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 1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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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학생운동을 정리하고 현장으로 떠났던 최민화의 부음으로 과거 민주시화회를 통해 민중미술 운동을 했던 이들이 다시 만난다. 7년 만이었다.

잡지사 기자가 된 진은혜, 미술선생이 된 구운형, 요가강사가 된 김시현, 그리고 민중미술 운동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민형조.

가장 감수성이 민감했던 시기를, 민주와 반민주라는 명확한 대립 구도를 보며 운동에 투신했던 이들은 밥벌이를 하기 위해 사회에 편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운동' 과 '관계'가 정리되지 못한 채 숙제처럼 남아있음을 확인한다.

누가 누구를 사랑했었는지 뒤는게 깨달으면서 느끼는 헛헛함, 양심 때문에 투신했음에도 불구하고 천성과 맞지 않아 괴로웠던 운동판, 불가항력적인 패배의 원인이 자신의 불성실 때문이라며 끊임없이 자학하는 활동가의 원죄적 고통...


가장 찬란한 시절을 좋은 것만 보며 지내도 시간이 아까웠을 젊은이들이 투쟁의 전선으로, 거리로 내몰려 양심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했던 그 시기가 지나고... 장년이 되어가는 그들은 자신의 젊은 시절을 뒤돌아보며 눈물 짓는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약하고, 어려서... 더 보호받고 더 사랑받아어야 할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동정과 연민. 제 이름을 부르며 울어야 했던 세대...


"새들이 울 때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는 거 알아? 딱따구리는 딱따구르르 하고 부엉이는 부엉부엉 하고 까마귀도 소쩍새도 다 그래. 제 이름을 부르면서 울지. 그 생각을 하면, 세상에서 제일 슬프게 우는 동물은 새인 것 같아."


91년도에 소련이 붕괴되고 운동이 모두 사라졌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가속도에 의해 그 후로도 십년 가량은 이런저런 조직들이 이합집산하며 명맥을 유지했다. 객관적인 정세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는 여전히 질곡 속에 있지 않느냐'며 할 일을 하자던 낭만적인 부류들이.

 

94년도에 인하대학교에 담장이 있었다. 담장으로 빙 둘러쳐진 학교는 정문과 후문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정문을 나서면 집창촌과 대우전자 공장이 보였고, 후문을 나서면 200원짜리 계란빵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통일광장, 학생회관, 인경호, 그리고 한진재단을 상징하는 비행기가 생각난다.

그리고 운동장 한켠에 줄줄이 늘어서 있던 가건물과 5호관 지하와 탑에에 음습하게 자리잡고 있던 동아리들. 95년도에 운동장의 가건물은 홀라당 불에 탔다. 불을 낸 사람은 우리학교 사람이 아니었다. 불이 피워진 난로에 휘발유를 보충하다 불을 냈다고 했다. 아마도 그 불의 경위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한 밤중에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타던 그 가건물은 나중에 나빌레관이라는 이름의 동아리 전용 건물로 바뀌게 된다. 한국사회연구회, 새벽을 여는 사람들, 시사토론모임 백사, 사회과학연구회... 그 정다운 이름들.

사진첩이나 날적이 등을 챙기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후배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 역시 가슴 한 켠이 허전한 느낌에 며칠을 부쩌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지금의 나보다 어렸던 당시의 나에게, '너무 힘들지' 라고 위로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힘내지 않아도 좋다고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다. 그렇게 큰 짐을 지지 않아도 좋았을 나이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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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술의 여자
모리무라 세이이치 지음 / 동하 / 199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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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은 주인공 나카미치 도키코의 기묘한 기억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그녀가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시절의 일인 듯 한데, 현실에서 일어났던 일인지 아닌지조차 분명치 않았다. 밤이 이슥한 산 속 숲에서 모닥불을 둘러싸고 수십 명의 남녀들이 손을 잡고 둥그렇게 원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외워지는 "에코, 에코, 자라와크, 에코, 에코, 자라와크..." 라는 주문. 흰 옷을 입은 사제가 움켜진 긴 칼 끝이 도키코를 향해 있는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실신했던가... 부모님은 그것이 도키코의 착각이거나 꿈이었다고 했다. 도키코는 아버지의 따뜻한 말이 사실일 것이라 믿었다.


부동산 회사에 다니는 전도유망한 젊은 3인조 오가, 우나하라, 야마기와는 최근 못된 버릇을 들였다. 고급 차를 타고 다니며 적당한 여자를 물색하여 태운 뒤 한적한 곳으로 끌고가 겁간하는 것이었다. 윤간 당한 여자들은 입을 다물기 마련이었기에 이들의 수법은 점점 대담해져 갔다.

어느 날도 이들 3인조는 두 명의 여성을 유인하여 늪 부근에서 강간을 시도한다. 여자 중 한 명은 이내 체념하여 3인조는 목적을 달성하지만, 다른 한 명의 여성은 처녀라 그런지 '몸이 딱딱하여' 윤간 당하는 일을 피할 수 있었다. 이들은 여자들을 팽개고 도망친다. 이튿날 그 중 한 여성이 시체로 발견되고 경찰이 수사를 개시한다.

경찰은 세 남자가 두 여자를 태웠다는 사실을 파악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살해되지 않은 다른 여성의 행방이 묘연했다. 그녀는 3인조와 공범이었을까? 아니면 피해자였지만 살해만은 면한 것일까? 만약 그녀가 범인들의 마수를 피했다면 어째서 살인사건의 목격자로 나서지 않는 것일까?


또 다른 여성의 정체는 바로 나카미치 도키코였다. 그녀는 그 사건 이후 전도유망한 젊은이와 결혼하여 행복을 구가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갈 수 없었다. 남편이 친구라며 집에 초대한 젊은이가 3인조 중 하나였던 우나하라였던 것이다. 우나하라는 도키코를 알아보지 못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의 방문이 거듭될 수록 도키코는 불안해졌다. 


얼마 뒤, 도키코 부부는 우나하라의 권유로 유니트 하우스를 구입한다. 그런데 얼마 뒤, 바로 그 유니트 하우스에서 우나하라가 청산가리가 든 위스키를 마신 뒤 사망한 채 발견된다. 유니트 하우스는 밀실이었고 열쇠 중 하나는 죽은 우나하라의 주머니에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열쇠는 도키코가 코인 캐비닛에 보관한 가방 속에 있었는데, 코인 캐비닛에 맡긴 날짜를 따져보면 도키코가 열쇠를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은 분명했다. 게다가 동창회에 다녀왔다는 알리바이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따라서 유력한 용의자는 우나하라를 제일 처음 발견한 아리자와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리자와는 자신이 도키코의 요청을 받고 유니트 하우스에 왔다며 결백을 주장했는데...둘 중 한 명은 분명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얼마 뒤 아리자와가 도로변에서 피살된 채 발견되자 형사들이 우나하라의 주변인물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과거 3인조 사건과의 연관성을 의심한 형사들이 차를 뒤지자 도키코의 지문이 묻은 레코드 바늘이 나온다. 그 사건에서 또 한 명의 여성의 정체가 드디어 밝혀진 것이다. 

하지만 왜 그녀는 살해당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왜 침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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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술의 여자>는 1974년 <소설보석>에 신년호부터 5회에 걸쳐서 연재된 소설로, 연재 당시 제목은 <어둠 속에서 불이 보인다> 였다.  

소설에 등장하는 흑마술과 악마숭배 의식은 작품을 모두 읽고 나면 일종의 양념일 뿐이지만 작가의 뛰어난 기교 덕에 분위기 고조에 한 몫을 한다. 


도키코가 3인조에게 겁간 당하지 않은 이유는 그녀가 선천적으로 성기가 없이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3인조는 그녀가 처녀라 '몸이 딱딱해' 그런 것으로 오인해 그녀를 내버려 두고 다른 여자를 통해 욕정을 채우고 떠나가버린다. 

도키코는 나중에야 다른 여자에게 신체의 비밀을 들키는데, 그녀는 뜻밖에도 겁간을 당했음에도 정상인 몸이어서 다행이라는 듯 도키코의 불구를 동정했다. 도키코는 그것에 격분하여 여성을 살해하고 이후 인공 성기를 이식받는 수술을 받고 결혼을 하게 된다.

우나하라가 도키코의 집에 거듭 드나들다 그녀를 기억해내고 만다. 도키코는 우나하라를 살해하고 아리자와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우려 하지만, 아리자와가 자신의 약혼녀를 겁간한 복수를 결행했다고 오인한 3인조에게 살해당함으로써 사건이 복잡해진 것이다.


모리무라 세이치는 <추리작가의 고뇌> 를 통해 복격파로서의 고민을 다음과 같이 토로한다.


"사회파의 대두에 의해 현대의 독자는 리얼리즘의 세례를 받았다. 제아무리 뛰어난 수수께끼일지라도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가 아니면 납득하지 못한다. 또한 독자도 '뛰어난 수수께끼를 논리적으로 해명'만 하면 되었던 종래의 추리소설에 대한 소설로서의 깊은 맛, 사회적인 지식과 정보, 멜로드라마적인 요소, 혹은 문학성 등 여러가지 것을 요구하게 되었다. 수수께끼 풀이만 가지고는 대다수의 독자가 만족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마쓰모토 세이초와 더불어 사회파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면서도 본격파적 요소에 대한 고민 역시 소홀히 하지 않았던 모리무라 세이치. 미우라 아야꼬는 그를 '왜곡된 인간상을 고발함과 동시에 인간성의 근원을 파헤치는' 작가로 평가 하였다. 군중에서 소외되어 개인이 느끼는 우울함을 미스터리와 결합시켜 최후에는 인간성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모리무라 세이치의 소설은 70년대 고도성장기 일본사회의 이면을 묘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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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이긴 두 여인 한국문학사 작은책 시리즈 1
홍상화 지음 / 한국문학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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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숙모>

 

여의도 집필실로 전화가 한 통 걸려온다. 전화 속 목소리는 자신이 성백희의 아내되는 사람이라고 했다. 성백희는 '나'의 외삼촌이니,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외숙모가 된다. 서울에 한강 유람선을 타러 왔다가 전화를 걸었노라고, '내'가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은 신문을 통해 알았노라고 했다. 40년 만의 연락이다. '나'의 기억은 과거로 치닫는다. 

'내'가 열 살 때 1.4 후퇴 직후 부모와 헤어져 능바우에서 살았다. 나는 외숙모와 1년 반을 함께 살았다. 외숙모는 신혼생활 2주일 만에 의용군에 끌려간 외삼촌을 기다리며 시부모와 살고 있었는데, 그때 갓 스물을 넘었을 무렵이었다. 외숙모는 고아가 된 큰시누이의 아들인 '나'에게 정을 붙이고 외로움을 견뎌냈다. '나' 역시 그런 외숙모에게 의지했던 것 같다. 그런 시절이, 죽었던 아버지가 '나'를 찾으러 오면서 끝이 난다.

다시 만난 외숙모는 그 시절과 많이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두 손을 덥석 쥐며 소회를 나누며 40년 세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다지 어색하지 않다. 외숙모를 태우고 온 관광버스가 출발하려 할 때에, '나'는 외숙모에게 다급하게 40년 전에 둘이 함께 골방에서 불렀던 노래가 뭐였는지 묻는다. 잠시 생각하던 외숙모가 웃으면서 <타향살이> 였노라고 말한다. '나'는 '타향살이 몇 해던가'로 시작하는 그 노래를 삼절까지 거침없이 부르며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노래가 끝났을 때, 40여 년 동안 사라졌던 그 무엇이, 아마도 세상살이에 꼭 필요했던 그 무엇이 노래가 시작되면서 찾아졌다가 방금 노래가 끝나면서 사라져 버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 

 

어머니는 아버지와 헤어진 이후 세 남자의 품속을 거치면서 사내들의 땀냄새를 맡아왔고, '나'는 스무 살 때부터 현재까지 20년 동안 분냄새를 맡으며 카바레 악단원으로 섹소폰을 불어오는 처지다.

어떤 연유로 '나'는 중국에 사는 큰아버지의 딸 금자누나와 연락이 닿게 되었고, 그 편을 통해 북한에 있는 아버지와도 연락이 닿는다. 

아버지는 과거 사상운동을 하다가 보도연맹증을 받고 두어달 마음을 고쳐먹는가 싶더니 인민군이 내려오자 그들을 따라 입북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나'는 그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어머니에 대한 막연한 반발심을 지닌 채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다. 

그러다 금자누나의 집에서 아버지와 상봉하기로 계획을 하고 3개월을 체류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출국 전날 까지도 아버지는 오지 않았다. 실망한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려할 때에 아버지가 북에서 중국으로 오게 되고, '나'는 만 하루동안 아버지와 시간을 보낸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나'는 어떤 악심이 승해서 어머니에게 이북의 아버지 가족 사진을 보여준다. 어머니의 반응이 의외였다. '사상에 미쳐서 북에 간 줄 알았더니 동료 여교사와 바람이 나서 북에 갔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후처가 3년 전에 죽었다고 말씀드리자 어머니는 뜻밖에도 '우째 그리 험한 팔자를 타고났을꼬......' 하실 뿐이다. 잠시 후 어머니는 코를 '헹' 하고 풀었다. 나는 마음이 놓였다. 어머니가 코를 '헹' 하고 풀 때면 기쁨, 슬픔, 분노 할 것 없이 어떤 감정이라도 끝장을 보게 마련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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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유에서인지 회사에 이 책이 이십 여 권 쌓여 있었다. 책 좋아하는 사람은 가져다 보라길래 집으로 가져와 책꽂이에 꽂아두고선 잊어버렸다가, 어제 짤막한 소설을 읽고 싶어 집어 들었는데 그런대로 읽힌다. 


작가는 1989년 <피와 불>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는데, 이 작품이 일본 도쿠마 문고에서 번역 출간되었으며 후에 <꽃 파는 처녀>로 개작된다. <꽃 파는 처녀>라면 김일성이 직접 창작에 관여했다는 설이 있는 혁명가극이 아닌가. 게다가 이 영화의 주인공 홍영희가 홍상화의 재종누이가 된다고 한다.   

이수문학상(과거 21세기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모으는데 하필 2005년도 작품집이 없다. 2005년도 수상자가 홍상화이고, 수상작은 <동백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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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지 않은 세계의 불가사의 1
콜린 윌슨 지음, 황종호 옮김 / (주)하서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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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콜린 윌슨과 그의 아들 대먼 윌슨의 공저 <The Encyclopedia of Unsolved Mysteries>와 <Unsolved Mysteries-Past and Present>를 한데 묶어 황종호가 번역한 책이다. 저자 콜린 윌슨은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아웃사이더>의 저자인 바로 그 콜린 윌슨이다. 


콜린 윌슨은 1931년에 런던 근교에서 태어나 특별한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채 독서를 이어가다 1956년 24세의 나이에 평론집 <아웃사이더)>를 발표한다. 고전들을 자유분방한 상상력으로 분석한 이 평론집에 문단은 술렁였고, 영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필립 토인비는 <콜린 윌슨은 누구인가>라는 글을 발표하기까지 한다. 후속작 <문학과 상상력> 역시 문단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콜린 윌슨은 비평가로서 입신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비평집을 발표하지 않고 묘한 주제를 다루기 시작한다. <어느 철학자의 섹스 다이어리>, <폴터가이스트>, <오컬트>, <사이킷>, <살인백과>, <잔혹> 등 문학과 철학 너머의 영역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흑마술, 연금술, UFO 등으로 관심을 돌린 그는 평론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2013년에 사망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 대부분은 거짓으로 판명 되었거나, 역사적 가치가 그다지 높지 않은 가십 거리들이다. 콜린 윌슨이 왜 이런 너저분한 글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작가는 이렇다할 이유를 댄 적이 없다. 김형경은 이것이 가족을 불행하게 잃은 콜린 윌슨의 애도의식이라고 분석하는데, 수십년간 죽은 가족에 대한 애도의식의 일환으로 섹스와 흑마술에 관한 책을 썼다는 해석은 별로 와 닿지 않는다.


형식에 얽메이지 않은 독서와 자유분방한 상상력으로 문단에 충격을 주었던 독학자들이 특정 주제에 대한 지나친 천착을 보이다 문단과 독자 모두의 외면을 받거나, 정치적으로 진보와 보수 모두를 비판하다 스스로 고립되어 절필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나는 이것이 욕망의 좌절 때문이 아닌가 한다. 자신의 뛰어난 재주와 능력이 제도권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한 독학자의 좌절된 욕망이 욕망 자체에 대한 천착으로 변질된 것은 아닌지... 


어찌되었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 중 그나마 진지한 주제는 <일리아드>의 저자는 호머일지 몰라도 <오디세이>의 저자는 여성이었을 것이라는 추측과, 세익스피어가 실존 인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추측 정도이다. 나머지는 그야말로 가십과 거짓과 추측이 뒤범벅된 기묘한 내용들이다.


책이 다루고 있는 미스터리는 다음과 같다.


1. 파라오의 저주

2. <일리아드>의 저자는 누구인가

3. 철가면의 죄수는 누구인가

4. 러시아 최후의 공주는 정말 사망했을까

5. 오스트레일리아 수상 해럴드 홀트는 중국 스파이였다

6. 페도르 쿠즈미히는 사실 러시아의 짜르였다

7. 보니히 고문서의 미스터리

8. 잔 다르크는 부활했다

9. 셰익스피어는 누구인가?

10. 진짜 모나리자는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것이 아니다

11. 성배의 발견

12. 아가사 크리스티의 행방불명

13. 생 메다르 교회의 기적

14. 도곤족과 고대의 우주비행사

15. 저주받은 보보석 - 프랑스의 푸른 다이아몬드

16. 최면술의 신비

17. 글로젤의 미스터리

18. 미확인 비행 물체 UFO의 미스터리

19. 토리노 대성당의 수의 - 예수의 얼굴

20. 플카넬리와 연금술

21. 잃어버린 고리

22. 오라 린다 북

23. 기원전 6천면의 바다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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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 열린책들 세계문학 52
A.스뜨루가쯔키 외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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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 년 만에 처음이라는 찌는 듯한 6월의 더위가 도시를 집어 삼킨 어느 날. 아내 이르까와 아들 보브까는 오데사로 휴가를 떠났고, 집에는 천문학자인 말랴노프와 고양이 깔럄만 남아 있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부엌을 서성이던 말랴노프의 머리에 문득 쥬꼬프스끼의 공식이 떠오른다. 이를 실마리로 말랴노프는 최근 진척시키다 막혀버린 연구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아이디어를 발견한다. 조금만 더 하면 뭔가 될 것 같은 그 찰나, 전화벨이 울린다. 또다시 외인관광국을 찾는 전화다. 최근 들어 너무 자주 잘못 걸린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 

그거야 어찌 되었건, 말랴노프의 머리는 여전히 작동을 계속하여 연구를 진척시키고 있었는데, 이번엔 식료품점에서 고급 술과 캐비어 따위를 잔뜩 배달해온다. 뭔가 착오가 있었을 것 같긴 한데... 어쨌거나 말랴노프는 생각을 더욱 진척시켜 마침내 스스로 <M-캐비티> 라 명명할 새로운 이론의 언저리에까지 도달한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왠 아리따운 여인이 말랴노프네 집 초인종을 누른다. 그녀는 이르까의 소개장을 지니고 있었는데, 소개장에 따르면 리뜨까 뽀노마레바라고 했다. 그런데 이르까도 없는 말랴노프의 집에서 그녀는 며칠 묵어가겠다는 것이 아닌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말랴노프는 묘한 설렘을 느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앞집에 사는 물리학자가 말랴노프의 집에 방문한다. 결국 그날 밤 셋은 술을 진탕 마셨고, 연구는 더 이상 진척되지 않는다. 그런데 다음 날, 앞집 물리학자가 시체로 발견되고 수상쩍은 느낌의 경찰이 찾아와 말랴노프가 범인이라며 한바탕 소란을 떨어댄다. 말랴노프는 체포되지 않았지만 수상쩍은 경찰은 꼬냑을 반명 훔쳐 달아났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얼마 뒤, 말랴노프의 집에 동료 과학자가 찾아와 자신들의 연구를 방해하는 정체불명의 외계인들이 있다고 폭로하는데... 말랴노프는 처음에 그 말을 우스갯소리로 치부하다가 결국 모든 정황이 사실을 가르키고 있음을 깨닫고 경악하고 만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지만 이후 계속된 내전으로 고참 볼셰비키들이 대다수 사망한다. 그리고 레닌이 사망한 뒤 스탈린이 권력투쟁에서 승리한다. 트로츠키 등 영구혁명을 주장하던 볼셰비키는 모두 축출되고, 결국 살해당한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에게 승리하기 위해서는 생산력을 더욱 증가시켜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 속에서 소련은 국가자본주의 체제를 공고히 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 외에는 문학적 가치가 없다는 테제가 통용된다. 언제나 공상하는 자들이 권력의 정당성에 의문을 품게 된다. 


이러한 소련의 문학 토양 속에서, 일본어를 전공한 형 아르까지와 뿔꼬보 관측소의 천체 물리학자인 동생 보리스가 풍자성이 강한 SF 문학을 시도한다. 이들의 시도는 러시아의 반유토피아 문학의 명맥을 되살리는데 한동안 베스트셀러 작가로 군림하던 그들이 당국의 주목을 받게 되었음은 자명한 이치다. 다분히 소련 사회를 연상시키는 <인간의 섬(69)> 출간 이후, 그들의 소설은 보이지 않는 탄압을 받게 된다. 발행부수가 현격히 줄어들고, 비평가들이 부정적 평을 쓰기 시작한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이다.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76)>은 이들 형제의 후기작으로 평온한 현실을 감시하고 있는 권력의 음험함을 그린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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