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잡상인 - 2009 제3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우승미 지음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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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이었다고는 하지만 딱 한 차례 방송에 출연해 대사 한 마디 해본 게 전부인 철이는 커오는 후배들에게 밀려 개그맨을 그만둔 후 만화방에서 시간을 보낸다. 만화방 대여료와 중국집 외상값이 점점 불어나자 철이는 할머니 조지아 여사의 소개로 지하철 잡상인계의 판매왕 미스터 리를 소개 받게 된다. 그는 감색 양복에 선글라스를 끼고 어눌한 말투로 물건을 팔았는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그의 물건을 홀린 듯 사갔다. 철이도 미스터 리의 사사를 받은 후 칫솔을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벌이는 신통치 못했다.

겨우 칫솔 하나를 팔아 천원을 번 어느 날, 지하철에서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할 뿐 아니라 지금은 아이까지 임신해서 몹시 힘들다는 내용의 종이 쪽지를 돌리던 수지를 만난 철이는 번돈 천원을 고스란히 그녀에게 주고 만다. 그리고 그날 이후 철이는 수지의 모습이 아슴하게 눈에 밟힌다. 다시 수지를 만난 철이는 그녀에게 하루 매상을 온전히 줄테니 바람잡이를 해달라고 제안하고 2인 1조가 된 둘은 십만원을 넘는 매상을 올린다. 그녀는 그 돈으로 New Trolls의 공연 티켓을 산다. 듣지 못하는 수지가 콘서트 티켓을 산 것을 의아해하자 그녀는 소리는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들을 수도 있다고 항변한다. 그리고 그 말대로 그녀는 벤치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New Trolls의 음악을 들었다.

수지는 동화를 그려 생계를 꾸려갔는데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하지는 못했고 다른 작가가 수지의 그림을 리터칭하여 사용했다. 수지는 자신의 처지가 비참하게 생각되면 지하철에 나와 그렇게 '수치심'을 파는 행동을 함으로서 삶을 견디고 있었다.

수지는 자신보다 더 장애가 심한 동생 효철과 함께 살았는데 효철은 듣지도, 말하지도, 보지도 못했다. 또 효철에게는 왕싸가지 여자친구 지효가 있었는데 똑부러진 성격이 철이와 잘 맞지 않았다. 어쨌거나 철이는 수지네 집에 놀러가서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았고 남는 시간에 지효에게 수화와 점자를 배우기도 한다. 

수지의 뱃속에 있는 아이의 아빠가 되기로 결심한 철이는 수지를 조지아 여사에게 데려가 소개시키고, 조지아 할머니는 마냥 수지의 달덩이 같은 배를 쓰다듬는다. 철이는 수지의 살갗으로 솟구치는 아이의 앙증맞은 발을 만지며 세상 모든 것들을 다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지하철 잡상인이라는 흥미로운 소재와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인상적인 소설이다. 다만 호흡이 짧은 것이 흠이다. 항상 이런 류의 소설을 읽을 때면 '판타지'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삶에 대한 작가의 믿음이나 바램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서 작품이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작가가 바라는 모습으로 등장 인물들이 행동하기 시작하여 결국 현실에 대한 왜곡이 일어난다면, 그것도 일종의 '판타지'가 아닐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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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스 - 2010년 퓰리처상 수상작
폴 하딩 지음, 정영목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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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워싱턴 크로스비는 죽기 여드레 전부터 환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거실 한가운데 놓인 빌려온 병원 침대에 누워 천장 회반죽에 생긴 상상의 균열로 벌레들이 빠르게 들락거리는 것을 보았다.

 

조지는 자신이 이제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가족들 역시 그 사실을 알기에 조지의 주변에서 임종을 지키기 위해 머물고 있다. 그는 은퇴한 후에 시계를 고치며 살았고, 꽤 많은 돈을 여러 은행에 예치해 두었다. 가족들에게 예치한 돈의 액수를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고, 가지고 있는 시계 콜랙션의 가치도 평가절하하여 일러 두었다.

죽음이 다가올수록 조지의 기억은 과거로 치닫는다. 조지의 아버지 하워드는 마차에 잡화들을 싣고 오지 마을을 돌았다. 하워드는 간질병이 있었다. 간질병이 지나갈 때 하워드는 번개를 맞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아내는 언제나 조용히 하워드의 간질 발작을 처리했기에 하워드는 아내가 자신의 병을 감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하워드가 아이들 앞에서 발작을 일으킨다. 하워드가 혀를 깨물지 못하도록 조지가 돕는 과정에서 손을 깨물린다. 하워드의 아내는 의사와 상담한 후 받아온 정신병원 브로슈어를 하워드가 볼 수 있도록 놓아둔다. 브로슈어를 본 하워드는 자신이 지금까지 아내에 대해 잘못 생각해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날로 집을 떠나 다른 고장으로 가서 전혀 다른 삶을 시작한다.

이제 하워드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생각한다. 하워드의 아버지는 목사였는데 무언가를 적으며 많은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노력들이 거듭 될수록 설교는 형편 없어졌다. 설교를 하면서 범신론적인 관점을 웅얼거리는 것까지도 좋았다. 어느 날 악마에 대해서 관용적인 발언을 한 후 그는 목사의 직을 계속 유지할 수 없게 된다. 하워드의 아버지, 즉 조지의 할아버지는 그 후로 점차 존재감이 희미해져 간다.

조지가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기억한 것은 1953년 크리스마스 저녁식사였다. 그날 사라졌던 조지의 아버지 하워드가 조지를 방문했었다. 하워드는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만나서 반가웠다고 말한 후, 떠나는 게 좋겠다면서 곧 돌아갔다. 그 기억을 끝으로 조지는 사망한다.

 

조지가 병원에서 빌려온 침대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순간이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동양에서 일컫는 오복(五福) 중 하나가 고종명(考終命)이다. 천명(天命)을 다 살고 죽는 것이 바로 그것이니 조지는 고종명을 누렸다 할 수 있고, 주변을 정리할 시간도 누린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죽음을 기다리는 순간에는 누구를 떠올리게 될까? 작가 폴 하딩은 아버지를 떠올릴 것이라 가정하고 소설을 시작한다. 왜 아버지일까? 보통은 어머니가 아닐까? 게다가 조지의 아버지 하워드는 간질병 환자로 조지의 손을 나무토막 대신 깨문 후에는 가출하는 등 살갑고 정겨운 존재가 아니었다. 그런데 조지가 죽기 직전 떠올린 것이 그의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조우했던 크리스마스의 기억이었다는 것은, 조지의 무의식 영역에서 죽기 전 어떤 식으로든 아버지와 정식으로 작별 인사를 해야 한다는 부채의식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가출했고, 다시 찾아왔을 때에도 곧 서둘러 떠나갔으므로.

죽음과 환상, 기억에 대한 명상적 이미지들이 환상적인 이 작품은 폴 하딩의 처녀작이고 퓰리처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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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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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Jimi Hendrix Live At Woodstock> 비디오 클립을 우연히 보았는데 그 연상작용 때문이었는지 박민규의 <카스테라>를 주말 동안 읽게 되었다. 언젠가 <카스테라>가 지미 헨드릭스의 앨범 <Are You Experienced?> 와 같은 열 개의 트랙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써놓은 것을 봤기 때문이다. 작가는 여기에 수록된 대부분의 단편이 연극배우나 기타리스트, 소설가 등 지인에게 헌정하기 위해 쓰여졌다고 밝히고 있다. 

 

박민규의 소설을 읽을 때면 언제나 자연스럽게 고개를 드는 두 가지 질문이 있다.

 

첫번째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우리나라 젊은 소설가들에게 미친 영향력과 모방에 대해서 동종 업계 종사자들이 왜 함구하는가 이다.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체 역시 독창적이라기보다는 그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이 레이먼드 챈들러에게서 빌어온 것이니 비단 '하늘 아래 새로울 것은 없다' 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할 말은 없다.

어쨌거나 박민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체뿐만 아니라 분위기도 노골적으로 차용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개구리군, 도쿄를 구하다>를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의 소설들이 작품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이외수(그가 소설가로 자처할 수 있는 시효는 몇십년 전에 끝났거나 애초에 없었다고 생각하지만)나 김영하는 박민규의 독창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두번째 의문은 박민규는 68년생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들에서는 73~75년생 정도의 문화적 코드를 드러내고 있다. 그것이 전략적인 것인지, 아니면 특수한 사정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지만 흥미로운 부분이다.

 

수록된 열 개의 단편은 모두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 다른 점이라면 하루키 소설에서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 자체가 모호한 반면, 박민규는 언제나 현실로 되돌아오기 위한 환상을 그린다는 점이다. 그의 환상은 현실에 대한 오마쥬로서의 환상이다.

박민규 소설에 나오는 젊은이들은 어떤 '전형'은 될지언정 '전망'을 그리는 인물들은 아니다. 하지만 그 점 덕분에 박민규 소설에 우호적인 독자가 많은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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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시스터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5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하우스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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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말로의 사무실에 오파메위 퀘스트라는 아가씨가 찾아와 오빠 오린 퀘스트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녀는 촌스러웠고, 돈이 별로 없었으며, 청교도적인 도덕에 얽매인 아가씨였다. 말로는 20달러에 그녀의 의뢰를 받아들인다.

오린이 마지막으로 살았던 아파트에 도착한 말로는 그곳이 마약 거래와 관련된 장소임을 알게 된다. 돈을 세고 있던 똘마니를 쫓아낸 후 오린의 방에 올라가봤지만 그는 이미 어딘가로 사라진 뒤였다. 대신 엉뚱한 자가 오린의 방에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힉스였다. 적당히 겁을 준 후 내려와보니 관리인이 얼음송곳에 뒷목을 찔려 죽어 있었다.

얼마 후 말로의 사무실에 햄블턴 박사라고 자칭하는 자가 전화를 걸어온다. 그는 무언가 말로에게 맡길 것이 있다면서 100달러를 제시한다. 말로는 햄블턴 박사가 힉스임에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그가 묵고 있는 호텔로 간다. 하지만 그 역시 시체로 발견된다.

현장에서 한 여성이 얼굴을 가린 채 빠져나가려다가 말로와 맞닥뜨린다. 그녀는 말로를 권총으로 위협한 후 사라진다. 말로는 그녀가 자신에게 총을 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범인은 따로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온통 어질러진 현장을 보고 그들이 힉스에게서 무언가 찾으려 했음을 알고 힉스의 가발에서 사진 보관증 하나를 찾아낸다.

찾아온 사진에는 더 댄서스라는 식당에서 식당 주인 스틸그레이브와 유명 여배우 메이비스 웰드가 식사하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말로는 스틸그레이브가 들고 있는 신문을 자세히 관찰한 후 그 사진이 스틸그레이브를 곤란에 처하게 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얼마 전 범죄 조직의 두목 서니 모 스타인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위피 모이어가 유력한 용의자였지만 그는 경찰에 의해 체포당해 있었으므로 알리바이가 완벽했다. 위피 모이어가 스틸그레이브로 행세하는 것이 분명했는데, 그 사진에 찍인 신문 날짜는 공교롭게도 모 스타인이 살해당한 날이었다. 따라서 그 사진은 위피 모이어(=스틸그레이브)의 알리바이를 깨는 증거였던 것이다.

 

소설은 반전을 거듭한다. 오파메이 퀘스트의 가면이 벗겨지고, 메이비스 웰드가 오파메이의 언니라는 것이 밝혀지며, 돌로레스 곤잘레스가 행한 범죄가 드러난다. 그래서 소설을 끝까지 읽기 전에는 각각의 범죄를 행한 사람이 누군지 알기 어려운데, 끝까지 읽더라도 모호함은 남는다. 레이먼드 챈들러 식의 결말이다.

레이먼드 챈들러가 남긴 6권의 말로 시리즈 중 다섯 번째 작품인 <리틀 시스터>는 챈들러가 헐리우드에 뛰어든 이후에 쓴 작품이다. 영화 속 헐리우드는 비정하고 추악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말로는 노쇠하고 체념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빅 슬립>에서 시종 일관 경쾌한 농담을 주고 받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리틀 시스터>는 <말로우(Marlowe)>라는 이름으로 1969년에 영화화 되었다. 폴 보가트가 감독이고 제임스 가너가 말로우 역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출연진에 이소룡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소룡은 이 작품에서 말로가 조사를 그만두도록 종용하는 깡패 역으로 나온다고 한다.

또 한가지 일화로 레이먼드 챈들러가 헐리우드에 뛰어들어 제일 처음 했던 작업이 제임스 M.케인의 <이중배상> 각본 작업이었다고 한다. 레이먼드 챈들러는 제임스 M.케인을 매우 노골적으로 싫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케인이 만지는 것은 하나같이 숫산양처럼 냄새가 아주 지독합니다. 그는 내가 싫어하는 작가의 모든 점을 갖추고 있지요. 얼렁뚱땅 넘어가버리는 순진성, 기름 냄새 나는 작업복을 입은 플루트 연주자......그런 인간은 한마디로 문학의 비곗덩어리입니다. 더러운 것을 쓰기 때문이 아니라, 더러운 것을 아주 더럽게 쓰기 때문이죠'

 

이와 같은 지독한 험담을 했으나 막상 돈을 위해 헐리우드에 뛰어든 뒤에는 그의 작품을 각본화 했고, 좋은 평을 얻는다. 제임스 M.케인 역시 만족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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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를 보는 남자
임영태 / 랜덤하우스코리아 / 199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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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은 아내와 헤어진 후 비디오 대여점을 차려 '열심히' 사는 것은 아니지만, '충일함' 이 있는 삶을 사는 남자이다.

비디오 가게는 안산 초입에 간판도 없이 덩그러니 있었지만 경쟁 업체가 없어 그럭저럭 밥벌이는 되었다. 비디오 가게에는 사흘 돌이로 한번씩 '소주 사먹게 삼백원만' 달라는 거지가 출근했고, 때로는 일탈을 꿈꾸며 '문화 비디오'를 틀어 달라며 유혹하는 아줌마도 출입한다. 비디오 테이프를 죽자고 반납하지 않던 카페 여종업원은 술값으로 비디오 테이프를 변상하려 하는가 하면 한밤중에 깡패들로부터 도망쳐오는 대학생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날 비디오 반납기에 비디오테이프 대신에 편지가 들어 있었다. 편지는 남자를 향한 연서였다. 연서는 어느 순간 남자의 참여를 종용했다. 편지를 읽은 것이 틀림 없다면 파란색 종이를 문에 붙여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남자는 편지가 끊기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파란색 종이를 붙인다. 

다음 번 편지에는 무선호출기번호와 이름만 적혀 있었다. 호출기 번호로 연락을 할 마음까지는 없었던 남자가 어느날인가 혼자 술을 마시다가 노래방에 간다. 그곳에서 노래를 부르다 울컥한 마음이 든 남자가 호출기로 연락을 하고 여자와 안양에서 만나게 된다. 여자는 단아함이 베어 있었는데 단아함이 절제에서 비롯된다고 할 때 그 여자가 절제해 온 것은 삶의 일탈에 대한 절제와 고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운명과 같은 일탈을 꿈꾼 것인지도 모른다. 여자는 남자에게서 운명을 느꼈다고 생각했기에 편지를 보냈을 터였다. 그날 밤 남자는 여자와 하룻밤을 보낸다. 여자는 남편과 아이가 있었다.

그날 헤어질 때 남자는 여자가 다시는 자신을 만나지 않을 것이라 느낀다. 이유가 무얼까 고민하던 중 남자는 자신의 삶에 '충일함' 이 있기 때문에 일탈이나 모험이 요구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깨닫는다. 여자가 원하는 '운명'과 자신의 '충일함'은 함께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며칠 후 갑작스러운 치기에 남자는 여자의 호출기에 가게 번호를 남긴다. 잠시 후 걸려온 전화는 '가게 문이 아직 열렸는지' 묻는 손님의 전화였다. 얼마간 기다리던 남자는 가게 셔터문을 닫는다. 가게 안에서 다시 전화가 울린다. 남자는 보나마나 '가게 문이 열려있는지 묻는' 전화일 것이라 애써 생각한다.

 

임영태의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를 읽으면서 포복절도했던 기억이 난다. 군 제대 후 이렇다할 직장도 없는 세 명의 반건달 이야기였는데 내가 대학에 입학할 당시 잠깐 얹혀 살았던 자취방의 풍경이었다. 그 자취방에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였던 세 명의 반건달들이 어엿한 성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청소년은 더더욱 아닌 상태로 삶을 희롱하고 있었다. 그 세명의 반건달들이 살던 자취방에 나는 대학 입학 전까지 한달을 얹혀 살았다. 큰형과 큰형의 친구들이었다.

<비디오를 보는 남자>를 읽으면서도 나는 크게 웃었다. 꼭 그 대목에서 웃으라고 작가가 써놓은 글이 아니었는데 그냥 포복절도했다. 삼류 주간지 기사가 온통 말초적이고 적나라한 내용인데도 끝에 가서는 꼭 한 마디는 일장 훈시를 붙여 놓았다는 대목이다. 이를테면 사촌 형제가 작당을 하고 지나가던 여자를 성폭행 했다는 기사 끝에,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살기 힘들지라도 지킬 것은 지키고 옳지 않은 일은 서로 충고해 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마무리가 된다는 식인데, 주간지 기사가 죄다 그런식이라서 '해야 하지 않을까?' '해야 하지 않을까?'로 끝난다. 남자가 '너나 잘 해라!' 하는 대목에서 나는 뭐가 웃기냐고 물어보면 딱히 답변할 말이 없는데도 혼자 박장 대소를 했다. 임영태의 소설은 그런 대목이 있다. 뭔가 나를 웃기게 만드는.

고열은 가라앉았는데 목은 여전히 부어 올라 잠이 오질 않는다. 회사에 나가야 하는데 소견서에 떡 하니 '5일 이상의 격리 유지' 라고 쓰여 있어 부쩌지를 못하겠다. 한 이틀만 지내보고 증상이 가라 앉으면 마스크 쓰고 가서 견뎌 보는 수밖에. 

http://blog.naver.com/rainsky94/80207548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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