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스틱 개미지옥 - 2007년 문학수첩작가상 수상작
서유미 지음 / 문학수첩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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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소재 백화점에서 사흘간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는 <판타스틱 개미지옥>은 2000년대 한국 작가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2000년대 한국 작가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전 세기의 작가들과 달리 밀레니엄 이후 한국 작가들에게서는 치열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재기발랄한 문체나 입담, 혹은 그동안 다루지 않았던 소재를 파헤쳐보는 시도, 형식의 극단적 파괴 등 어느 한 측면만을 강조하여 좋은 평을 받고 문학상을 수상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세대규정'을 통해 극찬을 받기도 한다. 저간의 사정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늘의 작가상> 최근 수상작은 죄다 '세대규정'류의 함량 미달 작품이고, <한겨레문학상>과 <창비장편소설상>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전작 <쿨하게 한걸음>에서도 느꼈던 점인데 서유미의 소설은 쉽게 씌여진 글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궁구하여 써낸 글에서 느껴지는 그런 묵직함이 없다. 경험의 폭과 깊이가 한정적이고, 역사의식이나 세계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쿨하게 한걸음>에서 '현상을 걸터듬으며 스토리는 이어나가지만 개개인의 삶이 왜 그러한 상황에 처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는' 모습을 보였는데, <판타스틱 개미지옥>에서도 이 점은 크게 다르지 않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를 분석하기 위해 상품을 분석한다. 상품의 속성에 자본주의의 모든 것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품이 가장 많은 곳이 백화점이다. 소설은 백화점 세일 기간에 벌어지는 일들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다루고 있는데,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얘기들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매우 진부한 얘기들이다. 백화점에 있다 보니 상품의 매력에 도취되어 쇼핑 중독에 빠지거나, 자신의 몸을 상품화하기 위한 살인적 다이어트에 몰두하거나, 노동력을 파는 것을 넘어 몸을 파는 지경에 이르거나 하는 얘기들. 그러나 이 작품은 제5회 문학수첩작가상 수상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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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 괴수전
이지월 지음 / 민음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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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프로필에 씌여 있는 말들에 혹해서 집어든 책. "마지막 LP 세대, 혹은 첫 번째 CD 세대" 그렇다면 나와 연배가 비슷하다. 게다가 '해적판 만화책과 대본소용 무협지' 대목에 이르러서는 호감마저 든다.

 

작품의 시작은 조세희의 단편 <기계도시>에서 따온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 또한 반갑다.

 

은강은 크고 그 안은 복잡하다. 은강 사람들이 자기네 도시를 두고 이야기할 때 얼른 이해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갑갑하다>는 말이다. 은강은 서울에서 멀지 않은 서해 반도부에 위치해 있어 삼면이 바다이다.

 

은강이 곧 인천이 아닌가! 게다가 인천에서 다만 얼마간이라도 살았다면 주인공이 활약하는 무대가 제물포역 인근이고, 그가 다니는 학교가 선인재단의 선인고등학교라는 사실을 눈치채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낯익은 것들은 계속 등장한다. 신포시장의 닭강정 가게,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심지>임에 분명한 음악감상실, 그리고 3M(Metallica, Megadeth, Metal Church)으로 일컬어지던 쓰레쉬 메탈 밴드들까지... 하지만 소설에 대한 호감과 설렘은 딱 여기까지이다. 작품은 지극히 개인적인 끄적임 수준에서 그치고 만다.

 

정확하진 않지만 영화 <장미빛 인생>에서 무협지 작가가 경찰에게 쫓기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가 쓴 무협지 내용이 너무나 현실 정치와 비슷해서였던 걸로 기억한다. 정권은 무협지 형식을 빌어 현실정치를 까댄 그 작가를 용서할 수 없었고, 남영동 쯤으로 끌고가 매운 맛을 보여주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무협지 작가는 아무 생각 없이 썼던 글이었고, 억울하기 짝이 없어했던 것이 기억난다.

2010년에 씌여진 이 소설은 이와는 정반대 상황이다. 인천으로 대표되는 변두리에서, 선인재단으로 대표되는 거지 같은 사학재단에 맞서 주인공이 한바탕 활극을 벌이는 내용이 무협지 형식을 빌어 씌여졌다. 

내용은 상당히 아스트랄하다. 절대 무공을 자랑하는 스승, 절대 미모를 자랑하는 소피와 더불어 주인공은 선인재단 비리에 맞서 학생들을 규합하여 한 바탕 혈전을 벌인다. 하지만 절대적 힘의 차이로 굴욕적인 패배를 시인한 뒤 스승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소피 역시 해직 교사와 프랑스로 편도행 티켓을 끊어 날아가버린다. 일상생활로 돌아와 그동안 이쁜줄 몰랐던 미술학도 아가씨(파랑새?)가 사실은 귀여웠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다음 이어지는 내용은 그냥 마무리를 위한 중언부언인데 딱히 이렇다할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소설은 다 읽고 나면 뭔가 '하다 만 느낌', '찜찜함' 등을 강하게 느끼게 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주인공 스스로가 한 발 빼고 있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공권력과 재단에 맞서 한바탕 혈전을 치르면서도 일면 방관자처럼 군다. 해직 교사와 소피 등을 통칭 '간첩단'으로 부르며 그들의 행태에 대해서 미심쩍은 상황을 나열하고, 학교 측에 붙어 '구사대' 노릇을 하는 '애교심' 넘치는 자들에 대해서는 '희화화'라는 기법을 통해 그 악랄함과 잔인함에 면죄부를 준다. (결국 주인공은 담배 한 대에 그들과 화해하고 만다)

왜 그런가? 작가 스스로가 그러했기 때문이 아닌가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그러다 보니 '무협지적인 화법' 이 가능한 것이다. '무협지적인 화법'을 일상 생활에 적용했을 때는 그 과장됨 덕분에 현실을 얼마든지 희화화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검이 된다. 정말로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할 때는 이 '희화화' 때문에 모든 것이 우스꽝스러워질 수가 있다. 진정 끝까지 가본 자, 경험해본 자는 희화화를 남발할 수가 없다. 하지만 작가에게는 그러한 경험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재기발랄한 '무협지적인 화법'이 주는 신선함과 '인천' 이라는 추억은 금새 사라져버리고, 알맹이 없는 '말투'만 남은 소설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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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소년
김하기 지음, 김홍모 그림 / 청년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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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기는 1958년 경남 울산 출생으로 1980년 5월 부산대 철학과 재학 중 계엄법 위반으로 강제 징집 당했고, 부림사건으로 재구속되어 10년 형을 받는다. 1988년 가석방으로 출소 후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고, 1996년 7월 중국을 거쳐 월북, 15일간 체류하다가 돌아와 투옥되었다가 1998년 특사로 풀려났다.

 

그런 김하기의 소설을 2015년에 읽는다. 스스로 생각해도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하면서.

김하기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은 1993년이었다. 내 책이 아니었다.

김하기의 노선을 나는 지지하지 않았지만 그의 소설은 챙겨 읽었던 것 같다. 비전향 장기수에 관한 짧은 소설은 특히 강렬하게 뇌리에 남아있다.

 

과거의 김하기였다면 <식민지 소년>의 배경은 현재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일제강점기 이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내용이 짤막짤막하게 담겨 있으므로 과거의 김하기를 알고 있는 독자라면 고개가 갸웃거려질 것이다.

일제 강점기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인공 덕경은 장난꾸러기로 온갖 말썽을 부려가며 살아간다. 이런 저런 사건들이 덕경의 정신을 살찌우는데, 과거의 김하기가 이야기할 법한 내용이 아니다. 지극히 평이하다. 딱 한번, 덕경이 중학교에 올라가서 친한 친구와 사회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 내용이 나온다. 덕경은 함께 하자는 친구의 청을 뿌리치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겠다고 한다.

 

하지만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일어난 봉기들도 그 성급함과 잔인성으로 인해 쉽사리 대의명분을 잃어버리곤 했다

 

소설 말미에 덕경은 6.25 직후 좌익들의 활동상에 대해 이렇게 짤막한 평을 한다. 그제서야 이 소설의 의미가 이해된다. 이 소설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선생으로 삶을 살아간 가공의 인물 덕경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김하기의 전향서이다. 자신이 과거에 집요하게 다루었던 비전향 장기수 문제에 대해 이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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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예 - 오상원 중단편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37
오상원 지음, 한수영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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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평안북도 신천에서 태어난 오상원은 전쟁이 발발하자 남하하였고, 서울 용산고등학교와 서울대 불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53년 희곡 <녹스는 파편>으로 문단에 데뷔하였고,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유예>가 당선되어 정식 등단하였다. 1958년 <모반>으로 제3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기도 한다. 1970년대에는 동아일보 논설위원을 맡아 언론계 활동에 종사하다 1985년 사망하였다.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은 중편 <황선지대>와 단편 <유예>, <균열>, <죽어살이>, <모반>, <부동기>, <보수>, <현실>, <훈장>, <실기> 등 총 10편이다.


<황선지대>에서는 노란선을 중심으로 두 개의 삶이 대비된다. 노란선 너머는 미군이 지배하는 곳인데 풍요로운 삶이 펼쳐진다. 반면 노란선 바깥의 삶은 처참하고 황폐하다. 노란선 바깥에 존재하는 정윤과 영미는 전쟁 전까지만 해도 학생이었고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며 정치 활동에 참여하는 등 꿈이 있었지만, 전쟁을 겪으면서 날개가 꺾여버리고 말았다. 영미는 군인들에게 강간당한 뒤 몸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고 정윤은 그런 영미와 떠나고 싶지만 현재로서는 도리가 없다. 설혹 미군 부대를 터는데 성공하더라도 그녀가 따라나설지 의문이다. 너무나 망가져버린 각자의 모습이 둘의 미래를 상상할 수 없도록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유예>는 적군의 포로가 된 후 사살당하기 직전까지의 짧은 기록이다. 사살 당하기 직전 소회를 묻는 인민군에게 국군 포로가 말한다. "생명체와 도구와는 다른 것이오. 내 이상 더 무엇을 말하고 싶겠소? 나는 포로가 되었을 때 비로소 내가 확실히 호흡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을 뿐이오. 나는 기쁘오. 내가 한 개 기계나, 도구가 아니었다는 것, 하나의 생명체인 인간으로서 살아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인간으로서 죽어간다는 것, 이것이 한 없이 기쁠 뿐입니다."


<균열>은 정치적 혼란기에 정적을 암살하는 내용이다. 어쩔 수 없이 총을 들면서도 끝내 인간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하지 못하고 갈등하는 암살자의 모습을 통해 인간이 도구적 존재로 기능하는 상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암살당하고 마는 젊은이의 이야기를 다룬 <죽어살이>, 암살 직후 그 길을 지나갔다는 이유만으로 살인자가 되고 마는 불쌍한 사내의 이야기인 <균열>에도 나타난다.


<부동기>는 전후 가족의 해체와 비참함을 자연주의적 수법으로 그린 소설이다. 과거 직원이 꾸려가는 술집을 기웃거리며 잔술 얻어먹는 데 골몰하는 아버지, 몸을 파는 딸,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 불만을 품고 정치적으로 과격해져가는 큰 아들과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막내의 이야기이다.


<보수> 미군 부대를 털다 걸리면 동료를 도망치게 하여 미끼로 삼고 자신은 살아남았던 얌생이꾼이 '자기 사는 궁리' 만은 하는 사내와 일을 도모하다 목숨을 잃는 내용이다. <현실>은 전쟁이 얼마나 비정할 수밖에 없는지, 전쟁에 처한 인간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그리고 있다. 하사는 마을 주민에게 길을 묻고나면 어김없이 쏘아 죽인다. 그가 돌아가 입을 열면 내 목숨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훈장>은 그러한 잔인함과 비정함을 거친 인간이 받은 훈장이 전후에는 쓰레기나 매한가지인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실기>는 어린아이들의 눈으로 전후를 보여주는데 아이들은 어른들의 질문에 번번이 '길을 잃었다'고 대답한다. 아이들은 '어른이 길을 잃으면 찾을 수가 없다' 고 말하는 사내를 만난 뒤다. 이 아이들에게 길을 가르쳐 줄 어른은 누구인가?


전쟁에 나서는 군인은 '자신이 왜 전쟁에 나서야하는지', '이 전쟁의 도덕적 명분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신의 의지가 전혀 개입되지 않은 외부의 의지에 의해 편이 갈려 서로에게 총질을 하게 되어 있다. 남쪽에 있었기 때문에 북쪽 군인을 죽여야 한다든가, 내 나라가 어디이기 때문에 타국 사람의 피를 봐야 한다든가 하는 이유는 사실 개인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끌려가 어딘가에 배속되고, 일단 배속된 뒤엔 '주체적인 판단'을 할 수 없다. '주체적인 판단'은 곧 항명이고, 항명은 즉결 사살이다.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타인의 목숨을 빼앗아서는 안된다'는 윤리도 곧장 폐기된다. 많이 죽일수록 영웅이되고, 훈장을 받고, 애국자가 된다. 거대한 부조리를 겪은 인간은 어떤 형태로든 결핍을 갖게 되고, 망가지게 된다. 오상원의 소설을 읽고 나면 하나의 이미지가 남는다. 비가 내리는 어두컴컴한 거리의 이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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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팬 죽이기 - 2004 제28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주희 지음 / 민음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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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작가상> 수상 작품 수준은 그야 말로 극과 극이다. 초기 수상작들은 여타의 문학상 수상작품들을 압도할 정도의 박력을 보여주는데 반해, 세기가 바뀐 후에는 도무지 선정 이유를 알 수 없는 작품들이 연달아 등장한다. 작가의 세계관이 어떻든 간에 <사람의 아들> 이나 <부초>와 같은 작품에서는 장인의 호흡이 느껴진다. 하지만 <철수사용설명서> 와 같은 작품에 이르러서는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다.

<피터팬 죽이기> 역시 <철수사용설명서> 쪽에 매우 가까운 작품이다. 과장된 고통, 개연성 없는 사건들과 우연의 반복, 중언부언,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애매한 서사 구조(그 원인은 짧은 호흡에 있고, 짧은 호흡은 이 작품이 아직도 습작 수준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강하게 들게 만든다)


소설에는 매우 사연 많은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2000년대 이후 <오늘의 작가상> 수상 작품들이 그러하듯 소위 '희망 없는 세대'이다. (왠지 헤밍웨이가 '길 잃은 세대'로 한번 써먹은 것 같은)

주인공은 어릴 적 야구공에 맞은 뒤 10년간 시력을 잃어 갔고, 아버지가 사고로 요절했으며, 어머니는 벧엘 분식집을 운영한다.

첫번째 애인은 남자이고, 두번째 애인은 여자다. 남자와 사귄 이유로 이런 저런 것들을 늘어놓긴 하지만 핵심은 '외롭던 참에 고백 받아서' 라는 얼토당토 않은 이유 때문이다. 두번째 애인은 어릴적 좋아했던 여자를 인터넷의 발달로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물론 다시 찾은 사랑은 언제나 이루어지지 않는다) 

첫 번째 애인은 막연한 이상을 쫓고 있다. 2004년만 해도 이상을 좇는 자가 몰두할 법한 취미는 역시 '그림'과 '록 음악' 이다. 그래서 첫 번째 애인은 미술학도에, 베이시스트이다.

두 번째 애인은 현실을 상징해야 하니, 당연히 은행원이다. 은행원과 덜컥 사귀는 것은 너무나 개연성이 없어서, 작가는 은행원이 사실은 주인공의 초등학교 동창이었고 첫사랑이라고 설정한다.  

주인공 주변에는 비슷한 종류의 결핍과 가짜 상처로 덧칠된 인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자신이 임상실험을 받고 있다고 뻥치며 자해와 자살소동을 반복하는 승태, 이루어 질 것 같지 않은 꿈을 마약처럼 상용하며 만화가가 되려하는 영길, 그리고 키우는 개 두 마리 외에는 애정을 주지 않는 피테쿠스라는 별명의 룸메이트. 물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살한 '신진희' 라는 인물도 있다. 모두들 자의식 충만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 아파하는데, 솔직히 무엇이 아프다는 것인지 나는 공감이 가지 않았다. 아파할만한 이유가 없더라도 아플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자의식 과잉이나, 막연한 불안에 근거했을 때에는 유치하다. 그리고 그러한 아픔 탓을 '세대' 탓으로 돌리는 것은 진부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지루했고, 시간이 조금 아까왔다.

작가가 이 작품보다 더 좋은 소설을 쓰고 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확인할 용기가 아직은 나지 않는다. 책이 재미 없었기 때문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22054327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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