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년 금융위기 논쟁 공감개론신서 5
윤소영 외 지음 / 공감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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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년 금융위기: 마르크스주의적 분석과 대안>


강의는 세 단락으로 구성되는데, 첫번째 단락은 금융위기의 원인을 구조적인 것(장기적·궁극적·보편적)과 정세적인 것(단기적·직접적·개별적)으로 나누어 설명. 구조적 원인은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국경제에서 출현하는 이윤율 하락 경향을 의미하며 금융세계화와 이중적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음. 반면, 정세적 원인은 '금융혁신'과 관련.

두번째 단락은 부르주아적 정책대응에 대해 설명하는데, 재무부와 연준(FRB)의 정책기조는 겸업화와 인수합병이 주된 정책기조. 이로 인해 '은행의 좀비화' 현상이 출현. 여기에 구제금융을 통한 자본확충과 비전통적 통화정책인 제로금리정책과 수량완화정책(양적완화)를 병행하여 사용.

세번째 단락은 이번 금융위기의 전망에 대한 설명. 1930년 대불황과 금융위기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1930년대에는 이윤율이 상승하는 경향인 반면 이번에는 하락하는 경향.


* 저자는 더블딥 가능성을 상정하며 2차 대불황까지도 가정한 뒤 사회운동노조를 대안으로 제시


금융위기의 원인


이윤율의 하락 경향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은 금융위기의 구조적 원인, 즉 이윤율의 하락 경향에서 출발. 1965년까지는 이윤율이 장기적으로 상승하는 추세였으나, 65년 이후 이윤율이 장기적 하락 추세로 접어듬.

기술혁신에 의한 이윤율 상승과 금융세계화·이중적자와 관련되는 금융혁신에 기인한 이윤율 상승은 다르게 분석되어야 함.


금융세계화와 이중적자


이중적자는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말함. 금융세계화와 이중적자가 전개되면서 금융혁신이 출현하고 이윤율이 상승. 1970년대 초반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1971년 금-달러본위제 중지, 1973년 고정환율제 폐지)

1960년대까지가 케인즈주의의 전성시대인데, 이 시기 가장 중요한 특징은 금융의 억압.

1980년대는 금융세계화의 초기 단계인데 몇 가지 특징이 있음. 첫째는 런던의 유로달러시장으로 진출했던 미국의 초민족은행이 뉴욕의 증권시장으로 귀환한 것과, 은행과 증권사의 구별이 점차 소멸하여 겸업화가 출현했다는 점. 둘째는 석유달러환류를 대체하는 수출달러환류가 출현. 무역적자는 자본수입으로 보전하고, 재정적자는 국채발행으로 보전하는데, 미국은 국채 즉 재무부증권을 발행하여 동아시아로부터 자본을 수입. (동아시아의 중앙은행이 국채 매입)

미국이 이중적자를 지속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달러의 발권이익(seigniorage) 때문.


* 저자는 이러한 사정 설명에 덧붙여 박정희 대통령 암살은 이윤율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급증하는 무역적자와 외채원리금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데, 1979-80년의 정치적 격동은 결국 남한경제의 구조적 위기로 설명할 수 밖에 없다는 의견


한편 금융성숙기에 접어들기 전, 케인즈주의에 의해 억압되던 금융이 해방되면서 실물경제를 지배하는 금융우위 현상이 나타남. 실물경제 자체가 금융화되는 메커니즘은 '주주가치의 최대화' 및 '주주행동주의'가 핵심. 이를 통해 초민족기업 자체가 탈산업화되는 동시에 금융화. 이는 초민족기업이 실물경제적 축적이 아닌 금융적 축적을 지향하는 것으로 GE가 대표적인 예임.

1980년대 이후 케인즈주의를 역전시키는 새로운 경제정책인 신자유주의가 출현하면서 금융의 우위를 보장하는데, 그 핵심은 저금리를 통해 증시를 부양하고 다양한 규제·감독 철폐를 위해 겸업화를 허용하는 것임. 1990-2000년대 금융세계화를 통해 이윤율의 현실궤도는 상승하는데, 이런 상승을 주도하는 것이 실물경제가 아닌 금융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함. 이 시기 특징은 1933년 글래스-스티걸은행법 폐지로 겸업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는 점, 1990년대에 잠시 형성된 신경제거품이 붕괴되면서 증시와 주택시장을 결합한 새로운 파생금융상품을 중심으로 하는 금융혁신이 등장한 점이다. 물론 이 특징의 이면에는 겸업화와 이중적자가 전제.

주택거품이 증시거품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형성되었는데, 2007년 주택거품이 붕괴됨.

한편, 2000년대의 금융세계화는 군사세계화와 결합되는 특징도 있음.


금융혁신과 신용의 증권화


부동자산(부동산)이 유동자산(동산)으로 전환, 단시 말해 모기지론(주택담보대출)과 모기지(주택담보대출증서)가 증권으로 전환. 이렇게 부동자산과 유동자산의 경계가 소멸하는 것을 '유동화', 즉 '신용의 증권화'라 함.

은행신용은 한계가 있지만 이를 극복한 것이 증권시장. 증권시장(국채, 주식 등)

글래스-스티걸은행법은 은행업과 증권업의 결합을 금지한 것인데, 금융서비스현대화법이 제정되면서 겸업화가 본격화되고 신용이 증권화함. (주택담보부증권, 부채담보부증권, 자산담보부기업어음, 신용부도스왑...)

문제는 민간주택담보부증권임. 서브프라임(비우량) 비중이 급격히 증대한 가운데, 모기지회사가 판매하는 주택담보부증권을 증권회사가 구매. 이 과정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주택담보부증권을 또 다른 증권으로 전환하여 투자신탁기금과 연금기금, 심지어 은행과 보험회사에까지 판매함. 부채담보부증권(CDO)은 서브프라임 주택담보부증권과 프라임 주택담보부증권을 혼합(구조화), 또는 대기업 회사채와 서브프라임 주택담보부증권을 혼합하는 바람에 전체 금융기관이 연결됨. ABCP, MMF, CDS등의 형태로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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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영 교수의 강의 첫번째 단락에서 얘기하는 이윤율 저하, 이중적자와 발권이익, 신용의 증권화 부분이 주는 시사점이 많아 발췌한 것이며, 두번째, 세번째 단락은 10년여가 흐른 현재 시점에서는 시사하는 바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여 생략함

함께 수록된 <2007-09년 금융위기 논쟁 비판>은 윤종희, 박상현이 서술한 부분으로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한 진영의 학자들이 당시 어떤 입장을 경지했는지 참고할 만 하나, 금융위기가 진행중인 사정 때문에 정련된 이론체계를 이루지 못한 산발적 주장이 많은 한계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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