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박정규 지음 / 문이당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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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이것저것 막 걸터듬으면서 전개된다. 간략히 줄거리를 요약해 보면,


주인공 정혁이 IMF로 명예퇴직을 하고 실업자가 된다. 정혁의 아내는 병사했고 슬하에 남매가 있으니 생계가 막막해야 정상이겠으나, 작가는 부잣집 처가를 배치하여 곤란을 해소해준다. 

비록 직업은 없지만 먹고사는 문제는 없으니 주인공으로서 뭐라도 해야하지 않겠는가. 마침 장인이 뜬금없이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긴다. 그가 서울역 노숙자가 된 것도 아닐진데, 정혁은 추레한 모습으로 서울역과 용산역을 돌며 IMF로 인해 피폐해진 민중의 삶을 관찰한다. 

장인을 찾지는 못했지만, 장인의 서랍을 뒤지던 정혁은 <어느 아나키스트의 죽음>이라는 육필원고를 찾아낸다. (이 원고 내용이 또 가히 대하소설급이다)


뭔가 밋밋하게 돌아가는 소설 스토리가 맘에 안 드는지 작가는 정혁을 까페 트레네라는 곳으로 이동시켜 지연이라는 삼십대 후반의 미모가 출중한 마담과 조우시킨다. 지연은 두 번 만난 정혁에게 몸이 달아 집으로 유인하여 곧 교접을 시도하지만 정혁의 신체가 정신과 따로 놀아 교접은 실패하고, 여기서 지연의 기구한 스토리가 한바탕 펼쳐진다.

지연이랑 예전에 프랑스에서 짝짜꿍 하던 남친이 간첩 조작 비슷한 것으로 비극을 당했는데, 알고보니 지연의 아버지가 안기부 간부! 아버지는 지연의 남친이 그렇게 된 것에 충격을 받아 폐인으로 생을 마감!


지연과의 밋밋한 러브라인에 양념을 치는 의미로 처제 혜인도 정혁을 사랑한다고 하면 어떨까! 하는 망상을 현실화 시킨 작가는 <어느 아나키스트의 죽음> 떡밥을 풀어헤친다.

알고보니 정혁의 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이면서도 일제 앞잡이로 오인받았고, 아버지는 정치깡패 노릇을 하다 뒤늦게 아버지의 유지를 알고 참회하다 폐인이 되어버리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정혁의 장인이 구명운동을 벌이다가 끝내 실패하자 위와 같은 기록을 남긴 것. 


참고로 장인은 행려병자 행색으로 발견되어 끝내 죽는데 유서에 따르면 자신의 재산 대부분은(수십억대임) 사회에 환원! 따를 필요는 없지만 장모와 딸 혜인, 사위 정혁은 흔쾌이 동의! 

  

갑자기 지연이 어머니가 시름시름 앓게되어 독일로 떠나버리고, 거기까지 지연을 찾아간 정혁과 지연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뒤 동반귀국하지만.... 공항에 마중나온 혜인을 본 눈치빠른 지연은 그길로 입산하여 비구니가 되고! (뭐?) 정혁도 시골가서 농사나 짓겠다며 막노동판을 전전, 체력을 키우며 소설은 끝이 난다.


소설적 완성도는 다소 떨어지지만 시대에 대한 작가의 부채의식은 진지한 것으로 보인다. 작중 정혁이 지연에게 하는 다음과 같은 말이 기억에 남아 적어 놓는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진 사람들은 자신의 비굴함을 잊기 위해 일생동안 자책의 곡괭이질을 해대며, 그 고통을 느낀 만큼 자신이 면죄되었다고 믿고 싶어 하거나 혹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또 다른 오류를 저지르게 마련이지요. 

 

책날개에 수록된 정보에 따르면 작가 박정규는 1946년 서울 출생으로 1991년 <문학정신>에 단편소설 <니느웨로 가는 길>로 등단하였고, 소설집 <로암미들의 겨울>, 장편소설 <흔적>이 있다. 서울산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42376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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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들
김영현 지음 / 실천문학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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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마을금고 이사장 최문술이 살해당한다. 칠십을 넘긴 지 한참 되는 나이였지만 아직 젊은이 못지않게 정정했던 최문술은 일층 거실 소파에서 범인의 칼에 가슴과 배를 찔린 뒤 피를 흘리며 안방으로 도망을 치다가 뒤따라온 범인에게 끝내 목이 졸려 죽었다. 죽은 최문술을 맨 처음 발견한 사람은 그의 아내 성경애였다. 성경에는 삼 일 전 이십여 리 떨어진 천진암에 불공을 드리러 갔다가 이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그녀가 도착했을 무렵, 아래층은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지만 위층은 어두컴컴했다. 열쇠로 자물쇠를 따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평소와 달리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남편 최문술은 의심이 많은데다 여간 조심스러운 늙은이가 아니였기 때문에 문단속을 허술히 할 리 없었기에 그녀는 의아한 생각을 했다. 잠시 뒤 비릿한 냄새와 함께 핏자국을 발견하고, 마침내 최문술의 참혹한 시체를 발견한 성경애는 미친 듯이 소리 지르며 대문 밖으로 달려나간다. 


최문술은 인정머리라고는 하나도 없는 인간이며 순전히 돈만 아는 노랑이 중의 노랑이었다. 토목 사업을 해서 큰돈을 벌였는데 불법 행위를 밥먹듯 했지만 처벌은 한번도 받지 않았다. 육이오 때 참전해서 빨갱이를 여럿 작살냈다고 외장치는 그는 박정희 정권 때 반공연맹 지부장까지 맡았던 터라 인근에서는 물론이고 군내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자자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지내기도 했던 그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가 하면, 술자리에서 다툼 끝에 경찰서장의 뺨을 올려붙이기 까지 했으나 아무 탈이 없을 정도였다.


최문술의 전처는 두 명의 아들을 낳은 뒤 병사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일찍 상처한 성경애를 다니던 절의 비구니 덕혜가 눈여겨 보았다가 최문술에게 소개하였는데 우여곡절 끝에 둘은 결혼하게 되었고, 그게 삼십여 년 전의 일이다. 

최문술은 재혼한 뒤 자기 마누라 말이라면 껌뻑 죽는 시늉을 하였고, 그러다 보니 자연 전처 소생인 위의 두 아들과는 소원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특히 장남 동연과는 거의 원수가 되다 시피 했다. 


사건 조사에 들어간 장국진 반장은 최문술의 주변인을 중심으로 원한관계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러다 자신의 초등학교 동창이자 최문술의 장남 최동연이 사흘 전에 집에 와서 돈을 요구했었다는 것을 듣는다. 게다가 사건 당일 날 그가 집에서 허위허위 빠져나가는 것을 보았다는 슈퍼 아줌마의 진술까지 겹쳐지자 최동연이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다. 최동연의 신병은 얼마 지나지 않아 확보되고, 그는 체념한 태도로 조사를 받으며 범행 일체를 자백한다. 최문술의 시신은 부검이 끝나자 곧 가족들에게 인계된다. 


둘째 성연이 아버지의 죽음을 전해듣는다. 그는 신부가 되기 위해 늦깍이 대학생이 되어 신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성연은 동연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동연은 면회를 온 성연에게 자신이 범인이라고 하면서도 묘한 말을 건낸다. 성연은 형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는다. 하지만 왜 그가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을 하고, 끝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길 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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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최문술이 범한 어린 식모 연옥. 큰아들 동연 역시 달뜬 사춘기 욕정에 이끌려 연옥과 관계 맺는다. 연옥의 배가 불러오고, 최문술은 그녀를 바보 기덕에게 강제로 시집보내 범죄의 흔적을 지운다. 기덕은 자신의 아내가 최문술의 애를 밴 채 시집왔다며 떠들어대다 의문사를 당한다.  

20년이 흘러 연옥이 낳은 아들 수길이 자신의 아버지인지 할아버지인지 모를 최문술을 살해하고, 그 현장을 동연이 목격한다. 자신의 아들일수도, 혹은 동생일수도 있는 수길의 범행을 본 동연은 동생 성연에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날...... 공교롭게도 또 다른 그림자를 봤어. 아니, 우리들의의 그림자지. 분노에 젖은 채 절룩거리며 걸어가는 그림자...... 그래, 우리들의 운명...... 우리들의 죄 덩어리...... 우리들의 형제...... 우리들의 피...... 말이야. 그것은 지옥에서 걸어나온 그림자였지. 지옥에서 걸어나온 그림자 말이야. 후후, 아버지와 난 그것으로 끝이었지. 우리는 언젠가는 우리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게 마련이야. 이제 모든 것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려 하고 있어. 돌아가게 내버려둬. 알겠니? 원래대로 말이야!" 

 

1984년 <창작과 비평>에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를 발표하며 등단한 김영현은 아픈 우리 역사를 이야기하면서도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문체를 사용하기 때문에 오래도록 여운이 나는 작품들을 써 온 작가이다. 그런 그가, 추리소설 형식의 <낯선 사람들>을 2007년 발표했다. 박완서가 발문에 "지금까지 진지하게 모색해온 자기 세계의 고독감을 못 이기고 독자에 영합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 같아 미심쩍어 보였"다고 말하는데, 나 역시 그러한한 의구심을 느끼며 읽는다. 하지만 그런 의구심은 곧 해소가 되는데, 사람과 종교 그리고 역사에 관한 작가 특유의 진지한 성찰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영현의 소설답지 않은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제정 말기 러시아 소설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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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Lemon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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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코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무렵부터 '혹시 엄마가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엄마의 애정에는 언젠가부터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사람들은 마리코가 엄마와 닮지 않았다는 말들을 많이 했다. 그래서 마리코는 어쩌면 자신이 엄마의 친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다가 호적을 떼어보기로 한다. 

호적의 부모란에는 아버지 우지이에 기요시, 어머니 시즈에가 기재되어 있었고, 본인은 장녀로 기록되어 있었다. 적어도 입양은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외할머니가 마리코가 태어나던 때의 일들을 생생하게 이야기 했기 때문에 의심은 점점 옅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엄마의 태도는 부자연스러웠고,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기숙학교로 떠밀리다시피 입학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마리코가 집으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하고 사과차를 마셨는데 졸음이 쏟아졌다. 잠시 뒤 깨어난 마리코는 집이 불타고 있는 광경을 목격한다. 아버지는 마리코를 피신시켰지만 엄마는 구해내지 못했다. 소방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엄마가 방문을 잠근 채 가스밸브를 열어두어 화재가 난 것이라고 했다. 엄마는 자살한 것이다.


후바타는 아마추어 밴드활동을 하다가 운좋게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다. 후바타의 엄마는 간호사였고, 아버지는 누군지 몰랐다. 엄마는 후바타가 대학에 가서 밴드활동하는 것에 크게 반대는 하지 않았지만 밴드 남자 애들과 함부로 연애하지 말 것과, 프로가 되거나 텔레비전에 나가지 말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후바타는 고민 끝에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고백하고, 엄마는 한동한 불같이 화를 내다가 결국 후바타의 노래가 그럭저럭 좋았다며 쓸쓸해 한다. 

며칠이 지난 뒤 집에 낯선 남자가 다녀간다. 엄마는 남자가 예전에 대학에서 신세를 졌던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후바타의 엄마는 뺑소니차에 치여 사망한다. 


마리코와 후바타는 각자 엄마의 석연찮은 죽음을 조사하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나'라고 생생각할 수밖에 없는 존재와 마주친다. 그리고 둘을 닮은, 또 한 명의 존재... 

 

나는 이 세상에서 유일한 인간이 아니다.

그러면 이런 인간 존재에는 어떤 가치가 있는 걸까?

루이비통의 이미테이션이 싸구려로 팔리듯, 아무리 귀중한 문서라도 복사본은 간단하게 파기되듯, 그리고 위조지폐가 화폐로 통용될 수 없듯이 내 존재에도 이렇다 할 가치가 없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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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사랑했던 여자를 복제해 딸을 만드는 과학자, 연구 성과를 내기 위해 아버지도 없는 딸을 자궁에서 키워낸 간호사. 그리고 자신의 권력과 재산을 영원히 누리고자 이러한 연구를 지원하는 중견 정치인. 엽기적인 욕망이 과학적 성과와 만나 비극을 양산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 중 신기술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하다. <변신>의 경우도 다소 조악했고, <레몬> 역시 문제의식과 미스터리 본연의 재미가 적절히 조합되지 못해 어설프다. 다 읽고 나면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가 얼마나 훌륭한 작품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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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 현대문학 테마 소설집 1
하성란.권여선.윤성희.편혜영.김애란 외 지음 / 강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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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 이혜경>

 

북촌 한옥에 여자가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과 같이 숨어든다. 남자는 얼마 전 믿었던 친구 J에게 사기를 당해 거처가 마땅치 않던 차에 또 다른 친구 S가 임시로 빌려준 집에 살고 있었다. 그곳이 북촌 한옥이었다. 

집 부근엔 경사진 땅을 이용해 지은 집이 하나 있었는데, 창 안으로 돌해태, 큰 중국풍 도자기, 수동식 타자기와 우주소년 아톰 등이 진열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어떤 이유인지 사람은 통 보이지 않았다.

여자가 자신을 버렸던 돈 많은 남자에게 돌아가기 위해 '나'를 속이기 시작하고, 관계는 결국 파국을 맞는다. 전화번호와 문자들을 지우던 '나'는 여자의 사진만은 남겨둔다. 언제든 지울 수 있을 거라 믿으며...


<1968년의 만우절 - 하성란>

 

아버지는 죽었다가 살아났다. 의사가 사망선고를 한 뒤 두둥실 떠오르던 영혼이 다시 아버지의 몸으로 돌아와 부활하곤 했다. 그동안 두 여동생은 얼굴이나 비추고 돌아갈 뿐이었고, '나'는 결혼했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병간호에 불려다녔다. 남편은 영화판을 기웃대고 있었지만 가망 없다는 사실을 본인만 인정하지 않았다. 남편과의 이혼은 복잡할 것 없었다.

'나'는 아버지가 곧잘 남산으로 '나'를 데려갔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나'라는 존재가 어쩌면 1968년 만우절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한 거짓말 덕분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그날 사랑한다고 말한 직후 돌아선 아버지가 반지를 꺼낸다고 생각했지만, 아버지는 벽에 대고 오줌을 내갈겼을 뿐이다. 

 

<빈 찻잔 놓기 - 권여선>

 

망원동 M연립립에 살던 연선배가 강변 H 오피스텔로 이사한다. 그녀와 '내'가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했던 것은 연선배의 암시에 의한 착각이었을 뿐이고, '나'는 장기판의 졸에 다름없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 비밀스런 이웃들 - 김숨>

 

'오늘 밤 그들은 그곳으로 갈 거라더군' 이라는 뜬금없는 말을 수시로 내뱉는 남편, 아들이 뇌수술을 해야 한다면서 악착같이 전기세와 수도세를 받아가고 전세비를 올려달라는 할머니(물론 조심하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그런데 무엇을?), 약빠른 302호 여자(하지만 통닭을 가로챈 적 있다).

처갓집에 아쉬운 소리를 해 돈을 구하려 애를 쓰지만 여의치가 않고, 뇌수술을 해서 어딘가 이상한 주인집 아들은 남편의 부재에 대해 '어쩌면 오늘 밤 남편이 그들과 함께 그곳에 갔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죽음의 도로 - 강영숙>

 

K와 헤어지고, 자살하고 싶은 '나'는 동창 H로부터 볼리비아의 융가스로드에 관해 듣는다. 대출을 독촉하는 도서관에 <금발의 초원> DVD를 돌려줄 수 없는 사정이라는 이메일을 보내고 자살하기 위해 강변북로로 차를 몰고간 '나'는, 그러나, 결행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메일은 발신전용 주소이므로 반송한다며 되돌아와 있었고, DVD는 장식장에서 발견된다.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은 - 이신조>

 

소녀이기도 하고, 계집애이기도 하고, 여자아이이기도 한, 언제까지나 열세 살이 될 수 없는, 사실은 이미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누이가 상계 8동, 상계 9동, 이마트 은평점, 지하철 6호선 응암역과 1호선 신도림역을 떠돌면서 동생을 찾아 헤맨다. 


<소년은 담 위를 거닐고 - 윤성희>

 

십이년 전 지구 저편으로 이민간 Y가 K에게 전화를 건다. 할머니가 위독하닥다고, 너희들을 보고싶어한다고. 십이년간 각자의 삶을 살던 J, K, L, S, P, W들이 캠코더 앞으로 불려나온다.


<크림색 소파의 방 - 편혜영>

 

소심한 박이 아내와 어린 아이를 차에 태우고 국도를 통해 신혼집으로 가고 있다. 비가 내리고, 와이퍼가 고장나고, 일단의 불량배들을 만난다. 잘 피해온 줄 알았는데 제법 큰 웅덩이에 빠졌다.


<벌레들 - 김애란>

 

장미빌라에는 끊임없이 벌레들이 출몰했다. 착한 남편은 회사에서 파김치가 되어 돌아와서 '나'의 불평에 공감할 기력이 어없었다. 어느 날, 반지 케이스를 재개발 구역에 떨어뜨린 '나'는 폐허가 된 그곳으로 내려가고, 때마침 산통이 시작된다. '나'는 이 출산이 성공적일 수 있을지 정말이지 확신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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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소설집은 될 수 있으면 사지 않는다. 작가가 쓰고 싶은 마음이 차고 남쳐서 쓴 소설들도 만족스럽지 못할 때가 많은데, 하물며 주어진 테마로 소설을 써야하는 상황에서 쓴 글이라면 어떻겠는가. '헤치운다'는 느낌으로 '숙제 하듯' 할 우려가 크지 않을까. 

하지만 '서울' 이라는 테마가 주는 느낌에 끌려 이번엔 그 규칙을 어겼는데, 실망스럽다. 써야해서 쓴 소설들이 그렇듯 작위적이고, 도식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리고 2009년 금융위기를 겪고 있던 당시 분위기 때문인지 소설들의 정조가 무척이나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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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의 城 1
시바 료타로 지음, 김성기 옮김 / 창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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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에이 4년(1185)에 벌어진 단노우라 전투에서 패배한 다이라 가문의 장수들 중에 이가 이에나가라는 자가 있었다. 미나모토 가문이 세력을 장악하자 다이라 일족은 이가 분지의 구석으로 숨어들어 가난한 시골 무사로 전락했다. 그들 중 핫토리 지방에 정착해 그 지명을 성으로 사용한 자들을 핫토리 파라고 하며, 쓰게 지방에 정착해 그 지명을 성으로 사용한 자들을 쓰게 파라고 했다.

460평방 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작은 분지가 야마시로, 오우미, 야마토, 이세 지방의 산들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고, 산을 넘는 일곱 개의 길만이 외부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이곳 이가의 무사들은 교토와 불과 80킬로미터 거리에서 권력이 무너지거나 새로 생겨나는 소식들을 생생하게 전해들으며 고독한 나날을 견뎠다. 기존  권력이 무너질 때마다 많은 무사들이 이가 지방으로 도망쳤다. 

은둔지 무사들은 권력이 하루아침에 허망하게 무너지는 것을 봐왔기 때문에 일종의 허무주의를 고수했고, 여러 지방의 제후들에게 그때 그때 필요한 대가를 받으며 일할 뿐 일정한 녹봉을 받지 않았다. 고용주를 가리지 않고 보수만 받으면 누구를 위해서든 일했고, 그 일이 끝나면 다시 적의 편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들은 권력을 멸시했고, 그 권력에 자신의 인생과 운명을 맡기는 무사의 충정을 경멸했다. 그들은 은신술이나 잠행술과 같은 닌자의 기술을 익혔다.


이런 이가 닌자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입힌 이가 오다 노부나가였다. 덴쇼 9년(1581) 3월, 노부나가는 휘하의 군대에게 이가를 말살하라는 명을 내린다. 닌자 말살 전투에서 지로자에몬과 그의 제자 쓰즈라 주조, 가자마 고헤이 등이 살아남는다. 하지만 지로자에몬은 심각한 화상을 입고, 쓰즈라 주조와 가자마 고헤이는 각자 가족을 잃는다. 이를 갈며 복수를 맹세하지만 노부나가는 덴쇼 10년(1582) 혼노 사에서 아케치 미쓰히데라는 무장에 의해 살해당하고, 그로부터 9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천하가 되었다. 그 사이 주조는 허무주의에 빠져 머리는 깎지 않았지만 사미승을 자처했고, 고헤이는 명성을 좇아 교토로 가서 지방행정관 마에다 겐이의 수하가 됨으로써 닌자의 맹세를 저버린다. 


덴쇼 19년(1591) 3월말, 지로자에몬이 주조를 찾아간다. 그가 내린 임무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암살. 의뢰자는 이마이 소큐라는 거상으로, 그는 본래 노부나가에게 도기를 바치며 환심을 사서 이권을 챙겼던 인물이었다. 노부나가가 죽고 히데요시가 뒤를 잇자 조총 1천 정을 바쳐 줄을 대는데 성공하지만, 전과 같이 독점적인 지위는 누리지 못했고 고니시 류사라는 라이벌 상인으로 인해 잇권의 많은 부분을 잠식당하기까지 했다. 이마이 소큐는 히데요시가 전쟁을 벌이면 조선이나 명나라와 교역이 끊기는 것이 두려웠을 뿐 아니라 은밀히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운명을 걸고 있었으므로 이번 암살을 계획한 것이다.


한편 지로자에몬의 딸이자 고헤이의 약혼녀인 닌자 고하기, 이마이 소큐의 양녀이자 고가 닌자인 기사루, 고가 제일의 닌자로 마리지천 칭호를 받은 마리 도겐 등이 주조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암살 계획과 얽혀 사건은 복잡하게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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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절판이라 한동안 구하기가 어려웠는데 얼마 전 별 생각없이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보니 여러 판매자가 팔고 있었다. 부랴부랴 결제한 뒤 배송된 택배 상자를 풀어 단숨에 읽었다. 

영화를 본 때가 언제인지 대충 따져보니 무려 20년쯤 전이다. 그게 언제였더라... 하고 헤아려보면 15년, 20년 하는 숫자가 나올 때가 많아졌다. 대학에 입할해 책을 미친듯이 읽고 영화에 빠져 지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로부터 벌써 25년이 흘렀다. 여전히 책을 읽고, 영화를 보지만 예전의 감수성은 조금씩 사라지고 냉소와 허무주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무슨 일이든 25년 30년 하면 질리지 않겠는가, 하고 자위해보지만 확실히 감수성이 떨어진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최근 들어 손에 집히는 책들이 익숙한 작가이거나, 봤던 영화의 소설원작이거나 하는 경우가 잦은 것이 쓸쓸하다. 가을방학의 노래 <종이우산> 가사의 첫 대목 처럼...


 비오는 날엔 모르는 노랜 듣고 싶지 않아 수없이 듣던 멜로디 한번 더 찾고 싶어져...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414725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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