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김승옥 소설전집 1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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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은 김승옥의 대표작이자 우리 국문학사에서 있어서도 큰 획을 그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김승옥의 뛰어난 문체와 함께 배경을 하나의 소설 소품으로 사용할 정도의 획기적 발상 등등의 표면적인 것을 벗어나 작품 면에서의 완성도 역시 뛰어나다는 것이 비문학도의 개인적 생각이다.

그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으로 무진이라는 공간은 바로 원시적인 곧 본능적인 또는 가장 순수한 곳을 상징하는 곳이 아닐까 한다. 처세술과 권모술수 기타 현실적인 이해관계가 얽힌 곳에서 벗어나 본능적인 생존에 대한 강한 욕구만 살아 있는 곳이 바로 무진이 아닐까?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책에만 파고드는 한 후배는 곧 주인공의 어린 시절을 상징하고 여선생은 주인공의 성적 본능을 살아 있게 만드는 그런 역할을 한다. 하지만 무진은 아름답고 향수와 꿈이 가득한 곳을 표현하는 듯하지만 실은 그렇지만은 않다.

본능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자연세계에서는 오히려 인간보다 더 치열하고 무서운 규칙으로 살아남은 자 또는 피의 논리만 통하는 것이 바로 자연이며 본능이 지배하는 세계다. 그래서 이 무진도 그렇게 아름답게만 묘사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렇게 아름답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의 본능을 누르고 권모술수와 이해관계로 이루어진 부자연스러운 서울 곧 현실세계보다는 무진에서의 삶이 자연스럽다는 사실이다.

중요한 또 다른 개념 중 하나는 무진이란 잠깐 머무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서울 - 무진 - 서울 이런 주인공의 행적은 바로 잃어버린 옛추억에 대한 회상일 수도 있고 가슴 속 아련한 과거의 기억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무진기행이 개인적으로 재미있는 작품으로 다가오는 것은 여러 해석 속에서 갖고 있는 그 흥미진진함과 김승옥의 다른 소설과의 관계. 그리고 한동안 작품활동에 손을 끊은 김승옥 교수가 이제 곧 긴 세월의 공백을 깨고 작품 준비를 한다는 소식에서 오는 기대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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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위 나의 인생
마거릿 D. 로우먼 지음, 유시주 옮김 / 눌와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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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인가? 제인 구달이 큰 이슈가 된 적이 있다. 그녀가 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연말에는 한 방송사에서 단독 인터뷰가 연말 특집으로 방영되었다. 그때 그녀의 모습은 침팬지를 수호하는 여전사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의 과학적 성과나 연구에 대한 관심보다는 밀림에서의 생활이나 침팬지의 신기한 습관 등에 더욱 관심이 있었고 따라서 그녀가 언론을 통해 나타나는 모습은 그런 쪽에 부각되어 있었다.

한편 그와 비슷하지만 대중들에게 흥미를 끌기에 부족하거나 관심이 적은 부분을 연구하는 사람에 대한 무관심은 대단히 크다. 단순히 이런 현상만으로 대중들을 욕하거나 비난할 수는 없지만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다.

마거릿 D. 로우먼의 나무 위 나의 인생이란 책을 읽으며 자꾸 제인 구달이 생각났던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같은 여성 과학자로서 어머니의 역할과 과학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정글 속에서 인생을 바쳐야만 했다는 비슷한 이력 때문만은 아닐 것 같다.

어쨌든 나무 위 나의 인생은 나무를 연구한 한 여성 과학자의 자서전적 에세이집이다. 여성과학자로서 밀림에서 생활해야 하고 또 육아를 전담해야 했고 과학자적 열정과 사회에서 여성으로 요구하는 부분과의 갈등이 잘 그려져 있다.

재미있고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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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1
김진명 지음 / 해냄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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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진명의 글을 읽은 것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뿐이다.
그때 당시 대단한 베스트셀러였고 따라서 주변에서 읽어 보란 권유가 많아서 읽게 되었다.

결론은 김진명의 소설은 다시는 안 읽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글을 읽지 않았기에 무어라 말하기는 힘들지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비슷하다는 말과 재미있다는 말로 대충은 알고 있다.

김진명의 글을 읽으면 우선 속도감 있는 전개와 기발(?)한 상상력으로 재미있게 읽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글이란 특히 시나 소설은 신성한 것이라는 점이다.
소설이 허구적인 상상력의 예술이란 말과 허상과 공상이란 말과 혼동해서 사용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마치 꿈이라는 말과 희망이라는 말은 비슷하지만 엄연히 다른 의미의 단어인 것처럼 말이다.

소설을 쓰는 것은 글이 써져 내려가기 전 치열한 고민과 고통이 함께 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많은 대중을 상대로 글이란 매개체로 돈을 버는 수준 낮은 장사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글은 국수주의적 발상과 또는 단순한 민족애의 호소로 가득 차 있다. 마치 중세 시대 마녀사냥꾼이 그냥 저 사람은 늙은 마녀다, 고로 죽여야 한다, 라며 많은 대중을 현혹시켜 마녀와 무관한 많은 사람을 화형시켰듯이..

그의 글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것을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그의 글은 어설픈 공상으로 가득 차 있다.
그의 글은 진심 어린 열정이 없다.
그의 글은 비평이 아닌 비난만 있다.
그의 글은 어설픈 애국애와 국수주의로 가득 차 있다.

예술이란 그리고 역사란 그리고 철학이란 학자들만의 고유한 영역은 아니다, 대중과 함께 하는 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것이다, 라며 나의 생각을 고치려는 사람이 있는 줄로 안다. 그 말도 옳은 말이긴 하지만 예술과 역사 그리고 철학이 대중과 함께 한다는 것은 다른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대중과 함께 한다는 것은 그들의 고립된 영역을 개방시키라는 것도 포함하며 대중이 그것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모두가 같이 수준을 높이자는 이야기도 되는 것이다.

김진명은 베스터셀러 작가다.
만약 김진명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라면 이런 얘기를 안 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아니 우리 동네 작은 서점만 가봐도 형편 없는, 가치 없는 글들로 가득 차 있으니까.. 그 중에 하나겠지 하면서 지나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아무리 글을 훌륭하게 쓰는 진짜 작가도 때로는 졸작을 쓸 수 있다.
따라서 김진명은 글 속에 자신의 열정이 살아 있는 또는 깊은 고민을 한 흔적이 있는 그리고 좀 더 넓게 보는 안목이 있는 그런 작가가 되었으면 한다.
그가 계속 글을 쓸 거라면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코미디언이 아니라 진정한 소설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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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채 - 범우비평판 세계문학선 47-1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47
A.J.크로닌 지음, 공문혜 옮김 / 범우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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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채는 중학교 때 어머니의 책꽂이에서 꺼내 읽은 책이다. 내용은 주인공이 의사가 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의사가 된 후의 이야기로 크게 나뉘어진다. 주인공은 돈벌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정말 현명하고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얻고 점점 이름을 알리면서 탄탄한 성공의 길로 나서게 된다. 하지만 그가 이름 있는 의사가 되면서 처음의 마음 즉, 돈 때문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되겠다는 마음은 점점 퇴색하게 된다. 사회에서 성공의 맛을 알고 또 사회에서는 능력보다 어쩜 허영이나 처세술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그의 올바른 길을 가로막는다. 거기서 아내는 정말 헌신적으로 그를 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한다. 결국 아내의 헌신적 사랑으로 주인공은 자신의 길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린 마음에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난 커서 정말 나의 육신이 편한 길보다 올바른 길을 찾아서 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한 계기가 됐다고나 할까? 그땐 이 책이 왜 그리 슬프게만 느껴졌었는지.. 얼마나 아름답다고 생각했는지.. 지금도 일을 하면서 항상 열심히 하고 내 일에 최고가 되자는 처음 다짐과 달리 상사의 눈치나 보면서 때로는 교만해지고 오만하고 또는 처세술로 모든 일을 처신하려는 내 자신을 발견할 때 난 이 책을 생각하며 가슴 아파지기도 한다.

지금 생각하면 이 책이 그리 슬픈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 책은 겉보기엔 상당히 슬프지만 그 진정한 내용은 어쩌면 진정한 희망을 이야기하니 말이다. 그래서 난 이렇게 정의하고자 한다. 아름다운 것이란 슬픔이기도 하지만 또한 기쁨이기도 하다고.. 그것은 진정한 희망이라고.. 이게 나만의 생각인지는 몰라도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가끔이지만 나 자신을 추스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게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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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의 벽 이청준 문학전집 중단편소설 7
이청준 지음 / 열림원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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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엄마가 어린아이를 혼내면서 빨리 대답하라고 다그치는 모습을 가끔 본다. 그러면 아이는 대답을 하기보다 더 크게 울고 오히려 그 대답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곤 한다. 이 책의 주된 흐름은 이와 같다. 주인공에게는 어린 시절 상대가 어떤 인물인지 모르고 심문받으며 자신의 대답만 강요받는 끔찍한 기억이 있다. 그런 이가 나중에 커서 소설가가 되는데 소설이란 것이 아무리 허구라지만 어찌 보면 작가의 솔직한 마음을 여과 없이 적어내는 것이기에 어쩌면 자기 진술을 끊임없이 해야만 하는 그런 직업일 것이다.

허나 자기 진술이란 항상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나오는 박준이란 인물은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에, 상대가 어떤 이인지 모르고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가는 몰살당한다는 기억 때문에 고민한다. 결국 그는 자기 진술을 끊임없이 해야 하지만 그것은 자기를 미쳐가게 하는 작업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작품을 그만 둘 수 없는 것도 결국 그는 소설가이기 때문이고 소설가란 소설을 만들어야 하기에 자신은 미쳐가며 작품을 쓴다. 결국 나중에 그런 현실을 도피하고자 정신병원에 미친 척하고 도망을 가지만 병원에서도 정신병 치료의 일환으로 환자의 자기 진술을 요하게 되고 따라서 자신의 마지막 도피처로 생각했던 병원은 더 이상 병원이 아닌 오히려 적진임을 깨닫게 되어 주인공은 마침내 진짜 미쳐버린다는 줄거리다.

소설이나 영화나 다 보면 어떤 사건을 잔잔히 그리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아이러니한 상황 혹은 모순된 상황으로 치닫게 하면서 거기의 종착에서 그 사건의 본질 또는 인간 존재의 본질 등을 치밀하게 묘사하며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 있다. 이 소문의 벽이라는 소설도 상당히 모순적인 상황으로 전개되면서 또 그렇게밖에 될 수 없는 방향으로 이끌면서 최종적인 종착역에는 과연 소설이란 무엇일까? 자기 진술의 고통은 어떤 것일까? 혹은 과연 우리가 하는 말이나 글에 그만 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들을 곰곰히 되씹게 만든다.

이 작품의 특이한 점은 우선 이런 모순적인 상황으로의 전개뿐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 등장하는 주변인물의 무신경함 또는 권위적인 모습 또는 자만심 등도 함께 보여주는 것으로 이 소설을 좀 더 깊이 있게 만들고 있으며 또한 이 책의 주인공을 책을 만드는 편집자와 또 직접 소설을 쓰는 소설가로 설정하여 소설가 이청준의 주장을 솔직히 받아들일 수 있게끔 한다는 점이다.

참고로 이청준의 소설을 보다 보면 모두 다는 아니지만 일관적인 법칙이 있는데 소설을 쓰는 사람이 등장한다던가 혹은 그게 아니더라도 어떤 창조적인 예술을 하는 사람을 등장시킨다는 점이다. 소설이라는 것은 또는 예술이라는 것은 그 작품에서 작가의 삶이 또 인생관이 잘 어우러진다고 생각하는 이청준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또 다른 법칙이랄 것까진 없지만 대부분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어떤 큰 틀은 말을 하고자 하는데 어떤 현실 혹은 어떤 상황 등에 의해 그것이 가로막히는 데서 오는 갈등을 아주 치밀하게 그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소문의 벽에서는 자기 진술을 거부하는 소설가가 등장하지만 그러나 소설가의 가장 큰 일은 자기 진술이라는 점. 혹은 병신과 머저리에서 경험과 관념에서의 상처를 이야기하면서 관념의 상처는 자신의 아픔의 근원을 모른다는 즉 자기가 아픈 곳도 모르고 왜 아픈지 모르지만 아픈 데서 오는 그런 갈등. 뺑소니 사고와 같은 소설에서는 역사를 만드는 것과 진실을 밝히는 사람과의 갈등.. 이청준의 이런 작품을 보면 정말 이청준이야말로 이야기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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