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한라산 1 한라산 1
현길언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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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 일본은 제주도를 최후 교두보로 삼아 일본 본토를 사수하려 하였다. 이를 위해 7만의 정예 병력을 제주로 집결시켰고, 미군 역시 제주도가 일본 본토로 진출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임을 간파하여 폭격을 퍼부어 댔다. 제주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이란 공포가 만연했다. 제주 사람들은 일본 제국군이 패하면 조선 역시 불바다가 된다는 일본인들의 말을 그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미군에게 호감을 가질 수도 없었다. 그들의 폭격으로 많은 제주 사람들이 죽었고, 육지로 향하던 배가 폭격에 침몰되어 몰살된 사건도 있었다. 

얼마 뒤 전쟁은 일본 본토에 핵폭탄이 투하되면서 어이없이 끝나버렸고, 덕분에 제주도는 전쟁의 불길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집결되어 있던 7만의 일본 병력은 무장을 풀지 않은 채 그대로 제주에 남아 있었다. 제주 사람들은 해방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무엇이 바뀐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일본인은 무장을 풀지 않은 채 부대를 지키고 있었고, 약탈한 식량은 불태워 없앴다. 일본의 정예군은 '자신들이 항복한 것은 미국이지 조선이 아니다' 라고 주장하며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였다. 그들은 미군이 들어올 때까지 안전을 보장 받다가 미군이 제공한 배를 타고 일본으로 돌아간다. 약삭빠른 일본인 지주와 자본가들 역시 추사 김정희의 그림 등 현금화 할 수 있는 간편한 물건들을 사서 일본으로 도망쳤고, 남아 있는 재산은 일제강점기에 그들에게 빌붙어 빌어 먹던 자들이 차지하게 된다.


해방 전 항일 운동을 했던 그룹은 대부분 좌익 세력 들이었다. 우익 세력들은 애저녁에 일신의 영달을 위해, 혹은 일제의 강압에 못 이겨 친일을 하고 있었다. 좌익 세력들은 빠르게 힘을 결집하여 조직을 결성하고 인민위원회를 구성하여 권력을 이양받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에 일본군에 끌려 갔다가 탈영하여 군정학교 등에 편입되어 해외에 항일운동 하던 자들도 제주로 유입되어 힘을 보탠다. 이들은 신탁통치안과 모스크바 3상 회의를 지지하였고, 반탁과 모스크바 3상회의 반대는 곧 남북 분단으로 귀결될 것임을 예견하였다. 하지만 미군정은 조선인들이 결성한 인민위원회에 권력이 이양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들은 치안 유지라는 명목 하에 일제 시대의 고등 경찰과 관리들을 아무런 처벌 없이 그 지위를 유지시켜 주었다.


해방 후 제주는 극심한 가뭄 때문에 고통 받는다. 일본 군인들이 공출한 쌀을 불태우고 떠난 뒤, 그들의 발바닥을 핥으며 기생하던 자들이 미군정과 결탁하여 공출한 쌀을 뒤로 빼돌리고 육지에서 밀수한 쌀을 사쟁여 폭리를 취한다.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항의하자 미군이 총을 쏴서 민간인이 사망한다. 1947년 3.1절 기념 행사에서는 단지 소요가 예상된다는 이유로 도망가는 사람들의 등에 총을 쏴서 민간인이 살해 당한다. 대규모 좌익 검거 열풍이 불고, 고문이 일상적으로 행해진다. 해방이 되었지만, 일제 시대와 다를 것 하나 없는 세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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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라산>은 1, 2부(총 3권)만 씌여지고 3~5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씌여지지 않은 소설이다. '작가의 말' 에 의하면 소설은 1988년 4월, '4.3항쟁 40주년'을 기해 어느 월간지 제의로 씌여지기 시작하여 3년 9개월 동안 연재되었고, 연재를 쉰 후 3여 년이 지나서야 2권이 완성되었다 하니 꽤나 더딘 작업이다.

<한라산> 속의 인물들은 매우 입체적이어서 사건을 타고 넘으며 시시각각으로 변화한다. 좌익에 투신했다가 일본 고등 경찰이 된 후 모리배가 되는 오태석, 좌익계의 거두이면서도 끝내 속된 명성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하는 김상구, 못 배웠으나 해방 직후 계급적 사상에 눈을 떠 과격해지는 춘식, 그리고 비상한 머리로 꾀를 내어 좌익들을 이끌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인택 등이 그렇다.

이 인물들이 4.3 항쟁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무척 궁금했으나, 아쉽게도 소설은1947년 3월 1일에 일어난 발포사건과 이에 자극 받은 춘식이 총을 갖기 위해 국방경비대원에 자원하려는 장면에서 "나도 총을 가져보카마씀?" 이라고 말하며 끝이 나고 만다. 아쉬움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올 여름 제주도에서 택시 기사님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4.3 항쟁 이야기가 나왔다. 에코랜드에 가는 길이었다. 택시 기사님은 '제주의 4.3 항쟁은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했다. 산에 들어가 죽은 사람의 가족들과 죽은 경찰 가족들 사이에 아직도 앙금이 남아 보상 문제도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았고 정부는 뜨뜻 미지근한 태도로 시간만 보내고 있다고 했다. 그럴 것이다. 항일 운동을 했던 사람은 단 한명도 정부에 참여하지 못했던 그 때와 지금이 뭐가 그리 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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