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소녀
잭 케첨 지음, 전행선 옮김 / 크롭써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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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이면 아이는 홈플러스 문화센터에 발레를 배우러 가고, 나는 아이를 기다리는 동안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책을 한 권 사서 읽는다. 토요일은 그런 식으로 한가하게 흘러간다.

그런데 이번엔 책을 좀 잘 못 골랐다. 책을 읽다가 느낀 섬뜩함. 그렇다. 나는 이 추악한 이야기를 영화로 본 적이 있다. 책 표지에 "두 차례나 영화화된 문제작" 이라고 쓰여진 문구를 보고도 눈치 채지 못한 이유는 영화 제목이 책 제목과 달랐기 때문이다. 내가 본 영화 제목은 <아메리칸 크라임>이었다. 그나마 영화는 책에 비하면 양반이며, 책은 욕지기가 나올 정도로 구역질 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 사건이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파리대왕>과는 다르다. 책을 읽는 내내 몸이 아플 정도의 긴장감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완독한 이유는 어떤 의무감 때문이었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직시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의무감. 

 

http://blog.naver.com/rainsky94/221242569520


 

실제 사건에 대해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면 '베니체프스키 대 인디애나 주 사건' 을 찾아보면 된다.

 

https://namu.wiki/w/%EB%B2%A0%EB%8B%88%EC%B2%B4%ED%94%84%EC%8A%A4%ED%82%A4%20%EB%8C%80%20%EC%9D%B8%EB%94%94%EC%95%A0%EB%82%98%20%EC%A3%BC%20%EC%82%AC%EA%B1%B4

 

영화 <아메리칸 크라임>에 관한 블로그 글

 

https://blog.naver.com/rainsky94/220462703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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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딸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3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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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1843~1848


칠레 발파라이소에 영국인들이 이주해서 자리 잡고 살기 시작한 것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영국인들은 인디오들의 거주지와 떨어진 곳에 모여 살았고, 영국 본토의 생활 습관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그 영국인 거주지에 소머즈 남매가 살고 있었다. 맏이 제레미 소머즈는 <대영제국 수출입 회사>의 지점장이었는데 신중한 성격이었고, 둘째 존 소머즈는 선장으로 자유분방한 성격이었으며, 막내 미스 로즈는 아리따운 여성이었다.

1832년 3월 15일, 그들의 집 앞에 누군가가 갓난아이가 들어있는 바구니를 놓아두고 사라진다. 미스 로즈는 자신의 집 앞에 아이가 버려진 것은 운명이라 생각하여 엘리사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애지중지 키운다.

사실 미스 로즈는 과거에 빈 출신의 테너 가수 칼 브렛츠너와 염문을 뿌린 일이 있었는데, 그 애정행각이 좋게 끝나지 않았고 그때의 소문과 기억 때문 자기 인생에서 '결혼' 이라는 통과의례를 없애버린 아픔이 있었다. 그래서 제이컵 토드라는 젊은이가 열열히 구애하는데도 불구하고 끝내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다.

어쨌든, 미스 로즈는 엘리사가 자기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고 그럴싸한 남편감을 만나 결혼한 뒤 그 남자를 적절히 조정해 가면서 비교적 독립된 삶을 꾸려가길 원했다. 그래서 마이클 스튜어드라는 어리숙해 보이는 장교를 엘리사에게 짝지워주겠다는 계획을 야심차게 추진하지만, 그 남자가 미스 로즈에게 반하는 통에 계획이 틀어지고 만다.

그리고 정작 엘리사는 호아킨 안디에타라는 이름을 가진, 다소 혁명가적 기질을 가진 인디오 청년에게 몸과 마음을 내주고 만다.


2부 1848~1849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되자 아메리카 대륙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까지 사람들이 몰려든다. 호아킨 안디에타 역시 금이 발산하는 마력에 사로잡혀 엘리사를 버리고 훌쩍 캘리포니아로 떠나버린다.

그가 떠난 뒤에야 엘리사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것과, 호아킨 없이 하루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엘리사는 그를 찾아가기로 결심한 뒤 항구로 가서 밀항을 알아보고, 타오 치엔이라는 중국인 의사이자 선원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런데 당시 칠레에 중국인은 흔치 않았는데 타오 치엔은 어떻게 흘러들어오게 되었을까? 타오 치엔은 본래 중국의 가난한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부모가 빚에 쪼들리자 다른 한의사 집안에 팔려간다. 그런데 이 한의사가 꽤 양식 있는 사람이어서, 타오 치엔에게 의술과 시를 가르쳐 주는 스승이 된다. 타오 치엔은 그가 치매에 걸려 사망할 때까지 의술과 학문을 스펀지 처럼 빨아들인 뒤, 홍콩으로 건너 가 자신만의 진료실을 차려 꽤 많은 돈을 벌게 된다. 그때 사귄 친구가 에버나이저 홉스라는 영국인 의사로, 그와의 교류 덕에 타오 치엔은 서양식 의술도 어느 정도 받아들이게 된다.

얼마 뒤 돈이 생기자 타오 치엔은 어렸을 때부터의 소원, 즉 전족을 한 여자를 색시로 맞아들인다. 하지만 아내 린이 얼마 지나지 않아 폐결핵으로 죽자 상심한 타오 치엔은 폐인처럼 생활하며 돈을 탕진한다. 그러던 어느 날 술집에서 골아떨어진 타오 치엔이 납치되어 배를 타게 되는데, 그 배의 선장이 존 소머즈였다.

하여간 배 밑바닥에서 사산과 멀미, 고열로 시달리는 엘리사를 타오 치엔이 극진히 보살펴 살려낸다. 이들은 1849년 4월 어느 화요일 오후 2시에 샌프란시스코에 상륙하게 된다. 엘리사는 동양 남자아이처럼 의복과 머리를 바꾸고 타오 치엔과 함께 생활하는데, 이때 둘 사이에 다소 미묘한 기류가 형성된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다른 인종이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시기였고 각자가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기에, 둘은 서로에게서 성적인 측면이 아니라 따뜻함을 갈구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한편, 엘리사가 없어지자 소머즈 집안은 발칵 뒤집히고 이 과정에서 엘리사가 사실은 존 소머즈 선장의 친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엘리사가 발견될 당시 그녀를 감싸고 있던 조끼는 존이 하룻밤을 함께 보낸 칠레 여인에게 벗어준 옷이었다. 

존과 미스 로즈가 백방으로 엘리사의 행방을 수소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득은 없었다. 엘리사가 밀항했기 때문에 배에 탄 기록이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 뒤 이들은 엘리사가 죽었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엘리사가 캘리포니아로 밀항할 때 자신을 간호해준 창녀에게 터키석을 고마움의 표시로 선물한 적이 있다. 그런데 나중에 이 터키석을 우연히 알아본 존 소머즈 선장이 창녀를 추궁하자 창녀는 그녀가 죽었다고 진술해버린 것이다.


3부 1850~1853


수십만명이 휩쓸고 지나간 캘리포니아에서 예전처럼 금을 발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사실 진짜 돈을 번 사람들은 금을 발견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을 배로 실어 날라준 선박 주인과, 그들이 먹을 신선한 음식을 공급한 상인, 그리고 창녀들을 관리하는 포주들이었다.

엘리사는 타오 치엔과 헤어진 뒤 조와 바발루가 이끄는 무리에 껴서 호아킨 안디에타를 찾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하지만 성과는 없었다. 대신 호아킨 무리에타라는, 비슷한 이름을 가진 악당의 이름만 간간히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엘리사는 그가 틀림없이 자신이 찾는 남자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신출귀몰하는 범죄자였기에 찾을 길이 막막했다. 

그런데 당시 그에 관한 기사를 간간히 써내는 기자가 있었는데, 그는 다름 아닌 제이컵 토드였다. 미스 로즈에게 고백했다가 거절 당하고, 선교자금을 유용했다가 들통 나 혼쭐 났던 그는 존 소머즈의 도움으로 영국에 갔다가 우연한 기회에 캘리포니아에 와 기자가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허풍은 여전해서, 호아킨 무리에타에 관한 기사는 모두 그가 지어낸 기사였다. 물론, 어느 정도 풍문과 아주 약간의 사실은 있었지만, 전체적인 면에서 보면 거짓말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엘리사는 제이컵 토드를 찾아가서 호아킨 무리에타에 관해서 질문을 한다. 제이컵 토드는 얼버무려 남자아이를 쫓아낸 뒤에야 사실은 그가 변장한 엘리사라는 사실을 깨닫고 존에게 그녀가 살아있음을 알려준다.

몇 년이 흐른 뒤 엘리사는 자신이 호아킨을 찾는 것이 사랑 때문인지 아니면 관성 때문인지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그의 얼굴도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엘리사는 그제서야 자신이 사랑한 것은 타오 치엔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시 만난 엘리사와 타오 치엔은 창녀들의 비참한 처지를 동정해 그녀들을 구해 독립된 삶을 살도록 지원하는 일에 매진한다.

어느 날, 호아킨 무리에타가 치안대에 사로잡혀 살해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의 목은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게 전시되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시체를 확인하고 나오는 엘리사에게 타오 치엔이 그 사람이 맞는 지 묻는다. 엘리사는 '나는 이제 자유로워요' 라고 답한다. 죽은 것이 안디에타였기 때문에 자유로워졌다는 것인지, 아니면 안디에타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동요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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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페루 리마에서 출생한 이사벨 아옌데는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칠레 작가로, 의붓아버지가 외교관인 덕택에 어렸을 적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고 한다. 17세에 칠레 산티아고에 정착한 뒤에는 저널리스트, 편집자, 희곡 작가로 활동했다.

그녀의 삼촌이 바로 저 유명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인데, 피노체트의 쿠데타 이후 그녀도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통에 1975년 베네수엘라로 망명을 떠나게 된다. 망명지에서 완성한 소설이 바로 <영혼의 집(82)>이다. 이후 미국에 정착한 뒤 발표한 소설이 이 <운명의 딸(99)>이고, 2000년에 발표된 후속편 <세피아 빛 초상화(00)>와 함께 3부작을 이룬다.


마술적 리얼리즘과 에로티시즘, 페미니즘이 조화를 이루는 그녀의 소설이 전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녀가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사실 때문인 것 같다. 재미있게 술술 읽힌다는 것은 소설의 가장 큰 미덕 중 하나일 수밖에 없는데, 이사벨 아옌데는 어디로 흘러갈지 궁금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천연덕스럽게 풀어내는데 천재적이다.

<운명의 딸> 역시 그런 매력이 한껏 발휘된 소설인데, 특히 삼남매라는 구도가 재미있다. 책임감 있는 큰오빠, 자유분방한 작은오빠와 천진난만한 여자 막내동생이라는 설정은 드라마나 소설에서 자주 사용하는데 큰오빠를 피해 나머지 두 동생들이 벌이는 소소한 모험들은 독자의 응원을 받기 마련이다. 우리 모두는 큰오빠가 되기 보단, 막내동생이 되고 싶은 기질이 있지 않은가? 피노키오, 허클베리핀, 톰소여 등을 우리가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낮동안 자켓을 벗고 돌아다녀야 할 정도로 날씨가 갑자기 더워졌다. 나주에 있는 정보센터에 출장을 갔다 집에 돌아오니 6시였다. 문득, 저녁이면 일찍 퇴근해서 딱딱한 침대에 누워 책이나 보고 싶다던 장정일의 독서일기 한 구절이 생각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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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병, 평화의 길을 열다
사토 다다오 지음, 설배환 옮김, 한홍구 해제 / 검둥소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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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쟁은 왜 일어날까?


전쟁의 원인을 밝히는 일은 목숨 걸고 해야하는 일이다. 그래서 어렵다.

전쟁을 일으키는 나라는 전쟁에서 이기려고 한다. 정치가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일치단결하여 상대편을 적대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때 자국에 '아니, 상대 국가가 나쁜 게 아니라 우리 나라가 나쁜 건 아닐까?' 하고 조금이라도 의문을 품는 사람이 있으면 정치가는 이를 그냥 놔두지 않는다.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어느 시대 어떠한 전쟁에서도 외국을 침략하는 나라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욕심이 많아서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 나라는 정당한 데 비해 상대편 나라는 올바른 자기 나라의 주장을 듣지도 않고 멋대로 지껄이며 반항하기 때문에 이를 벌하기 위해 공격하는 것이라고 단정했다.


2. 태평양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1941년 12월 8일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본은 미국, 영국, 중국 등을 상대로 대규모 전쟁을 치렀는데 당시 일본은 이 전쟁을 대동아전쟁이라 했고, 전후에는 태평양전쟁이라고 불렀다.

당시 미국은 일본에게 중국 침략을 중지하지 않으면 일본에 석유와 철을 팔지 않겠다고 했다. 석유가 나는 또 다른 나라 인도네시아 역시 네델란드가 지배하고 있었는데 미국과 한 편이었다. 이 동맹을 ABCD 포위진(America, Britain, China, Dutch) 이라 한다.

일본은 당시 중국을 침략했으면서도 점령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중국 참략을 멈출 수 없었고, 석유가 바닥이 나서 중국과의 전쟁에서 패하느니 미국을 공격하자고 생각한 것이다.


3. 중일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1894년부터 1895년까지 조선에서는 동학 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는데, 일본과 청이 각각 조선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군사를 보냈다가 전쟁이 일어난다. 일본은 청의 군대를 물리친 뒤 요동반도와 대만을 자국의 영토로 삼는다.

1904년부터 1905년까지는 러일전쟁이 일어났다. 일본은 이 전쟁에서도 승리한다.

당시 일본은 자신들이 중국인과 조선인을 지도하여 아시아를 침략하는 유럽 국가에 대항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메이지 지식인들 중 일부는 조선, 중국, 일본이 손을 잡고 유럽 열강에 대항하자는 인식을 갖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론과 실제는 달랐다. 실제는 침략전쟁 형태를 띨 수밖에 없었다.

한편, 당시 정치가는 군인들을 통제할 힘이 없었다. 관동군이 그렇다. 1920년대 무렵 관동군 장교들 중 일부가 중국 등베이지방을 독립시킬 계획을 세우고 1931년 전쟁을 벌인다. 멸망한 청나라 황제 푸이를 데려다 황제 자리에 앉히고 이 지방을 만주국이라 칭했는데, 정치인들은 돌발행동을 하는 군인들을 제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메이지 시대에 만들어진 헌법에 일본 군대는 정치가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천황의 명령을 따른다고 되어 있었다.

다른 예로는 1937년 7월 7일에는 베이징 교외의 루거우차오 근처에서 훈련 중이던 일본군이 중국군과 소규모 전투를 벌인 사건이다. 일본 정부는 군에 더 이상 전투를 확대시키지 말라고 요구했지만, 군은 남경을 공격하기 위해 대군을 파견한다.


4. 국가와 국가의 교류방법


아무리 큰 나라가 조그마한 나라를 자국의 위세에 따르도록 하려고 해도 갑자기 침략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때 내세우는 구실은 그 나라에서 자신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집단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 집단이 나쁜 사람들에게 참혹한 짓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가서 지켜 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며 군대를 보내는 것이다.

미국이 베트남 남부에 군대를 파견한 것이나, 청일전쟁때 일본이 조선에 군대를 파견한 것이나 위의 경우를 따른 것이다. 예는 이 외에도 많다. 1898년 아메리카 에스파냐 전쟁 당시 미국이 쿠바에 군대를 파견한 것 역시 비슷한 사례다.

혁명이든 독립이든 결코 이웃 나라의 힘을 빌려서는 안된다. 이웃 나라의 힘을 빌려서 이룬 혁명과 독립은 결국 그 나라로의 종속을 불러올 뿐 진정한 혁명과 독립을 일구어 내지 못한다. 또한, 똑같은 것을 반대 입장에서 말하면 어떠한 나라의 혁명과 독립에 이웃나라가 끼어들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멋대로 단정짓는 일들이 전쟁을 정당화 한다. 1956년 소련이 헝가리를, 1968년에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한 일이 그렇다. 미국이 베트남에 개입한 일도 그렇다. 그들은 자신들의 체제가 가장 우월하기 때문에 전쟁과 침략이 정당화된다고 멋대로 단정했다.


5. 군인은 전쟁을 멈출 수 없다


알제리 전쟁 당시 프랑스 드골 대통령이 전쟁을 중단하고 알제리 독립을 인정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알제리 현지에 있는 프랑스군 일부가 자신들은 대통령의 명령에는 따르지 않겠다며 반란을 일으킨다. 더글라스 맥아더는 미정부의 정식 명령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본토를 직접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가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사령관직에서 해임된다.

군인은 정치가의 명령에 따른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이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에서는 정치가가 군인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경고했듯이 국산복합체의 등장으로 평화는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다. 전쟁 덕에 돈을 벌어들이다니,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6. 2차 세계 대전은 왜 일어났을까?


전쟁에는 여러가지 명목을 붙일 수 있지만 승리하면 득이 된다는 점이 어찌 되었든 근저에 깔려 있다. 독일, 일본, 이탈리아는 '가지지 못한 자' 동맹이었다. 그들은 식민지를 갖고 싶었고, 군국주의를 취하게 된다. 그리고 공산주의 반대 기치를 내걸고 미국과 영국, 소련에 대항해 전쟁을 일으킨다.


7. 미국과 소련의 대립


2차 세계대전 후에는 미국과 소련이 대립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세력권을 이뤄 대립한 것이다. 스탈린이나, 매카시나 같은 방법을 써서 체제를 유지하려 했다. 공포 조장과 숙청이다.


8. 서로서로 돕자


어느 나라 종교에서든 신이라는 존재는 정의로운 자의 편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면 신이라는 존재는 누구보다도 강하므로 신이 자신들의 편을 들어주면 당연히 승리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결국 정의로운 자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논리가 생긴다. 이 논리를 역으로 생각하면 전쟁에서 승리한 자는 정의롭다는 것이 된다.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전쟁은 승리하기만 하면 옳은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정의롭다는 것과 강하다는 것은 필연적인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가족끼리는 강자가 약자를 돕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데 비해, 학교에 가게 되면 더 이상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학습에서 경쟁하게 되고 경쟁에서 승리한 자가 어른이 된 후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고 배운다. 이것은 슬픈 일이다.


9. 종교와 전쟁


이스라엘의 유대인과 그 주변의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등의 아랍인들

키프로스 섬의 그리스인과 터키인

미국의 흑인과 백인

1971년 일어난 방글라데시 독립과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전쟁

카톨릭을 믿는 아일랜드와 영국교를 믿는 영국

스리랑카의 싱할라인과 타밀인

국왕이 미국을 지지했다가 1979년 혁명이 일어난 이란

이란을 제지하기 위해 미국이 원조한 이라크, 그러나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공격하여 벌어진 걸프전쟁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 그리고 무기를 원조했지만 탈리반에게 호되게 당한 미국


10. 인구 증가는 전쟁의 원인이 될까?


지금까지의 역사를 살펴보면 전쟁을 일으킨 것은 주로 국민이 충분히 음식을 먹고 있는 풍요로운 나라였다. 물론 급격한 인구증가로 실업자가 증가하여 그 불만을 다른 나라를 침략함으로써 돌리려고 하는 정부 때문에 전쟁이 일어날 수는 있다.


11. 전쟁은 인간의 본능?


잘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무엇이든 본능이라고 말해 버리는 것은 깊이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확실한 증거가 없는 말을 사용할 때는 상당히 주의해야 한다.


12. 평화를 위한 학습


평화와 관련된 것을 정치가와 학자들에게만 맡겨 둘 수는 없다. 왜냐하면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정치가는 국민에 의해 선출되는 것이므로 그러한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지 않은 국민이 그러한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정치가를 뽑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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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사토 다다오는 1930년생으로 14세의 나이에 소년병으로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이력이 있다. 그 뒤 철도와 전신전화공사에서 근무하다가 <영화평론>, <사상의 과학>등의 잡지에 글을 쓰기 시작, 1956년 평론집 출간 뒤 집필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한편, 영화 관련 일도 꾸준히 하고 있는데 1990년부터 '아시아 포커스 후쿠오카 영화제'의 제네럴 디렉터 직을 수행하고 있고, 1996년부터는 일본 영화학교장으로 재직중이다.

이 책은 작가가 1974년에 전쟁과 평화에 대한 상념들을 정리했던 글을 2007년에 보완한 것으로 학문적으로 깊이 있는 글은 아니지만 여러가지 함께 생각해볼 주제들을 제시하고 있다. 읽는 동안 곰곰히 생각에 잠기게 하는 대목들이 있는데, 남한 역시 베트남과 이라크에 파병한 가해국가일 수 있다는 자기반성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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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혹은 한 남자의 자살 노트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25
마틴 에이미스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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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국에서 잘 나가는 CF감독. 런던 서부에 살고, 자동차는 비싼 피에스코.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항상 담배를 물고 있는 상태.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고, 운동부족으로 과체중이며, 잇몸에 염증이 있어 치과의사의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함. 술을 입에 대면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마시고, 자위를 하든 섹스숍을 가든 욕구를 강박적으로 해소해야 함. 여자친구 셀리나 스트리트는 전형적인 금발 미녀인데, 절친 알렉 루엘린에 따르면 그녀는 오래전부터 바람을 피워오고 있다고 함. 대충 이 정도가 주인공 존 셀프를 소개하는 단편적인 문장들이다.

존 셀프의 집안은 어떤가. 부모는 존이 어릴 적에 이혼했고, 그의 아버지는 양육에 들어간 돈을  내놓으라며 소송을 제기한 전력이 있다. 존이 2만 프랑을 쥐어주어 소송은 흐지부지 되었는데, 존의 아버지는 그 2만 프랑을 밑천으로 - 경마에 몰빵해서 운 좋게도 술집 하나를 차릴 정도로 딴다 - 지금은 젊은 스트리퍼 브론과 결혼했다. 


어쨌든 존 셀프가 비행기에서 우연히 영화제작자 필딩 구드니를 만난다. 스물여섯의 필딩 구드니는 존에게 있어 "전주이자, 연락책이며, 친구" 이다. 필딩 구드니는 존에게 그럴싸한 영화를 한 편 제작하자고 제안한 뒤, 작가 도리스 아서를 고용해 시나리오 작업을 맡기고, 당대 최고의 섹시스타와 인기배우를 캐스팅 한 뒤, 존이 느끼기에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돈을 대준다.

존은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자와 관계를 맺다가, 헤로인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져 난투극을 벌이고, 그 결과 한 사람이 죽는다"는, 자전적인 요소를 잔뜩 가미한 영화를 찍고자 했다. 하지만 배우들이 저마다 자신의 배역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는 데다가, 존 역시 술과 여자에 빠져 허우적 대는 통에 작업은 별다른 진척 없이 질질 늘어졌다. 시나리오 역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때 우연히 만난 사람이 마틴 에이미스라는 작가였다. 존은 도리스 아서가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시나리오를 영화 작업하기 적합하게 고쳐 달라고 마틴에게 부탁한다. 마틴은 기존의 시나리오는 그대로 둔 채 몇몇 대사만 추가했는데, 뜻밖에도 배우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는다. 배우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들을 기존 시나리오 중간 중간 삽입해줬던 것이다.


그럼 이제 시나리오 작업이 끝났으니 영화가 잘 진행되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존 셀프의 개인적인 일들이 자꾸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먼저 여자친구 셀리나가 존을 떠난다. 존의 주변엔 제대로 된 인간이 딱 하나 있었는데, 마티나 트웨인이라는 오랜 친구였다. 그녀는 교양있고, 점잖았다. 그녀의 남편이 오시였는데, 셀리나는 오시와 오랫동안 불륜관계를 맺다가 마친내 그의 아이를 임신하는데 성공한다. 셀리나는 이를 빌미로 오시에게서 거액의 돈을 뜯어낼 수 있게 되자 존을 헌신짝 버리듯 떠난 것이다.

그럼 남편이 바람난 마티나 트웨인과 존의 관계가 진전되었을까? 그것은 그것대로 잘 되지 않는데, 관계가 끝장난 뒤 우연히 만난 셀리나와 존이 호텔방에서 관계를 맺다가 마티나 트웨인에게 목격당하기 때문이다.(셀리나의 계략이었다)

또, 존은 아버지의 법률적 부인인 브론과도 어쩌다 관계를 맺는데, 그 장면도 아버지에게 들켜 친구처럼 지냈던(사실은 의붓형제) 뚱보 폴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다. 이 사건으로 존은 그가 친부가 아니며, 자신의 친부는 뚱보 빈스였다는 사실(milkman's son 느낌)을 알게 된다.


인간관계가 파탄난 뒤에는 재정적인 파탄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주 필딩 구드니는 사기꾼이었고, 지금까지 흥청망청 쓴 돈은 죄다 존 자신의 돈이었다. 그가 술에 절어 사인한 내용은 모두 존의 돈으로 지불하겠다는 내용의 계약서였다. 존은 바닥을 친 자가 으레 하듯, 자살 노트를 쓴다. (자살은 실행되지 않는다)

그 뒤 새로운 여자친구가 생긴다. 조지나라고... 뚱뚱하고, 힘도 세서 존이 예전에 그러하듯 두들겨 패서 말을 듣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일도 시작했고, 친부 빈스도 만났다. 거지로 오인받을 정도의 몰골이긴 하지만, 지혜라든가 생활이라든가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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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에이미스는 1949년 영국 웨일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킹슬리 에이미스 역시 작가로 서머싯 몸 상을 수상한 전력이 있으며, <럭키 짐 Lucky Jim> 은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었다. 마틴 에이미스 역시 스물 네 살에 쓴 첫 번째 장편소설 <레이철 페이퍼스(73)>로 서머싯 몸 상을 수상했으니, 부자 모두 같은 문학상을 수상한 드문 사례이다.

<돈 혹은 한 남자의 자살 노트>는 1984년에 발표되었다는 것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세련된 필치와 기교를 보여준다. 거친 입담과 외설스러운 말투 이면에 숨겨진 블랙 코미디는 주인공을 밉지 않게 그리면서도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 한 자락을 보여준다. 소설을 읽다보면 1991년에 발표된 브렛 이스턴 엘리스의 <아메리칸 사이코>가 연상되는데, 아마도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말초적인 욕망들이 대상화된 물건들, 담배나 술, 의류, 자동차, 들이 홍수처럼 책속에서 쏟아지기 때문인 것 같다. 작가의 입담이 맘에 들어 <런던 필즈>도 추가로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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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멘타 하인학교 (양장) - 야콥 폰 군텐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
로베르트 발저 지음, 홍길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여기 매우 이상한 소설이 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우리는 여기서 배우는 것이 거의 없다. 가르치는 교사들도 없다. 우리들, 벤야멘타 학원의 생도들에게 배움 따위는 어차피 아무 쓸모도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는 훗날 아주 미미한 존재, 누군가에게 예속된 존재로 살아갈 거라는 뜻이다. 우리가 받는 수업은 우리에게 인내와 복종을 각인시키는 데 가장 큰 의의를 둔다. 이 두 가지 특성이 몸에 밴 채로는 성공할 턱이 없다. 아니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이쯤 되면 책 제목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벤야멘타 하인학교>. 하인을 양성하는 학교가 있는가? 그런데, 가르치는 교사도 없고, 배움도 없으며, 이곳을 거치면 인내와 복종을 내면화한 미미한 존재가 되고 만다는 데, 이런 학교에 왜 가는 것일까? 야콥 폰 군텐 이야기라고 했으니 주인공은 귀족이 분명한데...


이러한 의문들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증폭된다. 주인공 야콥은 주의회 의원의 아들로 뛰어난 가문을 버리고 가출하여 벤야멘타 남매가 운영하는 하인학교에 몸을 의탁한다. 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성공의 개념에서 한참 먼 사람이 되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야콥이 귀감으로 삼고 있는 급우 크라우스는 창의력이나 개성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수동적인 인간이고, 굳이 미덕이라는 점을 꼽아 보려 해도 우직하다는 점 정도 밖에 없다. 야콥은 그런 크라우스의 성실함을 한껀 빈정대는 행위를 일부러 반복함으로서 글를 화나게 만들고, 그런 상황에서 흡족함을 느낀다. 


벤야멘타 양은 생도들을 가르치는 선생인데, 그녀는 크라우스를 뛰어난 학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야콥에게서 매력을 느끼는 등 다소 혼란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그녀는 소설의 말미에 사망하는데, 자신의 사망을 예언하는 것으로 보아 - 자세한 설명은 나와 있지 않지만 -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는 왜 자살했을까? 그녀의 자살은 크라우스라는, 한없이 복종적인 존재에 대한 찬양에 머물지 못하고 야콥의 자유분방한 면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일까? 벤야멘타 학원에서 능동적인 행위는 곧 파멸로 이어지는 것일까? 알기 어렵다. 작가는 불친절하다.


한편, 학원의 원장인 벤야멘타 역시 거인과 같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야콥에게 약한 면모를 보인다. 그가 야콥을 대하는 태도는 동성애적 애정의 갈구로 해석될 여지마저 있다. 그러고 보니 야콥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어머니에 대해서만 간간히 꿈을 꿀 뿐. 야콥은 학원 원장을 자신의 아버지로 삼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일까?

벤야멘타 양이 죽자 벤야멘타는 야콥과 함께 사막으로 간다. 그들은 왜 사막으로 가는 것일까? 사막에는 아무것도 없다. 생명이 피어날 수 없는 곳. 그 어떤 것도 인간의 의지로 바꿀 수 없는 곳을 목적지로 하여 떠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3월 14일과 15일 양일간, 운영리스크 점검 출장이 있었다. 춘천우체국에 들렀다가, 190km 떨어진 동해로 이동해서 엘리시안 호텔(이라는 이름의 모텔) 방에서 읽었다.

언젠가, 인간이 세계를 변혁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적이 있다. 거대 프로젝트에 투신한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해, 그 처연함에 대해 찬사를 바치던 시기가 있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단련되는지', '어머니'는 어떠해야 하는지, 해답이 다 있었고, 반박은 '대의'에 어긋나는 행위였다.

그 거대 프로젝트는 이해하기도 쉬웠다. '주요한 모순' 이 하나 해결되면, '나머지 모순' 이 저절로 해결되었기 때문에, '주요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싸움에 모두가 투신하면 되었다. 그때 문제가 된 것이 있었다면, '주요한 모순'이 무엇이냐에 대한 동의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 정도였을까.


당시의 기준대로라면, <벤야멘타 하인학교>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반동 쓰레기 소설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세계의 한복판에서 '그 무엇도 아닌 존재'가 되고자 열망하는 것. 이 얼마나 부르주아적인 사치인가. 하지만, 사람은 '무엇이 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며, 그렇기에 부조리한 존재이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다시 자유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가 생기는 것 아닐까. 나는 여전히 처절한 부정으로부터 긍정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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