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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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을 알 수 없는 실명사태가 일어난지 4년 후, 선거에서 대량의 백지투표가 발견된다. 우익정부는 즉시 계엄을 선포한다. 백지투표를 해서는 안된다는 어떠한 법령도 없고 그것이 위법이라는 근거 역시 전혀 없지만 정부는 수도를 버리고 감시초소를 세워 누구도 들어가거나 빠져나올 수 없도록 한다. 하지만 수도는 동요에 빠지기는 커녕 평범한 일상 생활을 영위할 뿐이었다.

안달이 난 정부는 폭탄을 떠뜨리고 그것이 백지투표 행위를 부추긴 자의 소행이라고 발표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정부에 항의할 뿐이었고, 당의 핵심인물인 시장마저 정부로부터 등을 돌리고 만다. 우익정당과 중도정당에 투표한 소수 시민이 수도 경계를 넘으려 하자 정부는 그들의 집을 백색투표 행위자들이 약탈할 것이라 위협하여 내분을 꾀하며 돌려보낸다. 하지만 되돌아 온 그들을 시민들은 덤덤하게 도와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4년 전 실명사태가 전국을 휩쓸 때 눈이 멀지 않았던 여성이 있었고 그녀는 당시 살인을 저질렀으며 어쩌면 이번 사건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투서가 날아든다. 정부는 즉각 세 명의 경찰을 수도로 잠입시킨다. 수사 책임자인 경정은 투서를 보낸 사람을 만나고 당시 그녀와 함께 지냈던 사람들을 조사한다. 하지만 조사로 드러난 점은 의사 부인이었던 그녀가 격리 수용된 병원에서 강간범 우두머리를 살해하여 여성들의 존엄성을 지켜냈고 사람들을 생존시키는 의무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사실 뿐이었다. 경정은 이 사실을 내무부장관에게 보고했으나 내무부장관이 원하는 것은 그녀와 백색투표의 배후를 연결시키는 것이지 진실이 아니었다. 결국 경정은 사진을 넘겨준 후 수사에서 제외된다. 경정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그녀에게 정부가 획책하고 있는 바를 알려주고 언론사에 진실을 전한다. 진실을 실은 신문은 다음 날 폐간되고 사람들은 신문기사를 복사하여 삐라처럼 뿌린다. 경정과 그녀는 암살자에 의해 살해당하고, 총리는 내무부장관이 너무 멀리갔다고 생각하여 해임하고 그 자리를 겸임한다.

 

처리할 일들이 있어 오늘 연가를 냈기 때문에 어제 밤 2시까지 출근 걱정 없이 읽었다. <눈먼 자들의 도시>와 마찬가지로 단 한명의 이름도 등장하지 않는다. 쉼표만으로 지리하게 서술해나기 때문에 읽다보면 누구의 대사인지 헤깔리기도 하는데, 그것은 작가의 의도로 생각된다. 독자는 맥락을 통해 누가 한 말인지 파악할 수 있기도 하고, 누구의 대사인지 모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작가는 독자가 의식적으로 작가의 이야기에 참여하여 누구의 대사인지 판단하게끔 유도하는 듯 하고, 누구의 대사인지 알 수 없는 경우에는 누구든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효과를 노리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큰 틀에서 계급이나 계층의 일원, 혹은 어떠어떠한 인간성을 지닌 누군가로서의 인간이 중요한 것이지 이름으로 특정지어지는 누군가는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눈먼 자들의 도시>보다 좀더 우의적이고 모호한 면이 많다. 수도 주민들이 정부의 탈출에도 불구하고 정상 생활을 영위해 가는 상황은 일면 무정부주의자적 낙관으로 읽히는데, 이것이 작가의 진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인지 아니면 역으로 진보에 대한 비관의 투영인지는 모호하다. 역자 정영목 역시 '짖자, 개가 말했다'로 시작한 책이 '나는 개 짖는 소리가 싫어'로 끝나는 것이 왠지 불길하기 짝이 없다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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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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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생, 이수명이라는 남자가 정신보건심판위원회에 출석한다.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된 자가 스스로 자유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그곳에서 이수명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신림책방을 하는 아버지 가게에 기식하는 주인공 '나' 이수명은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다. 어머니 역시 정신병으로 시달리던 어느 날 욕조에서 가위로 목을 찔러 자살했다. 하지만 환청은 어머니가 자살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인 것이라고 속삭이고, 수명은 진실을 대면할 용기가 없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지 일주일 되는 어느 날, 아버지 성화에 못 이겨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해 여자에게 말을 건 행위가 성추행으로 오인을 받자 아버지는 수명을 강원도의 수리희망병원에 입원시키며 '이번에 가면, 죽기전엔 못 나온다'고 말한다.

입원한 수명은 그곳에서 4인실을 배정받는다. 환자는 '라이터(사이코패스)'로 분류되어 탈출 기회를 노리는 류수명, '바이폴라(조울증)'이고 일류대학을 나왔다는 말 많은 김용, 써커스단에서 '또별'이라는 이름의 말을 타며 재주를 부렸으나 이제는 사람을 '또별'로 착각하고 살아가는 만식씨, 그리고 '스키조(정신분열증)'이고 가위만 보면 공황장애를 일으켜 머리를 기른 미스리 이수명이 한 방을 쓰게 된다.

한편 의사로는 범죄심리학자이며 강압적인 성격의 '렉터박사'가 있고 그 밖에 대학병원에서 파견나온 의사, 공보의 등이 있다. 간호사로는 환자를 객관적이고 양심적으로 대우하려 하는 최기훈과 이와는 정반대의 윤보라, 그리고 보호사와 진압조 등이 있는데 그 중 점박이라는 별명의 오너 조카는 폭력을 내세우며 월권을 일삼기 일쑤였다.

어느 날 승민이 양말에 시계를 넣어 최기훈을 공격한 후 탈출하려던 시도가 실패하고 수명은 혼란한 와중에 승민의 시계를 몰래 숨겨준다. 이 사건으로 승민은 수명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승민은 재벌가의 샛부인 자식으로 어렸을 적부터 미국에서 자랐다. 그곳에서 글라이더를 배우며 자유롭게 살아가던 어느 날, 덜컥 아버지가 사망하는데 유언으로 승민에게 큰 덩어리를 남겨 준다. 승민 몫이 탐이 난 가족들은 승민이 어렸을 적 방화를 한 전력이 있음을 이용, 누명을 씌워 수리희망병원에 강제 입원을 시키는 모종의 계획을 꾸민 것이다.

승민은 탈출을 시도하는 한편 바깥 쪽 사람들과 접촉을 시도하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어느 날 눈에 큰 문제가 있음이 드러난다. 그가 그렇게 조바심을 낸 것은 시력이 점점 상실되어 앞이 전혀 보이지 않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자신의 생을 글라이딩을 하며 마감하고자 했다.

외부 차량 탈취 계획을 돕던 수명은 승민과 함께 탈출하기로 결정하고 마음을 바꾸고 둘은 어렵사리 수리봉 정상에 도달한다. 그곳에서 수명은 잊고 있었던 기억 한자락을 끄집어 낸다. 그것은 신림책방에서 포의 소설에 빠져들어 어머니가 자해하지 못하도록 취해야 할 조치들을 소홀히 했고, 결국 자신이 남겨둔 가위로 어머니가 일을 저질렀다는 기억이었다. 수명은 그 기억으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치며 침잠해들어가기만 했던 것이다. 지인이 숨겨놓은 글라이더를 타고 승민은 비상하고, 수명은 탈진상태에서 발견되어 공주감호소에 수용된다. 그리고 4년 후 정신보건심판위원회에 출석한 수명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된다. 그리고 트위스트를 추자는 승민의 환청에 한바탕 춤을 추고 '넌 누구냐'는 물음에 팔을 벌리고 총구를 향해 가슴을 열며 '나야, 내 인생을 상대하러 나선 놈, 바로 나'라고 답한다.

 

처음은 잘 읽히지 않는다. 심사위원평 역시 그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는데, 나의 경우는 최근 소설들의 양태와 맞물린 선입관이 한 몫을 한 것 같다. <철수사용설명서>와 같은 조악한 말장난 소설이 늘어나고 있는 요즘, 이 소설 역시 그런 부류인가 아닌가 판단이 들지 않아 몰입하지 못했던 것 같다. 

소설은 치밀한 구성과 독특한 문체를 가지고 있어 처음 접하는 작가였으나 꽤 강한 인상을 받았다. 말장난을 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점은 예전 은희경의 <마이너리그>를 읽으면서 인상을 찌푸렸던 기억과 대비되었다. 말장난 자체에 작가 스스로 '재미있지?' 하고 묻는 기분이 들지 않았던 점은 미덕이었다.

 

물론 아쉬운 점도 많다. 수리희망병원, 혹은 정신병원에 대한 작가의 시각이 유독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느낌이다. 먼저 이 책의 정신병 환자들은 전혀 정신병 환자 같지 않다. 정신분열증 환자인 화자도, 조울증의 김용도 모두 그냥 보통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한이와 지은이의 경우 침을 흘리고 의사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이것도 '장애'의 형태로 다가올 뿐이다.

그건 이야기 전개를 위해 그랬다 치더라도 의사, 간호사, 그리고 보호사에 관한 시각은 자기검열의 냄새가 너무 난다. 먼저 의사는 랙터 박사, 공보의, 대학에서 파견나온 의사가 있고 간호사는 윤보라와 최기훈이 있으며 보호사 등 일꾼들은 점박이 등이 있는데, 이들의 행동이 모두 개인적 특성 문제로 치부되고 있다. 이때문에 부조리한 처우와 지은이에 대한 윤간, 환자에 대한 상시적인 폭력이 등장하면서도 그것이 곧 정신병원 시스템 자체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애써 부정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최기훈이다. 그는 환자에게 정당한 처우를 해주려 하고, 양심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는 간호사로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병원 시스템에 매여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인권에 반하는 행동도 하고 ECT 처치에 대해서도 자신없는 말로 변명한다. 또 병원에서 일어난 윤간 사건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것으로 처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행동들이 입체적이고 사실적이라는 느낌보다는 일관성 없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최악의 진흙탕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고, 인간적인 면에서는 흔들리는 인물인 최기훈은 어쩌면 작가의 '동업자 의식'이 투영된 인물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작가가 간호사와 건강보험 심사평가원 심사직을 거쳤다고 하니, 과거 자신 혹은 동료를 그리는 데 있어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병원 시스템 전체에 칼날을 들이댈 수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K.키지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와 같이 '정상인이 정신병자로 분류되어 감금당하고 권력으로 표징되는 정신병원으로부터 탈출하려하다 좌절한 후 정신병원에서 정신병자가 된다',하는 이미 쓰여진 이야기도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자신이 도망쳐온 기억으로 되돌아가 그곳에서 시작하는 이수명의 이야기는 그 나름의 매력이 있고, 작가의 경험과 연구, 그리고 재기발랄하면서도 난체 하지 않는 문체가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어 좋은 작품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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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 오렌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2
앤소니 버제스 지음, 박시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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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와 피트, 조지, 그리고 딤은 '코로바 밀크바'에서 마약이 든 우유를 마시고 지나가는 노인의 책을 빼앗아 찢고 구타한다. 그리고 '뉴욕 공작' 술집에 들어가 나이든 할머니들에게 술을 사 돌리는 것으로 알리바이를 확보한 후 강도짓을 한다. 길거리에서 빌리보이 패거리를 만나 체인과 나이프가 오가는 패싸움을 벌인 후 집으로 돌아온 알렉스는 베토벤의 음악을 듣는다.

어느 날인가는 외딴 집에 난입하는데 집 주인은 작가로 <시계태엽 오렌지>라는 원고를 집필중이었다. 알렉스 일당은 작가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내를 윤간한다. 그리고 얼마 후 패거리는 홀로 사는 할머니 집을 털기로 하는데 먼저 들어간 알렉스가 할머니와 실랑이를 벌이다 할머니를 폭행치사하고 나머지 패거리는 알렉스를 배신한다. 14년형을 언도 받고 감옥에 갖힌 알렉스는 감방 안에서 또 다시 살인에 휘말리고, 정부는 알렉스를 '루도비코 요법'이라는 새로운 갱생요법의 첫 희생자로 삼는다. 일종의 조건반사의 응용인 '루도비코 요법'은 폭력, 강간, 살인, 방화 등 범죄와 관련된 영화를 틀어주고 강제로 보게 하는 한편 그것을 볼 때마다 신체에 고통이 오게 만드는 방법이다. 알렉스는 이주일간의 요법으로 선과 악을 선택하는 능력이 거세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던 음악마저 요법 시행 중 함께 듣는 바람에 더 이상은 즐길 수 없게 되어버렸다.

출옥 후 집으로 돌아갔지만 그곳에는 엉뚱한 녀석이 하숙생으로 들어와 알렉스의 방을 차지하고 있었고 자신을 배신한 딤과 라이벌이었던 빌리보이는 경찰이 되어 있었다. 시외로 끌려가 딤과 빌리보이에게 두들겨 맞은 알렉스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어떤 집을 찾아간다. 그러나 그곳은 예전에 알렉스가 난입하여 강도질과 강간을 했던 <시계태엽 오렌지> 작가의 집이었다. 작가의 아내가 그때 사건으로 자살했다는 것을 알게 된 알렉스는 언행을 조심하지만 작가는 알렉스가 누구인지 알아채고 만다. 작가와 동료들은 새로운 정부에 대항하기 위해 알렉스를 이용하기로 하고 시내 모처에 가둬두고 음악을 틀어대자 알렉스는 창문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시도한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 알렉스를 두고 언론은 '루도비코 요법'의 희생자라고 연일 보도했고 내무부장관은 알렉스를 다시 예전 상태로 되돌려 놓는다. 또다시 패거리를 지어 '코로바 밀크바'와 '뉴욕 공작' 술집을 전전하던 알렉스는 예전과 달리 어린애 사진을 지갑에 넣어다니기도 하고, 전과 같이 폭력에 흥분하며 온 몸을 내맡길 기분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를 먼저 봤었는데 충격적이었고 불쾌했었다. 기괴한 가면과 현란한 복장의 패거리들이 폭력과 고문, 윤간을 벌이는 장면을 별다른 여과 없이 카메라에 담아낸 영화를 보면서 욕지기마저 일었던 기억이 난다.

작품은 두 층위의 폭력을 보여준다. 첫째는 일상적인 강도질과 강간에 물든 알렉스 패거리의 폭력이고 두번째는 사상범을 가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인간의 자유의지를 거세해버리고 '태엽'을 장착해 기계같은 인간들을 양산해 내는 정부의 폭력이다. 첫번째 폭력이 덜 역겨운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화자'라 칭하는 알렉스와 독자의 심리적 친밀함은 정부의 폭력이 더욱 부도덕하다고 느끼게 만든다.

이러한 작가의 방식이 성공을 거두었는지는 미지수이다. 소설과 영화는 극단의 찬사와 비판에 직면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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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 - 우리시대의 지성 5-016 (구) 문지 스펙트럼 16
다니엘 페낙 지음, 이정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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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라는 동사는 명령법이 먹혀들지 않는다. 이를테면 '사랑하다'라든가 '꿈꾸다' 같은 동사들처럼, '읽다'는 명령문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물론 줄기차게 시도를 해볼 수는 있다...효과는? 전혀 없다.

 

소설가이자 교사인 다니엘 페나크는 위와 같은 재치 있는 단상으로 '책 읽기', 특히 '소설 읽기'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아이가 어렸을 적에 밤마다 부모는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어 아이를 모험의 세계로 인도했고, 부모 자신는 톨킨과 같은 작가가 되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이도 부모도 책을 읽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다만,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명제만 남아 있다.

아이가 학교로 가서 글자를 터득하는 순간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있는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착각을 하게 되고, 그 동안 아이에게 책 읽어 주던 시간을 자신을 위해 쓰기 시작한다. 한편 아이는 학교에서 책을 읽고 거기에 대해 요약하거나 답을 해야 하는 상황에 자꾸 직면하면서 책 읽기를 의무감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어렸을 적 즐거움은 잊게 된다. 이제 책 읽기는 더 이상 '무상의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행위가 아니게 된 것이다.

 

다니엘 페나크는 책 읽기의 즐거움으로 돌아가기 위해 소리내어 책을 읽어보라고 말한다. 수업시간에 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반 아이들에게 한 시간 동안 소리내어 읽어주었던 일화를 이야기한다. 조금씩 전개되는 내용을 들으면서 아이들은 책의 두께나 무언가를 요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오직 이야기의 전개와 다음 내용을 궁금해하며 책 읽기의 기쁨을 다시 맛보게 된다.

 

읽는 동안 나 역시 소리내어 책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소설은 이야기라는 작가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감했다.

물론 이 에세이는 논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 읽기에 대한 작가의 견해가 책 안에서 서로 상충되기도 하고, 적절히 절충되는 경우도 있다.

책읽기가 일탈 행위이기 때문에 즐거움을 맛본다고 하면서도, 교사인 작가는 책 읽기가 언젠가는 아이가 진학을 하고 자격시험을 얻는 데에도 분명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간다고 말한다. 정말 그런가? 그것은 알 수 없는 노릇 아닌가?

특히나, 책을 읽는 것이 인간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아니 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작가 역시 즐거움 이외의 다른 견해를 제시하지는 못한다. 다만 '체호프를 읽은 사람이 읽지 않은 사람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다' 하는 모호한 의견을 표할 뿐이다. 얼마 전 읽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에 실린 짧은 에세이에서도 이와 같은 의문이 나온다. 작가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을 읽었다는 기억은 나지만 그 내용에 대해 현재 기억하고 있는 것이라곤 거의 없다. 또, 다른 고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실정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인가 하고 쥐스킨트는 스스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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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는 누구? 귀족 탐정 피터 윔지 1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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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업자 팁스의 욕실에서 벌거벗은채 코안경만 쓴 시체 한 구가 발견된다. 피터 윔지 경은 사건에 흥미를 갖고 시체를 조사 하는데, 단정하게 면도와 이발을 했고 향수까지 뿌렸지만 손과 발이 육체 노동으로 거칠고 더럽다는 점을 발견한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피터 경의 친구이자 경찰인 파커는 레비라는 이름의 부유한 유태인 실종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레비는 어느 날 밤 집에 들어왔다가 사라졌는데 이상한 점은 그가 잠을 자고 일어난 뒤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고 사라졌다는 점이다.

피터 윔지 경은 두 사건 사이에 무언가 연관성이 있을 거라는 전제 하에 레비가 사라졌을 경우 가장 이득을 보는 미국인 사업가 밀리건을 조사하지만 별다른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한다. 또한 시체가 쓰고 있던 코안경 주인에 기대를 걸었으나 그 역시 범행과는 관련이 없음이 드러난다.

피터 윔지는 창녀 한 명이 베터시 공원길을 걷던 레비를 만났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두 사건의 연결 고리를 확신하고, 피터 윔지 경의 어머니가 레비의 부인과 프레크 박사의 관계를 이야기해주자 동기를 추측하여 사건을 해결한다. 프레크 박사는 자신의 범행 일체를 자백하는 편지를 피터 윔지 경에게 보낸다.

편지에 따르면 프레크 박사는 자신이 청혼했던 여성이 자신을 거절하고 레비와 결혼하자 깊은 앙심을 품는다. 긴 시간 동안 레비를 살해할 궁리를 하던 박사는 구빈원에 곧 죽어가는 사람이 레비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것에 착안하여 레비를 살해할 결심을 한다. 그는 레비를 증권가 루머로 자신의 집에 유인하여 살해한 뒤 구빈원에서 사망한 자로 위장하기 위해 얼굴을 훼손하고, 구빈원에서 사망한 자의 시체는 마침 창문이 열려있던 건축업자 팁스의 욕조에 버린다. 그리고 우연히 기찻간에서 얻게 된 코안경을 걸쳐 놓음으로서 사건에 혼동을 주었던 것이다.

 

피터 윔지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후기 작품에 비하여 원숙미는 조금 떨어지는 편이다. 도로시 세이어즈는 추리소설 작가로 활동하는 한편 번역가이자 신학가로서도 명성을 떨쳤고, 옥스퍼드 학위를 취득한 최초의 여성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특히 당대 여러 작가들과 친분을 쌓았고 그런 영향이 도로시 세이어즈의 작품 속에서 인용의 현태로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한편 그녀가 창조해 낸 귀족 탐정 피터 윔지 경은 그런 도로시 세이어즈의 반영으로 단테의 희귀판본을 수집하고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식견을 갖추고 있다. 그는 인간적인 나약함과 의지적인 면모의 양면성을 보이는데 때로 전쟁 중 얻은 트라우마로 괴로워하기도 하지만 사건의 해결을 위해 의지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면은 피터 윔지를 좀 더 입체적이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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