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들
김영현 지음 / 실천문학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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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전직 마을금고 이사장 최문술이 살해당한다. 칠십을 넘긴 지 한참 되는 나이였지만 아직 젊은이 못지않게 정정했던 최문술은 일층 거실 소파에서 범인의 칼에 가슴과 배를 찔린 뒤 피를 흘리며 안방으로 도망을 치다가 뒤따라온 범인에게 끝내 목이 졸려 죽었다. 죽은 최문술을 맨 처음 발견한 사람은 그의 아내 성경애였다. 성경에는 삼 일 전 이십여 리 떨어진 천진암에 불공을 드리러 갔다가 이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그녀가 도착했을 무렵, 아래층은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지만 위층은 어두컴컴했다. 열쇠로 자물쇠를 따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평소와 달리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남편 최문술은 의심이 많은데다 여간 조심스러운 늙은이가 아니였기 때문에 문단속을 허술히 할 리 없었기에 그녀는 의아한 생각을 했다. 잠시 뒤 비릿한 냄새와 함께 핏자국을 발견하고, 마침내 최문술의 참혹한 시체를 발견한 성경애는 미친 듯이 소리 지르며 대문 밖으로 달려나간다. 


최문술은 인정머리라고는 하나도 없는 인간이며 순전히 돈만 아는 노랑이 중의 노랑이었다. 토목 사업을 해서 큰돈을 벌였는데 불법 행위를 밥먹듯 했지만 처벌은 한번도 받지 않았다. 육이오 때 참전해서 빨갱이를 여럿 작살냈다고 외장치는 그는 박정희 정권 때 반공연맹 지부장까지 맡았던 터라 인근에서는 물론이고 군내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자자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지내기도 했던 그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가 하면, 술자리에서 다툼 끝에 경찰서장의 뺨을 올려붙이기 까지 했으나 아무 탈이 없을 정도였다.


최문술의 전처는 두 명의 아들을 낳은 뒤 병사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일찍 상처한 성경애를 다니던 절의 비구니 덕혜가 눈여겨 보았다가 최문술에게 소개하였는데 우여곡절 끝에 둘은 결혼하게 되었고, 그게 삼십여 년 전의 일이다. 

최문술은 재혼한 뒤 자기 마누라 말이라면 껌뻑 죽는 시늉을 하였고, 그러다 보니 자연 전처 소생인 위의 두 아들과는 소원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특히 장남 동연과는 거의 원수가 되다 시피 했다. 


사건 조사에 들어간 장국진 반장은 최문술의 주변인을 중심으로 원한관계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러다 자신의 초등학교 동창이자 최문술의 장남 최동연이 사흘 전에 집에 와서 돈을 요구했었다는 것을 듣는다. 게다가 사건 당일 날 그가 집에서 허위허위 빠져나가는 것을 보았다는 슈퍼 아줌마의 진술까지 겹쳐지자 최동연이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다. 최동연의 신병은 얼마 지나지 않아 확보되고, 그는 체념한 태도로 조사를 받으며 범행 일체를 자백한다. 최문술의 시신은 부검이 끝나자 곧 가족들에게 인계된다. 


둘째 성연이 아버지의 죽음을 전해듣는다. 그는 신부가 되기 위해 늦깍이 대학생이 되어 신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성연은 동연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동연은 면회를 온 성연에게 자신이 범인이라고 하면서도 묘한 말을 건낸다. 성연은 형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는다. 하지만 왜 그가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을 하고, 끝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길 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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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최문술이 범한 어린 식모 연옥. 큰아들 동연 역시 달뜬 사춘기 욕정에 이끌려 연옥과 관계 맺는다. 연옥의 배가 불러오고, 최문술은 그녀를 바보 기덕에게 강제로 시집보내 범죄의 흔적을 지운다. 기덕은 자신의 아내가 최문술의 애를 밴 채 시집왔다며 떠들어대다 의문사를 당한다.  

20년이 흘러 연옥이 낳은 아들 수길이 자신의 아버지인지 할아버지인지 모를 최문술을 살해하고, 그 현장을 동연이 목격한다. 자신의 아들일수도, 혹은 동생일수도 있는 수길의 범행을 본 동연은 동생 성연에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날...... 공교롭게도 또 다른 그림자를 봤어. 아니, 우리들의의 그림자지. 분노에 젖은 채 절룩거리며 걸어가는 그림자...... 그래, 우리들의 운명...... 우리들의 죄 덩어리...... 우리들의 형제...... 우리들의 피...... 말이야. 그것은 지옥에서 걸어나온 그림자였지. 지옥에서 걸어나온 그림자 말이야. 후후, 아버지와 난 그것으로 끝이었지. 우리는 언젠가는 우리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게 마련이야. 이제 모든 것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려 하고 있어. 돌아가게 내버려둬. 알겠니? 원래대로 말이야!" 

 

1984년 <창작과 비평>에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를 발표하며 등단한 김영현은 아픈 우리 역사를 이야기하면서도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문체를 사용하기 때문에 오래도록 여운이 나는 작품들을 써 온 작가이다. 그런 그가, 추리소설 형식의 <낯선 사람들>을 2007년 발표했다. 박완서가 발문에 "지금까지 진지하게 모색해온 자기 세계의 고독감을 못 이기고 독자에 영합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 같아 미심쩍어 보였"다고 말하는데, 나 역시 그러한한 의구심을 느끼며 읽는다. 하지만 그런 의구심은 곧 해소가 되는데, 사람과 종교 그리고 역사에 관한 작가 특유의 진지한 성찰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영현의 소설답지 않은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제정 말기 러시아 소설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이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421268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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