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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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생, 이수명이라는 남자가 정신보건심판위원회에 출석한다.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된 자가 스스로 자유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그곳에서 이수명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신림책방을 하는 아버지 가게에 기식하는 주인공 '나' 이수명은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다. 어머니 역시 정신병으로 시달리던 어느 날 욕조에서 가위로 목을 찔러 자살했다. 하지만 환청은 어머니가 자살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인 것이라고 속삭이고, 수명은 진실을 대면할 용기가 없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지 일주일 되는 어느 날, 아버지 성화에 못 이겨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해 여자에게 말을 건 행위가 성추행으로 오인을 받자 아버지는 수명을 강원도의 수리희망병원에 입원시키며 '이번에 가면, 죽기전엔 못 나온다'고 말한다.

입원한 수명은 그곳에서 4인실을 배정받는다. 환자는 '라이터(사이코패스)'로 분류되어 탈출 기회를 노리는 류수명, '바이폴라(조울증)'이고 일류대학을 나왔다는 말 많은 김용, 써커스단에서 '또별'이라는 이름의 말을 타며 재주를 부렸으나 이제는 사람을 '또별'로 착각하고 살아가는 만식씨, 그리고 '스키조(정신분열증)'이고 가위만 보면 공황장애를 일으켜 머리를 기른 미스리 이수명이 한 방을 쓰게 된다.

한편 의사로는 범죄심리학자이며 강압적인 성격의 '렉터박사'가 있고 그 밖에 대학병원에서 파견나온 의사, 공보의 등이 있다. 간호사로는 환자를 객관적이고 양심적으로 대우하려 하는 최기훈과 이와는 정반대의 윤보라, 그리고 보호사와 진압조 등이 있는데 그 중 점박이라는 별명의 오너 조카는 폭력을 내세우며 월권을 일삼기 일쑤였다.

어느 날 승민이 양말에 시계를 넣어 최기훈을 공격한 후 탈출하려던 시도가 실패하고 수명은 혼란한 와중에 승민의 시계를 몰래 숨겨준다. 이 사건으로 승민은 수명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승민은 재벌가의 샛부인 자식으로 어렸을 적부터 미국에서 자랐다. 그곳에서 글라이더를 배우며 자유롭게 살아가던 어느 날, 덜컥 아버지가 사망하는데 유언으로 승민에게 큰 덩어리를 남겨 준다. 승민 몫이 탐이 난 가족들은 승민이 어렸을 적 방화를 한 전력이 있음을 이용, 누명을 씌워 수리희망병원에 강제 입원을 시키는 모종의 계획을 꾸민 것이다.

승민은 탈출을 시도하는 한편 바깥 쪽 사람들과 접촉을 시도하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어느 날 눈에 큰 문제가 있음이 드러난다. 그가 그렇게 조바심을 낸 것은 시력이 점점 상실되어 앞이 전혀 보이지 않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자신의 생을 글라이딩을 하며 마감하고자 했다.

외부 차량 탈취 계획을 돕던 수명은 승민과 함께 탈출하기로 결정하고 마음을 바꾸고 둘은 어렵사리 수리봉 정상에 도달한다. 그곳에서 수명은 잊고 있었던 기억 한자락을 끄집어 낸다. 그것은 신림책방에서 포의 소설에 빠져들어 어머니가 자해하지 못하도록 취해야 할 조치들을 소홀히 했고, 결국 자신이 남겨둔 가위로 어머니가 일을 저질렀다는 기억이었다. 수명은 그 기억으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치며 침잠해들어가기만 했던 것이다. 지인이 숨겨놓은 글라이더를 타고 승민은 비상하고, 수명은 탈진상태에서 발견되어 공주감호소에 수용된다. 그리고 4년 후 정신보건심판위원회에 출석한 수명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된다. 그리고 트위스트를 추자는 승민의 환청에 한바탕 춤을 추고 '넌 누구냐'는 물음에 팔을 벌리고 총구를 향해 가슴을 열며 '나야, 내 인생을 상대하러 나선 놈, 바로 나'라고 답한다.

 

처음은 잘 읽히지 않는다. 심사위원평 역시 그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는데, 나의 경우는 최근 소설들의 양태와 맞물린 선입관이 한 몫을 한 것 같다. <철수사용설명서>와 같은 조악한 말장난 소설이 늘어나고 있는 요즘, 이 소설 역시 그런 부류인가 아닌가 판단이 들지 않아 몰입하지 못했던 것 같다. 

소설은 치밀한 구성과 독특한 문체를 가지고 있어 처음 접하는 작가였으나 꽤 강한 인상을 받았다. 말장난을 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점은 예전 은희경의 <마이너리그>를 읽으면서 인상을 찌푸렸던 기억과 대비되었다. 말장난 자체에 작가 스스로 '재미있지?' 하고 묻는 기분이 들지 않았던 점은 미덕이었다.

 

물론 아쉬운 점도 많다. 수리희망병원, 혹은 정신병원에 대한 작가의 시각이 유독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느낌이다. 먼저 이 책의 정신병 환자들은 전혀 정신병 환자 같지 않다. 정신분열증 환자인 화자도, 조울증의 김용도 모두 그냥 보통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한이와 지은이의 경우 침을 흘리고 의사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이것도 '장애'의 형태로 다가올 뿐이다.

그건 이야기 전개를 위해 그랬다 치더라도 의사, 간호사, 그리고 보호사에 관한 시각은 자기검열의 냄새가 너무 난다. 먼저 의사는 랙터 박사, 공보의, 대학에서 파견나온 의사가 있고 간호사는 윤보라와 최기훈이 있으며 보호사 등 일꾼들은 점박이 등이 있는데, 이들의 행동이 모두 개인적 특성 문제로 치부되고 있다. 이때문에 부조리한 처우와 지은이에 대한 윤간, 환자에 대한 상시적인 폭력이 등장하면서도 그것이 곧 정신병원 시스템 자체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애써 부정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최기훈이다. 그는 환자에게 정당한 처우를 해주려 하고, 양심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는 간호사로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병원 시스템에 매여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인권에 반하는 행동도 하고 ECT 처치에 대해서도 자신없는 말로 변명한다. 또 병원에서 일어난 윤간 사건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것으로 처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행동들이 입체적이고 사실적이라는 느낌보다는 일관성 없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최악의 진흙탕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고, 인간적인 면에서는 흔들리는 인물인 최기훈은 어쩌면 작가의 '동업자 의식'이 투영된 인물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작가가 간호사와 건강보험 심사평가원 심사직을 거쳤다고 하니, 과거 자신 혹은 동료를 그리는 데 있어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병원 시스템 전체에 칼날을 들이댈 수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K.키지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와 같이 '정상인이 정신병자로 분류되어 감금당하고 권력으로 표징되는 정신병원으로부터 탈출하려하다 좌절한 후 정신병원에서 정신병자가 된다',하는 이미 쓰여진 이야기도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자신이 도망쳐온 기억으로 되돌아가 그곳에서 시작하는 이수명의 이야기는 그 나름의 매력이 있고, 작가의 경험과 연구, 그리고 재기발랄하면서도 난체 하지 않는 문체가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어 좋은 작품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53161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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