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년 금융위기 논쟁 공감개론신서 5
윤소영 외 지음 / 공감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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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년 금융위기: 마르크스주의적 분석과 대안>


강의는 세 단락으로 구성되는데, 첫번째 단락은 금융위기의 원인을 구조적인 것(장기적·궁극적·보편적)과 정세적인 것(단기적·직접적·개별적)으로 나누어 설명. 구조적 원인은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국경제에서 출현하는 이윤율 하락 경향을 의미하며 금융세계화와 이중적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음. 반면, 정세적 원인은 '금융혁신'과 관련.

두번째 단락은 부르주아적 정책대응에 대해 설명하는데, 재무부와 연준(FRB)의 정책기조는 겸업화와 인수합병이 주된 정책기조. 이로 인해 '은행의 좀비화' 현상이 출현. 여기에 구제금융을 통한 자본확충과 비전통적 통화정책인 제로금리정책과 수량완화정책(양적완화)를 병행하여 사용.

세번째 단락은 이번 금융위기의 전망에 대한 설명. 1930년 대불황과 금융위기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1930년대에는 이윤율이 상승하는 경향인 반면 이번에는 하락하는 경향.


* 저자는 더블딥 가능성을 상정하며 2차 대불황까지도 가정한 뒤 사회운동노조를 대안으로 제시


금융위기의 원인


이윤율의 하락 경향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은 금융위기의 구조적 원인, 즉 이윤율의 하락 경향에서 출발. 1965년까지는 이윤율이 장기적으로 상승하는 추세였으나, 65년 이후 이윤율이 장기적 하락 추세로 접어듬.

기술혁신에 의한 이윤율 상승과 금융세계화·이중적자와 관련되는 금융혁신에 기인한 이윤율 상승은 다르게 분석되어야 함.


금융세계화와 이중적자


이중적자는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말함. 금융세계화와 이중적자가 전개되면서 금융혁신이 출현하고 이윤율이 상승. 1970년대 초반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1971년 금-달러본위제 중지, 1973년 고정환율제 폐지)

1960년대까지가 케인즈주의의 전성시대인데, 이 시기 가장 중요한 특징은 금융의 억압.

1980년대는 금융세계화의 초기 단계인데 몇 가지 특징이 있음. 첫째는 런던의 유로달러시장으로 진출했던 미국의 초민족은행이 뉴욕의 증권시장으로 귀환한 것과, 은행과 증권사의 구별이 점차 소멸하여 겸업화가 출현했다는 점. 둘째는 석유달러환류를 대체하는 수출달러환류가 출현. 무역적자는 자본수입으로 보전하고, 재정적자는 국채발행으로 보전하는데, 미국은 국채 즉 재무부증권을 발행하여 동아시아로부터 자본을 수입. (동아시아의 중앙은행이 국채 매입)

미국이 이중적자를 지속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달러의 발권이익(seigniorage) 때문.


* 저자는 이러한 사정 설명에 덧붙여 박정희 대통령 암살은 이윤율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급증하는 무역적자와 외채원리금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데, 1979-80년의 정치적 격동은 결국 남한경제의 구조적 위기로 설명할 수 밖에 없다는 의견


한편 금융성숙기에 접어들기 전, 케인즈주의에 의해 억압되던 금융이 해방되면서 실물경제를 지배하는 금융우위 현상이 나타남. 실물경제 자체가 금융화되는 메커니즘은 '주주가치의 최대화' 및 '주주행동주의'가 핵심. 이를 통해 초민족기업 자체가 탈산업화되는 동시에 금융화. 이는 초민족기업이 실물경제적 축적이 아닌 금융적 축적을 지향하는 것으로 GE가 대표적인 예임.

1980년대 이후 케인즈주의를 역전시키는 새로운 경제정책인 신자유주의가 출현하면서 금융의 우위를 보장하는데, 그 핵심은 저금리를 통해 증시를 부양하고 다양한 규제·감독 철폐를 위해 겸업화를 허용하는 것임. 1990-2000년대 금융세계화를 통해 이윤율의 현실궤도는 상승하는데, 이런 상승을 주도하는 것이 실물경제가 아닌 금융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함. 이 시기 특징은 1933년 글래스-스티걸은행법 폐지로 겸업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는 점, 1990년대에 잠시 형성된 신경제거품이 붕괴되면서 증시와 주택시장을 결합한 새로운 파생금융상품을 중심으로 하는 금융혁신이 등장한 점이다. 물론 이 특징의 이면에는 겸업화와 이중적자가 전제.

주택거품이 증시거품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형성되었는데, 2007년 주택거품이 붕괴됨.

한편, 2000년대의 금융세계화는 군사세계화와 결합되는 특징도 있음.


금융혁신과 신용의 증권화


부동자산(부동산)이 유동자산(동산)으로 전환, 단시 말해 모기지론(주택담보대출)과 모기지(주택담보대출증서)가 증권으로 전환. 이렇게 부동자산과 유동자산의 경계가 소멸하는 것을 '유동화', 즉 '신용의 증권화'라 함.

은행신용은 한계가 있지만 이를 극복한 것이 증권시장. 증권시장(국채, 주식 등)

글래스-스티걸은행법은 은행업과 증권업의 결합을 금지한 것인데, 금융서비스현대화법이 제정되면서 겸업화가 본격화되고 신용이 증권화함. (주택담보부증권, 부채담보부증권, 자산담보부기업어음, 신용부도스왑...)

문제는 민간주택담보부증권임. 서브프라임(비우량) 비중이 급격히 증대한 가운데, 모기지회사가 판매하는 주택담보부증권을 증권회사가 구매. 이 과정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주택담보부증권을 또 다른 증권으로 전환하여 투자신탁기금과 연금기금, 심지어 은행과 보험회사에까지 판매함. 부채담보부증권(CDO)은 서브프라임 주택담보부증권과 프라임 주택담보부증권을 혼합(구조화), 또는 대기업 회사채와 서브프라임 주택담보부증권을 혼합하는 바람에 전체 금융기관이 연결됨. ABCP, MMF, CDS등의 형태로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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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영 교수의 강의 첫번째 단락에서 얘기하는 이윤율 저하, 이중적자와 발권이익, 신용의 증권화 부분이 주는 시사점이 많아 발췌한 것이며, 두번째, 세번째 단락은 10년여가 흐른 현재 시점에서는 시사하는 바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여 생략함

함께 수록된 <2007-09년 금융위기 논쟁 비판>은 윤종희, 박상현이 서술한 부분으로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한 진영의 학자들이 당시 어떤 입장을 경지했는지 참고할 만 하나, 금융위기가 진행중인 사정 때문에 정련된 이론체계를 이루지 못한 산발적 주장이 많은 한계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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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자친구의 장례식 - 개정판
이응준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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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on Tree>


대학을 졸업하고 두해 정도 빈둥댈 때 사귀었던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녀와 '나'는 호신술 강좌에서 만났다. 그녀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내'가 그녀처럼 병들었다는 것을 간파했다. 그녀는 피터, 폴 앤 메리의 <Lemon Tree>를 들려주며 장래 꿈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사실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면서 그녀와 어떤 식으로 헤어질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얼마 뒤, 동물원에 갔다가 '나'는 그녀의 사진기를 놓아두고 왔다며 화장실을 되짚어 간다. 그 길로 그녀에게 돌아가지 않을 셈이었다. 그녀는 얼마간 기다리다 '나'의 의도를 알아채고 동물원 출구로 걸어간다. 그녀와는 그렇게 헤어졌다. '나'는 며칠 뒤 사진기 속에 필름이 들어있지 않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그녀가 서른이 넘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두돌이 지난 딸이 있고, 열두살 차이 나는 전도사 남편이 있다고 재잘댔다.

그 다음 만남에서 '나'는 그녀에게 최면을 걸어 그녀가 '나'를 찾은 진정한 이유를 묻는다. 뜻밖에도 그녀는 남편이나 아이에 관한 말은 모두 거짓말이라 했다. 그리고 '나'를 찾아온 이유에 대해서는 서른이 넘은 어느 날, 문득 과거에 사귀었던 '내'가 여전히 자신처럼 별수 없이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진정하고 싶고 해낼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았는지 궁금했노라 말한다. '나'는 돌려주려다 돌려주지 못한 카메라를 만지작 거리며 '아무것도 아닐 순 없다'고 생각한다.


<이교도의 풍경>


전도 유망했던 판화가이자 문화비평가 구문모가 작년 9월 29일 자신의 아파트에서 음독자살한다. 그는 80년대에는 운동권이었고, 소련이 패망한 뒤에는 <새로운 세계, 새로운 희망>이라는 책을 써 '후기자본주의적 증후군들을 빛나게 갈파했다'고 격찬받으며 변신에 성공한 인물이었다.

어쨌든 그로부터 소포가 하나 배달되어 왔는데, 거기에는 옥해(獄海)라는 다소 묘한 지명에 가서 소포를 전달해달라는 부탁이 쓰여 있었다.

소포를 보관하던 '나'는 반년이 지나서야 옥해로 간다. 옥해에서 다방 여급과 하룻밤 연정을 나눈 다음 날, 지정한 주소로 찾아갔지만 만나야 할 주선욱은 '나'를 피하는 눈치였다. 여동생에게 사정을 설명했지만 그녀의 태도도 아리송했다. 얼마 뒤 그녀를 통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나'는 구문모가 사랑했던 사람이 동성의 주선욱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는 문득 숨을 헐떡이며 육지로 올라오려는 애처로운 표정의, 낙타가 그리워 사막을 가는 무모한 고래를 떠올린다.


<내 가슴으로 혜성이 날아들던 날 밤의 이야기>


'나'는 인문계 사립고등학교에 뺑뺑이로 들어갔지만 2학년이 되자 간단한 테스트를 거쳐, 중요 과목의 수업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간을 미대 진학반 작업실에서 보냈다. 길수형은 당시 미술반의 선배였다.

길수형은 미술 선생님이 지정해 주신 수채화 데생말고도, 입시엔 필요하지도 않은 유화를 자주 그렸다. 유화는 수채화와 달리 어두운 색에서 시작해 윗부분으로 갈수록 밝은 색으로 칠해가는게 기본 기법이다. '나'는 삶이 유화처럼, 세상의 바탕을 마땅히 고통스럽고, 슬프고, 쓸쓸하고, 외로운, 곧 어둠의 색으로 인정해야 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길수 형의 가방을 충동적으로 뒤져 스케치북을 본 적이 있었다. 스케치북에는 풍만하고 아름다운 여자들이 기름기 흐르는 근육질의 남자들과 갖가지 포즈로 성교를 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한동안 넋이 나가 있던 나를 발견한 길수형이 분노로 이글거리며 다가와 따귀를 갈겼고,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나'는 내게서 '무엇'이 빠져 나가고, '또다른 무엇'이 들어오는 희안한 체험을 하게 된다.

결핵이 의심되는 고열에 시달린 뒤, '나'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다. 그림 그리는 법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이다.

'나'는 그 뒤 카메라 기자가 되었고, 소연이라는 아가씨와 사귀게 되지만 언제나 과거의 경험 때문에 종종 '다른 사람' 처럼 행동하게 되고, 소연은 그런 '나'에게 미국자리공이라는 귀화식물에 대해 이야기 한다.

다시 길수형 이야기로 돌아가, 길수형은 비박(Biwak)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산을 제대로 알 수 없는 법이라 했다. 산의 신비와 밤의 어둠, 그리고 턱을 들면 바라다보이는 하늘의 무한한 깊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박을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길수 형은 에베레스트로 갔고,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혜성 햐쿠타케가 지구를 스쳐지나가던 시기에, 과거의 경험을 다시 반복한다. 소연은 '나'를 떠났다.

인생이 비의(秘意)로 가득찬 오지라면, 그래서 우리 모두가 탐험가라면, 이제 '나'는 천공에 달려 비박을 하는 사람으로 뭔가에 들떠 잠 못 들 준비가 되어 있는 참이라고 느꼈다.


<그녀에게 경배하시오>


'나'와 s는 록 카페에서 만났는데 '내'가 그녀의 직업을 단박에 알아맞혀 가까워지게 되었다. s는 불가사리다. 그녀가 먹어치운 쇳덩어리가 경비행기 한 대 분량쯤 된다. 어렸을 적에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었기 때문에 특별한 능력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는데, 마침 쇠를 먹어치워도 괜찮을 만큼 위벽이 두껍고 위산분비가 잘 됐다고 했다. 그녀는 춘천에서 왔는데, 이제는 미국에 가서 한대수를 만나겠다고 했다. 유독 '왜'만 'why'로 치환해서 말하는 말버릇을 가진 s.

일요일 이른 아침 T를 만난다. T의 부친은 입시 재벌이다. 최근 '나'는 동성애자인 T의 약점을 들춰내는 작자를 몽키스패너로 작살내준 적이 있다. 그걸 빌미로 돈을 우려낸 날, 집 부근에 스포츠 머리 형사들이 어른거렸다. '나'는 받은 돈을 s에게 주며 그녀의 행복을 빌어준다. 얼마 뒤 식당에서 나는 벽에 걸린 TV에서 s가 <기인열전>에 출연해 쇳덩어리를 먹는 장면을 본다. '나'는 결코 s를 비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미 어둠의 계보를 알고 있었다>


수영이 이 달 말에 미니애폴리스로 간다고 선언한다. 그녀는 주립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할 예정이고, 멋진 자동차도 몰겠다고 했다. 수영은 준기의 여자친구였고, 준기는 죽었다.

사업으로 성공한 '형'은 '나'를 철부지 취급하며 인생의 비밀을 안다는 듯이 잘난 척 했고, 진득하니 사업이나 배우라고 했다. '나'는 그런 형 앞에서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지만, 사업을 배울 생각은 없었다. 대학원에 복학한다. 종교학과 대학원생은 미오와 '나' 둘 뿐이었다. 미오는 냉장고니, 라디오니 하는 걸 어디선가 주워와서 뚝딱뚝딱 고치는 재주가 있었다. 미오와 '나'는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티벳의 천장(天葬)이니 견장(犬葬)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 끝에 미오는 한의사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미오에 대해 알 수 없다고 느끼고, 그런 '나'에게 미오는 시절인연(時節因緣)이니, 줄탁동기(啐啄同機)니 해가며 또 알 수 없는 소리를 뇌까렸다.

문득, 준기와 무당을 찾아갔던 때가 떠오른다. 무당은 준기에게 '이미 없는 놈' 이라고 했고, '나'에게는 '허송세월 하다 서른다섯 넘어 뭘 끄적거리는게 성과가 있을거' 라고 했다.

수영으로부터 엽서가 날아들었다. 수영은 포르쉐를 몰고 싶다 했지만 기껏 1990년산 폭스바겐을 밤이면 있는 대로 밟고 다닌다고 한다. '나'는 아무렴 어떠랴 하는 심정이었다.

미오가 어디서 고물 오토바이를 구해서 고쳐왔다. '나'와 미오, 그리고 철학과 조교 정아씨, 이렇게 다 큰 어른 셋이 오토바이를 타고 살곶이 다리까지 간다. 셋은 그곳에서 쓸쓸한 대화를 나눈다.

학교에서 한총련 출범식이 열리자 경찰은 학교의 모든 통로를 차단했다. 그에 맞서는 학생들은 연일 강도 높은 시위를 해댔다. 전경이 한차례 밀어닥쳤고, 앳된 신입생 하나가 다리를 다쳐 피를 흘렸다. '나'는 그 학생을 치료한 뒤 헌 신발을 내주었다. 학생은 종교학은 뭘 공부하느냐고 묻고,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앳된 신입생이 경영학과에 다닌다길래 '나' 역시 그건 뭐하는 건지 묻고, 학생은 '지도 몰라예' 한다. 둘은 한참을 웃었다. '나'는 외롭기 때문에 낯선 이에게 약을 발라주고, 붕대를 묶어주고, 수건과 비누를 건네주었음을 깨닫는다.

전경이 학교로 들어오진 않았지만 전경 하나가 페퍼포그 차에 깔려 죽었고, 무고한 시민이 프락치로 몰려 학생들에게 맞아 죽었다.

미오의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날아온다. 그날 '내'가 느낀 감정은 놀랍게도 절친한 친구의 불행에 대한 걱정이라든가 동정이 아니라, 일종의 설렘이라는 것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교문으로 이어진 가파른 언덕을 내려가다 정아를 본다. 그녀가 매우 특별해 보인다는 것이 놀랍다. 살다 보면,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오직 한 사람이 떠난 것일 뿐인데도, 마치 전 세계가 송두리째 상실된 듯한 기분이 드는 때가 있다. 그러나 뿌듯한 사랑은 반드시 찾아오고, '나'는 그 불꽃스런 힘을 그 순간 느꼈다.


<지평선에서 헤어지다>


독일 유학 당시 알고 지내던 진석 형이 임서현이 결혼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온다, 남자의 직업은 의사고, 재혼이라 했다. 당시 '나'는 독일 유학에서 돌아와 잘 팔리지 않는 남성전용잡지를 만들고 있었다. 곧 실업자가 될 예정이었고, 임서현의 소식으로 다소 우울한 감정을 느낀다.


독일로 떠난 것은 유학생활을 가장한 사치스런 유람이자 먼 곳으로의 정처없는 도피생활이었다. 가자마자 외로움을 심하게 느꼈다. 어느 날, 여섯 시간 동안 접시를 닦아 돈을 벌었다. 아는 사람과 진탕 술을 마시고 싶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고, 우연히 한인 감리교회를 통해 알게된 임서현과 술을 마시게 된다. 임서현과 나는 그날 꽤나 죽이 맞아서 오랫동안 얘기했는데, 그녀가 자기가 쓴 동화를 들려주었다. 내용은 이랬다.

아이들만 사는 별이 있는데, 남극과 북극에 샘물이 하나씩 있었다. 사내아이는 남극에서, 계집아이는 북극에서 물을 떠 마셔야 어른이 될 수 있었다. 사랑하는 소년과 소녀가 있었는데 그들은 어른이 되어 사랑을 이루고 싶었다. 둘은 지평선에서 각각 북극과 남극으로 길을 떠난다. 

왜 하필이면 지평선에서 떠났느냐고 '내가 묻자 임서현은 지평선에서 헤어져야 그들이 멀어져가는 모습을 누군가 가장 오래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임서현 7년 사귄 남자가 있다 했다. 그날 밤, '나'는 전철을 놓쳤고, 서현은 자신의 현관문을 열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야윈 등으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얼마 뒤 외로움이 사무쳐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그녀는 오라 했지만,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서울로 돌아온 뒤 멀리서 흐느끼는 전화가 걸려온다. 그녀였던 것 같다.


결혼식이 끝난 뒤에야 도착한 '나'는 신부화장을 한 그녀를 본다. 무엇인가, 그녀의 맨살에 머물던 그 시절의 외로움을 요령껏 아름답게 감추고 있었지만, 찬찬히 살펴본 그녀는 결국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대로이고, 그러하기에 영원히 '내'가 알지 못하는 그녀였다.


<내 여자친구의 장례식>


장례버스는 해저물 녘 우리를 서울역 광장에 떨어뜨려 놓았다. 다들 쭈뼛쭈뼛 눈치를 살피다가 종로통으로 몰려갔다.


심병삼씨는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가 주는 교훈이 '누군가를 거짓말할 정도로 고독하게 만들면 불행한 일이 생긴다' 라고 독특한 해석을 할 줄 알았다. 그는 Ernest Hemingway라는 이름의 카페를 경영하면서 커피 감음회를 열었다. 거기엔 사진작가, 서양미술사 교수, 오토바이 수리공, 사법고시생, 공인중개사, 피혁공장 사장, 동물병원 원장 등이 드나들었다.


은희는 연극배우였다. 그녀와 '나'는 어느 날 문예회관 대극장 옥상 문 앞에서 관계를 한 적이 있다. 은희의 요구였다. '기념식수'라는 알 듯 모를 듯한 말은 일주일 뒤 파혼이라는 통고로 의미가 명확해진다.


심병삼씨가 죽고, 드나들던 사람들이 경찰에 불려가서 조사를 받는다. 알고보니 그들은 커피를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감음회는 심심파적이었던 것 같다.


휴대폰을 꺼내 은희에게 전화를 건다. 너의 장례식에 다녀왔다고, 청혼했던게 사실인지 거짓인지 궁금하다고, 어짜피 너와 행복하지 못했을 것 같으니 헤념하는게 나을지 궁금하다고 중얼거린다. 문득 은희는 쓸쓸한 양치기 소년이고, '나'는 아랫마을의 무심한 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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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전후 소설들을 관통하는 묘한 정서가 있다. 쓸쓸함, 외로움, 죽음, 이별 등을 주조로 한 고즈넉한 정서. 한 시대가 끝나고, 희망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면 사람들은 실존주의에 경도되는지도 모르겠다.

이응준은 매우 시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작가인데, 다소 기교적으로 흐르는 곳이 눈에 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개똥벌레>와 <노르웨이의 숲>을 연상시키는 곳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어둠의 계보를 알고 있었다>는 마음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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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12
플뢰르 이애기 지음, 김은정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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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플뢰르 이애기는 1940년 7월 31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으나, 훗날 로마에 정착하여 이탈리아어로 소설을 쓴다. 잉게보르크 바흐만, 토마스 베른하르트 등과 친교를 나눴고 배우자는 작가이자 편집자인 로베르토 칼라소이다. 데뷔작은 <손가락을 입에 물고> 이며, <수호천사>, <물의 형상> 등이 주요 작품이다.

상복이 꽤 많은 편인데 1989년 발표된 <아름다운 나날>은 이탈리아의 가장 오래되고 권위있는 문학상인 바구타 상과 유럽 보카치오 상을 수상하였고 수전 손택이 심사하고 <타임>이 뽑은 2003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다. <하늘의 두려움>으로 모라비아 상을, <프롤레테르카 호>로 바일라테 알데리고 살라상과 비아레조 상을 수상했다.


<아름다운 나날>은 14살의 소녀가 기숙학교에서 프레데리크라는 소녀를 만나 우정과 동성애와 경외심 그 어디쯤의 감정을 느끼는 내용이고, <프롤레테르카 호> 역시 14살의 소녀가 자신과 피가 섞이지 않은 아버지와 열나흘 동안 크루즈 여행을 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라고 파악된다.


문체는 매우 건조하고, 종종 종잡을 수 없는 서술이 이어진다. 오역이 아닌지 의심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우리는 자살에 집착하면서, 어쩌면 자살에 비균형적인 관심을 두었고, 무엇보다 초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자살 사건들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알고 싶어 했다. 우리 친족들 누구도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을, 사람들 말로는, 그 남자가 열두 번 종이 치기를 기다렸고, 종소리가 다른 모든 소리를 덮어 버렸다고 했다.


도대체 '비균형적 관심' 이 뭔지도 의문이지만, 쉼표가 만능이라도 되는 양 쉼표를 기준으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 문장에 가둬두고 있어서 지독히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보라. 이런 문장들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종잡을 수 없는 내용이 비문에 다를 바 없는 번역과 시너지 효과를 내는 <아름다운 나날>의 번역가는 김은정이며, 임정희가 번역한 <마리 퀴리의 지독한 사랑>, 김연경이 번역한 <악령>, 김준호가 번역한 <불만의 겨울>과 함께 번역이 엉망인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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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 네버랜드 클래식 24
L. 프랭크 바움 지음, 윌리엄 월리스 덴슬로우 그림, 김석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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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는 미국 캔자스 주의 넓은 들녘 한복판에서 농부인 헨리 아저씨와 그 아내인 엠 아줌마, 그리고 털이 북슬북슬한 강아지 토토와 함께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회오리바람이 불어와 도로시네 집을 이상하고 아름다운 고장 한 복판에 내려놓았다.

도로시와 토토가 문을 열고 나가자 이상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도로시를 반겨주었다. 그들은 끝이 뾰족한 둥근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모자 테에는 작은 방울이 달려 있어서 움직일 때마다 딸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고귀하신 마법사 아가씨, 먼치킨의 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가씨가 동쪽의 못된 마녀를 죽여 준 덕분에 우리 백성들은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었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먼치킨들이 가르키는 곳을 보니 집을 받치고 있는 통나무 밑에 끝이 뾰족한 은구두를 신은 발이 튀어나와 있었다. 공교롭게도 도로시의 집이 동쪽 마녀의 머리 위에 떨어져 마녀가 깔려죽은 것이었다.

먼치킨들에 따르면 오즈의 나라에는 마녀가 네 명 살고 있는데, 북쪽과 남쪽에 사는 마녀는 착한 마녀이고 동쪽과 서쪽에 사는 마녀는 못된 마녀라고 했다. 또 에메랄드 시에는 오즈라는 위대한 마법사가 살고 있는데, 도로시가 캔자스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북쪽 착한 마녀가 도로시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마에 입맞춤을 해주자 도로시는 동쪽 마녀의 은구두를 신고 토토와 함께 에메랄드시로 가기 위해 노란 벽돌길을 따라 여행을 떠난다.


길을 걷다가 도로시는 들판에 세워진 허수아비를 만난다. 허수아비는 자신이 밀짚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머릿속에 아무것도 든 것이 없다며 슬퍼했다. 도로시가 오즈 마법사 이야기를 하자 허수아비는 그가 자신에게 머리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따라 나선다.

얼마나 길을 갔을까, 도로시와 허수아비는 숲 속에서 낮은 신음소리를 듣게 된다. 그 소리는 양철나무꾼이 내는 소리였다. 양철나무꾼은 이음매가 녹이 슬어 굳어진 채로 있었는데 도로시가 기름칠을 해주자 곧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양철나무꾼은 못된 마녀 때문에 팔과, 다리, 머리 등을 차례로 잘리웠는데 그때마다 땜장이가 양철로 새로운 몸을 만들어주었다고 했다. 그런던 어느 날, 마녀가 마지막 남은 몸통 마저 둘로 쪼개버렸기 때문에 결국 온몸이 양철로 된 나무꾼이 되었는데 그때 마음을 잃어버렸다며 무척 슬퍼했다. 결국 양철나무꾼도 오즈에게 마음을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일행에 합류한다.

또 얼마나 길을 갔을까, 일행이 숲 속에 들어가자 '어흥' 하는 소리와 함께 사자가 나타났다. 사자가 토토에게 덤벼 들려고 하자 도로시가 사자의 코를 힘껏 후려치면서 부끄럽지도 않냐고 소리쳤다. 그러자 뜻밖에도 사자가 부끄러워서 고개를 떨어뜨리며 자신은 덩치만 크지 사실은 겁쟁이라고 했다. 사자도 용기를 얻기 위해 여행에 함께한다.


도로시와 토토, 허수아비, 양철나무꾼, 사자는 때로는 지혜로, 때로는 용기로 역경을 헤쳐 나간다. 절벽은 사자가 모두를 등에 태우고 훌쩍 뛰어서 건넜다. 몸뚱이는 곰 같고 머리는 호랑이 같이 생긴 칼리다라는 짐승은 허수아비가 꾀를 내서 해치운다. 강은 양철나무꾼이 뗏목을 만들어서 건넜다.

죽음의 양귀비 꽃밭에서는 상당히 곤란을 겪기도 했지만 들쥐 여왕을 살쾡이로부터 구해준 덕분에 도움을 받아 무사히 위기를 넘긴다.


마침내 에메랄드 시에 도착한 도로시와 일행은 입구에서 문지지가 나누어준 초록색 안경을 쓰고 도시 안으로 들어간다. 거리에는 초록색 대리석에 반짝이는 에메랄드를 아로새긴 아름다운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들 역시 초록색 대리석이 깔려 있는 길을 걸어갔다. 마침내 오즈 마법사의 궁궐에 도착하자 병사와 하녀가 도로시 일행이 쉴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해주었다. 

다음 날, 도로시가 오즈를 만나기 위해 방에 들어가자 옥좌에 커다란 '머리'가 있었다. 오즈는 도로시에게 은구두를 어디서 얻었는지, 이마의 입맞춤 자국은 누구한테서 얻은 것인지, 소원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도로시는 사실대로 말한 뒤, 자기의 소원은 아저씨와 아줌마가 계신 캔자스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즈는 서쪽의 못된 마녀도 죽이고 오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한다. 도로시는 상심해서 울음을 터뜨린다.

다음으로 허수아비가 오즈를 만나러 가니, 에메랄드 옥좌에 아름다운 귀부인이 앉아 있었다. 이번에도 오즈는 허수아비에게 서쪽 마녀를 죽이고 오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한다. 허수아비 역시 슬픔에 잠긴다.

다음 차례는 양철 나무꾼이었는데, 이번에 나타난 오즈는 무시무시한 짐승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코끼리 만큼이나 몸이 컸고, 머리는 코뿔소 같았지만 눈이 다섯 개나 달려 있었으며, 몸통에는 다섯 개의 긴 팔이 달려 있었다. 또한 길고 가느다란 다섯 개의 다리가 있었고, 헝클어진 털이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이번에도 오즈는 양철나무꾼에게 서쪽 마녀를 죽이고 오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한다. 나무꾼 역시 몹시 실망했다.

마지막으로 사자가 들어가니 오즈는 맹렬히 타오르는 불덩어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오즈는 사자에게 서쪽 마녀를 죽이고 오라고 명령한다.


서쪽 마녀를 죽이지 않으면 소원을 이룰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 도로시 일행은 위험하긴 하지만 모험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눈은 하나 뿐이어도 어디든지 다 볼 수 있는 서쪽 마녀가 도로시 일행의 계획을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다. 그래서 늑대에게 도로시 일행을 죽이고 오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늑대들은 양철나무꾼이 휘두른 도끼에 모두 죽어버렸다. 화가 난 서쪽 마녀는 까마귀 떼를 보낸다. 하지만 허수아비가 까마귀를 유인해서 모조리 목을 비틀어 버린다. 마지막으로 벌떼를 보내지만 이를 눈치챈 도로시 일행이 양철나무꾼만 빼고 모조리 숨어버리는 통에 벌떼는 양철나무꾼에게 침을 쏜 뒤 모두 죽어버렸다. 서쪽 마녀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노예로 삼은 윙키들을 보냈지만 이번엔 사자가 으르렁 거리며 덤벼들어 모두 쫓아버린다.

마녀는 마지막으로 선반에서 금으로 된 모자를 꺼내서 썼다. 모자는 날개 달린 원숭이를 세 번 불러낼 수 있는 신기한 능력이 있었다. 원숭이들은 양철나무꾼과 사자를 높이 들어올렸다가 던져버렸고, 도로시와 사자, 그리고 토토는 서쪽 마녀에게 끌고 갔다.

서쪽 마녀는 도로시의 이마에 있는 입맞춤 자국 때문에 해치지는 못했지만 도로시가 신고있는 은구두는 매우 탐이 났다. 그래서 매일같이 도로시에게 힘든 일을 시키며 학대하다가 도로시의 한쪽 구두가 벗겨지자 얼른 신발을 빼앗아 신어버렸다. 이에 화가난 도로시가 물통을 들어 마녀에게 쏟아 버렸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마녀는 물이 몸에 닿자 점점 오그라들고 쭈그러지더니 완전히 녹아서 없어져 버렸다.

도로시는 사자와 함께 성으로 가서 윙키들을 불러모은 뒤, 그들이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고 선언한다. 그런 다음 땜장이를 불러 양철나무꾼을 수리하고, 질 좋고 깨끗한 짚을 구해다가 허수아비의 몸 속에 채워 넣었다. 그리고 찬장에서 서쪽 마녀의 모자를 쓴 뒤 에메랄드 시로 출발한다.


에메랄드 시로 가는 방법을 들쥐들에게 물어보자 들쥐들이 서쪽 마녀의 황금 모자 사용법을 알려준다. 도로시는 날개 달린 원숭이들을 불러서 에메랄드 시로 돌아간다.

도로시가 서쪽 마녀를 없앴다는 소문은 금새 에메랄드 시에 퍼졌다. 하지만 오즈는 도로시 일행을 만나려 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도로시는 만약 오즈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날개달린 원숭이들을 시켜 혼내주겠다고 선언한다. 오즈는 과거에 서쪽에서 날개달린 원숭이에게 혼이 나서 쫓겨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도로시 일행을 만나기로 한다.

오즈 마법사의 방으로 가니 엄숙한 목소리만 들렸다. 도로시 일행은 소원을 들어달라고 외쳤지만 오즈는 뜨뜻미지근한 태도로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다는 맥빠진 소리만 중얼거린다. 그러자 사자가 으르렁 거리며 겁을 주었고, 깜짝 놀란 토토가 펄쩍 물러서다가 방 구석에 세워놓은 병풍을 넘어뜨리고 만다. 그러자 그곳에서 대머리에 얼굴은 온통 주름살 투성이인 작달막한 늙은이가 나타난다.

사실 오즈는 서커스에서 큰 풍선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기구를 잡고있는 밧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이곳에 오게된 것이었다. 사람들은 오즈가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위대한 마법사라고 생각했고, 오즈는 그들을 속여 왕처럼 살았던 것이다.

어쨌건 오즈는 소원을 들어줄 수 있다고 장담하며 다음 날 다시 오라고 했다. 다음 날 오즈는 허수아비에게 왕겨와 핀, 바늘을 가지고 만든 새로운 두뇌를 주었고, 양철나무꾼에게는 비단 주머니에 톱밥을 채워 넣은 예쁜 모양의 마음을 주었으며, 사자에게는 용기를 내는 마법의 약을 주어 먹게 했다. 모두들 자신의 소원이 이뤄진 데 대해 매우 기뻐했다.

마지막으로 도로시의 소원을 들어줄 차례였다. 오즈는 에메랄드 시에서의 생활이 슬슬 지겨워지고 있었기 때문에 도로시와 함께 기구를 타고 캔자스로 가기로 했다. 며칠 동안 열심히 기구를 만든 뒤 뛰우는 순간, 토토가 사라져 도로시는 기구에 타지 못한다. 아쉽게도 오즈 혼자서 기구를 타고 하늘로 날아가버린다.


켄자스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진 도로시는 너무 슬퍼서 엉엉 울었다. 다른 일행들도 모두 함께 슬퍼하고 있을 때, 한 병사가 글린다에게 도움을 청해보라고 권한다. 글린다는 남쪽에서 콰들링들을 다스리며 사는 착한 마녀였다.

도로시 일행은 나무들의 공격을 물리치고, 도자기들로 이뤄진 도시를 지난 뒤 숲으로 간다. 그 숲에는 거미처럼 생긴 괴물이 살고 있었는데, 이제는 용감해진 사자가 괴물을 물리치고 동물의 왕이 된다. 망치 머리들의 공격을 피해 성으로 가니 빨간 루비 옥좌에 앉은 글린다가 있었다. 그녀는 젊고 아름다워 보였으며, 숱 많은 빨간색 머리가 어깨까지 치렁치렁 드리워져 있었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파란 눈의 글린다가 상냥하게 도로시를 바라보며 무엇을 도와주면 좋은지 묻자, 도로시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했다. 회오리바람에 실려 오즈의 나라에 간 이야기, 친구들을 만난 이야기, 그 동안 겪은 놀라운 모험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털어 놓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켄자스로 돌아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글린다는 황금 모자를 주면 방법을 가르쳐주겠다고 말한다. 황금 모자를 주가 글린다는 다른 일행에게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물었다. 허수아비는 에메랄드 시 사람들이 자기를 임금으로 삼았고, 자기도 에메랄드 사람들이 좋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고 싶다고 말한다. 다음으로 양철나무꾼들은 윙키들이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임금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고 싶다고 말한다. 사자는 언덕 너머 숲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글린다는 날개달린 원숭이들을 불러 그들이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겠다고 말한다. 또한, 도로시가 신고 있는 은구두의 뒤꿈치를 세 번 맞부딪히면서 켄자스로 데려다 달라고 말하면 집으로 갈 수 있다고 알려준다. 친구들은 작별이 아쉬워 눈물을 흘렸다. 착한 마녀 글린다도 도로시에게 작별의 입맞춤을 해주었다. 도로시는 토토를 힘껏 끌어안고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 다음 은구두의 뒤꿈치를 세 번 맞부딪혔다.

엠 아줌마가 양배추 밭에 물을 주려고 나오다 도로시를 보고 뛰어와 얼굴에 입맞춤을 퍼부었다. 은구두는 하늘을 날아오는 동안 벗겨져서 사막에 묻혀 버린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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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에 출간된 <오즈의 마법사>는 도로시라는 평범한 시골 소녀가 환상적인 오즈의 나라로 모험을 떠나는 내용인데, 거기서 만나는 친구들은 자신의 진짜 능력을 깨닫지 못한 순박한 캐릭터들이다. 어려움이 닥치면 현명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허수아비, 누구보다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양철나무꾼, 두려움에 떨면서도 친구들을 위해 용기를 내는 사자. 그래서 동화를 읽는 내내 진정한 지혜란, 진정한 사랑이란,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아름답고 풍요로운 나라 오즈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도로시. 세상 어느 곳 보다도 집만한 곳은 없다는 것은 일견 단순해 보이는 주제이지만, 헨리 아저씨와 엠 아줌마가 혈연으로 엮인 가족이 아니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렸을 적부터 다양한 형식의 생산물로 <오즈의 마법사>를 소비해 왔지만, 원본을 제대로 읽어본 기억은 없어서 소설가 김석희의 번역본으로 사다 읽었다. 나중에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가급적 줄거리를 충실하게 축약해서 적어 놓았다.

 

어린이 동화에 수록된 OZ라는 단어의 연원은 이렇다. 작가가 알파벳 순서로 파일을 정리하는데 A부터 N까지가 첫째칸, O부터 Z까지가 둘째 칸이어서 둘째칸의 라벨을 따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즈의 마법사>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시도가 있는데, 그에 따르면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그 내용이 사뭇 흥미로워 여기 옮겨 적어본다.


<출처: 나무위키>


L. 프랭크 바움은 원래 포퓰리즘에 빠진 대중주의자였다. 처음 출판에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후에 고등학교 선생 헨리 리틀필드에 의해 포퓰리즘 메시지가 담겨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작가가 직접 인정한 게 아니라 공인된 것은 아니지만, 알고 보면 너무 딱 들어 맞아서 의도하지 않았다고는 하기 힘들다. 해석한 바에 따르면 심볼리즘은 아래와 같다:

  • 허수아비는 당시 인플레이션과 금본위제도에 의해 파산한 농부

  • 양철나무꾼은 안전규정 없이 낮은 임금으로 일하던 노동자

  • 겁쟁이 사자는 1896년 대선 후보였던 윌리엄 J.브라이언

  • 동쪽의 마녀는 거대 트러스트 기업들(록팰러, 카네기, JP모건 등등)과 은행

  • 도로시는 일반 미국(중산층) 시민들

  • 에메랄드 도시는 워싱턴 D.C

  • 날아다니는 원숭이들은 아메리카 원주민


외에도 노란 벽돌 길은 금본위제도를 상징하며, 도로시가 원래 신고 있던 은신발은 은본위제도를 상징한다. 1883에 목화의 값이 급감하면서 타격받은 농민들은 쌓인 빛 때문에 고생하였는데, 금본위제도에서 은본위제도로 넘어가게 되면 통화의 가치가 내려가면서 지고있던 빚도 내려가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걸 이용해 농민들에게 어필한 게 브라이언의 "그렌지" 당이었다. 톰 왓슨, 벤저민 틸먼, 레오니다스 폴크 등의 정치인들을 정계로 넣는데에는 성공하나 결국 공화당에게 패배하고 대중주의가 식어버려 분열하여 사라진다.

또한 은 신발(은본주의)을 신고 노란 벽돌 길(금본주의)을 걸으며 양철나무꾼(노동자), 허수아비(농부)와 같이 에메랄드 도시(수도)로 향한다는것은 당시 정치상황에 대한 적합한 비유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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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
야기사와 사토시 지음, 서혜영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사귄 지 1년 된 연인 히데아키가 돌연 "나, 결혼해"라는 말을 꺼냈을 때, 다카코는 무슨 말인지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와 헤어진 뒤 홀로 자취방으로 돌아온 뒤에야 다카코는 조금씩 머리가 냉정해지면서 슬픔에 잠긴다.

회사를 관두고 매일 잠으로 도피하던 다카코에게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외삼촌이 전화를 걸어온다. 외삼촌은 중고서점들이 모여있는 진보초 역 인근에서 '모리사키 서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2층에 방이 비어있으니 언제든 와서 마음껏 지내라고 했다. 아마도 다카코의 사정을 들은 어머니가 걱정이 되서 외삼촌에게 연락한 모양이었다.

규슈로 돌아오든지 모리사키 서점으로 가서 한동안 지내든지 택일해야 했던 다카코는 서점으로 가서 지내는 편을 택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근현대문학에 애정을 갖고 있는 손님들과 소박한 이웃들을 만나면서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마침내 히데아키를 찾아가 자신이 상처받았음을 분명히 이야기함으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모모코 외숙모가 외삼촌에게 되돌아온 이야기와 다카코가 와다씨라는 상큼한 청년과 가슴 두근거리는 연애를 새로 시작한 이야기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소설은 감수성 예민한 시기라면 그럭저럭 읽힐 내용이다.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깊이 같은 것이 없어도 독특한 분위기만 있으면 가슴 찡할 시기가 아닌가. 하지만 40대에 접어는 나는 주인공의 아픔과 극복하는 과정에 그다지 공감하지 못했다. 삶은 소설보다 훨씬 심각한 상처를 개인에게 남기고, 그것을 극복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영화로 만들어졌다면 영상이 예쁠 것이라 생각했는데 휴가 아사코 감독, 기쿠치 아키코 주연, <모리사키 서점의 하루하루>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도 개봉이 된 모양이다.


작품의 배경이 근현대 일본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서점이다 보니 작가와 작품들이 인용되는데 참고 삼아 적어본다.


언급된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나쓰메 소세키

모리 오가이

시가 나오야

다네다 산토카

나가이 가후

다니자키 준이치로

사토 하루오

우노 코지

후쿠나가 다케히코

오자키 가즈오


언급된 작품


<어느 소녀의 죽음까지> 무로 사이세이

<여학생> 다자이 오사무

<어느 마음의 풍경> 가지이 모토지로

<언덕의 중간> 이나가키 다로호

<우정> 작자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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