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순이 언니 - 개정판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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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봉순이 언니>의 화자는 1963년 서울, 박정희가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뒤 제3공화국을 건설한 그 해에 태어났다. 그 해에는 각지에서 학생데모가 일어났고, 대한중석 등 3개 국영업체 광업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시위가 벌어졌으며, 미국에서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 당했다. 워커힐호텔이 건립되어 양공주들이 미군들로부터 화대를 받고 출입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화자의 아버지는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무력한'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고생 모르고 자라 가난이 끔찍하기만 해서 예민할 대로 예민해진' 상태였다. 그런 화자의 집에 13살의 봉순이 언니가 살았다.


그런데, 그 봉순이 언니가 어떤 대접을 받았는가에 대해서는 다소 입장 차가 존재할 것 같다. 작가, 혹은 화자는 봉순이 언니가 숙식과 최소한의 교육 기회를 제공 받았고, '다른 곳에서 지내는 것 보다는 더 나은' 대접을 받았다고 기억한다. 더 나아가 봉순이 언니를 내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지만, 그녀가 불쌍하고 갈 데 없었기 때문에 '거두어' 주었고, 이런 저런 말썽의 뒷처리까지 해야했다고 부언한다.

정말 그런가? 화자는, 혹은 작가는 정말 그렇다고 믿는다.


다른 이야기를 잠시 해보자. 오늘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박근혜 대통령은 가장 청렴한 사람으로 탄핵은 당연히 기각되어야 한다' 라고 발언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여기서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소방관에게 '관등성명'을 요구하며 갑질을 하여 유명세를 탄 그 분이다.

그런데 나는 이 사람의 사진을 <노동해방문학 창간호(89년 4월)>에서 처음 보았다. "노동자의 큰형 김문수 동지와 함께" 라는 제호의 기사에서 김문수는 "감옥은 노동자의 성장촉진제가 되기도 하며 정치학교가 되기도 하는 노동운동가의 필수코스입니다"라며 환하게 웃는다. 그는 1986년 국군 보안사령부에 강제 불법 연행되어 지옥같은 고문을 받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노동운동의 희망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30년 뒤 '박근혜 대통령이야말로 가장 청렴한 사람'이라고 부르짖는다.


내가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의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서가 아니다. 세상엔 별 희안한 주장들이 많으므로 그냥 그렇다고 넘어갈 수 있다. 내가 이해가 잘 안되는 것은 어떻게 한 사람이 이토록 극단에서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는지이다. 이 문제는 오랫동안 나에게 풀리지 않는 숙제 같은 것이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이런 가정을 하게 되었다. 이들은 과거의 진보적인 행동을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욕망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깨달은 것은 아닐까 하는...

가령 김문수 전 지사가 엘리트주의와 출세주의, 그리고 합리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불의를 보고  매우 불합리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는 정의를 실현하는 것과, 합리성을 실현하는 것을 동일시한다.

그는 불의가 체제로부터 기인한 것이라는 것을 이해할 능력이 있기에 변혁운동 쪽으로 자연스럽게 경도된다. 이러한 사람들의 성정을 특징짓는 또 다른 측면, 즉 엘리트주의와 출세주의는 기이하게도 '운동권 출세주의'라는 형태가 되어 노조의 리더가 되거나 조직의 수장이 되기도 한다.

결국 그는 체포, 고문, 투옥의 과정을 거치고 난 뒤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잘못 했는지 깨닫게 된다. 엘리트인 그는 출세할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 체제 내에서 실현했어야 할 그 가치들을 엉뚱하게도 '언제 올지 모를 미래의 체제'에서 구현하려 했던 것이다. 

자신이 욕망하는 바를 육체적 고통 속에서 아프게 깨달은 그는 걸리적 거리는 민중이니, 노동자계급이니 하는 따위 것들을 훌훌 털어낸다. 원래부터 별로 신경쓰고 싶지도 않았던 계몽의 대상이었을 뿐인 그들에게 별다른 미련도 없다. 이제 그는 욕망에 충실하기로 한다. 그리고 한 30년쯤 지나면, '박근혜 대통령이야 말로 자신이 아는 가장 청렴한 대통령' 이라고 외치게 된다.


다시 <봉순이 언니>로 돌아와서, 나는 공지영 작가도 진보진영이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구심이 종종 들 때가 있다. 김문수 전 지사와 같은 변절을 하리라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작가의 소설에서 드러나는 엘리트주의는 매우 불편하다. 작가의 소설 속에서 민중은 언제나 작가보다 못한 존재로 그려진다. 작가보다 못한 그 민중들에게, 작가는 '똑똑한 체'를 해대고 자신이 베풀어 줄 수 있는 수혜에 대해, 자신이 더 똑똑하기에 들려줄 수 있는 조언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봉순이 언니가 어떤 존재였는지 솔직히 이야기해 보면 '식모' 아닌가? 말을 돌리고 어쩌꼬 해도 봉순이 언니는 13살부터 화자의 집에 들어가 보육을 겸한 찬모 노릇을 하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고, 이에 합당한 댓가를 받지도 못했다.

그런데 작가는 이야기를 지어 봉순이 언니에 대해 '똑똑한 체'를 해댄다. 사실 '봉순이 언니는 어떻게 생각했을까'는 작가의 머리 속에 전혀 없을 것이다. 나는 작가의 소설에서 민중이 직접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언제나 '똑똑한' 화자가 '아둔한' 민중을 대신해서 이야기하고, 판단한다. 그래서 나는 작가가 진보적 성향의 발언을 할 때마다 불편하다. 나는 작가가 진정 민중과 함께 아파하고 울어본 적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런 것이 결여된 진보를 '입진보'라 하며 경계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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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래프트 : 듀로탄 워크래프트
크리스티 골든 &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지음, 유미지 옮김 / 제우미디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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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부산이 남쪽을 보호하고 정령들이 북쪽의 보좌에 머무르며 초원이 동서로 길게 이어진 서리불꽃 마루에 서리늑대 부족이 정착해 살았다. 듀르코시의 아들 가라드가 족장이었고, 그의 아내 게야는 주술사였다. 아들 듀로탄은 용맹이 뛰어난 청년이었으며, 장로 주술사 드렉타르는 대지, 바람, 물, 불, 생명의 정령과 교감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서리늑대 부족은 독립적이고 전투적이었으며 명예를 중요시하였다. 그들은 갈래발굽과 탈부크를 사냥하여 먹잇감으로 삼았고, 풍족하진 않았지만 부족한 것도 없던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사냥감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고, 곡식과 과실도 예전과 같지 못했다.

그런 즈음 서리늑대 부족에 흑마법사가 찾아온다. 그의 이름은 굴단이었는데, 온 몸이 지옥마법에 물들어 초록빛을 띠었다. 함께 온 오크는 순수혈통이 아닌 것 같았는데 굴단은 그녀를 가로나라고 부르며 노예처럼 대했다.

굴단은 드레노어에서 생명이 빠져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에 더 이상 오크가 생존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서리늑대 부족에게 자신이 창설한 오크 연합 '호드'에 참여할 것을 권하며 새로운 약속의 땅으로 함께 가자고 했다. 하지만 가라드는 독립성이 강했고, 굴단은 어딘가 의심스러워 보였다. 제안을 거부당한 굴단은 불쾌한 기색으로 서리늑대 부족을 떠난다.

얼마 뒤, 서리늑대 부족처럼 오크 연합에 합류하길 거부한 '붉은 방랑자'들이 서리늑대 부족을 습격한다. 가라드는 용맹스럽게 이들에 맞서 싸우지만 굴단의 농간으로 약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끝내 죽음을 맞는다. 새로운 족장 자리는 그의 아들 듀로탄이 맡게 된다.

듀로탄은 아버지의 빈 자리를 메우고 부족을 안정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 때 가장 많은 도움을 준 것이 훗날 그의 아내가 되는 드라카와 거대한 둠헤머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전사 오그림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부산이 폭발하여 어린 오크와 늙은 오크들이 사망한다. 잠깐 봄이 되면서 먹잇감을 얻을 수 있었으나 이것도 잠시 뒤 떨어지고 또 다시 굴단이 찾아온다. 이번에는 듀로탄의 친구인 천둥부족의 코보고르도 함께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굴단의 제안은 거절 당한다. 굴단을 따라 찾아온 가로나가 드라카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자신의 주인은 사악하고 위험한 자'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서리늑대 부족의 시련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대지가 갈라지면서 흙이 불탔고 이 천재지변으로 부족의 오크들이 생명을 잃는다. 붉은 방랑자는 온 몸에 피갑칠을 하고 동족을 살해하여 먹잇감으로 삼는 괴물로 변한지 오래였고, 그들의 위협 역시 천재지변 못지 않게 위험했다.

듀로탄과 드렉타르는 북쪽의 정령의 보좌로 가서 최후의 해답을 얻으려 했지만, 그곳은 이미 붉은 방랑자들에 의해 더럽혀진 뒤였다. 정령들은 힘이 다해 서리늑대 부족을 축원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마침내 듀로탄은 부족을 이끌고 굴단의 호드에 합류하기로 결정한다. 그들의 손에 서리늑대 부족의 운명을 맡기는 것이 잘하는 짓은 아닌 것 같았지만, 생명이 다해버린 드레노어에 더 머물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 프리퀄 소설이다. 영화에서는 듀로탄의 서리늑대 부족이 드레노어를 떠나 동부왕국으로 이동한 뒤부터 시작하는데, 왜 이들이 드레노어를 떠나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놓은 부분이다. 게임의 순서를 봐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 오리지날>은 드레노어가 아닌 아제로스 대륙에서 시작한다. 드레노어는 그로부터 한참 뒤에 확장팩 형태로 나오는데 사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세계관에 일관성이 없고, 중국 유저를 의식한 <판다리아의 안개> 확장팩으로 스토리 밸런스가 완전히 붕괴된지 오래이며, 평행우주까지 도입되어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에버퀘스트>가 한국에서 정식 서비스를 종료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서비스 되기 시작한 게임이었다. 당시 <에버퀘스트>의 세계에서 함께 했던 플레이어들은 새로운 곳에서 다시 만나길 고대하고 있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세계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때가 2005년경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곧바로 '말랑말랑'한 이 게임에 큰 실망을 맛보게 된다. '어렵지 않다! 심오하지 않다!'. 이것이 이들을 실망시킨 이유였다. <에버퀘스트>는 이미 세계관과 시스템이 절정에 달한 게임이었고, 난이도 역시 극악이었다. 오죽하면 게임 시디에 'I'm sorry, I'm not easy' 라는 문구가 써있었겠는가. 그런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너무너무 쉬웠다.

이들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많은 시간을 쏟으면서도 언제나 <에버퀘스트>를 향수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되고 만다. 그들은 <에버퀘스트 2>의 세계에서 다시 만나기 위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세계에 머무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에버퀘스트 2>가 마침내 서비스 되자 한날 한시에 아제로스에서 사라졌고, <에버퀘스트 2>가 <에버퀘스트>의 계보를 잇기엔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좌절하고 만다.

그 뒤 이들은 <스타워즈 갤럭시>를 기웃거리다가 <에버퀘스트 넥스트> 소식에 또 다시 설레이며 몇년을 허비한다. 그동안 <에버퀘스트 넥스트>가 몇차례 떡밥을 던지며 엎어지길 반복하다가 제작 포기 선언을 하고 자빠져버리자, 에버퀘스트 유저는 문득 자신이 과거의 젊은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에버퀘스트 유저는 과거를 향수할 거리를 찾다가 <에버퀘스트> 관련 소설은 번역본이 없음을 깨닫고 또다시 대체물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소설을 사다가 읽는다. 노안으로 잘 안보이는 눈을 비벼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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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환상문학전집 11
필립 K. 딕 지음, 이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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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21년. 지구는 핵전쟁으로 폐허가 된다. 방사능 낙진이 끊임 없이 떨어져 내렸고, 살아남은 자들은 방진복을 입고서야 겨우 바깥 출입을 할 수 있었다. 생존자들은 대부분 화성으로 이주를 하였기 때문에 지구에 남은 사람들은 아주 소수였다.

화성으로 이주하는 것은 여러모로 조건이 좋았다. 특히 인간과 거의 비슷한 형태의 안드로이드를 노예처럼 부릴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를 고집하는 사람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삶을 꾸려 나갔다. 지구에 남은 사람들은 '펜필드 기분 전환기'를 이용하여 기분을 인위적으로 조작했다. 그리고 윌버 머서가 창안한 '머서주의'를 통해 공감 능력을 확인하며 인간임을 자위했다.

그들이 여가를 보내는 방법은 끊임 없이 TV에서 나오는 <버스터 프렌들리와 즐거운 친구들>을 보는 것과, 동물을 키우는 것이었다. 핵전쟁으로 대부분의 동물이 멸종 되었기 때문에 살아 있는 동물을 키우는 것은 매우 호사스러운 취미였다. 이런 취미를 영위할 만한 돈이 없는 사람들은 전기 동물을 키웠는데, 릭 데커드와 아내 아이란 역시 이런 부류에 속했다. 릭은 자신의 전기양을 몹시 부끄러워 했다. 그는 가능한 큰 동물을 키우고 싶었다. 이미 멸종된 동물, 이를테면 올빼미 같은 동물도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그의 직업은 인간인 척 하는 안드로이드를 처치하는 현상금 사냥꾼이었고, 이는 곧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지 못함을 의미했다.

그러던 중, 경찰서의 수석 사냥꾼 데이브가 화성에서 탈출한 '넥서스-6' 모델의 안드로이드에게 광선총을 맞고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릭 데커드는 데이브가 처치하기로 했던 6명의 안드로이드 명단을 인수 받는다. 이 안드로이드들을 모두 헤치운다면 염소와 같이 큰 동물을 구입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안드로이드를 제거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과거의 로봇과 같이 외형상 구분이 가는 것도 아니었고, 지능 또한 인간에 버금갔다. 게다가 안드로이드와 인간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보이드-캄프' 테스트를 시행해야 했는데, 안드로이드가 이 테스트에 순순히 응해줄 지도 의문이었다.

릭 데커드는 먼저 '넥서스-6'를 만들어낸 시에틀의 로젠 연합으로 간다. 로젠 연합은 가족 회사였는데, 소유주 엘던은 '넥서스-6'와 인간을 구별하는 '보이그트-캄프' 테스트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릭은 발끈하여 엘던의 조카 레이첼에게 '보이그트-캄프' 테스트를 시행하고, 그 결과 안드로이드 반응을 얻어낸다.

하지만 엘던은 '보이그트-캄프' 테스트는 지구에서 인간으로 살아가며 충분한 사회적 훈련을 받은 인간에게나 통용될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레이첼은 셀렌더 3호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책과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교육 받았기 때문에 '보이그트-캄프' 테스트 결과는 안드로이드로 판정 되겠지만 분명한 인간임을 주장한다. 릭은 '보이그트-캄프' 테스트가 무효화 되었음에 당황한다. 하지만 레이첼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짐으로써 엘던과 레이첼이 '보이그트-캄프' 테스트를 무력화하기 위하여 수를 쓴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이제 릭은 화성에서 지구로 와서 러시아 경찰로 위장한 카달리, 쓰레기 처리업체에서 근무하는 폴로코프, 오페라 가수로 잠입한 루바 루프트 등을 차례로 제거하며 현상금을 차곡차곡 쓸어 담는다. 그리고 대담하게도 가짜 경찰서 건물을 운영하는 안드로이드 까지 제거한 뒤 최후의 안드로이드 세 기를 추적한다. 하지만 안드로이드를 제거하면서 릭은 끊임없이 혼란과 공허함에 사로 잡혀 극도의 피곤을 느낀다. 과연 안드로이드는 제거해도 마땅한 대상인가. 인위적인 테스트가 없다면, 아니 인위적인 테스트로도 구별하기 어려운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마구 살상해도 되는가. 이런 혼란의 와중에 릭은 레이첼과 성관계를 맺게 되고, 레이첼이 안드로이드 살상을 멈추게 하기 위해 릭을 유혹했음을 깨닫는다.

결국 릭은 안드로이드를 모두 찾아내어 제거하지만 현상금을 탈탈 털어 산 염소는 레이첼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머서주의는 희대의 사기극이었음이 드러난다. 릭이 황무지에서 발견한 멸종된 두꺼비는 전기 두꺼비에 불과했음이 드러나고, 아이린은 릭을 위해 전기 두꺼비의 먹이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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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으로 잘 알려졌지만, 사실 <블레이드 러너>는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의 아주 일부분을 반영하여 리들리 스콧 식으로 해석한 영화이다. 영화는 안드로이드가 '공포 속에서 사는 기분이 어때? 그게 바로 노예의 기분이야' 라고 말하게 하고, 안드로이드가 죽어갈 때 비둘기가 날아가게 설정한다.

원작은 이보다는 릭 데커드의 혼란에 초점을 맞춘다. 릭은 안드로이드를 '제거' 하면서 '보이그트-캄프' 테스트를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 테스트는 잠시이긴 하지만 엘던에게 무력화된 적이 있다. 게다가 그 이전에 쓰던 테스트 들은 최신형인 '넥서스-6'와 인간을 구별해내지 못한다. 또한, 정신연령이 떨어지는 자들에게는 효과가 없었다.

인간은 자신들이 안드로이드와 구분되는 또 다른 특징으로 '머서주의' 체험의 융합을 꼽지만, 사실 머서와 인간이 공유하는 감정 역시 헐리우드 무대 세트에서 조잡하게 찍힌 영화의 한 장면의 모사에 불과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로써 감정을 갖고 있는 안드로이드는 인간이나 다름 없으며 이를 구분하는 노력이 도리어 인간성의 파괴를 불러온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직면한다. 2021년은 이제 겨우 5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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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시간에 소설읽기 1 나라말 중학생 문고
김은형 엮음 / 나라말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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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지> 황순원

6.25 동란 중 피난을 가게 된 돌이가 송아지를 두고 가자, 송아지가 고삐를 끊고 달려온다. 둘은 얼음에 빠진다.


<꿩> 이오덕

아버지가 남의 집 머슴살이이기 때문에 동네 아이들의 가방을 대신 짊어지고 다니던 용이가 꿩이 비상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의 가방을 내던진다. 그리고 곰보라고 놀림 받던 순이도 아이들이 못 놀리게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외로운 아이> 이태준

인근이가 담배 먹는다는 오해를 받는다. 사실 인근이의 아버지가 몹시 아팠는데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하셨기 때문에 꽁초를 주운 것 뿐이었다.


<육촌형> 이현주

성태와 근태는 육촌 지간이다. 마을에 전학 온 부자집 아이 둘이 편을 갈라 싸우는 통에 성태와 근태도 싸우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둘은 육촌지간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고 싸움을 멈춘다. 둘이 똘똘 뭉치면 누구도 건드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음악회> 김유정

황철이를 따라 우리학교 급우의 연주를 응원하러 간 '나'는 다른 신사의 연주에 매료되어 저도 모르게 박수를 보내고 만다. 황철이 화를 내자 '나'는 황철이가 사주기로 한 고기만두 따위 안먹으면 그만이라고 외친다.


<마지막 임금님> 박완서

어떤 나라에 매우 단순한 헌법이 있었다. '이 나라의 백성들은 고루 행복할 권리가 있다. 단 임금님보다는 덜 행복할 이유가 있다." 임금님은 자신보다 행복한 백성이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사람을 발견하고 집요하게 괴롭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행복하자 독배를 내린다. 행복했던 사람이 독배을 기꺼이 받아 먹으려 하자 임금님은 그 잔을 빼앗아 먹어버린다. 그 사람이 행복할 기회를 빼앗고 싶었기 때문이다.


<까삐> 김문세

까삐는 '나'와 둘도 없이 친한 개이다. '나'의 목숨을 살려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느 날 가두 주민위원회에서 개를 없애 치우라는 통지를 낸다. 까삐는 집에서 떠난 뒤에도 한 동안 토끼를 잡아다 준다. 그러던 어느 날 까삐가 나타나지 않게 되었고, 아직도 소식이 없다.


<포도 씨앗의 사랑> 임철우

'내'가 사는 촌에 어느 날 아이 시체가 방죽에 떠오른다. 그리고 그날 젊은 남녀가 이사온다. 둘은 매우 사이가 좋았다. 어느 날, 둘이서 포도 씨앗을 상대방에게 뱉으며 희롱하는 장면을 본 '나'는 매우 알 수 없는 기분이 된다. 얼마 뒤, 남자의 집안에서 들이닥쳐 둘을 갈라 놓는다. 여자는 당시 임신중이었다. 한참 지난 뒤, 여자가 미쳐서 마을로 돌아온다. 엄마와 포도를 먹던 '나'는 그 남녀 생각이 나서 포도를 먹다 포도 씨앗을 엄마 얼굴에 뱉는다. 그리고 직사하게 욕을 얻어 먹는다.


<나의 아버지> 정영석

3호 소년에 뽑히지 못하자 엄마가 매우 실망한다. 체육을 못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건강이 나쁘다며 함께 운동을 하자고 했고, 나는 그 덕분에 체육 성적이 올라 3호 소년에 뽑힌다.


<소년 스파이> 알퐁스 도데

꼬마 스텐느가 자기도 모르게 적의 스파이 노릇을 하여 우리편이 곤경에 처한다. 아버지가 그 사실을 듣고 참전한다. 아버지는 돌아오지 못한다.


<눈보라 속의 소녀> 헬렌 그레이엄 레자토

눈보라가 몰아치던 날, 마이너 씨네 아이들이 눈 속에 갇힌다. 다음 날 발견 되었을 때 소녀가 동생들을 껴안고 죽어 있었다. 동생들은 좀 멍하고 약간 얼긴 했지만, 살아 있었다.


<빈칸의 비밀> 파멜라 헤넬

텍스 윌리엄슨 씨가 발행하는 신문에 가끔 빈칸 기사가 실렸다. 온갖 추측이 난무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누군가가 잘못을 했지만 그 잘못이 처음이고 뉘우칠 경우엔 빈칸으로 기사를 내어 그 사람이 갱생할 기회를 준 것이었다.


<아무것도 더 알고 싶지 않았던 사람> 피터 박셀

아무것도 더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공부를 하게 된 사내의 이야기


<공작 나방> 헤르만 헤세

친구가 수집한 진귀한 나비 표본을 몰래 훔쳤다가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잘못을 빌지만 친구는 경멸하는 태도를 취할 뿐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는 그때 이후로 나비 표본을 모으는 취미를 버리게 된다.


94년도에 초록색 표지의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소설>을 읽었을 때의 충격이 떠오른다. 현기영의 <순이삼촌>, 윤흥길의 <장마>, 정도상의 <십오방 이야기>, 방현석의 <내딛는 첫발은> 들을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는 이 세계의 이면에 쉽사리 다가갈 수 없는, 그러나 엄연히 진실인 그 무엇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국어시간에 소설읽기>는 어떤 기준으로 책을 엮었는지 고개가 갸웃해지는 책이다. 동화와 소설이 맥락 없이 섞여 있고, 작가에 대한 설명이나 작품이 쓰여진 연대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어서 종잡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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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폐경 - 2005 제5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
김훈 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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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언니의 폐경> 김훈


형부가 제철회사 중역으로 재직하던 중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다. 장지에서 돌아오던 차 속에서 언니가 생리혈을 쏟는다. 폐경이 임박하면 조그만 충격에도 생리가 시작될 수 있다고 했다.

'나' 역시 재벌회사 전무인 남편이 이혼하자는 말을 꺼낸 뒤 혼자 살고 있다. 남편은 때때로 다른 여자의 머리카락을 옷에 묻혀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나'는 그에게 패악을 떨지 않았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아이에게 이혼에 대해 이야기 하지 못한 점만 조금 불편했다. 

그러던 중, 남편의 입사 동기와 새로운 사랑을 하게 된다. 그는 승진이 느렸고, 남편이 전무로 승진하자 제일 먼저 퇴출 당한 사람이었다. 언니는 어떻게 알았는지 '나'에게 새로운 남자가 생겼다는 것을 눈치 채고 앙고라털 옷을 입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언니와의 경주 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만날 수 있는지 묻는다. 그는 선선히 좋다고 대답했다. '내' 옆에서 언니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소금가마니> 구효서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 키에르 케고르의 <공포와 전율>을 발견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어머니가 이런 책을 읽게 된 데에는 마을 유일의 기독인이자 일본유학파이며 풍문의 아버지인 박성현이 관여되어 있을 것이었다. 그런 풍문은 아버지를 부추겨 어머니를 폭행하게 만들었고, 돈만 생기면 들병이에게 가져다 주고 오입을 일삼도록 만들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모진 학대를 당하면서도 두부를 만들어 가족의 생계를 꾸려갔다. 대추나무에서 떨어진 딸을 살리기 위해 폭우를 뚫고 나무를 베어 내며 강을 건넜고, 전쟁 중 부역 혐의로 갖은 고초를 받기도 했다. 그런 어머니가 97세의 일기로 사망한다. 화자는 어머니의 생이 얼마나 위대했었는지 생각한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김연수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 주석을 붙이는 '나'와,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고자 구성된 낭가파르바트 원정대에 참가하는 '그'의 이야기가 중첩된다. 엄혹한 군사독재 정권 치하에서, '그'는 소설을 읽었다. '그'의 여자친구는 자살한다. '그'가 쓴 소설을 '내'가 읽고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가 혼자서 정상을 공략하기 위해 떠난 뒤, 발견되지 않는다. '나'는 '그'가 문장이 끝나는 곳에서 나타나는 모든 꿈들의 케른,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할 바가 없는 수정의 니르바나, 이로써 모든 여행이 끝나는 세계의 끝으로 갔다고 생각한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박민규


주유소와 편의점에서 알바를 할 수 밖에 없는 상고 학생인 '나'는 시간당 3천원을 주는 '푸시맨'이 되기로 한다. 그곳에서 어떤 상사에 다니는 아버지도 열심히 전철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동안 편의점 사장은 고작 천원을 주면서 여자 알바생의 허벅지를 만졌고, 전철 안에서는 변태가 경찰에 잡혀가기도 했다. 그 겨울 어느 날, 아버지가 사라졌다. 봄이 되고, 전철역에서 '나'는 기린을 만난다. 기린은 아버지가 틀림없어 보였지만, 정작 기린은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집안 일을 들려주었다. 이윽고 기린이 자신의 앞발을 '내' 손 위에 포개더니, 천천히, 이렇게 얘기한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인타라망> 박성원


어느 날, 의식불명에서 깨어난 '나'는 환자를 돌보고 있는 남자를 발견한다. 남자는 '나'의 대소변도 받아 주었는데, '나'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그에게 말을 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나는 69일간 의식불명 상태였다고 했다. 

기억이 조금씩 돌아온다. 69일 전 '나'는 아내의 진통 소식을 듣고 달려가다 교통사고를 당한다. '나'는 모르는 사내에게 구조되어 어떤 집으로 가게 되지만, 그로 인해 살인범으로 몰릴 위기에 처한다. '나'는 '긴급피난'이라는 명목으로 그 집의 유일한 생존자인 아주머니를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지른다. 병원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은 그 집이었고, 남자는 자신이 살해한 아주머니의 가족이었다.


<잃어버린 인간> 성석제


재종형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재당숙모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고향을 찾아간 '나'는 재당숙인 이한봉에 대해 듣게 된다. 이한봉은 일제시대 때 유학을 갔다가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인다. 귀국 후 경찰이 감시하자 중국으로 건너가 살다가 해방 후 까막골로 돌아온다. 보도연맹 사건에 연루되어 배에 총상을 당하지만 겨우 살아난 뒤 53세로 세상을 뜬다. 나중에야 독립 유공자로 인정 받는데, 실제로 그가 어떤 종류의 독립 운동을 했는지는 모호했다. 그리고 그 이한봉의 불쌍한 쌍둥이 아들을 '내'가 행패를 부려 집에서 쫓아냈던 기억이 떠오른다. 상갓집에서 듣기로, 쌍둥이 형제는 굶어죽었다고 했다.


<탱자> 윤대녕


제주도에 사는 '나'에게 고모가 30년만에 연락을 해 온다. 잠잘 곳을 예약해 달라 했으나 고모를 모르는 장삿집에 재우기도 뭐해 집으로 모신다. 하지만 고모는 한사코 다른 곳을 구해달라 했다. 겨우 거처를 마련해 드리고 고모에게 제주도 구경을 시켜드리다 보니 고모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듣게 된다.

고모는 16세에 절름발이 담임과 야반도주를 했다가 쫓겨나 집으로 돌아온다. 그때부터 온갖 구박을 다 받다가 28세가 되던 해에 겨우 시집을 간다. 그러나 고모부는 나병에 걸려 자살하고, 그때부터 고모는 생계를 잇기 위해 시장에서 장사를 하기 시작한다. 겨우 자식을 공부시켜 취직까지 시켜 놓으니, 그 자식이 이민을 가버린다. 폐암 진단까지 받고 홀로 된 고모는 뒤늦게 가보고 싶었던 곳을 주유하며 생을 마감한다.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 은희경


출판산 경영에 온 힘을 쏟아 제법 그럴듯한 회사로 키워 놓은 '나'는 최근 들어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오랫동한 함께 해 온 J 국장이 외국으로 떠나버린다. 그 날, '은숙'이라는 여자의 메일을 받는다. 그리고 책상에서 원고를 발견해 읽기 시작한다. 유리 가가린의 이야기를 쓴 '1991년의 코스모나츠'라는 제목의 원고였다. '나'는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져 버린 뒤 돌아오게될 코스모나츠의 두려움과 쓸쓸함에 대해 상상한다.


<나비길> 임철우


산간마을 중학교에 기병대 선생이 새로 부임한다. 그는 깨끗한 옷차림의 점잖은 선생이었는데, 특이한 것은 나비가 그를 따라다녔다. 그는 어렸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잃은 뒤 나비와 대화하기 시작했다. 그런 기병대 선생을 황천이발소 주인 양씨가 사랑하게 된다. 양씨는 자기도 모르게 동성의 기병대에게 끌리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추문이 되어 더러운 소문으로 떠돌게 되고, 방범대장 나씨가 선생을 흠씬 두들겨 패기에 이른다. 기병대 선생이 사라진다. 늪지를 뒤졌지만 끝내 그는 발견되지 않는다. 대신 남방녹색부전나비 한 마리가 팔랑 날아가는 것을 양씨가 쫓아간다.


<웨하스로 만든 집> 하성란


이층 양옥들이 헐린다. 한때는 뉴스에 깨끗한 집들로 소개되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수명이 다 해 재개발되느라 포크레인의 삽날을 받아 무너지고 있다.

외국으로 시집 갔다가 이혼하고 돌아온 여자는 어머니가 무너진 집들에서 가져온 온갖 잡동사니들을 쌓아 놓고 있음을 보게 된다. 여자는 어렸을 때 알고 지냈던 s, 지금은 마을버스를 운전하는 s와 관계를 갖는다.

여자가 어릴 적에 자매들과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과자로 만든 집이야. 마루는 음, 웨하스로 만들었어. 이건 웨하스 씹을 때 나는 소리야."... 그러니 조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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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폐경>을 읽으면서 다나베 세이코의 단편 <눈이 내릴때까지>를 떠올렸다. 관조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정념을 버려야 한다. 폐경은 그런 의미에서 정념이 지워지는 기점인지도 모른다. 여성의 내면 심리가 어떠한지 남자인 나로서는 잘 모르지만, 김훈이 그리는 중년 여성의 내면 세계는 '핍진성'이라는 단어를 연상시킨다.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으면 발간된 그 해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2005년은 내가 우체국에 들어간 해다. 좋은 일보다는 좋지 않은 일이 많았던 시기였다. 손을 크게 다쳤고, 역류성 식도염으로 고생했고, 사람들과 다퉜다. 그런 2005년도를 떠올려 보고 싶은 생각이 든 걸 보니, 그런 나쁜 일들도 모두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편입되어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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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9-08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구했는데 ㅡ읽으셨군요! 부럽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