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벌레 여자 - 윤대녕 장편소설
윤대녕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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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크리스마스 이브에 한 남자가 시청역 벤치에서 눈을 뜬다. 그는 자신이 왜 그곳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만한 것도 전혀 없었다. 남자는 해리성 기억상실증에 걸린 상태로 깨어난 것이다.

시청역 주변을 며칠간 배회하던 그에게 서하숙이라는 여자가 말을 건다. 그녀는 키가 무척 작았고 거식증에 걸린 후로 라면만 먹다가 지금은 라면 요리를 가르쳐주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서하숙은 몇 가지 지켜야 할 것들을 남자에게 다짐시킨 후 자신의 방을 제공한다.

어느 날 서하숙이 남자에게 타인의 기억을 이식받을 것을 제안한다. 남자는 분당의 무인호텔에서 M이라는 사람을 만나 기억을 이식받는다. 남자는 이제 이명구라는 사람의 기억을 갖게 되는데, 기억을 이식받은 후로 차수정이라는 여자를 찾기 시작한다. 이명구와 차수정은 연인 관계였는데 차수정이 불륜을 저지르다 이명구에게 목격된 후 이명구가 자살한다. 이명구의 기억 속에 남은 복수심은 남자의 의식에 작용을 가한다. 차수정은 약물에 중독되어 고통스러운 날들을 이어가던 차에 이명구의 기억을 가진 남자를 만나자 자신의 자살을 방조해달라고 요청한다. 남자는 차수정의 자살을 도운 후 M을 만난다. M은 기억이 이식된 후 약간의 부작용이 있었던 것이라며 새로운 사람의 기억을 이식받을 것을 권한다. 하지만 남자는 거부하고 이명구의 기억마저 없어져 또다시 과거가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M으로부터 기억을 이식받은 사람들에게는 '사슴벌레 모양 문신'이 새겨져 있음을 들은 후 남자는 서하숙의 몸에도 사슴벌레 문신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어느 날 남자를 알아보는 남자가 나타난다. 남자의 이름은 이성호이고 광고회사에 근무했었으며 일산 신도시에 가족이 있다고 했다. 이제 이성호가 된 남자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지만 기억은 되돌아오지 않았고 아버지는 그를 정신병원에 입원 치료하기로 마음 먹는다. 동생의 도움으로 집을 나온 이성호는 서하숙에게 되돌아간다. 아주 돌아온 거냐는 물음에 남자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평론가 백지연과 소설가 심상대가 동업자 의식을 발동하여 거창한 설명과 찬사를 덧붙여 놓았으나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음악과 영화, 미술적인 장치들의 취향이 산만하고 곳곳에 다른 이들이 이미 사용한 모티프의 서슴없는 차용이 거슬린다. 기억과 정체성의 연결이라는 새로울 것 없는 아이디어에 추리적 요소의 도입으로 긴장감을 높였으나 결국은 예정된 결말로 회귀됨으로서 백지연의 평과 달리 '작가주의의 면모'와 '소설의 변화 양상의 포착' 어느 것도 탐탁하게 성취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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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요나라 사요나라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가쓰라가와 계곡 인근의 '미즈노사토 주택'이라는 시영 단지에서 네 살난 메구무가 실종된다. 아이가 계곡 깊은 곳에서 시체로 발견되자 아이 엄마인 사토미가 중요 용의자로 지목된다. 조용하던 마을에 취재진이 몰려든다.

사토미가 옆집에 사는 오자키 슌스케와 관계를 맺어왔다는 진술을 하고, 슌스케의 아내 가나코 역시 남편과 사토미가 관계를 맺어왔다고 확인해준다. 게다가 슌스케가 과거 집단강간 사건을 일으킨 전력이 있었다는 것까지 밝혀지자 수사 방향은 슌스케의 사주 또는 암시에 의해 사토미가 아이를 살해한 것으로 가닥이 잡힌다. 취재 기자 와타나베는 수사 방향에 미묘한 괴리감을 느끼고 후배 고바야시와 함께 사건을 일으킨 슌스케 등과 피해자 나쓰미의 행적을 추적한다.

 

야구부 선후배 사이인 슌스케와 스다, 아카사카, 후지모토는 강간 사건을 일으키고 집행유예 형을 받은 후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간다. 아카사카는 약물 중독으로 29세에 비참하게 사망하고, 스다는 그저그런 계약직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후지모토는 사건과 무관하게 가업의 중역 자리에 올라 평온하게 살아간다. 한편 슌스케는 선배의 연줄로 증권회사에 들어가서 능력을 인정받은 후 선배의 여동생과 약혼도 하는 등 사건을 잊고 잘 살아가는 듯 했다. 그런데 약혼 직후 슌스케가 별다른 설명도 없이 회사를 그만둔 채 잠적해버리는 사건이 일어난다.

나쓰미의 경우는 비참한 일의 연속이었다. 사건 직후 전학을 가지만 소문이 퍼져 고등학교 시절을 외롭게 보낸다. 대학 졸업 후 입사한 회사에서 남자친구를 사귀지만 나쓰미의 과거가 드러나 파혼당하고 회사도 그만두게 된다. 새로 입사한 작은 회사에서 거래처 사람을 사귄 나쓰미는 자신의 과거를 모두 고백한다. 지켜주겠다던 남자는 결혼 후 변하여 나쓰미를 때리고 그녀는 수시로 병원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슌스케가 나쓰미를 우연히 만난 것은 나쓰미가 대학에 다닐 때였다. 영화관에서 나쓰미를 본 슌스케는 자기도 모르게 나쓰미를 따라가서 사죄 의사를 떠듬떠듬 밝힌다. 하지만 나쓰미는 슌스케에게 "용서받고 싶다면 죽어"라고 말한다. 시간이 흐른 후 나쓰미가 남편에게 맞아 병원에 입원하길 반복한다는 것을 알게 된 슌스케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꽃이나 과자를 사들고 문병을 오는 슌스케를 나쓰미는 모르는 척할 뿐이었다.

슌스케가 약혼자와 레스토랑에 들어간 어느 날, 그의 전화기가 울린다. 전화를 건 것은 남편에게 맞다가 돈 한푼 없이 도망친 나쓰미였다. 그날로 슌스케는 나쓰미와 함께 정처없이 떠돈다. 둘은 행복해지기 위해 함께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쓰미는 강간 사건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소문은 그녀를 끝까지 쫓아다녔고 소문이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사람은 슌스케 뿐이었다. 바로 그가 범인이었으므로. 나쓰미가 어느 날 슌스케 앞에서 옷을 벗으며 자신의 이름을 나오코라고 바꾼다. 나오코는 사건 당일 먼저 돌아간 덕택에 강간 사건에서 벗어난 친구 이름이었다.

 

나오코, 혹은 나쓰미가 경찰에 찾아가 사토미와의 관계 부분은 자신의 거짓 진술이었음을 밝히고, 아이를 죽인 사토미 역시 그 즈음부터 슌스케와의 관계에 대해서 입을 다문다. 슌스케가 풀려나자 나쓰미는 그와 함께 자신이 일하는 온천탕에 들러 몸을 씻는다. 돌아오는 길에 나쓰미는 슌스케에게 자신의 거짓말에 대해 원망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취재 기자 와타나베가 다시 슌스케의 집을 방문했을 때 나쓰미는 슌스케를 떠나고 없었다. 나쓰미는 슌스케를 떠남으로서 슌스케를 용서했던 것이다. 슌스케는 나쓰미를 찾겠다고 말한다.

 

소설을 읽는 동안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영화 <돌스>를 떠올렸다. <돌스>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기타노 다케시를 좋아했기 때문에 본 영화였는데 기타노 다케시가 그동안 출연했던 영화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다. 자신이 버린 여자가 자살을 기도한 후 정신에 문제가 생기자 남자는 여자를 찾아간다. 여자는 정신은 삶의 끈을 놓쳐버린 망연한 상태였고 남자는 그녀와 자신의 몸을 끈으로 묶고 목적지 없이 돌아다닌다. 일본에서는 인연이 있는 남자와 여자는 보이지 않는 붉은 끈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영화는 그 모티프를 가지고 음울한 둘의 발걸음을 한없이 보여준다.

그 당시 마사아키 키시베의 기타곡 <絆>을 연습했다. <絆>을 사전에서 찾으면 끈, 얽어매다, 줄, 올가미 등의 뜻이 나온다. 일본에서 올해의 한자로 사용된 絆. 재작년에 나는 이 한자 絆 에 관해 오랫동안 생각했다. 絆자가 인연의 끈을 말하는 것인지 아닌지 확실히 알지 못했지만 기타노 다케시의 <돌스>에서의 붉은 끈과 마사아키 키시베의 <絆>은 나에게 있어 연상작용을 불러 일으켰다.

인연의 어긋남은 절대로 되돌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번 절둑거리기 시작한 관계는 돌이킬 수 없다. 화해와 망각, 용서를 위한 노력은 계속될 수 있지만 절대로 그 관계가 회복되지는 않는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편에 대해 구축했던 이데아의 훼손, 그것이 회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데아의 세계로부터 추락하여 현실의 세계에서 그 사람을 품으려는 노력은 인간적이다. 인간적인 것은 필연적으로 아픔을 동반하므로 관계는 아픔을 동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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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 제1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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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의 바램은 담임 똥주가 죽어주는 것. 난장이 아버지와 정신 지체가 있는 삼촌과 살아가는 완득이를 담임 똥주는 놀리고 괴롭히는데, 정작 담임이 하는 말의 면면을 보면 틀린 말이 아니고 때로는 자신을 위한 말들도 있어 완득이는 더 약이 오르는 것이다.

배가 고파 죽는 것이 쪽팔린 것이지 수급자가 된 것이 쪽팔린 것이 아니다 라든가, 난장이 아버지가 지하철에서 물건 파는 것을 반 아이들이 다 알도록 이야기하며 사지 멀쩡한 사람이 집에서 노는 것이 쪽팔린 것이다 라든가, 옳은 소리긴 한데 완득이 입장에서 달갑지 않은 언사를 일삼는 것이다.

어느 날 똥주가 완득이에게 베트남인 어머니가 있다고 알려준다. 마침내 어머니와 대면한 완득이는 쑥스러우나마 어머니에게 신발을 사주기도 하고 해주시는 밥도 먹으며 관계를 조금씩 쌓아 나간다.

완득이는 반에서 일등 하는 정윤하와 미숙한 연애도 시작하고 킥복싱도 배우며 세상을 씩씩하게 살아간다.

 

영화를 먼저 보았는데 영화 속 따뜻한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똥주 역의 김윤석과 완득이 역의 유아인은 너무나 적절한 캐스팅이었다. 똥주와 무협지 소설가의 러브 라인은 소설에 나오지 않지만 그 외의 부분은 대사까지 거의 비슷하다.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을 손 댈 필요 없을 정도로 드라마로서의 완성도가 높았기 때문이리라.

물론 완득이와 같은 환경에서 비뚤어지는 경우가 열에 아홉이겠지만, 완득이와 같은 캐릭터를 등장시켰다는 것에서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각이 느껴져서 좋았다. 제1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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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폐범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9
앙드레 지드 지음, 원윤수 옮김 / 민음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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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는 어느 날 자신이 사생아임을 알게 된다. 사실을 인지한 그날로 베르나르는 야멸찬 편지를 아버지 앞으로 남긴채 집을 나간다. 친구 올리비에의 집에서 그날 밤을 보내는데, 올리비에는 자신의 형 벵상과 외삼촌 에두아르에 관해 이야기 한다.

벵상은 폐병으로 입원한 요양원에서 남편이 있는 로라를 만난다. 둘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이상 심리에서 관계를 맺고 그 결과로 로라가 임신을 한다. 로라와 태어날 아이를 위해 돈을 마련하려던 벵상은 파사방의 권유로 도박을 하는 바람에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잃고 만다. 벵상은 애초의 순수한 의도와 달리 돈을 모두 잃었다는 사실을 빌미로 로라의 처지를 외면하고 그녀를 버린다. 

에두아르는 소설가로 올리비에는 그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으며, 베르나르 역시 올리비에의 이야기를 듣고 관심을 갖게 된다.

벵상에게 버림받은 로라는 자신의 첫사랑인 에두아르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낸다. 에두아르가 오는 날 올리비에는 역으로 마중을 간다. 에두아르와 올리비에는 서로에 대해 끌려왔고 만남을 고대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싱겁게 끝나고 만다. 베르나르는 역에서 주운 에두아르의 물품 보관 표로 그의 가방을 손에 넣은 뒤 일기를 훔쳐 보게 된다. 그의 일기는 자신의 소설에 대한 구상, 로라와 올리비에에 관한 감정 등이 적혀 있었다. 베르나르는 로라를 찾아가 그곳에서 에두아르와 만나게 된다. 에두아르는 베르나르에게 흥미를 보이고 그를 비서로 삼아 로라와 셋이서 스위스의 사아스 페로 여행을 떠난다. 한편 셋의 여행에 심한 질투를 느낀 올리비에는 천박한 소설가인 파사방 백작의 일을 거들기 시작한다.

에두아르는 사아스 페에서 옛 스승 라 페루즈의 손자인 보리스를 데려와 기숙 학교에 입학시킨다. 베르나르는 로라에게 사랑을 느꼈지만 그녀의 동생 사라와 관계를 맺는다. 언젠가는 자신의 손으로 목숨을 끊겠다던 라 페루즈는 끝내 용기를 내지 못하고, 손자인 보리스가 그 권총에 의해 희생되고 만다. <위폐범들>이라는 소설을 구상해오던 에두아르는 보리스의 사건을 소설에 쓰지 않기로 결심한다. 올리비에의 동생 조르주는 위폐를 사용하는 일로 문제를 일으키고, 베르나르는 아버지 프로피탕디외 씨에게로 돌아간다.

 

열두 살 되던 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앙드레 지드는 어머니의 과잉보호와 엄격한 종교적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고 한다. 동경하던 외사촌 누이 마들렌 롱도와의 결혼이 어머니의 반대에 부딪힌 지드는 <앙드레 왈테르의 수기(1981)>에서 자신이 결혼하더라도 육체 관계를 갖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마들렌은 이 수기를 읽고 그의 구혼을 거절한다. 그 무렵 니체와 오스카 와일드를 만나고 기독교와는 결별한다.

1893년 10월 친구이자 화가인 폴 로랑과 아프리카 알제리로 여행을 떠나는데 그곳에서 동성애 관계를 알게 된다. 1985년 5월 어머니를 여읜 후 마들렌에게 다시 구혼하여 결혼한다. 그러나 지드는 자신의 선언대로 그녀와 육체 관계를 맺지 않고, 이로 인하여 결혼 생활은 불행해진다.

<지상의 양식(1897)>, <배덕자(1902)>에서 개인주의를 극단으로 밀고 나갈 때 생기는 위험에 대해 경고하고, <좁은문(1909)>에서는 반대로 종교적 이상을 위해 자연적 본능을 억압할 때 생기는 위험에 대해 묘사하여 호평을 받는다. 1909년에는 <신프랑스 평론>을 창간하는데, 이 잡지는 훗날 갈리마르의 모체가 된다.

<교황청의 지하도(1914)>을 발표하여 종교계를 야유하고 동기없는 범죄를 통해 인간의 완전한 자유를 실험하는데 이로 인해 친구이자 작가인 폴 클로델과 결별한다. <전원교향곡(1919)>에서 개신교 목사를 통해 인간에게 내재한 자기기만의 뿌리를 묘사하고, 1924년 자기 작품 중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공언한 <코리동>을 발표하여 동성애를 적극 옹호한다.

1926년에 발표된 <위폐범들>은 자신이 최초의, 유일한 소설로 명명한 작품으로 누보로망의 선구적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그 즈음 마르크 알레그레와 함께 콩고로 여행을 떠나고 그 후로 차차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프랑스의 비인간적인 식민 정책과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페미니즘과 공산주의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고 1938년 아내 마들렌이 죽자, 자신이 한 여인의 삶을 망쳐놓았음을 통렬히 후회한다. 1947년에 노벨상을 수상한다.

 

월말 마감과 인사 이동의 혼란 중에 읽었다. 작품 내용도 일반적인 줄거리가 있는 소설은 아니었기에 마치 현재의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느낌도 있었다. 소설은 여러 차원에서 여러 인물들이 상호 교차되고, 소설 속의 소설가 에두아르의 일기가 가미되어 일견 혼란스럽기도 하다.

작품의 제목인 <위폐범들>이 시사하는 바는 등장 인물들의 행동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작품 속 인물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직시하지 않으려 하고 타인과의 관계 역시 보여지는 모습에 과도하게 집착함으로서 왜곡하기 일쑤이다. 베르나르는 아버지가 자신을 차별하지 않고 사랑했음을 알면서도 야멸찬 편지를 남긴 채 집을 나가고, 올리비에와 에두아르는 서로에 대한 애정을 숨기고 엉뚱한 상대를 선택한다. 로라 역시 에두아르라는 첫사랑, 또는 현재의 법적인 남편이 아닌 엉뚱한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고 조르주는 돈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위폐를 사용하는데 골몰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화폐가 가치 척도의 기능을 획득하게 되는데 위폐가 등장하게 되면 이러한 가치 척도의 기능은 물론이거니와 가치 자체에 대한 왜곡마저 일어나게 된다. 따라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게 되는" 현상은 이러한 왜곡 현상의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작품 속 인물들은 저마다 자신의 내밀한 욕망에 솔직하지 못한 채 기형적이고 거짓된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소설가 지드는 이런 세계 속에 소설가 에두아르를 배치하고 다른 사람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지드 자신 역시 왜곡되고 거짓된 세계 속에서 에두아르와 같은 노력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종교에 대한 반감과 등장인물들의 동성애적 동인, 소설 형식에 대한 다채로운 실험, 수많은 인물과 집안의 상호 교차 등을 통해 펼쳐지는 지드의 실험은 현재에도 비평가들의 연구 주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정묘한 느낌은 별로 받지 못했다. 오스카 와일드에 비견하여 동성애적 동인은 조악했고, 자신이 극복하려한 사실주의 작가들과 차별되는 세계를 구축하지도 못했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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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 2008년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백영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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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지 <A>의 기자로 일하고 있는 이서정은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사고로 쌍둥이 언니 중 한 명을 잃는다. 다리가 무너지는 광경은 가족들이 직접 목격했고 각자는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 

이서정은 친한 여자동료와 함께 잡지사 기자일을 하며 56킬로그램의 몸무게로 스키니진 체험기에 도전하기도 하고, 뺀질거리는 남자 동료와 섹스에 관한 대담을 기사로 만들기도 한다.

유명 여배우 정시연을 인터뷰하기 위해 오랫동안 공을 들인 결과 무사히 기사를 완성하고 스타일리스트 김민준과도 관계를 갖는 행운을 누릴 뻔 하지만, 다이어트약의 부작용으로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리고 과거 자신을 5분만에 차버린 남자 박우진을 다시 만난다.

박우진은 의사를 때려치우고 레스토랑을 경영하고 있었다. 예약을 받지 않는 조그마한 레스토랑이었는데 뜻밖에도 요리는 수준급이었다. 식당을 인터뷰하려는 이서정에게 박우진은 완강하게 거절하고 타협안으로 주방에 들어와 일주일간 체험하라는 조건을 내건다. 주방에서 일하던 도중 이서정은 큰 상처를 입고 퇴원하던 날 박우진과 관계를 맺는다.

패션지 <A>에 정기적으로 레스토랑 평을 싣는 미스터리 투고가 '닥터 레스토랑'을 인터뷰하는 과제를 앞두고, 이서정은 과거 박우진이 의사로 일하던 시기에 자만심으로 의료사고를 냈었고 선을 보는 날 역시 비슷한 사고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게이라는 소문은 'gale'이라는 그의 영어이름 때문에 빚어진 헤프닝이었고, 김민준이 박우진을 좋아했었음이 밝혀진다. '닥터 레스토랑'은 잡지사를 팔아치우려는 사장에 대항해 편집장이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이었다.

 

소설은 한차례의 끊김도 없이 술술 읽힌다. 작가의 얄팍한 세계관과 인간에 대한 통찰의 깊이를 반영하듯 멈춰 서야 할 문장은 한 군데도 없다. 두 번 읽을 이유가 없으므로, 좁은 방을 차지할 이유도 없다. 

언젠가부터 이런 소설들이 문학상을 타고, 출판되고, 팔리고 있다. 주인공의 고민이란 이런 것이다. '명품백을 들고 싶다는 것'과 '제3세계 어린이가 불쌍한 심리'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고민이 소설로 쓰여진다. 하이틴 로맨스에 그럴싸한 트라우마 한 두개를 곁들인 소설이.

한세기 남짓 실험되던 체제가 무너지고, 후일담 소설들이 쏟아진 후, 도무지 이젠 뭘 써야 좋은가 하는 질문이 쏟아질 무렵 말장난에 능한 재담꾼들이 등장했다. 그들이 묻는다. 소설가에게 세계관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뭔데? 없어도 된다. 다만 읽기 전엔 알 수 없다는 사실은 서로에게 불행이다. 소설가에게도, 나에게도. <철수사용설명서>의 옆 자리를 차지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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