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흩날리는 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4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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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는 남편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자살한 후 삶을 제대로 추스리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남편은 미로를 원망하는 유서를 남기고 목을 맸고, 시댁 쪽에서는 미로를 비난했다. 미로가 바람이 났다는 소문도 돌았다. 소문은 사실이 아니었다. 남편과 미로는 언젠가부터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고, 심약한 남편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뿐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살던 집으로 돌아온 미로는 홀로 삶을 추스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아버지는 탐정 일을 하다 은퇴한 후 낙향했는데, 야쿠자 쪽 조사 일을 많이 했었다.

어느 날 밤 새벽, 전화가 울리다 끊기고 다음 날 친구 요코를 찾는 남자들이 들이닥친다. 나루세라는 남자는 요코의 남자친구로 중고 외제차를 판매하는 업자였고, 동행한 남자는 야쿠자쪽 똘마니였다. 그들은 요코에게 1억엔을 맡겼는데 그녀가 그 돈을 들고 종적을 감췄다고 했다. 사라진 1억엔의 출처가 수상쩍었던 까닭에 그들은 경찰에 알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요코가 집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걸었던 전화번호의 임자가 미로였기 그녀를 의심하고 찾아온 것이다.

미로가 요코와 공모했다는 증거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요코가 또 다시 전화를 걸어올지도 모른다며 미로의 삶에 틈입하여 뻔뻔한 감시를 계속했다. 미로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요코를 찾는 일을 함께 하기 시작한다.

미로는 요코의 행적을 추적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된다. 요코는 논픽션 작가로 최근 페티쉬물로 작은 성공을 거뒀는데 그녀는 여기서 만족하지 못하고 좀 더 그럴싸한 작품으로 상을 타고 싶어했다. 그래서 머리를 염색하고 야한 옷을 입은 채 동독으로 날아갔는데, 동양인 창녀가 동독에서 겪게 되는 일들을 르뽀 형식으로 써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코는 그곳에서 우연히 신나치들이 연관된 보복 살인 현장을 목격하게 되고, 범인 일당 중에 동양인 여자가 끼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상은 요코의 취재 노트 등을 통해 알아낸 것이었는데, 미로는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계속된 추적으로 요코의 어시스턴트 유카리가 도벽이 있어 요코의 집에 물건을 훔치러 들어 갔다가 1억엔이 든 가방을 발견하여 후지무라와 공모해 돈을 훔쳐냈다는 것이 밝혀진다. 하지만 미로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익사한 것으로 보이는 요코의 사진이 페티쉬 그룹 사이에 돌았던 것이다.

 

요코가 우연히 목격한 동양인 여자의 정체와 나루세가 운영하는 중고차 판매업 사이의 관계를 파헤친 미로는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받아 탐정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는다. <얼굴에 흩날리는 비>는 미로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고, 에도가와 란포 상을 수상했다. 에드거 엘런 포 상의 최종 후보까지 올랐으나 아깝게도 수상은 하지 못했다. 1998년 <아웃>으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 1999년 <부드러운 볼>로 나오키상을 수상한다. 

<얼굴에 흩날리는 비>는 시종일관 음산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미로의 남편은 동남아시아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자살한 것으로 되어 있고, 페티쉬 그룹들의 그로테스크한 행위들이 묘사되고 있으며 시체 애호가들은 익사체의 사진을 교환한다. 비가 끊임 없이 내리는 신주쿠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선과 악이 교차하는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독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범인이 누구인지 판단을 유보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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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비
아사다 지로 지음, 김미란 옮김 / 문학동네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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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성야(聖夜)의 초상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이하여 남편은 치사코에게 오모테산도에 나가 사진을 찍자고 한다. 남편의 유일한 취미라고는 카메라였다.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에는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을 생각이 없다고 했지만 어느 순간 사업을 물려 받아 건실하게 성장시켰고, 치사코와 아이들에게도 충실했다. 하지만 치사코는 그런 남편을 사랑할 수가 없었다.

치사코는 더 이상 남편을 속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오노 준이치로에 대해 이야기한다. 남편은 다른 사람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는 치사코의 말을 듣고도 괜찮다고 했다. 치사코는 남편과 만난 시점이 그 사람의 아이를 지운 직후라고도 털어 놓는다. 한결같이 자기만을 쳐다보는 바보같은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함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나쁜 여자인지 폭로하고 싶은 심정이었는지도 모른다. 남편은 상처받는 짐승처럼 낮게 신음하면서도 자신과 상의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조건부로라도 자신을 사랑해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 말한다.

 

근엄 강직한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치사코는 이십 년 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갔고 그곳에서 오노 준이치로를 만났다. 둘은 서로 사랑했고 함께 살았다. 돈이나 미래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덜컥 아이가 생겼다. 아버지가 노발대발하며 파리에 쫓아와 오노 준이치로를 다그쳤다. 앞으로의 계획이 무엇인지 따져 묻는 아버지의 서슬에 오노 준이치로는 변변한 대답도 못하고 우물거렸고, 이에 실망한 아버지는 헤어지라고 명령한다. 다음 날 히사코는 오노 준이치로가 늘 이젤을 세워두던 자리에 그를 만나러 갔지만 그는 없었고, 그의 친구가 히사코의 초상화를 전해주며 준이치로의 부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일본으로 돌아 온 히사코는 아이를 지우고 함부로 살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결혼한다. 하지만 그 후로도 히사코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오노 준이치로가 남아 있었다.

 

히사코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남편은 아내에게 초상화를 하나 새로 그리라고 말한다. 히사코는 노변에 이젤을 세워둔 화가들을 가늠해보다가 한 사람을 지목하여 초상화를 부탁한다. 화가는 히사코를 몇 번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 나름대로 그림을 그려 나간다. 잠시 후 남편이 커피 두 잔을 들고 돌아온다.

화가가 건낸 그림 속에는 이십대의 히사코가 그려져 있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날, 성야(聖夜). 남편은 화가에게 자신의 아내 히사코와 저녁을 함께 먹어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한다. 화가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지난 이십 년 동안 늘 그녀와 밤마다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말한다. 이천엔을 건내며 히사코가 말했다. "메르시 보쿠, 무슈" 고마워요, "즈 부 장 프리, 마담" 천만에요.

준이치로가 "아듀, 사요나라" 라고 말하고 떠나자 히사코는 이제야 오노 준이치로와의 이야기가 끝났다고 느낀다. 그리고 앞으로 남편을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o 달빛 방울

 

콤비나트에서 짐꾼으로 하는 마흔 셋의 다츠오는 게딱지 같은 집에서 살았다. 어머니가 오래 앓아 병치레를 하느라 돈을 모으지 못했고, 돌아가셨을 때에는 빚을 갚고 나니 묘자리를 살 수가 없었다. 성실하게 일을 했지만 요령이 없어 여자를 꼬시지 못했고 그날 그날을 살아갈 뿐이었다.

어느 날 술에 취해 돌아오던 길에 우연히 남자와 여자가 다투는 것을 목격한다. 벤츠에서 내린 둘이 잠시 티격태격하더니 앗 하는 사이에 남자가 여자의 따귀를 때렸고, 남자는 열린 창문으로 돈 뭉치를 집어던지며 떠나버린다. 여자는 다츠오가 보기에 너무나 미인이었다. 돈이 차도에 휘날리자 다츠오는 돈을 집어들어 모은 후에 아가씨에게 건낸다. 여자는 필요 없다며 가지라고 말하지만 다츠오는 그럴 수 없다며 사양한다. 여자가 무언가를 밟아 다리를 다쳤고 택시도 다니지 않는 길이었기 때문에 다츠오는 여자를 집으로 데려간다.

다음 날 다츠오는 동료들에게 여자 이야기를 한다. 동료들은 여자를 어떻게 했는지만 궁금해했으므로 다츠오는 그녀와 나눈 정사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그러나 그것은 동료들을 재미있게 해주기 위한 거짓말이었을 뿐, 다츠오는 그녀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재워주었을 뿐 몸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한편 리에는 다음 날 일어나 게딱지 같은 집을 신기해하며 둘러본다. 남자 혼자 사는 방은 온통 어질러져 있었다. 리에는 부자인 남자를 꼬드겨 결국 이혼하게 만들었지만, 정작 남자가 이혼한 후에는 실증이 나고 말았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드는 남자의 습성도 싫었다. 그래서 헤어지자고 말했더니 남자가 불같이 화를 내며 따귀를 때리고 돈을 집어 던지며 머리가 식으면 다시 찾아오라고 말한 것이었다. 딱히 갈 곳도 없던 리에는 방을 치우고 꽃도 꺾어다 꽂아 놓는다.

술을 먹도 들어온 다츠오는 집에 불이 켜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리에는 집을 깨끗히 치워 놓고 다츠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밤 리에는 다츠오에게 남자와의 일들을 언뜻 언뜻 들려준다. 그리고 지금 자기 뱃속에는 아이가 들어있고, 그 아이를 지우러 병원에 갈 때 다츠오가 보호자로 같이 가서 사인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날 밤 리에는 다츠오에게 안아달라고 말하지만 다츠오는 그럴 수는 없다며 리에를 껴안기만 하고 잔다. 리에는 따뜻함을 느낀다.

다음 날 다츠오는 가불을 해서 백화점에 간다. 그 남자가 사주었다는 리에의 시계와 같은 걸 사주면 리에와 결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계는 다츠오가 가불해간 돈으로도 턱없이 모자랐다. 겨우 싸구려 시계를 사가지고 돌아온 다츠오는 리에에게 아이를 낳아달라고 말한다. 리에가 불같이 화를 내며 모욕적인 말을 내뱉고 시계를 내던진다. 다츠오가 일어나 어머니의 유골 상자를 집어들고 밖으로 나간다. 어머니와 바다를 보러 간다고 말했다. 한참을 울던 리에가 일어나 남자의 뒤를 따른다.

 

o 류리(琉璃)에 대한 추억

 

자수성가한 구레바야시가 사보의 화보에 '귀향'이라는 기획을 제안한다. 고향 북경을 찾아가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는 그 자신도 잘 몰랐다. 구레바야시와 함께 동행한 카메라맨 니시오카는 전쟁터를 누비며 사진을 찍어온 베테랑 사진작가였다.

원래는 비서 미즈노 야스코도 함께 동행하기로 한 여행이었다. 하지만 여행 직전 미즈노가 더 이상 구레바야시와의 관계를 계속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내가 있는 구레바야시를 계속 사랑하는 것이 괴롭다면서 니시오카와 결혼하기로 했다고 고백한 것이다. 니시오카와 미즈노는 둘 다 불행하게 자랐고, 그런 공통 분모가 둘을 친근하게 만들어준 모양이었다. 그런 이유로 니시오카만 데리고 여행을 온 것이다.

북경에 관한 기억은 거의 없었는데 고향 부근에서 노인 한 명이 구레바야시를 보고 홍따런이라고 했다. 구레바야시(紅林)는 중국말로 홍린이고, 홍따런은 紅大人 이었다. 하지만 구레바야시는 그 사람을 기억할 수 없었다. 얼마 후 또 다른 노인이 구레바야시를 보고 홍따런이라 외치며 중국말을 했다. 잘 돌아왔다는 말이었다. 구레바야시는 자신이 중국말을 알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그리고 중국에서 나오면서 꼭 쥐고 나온 총탄 하나와 여동생 류리코에 대한 기억이 하나 하나 돌아오기 시작한다.

노인은 아마도 구레바야시를 그의 아버지와 착각한 것 같았다. 구레바야시는 샤오홍(小紅)이라 불렸다. 상인으로 기억하고 있던 아버지의 모습이 조금씩 떠올랐다. 아버지는 상인이 아니라 군인이었던 것 같다. 전쟁이 나자 아버지는 말을 타고 구레바야시 앞에 나타나 전장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좋냐는 구레바야시에게 아버지는 너도 남자니까 그런 것은 스스로 정하라며 총알을 하나 빗속에서 던진다. 동생 류리코를 업고 일본으로 향한다. 중도에 동생이 죽었지만 구레바야시는 동생이 깊은 잠에 빠져있는거라고 생각했다. 팔로군 병사가 구레바야시에게 다가와 죽은 사람은 잊어버리라며 만두를 먹고 살아남으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야기 한다. "왕러, 왕러, 왕이치에러. 왕더이콩얼진" 전부 잊어버려라, 전부, 전부.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 구레바야시는 살기 위해 중국에서의 기억을 모두 잊어버리려 했고, 실제로 잊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그는 그 모든 것을 기억해 낸다.

구레바야시는 니시오카에게 미즈노와의 일을 이야기하며 사과한다. 니시오카는 구레바야시가 미즈노를 사랑했었는지 묻는다. 사랑했었다고 구레바야시가 대답하자 그걸로 됐다고 말한다.

 

o 은빛 비

 

신문보급소에서 일하다가 수금한 돈이 틀리자 가즈야는 보급소를 뛰쳐 나온다. 아무도 가즈야가 횡령했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만 앞으로 또 틀리면 곤란하니까 잔소리를 한 정도였다. 하지만 가즈야는 자격지심에 뛰쳐나오고 만 것이다. 무작정 도쿄로 올라가려고 역에 갔다가 기쿠에를 만난다. 기쿠에는 엄마가 물장사를 하던 때에 알게 된 여급이었는데 가즈에보다 두어 살 위였다. 그날부터 기쿠에의 집에 들어간 가즈야는 그녀와 함께 살기 시작한다. 기쿠에는 가즈야를 학교에 계속 다니게하고 싶었지만 기쿠에도 방법은 잘 몰랐다. 그래서 낮에는 학교에 나가게 하고 밤에는 야쿠자들이 운영하는 도박장에 심부름꾼으로 일하게 주선해주었다.

어느 날 마사 형님이 낯선 사내를 데려온다. 그 사내의 이름은 이와이, 야쿠자들끼리 전쟁이 일어나자 사람을 몇이나 죽였다고 했다. 그런데 경찰이 개입하여 전쟁이 끝나자 도주길에 오른 것이다. 마사 형님은 이와이에게 굽신굽신하며 기쿠에를 계집으로 삼아 그녀의 집에서 편히 지내라고 했다. 그리고 가즈야를 심부름꾼으로 쓰도록 권한다.

가즈야는 이와이가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알았다. 만약 이와이를 끝까지 도피시켜줄 목적이었다면 자신과 같은 똘마니를 시중꾼으로 배치시켰을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와이와 외출하던 날, 그가 싸구려 지포 라이터를 산다. 까르띠에 라이터는 자신과 같은 촌놈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가즈야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기쿠에를 안고 난 후에 가즈야가 기쿠에의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서. 그후로 이와이는 기쿠에의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며칠 후 마사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곧 경찰이 들이닥칠테니 기쿠에와 조용히 집밖으로 나가라는 전갈이었다. 가즈야는 이와이에게 피신하라고 말하지만 이와이는 조용히 권총을 집어들어 자살할 준비를 한다. 하지만 한 알 뿐인 총알은 기쿠에가 빼두었기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한다.

경찰 앞에서 가즈야와 기쿠에를 위해 하지 않은 일도 모두 했다고 시인한 이와이가 면회 가겠다는 가즈야에게 그저 재수없는 비를 맞았을 뿐이라 생각하라고 말한다.

가즈야는 신문 보급소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기쿠에에게 가끔 찾아가도 좋냐고 묻는다. 기쿠에 역시 재수없는 비를 맞았다고 생각해 달라고 말한다. 가즈야는 전보다 기쿠짱이 더 좋아졌다고 말하려 했지만 소리가 되어 나오지는 않는다.

 

o 꽃과 밤

 

유부남과 오년 째 연애하고 있는 사와무라 마치코는 생일 날 남자가 아이가 열이 난다며 약속을 취소하자 비참한 심경이 되어 술을 마시고 전철을 탄다. 전철에서 흐느끼던 끝에 잠이 든 마치코는 내려야 할 역을 훨씬 지나 야마나시까지 가고 만다. 막차는 끊겼고, 택시는 다니지 않았다.

비슷한 처지로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다카기 요시오, 별볼일 없는 영업사원이었지만 유미라는 이름의 사내 톱 디자이너와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결혼을 얼마 앞둔 어느 날, 유미가 부장과 불륜 관계를 맺어오고 있었는데 다카기와의 관계를 알고 질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출세에 지장이 생길 것 같으니 이만 없었던 일로 해달라고 말하며 떠난다. 

둘은 자신의 비참한 처지가 부끄러웠기 때문에 애인이 있는 척 하거나 결혼한 여자인 척 했다. 마침 여관이 보였다. 둘은 방을 하나만 잡는다. 창을 열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상처 입은 두 사람은 상대방이 거짓말로 상처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벚꽃에 취해 사랑에 빠질 것 같다는 예감을 느낀다.

 

o 후쿠짱의 잭나이프

 

후쿠모토 유키오가 본래 이름이지만 사람들은 모두 후쿠짱이라 불렀다. 후쿠짱은 영화배우 유지로를 좋아해서 그를 흉내내며 남자답게 살고자 했다. 어느 날인가는 잭나이프를 사기도 했다.

후쿠짱은 아르헨티나로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거기 가서 출세하겠다고 했다. 여자친구 스미코와는 헤어지리라 했다. 기다리게 만들거나 데리고 가는 건 유지로라면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하지만 후쿠짱이 이민자 사기에 걸려 돈을 모두 날리고 스미코에게 사정을 이야기하자 스미코는 후쿠짱이 아르헨티나로 갈 수 있도록 몸을 팔아 돈을 번다. 사람들은 후쿠짱이 후안무치하다고 욕했다.

후쿠짱이 떠나던 날 전송나온 스미코가 신파조의 약솔을 큰소리로 외친다. 배가 떠나기 직전 후쿠짱은 배에서 내리고 스미코에게 돌아가자고 말한다.

 

o 피에타

 

도모코의 엄마는 여섯살 때 도모코를 버리고 떠나면서 착한 아이가 되면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고 도모코는 자신이 착한 일을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모코는 이를 악물고 착하게 살아가려고 애를 썼다.

이제 잘나가는 잡지의 부편집장이 된 도모코가 이탈리아에 엄마를 만나러 간다. 함께 간 미스터 리는 빈상의 중국인으로 자그마한 가게를 꾸려가고 있었다. 미스터 리 이전에 멋진 남자와 사귀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이 프로포즈하자 도모코는 도망치고 말았다. 행복해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떠났기 때문에 행복해지면 안된다고 생각했고, 그런 모습을 엄마가 알게 되어 가슴 아파하길 바랬다. 그래서 미스터 리에게 결혼하자고 했고, 엄마와 재회하는 자리에 데려간 것이다.

엄마는 이탈리아에서 바람둥이 남자를 만나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가 죽어버렸고 남편도 떠나갔다고 했다. 그날 밤 도모코는 몸이 좋지 않았고 다음 날 깨어보니 미스터 리가 도모코가 감기에 들까 걱정되어 옷을 벗겨 침대에 뉘어 놓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스터 리는 도모코가 속옷만 입고 있는 것을 가급적 보지 않으려 했다며 우물 우물 말한다. 도모코는 미스터 리가 바보같다고 생각했고, 혹시 여자를 안을 수 없는 병이라도 있는 것 아니냐며 그를 상처주려 했다. 미스터 리는 도모코를 좋아하는 자신의 마음이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좋지만 진심을 알아달라고 호소한다.

다음 날 다시 엄마를 찾아간 도모코는 엄마가 자기에게 보낸 한다발의 편지 묶음을 보게된다. 어쨌든 착하게 살아가려 노력한 결과 엄마 없이도 훌륭하게 성장한 자신을 사랑하기로 결심하면서 엄마를 용서한다. 그리고 미스터 리를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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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토요일에는 체육행사가 있었는데 비가 내렸다. 작년에 포천에 갔을 때에도 비가 내렸고, 그 전해에도 그랬다고 하니 체육행사가 열릴 때마다 비님이 내리고 있는 셈이다.

가을비 치고는 꽤 거세게 쏟아졌는데 마니산 입구 임시 주차장에 차를 세운 사람은 나 뿐이었고, 단풍으로 물든 산자락을 차안에서 호젓이 쳐다보며 책을 읽었다. 왠지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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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 자살 노트를 쓰는 살인자,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2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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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키 마운틴 뉴스>에서 살인사건 기획 기사를 다루는 잭 매커보이에게 어느 날 형사 두 명이 찾아온다. 그들은 잭의 쌍둥이 형 션이 호숫가에 차를 세운 뒤 권총으로 자살했다고 알려준다. 잭은 죽음과 어느 정도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함으로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왔지만 그들이 알려준 소식은 그런 잭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션은 <블랙 달리아> 사건에 비견될 정도로 잔혹하게 살해된 테레사 로프턴 사건에 몰두해 있었는데 사건에 자신을 투영시킨 나머지 우울증에 시달려 왔었고 죽기 전 차 유리창에 '공간을 넘고 시간을 넘어' 라는, 모호하긴 하나 유서로 간주될 만한 말을 남겼다.

잭은 션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라도 기사를 써야만 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잭의 결심이 가족들에게는 직업적인 이기심으로 비춰진다. 

잭은 기사를 쓰기 위해 자살한 경찰관들의 사건을 검토하기 시작하는데, 우연히 다른 경찰관의 자살 사건에서도 션이 남긴 것과 같은 모호한 문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에드가 엘런 포의 시구였다. 잭은 이러한 사례가 더 있는지 조사하기 시작하는데, 놀랍게도 여섯 건이나 되는 경찰관 자살 사건에서 포의 시가 유서로 사용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의 자살 사건은 사실은 교묘하게 위장된 경찰관 살해 사건이었던 것이다.

잭은 자살로 처리된 경찰관들의 파트너를 찾아다니며 자신이 알아낸 바를 공유하고 재수사를 촉구한다. 파트너들은 자살 사건이 납득 되지 않았지만 너무나 명백해 보이는 증거들 때문에 살해 사건으로 다루지 못했을 뿐이었으므로 잭의 출현은 환영을 받았다. 이제 경찰관 연쇄 살인범을 잡기 위한 수사가 시작된다. 

하지만 전국적인 연쇄살인의 수사는 FBI가 맡도록 되어 있었고, 단서를 얻는 과정에서 전직 기자이자 정보원인 워런의 실수, 혹은 의도적인 배신 때문에 잭은 FBI에게 노출되고 만다. FBI는 만약 잭이 기사를 쓴다면 특종은 얻을 수 있겠지만 형을 살해한 범인은 영영 자취를 감춰버릴 것이라며 사건 해결 이후에 기사를 써줄 것을 요청한다. 잭은 특종이 아쉬웠으나 FBI의 의견도 옳다고 여겨 자신을 수사에 참여하게 해줄 것을 조건으로 제안을 받아들인다. 

잭은 FBI 요원 레이철의 감시 하에 수사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녀와 잭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함께 하다 보니 점차 상대방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레이철의 전 남편 소슨은 그런 잭을 고깝게 생각했고 전직 기자 워런에게 정보를 흘린 것도 그의 소행으로 생각되었다. 

그 즈음 아동성추행범 글래든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가 살해된 경찰관들이 집착했던 사건의 범인임이 확실시 되었다. 그가 경찰관들을 꾀어내기 위해 아이들이나 아이들의 보모를 잔인하게 살해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추적하는 경찰관을 살해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의 행적과 경찰관들의 사망 지점은 일치하고 있었다. 그가 경찰관에게 체포되었다가 보석으로 풀려나며 카메라를 압수당했다는 사실에 주목한 FBI는 그의 생계 수단이 아동들을 찍은 추잡한 사진이라 판단하고 동일 기종의 카메라를 사리라 추측한다. 그가 카메라를 주문한 가게를 확인한 FBI는 함정을 파고 그를 기다린다. 마침내 나타난 글래든은 소슨이 실수하는 틈을 타 그를 살해하고 잭과 난투극을 벌인다. 총이 그를 향한 순간, 그는 그것을 원하기라도 한 듯이 방아쇠를 당겨 죽음에 이른다. 

얼마 후 워런이 넉살 좋게 잭에게 인터뷰 요청을 한다. 잭은 동업자 의식을 발휘해 그의 요청에 응해준다. 헤어질 때 워런은 잭에게 기삿거리를 가로챈 것을 사과하며 자신에게 정보를 준 것이 누군지는 밝힐 수 없지만 적어도 소슨이 아니라는 것만은 밝힐 수 있다며 떠나간다.

잭의 머리속에서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며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기 시작한다. 소슨이 자신의 방에서 워런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면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은 레이철 뿐이었다. 잭은 그 날 소슨의 방에서 걸려간 전화 번호 모두를 조사한다. 그리고 글래든이 드나들었던 아동성애자들의 인터넷 사이트 접속 번호가 그 안에 들어 있음을 알게 되고, 레이철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녀의 방에서 본 달력의 휴가기간과 경찰관이 살해된 기간이 일치하는 점 등 모든 것들이 글래든의 뒤에 숨어 있던 범인이 레이철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FBI 팀장에게 모두 이야기한 잭은 레이철의 범행을 입증하기 위해 도청장치가 되어 있는 집으로 떠난다. 그리고 그 집에서 잭은 또 다른 진실을 목도하게 된다.

 

얼마 전에 경향신문에서 프로파일러에 관한 기사를 읽다가 인용된 <시인>의 첫 구절에 끌려 읽게 되었다. 그 첫 구절은 이렇다.

 

나는 죽음 담당이다. 죽음이 내 생업의 기반이다. 내 직업적인 명성의 기반도 죽음이다. 나는 장의사처럼 정확하고 열정적으로 죽음을 다룬다.

 

스티븐 킹 역시 코넬리의 첫 문장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스티븐 킹은 <시인>의 빼어난 구성과 매끈한 반전을 꼽아가며 이 작품을 고전의 반열에 올려도 손색이 없다고 말한다. 첫 문장에서 독자를 사로잡은 후에도 소설은 독자를 시종일관 긴장하게 만들고 반전은 게임의 법칙을 지키며 거듭된다. 독자를 속이지 않는 반전은 통쾌하다.

 

사이코패스라는 말이 회자된 것이 십년 이쪽 저쪽으로 생각된다. 사이코패스에 관한 가장 훌륭한 소설 중 하나인 기시 유스케의 <검은집> 과 마찬가지로 <시인>에서도 사이코패스가 등장한다. 

 

작가는 레이철의 입을 빌어 말한다.


"우리가 뒤쫓는 놈들은...... 개중에는 아무 이유 없이 그러는 놈들도 있어요......그런 놈들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건 산산조각으로 부서진 거울을 다시 맞추는 것과 똑같아요. 그놈들의 행동을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에 우린 그냥 놈들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해버려요. 달나라에서 온 놈들이라고. 이 시인이라는 녀석이 살던 달에서는 그런 본능을 따르는 것이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일이겠죠. 놈은 그런 본능에 따라 자신이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에요."

 

성폭행범들이 출옥한지 일주일만에 범행을 저지르거나 전자발찌를 찬 채로 여성을 노리는 일들이 비근한 요즘, 성폭행범들의 범죄 행태 역시 사이코패스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느낀다. 달나라에서 온 그들에게 지구의 법칙을 습득하도록 재활의 기회를 준다는 것은 비극의 씨앗을 심는 행위이다. 그들은 그들의 본능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없는 자들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성폭행범들에 관한 기사 댓글에는 유독 전체주의적인 댓글들이 많이 달린다. 삼청교육대 부활을 부르짖는 사람도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사회가 보수화되면 될 수록 성폭행이 증가하고, 그에 대한 대책으로 더욱 보수적인 정책들이 입안된다는 것이다. 

150여년 전, 현명한 사람이 공창 제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르주아지들이 자신의 아내를 성폭행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필요한 제도라고 했다. 또한 가족을 구성할 수 없는 가난한 자들이 성적 욕구를 해소함으로서 사회에 대한 안전판 역할도 하리라면서 부르주아지들이 공식적으로는 공창제도를 혐오스러워하면서도 뒤로는 그 공창제도를 유지 존속시킬 것이라 예견했다. 공창제도가 안전판 역할을 해야만 하는 사회 모순은 전혀 해결된 바가 없다. 성범죄는 더욱 증가하고, 우리 사회는 더욱 보수화될 것이라는 나의 불안감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일까. 

http://blog.naver.com/rainsky94/8020130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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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죽였다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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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다카히로와 미와코는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각기 다른 집에 맡겨져 길러진다. 15년 동안 떨어져 지내는 동안 다카히로는 착실히 공부해서 대학교 연구원이 되었고 미와코는 보험회사에 취직해 일을 하는 한편 틈틈이 시를 쓴다.

성년이 되어 다시 만난 남매는 어릴 적 살던 집에서 15년의 공백을 벌충하기라도 하듯 서로를 아끼며 생활한다. 하지만 서로의 고독감과 상실감이 너무나 닮았다는 점을 발견한 후 서로를 이성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결국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고 만다.

얼마 후 미와코가 쓴 시가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된다. 소설가 호다카가 그녀에게 호감을 나타내는데 그는 베스트셀러 소설가로 많은 돈을 벌어들인 후 드라마 각본과 영화에도 손을 대고 있었다. 미와코는 다카히로와 계속 관계를 지속시켜 나가선 안된다는 생각에 호다카에게 마음을 열고, 둘은 결혼 약속을 잡는다.

 

결혼식을 앞둔 날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결혼식 준비를 의논한다. 모인 사람은 다카히로와 미와코, 호다카, 그리고 호다카 기획의 실무를 보고 있는 스루가 나오유키, 미와코를 담당하고 있는 편집 담당자 유키자사 가오리 이상 다섯 명이었다. 그들이 담소를 다누고 있을 때 창 밖에 한 여자가 나타난다. 그녀의 이름은 나미오카 준코, 호다카에게 버림 받은 여자였다.

사실 호다카는 소설로 돈을 벌어들인 후에 이것 저것 손을 댔다가 재정이 악화일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때 미와코의 시가 대 히트를 치자 그녀에게 전략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호다카는 자신의 아이를 낙태하기까지 한 나미오카 준코가 거치거리자 그녀에게 별다른 설명도 없이 버렸고, 뒤늦게 호다카의 결혼 사실을 알게 된 나미오카 준코가 호다카의 집을 찾아온 것이다.

호다카는 스루가를 시켜 그녀를 따돌리지만, 결국 그날 나미오카 준코는 다시 호다카의 집을 찾아와 유서를 남긴 채 음독자살하고 만다. 호다카와 스루가는 나미오카 준코의 시체와 유서를 그녀의 맨션으로 옮긴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음 날 결혼식장으로 간다. 하지만 버진 로드를 먼저 걸어가던 호다카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진 후 사망하고 만다. 사인은 나미오카 준코와 마찬가지로 초산 스트리크닌 중독, 그가 상용하던 비염약이 바꿔치기 당한 것이 틀림 없었다.

 

비염약을 바꿔치기 할 수 있는 인물은 다카히로, 미와코, 스루가, 유키자사 이상 네 명이지만 미와코에게는 별다른 동기가 없으니 사실상 셋 중 한 명이 범인이다. 먼저 다카히로는 여동생을 다른 남자, 즉 호다카에게 시집 보낼 것을 괴로워한 것이 동기이다. 스루가의 경우에는 애초에 나미오카 준코와 좋아 지냈으나 그녀가 호다카를 만난 후 그를 사랑하다가 결국 비참하게 버림 받았기 때문에 원한을 품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유키자사 가오리는 호다카의 편집 담당이었던 시절에 그와 사귀었으나 역시 버림 받은 전력이 있었다.

 

가가 교이치로는 이들 세 명의 행적을 면밀히 조사해 각각의 동기와 기회가 어떻게 범행으로 이어지려 했는지를 말한다. 나미오카 준코의 집에 시체를 옮기러 간 스루가는 그녀가 만든 초산 스트리크닌 비염약을 훔쳐 냈고, 유키자사 가오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카히로는 우연히 나미오카 준코가 약을 바꿔치기 하는 장면을 발견하고 약을 훔쳐낸다.

스루가는 다카히로가 호다카에게 증오심을 품고 있음을 알고 그를 협박해 약을 바꿔치기 하도록 강요했고, 유키자사 가오리는 스루가의 증오심을 이용해 그가 약을 바꿔칠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들이 훔쳐낸 약들은 모두 사용되지 않은 채 다시 발견되었고, 그들 모두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가가 교이치로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며 범인을 지목한다. 호다카의 필케이스에는 지금 이곳에 없는 사람의 지문이 찍혀 있고, 그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 바로 당신이 범인이다.

 

내가 좋아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시리즈이다. 하지만 용의자들의 1인칭 시점을 교차하며 소설이 전개되기 때문에 다른 가가 시리즈 처럼 가가 형사의 매력이 발산되는 작품은 아니다.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와 마찬가지로 모든 단서를 제공하고 난 후 독자에게 직접 범인을 맞추어 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고, 니시가미 신타의 <추리 안내서>를 봉인된 부록으로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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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타의 매 열린책들 세계문학 63
대실 해밋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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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은 길고 뼈가 불거진 데다 끝 부분이 튀어나와서 V자 모양을 이루고 그 위에 자리 잡은 입 또한 V자, 휘어진 두 개의 콧구멍도  작은 V를 그리고 숱 많은 눈썹과 갈색 머리카락까지 V자를 이루는 새뮤얼 스페이드는 전체적으로  유쾌한 금발의 악마 같은 인상을 한 탐정이다.

어느 날 비서 에피 페린이 젊고 아리따운 아가씨가 사건을 의뢰하러 왔다고 전하자 스페이드는 반색을 하며 반긴다. 의뢰인은 그녀의 여동생이 플로이드 서스비라는 불량한 남자에게 걸려들어 집을 나갔다며 그를 미행해 여동생의 행방을 알아내 주길 원한다. 스페이드는 고액의 수수료를 받은 후 동업자 마일스 아처로 하여금 서스비를 미행하도록 한다.

하지만 그날 밤, 마일스 아처가 권총에 맞아 살해당했다는 전화가 걸려오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서스비 역시 호텔 앞에서 총에 맞아 숨진다.

경찰은 스페이드를 살인 혐의로 몰아간다. 마일스의 경우 그의 아내 아이바가 스페이드와 불장난을 하다가 최근에는 이혼을 요구하는 등 치정이 얽혀 있었고, 서스비의 경우에는 동료를 살해한 범인을 스페이드가 직접 단죄한 것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의 추궁에서 어찌어찌 벗어난 스페이드는 여자가 의뢰한 사건의 이면에 뭔가 다른 것이 있음을 직감한다. 그즈음 스페이드는 자신을 미행하는 자가 있음을 알게 된다.

한편 스페이드의 사무실에 또 다른 의뢰인이 나타나는데 그는 조엘 카이로라는 자로 매 조각상을 찾아주면 5천 달러라는 거금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의뢰인 거트먼이 나타난다. 거트먼은 조엘 카이로가 제시한 금액보다 훨씬 높은 금액을 제시하며 매 조각상이 무엇인지도 알려준다.

 

예루살렘의 성 요한 기사단은 1523년 슐레이만 대제가 자신들을 로도스 섬에서 쫓아내자 크레타 섬으로 가서 1530년까지 지내다가 카를 황제를 설득하여 몰타, 고조, 트리폴리를 달라고 한다. 카를 황제는 몰타가 아직 스페인의 지배에 있다는 표시로 황제에게 매년 매 한 마리를 공물로 바치라는 조건을 내걸며 그들의 요구를 들어준다.

기사단은 해적질과 약탈로 엄청난 부를 거머쥐자 온갖 보석을 박아 넣어 공물로 바칠 매를 제작한다. 하지만 매는 운송 중 해적에게 약탈 당해 스페인에 닿지 못하고, 그 후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뀐다. 그 와중에 매의 가치를 정확히 모르던 자들의 손을 거치며 검은색 도료와 에나멜이 덧칠 되었고 현재는 그저 검은색 매 조각상이 되었다.

 

거트먼은 이 매의 가치를 알게 된 후 17년간 추적해온 자였고, 브리지드 오쇼네시 역시 매와 관련된 인물이었다.

 

얼마 후 스페이드의 사무실로 거구의 사내가 방문한다. 사내는 사무실로 들어서자 마자 꾸러미를 안은 채 쓰러져 죽고 만다. 꾸러미를 풀어보니 몰타의 매가 들어있었다. 거구의 사내는 브리지드 오쇼네시가 맡긴 매를 운송해준 선장이었다. 그리고 실종된 브리지드 오쇼네시로부터 도움을 청하는 전화를 걸려온다.

브리지드 오쇼네시가 말한 장소에는 거트먼과 조엘 카이로, 그리고 스페이드를 미행하던 젊은 총잡이가 있었다. 총구에 둘러싸인 스페이드는 태연하게 거트먼과 협상을 진행시켜 나간다. 스페이드는 거트먼에게 기꺼이 몰타의 매를 돌려주고 소정의 수고비를 받을 의사가 있으나 문제는 세 건의 살인이라며 희생양이 필요하다고 거트먼을 어른다. 경찰은 사건의 진실에 아주 근접해 있는데 희생양을 던져준다면 어떻게든 단순 살인사건으로 귀결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어물쩡 넘어가려 했다가는 몰타의 매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까지 모두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것이라 말하는 스페이드의 말에 거트먼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자 그들 사이에 미묘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젊은 총잡이는 자신이 희생양으로 경찰에 넘겨질 것이라는데 분개한다.

거트먼은 매가 진짜인지 파악하는 것이 먼저라며 매를 칠을 벗겨보는데 매는 가짜로 드러난다. 거트먼 일당은 자신들이 운송해온 매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화를 내며 떠나고, 스페이드는 거트먼에게 경비 명목으로 천 달러를 받는다.

 

그들이 떠난 즉시 경찰에게 신고를 한 스페이드는 브리지드 오쇼네시에게 말한다. 마일스 아처는 맘에 들지 않는 자였고 동료로서도 형편 없었지만 서스비에게 당할 만큼 얼간이도 아니었다고. 브리지드 오쇼네시는 스페이드의 사랑에 희망을 걸지만 스페이드는 매몰차게 브리지드 오쇼네시를 경찰에 넘긴다. 경찰은 스페이드에게 거트먼이 젊은 총잡이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알려주고, 에피 페린은 아처의 아내 아이바가 사무실에 찾아왔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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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실 해밋을 알게 된 것은 그의 소설이 아니라 사회과학 책에서였다. 매카시즘의 광풍에 희생된 사람들을 거론하는 구절에 작가 대실 해밋이 있었는데 그가 어떤 책을 썼는지는 몰랐었다. 그러다가 레이먼드 챈들러, 로스 맥도널드를 알게 되면서 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가 바로 대실 해밋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필립 말로와 루 아처는 물론이고 가깝게는 오사와 아리마사의 사메지마 등이 모두 스페이드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인물들이다.

대실 해밋은 실제로 미국 최대 탐정 회사인 핑커턴에 근무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냉혹한 탐정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1920년대는 밀주법 시대였고 미국 독자들은 범죄의 낭만적 속성에 매료되었다.

대실 해밋이 작가 활동을 한 것은 그리 길지 않고 그의 행보도 언뜻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그는 1934년 마지막 소설을 발표한 후 영화 작업에 몰두했고, 1940년대에는 정치에 몰두해 공산당 활동을 하다가 매카시즘의 광풍 아래 옥살이를 한다. 1942년에는 사병으로 재입대해 세계대전에 참전하는가 하면, 제대 후에는 제퍼슨 사회과학 대학에서 추리소설 작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소설 속에는 액자 속 이야기가 하나 나온다. 한 사내가 아내와 아이들을 둔 채 홀연히 사라진다. 그가 사라져야할 어떤 이유도 없었고, 막대한 재산도 그대로였기 때문에 아내는 남편이 사라진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내는 탐정에게 남편을 찾아달라고 의뢰했는데 사라진 남편은 성만 바꾼채 다른 곳에서 이전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었다. 사라진 이유를 묻는 탐정에게 사내는 말한다. 어느 날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공사장에서 무엇인가 떨어져 보도를 박살내는 것을 보았는데 '누군가 인생의 어두운 문을 열고 그 안을 보여 준 것 같다' 고 느꼈다고 했다. 그 길로 외부의 강요에 의해 좋은 남편이고 아버지이길 버리고 자발적으로 다른 삶을 택했다고 했다.

 

대실 해밋은 조스에게 이 작품을 헌정하고 있는데 해설자에 의하면 조스는 대실 해밋의 아내 조세핀으로 그녀와 해밋은 작품을 쓸 당시 별거중이었고 끝내 재결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작품을 헌정한 이유는 어쩌면 액자 속 이야기에서 유추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200433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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