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징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83
요꼬미조 세이시요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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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징살인사건>

쇼와(昭和) 12년(1937년), 혼징(本陳 : 귀족이나 고관들이 묵는 공인된 여관)의 후예인 이찌야나기 집안의 장남 겐조가 교사인 구보 가스꼬를 신부로 맞아 혼례를 치른다. 그날 밤, 무서운 비명이 들리고 거문고 소리와 미닫이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은 소리가 난 사랑채 쪽으로 몰려가는데 서쪽의 석등 밑에 일본도 하나가 박혀 있는 것을 발견한다. 안으로 잠긴 사랑채 문을 도끼로 부수고 들어간 사람들은 방 안의 처참한 광경을 보고 멈춰서고 만다. 겐조와 가스꼬는 토막토막 잘려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고, 거문고는 피투성이가 된 손가락으로 뜯은 듯 피가 엉겨 있다. 줄 하나가 끊겨 있고 잘라진 줄의 굄목이 없어졌으며 병풍에는 세 개의 손가락 자국이 나 있다. 게다가 눈 위에는 범인의 발자국이 남아 있지 않아 완벽한 밀실 살인이다.

가스꼬의 삼촌인 긴조는 다음과 같은 전보를 보낸다. "가스꼬 죽음. 긴다이찌 씨를 보내라"

경찰은 현장 조사를 하여 사랑채 서쪽에서 거문고 줄의 굄목을 발견하고 나무에 낫이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한다. 또한 겐조가 죽기 직전 받아 찢어버린 쪽지를 복원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쓰여 있음을 알아 낸다.

'섬의 약속, 근일 이루겠다. 어둠을 타서 치거나, 기습을 하거나, 어떤 수단을 취해도 좋다는 약속이었지. 소위 너의 평생의 원수로부터'

용의자는 수상쩍은 세 손가락의 사내와 겐조가 평생원수라 지칭했던 인물로 압축되는데, 이때 가스꼬의 동료 교사가 가스꼬가 한때 사귀던 남자가 있었고 그에게 몸까지 허락했으나 그 남자의 사기성 짙은 행태 때문에 헤어졌다는 점, 그리고 가스꼬가 모든 과거를 겐조에게 털어놓았다는 점을 긴다이찌 등에게 알린다.

긴다이찌는 겐조의 성격상 가스꼬의 과거를 듣고 용납할 수 없어 그녀를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했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증명하고, 사건이 복잡하게 꼬인 이유는 바로 겐조의 동생이자 미스터리 소설광인 사부로의 개입 때문이었음을 증명해낸다.

 

<나비부인 살인사건>

세계적인 소프라노 하라 사꾸라 여사가 살해당해 콘트라 베이스 케이스에 장미꽃과 함께 담겨져 발견된다. 하라 사꾸라 여사는 극단 단원들보다 일찍 기차를 타고 오사카로 떠났는데 메니저인 쓰찌야 교조가 마중 나가는 것을 잊는다. 쓰찌야 교조는 그녀가 호텔에 들렀다가 곧 어딘가로 외출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다음 날 연습 때까지도 나타나지 않다가 콘트라 베이스 케이스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녀는 모래 주머니에 맞아 기절당한 뒤 교살당한 것으로 보였다.

하라 사꾸라 여사는 역에서 출발하기 전 악보 한 장을 줍는데, 그 악보가 노래하기 위한 악보가 아니라 일종의 암호였음이 밝혀진다. 암호를 받은 하라 사꾸라 여사는 자신의 제자인 지에꼬에게 자신처럼 행동해 줄 것을 부탁한 뒤 다음 기차를 타고 오사카에 가기로 했었다. 암호 해독을 통해 아파트의 위치를 알게 된 경찰은 과연 아파트에서 콘트라 베이스와 모래 주머니를 발견한다.

하지만 전직 경찰관이자 탐정인 유리는 조사를 통해서 범인이 그녀가 살해당한 지역을 도쿄와 오사카 사이에서 혼동을 시키기 위한 의도로 큰 트렁크에 사람이 들어있었던 것처럼 모래주머니를 채워 넣었었고 시체 등에 묻은 모래를 제거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모래에 맞아 죽은 것처럼 꾸몄음을 밝혀낸다. 또한 아마미야가 건물에서 떨어져 죽었을 때의 알리바이 역시 줄을 꼬아서 풀릴 때까지 범인이 시간을 벌었다면 깨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모든 것이 계획된 살인이었지만, 5만엔에 달하는 목걸이를 충동적으로 훔친 범인의 저속함이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예언대로 범인을 밝혀낸다.

 

우리나라에 김전일로 더 유명한 긴다이치고스케(金田一耕助)가 최초로 등장하는 소설이란 점을 빼면 헛점 투성이의 조잡한 작품이며, 엘러리 퀸이나 아가사 크리스티, 크로포츠 등에 대한 동경(혹은 표절)도 그다지 숨기지 않는다.

<혼징살인사건>에서 백번을 양보해도 잘 납득이 가지 않는 형의 자살 동기와, 역시나 이해가 가지 않는 동생의 자살 방조는 둘째로 치더라도 그 복잡한 기계적 밀실의 파해(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어 보아도 도대체 어떻게 칼이 날아가고 낫이 나무에 꽂히는지 선명히 그려지지도 않는다)는 꿰어 맞추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나비부인 살인사건>은 엘러리 퀸을 흉내내어 '독자에의 도전'을 한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인용했기 때문에 '설마 일기 작성자가 범인은 아니겠지?'라는 불안한 의문이 슬며시 드는데, 아니나 다를까 요코미조 세이시가 다른 답변은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자는 실망하고 만다.

사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의 수법에 대해서는 찬반 격론이 벌어졌었고 현대에 와서는 서술 트릭, 심리 트릭이라는 형태로 받아들여 지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반 다인은 이에 대해 후안무치한 트릭이고 1페니 동전을 5달러 금화라고 속여 건내는 사기나 다름없다고 분개한다.

이러한 비난을 의식한 듯 세이시는 <혼징 살인사건>의 말미에 자신은 정당하게 독자에게 서술했다며 변명을 늘어놓는다.

본격파의 태생적 한계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 작품이었다. 작가는 수수께끼 풀이가 나오는 종장에 이르기까지 긴장감 고조를 위해 여러가지 장치를 하고, 사건들을 꼬아 나가는데 종장의 풀이 부분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는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왜냐하면 독자는 풀이부분에서의 카타르시스를 기대하며 과정의 지루함이나 과장 등을 기꺼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러한 경향은 <팔묘촌> 등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나는데, 소설의 시작을 사건이 얼마나 기이한지 설명하는데 할애하여 독자를 한껏 들뜨게 만들다가 맥빠진 결말을 내놓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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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더스의 노예들 - 잭 런던, 보르헤스 기획 세계문학전집 01 바벨의 도서관 29
잭 런던 지음,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김훈 옮김 / 바벨의도서관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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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푸이의 집>

히쿠에루 환초의 마푸이가 대단히 귀한 진주를 발견하자 라울이 진주를 사고자 한다. 마푸이는 흥정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은 집이라면서 집에 대해서 설명할 뿐이다. 라울 역시 진주의 값어치를 잘 몰랐기 때문에 거래는 금세 결렬되고 만다. 

얼마 후 토리키가 마푸이에게 진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푸이에게 받을 빚이 있었던 토리키는 마푸이에게 반강제로 진주를 빼앗은 후 빚을 탕감해 주겠다고 말한다. 진주를 빼앗기다시피 한 마푸이를 가족들은 바보라 부르며 원망한다. 토리키는 진주를 매우 비싼 값으로 레비에게 넘긴다.

잠시 후 허리케인이 닥쳐 와 섬 전체를 강타하여 섬이 물에 잠겨 수많은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는다. 마푸이의 어머니 나우리 역시 물에 빠졌다가 우연히 레비의 시체를 보게 되고 진주를 되찾아 온다. 라울은 진주를 집짓는 비용에 천 프랑스 달러를 더해서 사기로 하고, 나우리는 흡족해 한다.

 

<삶의 법칙>

코스쿠시 노인은 시력이 약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이를 먹었다. 손녀인 시트컴투하가 개들의 어깨에 굴레를 씌우는 소리가 들리고, 아들이 다가와 곁에 땔나무가 있음을 상기시켜주며 눈이 오니 떠나겠다고 말한다. 코스쿠시는 어느 해 겨울 자기가 아버지를 클론다이크 오지 지방에 버렸던 일을 떠올린다. 그리고 늑대에게 쫓겨 죽음이 예정되었음에도 필사적으로 저항했던 사슴에 대해서 생각한다. 코스쿠시는 잠깐 아들이 자신을 데리러 올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일순간 늑대가 주변에 있음을 깨닫는다. 불이 붙은 나뭇가지를 빼들던 코스쿠시는 어째서 삶에 연연하는지 자문한 후 나뭇가지를 눈밭에 떨어뜨린다. 피로감을 못 이겨 무릎에 머리를 떨어뜨린 코스쿠시는 이런 게 삶의 법칙이라고 생각한다.

 

<잃어버린 체면>

인디언들을 지배하고 군림했던 수비엔코프는 그들의 반란으로 잡힌 신세가 되었다. 카자흐 출신의 거인 이반이 고문당하는 것을 본 수비엔코프는 용감하고 의연하게, 웃음을 머금고 농담을 하면서 여유 있기 죽고 싶다고 생각한다.

수비엔코프는 추장에게 어떤 무기에도 상처를 입지 않게 해줄 약을 만드는 조제법을 알려주겠다고 제안한다. 추장은 목숨을 살려주겠다며 조제법을 알려달라고 하지만 수비엔코프는 목숨 뿐만이 아니라 갖은 재물과 추장의 딸까지 달라고 한다. 결국 추장은 이에 응낙하고 수비엔코프는 약물의 효능을 시험해 보라며 자신의 목을 도끼로 내리치라고 한다. 수비엔코프는 고문 당하지 않고 원하는 죽음을 얻을 수 있었고, 추장은 원래 이름 마카무크가 아니라 <잃어버린 체면>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마이더스의 노예들>

부유한 에벤 헤일에게 어느 날 <마이더스의 노예들>이라는 단체로부터 편지가 온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적 프롤레타리아의 일원으로 에벤 헤일에게 이천만 달러를 요구하며 만일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자신들의 진지함을 알리기 위해 누군가를 살해하겠다고 말한다. 에벤 헤일이 요구사항을 무시하자 그들의 경고대로 한 사람이 살해 되었고, 계속되는 거부에 살인도 계속된다. 에벤 헤일은 압박감을 느껴 경호를 강화하고 경찰에 도움을 청하지만, 그들은 사회 곳곳에 암약하는 조직원이 있는지 자신들의 경고사항을 실행해 가고 잡히지도 않는다.

그들은 에벤 헤일에게 자살을 하더라도 자신들의 요구 사항은 가족에게 유효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에벤 헤일은 자신의 전 재산을 자신의 오른팔인 웨이드 에츨러에게 유산으로 남기고, 웨이드 에츨러 역시 이상의 이야기를 유언으로 남긴 채 자살하고 만다.

 

<그림자와 섬광>

로이드 인우드와 폴 티츨론은 생김새가 비슷했고, 모든 분야에서 서로 경쟁하는 사이였다. 하루는 강에 잠수하여 오래 버티는 내기를 했는데, 둘 다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인데도 먼저 물 밖으로 나가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란히 화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물질을 투명하게 하는 연구 주제를 두고 경쟁한다. 폴은 물질의 분자 구조를 변형하여 투명하게 하는 방법으로 접근하였고, 로이드는 극한의 검은색을 발견하여 물질이 보이지 않게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폴은 물질을 투명하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물질에서 무지개빛 섬광이 나타나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고, 로이드는 극한의 검은색 도료를 만들어내 물질에 칠한 후 보이지 않게 만들수는 있었지만 그림자가 생기는 문제는 극복하지 못했다.

어느 날 섬광 상태가 된 폴과 그림자만 있는 로이드가 테니스장에서 만나 싸움을 벌여 서로를 죽이는 지경에 이르고, 둘의 연구 성과도 함께 사라지고 만다.

 

1994년 대학교 1학년 때 <강철군화>를 통해서 잭 런던을 처음 알게 되었다. 혁명가 어니스트 에버하드와 가상의 시카고 코뮨 이야기로 "너희 혁명분자들을 우리의 강철 뒷굽으로 갈아서 뭉갤 것이다"라는 지배계급의 섬찟한 대답이 기억난다.

그러다가 1997년 무척 더웠던 여름날로 기억되는데, 인하대학교 생활도서관에서 책을 한무더기 내버린다고 하여 도와주러 갔던 일이 있다. 그 책들 중에서 책배에 곰팡이가 조금 핀 <마틴 에덴>을 주워서 읽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피츠제랄드의 <위대한 개츠비>와 <마틴 에덴>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애의 전형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이더스의 노예들>은 보르헤스가 기획한 세계문학전집의 제1권으로 보르헤스의 간략한 해설이 덧붙어 있고, <강철군화>나 <마틴 에덴>과는 또 다른 성격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잭 런던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대표 작가이기도 했지만 <화이트팽>이나 <바다의이리>와 같은 부류의 소설도 썼고, 한때는 우리나라에 동화작가로 소개되기도 했었다.

그의 자전적 소설인 <마틴 에덴>에서 주인공이 자살을 하고, 그 역시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공식 사인은 요독증이라고 한다) 보르헤스 역시 해설에서 잭 런던이 자살한 것으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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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발 페투슈키행 열차 을유세계문학전집 36
베네딕트 예로페예프 지음, 박종소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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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누군가의 낯선 아파트 입구에서 잠을 깬 베니치카는 모스크바의 쿠르스크 역 광장으로 간다. 그는 모스크바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정작 크렘린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쿠르스크 역 구내 식당에서 해장술을 찾다가 쫓겨난 베니치카는 상점이 문을 열자 각종 술과 아들에게 줄 호두와 사탕을 사 들고 페투슈키행 열차에 오른다.

베니치카의 직업은 전화 케이블공으로 작업반장을 맡고 있었는데 다섯 명의 동료와 더불어 매일 술을 마시고 시카 라는 카드 놀음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베니치카는 동료들과 자신이 마신 알코올 소비량을 그래프로 그렸는데 이 보고서가 실수로 관리국에 보내지는 바람에 쫓겨나고 만다. 그래서 그는 아들과 애인이 있는 페투슈키에 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기차가 출발하자 승강구를 들락거리면서 술을 먹고 담배를 피웠다. 그러다가 자신의 술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미트리치 할아버지와 같은 이름의 손자, 검은 콧수염의 사내, 데카브리스트 등과 담화를 나눈다. 그들은 문학과 철학, 종교 등에 관해 이치에 닿지 않는 대화들을 나눈다. 검표원이 등장해서 그들과의 대화가 끊기지만 베니치카의 환상이 계속된다.

문득 베니치카는 기차가 페투슈키로 가는 것이 맞는지 의심이 들고, 반대로 가고 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는 사탄과 스핑크스, 그림 속의 공작부인을 만나 환상 속에서 그들과 알 수 없는 대화를 주고 받는다.

베니치카는 페투슈키에 도착했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마중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골목 안에서 베니치카에게 네 명의 괴한이 접근하는데 그들은 베니치카가 절대 페투슈키에 갈 수도, 쿠르스크 역으로도 갈 수 없고 '왜 갈 수 없냐'는 베니치카의 질문에 '그냥' 이라고 답할 뿐이다. 그들에게서 도망쳐 광장으로 나온 베니치카는 그곳이 페투슈키가 아니라 다름 아닌 크렘린임을 깨닫는다. 네 명의 사나이는 베니치카를 쫓아와 목을 송곳으로 찔러 죽인다.

 

내가 밥벌이를 하는 곳에서는 몇년 전 부터 생일 날 자신이 원하는 책을 선물해 준다. 그래서 1년에 한번 책을 고르는 내밀한 기쁨을 맛볼 수 있다. 선물받은 책은 특히나 애착이 간다.

2010년에는 주제 사라마구의 <도플갱어>를 받았고, 2011년에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을 받았다. 그리고 올해는 을유문화사에서 국내 초역한 베네딕트 예로페예프의 <모스크바발 페투슈키행 열차>를 받았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베니치카가 네 명의 남자에게 추격 당해 살해당하는 부분을 읽다보니 예전에 EBS에서 본 영화 생각이 났고, 그 영화가 이 <모스크바발 페투슈키행 열차>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마지막 장면과 해설만을 별로 집중하지 않고 봤는데 카프카 얘기가 자주 나와서 나는 그 영화가 카프카의 작품을 영화화 한 것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당시 내가 얼핏 보았던 영화가 독일에서 제작된 <모스크바발 페투슈키행 열차>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카프카의 <성>과 같이 닿을 수 없는 <페투슈키>로 가는 여정이다. 페투슈키는 애인과 아이가 있고 자신이 돌아가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베니치카는 2시간 30분 남짓한 페투슈키에 도달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역들을 거쳐가면서 거듭 의심이 들고, 거꾸로 가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으며, 급기야 도착한 페투슈키에 아무도 마중 나와 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알고 보니 그곳은 크렘린이었다.

페투슈키로 가는 부조리한 여정에 알코올 중독자의 중언부언과 환상이 결합하고 성서적 알레고리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작품 자체가 난해하고 모호한 면이 많다. <작가의알림>을 보면 초판이 단 한부였던 덕에 빠르게 다 팔려 나가고 말았다고 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품이 당의 공식적인 문학이었기 때문에 이 작품은 사미즈다트(자기출판,지하출판)를 할 수밖에 없었다. 사미즈다트는 작가가 직접 타이핑한 작품 한 부를 지인들에게 돌려 읽히면 읽은 사람은 한 부 더 타이핑 하는 식으로 보급되는데 이런 방식으로 서방 세계에까지 전파되어 프랑스와 독일에서 먼저 정식 출간이 되었고, 소련에서는 1989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출판이 되었다.

예로페예프는 브레즈네프 체제에 대해 풍자를 했다고 하는데, 이 대목에서 예전에 읽었던 <러시아 혁명사>가 생각이 났다. 내가 읽었던 <러시아 혁명사>가 다름아닌 브레즈네프가 쓴 <소련 공산당사>였고, 3권 후반에 접어 들면서는 이것이 역사인지 신화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이야기가 펼쳐져 4~5권은 '그 사회를 미화한다면 이럴 것이다' 하는 수준으로 참고만 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모스크바발 페투슈키행 열차>의 다양한 해석 가능성은 좋은 평을 받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만큼 작품이 산만하다는 평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받은 느낌은 산만하다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런 평을 내린 이유에는 예로페예프가 거부했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쪽이 내 정서에 더 맞다는 이유도 있다.

 

선물로 받은 책들을 꺼내 보니 매년 생일 선물을 준 청장님이 바뀌었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가능하다면 오랫 동안 밥을 벌어 먹고, 책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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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하드 럭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요시토모 나라 그림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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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여자가 생겨 오래도록 집을 비웠던 아버지가 '나'에게만 비밀리에 유산을 남기고 죽었다. 낳아준 엄마는 아니지만 제법 사이가 좋았던 엄마는 유산이 탐이 나서 인감과 통장을 훔쳐 도망갔다. 엄마가 이사간 곳에 찾아가 빈집에 들어가 어이없을 정도로 순조롭게 인감과 통장을 되찾은 후 천만엔은 엄마 앞으로 보내고 천만엔은 '나'의 이름으로 통장을 개설한다.

한동안 비즈니스 호텔에 머물다가 친구의 친구인 치즈루의 권유로 함께 살게 된다. 치즈루는 유령을 보기도 하고, 그 존재를 느끼기도 했으며, 동성애자였다. '나'는 치즈루가 원했기 때문에 그녀와 관계를 맺는다. 함께 살아가던 어느 날 슬슬 혼자 생활해 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고, 마침 싸고 좋은 집을 발견했기 때문에 치즈루에게 이야기를 한다. 마지막으로 함께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날, 치즈루는 떠나는 '나'를 보고싶지 않아 먼저 내렸고, 그렇게 헤어졌다.

치즈루와 통화한 후 다른 친구와 전화한 '나'는 치즈루가 화재로 숨졌고, 내가 통화한 것은 숨진 이후 유령이 된 치즈루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후로 '나' 역시 치즈루 처럼 죽은 영혼이라든가 어떤 기운이라든가 하는 것을 보거나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여행 중 호텔에서 여자 유령을 보는데, 그녀는 유부남과 동반자살 하려고 계획했지만 남자를 살리고 싶어서 자기 몫보다 더 많은 수면제를 먹어 홀로 죽은 여자였다. 호텔 종업원은 유령의 출현에 대해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며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자기가 거처하는 방에 '나'를 재워준다. 다음 날 아침이 되고 전날 있었던 일은 아무렇지도 않은 느낌이 든다. '나'는 <이거야 말로 원나잇 스탠드......>라고 중얼거리며 혼자 웃는다.

 

<하드 럭>

결혼을 위해 다니던 회사를 퇴직하려고 매일 철야를 해가며 인수인계 작업을 하던 언니가 뇌출혈로 쓰러진다. 대뇌에 심한 손상을 입고, 부종의 압박을 받은 뇌간이 점차 제 기능을 잃어가서 식물인간보다도 심각한 상태가 되고 만다. 약혼자였던 남자는 충격을 받아 집으로 내려가 버렸고, 그의 형 사카이 씨가 언니의 병상을 찾는다. 사카이씨는 태극권 중에서도 특수한 유파의 선생으로 그 사상과 실천을 가르치는 학원을 운영하고 있고, 머리를 기르는 괴짜같은 남자이다.

괴짜에 약한 나에게 언니는 사카이씨를 소개시켜주지 않았고, 이제는 사카이씨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리고 사카이씨도 나를 보기 위해 병문안을 왔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언니의 위중한 상태와 그런 상황에서의 연애가 부담스럽다. 그리고 '나'는 곧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날 예정이다.

얼마 후 언니의 몸에 연결되어 있던 인공호흡기를 떼어 내고 사망을 확인한 후 장례를 치른다. 언니의 남편이 될 사람은 장례식에 참석해서 아버지에게 얻어맞은 후 장례를 거들었다.

'나'는 언니가 편집한 MD에 수록된 Earth, Wind & Fire의 <September>와 아라이 유미(마츠토야 유미)의 <길 떠나는 가을>을 사카이와 함께 걸으며 듣는다. 사카이는 나중에 이탈리아로 놀러 가겠다고 말한다.

 

죽음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이다. 자신이 떠난 뒤 불의의 화재 사고로 죽어버린 치즈루와 그녀에 대한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첫번째 이야기 <하드보일드>. 몸은 죽어버렸지만 영혼은 아직 죽지 않은 언니, 그리고 그 언니가 죽고 있다는 사실로 지금 이 시간과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두번째 이야기 <하드 럭>.

두 이야기 모두 화자가 자신의 마음을 조용히 쳐다보면서 이야기하듯 진쟁된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슬픈 예감> 이후 두 번째다. 두번 다 잔잔한 느낌 외에 특별한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다. 요시모토 나라의 귀여운 그림이 책 중간 중간 삽입되어 있는 점은 고맙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책을 사는 이유 중 반은 요시모토 나라의 귀여운 그림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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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가득히 동서 미스터리 북스 87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문운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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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다섯의 톰 리플리는 야심만만한 젊은이지만 실제로는 탈세를 돕고 편지사기로 수표를 부정하게 취득하는 등 자잘한 사기나 치면서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그에게 하버드 그린리프라는 조선회사 사장이 찾아온다. 하버드는 자신의 아들 리처드 그린리프(디키)가 이탈리아에 간 후 그림과 여자에 빠져 귀국할 생각도, 사업을 이을 생각도 없이 살고 있다며 그를 설득해 돌아오게 해 줄 것을 부탁한다. 유럽여행을 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톰은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적지 않은 사례금을 받아 이탈리아의 몬지베로로 떠난다.

그곳에 도착한 톰은 호텔에 여장을 풀고 디키를 만난다. 하지만 디키는 톰이 누구인지 잘 기억해내지 못했고, 그다지 반기는 눈치도 아니었다. 디키는 매달 미국으로부터 안정적인 수입을 얻고 있고 부모의 지원도 있었기 때문에 그림과 놀이에 열중해서 지내고 있었으며, 머지 셔우드라는 미국인 여성과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디키와 머지의 관계는 좀 묘했는데 디키는 머지를 여성으로 진지하게 생각지는 않는다고 하면서도 그녀의 집과 자신의 집을 오가면서 스스럼 없이 지냈고, 머지는 디키와 좀 더 발전된 관계를 원하고 있었다.

톰은 특유의 재치와 언변으로 디키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하고 숙소를 호텔에서 톰의 집으로 옮긴다. 함께 살기 시작하자 디키를 사이에 두고 톰과 머지의 신경전이 시작된다. 디키가 톰과 단둘이 보내는 생활이 많아지자 머지는 톰이 동성애자일 것이라 생각한다.

톰은 디키와 함께 언제까지나 이런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머지가 자꾸만 방해가 되었고, 어느 날 머지의 집에서 디키가 그녀와 포옹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게다가 디키의 옷을 몰래 꺼내 입어보다가 디키에게 발견되어 난처한 상황을 맞이했고, 하버드 그린리프로 부터는 디키를 데려올 수 없는 것 같으니 이제 여행 경비를 대줄 수 없다는 편지를 받는다. 디키는 이제 노골적으로 톰이 자신의 집에서 나가 주었으면 하는 눈치를 보였고, 산레모로 가는 여행을 끝으로 톰은 미국으로 돌아가야만 할 처지가 되었다.

톰은 문득 자신의 체격과 외모가 디키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를 살해한 후 디키 행세를 해도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톰은 보트에서 디키를 살해하여 가라앉히고 보트 역시 돌을 집어넣어 가라앉힌다. 몬지베로에 혼자 돌아간 톰은 디키가 머지와 다시 만나고 싶어하지 한는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디키의 부재를 설명하고 그의 물건과 집 등을 처분해버린다. 디키의 행세를 시작한 톰은 매달 배달되는 수표에 위조서명을 하여 현금을 확보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디키의 친구 프레디 마일즈가 나타나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내자 톰은 프레디마저 호텔에서 살해한다. 며칠 후 프레디의 시체가 발견되자 경찰은 그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디키(실제의 톰)에게 주목한다. 게다가 가라앉힌 배가 떠오르고 톰 리플리라는 청년의 행방이 묘연해진 것을 알게 된 경찰은 디키(실제의 톰)이 프레이돠 톰 리플리를 살해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또한, 두 번에 걸쳐 위조서명을 한 수표의 서명에 대해서도 은행쪽에서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에 톰은 계속 디키 행세를 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한다. 톰은 디키의 타자기를 이용해 자신의 모든 재산을 톰에게 남긴다는 유서를 작성한다. 그리고 톰으로 다시 돌아온 후 경찰에 출두한다. 살해되었을 것으로 짐작했던 톰이 멀쩡히 나타나자 경찰 수사는 흐지부지되고 만다. 톰은 디키가 프레디의 살해 사건 이후로 의기소침했었고 자살을 하려 했었다며 머지와 하버드 그린리프, 그리고 그가 데려온 탐정까지 모두 속여넘긴다. 그리고 몇달 지난 후 자신이 맡아 두었던 디키의 편지가 유서였음을 발견했다며 하버드 그린리프에게 통보하여 디키의 유산까지 모두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톰은 디키의 돈과 자유 모두 자신의 것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어디로 가든 자신을 쫓는 경찰의 환상을 볼 것 같다고 생각하지는 순간 어디로 갈 것인가 묻는 택시 기사의 물음에 톰은 제일 좋은 호텔로 가달라고 말한다.

 

소설의 원제목은 <재주꾼 리플리 The Talented Mr.Ripley>(1956)로 르네 클레망 감독이 톰 리플리 역에 알랭 들롱을 캐스팅하여 <태양은 가득히>(1960)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하여 성공하였다. 또한 <길>, <대부>의 음악감독으로 유명한 니노 로타의 OST가 대단한 인기를 얻어 우리나라에서도 <영화음악>이니 <무드음악>이니 하는 제목의 테이프에 반드시 수록되기도 했었다.

2000년에 안소니 밍겔라 감독이 <태양은 가득히>를 다시 리메이크하여 <리플리>라는 이름으로 제작하는데 톰 리플리역에는 맷 데이먼이 분했다.

영화에서는 리플리가 디키를 살해한 후 머지를 유혹하는 설정이지만 원작 소설을 읽어보니 이는 불가능하다. 페트리시아 하이스미스는 톰 리플리를 다분히 동성애적 성향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톰이 디키의 옷을 몰래 입어보는 것이라든가, 디키를 살해한 후 디키가 머지와 성적 접촉을 한 것이 잘못이라고 탓하는 점, 그리고 의자 등에 걸려있는 머지의 속옷에 대해 대단히 불쾌해 하는 점, 야심과 욕망 가득한 톰이 머지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여성에 대해서도 관심 없어 하는 점 등은 다분히 이를 뒷받침한다. 

 

<태양은 가득히>에서 주인공 리플리는 뛰어난 머리의 소유자로 자신의 욕망을 위해 두 명을 살해하고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며 그의 범죄는 완전범죄로 마무리되기까지 한다. 게다가 주인공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악의 화신인 리플리의 성공담과 <태양은 가득히>라는 제목은 묘한 대비를 주어 아이러니하면서도 고통스러운 우리 세계를 시사하는 것 같다.

페트리시아 하이스미스는 톰의 행동에 비난을 가하지도, 톰을 죄책감에 몰아넣지도 않는다. 단 한번, 마지막에 자신이 경찰의 환상을 보게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현재에는 최고의 호텔로 가겠다고 외치기까지 한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55193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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