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알베르 카뮈 전집 2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8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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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태양빛이 뜨거워 살인을 저지르고 그 죄로 인해 사형을 선고받고도 담담한 남자..

작가 자신은 부조리에 대해 이야기했다지만 난 그 부조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단지 그 소설의 주인공이 흥미로운 사람이라 생각될 뿐이다. 카뮈는 세상을 부조리하다고 보았다. 나 역시 짧은 삶을 살았지만 내가 느끼기에도 삶은 부조리하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 아직도 가난한 사회이며 옳지 못한 사람들이 아직도 떵떵거리는 사회다. 실력없는 사람이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승진을 하고 또 친분관계로 인해 성공하는 것도 사회다. 담배가 마약이라며 금연을 주장하는 것도 담배를 만들고 파는 것도 사회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모르는 게 사회다.

한 시인은 술을 마시며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시인은 노래하고
농부는 씨뿌리고
학자는 생각하며
애인은 사랑하는 땅.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의 일을 하고 사는 것이 당연한 일일진데 술을 마시며 이상향을 꿈꾸는 곳이 바로 이런 사회여야 한다는 것, 그만큼 현실은 당연하지 못한, 부조리한 세상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상가들은 이런 사회를 건설하는 것에 그들의 정력을 소비하며 고민했을 것이다.

공산주의를 꿈꾸고 사회주의를 꿈꾸고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어떤 이는 조국의 독립을 설파했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가난할 수밖에 없는 이 사회가 바로 서지 않고서 어찌 조국의 자유를 말할 수 있겠냐며 어떤 정치가는 사회의 정의를 먼저 말하겠다고도 했다.

어떤 것이 옳은지 어떤 말이 진리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우리는 이 땅에서 이 사회에서 살아가며 울기도 하지만 웃기도 하고 감동을 느끼기도 하며 살아간다. 때로는 뜻하지 않는 이의 도움으로 세상에 감사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이방인이란 소설이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염세주의적 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은 무한한 감동을 준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어머니의 죽음에도 슬픔을 느끼지 않고, 자신의 사형선고에 대해서도 담담한 태도를 보였던 그가 삶의 아주 짧은 시간을 남긴 순간 세상에 대해 애정을 보였던 그리고 세상의 부조리를 이해하고 화해의 장을 남기는 장면에서 이 소설은 정말 진정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모든 사건의 결과가 사형장의 싸늘한 시체로 보여질지라도 그 사형장을 걸어가는 그 짧은 순간의 시간만이라도 삶에 대해 애정을, 삶에 대한 희망을 보인 것으로, 우리에게 그것을 위해서라도 살아야 한다는 무한한 말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난 이방인을 보며 그걸 느꼈다. 오늘은 이방인을 다시 읽고 싶다. 그 희망의 메시지를 가슴으로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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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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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우리나라가 많이 부유해졌고 또 노동조건도 많이 개선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정의라는 말이 쓰이는 것에 낯 간지러운 면이 없지 않다.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남의 노력으로 자신의 배를 채우는 사람이 많고 아직도 공무원의 행정이란 기득권을 위한 정책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물론 완벽한 정책이나 완벽한 사회란 이상향일뿐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 아름답고 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이유는 우리에게 잘못된 것을 고치려 하는 의지가 있다는 점일 것이다. 불합리한 것을 불합리하다고 외치는 것뿐만 아니라 이렇게 개선하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일 게다.

우리가 젊은이를 아름답다고 하는 것도 이런 의미에서일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기존 사회의 불합리를 고치려는 그들의 특성이 그들을 아름답고 인간답게 보이게 하는 것일 게다. 아마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면을 한번쯤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우리가 부유하고 좀 더 쾌적한 사회를 사는 이유 중 하나는 이렇게 사회에 부조리를 타파하고자 하는 많은 이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그들의 주장이 이미 예전에 생명력을 잃어버린 구호였다고 회피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발전도 없을 뿐더러 큰 실수를 하는 것이다.

다시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난쏘공은 당시 사회상으로 봐서 상당히 기발하고 대범한 글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점을 가장 높이 사고자 한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이 작품에는 문학적으로 봤을 때 많은 허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글의 가장 큰 구성은 우선 변형된 변증법적 구도다. 두 갈등 계층의 묘사로 즉, 가해자와 피해자의 갈등이 주요 골자다. 작가는 이 두 계층을 한곳에 묶어 중간자적인 입장을 내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두 갈등 사이에 태어난 중간자 역시 해결이 아닌 마치 사생아와 같은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두 전제의 모순이 충돌하여 그 모순을 가려주는 새로운 명제가 탄생한다는 변증법적인 기법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두 계층의 충돌은 서로 물과 기름 같아서 그 중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두 계층과 그 중간에 매개체 역할을 하는 모든 이들의 폐배로 결말지어진다.

어쩌면 이 글을 조세희는 이런 변형된 변증법적 방법으로 쓸 것이 아니라 정통 변증법적인 접근으로 그렸어야 했을 것이다. 그럼 좀 더 가치있는 글로 이름을 날리지 않았을까. 또 이 글의 특이한 점은 소설이긴 한데 동화적인 느낌을 강하게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아까 이야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전통과 근대의 충돌 속에서 그가 근대화의 모순을 표현하면서 전통적인 방식인 구연동화와 같이 글을 써내려갔다는 점은 참 새로운 접근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장 슬프고 괴로운 이야기를 마치 시골집 할머니가 그려내는 구수한 옛날이야기 같은 방식으로 쓴 조세희식의 이야기법이 돋보인다.

이런 면들을 보면 조세희의 난쏘공은 참 새롭고 신선한 작품임이 틀림없다. 물론 새로운 것을 개척하면서 실험적인 면들이 많이 보였고 때론 실패로 끝난 듯한 느낌이 드는 구석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써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를 가진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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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주의자의 꿈 - 어느 헌책수집가의 세상 건너는 법
조희봉 지음 / 함께읽는책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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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책 소개를 읽게 되었다. 그냥 그저그런 책이려니 하고 지나갔던 책이었는데 제목의 영향이 컸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책 소개를 보고 무척이나 읽고 싶어 사 버렸다.

전작주의자란 한 작가의 모든 글을 읽음으로써 그의 책뿐 아니라 그 작가의 모든 사상과 의미를 해석하고 또 이해한다는 의미로 이 작가가 만들어낸 개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전작주의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 작가는 헌책방 마니아이며 책을 수집하는 것이 취미다. 그런 작가의 평범한 책에 대한 이야기이자 헌책 찬가라고 하면 이 책에 대한 올바른 소개가 될까?

잔잔한 이야기 전개와 소탈한 글쓰기가 맘에 들었다. 나도 이 작가만큼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가 그와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많이 즐거운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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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개의 죽음 그르니에 선집 3
장 그르니에 지음, 지현 옮김 / 민음사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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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를 다시 찾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다시 태어날 수 있다'라는 단 한 줄로 날 매료시켰던 작가.

까뮈의 스승이자 정신적 동반자였던 철학자.

삶의 의미를 아주 조용히 그렇지만 강렬하게 이야기해주는 이..

장 그르니에를 알게 된 것은 대학교 1학년 때 학교 도서관에서였다. 도서관에서 프랑스 문학 쪽을 뒤지다가 아주 얇은 책 한 권이 눈에 띄길래 살펴보았다. 작가의 이름이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잘 생각나지 않아 큰 호기심으로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보통은 첫 장부터 차근차근 읽는 편인데 무슨 일로 어떤 내용일까 하는 생각에 중간부터 ?어보기 시작했다.그 중간에 나온 글귀가 바로 사랑하는 이를 다시 찾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라는 글귀였다.

솔직한 말로 사실 장 그르니에의 책은 단 두 권밖에 읽어보지 못했기도 하지만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전부 아니 일부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이 답답함으로 다가오지만 이상하게 그 이해라는 것의 머릿속 연산작용과 무관하게 그의 명상적인 문체와 사상 그리고 글귀 하나하나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이 날 강하게 끌어당긴다.

때로는 이처럼 아무 생각 없이 단지 느낌이 좋다, 라는 단 한 가지 이유에서 내 맘을 다 쏟고 싶을 때가 있다. 그냥 그러고 나면 참 마음이 편하고 또 후회하지 않게 되곤 한다.

바로 그런 책이 장 그르니에의 책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이미지와 느낌만으로 그와 대화를 나누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장 그르니에의 매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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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김승옥 소설전집 1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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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은 김승옥의 대표작이자 우리 국문학사에서 있어서도 큰 획을 그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김승옥의 뛰어난 문체와 함께 배경을 하나의 소설 소품으로 사용할 정도의 획기적 발상 등등의 표면적인 것을 벗어나 작품 면에서의 완성도 역시 뛰어나다는 것이 비문학도의 개인적 생각이다.

그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으로 무진이라는 공간은 바로 원시적인 곧 본능적인 또는 가장 순수한 곳을 상징하는 곳이 아닐까 한다. 처세술과 권모술수 기타 현실적인 이해관계가 얽힌 곳에서 벗어나 본능적인 생존에 대한 강한 욕구만 살아 있는 곳이 바로 무진이 아닐까?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책에만 파고드는 한 후배는 곧 주인공의 어린 시절을 상징하고 여선생은 주인공의 성적 본능을 살아 있게 만드는 그런 역할을 한다. 하지만 무진은 아름답고 향수와 꿈이 가득한 곳을 표현하는 듯하지만 실은 그렇지만은 않다.

본능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자연세계에서는 오히려 인간보다 더 치열하고 무서운 규칙으로 살아남은 자 또는 피의 논리만 통하는 것이 바로 자연이며 본능이 지배하는 세계다. 그래서 이 무진도 그렇게 아름답게만 묘사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렇게 아름답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의 본능을 누르고 권모술수와 이해관계로 이루어진 부자연스러운 서울 곧 현실세계보다는 무진에서의 삶이 자연스럽다는 사실이다.

중요한 또 다른 개념 중 하나는 무진이란 잠깐 머무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서울 - 무진 - 서울 이런 주인공의 행적은 바로 잃어버린 옛추억에 대한 회상일 수도 있고 가슴 속 아련한 과거의 기억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무진기행이 개인적으로 재미있는 작품으로 다가오는 것은 여러 해석 속에서 갖고 있는 그 흥미진진함과 김승옥의 다른 소설과의 관계. 그리고 한동안 작품활동에 손을 끊은 김승옥 교수가 이제 곧 긴 세월의 공백을 깨고 작품 준비를 한다는 소식에서 오는 기대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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