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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의 벽 ㅣ 이청준 문학전집 중단편소설 7
이청준 지음 / 열림원 / 1998년 4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엄마가 어린아이를 혼내면서 빨리 대답하라고 다그치는 모습을 가끔 본다. 그러면 아이는 대답을 하기보다 더 크게 울고 오히려 그 대답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곤 한다. 이 책의 주된 흐름은 이와 같다. 주인공에게는 어린 시절 상대가 어떤 인물인지 모르고 심문받으며 자신의 대답만 강요받는 끔찍한 기억이 있다. 그런 이가 나중에 커서 소설가가 되는데 소설이란 것이 아무리 허구라지만 어찌 보면 작가의 솔직한 마음을 여과 없이 적어내는 것이기에 어쩌면 자기 진술을 끊임없이 해야만 하는 그런 직업일 것이다.
허나 자기 진술이란 항상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나오는 박준이란 인물은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에, 상대가 어떤 이인지 모르고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가는 몰살당한다는 기억 때문에 고민한다. 결국 그는 자기 진술을 끊임없이 해야 하지만 그것은 자기를 미쳐가게 하는 작업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작품을 그만 둘 수 없는 것도 결국 그는 소설가이기 때문이고 소설가란 소설을 만들어야 하기에 자신은 미쳐가며 작품을 쓴다. 결국 나중에 그런 현실을 도피하고자 정신병원에 미친 척하고 도망을 가지만 병원에서도 정신병 치료의 일환으로 환자의 자기 진술을 요하게 되고 따라서 자신의 마지막 도피처로 생각했던 병원은 더 이상 병원이 아닌 오히려 적진임을 깨닫게 되어 주인공은 마침내 진짜 미쳐버린다는 줄거리다.
소설이나 영화나 다 보면 어떤 사건을 잔잔히 그리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아이러니한 상황 혹은 모순된 상황으로 치닫게 하면서 거기의 종착에서 그 사건의 본질 또는 인간 존재의 본질 등을 치밀하게 묘사하며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 있다. 이 소문의 벽이라는 소설도 상당히 모순적인 상황으로 전개되면서 또 그렇게밖에 될 수 없는 방향으로 이끌면서 최종적인 종착역에는 과연 소설이란 무엇일까? 자기 진술의 고통은 어떤 것일까? 혹은 과연 우리가 하는 말이나 글에 그만 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들을 곰곰히 되씹게 만든다.
이 작품의 특이한 점은 우선 이런 모순적인 상황으로의 전개뿐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 등장하는 주변인물의 무신경함 또는 권위적인 모습 또는 자만심 등도 함께 보여주는 것으로 이 소설을 좀 더 깊이 있게 만들고 있으며 또한 이 책의 주인공을 책을 만드는 편집자와 또 직접 소설을 쓰는 소설가로 설정하여 소설가 이청준의 주장을 솔직히 받아들일 수 있게끔 한다는 점이다.
참고로 이청준의 소설을 보다 보면 모두 다는 아니지만 일관적인 법칙이 있는데 소설을 쓰는 사람이 등장한다던가 혹은 그게 아니더라도 어떤 창조적인 예술을 하는 사람을 등장시킨다는 점이다. 소설이라는 것은 또는 예술이라는 것은 그 작품에서 작가의 삶이 또 인생관이 잘 어우러진다고 생각하는 이청준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또 다른 법칙이랄 것까진 없지만 대부분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어떤 큰 틀은 말을 하고자 하는데 어떤 현실 혹은 어떤 상황 등에 의해 그것이 가로막히는 데서 오는 갈등을 아주 치밀하게 그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소문의 벽에서는 자기 진술을 거부하는 소설가가 등장하지만 그러나 소설가의 가장 큰 일은 자기 진술이라는 점. 혹은 병신과 머저리에서 경험과 관념에서의 상처를 이야기하면서 관념의 상처는 자신의 아픔의 근원을 모른다는 즉 자기가 아픈 곳도 모르고 왜 아픈지 모르지만 아픈 데서 오는 그런 갈등. 뺑소니 사고와 같은 소설에서는 역사를 만드는 것과 진실을 밝히는 사람과의 갈등.. 이청준의 이런 작품을 보면 정말 이청준이야말로 이야기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