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각본 살인 사건 - 상 - 개정판 백탑파 시리즈 1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약관의 나이에 무과 별시에 합격하여 의금부 도사가 된 이명방(李明房)은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매설가(賣說家) 청운몽(靑雲夢)을 잡아 들인다. 살인사건 현장에 어김없이 청운몽의 방각소설(坊刻小說)이 발견되었다는 점을 의심하여 그를 문초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는 끝내 범행을 부인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모든 범행을 자백한다. 범인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수법 등을 자세히 실토했기 때문에 청운몽이 진범임은 의심할 나위가 없었고, 민심의 동요를 우려한 관에서는 청운몽을 부랴부랴 능지처참에 처한다.

사건이 종결된 후 이명방은 마상 무예의 달인인 야뇌 백동수 소개로 백탑(白塔) 인근의 실학파 학자들과 교우하게 된다. 연암 박지원, 형암 이덕무, 낙서 이서구, 담헌 홍대용, 초정 박제가 등은 청나라의 새로운 지식을 도입하고, 계급 질서를 완화하여 능력에 따라 등용할 것 등 과격하면서도 진취적인 의견을 주장하며 백탑 인근에서 모였기 때문에 백탑파라고도 불리웠다.

그런데 백탑파의 구성원들은 청운몽과 교우관계를 맺고 있었고 그를 살인사건의 진범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래서 단원 김홍도가 연쇄살인범 청운몽의 초상화를 그리고 이를 정표로 서로 나눠가지려 하자 이명방은 혼란에 빠지게 되고 꽃에 미친 화광(花狂) 김진을 만나면서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지는 않은가 의구심을 품게 된다. 게다가 살인사건이 또 다시 벌어지기 시작하자 정조와 체제공, 홍국영 등은 저마다 이명방에게 사건의 빠른 해결을 기대하게 된다.

김진과 사건을 다시 살피게 된 이명방은 연쇄살인이 방각소설을 필두로 대두되는 새로운 기운을 억누르려는 수구파 세력과 형의 명성을 자기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비뚤어진 욕망의 청운병 소행임을 밝혀낸다.

 

모리스 르블랑, 줄리오 레오니, 마가렛 두디 이런 작가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명성이 자자한 누군가를 빌어 자신의 작품을 덧칠하는 쉬운 길을 택한다. 르블랑의 소설에서는 뤼팽이 셜록 홈즈를 깔아 뭉개고, 줄리오 레오니는 단테를 빌려왔고, 마가렛 두디는 아리스토텔레스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좋지 못하다. 반면에 이정명의 <바람의 화원>은 뜻밖에 좋은 느낌을 받았는데, 그것은 역사 속의 성긴 부분에 작가가 적절히 개입해 들어가 그럴싸한 이야기 한 편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방각본 살인사건>은 작가가 너무 여기 저기 집적거리다 이도 저도 아닌 소설이 되었다. 떡하니 역사 <추리> 소설이라 이름을 붙여 놓았으나 추리는 빈약하고, 실학파 학자들을 여기 저기 얹어 놓았지만 고명 역할도 양념 역할도 못하는 어정쩡한 '인용 인물'에 그치고 말았다.

무엇보다 인물들의 행동에 전혀 개연성이 없다. 동생이 자신을 시기하여 연쇄살인범으로 몰았다는 사실을 알자 즉시 모든 범행을 시인하여 기꺼이 능지처참 당하는 형, 형이 죽어도 그다지 이득이 돌아온다고 볼 수 없고 살인 자체에 탐닉하고 있지도 않았으나 어찌된 일인지 충실히 연쇄살인을 거듭하는 동생, 큰오빠를 무고하게 죽였지만 작은 오빠 역시 사랑하는 비정상적인 성격의 여동생, 두 명의 오빠를 능지처참 해놓고도 그 여동생에게 태연히 사랑고백을 해대는 정신 나간 주인공 이명방, 꽃에 미쳤다고 하면서도 수만권의 책을 모으고 기술과 악기에도 능한 누가 봐도 셜록 홈즈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탐정역할의 김진 등 소설은 매력 없이 삐걱거린다. <열녀문의 비밀>과 <각시투구꽃의 비밀>을 같이 샀는데, 당황스럽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549702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딧불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o 개똥벌레

14,5년 전 나는 극우적인 인물을 중심으로 하는 정체 불명의 재단법인에 의해 운영되는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기숙사의 하루는 나카노 학교 출신이라는 소문의 기숙사 관장과 그의 조수 노릇을 하는 학생의 장엄한 국기 게양과 함께 시작된다. 룸메이트는 국토지리원에 들어가 지도를 만들고 싶어하고 병적일 정도로 청결한 것을 좋아했다. 룸메이트는 아침마다 6시에 일어나 라디오에 맞춰 체조를 했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와, 친구의 여자친구까지 세 명이서 함께 만나곤 했다. 어느 날 친구와 네 게임쯤 당구를 쳤는데, 그날 밤 친구는 N360의 배기 파이프에 고무 호스를 연결해 자살한다. 유서도 없고 짐작 가는 동기도 없었다. '나'는 '죽음은 생의 대극(對極)이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고 생각한다.

그 후 가끔 친구의 여자친구와 만나 데이트를 했다. 열 여덟이 지나고 열 아홉이 되었고, 2학년이 된다. 6월에 그녀가 스무 살이 되는 생일 날 그녀가 토하는 것 같은 자세로 울었고, 그날 밤 나는 그녀와 잤다. 그후 그녀에게서는 전화가 걸려 오지 않았고 7월 초에 짧은 편지가 온다. 그녀는 휴학 후 교토의 요양소에 들어갔다는 내용이었다. 그녀의 편지를 몇 백번이나 읽었지만 읽을 때 마다 슬퍼졌다.

그 달이 끝날 무렵, 룸메이트가 인스턴트 커피병에 넣은 개똥벌레를 준다. 옥상으로 올라가 병 뚜껑을 열고 개똥벌레를 꺼내 놓고 한참을 기다리니 개똥벌레는 뭔가 생각해낸 듯이 갑자기 날개를 펴더니, 어둠 사이로 떠올랐다. 나는 개똥벌레가 사라진 어둠 속에 살며시 손을 뻗쳐보지만 손가락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고, 그 가느다란 빛은 언제나 손가락 조금 앞에 있었다.

 

o 헛간을 태우다

그녀는 팬터마임 공부를 하는 한편, 생계를 위해 모델일을 한다. 그녀는 '귤 껍질 까기'와 같은 팬터마임을 능숙하게 했는데, '거기에 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귤이 없다는 걸 잊어버리면 된다'고 한다. 그녀가 북아프리카로 훌쩍 떠났다가 남자친구와 함께 돌아온다. 그녀는 나에게 남자친구를 소개시켜 주는데, 그는 헛간을 태우곤 한다고 말한다. 세상의 헛간들이 모두 그가 태워주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 끝에, 내가 살고 있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헛간을 곧 태우기로 했다고 말한다.

동네 지도를 사서 그가 태우고 싶어질만한 헛간을 표시하고, 표시된 헛간을 조깅하면서 관찰하지만 헛간은 언제까지고 그대로였다. 크리스마스 즈음에 그를 우연히 만나, 헛간에 대해서 묻자 그는 이미 헛간을 태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는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말한다. 나는 아직도 매일 아침 후보지가 될 헛간 앞을 달리고 있고, 가끔 불에 타 허물어져 가는 헛간을 생각한다.

 

o 춤추는 난쟁이

꿈 속에서 나는 난쟁이를 만난다. 난쟁이는 북쪽 나라에서 왔는데 춤을 추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내가 그와 함께 살면서 춤을 추는 것은 누구도 바꿀 수가 없기 때문에 다시 만날 것이라고 말한다.

춤추는 난쟁이에 대해서 노인에게 물어보자 춤추는 난쟁이는 혁명 전까지만 해도 매일 술집에서 춤을 추었다고 한다. 난쟁이는 황제 앞에서 춤을 추었고 좋은 대접을 받았는데, 혁명이 일어나자 난쟁이는 사라져버렸고 혁명군은 난쟁이의 행방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 소문이 있었지만 정확한 것은 없었다.

꿈에서 깨어난 나는 코끼리 만드는 공장으로 간다. 코끼리는 좀처럼 새끼를 낳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코끼리를 잡아다가 1/5은 진짜이고 나머지 4/5는 가짜인 코끼리를 만들어 내고 있는데, 코끼리 자신조차 자신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다른 파트에서 일하는 예쁜 아가씨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지만 아가씨는 거절했고, 난쟁이는 자신이 나의 몸에 들어와 춤을 춘다면 아가씨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제안한다. 둘은 계약을 맺는데 아가씨의 마음을 얻을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면 난쟁이가 몸 밖으로 나가지만, 한 마디라도 내뱉는다면 내 몸을 난쟁이가 갖는다는 것이었다. 난쟁이의 술수에 넘어가지 않은 나는 한 마디도 내뱉지 않는다. 하지만 난쟁이는 이걸로 끝이 아니고 언젠가는 내가 패배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 경찰관들에게 쫓기고 있고, 난쟁이는 매일 밤 꿈속에서 내 몸을 준다면 경찰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준다고 제안하곤 한다.

 

o 세 가지의 독일 환상

- 겨울 박물관으로서의 포르노그라피

착각이 아니라면 나는 박물관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하기로 정해진 일들을 별다른 노력 없이 해내고, 관장의 지시사항이 쓰여진 편지대로 일을 마치고 나면 섹스가 밀물처럼 박물관 문을 두들긴다. 나는 섹스를 생각하면 언제나 겨울 박물관에 있으며, 우리는 모두 그곳에 고아처럼 웅크리고 앉아 온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 헤르만 괴링 요새 1983

점심 때 텔레비전 탑 근처의 카페테리아에서 우연히 알게 된 사나이가 나에게 헤르만 괴링의 요새에 관해서 설명해 준다. 동독 체제 비자가 12시에 끊기기 때문에 나는 S반 역으로 돌아가야 했고, 청년은 SS와 러시아군 탱크의 잔해를 보여주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한다. 나는 혼자 역으로 걸어가면서 1945년 봄에 헤르만 괴링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상상해본다.

- 헤르 W의 공중 정원

헤르 W의 공중정원은 세로 8미터, 가로 5미터 정도로 지상에서 15센티미터쯤 떠 있는 3류급 정원이었다. 그는 공중 정원을 더 높이 올린다면 동독 쪽 경비병들이 몹시 과민반응을 보일 것이기 때문에 그러지 못한다고 하면서도 더 안전한 곳으로 옮길 생각은 없다. 왜냐면 친구들도 그곳 크로이츠베르크에 살고 있고 제일 좋아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는 여름에 또 오라며 나를 초대하고, 공중정원은 여전히 그곳에 15센티미터만 떠 있다. 

 

<개똥벌레>는 <노르웨이의 숲>의 단편 버전이라 할 정도로 하루키의 장편과 단편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하루키는 장편을 쓰고 나면 막연한 후회가 남아 그것으로 단편을 정리해서 쓰고, 단편을 몇 개 정리해서 쓰고 나면 그것은 그것대로 안타까워서 장편에 착수하는 패턴으로 작업하고 있다고 말한다. <헛간을 태우다>는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 않는 작품이었다. 나와 헛간을 태우는 그, 그리고 팬터마임을 하는 그녀가 서로 성긴 느낌이다. <춤추는 난쟁이>는 <1984년>이나 <브라질>의 느낌이 나는 단편이다. 황제도, 혁명군도 아닌 미지의 난쟁이와의 관계는 전공투와 우익 모두를 외면한 하루키의 반영 같다는 느낌이 든다.

1982년에서 1984년 단편들로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의 긴 버전이 수록되어 있다. 최근 <반딧불이>라는 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온 것으로 아는데 내가 읽은 것은 <개똥벌레>라는 제목의 개정 전 판본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544839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금요일, 랍비는 늦잠을 잤다 동서 미스터리 북스 135
해리 케멜먼 지음, 문영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금요일, 랍비는 늦잠을 잤다> - 해리 케멜먼 

랍비 데이비드 스몰은 원칙주의자로 책을 좋아하고 겉모습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인물이다. 그래서 일부 신도들은 랍비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 즈음 자동차 고장으로 사이가 벌어진 슈워츠와 라이히를 화해시키기 위해 '딘 토라(일종의 청문회)'를 열었는데, 랍비가 누구의 잘못도 아닌 자동차 자체의 결함으로 판정을 내렸기 때문에 자동차 판매상 알 베커가 곤란해지자 알 베커는 신도들을 충동질하여 랍비의 계약 연장을 반대하는 운동을 벌인다.

그러던 어느 날 유모로 일하는 엘스페스 블리치라는 아가씨가 교회 마당에 세워진 랍비의 차 옆에서 목이 졸린 시체로 발견되었고, 핸드백은 랍비의 차 안에 떨어져 있었다. 사건이 일어나던 날 밤, 랍비는 주문한 책이 왔다는 얘기에 교회 2층에 있는 서재에 머물렀고 이 때문에 의심을 살 만한 상황이었다. 랍비는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경관을 만났다고 증언하지만, 경관은 랍비를 본 적이 없다고 진술해서 의혹은 더욱 랍비에게 쏠린다.

그때 알 베커의 동료 멜빈 브론스타인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그는 엘스페스가 죽던 날 식당에서 그녀에게 접근했었고, 목요일마다 엘스페스와 비슷한 여성과 모텔에 투숙한 사실이 있었다. 하지만 랍비는 브론스타인에게 걸린 혐의가 논리적으로 결함이 있다고 지적한다. 엘스페스의 방을 조사하던 중 라디오를 본 랍비는 그녀가 라디오에서 무언가 뉴스를 듣고 뛰쳐나갔음을 추리한다. 범인은 랍비가 그날 밤 만났던 경관이고 임신중이던 엘스페스는 경관의 약혼 소식을 듣고 사실 확인을 위해 그를 만나러 갔다가 살해당한 것이다.

 

<미드나이트 블루> - 로스 맥도널드

빈 산장으로 때때로 사격연습을 하러 가는 사립탐정 루 아처는 어느 날 산장에 낯선 노인이 머물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노인은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인다. 루 아처는 사격 연습을 하러 골짜기로 가다가 소녀의 시체를 발견한다. 가까운 고속도로 순찰대에 신고를 한 루 아처는 살해당한 소녀의 이름이 지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지니의 아버지는 담임선생 코너가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기 때문에 지니가 살해당했다며 화를 내고, 낯선 노인이 분명히 범인일 것이라 지레짐작한 끝에 노인을 총으로 쏴죽이고 만다.

루 아처는 코너와 지니 사이에 관계가 있었음을 눈치채고 코너와 코너의 부인을 범인으로 추정하여 몰아부친다. 하지만 코너가 얼마전까지 놀아났던 여자는 여순경 애니타였고 그녀는 루 아처가 모든 사실을 알아내자 자살하고 만다.

 

해리 케멜먼은 랍비 시리즈와 <엘러리 퀸즈 미스터리 매거진>에 가끔 기고한 닉 웰트 시리즈로 유명한데, 작품수는 많지 않고 느긋하게 작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랍비 시리즈를 통해 해리 케멜먼은 유대 사회 풍속을 소설 속에 녹여내고 있다. 그래서 작품 속에서 가톨릭교와 개신교, 유대교의 차이점을 상호 비교하거나 유대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고민하기도 한다.

 

그는 <9마일은 너무 멀다>를 통해 고전 미스터리소설이란 본래 단편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고 있다. 우선 사건의 수수께끼에 대한 관심이 있으면 인물이나 배경 설정은 자연히 부수하여 나타나는 것이고, 그와 같은 이야기를 장편소설의 길이로 잡아늘인다면 주인공이 해결할 때까지의 더듬어가는 과정의 길고 지루한 묘사에 독자들이 말려들 뿐 아니라 하나의 복잡한 수수께끼를 제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해리 케멜먼의 이러한 진술은 본격파 미스터리의 딜레마, 즉 최초의 수수께끼와 마지막 해결 사이의 여러가지 사건 전개는 어찌 보면 필요없는 잡아늘이기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하는 문제의식과 닿아 있다. 나 역시 셜록 홈즈 시리즈야 말로 본격미스터리로서 적당한 길이가 아닐까 생각한 적이 여러번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하드보일드 스타일과 사회파 미스터리의 등장은 어쩌면 본격파 미스터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542263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현의 노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륵(于勒)은 제자 니문(尼文)과 대숲에 금(琴)을 만들기 위한 오동나무를 말리면서 때때로 소리를 점검하러 간다. 

가야의 가실왕(嘉實王)이 침전 바깥 출입조차 못 하며 시름시름 앓던 중 대장장이 야로와 악사 우륵을 불러들인다. 왕의 명을 받들어 궁으로 향하던 우륵은 우연히 야로가 신라군에 병장기를 공급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우륵은 제자 니문에게 저것이 쇠의 흐름이라며 야로의 일을 발설하지 못하게 한다.

왕이 죽기 전날 시녀 아라(阿羅)가 순장당하지 않기 위해 도망을 친다. 우륵은 왕의 무덤에 불려가 소리를 베풀것을 명 받는다. 우륵은 소리는 본래 살아 있는 동안만의 소리이고, 들리는 동안만의 소리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는다.

대장장이 야로는 신라 군의 병장기를 연구하여 약점을 파악하고 이를 깨뜨릴 만한 무기를 만든다. 하지만 야로가 만들어낸 무기는 가야군만이 아니라 신라군, 백제군에게 까지 흘러들어갔고 그것이 곧 쇠의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야로는 쇠붙이에 주인이 따로 없고, 지닌 자가 곧 주인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도망 나온 아라는 우연히 야로에게 발견되어 몸을 허락한 후 야로의 주선으로 몸을 피한다. 다로마을에서 금을 찾아 연주하던 우륵과 니문이 신라군의 기습으로 도망을 치다가 바닷가 마을에서 아라를 만난다. 우륵은 아라를 껴안고 살아남은 것이 장하다며 눈물 흘린다. 우륵은 니문에게 아라를 취하라 하고, 아라는 니문에게 몸을 허락한 후 신분을 숨기고 살아간다. 하지만 아라가 집사장에게 발견되고 왕이 된 태자가 죽자 아라는 순장당한다. 태자가 된 왕이 신라와 화친을 위해 맞아들인 신라 여인으로부터 월광이 태어났으나 그는 신라로 귀순한다.

신라 장군 이사부는 이차돈의 순교로 칼을 가벼이 썼다며 후회하는 선왕과 달리 아수라를 거치지 않으면 정토로 갈 수 없다고 생각하며 가야와 백제를 상대로 전쟁을 치루는 인물이다. 그는 월광을 중군장으로 삼아 가야를 깨러 온다. 백제와 가야 연합군은 신라를 상대로 항전하지만 결국 가야는 차례차례 무너진다. 전쟁이 끝나고 월광은 이사부에 의해 초막에 감금당하고, 어느 순간 사라진다.

야로와 우륵 모두 이사부를 통해 귀순한다. 이사부는 주인없는 쇠붙이를 만들고, 그 쇠붙이가 나라에 영향을 끼치므로 야로를 죽인다. 우륵은 대숲에서 오동나무를 거둬들여 열 두줄이 있는 금을 새로이 만든다. 그리고 신라로 가서 이사부를 만나 주인 있는 나라에서 주인 없는 소리를 펴게 해달라고 말한다. 이사부는 섬칫 놀라며 우륵이 자신의 적인지, 자신의 편인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진흥왕은 우륵에게 세 명의 악사를 보내 가야의 소리를 전수받도록 한다. 우륵은 가을에 객혈을 하다 기도가 막혀 죽는다.

 

<칼의 노래>를 읽고 김훈이 어떤 작가인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문체는 건조했고, 단정적이었다. 단정적인 말은 단아했고, 단아함 속에서 오랜 숙고의 흔적이 보여 무거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뿐이었고, 작가 김훈을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또한 그의 정치적 성향도 나와는 맞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아무래도 좋지만, 당시엔 경원하는 마음이 앞섰다.

그러다가 <화장>을 읽었다. 몇 번이고 다시 읽고 싶은 소설이었다. <화장>을 읽으면서 만약 내가 또 다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은 <화장>에서와 같은 형태이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88년 <붉은방>과 <해변의 길손> 공동 수상 이후 가장 공감 가는 이상문학상 수상작이라 느꼈다.

<현의 노래>를 읽는다. 역시나 작가는 어느 누구의 마음 속에도 들어가지 않고, 건조하게 읊조린다. 관중보다 먼저 흥분하지도 않지만, 관중보다 나중에 흥분하지도 않는 연사이다. 그래서 슬퍼하거나 기뻐할 시점을 잡지 못한다. 다만 책을 손에서 놓은 뒤 다시 한번 되새겨볼 뿐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539684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사의 나이프 밀리언셀러 클럽 98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모님을 교통사고로 잃고 불행한 소년기를 보낸 히야마는 부모님이 남겨주신 보험금으로 커피전문점을 차린다. 히야마는 간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자신의 가게에서 일과 공부를 병행하던 쇼코에게 반해 그녀와 사귀게 되고,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청혼한다. 망설이던 쇼코가 청혼을 받아들여 딸 마나미를 낳고 행복한 삶을 꾸려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13세의 소년 3명이 집에 침입하여 아직 갓난아이인 마나미가 보는 앞에서 쇼코를 처참히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하지만 형법 41조의 '14세 미만인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 는 규정에 의해 3명의 소년은 법의 심판을 받지 않고 보호처분으로 끝이 난다. 법에 의하면 히야마는 범행을 저지른 소년들이 누구인지조차 알 수가 없도록 되어 있었다. 2001년에 개정된 소년법으로 히야마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지만 법적인 시스템은 여전히 소년들의 갱생 가능성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고 피해자인 히야마와 유족의 아픔에 대해서는 아무도 대변해주지 않았다.

4년이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범행을 저지른 세 명의 소년 중 한 명이 히야마의 가게 인근 공원에서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은 4년 전 히야마가 법이 심판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그들을 죽이겠다고 공언한 점에 주의를 기울여 히야마를 용의선상에 올린다. 히야마는 4년 전 사건에 다시 뛰어들어 그들이 어떤 갱생의 과정을 거쳤는지 확인하려 한다. 하지만 또 다른 소년인 마루야마 준이 전철 플랫폼에서 누군가에 의해 밀쳐지는 사건이 벌어지고 경찰은 히야마를 더욱 의심하게 된다.

히야마는 당시 가장 죄질이 나빴던 야기 마사히코와 연락이 닿고 마사히코는 히야마에게 무언가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만나기로 한 시각에 마나미가 아파 히야마는 약속을 지킬 수 없었고, 야기는 약속장소에서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가 배달된다. 비디오 테이프에는 세 명의 소년이 유아를 상처입히는 장면이 녹화되어 있었다. 히야마는 제3의 인물이 있었음을 알고 쇼코의 과거 누군가에게 원한 살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조사를 시작한다.

쇼코의 과거를 조사하던 중 히야마는 쇼코가 어렸을 때 쇼코의 친구가 손에 흉터가 있는 인물에게 살해당했고 목격증언을 했다는 점, 그리고 쇼코 역시 중학생 때 우발적인 살인에 휘말린 것을 알게 된다. 히야마는 쇼코가 살해한 남자의 집에 찾아가 사죄를 빈다. 그리고 그 남자의 집 부근에 만화경을 만들어 파는 가게를 발견하고, 쇼코가 마나미에게 남겨준 만화경이 그 가게에서 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쇼코는 사죄를 위해 이 곳을 찾았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한편 경찰은 야기가 사망하던 날의 CCTV 분석 결과 마루야마가 바로 야기를 죽인 범인임을 알게 된다. 마루야마는 중학교 시절 할머니 병원에 문병을 갔다가 아유미와 친해진다. 아유미는 바로 쇼코가 죽인 남자의 딸이었다. 아유미는 심장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 중이었고,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쇼코에 대해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쇼코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데 대해 법의 심판도 받지 않았고 결혼하여 아기까지 낳아 살고 있다는 내용의 사진과 편지를 받자 마루야마와 공모한다. 마루야마는 야기의 강요로 유아를 칼로 상처 입히고 이 장면을 아유미가 몰래 비디오로 촬영한 후 테이프로 세명을 협박한 것이다. 협박의 내용은 쇼코를 살해하지 않는다면 테이프를 공개하겠다는 것이었고, 마루야마는 나머지 둘을 충동질해 범행을 저지르도록 만든다. 하지만 과거의 사건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분명히 인지하고 죄책감을 느끼게 된 사와무라 가즈야가 비디오의 존재를 공개하고 사죄하겠다고 하자 사와무라와 야기를 죽인 것이다.

하지만 복수심으로 쇼코를 죽인 후 우연히 마나미가 목에 걸고 있는 만화경을 본 아유미는 쇼코가 사죄를 하기 위해 자신의 집 부근까지 왔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수술비를 몰래 대주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유미는 속죄를 위해 히야마에게 비디오 테이프를 보냈던 것이다. 

히야마는 소년 3명을 감싸며 아무리 극악 무도한 죄를 저질렀더라도 갱생할 수 있다는 것을 외치며 피해자의 아픔은 외면했던 변호사 아이자와를 찾아간다. 히야마는 그의 손에 남아있는 흉터를 통해 쇼코가 그에게 자신의 친구를 살해한 것에 대해 사죄해 줄 것을 부탁했고, 과거의 범행이 드러날 것을 우려한 아이자와가 아유미에게 편지를 보낸 장본인이었음을 알게 된다.

 

범죄자가 법에 의해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현대 국가는 사사로운 복수를 허용하지 않는다. 사사로운 복수를 법이라는 공식적인 시스템이 대신하고, 집행하는 주체를 공권력이라 이름 붙여 최대한 공적인 느낌을 부여한다. 물론 공권력은 역사적으로 이름과는 달리 사사로운 권력 주체를 위해 봉사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어쨌든 시스템의 기본 구조는 그러해야 하고 그것이 권력의 정당성을 보장해준다. 복수를 공권력이 대신해 주었을 때, 사회는 예측가능한 것이 되고 개인의 복수심도 어느 정도 해소된다.

다른 한편, 형벌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범죄를 저지른 자를 교화시켜 사회에 헌신할 기회를 부여해 주는 갱생의 의미를 담고 있다. 왜냐하면 범죄의 이유가 온전히 개인의 범죄적 특성만으로 설명될 수는 없고 그 사람이 자라온 환경, 사회적 책임과 같은 외부 요인 역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범죄자에 대한 처벌의 양면성에도 불구하고, 기본 관점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는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 왔다. 그래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편지>에서 범죄자의 가족이 받게 되는 비난과 피해자의 아픔을 대비시켜 의문을 던지기도 했다. 야쿠마루 가쿠는 <천사의 나이프>를 통해 13세 소년범들의 살인과 피해자의 아픔을 대비시킨다. 작가는 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뒤늦게 속죄를 하려 했던 쇼코나 가즈야가 있었던 반면, 애초부터 악마와 같은 본성으로 살인을 계획했던 마루야마도 있다.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소년들의 갱생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피해자의 아픔이고 일본의 법 시스템에는 이것이 빠져있다고 지적한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5375480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