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팬 죽이기 - 2004 제28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주희 지음 / 민음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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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작가상> 수상 작품 수준은 그야 말로 극과 극이다. 초기 수상작들은 여타의 문학상 수상작품들을 압도할 정도의 박력을 보여주는데 반해, 세기가 바뀐 후에는 도무지 선정 이유를 알 수 없는 작품들이 연달아 등장한다. 작가의 세계관이 어떻든 간에 <사람의 아들> 이나 <부초>와 같은 작품에서는 장인의 호흡이 느껴진다. 하지만 <철수사용설명서> 와 같은 작품에 이르러서는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다.

<피터팬 죽이기> 역시 <철수사용설명서> 쪽에 매우 가까운 작품이다. 과장된 고통, 개연성 없는 사건들과 우연의 반복, 중언부언,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애매한 서사 구조(그 원인은 짧은 호흡에 있고, 짧은 호흡은 이 작품이 아직도 습작 수준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강하게 들게 만든다)


소설에는 매우 사연 많은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2000년대 이후 <오늘의 작가상> 수상 작품들이 그러하듯 소위 '희망 없는 세대'이다. (왠지 헤밍웨이가 '길 잃은 세대'로 한번 써먹은 것 같은)

주인공은 어릴 적 야구공에 맞은 뒤 10년간 시력을 잃어 갔고, 아버지가 사고로 요절했으며, 어머니는 벧엘 분식집을 운영한다.

첫번째 애인은 남자이고, 두번째 애인은 여자다. 남자와 사귄 이유로 이런 저런 것들을 늘어놓긴 하지만 핵심은 '외롭던 참에 고백 받아서' 라는 얼토당토 않은 이유 때문이다. 두번째 애인은 어릴적 좋아했던 여자를 인터넷의 발달로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물론 다시 찾은 사랑은 언제나 이루어지지 않는다) 

첫 번째 애인은 막연한 이상을 쫓고 있다. 2004년만 해도 이상을 좇는 자가 몰두할 법한 취미는 역시 '그림'과 '록 음악' 이다. 그래서 첫 번째 애인은 미술학도에, 베이시스트이다.

두 번째 애인은 현실을 상징해야 하니, 당연히 은행원이다. 은행원과 덜컥 사귀는 것은 너무나 개연성이 없어서, 작가는 은행원이 사실은 주인공의 초등학교 동창이었고 첫사랑이라고 설정한다.  

주인공 주변에는 비슷한 종류의 결핍과 가짜 상처로 덧칠된 인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자신이 임상실험을 받고 있다고 뻥치며 자해와 자살소동을 반복하는 승태, 이루어 질 것 같지 않은 꿈을 마약처럼 상용하며 만화가가 되려하는 영길, 그리고 키우는 개 두 마리 외에는 애정을 주지 않는 피테쿠스라는 별명의 룸메이트. 물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살한 '신진희' 라는 인물도 있다. 모두들 자의식 충만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 아파하는데, 솔직히 무엇이 아프다는 것인지 나는 공감이 가지 않았다. 아파할만한 이유가 없더라도 아플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자의식 과잉이나, 막연한 불안에 근거했을 때에는 유치하다. 그리고 그러한 아픔 탓을 '세대' 탓으로 돌리는 것은 진부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지루했고, 시간이 조금 아까왔다.

작가가 이 작품보다 더 좋은 소설을 쓰고 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확인할 용기가 아직은 나지 않는다. 책이 재미 없었기 때문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22054327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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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한라산 1 한라산 1
현길언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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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 일본은 제주도를 최후 교두보로 삼아 일본 본토를 사수하려 하였다. 이를 위해 7만의 정예 병력을 제주로 집결시켰고, 미군 역시 제주도가 일본 본토로 진출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임을 간파하여 폭격을 퍼부어 댔다. 제주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이란 공포가 만연했다. 제주 사람들은 일본 제국군이 패하면 조선 역시 불바다가 된다는 일본인들의 말을 그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미군에게 호감을 가질 수도 없었다. 그들의 폭격으로 많은 제주 사람들이 죽었고, 육지로 향하던 배가 폭격에 침몰되어 몰살된 사건도 있었다. 

얼마 뒤 전쟁은 일본 본토에 핵폭탄이 투하되면서 어이없이 끝나버렸고, 덕분에 제주도는 전쟁의 불길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집결되어 있던 7만의 일본 병력은 무장을 풀지 않은 채 그대로 제주에 남아 있었다. 제주 사람들은 해방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무엇이 바뀐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일본인은 무장을 풀지 않은 채 부대를 지키고 있었고, 약탈한 식량은 불태워 없앴다. 일본의 정예군은 '자신들이 항복한 것은 미국이지 조선이 아니다' 라고 주장하며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였다. 그들은 미군이 들어올 때까지 안전을 보장 받다가 미군이 제공한 배를 타고 일본으로 돌아간다. 약삭빠른 일본인 지주와 자본가들 역시 추사 김정희의 그림 등 현금화 할 수 있는 간편한 물건들을 사서 일본으로 도망쳤고, 남아 있는 재산은 일제강점기에 그들에게 빌붙어 빌어 먹던 자들이 차지하게 된다.


해방 전 항일 운동을 했던 그룹은 대부분 좌익 세력 들이었다. 우익 세력들은 애저녁에 일신의 영달을 위해, 혹은 일제의 강압에 못 이겨 친일을 하고 있었다. 좌익 세력들은 빠르게 힘을 결집하여 조직을 결성하고 인민위원회를 구성하여 권력을 이양받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에 일본군에 끌려 갔다가 탈영하여 군정학교 등에 편입되어 해외에 항일운동 하던 자들도 제주로 유입되어 힘을 보탠다. 이들은 신탁통치안과 모스크바 3상 회의를 지지하였고, 반탁과 모스크바 3상회의 반대는 곧 남북 분단으로 귀결될 것임을 예견하였다. 하지만 미군정은 조선인들이 결성한 인민위원회에 권력이 이양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들은 치안 유지라는 명목 하에 일제 시대의 고등 경찰과 관리들을 아무런 처벌 없이 그 지위를 유지시켜 주었다.


해방 후 제주는 극심한 가뭄 때문에 고통 받는다. 일본 군인들이 공출한 쌀을 불태우고 떠난 뒤, 그들의 발바닥을 핥으며 기생하던 자들이 미군정과 결탁하여 공출한 쌀을 뒤로 빼돌리고 육지에서 밀수한 쌀을 사쟁여 폭리를 취한다.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항의하자 미군이 총을 쏴서 민간인이 사망한다. 1947년 3.1절 기념 행사에서는 단지 소요가 예상된다는 이유로 도망가는 사람들의 등에 총을 쏴서 민간인이 살해 당한다. 대규모 좌익 검거 열풍이 불고, 고문이 일상적으로 행해진다. 해방이 되었지만, 일제 시대와 다를 것 하나 없는 세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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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라산>은 1, 2부(총 3권)만 씌여지고 3~5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씌여지지 않은 소설이다. '작가의 말' 에 의하면 소설은 1988년 4월, '4.3항쟁 40주년'을 기해 어느 월간지 제의로 씌여지기 시작하여 3년 9개월 동안 연재되었고, 연재를 쉰 후 3여 년이 지나서야 2권이 완성되었다 하니 꽤나 더딘 작업이다.

<한라산> 속의 인물들은 매우 입체적이어서 사건을 타고 넘으며 시시각각으로 변화한다. 좌익에 투신했다가 일본 고등 경찰이 된 후 모리배가 되는 오태석, 좌익계의 거두이면서도 끝내 속된 명성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하는 김상구, 못 배웠으나 해방 직후 계급적 사상에 눈을 떠 과격해지는 춘식, 그리고 비상한 머리로 꾀를 내어 좌익들을 이끌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인택 등이 그렇다.

이 인물들이 4.3 항쟁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무척 궁금했으나, 아쉽게도 소설은1947년 3월 1일에 일어난 발포사건과 이에 자극 받은 춘식이 총을 갖기 위해 국방경비대원에 자원하려는 장면에서 "나도 총을 가져보카마씀?" 이라고 말하며 끝이 나고 만다. 아쉬움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올 여름 제주도에서 택시 기사님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4.3 항쟁 이야기가 나왔다. 에코랜드에 가는 길이었다. 택시 기사님은 '제주의 4.3 항쟁은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했다. 산에 들어가 죽은 사람의 가족들과 죽은 경찰 가족들 사이에 아직도 앙금이 남아 보상 문제도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았고 정부는 뜨뜻 미지근한 태도로 시간만 보내고 있다고 했다. 그럴 것이다. 항일 운동을 했던 사람은 단 한명도 정부에 참여하지 못했던 그 때와 지금이 뭐가 그리 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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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밤 : 시 밤 (겨울 에디션)
하상욱 지음 / 예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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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직원이 과장님께 탈탈 털리던 중 우연히 책꽂이에 꽂힌 책 제목 때문에 뿜을 뻔 했단다. 시밤.

시 읽는 밤이라기에 읽어보니 말장난에 詩라는 이름을 달아 11,200원의 정가를 붙였다. 창조경제다. 

앞 자리 직원은 이 책을 어떤 연유로 소유하게 되었을까. 시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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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토끼 차상문 - 한 토끼 영장류의 기묘한 이야기
김남일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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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도 안 간 여선생, 심지어 아이들이 화장실도 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바로 그 여선생이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토끼라는 풍문이 돌았다. 그녀의 이름은 유진숙이었다. 유진숙이 양잿물을 퍼마시고 자살을 기도할 그 즈음에 그녀의 오빠 유진명은 똥물을 두어 양동이나 받아 마셔야 했다.

사정은 이렇다. 유진명은 반정부 인사로 분류되어 '업계에서 기술이 좋기로 소문난' 차씨 성 가진 자에게 지독한 고문을 당하였고, 매를 맞아 죽게 생겼기에 어혈을 풀기 위하여 똥물을 받아 먹은 것이다. 한편, 차씨 성 가진 자는 유진명의 동생 유진숙을 겁간하여 임신시켰는데, 유진숙은 이것이 치욕스러워 죽으려고 양잿물을 마셨던 것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유진숙은 살아 남았고 열 달 뒤에 아이를 낳았는데, 낳고 보니 토끼였다. 유진숙은 침묵으로 차씨 성 가진 자에게 반항하다 정신에 문제가 생겨 오락가락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토끼는 차상문이라는 이름을 얻어 착실히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토끼가 또래 아이들보다 영특하였고, 미국에서 저개발 국가의 인재들을 모아 미국에서 교육을 시키는 B.P.라는 프로젝트의 혜택을 받아 유학을 떠나게 된다. 

미국은 한창 베트남전에 발을 잘 못 들여놔 반전 열풍이 불 때였다. 학생들이 반전 구호를 외치고, LSD에 취한 히피들이 짐 모리슨을 들었으며, 프리 섹스 유행이 살풋 불어닥치던 시기였다. 차상문은 본디 여성 알레르기가 있어서 이성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으나 룸메이트 밥의 소개로 신씨 성의 동종 토끼를 만나 첫사랑에 설레게 되고, 자위의 몽롱한 맛도 알게 된다. 하지만 이성 토끼가 하필이면 재수 없게 북조선 토끼라는 사실 때문에 첫사랑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그저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하다가 덜컥 교수까지 되고 만다.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 교수 자리를 꿰어 찬 차상문은 80년대 한국의 민주화 열풍 한 가운데 서게 된다. 나름의 신념으로 시국을 돌파해 보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시대의 분위기에 떠밀려 강단을 떠나게 된다.

강단을 떠난 차상문에게 충격이 된 말이 있었으니 '쿵쿵거리지 마라, 땅이 놀란다' 였다. 차상문은 이 말에 감명 받아 인간 위주로 사고하며 만유를 파괴하는 인본주의를 거부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 저기 출몰하며 가장 효과적이라 생각되는 선전 선동을 벌이는 차상문의 행동은 별다른 반향을 얻지 못하고 끝내 테러리즘 흉내를 끝으로 스스로 벽 속에 갇히고 만다.


<천재토끼 차상문>은 패배주의자의 씁쓸한 중언부언에 불과한 소설이다. 소설은 <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와 같은 진보적 현대사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질 법한 사건들 전반을 걸터듬는데, 인간과는 다른 '토끼' 라는 종을 탄생시켜 새로운 시각을 도모하나 사실 새로운 시각이란 거의 없다. 토끼의 시각과 견해는 오히려 '맛이 가기 시작하던 시기'의 김지하가 '밥' 타령을 하던 모습, 감옥에 갔다온 박노해가 '사람만이 희망' 이라며 두루뭉술 해지던 시기를 떠올리게 한다.

작가 김남일은 현대사의 질곡과 모순에 눈 돌리지 않으려는 근성을 보여주지만, 그 질곡을 헤쳐나가려던 수많은 패배자들에 대한 조롱기 섞인 희화화에도 별다른 주저함이 없다. 하지만 정작 그 자신도 대안이 없기는 마찬가지어서, 소설은 후반부로 갈수록 토끼가 도대체 뭘 주장 하고자 하는지 알 수가 없고 비맞은 중이 중얼거리듯 어수선하다.


지금도 인도에서는 180만여 명의 신도를 지닌 자이나교가 가장 아름다운 대안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철저한 불살생과 무소유, 그리고 엄격한 고행을 추구한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들인가!


이 대목에서 분명 김남일은 기존의 변혁 운동과 저항에 대한 반성과 대안으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극단적 근본주의' 에 잠시 현혹되는 듯 하다. 하지만 바로 다음 문장을 보자.


하지만 바로 그다음 순간, 차상문은 그들의 시간이 제 어머니의 그것처럼 움직이지 않거나 혹은 영원 속에 갇혀 있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아무리 좋은 사상이라도 중력이나 자기장을 견디지 못 한다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쨌든 인간만을 중심에 놓는 오만한 인도주의에 대한 경종을 울릴 필요는 있었다.


근본주의는 아닌 것 같고, 토끼를 내세웠으니 인도주의는 거부해야 할 것 같고, 그렇다고 거부 이후의 그림을 그릴 수도 없으니 얼결에 '어쨌든' 으로 얼버무리고 마는 것인가.


소설이 매우 진보적인 듯 하면서도 패배주의자의 중언부언으로 읽힐 소지가 바로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진지한 성찰과 반성을 통한 교훈 없이 '해봤지만 안되었으니 일단 틀린 거였다' 식으로 대충 덮어버리는 태도는 위험하다. 긍지 높았던 패배자들이 조롱받고 희화화 될 때, 그들이 저항한 질곡과 억압의 역사 역시 '견딜만 했던, 나름대로 유머가 있던 시대'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설의 맥을 끊는 만연체와, 그 만연체 곳곳에서 나타나는 비문이 거슬리는 대목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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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 2003 제27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종은 지음 / 민음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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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는 서울이 고향인 네 명의 별볼일 없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을 특성 짓는 것은 그들이 나고 자란 도시 '서울', 그리고 각자의 이름이다.

깨우쳐 나아가라는 뜻의 유진(諭進), 살펴 다스리라는 뜻의 찰리(察理), 기운을 불러 일으킨다는 뜻의 호기(護氣), 무리를 이끌라는 뜻의 중만(衆蔓). 작가는 각자의 이름을 얻게 되는 과정을 구성진 가락으로 풀어낸다.

물론, 이들이 이름에 걸맞게 살아온 것은 아니다. 어딘가 하자와 흠결을 갖고 있는 가정에서 자라서 모양꼴을 제대로 못 갖춘 성인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찰리가 플랜A를 제출하기 시작하고 플랜K를 거치는 동안 계획은 점차 정교해 지는데, 계획이란 다름 아닌 은행 털기 따위이다. 찰리의 계획이 고속도로 휴게소를 터는 데 이르자 넷 모두가 계획의 구체성과 실현 가능성에 공감하게 되어 실행에 옮긴다. 

준비된 결말은 두가지인데 성공적으로 강탈한 돈을 가지고 건물을 사서 저마다 취향에 맞는 장사를 하며 살아간다는 해피앤딩, 그리고 죄다 경찰서에 굴비두름 엮이듯 잡혀가서 얼토당토 않은 범행동기를 댄다는 언해피 앤딩이 그것이다.

그런데 결말은 하나가 더 있으니, '그들이 휴게소를 털어 성공시킨다'는 것은 네 명이 버거킹에서 모여 나누던 잡담이라는 것이다. 잡담이 끝날 무렵 유진이 버거킹 영업이 몇 시까지 인지 묻고, 매출을 물은 다음 "야 셔터 내려!" 라며 버거킹을 털기 시작한다는 결말이다. 결말이 곧 시작인 구조인 것이다.

 

내 고향은 서울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을 때엔 본적지를 대거나, 오랫동안 살았던 지방 도시의 이름을 대곤 한다. 겨우 다섯살이 되기 전에 서울을 떠났기 때문에, 서울과 관련한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고향은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두번째 숫자'로 표기되어 있을 뿐 정서적으로는 나에게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내 고향이 서울이면서도,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서울을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할 때가 있었다. 

작가의 문체는 구성진 가락을 띤다. 만연체이고, 만연체가 때로 그렇듯 비문이 드문 드문 섞여 있다. 이문구식의 해학도 얼핏 엿보인다. 하지만 아직은 내공이 부족한 느낌도 많이 든다. 해학이란 모름지기 비틀고 꼬고 과장하되 상황을 공감하게 만드는 기운까지 더불어 갖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김종은은 공감하게 만드는 면에서 내공이 아직은 부족한 것 같다. 

 

http://blog.naver.com/rainsky94/220508795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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