팅커스 - 2010년 퓰리처상 수상작
폴 하딩 지음, 정영목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조지 워싱턴 크로스비는 죽기 여드레 전부터 환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거실 한가운데 놓인 빌려온 병원 침대에 누워 천장 회반죽에 생긴 상상의 균열로 벌레들이 빠르게 들락거리는 것을 보았다.

 

조지는 자신이 이제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가족들 역시 그 사실을 알기에 조지의 주변에서 임종을 지키기 위해 머물고 있다. 그는 은퇴한 후에 시계를 고치며 살았고, 꽤 많은 돈을 여러 은행에 예치해 두었다. 가족들에게 예치한 돈의 액수를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고, 가지고 있는 시계 콜랙션의 가치도 평가절하하여 일러 두었다.

죽음이 다가올수록 조지의 기억은 과거로 치닫는다. 조지의 아버지 하워드는 마차에 잡화들을 싣고 오지 마을을 돌았다. 하워드는 간질병이 있었다. 간질병이 지나갈 때 하워드는 번개를 맞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아내는 언제나 조용히 하워드의 간질 발작을 처리했기에 하워드는 아내가 자신의 병을 감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하워드가 아이들 앞에서 발작을 일으킨다. 하워드가 혀를 깨물지 못하도록 조지가 돕는 과정에서 손을 깨물린다. 하워드의 아내는 의사와 상담한 후 받아온 정신병원 브로슈어를 하워드가 볼 수 있도록 놓아둔다. 브로슈어를 본 하워드는 자신이 지금까지 아내에 대해 잘못 생각해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날로 집을 떠나 다른 고장으로 가서 전혀 다른 삶을 시작한다.

이제 하워드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생각한다. 하워드의 아버지는 목사였는데 무언가를 적으며 많은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노력들이 거듭 될수록 설교는 형편 없어졌다. 설교를 하면서 범신론적인 관점을 웅얼거리는 것까지도 좋았다. 어느 날 악마에 대해서 관용적인 발언을 한 후 그는 목사의 직을 계속 유지할 수 없게 된다. 하워드의 아버지, 즉 조지의 할아버지는 그 후로 점차 존재감이 희미해져 간다.

조지가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기억한 것은 1953년 크리스마스 저녁식사였다. 그날 사라졌던 조지의 아버지 하워드가 조지를 방문했었다. 하워드는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만나서 반가웠다고 말한 후, 떠나는 게 좋겠다면서 곧 돌아갔다. 그 기억을 끝으로 조지는 사망한다.

 

조지가 병원에서 빌려온 침대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순간이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동양에서 일컫는 오복(五福) 중 하나가 고종명(考終命)이다. 천명(天命)을 다 살고 죽는 것이 바로 그것이니 조지는 고종명을 누렸다 할 수 있고, 주변을 정리할 시간도 누린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죽음을 기다리는 순간에는 누구를 떠올리게 될까? 작가 폴 하딩은 아버지를 떠올릴 것이라 가정하고 소설을 시작한다. 왜 아버지일까? 보통은 어머니가 아닐까? 게다가 조지의 아버지 하워드는 간질병 환자로 조지의 손을 나무토막 대신 깨문 후에는 가출하는 등 살갑고 정겨운 존재가 아니었다. 그런데 조지가 죽기 직전 떠올린 것이 그의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조우했던 크리스마스의 기억이었다는 것은, 조지의 무의식 영역에서 죽기 전 어떤 식으로든 아버지와 정식으로 작별 인사를 해야 한다는 부채의식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가출했고, 다시 찾아왔을 때에도 곧 서둘러 떠나갔으므로.

죽음과 환상, 기억에 대한 명상적 이미지들이 환상적인 이 작품은 폴 하딩의 처녀작이고 퓰리처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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