기보다 뛰어난 에세이스트로 보인다. 간혹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적 전문 지식이 이 책을 읽는 데 방해가 되긴 하지만 새로운 지식을 얻는 즐거움과 비하자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가끔은 밤하늘을 바라보라. 가끔은 달을 바라보라. 가끔은 별을 바라보라. 또 깊고도 깊은 검은 밤하늘을 바라보라.. 그곳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는 신비의 전설이, 그곳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는 생명의 신비가 또 우리를 둘러싼 갖가지 진실들이 숨어 있다.

그것이 과학적인 사실이든 아니면 낭만이 살아 있는 신화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어떤 것이든 우리에게 주는 감동과 아름다움이 숨어 있다. 이 감동과 아름다움이 여타의 것들과 다른 것은 그것이 감각적인 그리고 감상적인 감동과 아름다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독과 아픔과 또한 자연세계의 냉정함이 숨어 있기에 더욱더 깊고 농후하다. 

말과 언어에서 또 그림과 조각 그리고 연극과 영화 등 예술에서 나오는 순수미에는 그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물론 그것이 하찮거나 또는 질이 낮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예술에서 주는 아름다움은 그 밑바닥에 과학적 진실과 또는 진리에 대한 탐구가 함께 해야 그 깊이가 생긴다는 것이다.

누군가 이야기했다.우리 인간이 달에 도착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인류 문명의 진화에 경탄했지만 우리는 달이 주었던 수많은 신화와 전설을 잃어버렸다고. 그렇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우리에게 달에 토끼가 살았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그 사람은 우리가 달에 발을 올려놓은 것을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그런  점은 나도 인정하지만 그것은 우리 인간의 상상력을 과소평가한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는 달에 발을 밟는 순간 토끼의 전설을 잃었지만 달은 그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추었다. 달을 과학적으로 보았지만 또 우리는 달에 새로운 신화를 부여하고 있다. 과학과 문학과의 새로운 접목이 필요할 때라고 본다. 과학이란 밝히면 밝힐수록 본 모습을 감추는 특징이 있다. 하나가 밝혀지면 둘을 감춘다. 새로운 문학적 상상력으로 더욱 풍부한 문화를 건설할 인플라를 구축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라면 과학 서적을 읽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 믿고 과학자 또한 소설과 시를 사랑해야 할 것이라 믿는다. 좀 더 다양한 책 읽기의 접목이야말로 진정한 책 읽기가 될 것이며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건전한 성장을 이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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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와 인간
존 스타인벡 지음, 안의정 옮김 / 맑은소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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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로 유명한 존 어네스트 스타인벡의 중편소설이다. 정말 정말 슬픈 이야기를 어쩜 그렇게도 담담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서정적으로 묘사하고 그릴 수 있는지.. 부끄럽게도 난 이 책을 읽고 스타인벡의 다른 책들은 읽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 책을 읽고 받은 감정 그래서 이 책에 대한 감정이 발전하여 스타인벡에 대한 존경이 그의 다른 책을 읽고 무너질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마치 첫사랑의 추억은 그냥 추억으로 남겨야 가장 아름답다는 말을 신봉하는 광신자 같은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학에 들어와 첫사랑을 만났고 나와 같은 느낌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 몇 번이고 반복해 읽어 손때가 가득한 책을 그녀에게 선물로 줬던 기억이 난다. 지금 그런 얘기를 하면 친구들은 다들 웃지만 이런 추억 때문에 생쥐와 인간이 더 아름답고 더 소중해지는 느낌이 드는가 보다.

생쥐와 인간은 어느 어리숙하고 바보 같은 친구와 눈치도 잘 보고 처세술 좋은 친구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친구와의 우정을 그린 작품인데 처음엔 그 두 친구와의 우정에 울고 또 그 당시 미국 사회의 경제적으로 암울했던 사회상으로 고통받는 그들의 상황에 울고 그리고 사회에 대한 어떤 벽에 대해 울고 마지막엔 그걸 우리 자신의 모습과 비교해서 울게 될 것이다.

스타인벡의 장점인 그 당시 암울했던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함으로써 사회정의에 대한 물음을 제시하고 고민하는 모습이 잘 나타난 것으로 문학적으로도 뛰어난 작품이다. 실제로 이 작품으로 유명한 문학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뭐 이런 건 중요하지 않은 여담이지만.. 문학상을 받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장 암울한 처지에 있는 그들의 모습을 담담하면서도 서정적인 묘사로 아름답게 처리하면서 눈물을 만들기 위한 어거지 묘사가 아니라 마음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눈물을 유도한 점이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하게끔 하는 이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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