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밀란 쿤데라 전집 9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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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샹탈은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잃은 뒤 이혼하고, 현재는 애인 장마르크와 살고 있다. 광고회사에 다녔는데 회사에서는 평상시와 달리 까탈스럽게 굴었다.

어느 날 노르망디에 있는 호텔에서 하룻밤 머물기 위해 갔다가 자신이 이제 더 이상 남자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샹탈은 그와 같은 깨달음을 장마르크에게 이야기한다. 장마르크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기분이 상한다. 그렇다면 자신은 남자들에게서 시선을 받지 못하고 있는 여자에 집중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샹탈의 우편함에 익명의 편지가 배달된다. 우표가 붙어 있지 않은 편지에는 한 남자가 샹탈을 스파이처럼 따라다닌다며 연정을 고백하는 내용이 씌여 있었다. 샹탈은 이 편지를 하나의 해프닝으로 취급할 수도 있었지만 자기도 모르게 옷장의 브래지어 밑에 보관한다. 편지가 또다시 배달된다. 샹탈은 편지에 씌여 있는 내용에 자극 받아 붉은색 잠옷을 사고, 그날밤 장마르크는 다른때보다 성적으로 흥분된다. 샹탈은 집 주변의 몇몇 사람을 편지의 발신인으로 짐작하고 그들의 시선을 의식하지만 몇 번의 테스트로 전혀 오해였음이 밝혀진다. 

그러다가 편지의 필체에서 문득 장마르크의 흔적을 발견한다. 필적 감정 결과는 의심을 사실로 확인해준다. 그날 뜬금 없이 시누이가 아이 셋을 데리고 샹탈의 집을 방문한다. 아이들은 샹탈의 개인적인 공간을 마구 헤집어댔고, 옷장 속에 넣어 놓은 편지도 끄집어낸다. 화가난 샹탈은 시누이를 쫓아내고, 시누이를 집안에 들인 장마르크에게도 자신의 집에 더부살이하는 형편이 아니냐며 면박을 준다. 샹탈은 영국으로 가리라 말한다. 그리고 집을 나선다.

장마르크는 샹탈의 말이 사실이라는 데 생각이 미쳐 아파트 열쇠를 놓아둔 채 떠나기로 결심한다. 장마르크는 자신이 동네에서 구걸하는 거지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처지라고 생각한다. 고민하던 장마르크가 충동적으로 샹탈을 다시 만나기 위해 영국으로 간다. 과거에 영국인이 샹탈을 유혹한 적이 있었는데 샹탈은 그 노회한 바람둥이를 만나러 간지도 몰랐다. 

샹탈은 영국에 도착한 뒤 바람둥이에게 전화를 걸어 난교에 참가한다. 왠일인지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그곳에서 샹탈은 벌거벗은 채 집 밖으로 나가려 하지만 문은 모조리 잠겨 있었고, 어디가 출구인지도 알 수 없었다. 문은 계속 못질이 되고 있었다. 샹탈은 창을 열고 장마르크를 애타게 찾는다. 장마르크는 마침 그 집 앞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장마르크가 샹탈을 깨운다. 현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장마르크의 말에 샹탈은 누가 꿈을 꾸었는지, 어느 순간부터 현실 속 삶이 이런 뻔뻔한 환상으로 변형되었을지, 사실이 몽상으로 변했던 정확한 순간은 언제이며 그 경계선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한다.

 

소설은 크게 샹탈이 아이를 잃은 과거의 사건과 장마르크가 익명으로 보낸 현재의 편지 사건을 축으로 진행된다. 

아이를 잃은 샹탈이 아이를 회상하며 슬픔에 잠기리라는 독자의 상식과 달리 샹탈은 아이를 잃음으로 인해 자신이 세계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고 도리어 아이의 부재로 인해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한다. 급기야 아이를 잃은 것이 역설적으로 선물이 되었다고까지 느낀다.

한편 편지의 발신인이 익명이었을 때 샹탈은 그 상황을 일견 즐기는 듯 보이나 사실은 장마르크가 보낸 편지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다. 편지의 내용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발신인이 누구인지에 따라 편지의 영향력이 달라진 것이다. 소설 초입에 장마르크는 샹탈의 외모를 매우 늙은 어떤 여자의 모습과 착각하기도 한다. 

작가는 작품 말미에 샹탈과 장마르크가 다시 재회하도록 한 후 편지사건과 그 이후 영국행, 그리고 난교에 참석한 것 중 특정 부분부터는 꿈이라고 암시한다. 그리고 꿈이 어디서부터인지는 알 수 없도록 처리했다. 정체성 자체가 사실은 꿈과 환상, 그리고 현실의 경계 어디쯤인가에 존재하는 모호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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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처럼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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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할아버지의 1주기를 맞아 도리고에 집안 식구들이 모두 모인다. 도리고에 집안의 손자는 모두 다섯인데 모두들 할머니의 '괜찮아 오오라' 덕분에 사춘기를 무사히 넘긴 경험을 갖고 있다. 부모님께 혼이 나면 할머니 집으로 도망을 갔고, 고민이 생겼을 때 그저 할머니 곁에만 있어도 어찌어찌 해결이 되는 기억들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 할머니가 최근 의기소침해진 듯 하자 손자들이 할머니를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한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영화를 보고 무척 즐거웠다는 얘기에 힌트를 얻어 구민회관을 빌려 그당시 할머니가 보았던 영화 <로마의 휴일>을 상영하기로 한다. 어렵사리 셀룰로이드 35밀리 필름을 구하고, 손으로 직접 포스터를 그려 붙이기도 한다. 동네사람들에게도 개방하였는데 뜻밖에 반응이 좋아 객석이 만원이 된다. 함께 옛날 영화를 보며 웃고, 박수치고 하는 사이 할머니의 '괜찮아 오라'는 완벽하게 부활한다. 

 

책에 수록된 단편들은 제일 마지막에 실린 <사랑의 샘>을 중심으로 서로 간섭하고 교차한다. 

재일교포를 주인공으로 영화감독이 된 현재의 '나'가 용일과의 우정을 반추하는 <태양은 가득히>, 의약품 부작용에 관련되어 자살한 남편을 둔 여주인공이 비디오가게 아르바이트생이 추천해주는 영화를 보며 다시금 세상에 발을 내딛게 된다는 내용의 <정무문>, 왕따당한 짝 이시오카를 좋아해 그녀의 집안 내력을 듣고 난 뒤 이시오카의 아버지를 납치하는데 가담하는 <프랭키와 자니>, 이혼한 부모를 둔 어린 소년과 남편을 조직폭력배에게 잃고 복수를 결심한 아줌마와의 우정을 그린 <페일 라이더> 가 수록되어 있고, 각각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구민회관에서 상영되는 <로마의 휴일>을 관람하러 온다.

 

<시네마 천국>에 등장하는 마을이야말로 인간이 향수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곳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에 소설 <영화처럼>을 읽으면서 내내 즐겁고 행복한 느낌을 받았다. 더욱 기쁜 사실은 소설에 차용된 영화들 중 <정무문> 외에는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기대감을 갖고 볼 영화 목록이 늘어난 데 대해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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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주드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5
토마스 하디 지음, 정종화 옮김 / 민음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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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모두 사망하여 아주머니 집에 맡겨진 주드는 새 쫓는 일 따위로 푼 돈을 벌며 생계를 돕는다. 주드는 자신을 가르친 은사 필롯슨을 존경했는데, 그가 학문적 성취를 이루기 위해 향한 크라이스트민스터의 대학에 자신도 언젠가는 입학하여 학자나 성직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을의 돌파리 의사로부터 라틴어와 그리스어 독학에 관해 얼핏 들은 주드는 필롯슨에게 도움을 청하는 글을 띄운다.어렵사리 책을 구한 주드는 독학을 시작하지만 그 과정은 눈 뜬 장님이 길을 찾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더디기만 했다.

그러던 중 마을 처녀 아라벨라가 주드에게 눈독을 들인다. 그녀는 천박하고 세속적인 여성이었는데 갖은 계교로 주드를 손아귀에 넣는다. 

아라벨라와 결혼한 주드는 곧 결혼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라벨라 역시 학문에만 관심을 쏟는 주드에게 금세 실증을 느낀다. 둘은 별거에 들어가고, 아라벨라는 가족들과 함께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을 간다.

주드는 잠시 미루어두었던 꿈을 이루기 위해 크라이스트민스터로 떠난다. 그리고 사촌 수 브라이드헤드를 만난다. 아주머니는 무슨 이유에선지 수를 절대 만나선 안된다고 말했지만 주드는 그녀를 만난 후 아주머니의 경고도 잊고 곧 사랑에 빠진다. 서로의 영혼이 공감하며 차츰 사랑에 빠지는 둘 사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하나는 대학들이 빈털털이에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주드의 입학을 불허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절망한 주드가 술을 마시고 수에게 못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수는 자신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필롯슨과 결혼하고 만다.

그러나 수 역시 자신의 결혼에 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곧 깨닫는다. 약속에 얽메어 결혼하기는 했지만 필롯슨과 육체적 관계를 맺지 못하고, 심지어 그를 혐오하는 태도마저 보인다. 몇 달도 견디지 못하고 수는 필롯슨에게 자신을 놓아줄 것을 요청한다. 필롯슨은 결혼이라는 강제적 관습에 그녀를 붙잡아둘 수 없음을 깨닫고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를 보내준다.

다시 만난 주드와 수는 함께 살기는 하되 정식 결혼식은 올리지 못한다. 과거 자신들이 벗어난 결혼이라는 관계 속으로 다시 뛰어들 용기가 없었고, 정형화된 틀에 자신들을 가둘 경우 사랑이 죽어버릴까봐 겁이 났던 것이다. 

그 즈음 아라벨라가 주드에게 난데 없는 편지를 보낸다. 과거 둘이 헤어지기 직전 아라벨라가 임신 중이었는데 오스트레일리아로 가서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다. 그 아이를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돌봐왔지만 이제 사정이 여의치 않아 주드에게 보내니 키워 달라는 것이었다. 주드와 수는 아이를 돌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아이는 어딘지 애늙은이 같은 면이 있었다. 

그 후로 아이가 둘 더 태어난다. 주드와 수는 이곳 저곳 옮겨가며 생계를 꾸린다. 크라이스트민스터로 가서 학자가 되겠다는 꿈은 생활고 때문에 가슴 한켠에 묻어둔 채였고, 주변에서는 끊임 없이 둘이 정식으로 결혼한 사이가 아니라며 쑤군대고 박해했다. 그러던 중 주드가 몸이 아파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경제적으로도 매우 빈곤한 상태가 계속된다. 새로 집을 구하려는 시도는 번번히 아이가 많다거나, 정식으로 결혼한 사이가 아닌 것 같다는 이유로 거절된다. 아라벨라의 아이가 그런 상황에서 자신들이 부모에게 짐이 된다고 판단하여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만다. 어린 동생들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고 만 것이다. 이 사건이 수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하고 만다. 수는 자신이 결혼이라는 제도를 비웃고 교만하게 행동한 탓에 신이 노해 벌을 내린 것이라 생각한다. 종교에 광적으로 메달리던 수는 필롯슨에게 되돌아가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하고 주드의 격렬한 반대와 극심한 고통을 외면한 채 떠나간다. 수는 필롯슨과 두번째 결혼식을 올린다. 반송장이 되다시피 한 주드를 아라벨라가 다시 데려가 결혼식을 올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운 골방에서 주드는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이름없는 주드>는 출간 직후 보수주의자들과 종교계의 강한 반발에 직면한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탓에 능력과 상관 없이 대학 진학의 꿈을 좌절당한다는 설정과, 결혼이라는 제도를 사랑을 압살하는 강제적 계약관계로 묘사하는 부분, 종교적 가르침에 집착하던 수가 필롯슨에게 되돌아가는 상황을 부도덕한 행위로 그린 부분 등이 반발을 일으킨 것이다. 그 결과 평소에도 시를 더 높은 예술적 분야로 여기던 토마스 하디는 이 작품을 끝으로 두 번 다시 소설에 손대지 않았고, 죽을 때까지 시만 썼다고 한다. 

주드가 석공으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익히고, 크라이스트민스터의 대학으로 진학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토마스 하디의 젊은 시절과 흡사하다고 하는데, 실제 토마스 하디의 최종 학력은 고등학교 졸업이다. 

 

소설 속에서 수가 필롯슨에게 떠나기 직전 히스테리 상태에서 주드에게 내뱉는 대사는 매우 섬뜩하다. 

 

"......고삐 풀린 정열보다 더 일부 여성의 도덕심을 무너뜨리는 내면의 욕구가, 남자에게 끼칠 수 있는 해를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의 관심을 끌고 그를 사로잡으려는 욕구가, 발동한 것뿐이었어요. 오빠를 손아귀에 넣은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두려웠어요......"

 

그저 장난으로 시작했는데 주드가 선뜻 딸려들어와 오히려 두려웠고 상황에 의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고백이다. 마치 유부남을 유혹했던 아가씨가 유부남이 이혼하고 자신이 유부남의 행동에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이 오자 한 발 빼는 상황을 연상시킨다. 

결혼이라는 인습 때문에 주드와 수가 고통받고 괴로워하는데, 주드는 수의 변덕과 불가해한 행동들 때문에 이중의 고통을 받는다. 주드는 수에게 못된 여자,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여자라고 토로하고 때로 부도덕한 짓을 하고 있다고 질책하기도 한다. 그녀는 주드와 함께 살면서도 사랑에 대해서는 자기만의 환상을 쫓는다. 그녀의 신경증을 남자인 주드로서는 이해할 도리가 없다. 

필롯슨에게 떠나기 전 횡설수설하는 대목이 어쩌면 그녀가 유일하게 진실을 말하는 부분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아라벨라보다 더한 악녀다. 그녀는 필롯슨에게 떠난 후에도 주드가 찾아오자 키스를 허락한다. 그래놓고도 금새 키스를 중지시키면서 자신이 설정한 역할로 돌아간다. 그녀는 스스로 정한 배역을 연기할 뿐인 것처럼 느껴지고, 그녀가 주드와 함께 살았던 시기의 모든 행동도 거짓처럼 느껴찐다. D.H.로렌스는 "수는 우리 문명이 빚어낸 최상의 산물로, 그녀는 우리를 두렵게 만든다" 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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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교육
로맹 가리 지음, 한선예 옮김 / 책세상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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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트바르도브스키는 아들을 위해 숲 속에 은신처를 마련한다. 얼마 후 독일군들이 악마적인 계획을 실행한다. 폴란드 여성들을 구금한 후 강간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택 외곽에 기관총을 배치하고 기다리면 빨치산들이 무모한 공격을 감행해 올 것이었다. 

몇 차례 의미 없는 공격이 간헐적으로 이어졌고, 빨치산들은 사살 당했다. 트바르도브스키는 저택에 의사면허증 등을 보여주고 들어간다. 그는 왕진 가방에서 총을 꺼내 독일군을 향해 발사한다. 그리고 자신도 죽고 만다. 그의 아내도 저택에 구금되어 있었다.

이제 혼자가 된 열 네살의 야네크는 숲속의 은신처에서 아버지가 남겨 둔 감자 자루와 함께 살아가기 시작한다. 낮에는 빨치산들과 생활했지만 밤에는 은신처로 돌아왔다. 

야네크는 빨치산들의 심부름을 해주다가 쇼팽의 피아노 연주에 매료된다. 야네크는 자신이 음악을 연주하고, 음악을 들으며 평생을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독일군과 음악 덕분에 친해지기도 하지만 그 독일군은 빨치산들이 트럭을 습격할 때 야네크의 눈 앞에서 사살된다.

야네크와 비슷한 또래의 조시아는 독일군에게 몸을 팔고 그들이 외로움에 겨워 털어 놓는 말들을 주워 모아 빨치산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야네크를 만난 후 조시아는 독일군에게 가기를 그만 둔다. 그전에 독일군들과 할 때에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지만 야네크에게서 무언가를 느낀 후에는 독일군에게서도 느낄까봐 두려워했다. 더 이상 독일군에게 몸을 팔아 정보 얻는 일을 하지 않겠따고 말하자 빨치산들은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그녀가 필요할 때 빨치산 중 한명이 그녀에게 몸을 팔 것을 요청한다. 요청한 빨치산은 자신이 짐승과 같다고 괴로워한다. 

도브란스키는 빨치산이 되기 전에는 대학생이었다. '유럽의 교육'이라는 책을 쓰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희망과 우화가 가득 차 있었다. 야네크는 도브란스키가 전설적인 나데이다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들은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군이 패배하기를 기대하며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있었다. 마침내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군이 패퇴되고 폴란드를 해방하러 온다는 소식이 들려올 즈음, 도브란스키가 총에 맞는다. 도브란스키는 자신이 쓰던 '유럽의 교육'을 야네크에게 건내며 책을 완성해달라고 부탁한다.

 

'유럽의 교육'은 도브란스키가 쓰던 책 이름이기도 하고, 야네크가 지옥같은 현실에 절망하며 자신이 받은 교육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로맹 가리는 전쟁이 강요하는 절망적인 상황과 그 속에서 인간성이 망가져가는 인물들을 아프게 그려낸다.  

 

즈보로브스키 형제 중 하나가 조시아에게 독일군 병사에게 가서 몸을 팔아 정보를 캐내오도록 권유할 때 조시아는 생각한다.

 

고통을 겪는 데 '마지막'은 없었다. 그리고 희망은, 새로운 고통을 견뎌내도록 인간을 격려하기 위한 신의 술책에 지나지 않았다......사람들은 어떤 사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 맞서기 위해서 싸우고 있따는 것, 병사의 힘은 분노가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것, 그리고 문명의 발자취들은 폐허일 뿐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남편이 빨치산이 되어 산으로 가서 겨울을 견뎌낼 때, 빨치산의 아내는 독일군 앞잡이가 식량을 준다는 이유로 그와 침대에서 뒹군다. 이를 본 또다른 밀고꾼은 절망하며 독백한다.

 

'오 하느님! 이 모든 일을 정녕 당신이 조종하고 있는 겁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그는 현기증을 느끼고 구역질을 한다.

 

야네크가 천진한 어린이의 모습으로 독일군을 안심시킨 후 어느 날 그들을 다이나마이트로 폭사시키고, 저항할 수 없는 상태의 독일군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후 말한다.  

 

이 유럽의 교육이라는 것은 바로, 그들이 너희 아버지를 쏠 때, 또는 너 자신이 뭔가 대단한 명분을 내세워 누군가를 죽일 때, 또는 네가 죽도록 굶주리고 있을 때, 또는 네가 마을을 파괴하고 있을 때 이루어지는 거야. 우리는 훌륭한 학교에 있었어. 우리는 정말 교육되었어......


......유럽의 교육이 가르치는 것은 결국, 자기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사람을 죽이는 데 소용이 될 만한 그럴싸한 이유들과 용기를 찾아내는 법일 뿐이에요.

 

무표정한 태도로 살육하고, 거기에 원인을 찾아내 정당화하는 것이 바로 유럽의 교육이라는 냉소적인 발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희망 없이는 하루도 버텨내기 힘든 빨치산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다. 

로맹 가리는 도브란스키가 희망을 담아 써내려간 '유럽의 교육'이라는 제목의 책을 야네크가 완성하도록 한다. 전쟁이 끝나고, 야네크가 완성한 '유럽의 교육'에는 극한의 절망 속에서 끝내 지켜내야 할 무엇인가를 담아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영원히 죽지 않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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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거리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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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전 올 스타즈의 노래 '러브 어페어~비밀의 데이트'를 모티프로 쓴 소설 <새벽 거리에서>는 가정이 있는 남자가 같은 회사 파견사원과 불륜에 빠지면서 겪게 되는 갈등과 고통, 찰나의 기쁨과 두려움 등을 매우 섬세하게 포착한 소설이다.  

 

화자인 '나'는 어느 날 친구들과 술을 마신 후 배팅 연습장에 들렀다가 파견사원으로 근무하는 아키하를 우연히 만난다. 술김에 친구들이 아키하에게 노래방에 동석하자고 권하자 그녀는 흔쾌히 따라나선다. 하지만 그날 아키하는 만취해서 '나'의 양복을 더럽히고 만다. 

다음 날 아키하는 양복값을 변상하겠다고 봉투를 내밀지만 '나'는 진솔한 사과가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녀에게 싫은 소리를 하고 만다. 그 사건이 계기가 되어 '나'와 아키하는 몇 차례 만나게 되고 차츰 서로에게 끌리게 된다. 

순간순간 아내와 딸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그녀와의 달콤한 밀애가 점차 횟수와 깊이를 더하게 되자 '나'는 언젠가 아내와 딸에게 죄를 지어야 할지 아니면 아키하를 버려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을 예감한다. 

한편 아키하에게는 가슴 아픈 과거가 있었다. 아키하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한 후 자살했는데 얼마 뒤 아버지의 불륜 상대인 여비서도 아키하의 집에서 강도의 칼에 찔려 살해된 것이다. 15년 전 그 사건의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칼에 찔려 죽은 여비서의 동생과 당시 사건을 맡았던 형사는 사건의 진범은 아키하라 믿고 계속 조사를 하고 있었다.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날 밤, 아키하는 자신의 범인이라 믿고 범행을 숨기기에 급급했던 아버지와 이모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 사건은 자살이었고, 유서가 있었다는 것. 왜 그녀는 유서를 숨긴 채 자신을 범인으로 오인하도록 만들었을까? 왜 아버지와 이모에게 아무런 얘기도 꺼내지 않은 것일까? 

 

Love Affair ~ 秘密のデト by  Southern All Stars

 

夜明けの街ですれ違うのは月の殘骸と 昨日の僕さ

새벽 거리에서 엇갈리는 달의 그림자와 어제의 내 모습


二度と戾れない境界を越えた後で嗚呼この胸は 疼いてる

두번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경계를 넘어선 내 가슴이 아파 와

 

振り向くたびに せつないけれど 君の視線を 背中で受けた

뒤돌아볼때마다 안타까운 너의 시선을 등진 채

 

連れてかえれない たそがれに 染まる家路 嗚呼 淚隱して憂う Sunday

황혼으로 물든 길을 돌아갈 수 없어 눈물을 숨기며 울먹이고 있는 Sunday

 

君無しでは 夜每 眠らずに 闇を見つめていたい

너 없이는 밤마다 잠에서 깨어 우울함에 마음이 아파 와

 

マリンル-ジュで 愛されて 大黑 埠頭で 虹を見て

마린루즈에서 사랑을 받으며 부두에 서린 무지개를 바라 봐

 

シ-ガ-ディアンで 醉わされてまだ離れたくない

바다에 취해 위로 받으며 헤어지고 싶지는 않아

 

早く去かなくちゃ夜明けと共にこの首筋に 夢の跡

빨리 갈 수 없어서 새벽과 함께 남겨진 꿈의 흔적

 

愛のしずくが 果てた後でも何處にこれほど 優しくなれる

사랑의 느낌이 끝난 다음에도 어째서 이렇게 마음에 솔직할 수 있는지

 

二度と戾れない ドラマの中の 二人 嗚呼 お互いに 氣づいてる

두번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드라마 속 두 연인의 모습인 것을 서로 알았어

 

すてもなくしも僕は出來ないただそれだけは臆病 なのさ

버릴 수도 없었던 일로도 난 못하겠어 단지 그것만은 겁이 나

 

連れて步けない 役柄は いつも 他人 嗚呼 君の仕草を 眞似る Sunday

함께 걸을 수 없어 나와 언제나 타인으로 지내야 하는 너의 행동을 닮은 Sunday

 

好き合うほど 何も 構えずに 普通の男で いたい

서로 좋아하는데 아무것도 해줄수 없어 평범한 남자라서 마음이 아파

 

ボウリング場で カッコつけて ブル-ライトバ-で 泣き濡れて

볼링장에서 폼을 잡고, 블루라이트바에서 눈물에 젖어

 

ハ-バ-ビュ-の 部屋で抱きしめ また□くちづけた

하버뷰의 방에서 꼭 껴안고 그리고 입을 맞췄지

 

逢いに行かなくちゃはかない夢と 愛の谷間たにまで 溺れたい

만날 수 없어서 헛된 꿈만 꿀텐데도 사랑에 빠지고 싶어

 

マリンル-ジュで 愛されて 大黑 埠頭で 虹を見て

마린루즈에서 사랑을 받으며 부두에 서린 무지개를 바라 봐

 

シ-ガ-ディアンで 醉わされてまだ離れたくない

바다에 취해 위로 받으며 헤어지고 싶지는 않아

 

早く去かなくちゃ夜明けと共にこの首筋に夢の跡 

빨리 갈 수 없어서 새벽과 함께 남겨질 꿈의 흔적일테니까

 

だから愛の谷間たにまで 溺れたい

그래서 사랑에 빠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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