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빛 - 검은 그림자의 전설 안개 3부작 1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송병선 옮김 / 살림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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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은 남편 아르망 소벨이 죽으면서 남긴 엄청난 빚 때문에 두 아이 이레네, 도리안과 함께 절망의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1937년 르콩트씨가 그녀에게 장난감 제작자 라자루스 얀의 저택 관리인으로 추천하여 상황은 호전된다. 라자루스는 그녀에게 살 집과 후한 급료를 제공한다. 그녀는 라자루스가 요구한 몇 가지 금기사항만 지키면 되었다. 라자루스의 저택 크래븐무어에는 온갖 종류의 장난감과 로봇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2층에는 20년 전부터 병석에 누워있는 알렉산드라라는 부인이 있었다. 

어느 정도 교육을 받고 교사로도 일한 전력이 있는 시몬은 라자루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비서이자 고용인이었다. 라자루스는 차츰 시몬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어느 날 밤에는 시몬의 집을 방문하기까지 한다. 

얼마 후 한나라는 어린 고용인이 한밤중에 크래븐무어 저택의 열린 창문을 닫으러 갔다가 호기심에 향수병을 열게 된다. 향수병에서 나온 검은 물체가 한나를 추격하고 그녀의 시체가 다음 날 숲에서 발견된다. 한나의 사촌 이스마엘은 기필코 자신이 한나의 죽음을 밝히리라 다짐하고 이레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레네와 이스마엘은 라자루스가 밤산책을 나간 것을 틈 타 크래븐무어 저택에 숨어든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몬의 얼굴을 본 뜬 기계인형을 발견한다. 2층으로 갔다가 마찬가지의 그림자에게 쫓긴 둘은 가까스로 탈출한다.

한편 시몬은 가면을 쓴 라자루스에게 납치당해 크래븐무어에 갖힌다. 그는 시몬에게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린 시절, 라자루스의 어머니는 불치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정신 마저 병이 들게 되었다. 그녀는 라자루스에를 지하실에 가두곤 했다. 어느 날 다니엘 호프만이라는 미스터리에 쌓인 장난감 제작자가 라자루스를 찾아와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자신 외의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는다면 모든 불행을 없애주겠다는 것이다. 그러겠노라는 라자루스의 다짐을 받은 다니엘 호프만은 향수병을 열어 라자루스의 그림자를 가두고 자리를 떠난다. 얼마 후 누군가가 경찰서에 연락해 라자루스는 지하실에서 구출된다. 

성년이 된 라자루스는 다니엘 호프만으로부터 크래븐무어를 양도받고 장난감 제작에 힘을 쏟는다. 그리고 알렉산드라에게 반해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겨 결혼한다. 알렉산드라가 받은 결혼 선물에는 향수병이 있었다. 결혼 1주년이 되면 사용하라는 메모와 함께였다. 정해진 날 향수병을 열자 그림자가 나타나 라자루스와 알렉산드라의 삶을 망가뜨리기 시작한다. 라자루스는 그림자가 자신과 가까이 있을 때에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알고 등대섬으로 피신한다. 하지만 알렉산드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라자루스를 만나기 위해 배를 타고 등대섬으로 향하고 그림자는 그녀를 바다 밑에 수장시킨다.

 

가면을 쓴 라자루스는 그림자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라자루스가 시몬에게 친밀감을 느끼자 누군가에게 마음을 빼앗겼다고 판단한 그림자가 또다시 힘을 얻게 되었고 그 와중에 한나가 죽은 것이었다. 도망쳤던 이레네와 이스마엘이 크래븐무어 저택으로 돌아오고 그림자에게 공격 받았던 라자루스 역시 정신을 차린다. 라자루스는 인형으로 만든 알렉산드라를 마지막으로 포옹하며 자살한다. 그림자 역시 사라진다.

 

<9월의 빛>은 <안개의 왕자>, <한밤의 궁전>으로 이루어진 3부작 소설의 첫 권에 해당한다. 소설은 이스마엘이 이레네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된다. 100통째 보내는 편지라는 내용으로 미루어 어떤 계기 때문에 헤어진 상태라는 점만 암시하고 있다. 모든 이야기가 끝난 후 이레네의 답장이 이어진다. 소설은 다분히 영화적 어법으로 쓰여져 있다. 

<9월의 빛>에서는 다니엘 호프만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다. 라자루스의 마음을 빼앗은 후 알렉산드라에게 마음을 빼앗기기 전까지 다니엘 호프만이 요구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명확하지 않다. 1937년에도 라자루스는 다니엘 호프만의 편지를 주기적으로 받고 있었으므로 그가 마음을 빼앗는 이유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나머지 두 개의 소설에서 이야기하고 있는지 어쩐지 모르겠다. 다만 수백만의 마음을 빼앗는다는 이야기와 2차 세계대전의 끔찍함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런 내용이 언급되지 않나 추측할 뿐이다. 시간을 들여 확인하고 싶을 정도의 인상은 받지 못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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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기다리다 - 제134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이토야마 아키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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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바다에서 기다리다

 

'나'는 고탄다에 갔다가 마키하라 후토시, 통칭 후토(太)짱을 만난다. 

 

후토짱은 입사 동기로 처음엔 조금 통통한 정도의 체격이었으나 이름 값을 하려는 것처럼 뚱뚱해지더니 나중에는 거대해진다. 도쿄 출신의 '나'와 후토짱은 후쿠오카로 발령이 결정되자 발령지에 불만을 품고 우울해 했으나 막상 가보니 도시가 의외로 밝고 깨끗해 머쓱한 기분으로 회사 생활을 시작한다. 버블 경제의 막바지 무렵이라 둘은 야근을 밥먹듯 하며 일에 매진한다. 

얼마 후 단호한 면이 엿보이는 베테랑 사원 이구치씨와 느슨한 분위기의 후토짱이 결혼을 한다. 이구치씨는 '루카'를 낳고 회사를 그만둔다.

버블 경제는 붕괴 되었지만 여전히 일은 많았다. 예전에는 납기에 맞추느라 바빴다면 이제는 경쟁사와 고객을 놓고 경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와 후토짱도 각기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서 예전처럼 만나기가 쉽지 않게 된다. 도쿄에서 후토짱과 만나 술잔을 기울이던 '나'에게 후토짱이 '누가 먼저 죽게 되든 상대편의 하드디스크드라이브를 망가뜨려 주자'고 제안한다. 

어느 날 후토짱이 집에서 나오다가 자살하는 사람과 부딪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나'는 약속대로 후토짱의 하드디스크드라이브를 망가뜨린다. 

후토짱의 장례식에 갔다가 이구치씨가 건내준 대학노트를 보게 된다. 거기에는 조잡하지만 후토짱 다운 시들이 적혀 있었다. 애써 망가뜨려준 하드디스크드라이브에는 그 시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노트에 죄다 남겨 놓았으니 쓸데 없는 짓을 한 셈이다.

 

고탄다에서 만난 후토짱은 그러니 유령이다. 후토짱은 예약을 하고 간 치과에서 자기 이름이 불리지 않는 상태 같다고 말한다. '나'는 후토짱에게 후쿠오카에 처음 갔을 때가 기억나는지 묻고, 후토짱은 기억한다고 답한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덧붙일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o 노동감사절

 

나가다니가와씨는 이웃으로 '내'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여러가지로 신경을 써준 분이다. '나'의 엄마와 나가다니가와씨 모두 과부였고 그런 사정으로 둘은 상당히 친했는데, 백수로 시집도 못가는 '나'를 염려해 나가다니가와씨가 맞선을 주선해 준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주선자의 입장을 생각해 나간 맞선 자리에 나온 남자는 '폭탄' 이었다. 대기업에 다니는 그는 '일을 취미로 갖고 있는' 남자였고 지저분한 식사 매너에 더욱 나쁜 것은 백수에 시집을 못간 나를 '마케이누(싸워서 진 개 : 결혼하지 않은 30대 미혼 여성)'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참지 못하고 자리를 뜨는 '나'를 엄마는 차마 말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엄마에게 집적댄 부장을 맥주병으로 내리쳐 회사에서 퇴직하게 된 '나'의 성깔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 때 같은 회사에 다녔으나 이제는 퇴직하여 여행사에 다니는 미즈다니를 시부야로 불러 술을 마신다. '나'는 버블 경제 당시 학력 역차별로 입사해 이렇다할 비전도 없이 여성다운 일을 강요당하다가 퇴직한 자신을 되돌아본다. 이제는 그저 다루기 어려운 아줌마로 애써 배운 영어 따위 써먹지도 못하는 것 등을 떠올린다.

그때 미즈다니가 누에 이야기를 한다. 누에는 어렸을 때 새하얗고 통통한데다가 가느다란 명주를 토해낼 때엔 너무너무 사랑스럽지만 어느 날 나방이 되면 자기가 나온 새하얀 고치에 오줌을 싸고 흉하고 보기싫은 털까지 있어 완전히 엉망이다, 이제 우리들이 그런 누에나방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요지의 말을 한다.

미즈다니와 헤어져 집 앞 술집에 들른다. 술집 주인은 장사가 잘 안되는 것을 걱정하는 나에게 '할 수 있는 데까지 할 뿐, 안되면 그 때 가서' 라고 말한다. 화장실에 들른 나는 생리가 시작된 것을 알게 되고  여자라는 사실이 싫어진다. 집으로 가면서 나는 '안되면 그 때 가서' 라고 생각한다.

 

표제작 <바다에서 기다리다>는 2006년 134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다. 그러나 여러가지로 허술한 작품이다. '나'와 후토짱 사이에 딱히 연대의식이 싹틀 만한 사건도 없이 그저 동기라는 이름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대학 다닐때에 '동기사랑 나라사랑' 하는 정체 불명의 구호가 있었다. 나는 그 말이 정말 싫었다. 동기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은 둘째 치고 그것이 곧 나라 사랑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도 우스웠다. 그런데도 '동기사랑 나라사랑' 운운의 말은 NL 계열의 전략적 지원을 받기라도 한 듯 그 후로도 몇 년간 회자되었다.

<노동감사절>은 131회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인데 이쪽이 더 마음에 든다. 백수이자 시집을 못 간, 소설 속에서 '싸워서 진 개' 의 위치에 있는 노처녀의 섬세하고도 유머러스한 심리 묘사가 돋보인다. 김애란의 <성탄특선>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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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4
서머싯 몸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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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인 '나'는 소설가로 어느 정도 명성을 얻은 인물이다. 화자에게는 엘리엇 템플턴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는 미술 거간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한편 사교계에 선을 대고 있다. 본래는 미국인이지만 영국과 프랑스에 체제하며 귀족주의적 태도를 견지하는 등 속물적인 인물이지만 남을 돕기 좋아하는 일면도 있다.

'나'는 엘리엇 템플턴, 그의 여동생 루이자, 그리고 그녀의 딸 이사벨과 친교를 맺게 된다. 엘리엇과 루이자의 걱정은 딸 이사벨이 래리라는 청년과 약혼을 한 상태인데 그가 도통 직업을 얻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래리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고깃덩이처럼 변해버린 전우의 시체를 보고 삶의 근간이 흔들리는 경험을 했었다. 그 후로 삶의 목적이라든가 악이 존재하는 이유 등에 관한 해답을 얻고자 한다. 이런 이유로 래리는 프랑스 파리로 떠나고 만다. 엘리엇은 자신의 조카가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청년과 약혼했다는 것이 못내 못마땅했다. 

 

엘리엇을 만나러 루이자와 이사벨이 파리로 온다. 래리와 이사벨은 파리에서 서로의 견해 차이를 확인한 후 파혼에 이른다. 래리는 자신이 인생의 해답을 얻기 위해 정진하면서도 이사벨과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사벨은 물질적인 풍요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얼마 후 이사벨은 대부호의 아들 그레이와 결혼하고 래리는 프랑스의 탄광과 수도원, 독일의 농장,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떠돌며 구도의 길에 나선다.

 

마냥 계속될 것만 같았던 증권시장의 상승세가 1929년 대공황으로 폭락한다. 그레이는 파산하고 루이자 역시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는다. 엘리엇은 대공황 직전 교황청의 조언에 따라 주식을 모두 금으로 바꾼 덕에 훨씬 부자가 된다. 엘리엇의 권고로 그레이와 이사벨은 파리로 이주한다. 하지만 그레이는 파산의 여파로 신경쇠약과 극심한 두통을 얻게 되고 되고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래리는 화자인 '나'와 우연한 만남을 몇 차례 갖는다. 래리는 자신이 신비주의와 가톨릭 등 해답을 찾기 위한 경험과 공부 등을 이야기한다. 모두가 파리에 머무르던 어느 날 소피 맥도널드가 나타난다. 그녀는 래리, 이사벨, 그레이와 함께 자란 아가씨이다. 그녀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교통사고로 남편과 아이를 잃고 그 후로 심각한 타락을 거듭하다가 추문을 견디다 못한 시댁에서 쫓겨나 유럽에서 생활비를 얻어 쓰는 처지였다. 그녀는 알코올과 마약에 중독된 상태였고 아무하고나 잠자리를 가졌다. 

래리는 어렸을 적 소피와 시를 읽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녀의 내면에 숭고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 래리는 결혼을 결심한다. 이 소식은 이사벨에게 충격을 가져다 준다. 이사벨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나'는 결혼을 반대하는 이사벨의 견해에 동조하지 않는다. 또한 그녀가 물질적인 풍요 때문에 래리를 버렸으면서도 겉으로는 자신이 대단한 것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피해자인척 했고 래리에 대한 욕정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사벨은 소피가 알코올 중독에서 헤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자신의 집에 초대한 후 술병을 남겨 놓는다. 그녀의 의도대로 소피는 술을 마신 후 결혼식 3일 전에 잠적하고 만다. 

 

래리는 인도로 여행을 떠나고 그곳에서 흰두교와 구도자들에게 매료된다. 5년간의 인도 체제를 마치고 돌아온 파리에서 래리는 소피가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나'와 래리는 경찰서에 불려가 신원확인을 해준다. 래리는 자신이 그동안 공부한 내용을 정리하여 한 권의 책을 발간한다. 그 책은 성공한 인물들에 관한 에세이였다.

래리는 인도 여행을 계기로 모든 사람은 자신의 내부에 신적인 성스러움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고 이제 미국으로 건너가 그런 삶을 살겠다고 말한다. '나'는 그런 래리의 삶이 과연 얼마만큼 세상에 변화를 가져올지 의문시하지만 래리는 아주 작은 변화라 할지라도 수면에 파문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이사벨과 그레이 역시 엘리엇이 죽으면서 남겨준 유산으로 미국에서의 삶을 다시 시작한다. 래리의 미국행을 전해 들은 이사벨은 자신이 이제 영원히 래리를 잃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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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굴레에서>,<달과 6펜스>와 함께 서머셋 몸의 3대 장편소설로 꼽히는 <면도날>은 1944년도에 발간된 소설이다. 작품 제목인 <면도날>은 카타 우파니샤드에의 "면도칼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기는 어렵나니, 그러므로 현자가 이르노니, 구원으로 가는 길 역시 어려우니라" 에서 인용된 말이다. 

소설의 중심 인물은 역시 래리이다. 그는 전쟁을 통해 죽음을 목격한 후 인생의 의미에 관해 심각한 고민에 빠지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동서양을 여행하고 많은 공부를 한다. 작가는 소설에서 미국을 유럽과 동양의 중간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제3의 가능성을 지닌 나라로 설정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패권국이 되기 전, 미국은 양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물질적인 면에서는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정신적인 가치관에 있어서는 심각한 위기를 겪게 된다. 유럽의 카톨릭이라는 완결된 형식의 가치관은 스스로 거부한 상태였고 동양적인 가치관 역시 마련할 여유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래리처럼 전쟁과 죽음을 경험한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겪은 일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없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엄청난 경험을 한 래리는 따라서 스스로 답을 찾는 여행을 할 수밖에 없다. 

물론 래리는 완결된 형식의 해답을 얻지는 못한다. '도를 아십니까'라는 역전 앞 사기꾼들의 질문에 '알고 있다면 그것이 도이겠느냐'라고 되물었다는 말처럼 한 권의 소설 속에서 인생의 근원적 질문에 대한 해답이 제시될 수는 없다. 하지만 래리가 결국 동양적인 선(善) 사상을 받아들이는 부분은 역시나 서양적인 선입관이 작용된 바가 크다고 느낀다. 이러한 선입관이 결국 서양은 물질적인 면, 동양은 정신적인 면이라는 잘못된 이분법적 구분을 낳고 제국주의적인 침략과 그 결과도 용인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는데 일견 타당한 지적이다.

작품 속 인물들은 각자 추구하는 바에 따라 인생을 살아간다. 래리처럼 인생의 근원적 질문에서 해답을 얻고자 노력하는 인물도 있지만 이사벨과 같이 물질적인 풍요와 욕정을 동력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엘리엇은 사교계와 귀족사회를 자신의 세대에서 다시금 부활시키고자 하고 그레이는 직업을 통해 성취감을 맛보고 싶어한다. 작가는 그들 모두가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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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키 단편선 범우문고 97
막심 고리키 지음 / 범우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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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스물 여섯 사내와 한 처녀

 

음침한 지하실의 지저분한 환경 속에서 크렌젤리를 만드는 스물 여섯 명의 사내들은 빵을 얻으러 오는 타냐를 연모하고 있다. 모두들 그녀가 왔다 가면 유쾌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자신의 타냐' 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흰 빵 굽는 작업장에 멋쟁이 사나이가 나타난다. 그는 말쑥하게 차려입고 여자들을 후리는 것을 업으로 삼는 자였다. 크렌젤리 작업장에서 뻐기던 그에게 한 사나이가 타냐만은 넘어오게 할 수 없을 것이라 말한다. 오기가 생긴 멋쟁이 사나이는 정해진 기한 내에 타냐를 넘어오게 만들겠다고 큰소리친다. 그의 말이 사실임이 증명되자 스물 여섯 명의 사내는 타나에게 욕설을 퍼붓고 비난한다.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하던 타냐는 곧 자세를 가다듬더니 사내들에게 더러운 불량배라 욕을 한 후 두번 다시 크렌젤리를 얻으러 오지 않았다.

 

o 에밀리얀 필랴이

 

돈도 떨어지고 일자리도 없는 '나'와 에밀리얀 필랴이는 제염소(製鹽所)에라도 가서 일을 얻어야 할 판이다. 우크라이나 양치기들에게서 담배와 베이컨을 넣은 빵을 얻어 먹고 피운 후 에밀리얀 필랴이는 한 가지 이야기를 해준다.

에밀리얀 필랴이가 폴바타에 있을 때 주인의 돈을 60루블쯤 꿀꺽한 죄로 재판을 받고 석달 간 강제노역을 한다. 그는 형기를 마치고 난 다음에도 불법적인 일을 하는 파벨 페트로프 등과 어울리다가 자신이 일하던 상점 주인이 수금해오는 날 강도짓을 하기로 계획을 세운다. 밤중에 다리에 엎드려 쇠몽둥이로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는데 한 소녀가 울면서 다가왔다. 그 소녀는 자살하기 위해 다리로 온 것이었다. 에밀리얀 필랴이는 열심히 소녀를 설득해 자살을 만류한다. 소녀는 에밀리얀 필랴이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강도짓은 유야무야 되고 만다. 자초지종을 들은 파벨 페트로프는 에밀리얀 필랴이를 비웃고 쫓아낸다. 

 

o 첼카슈

 

부두 부근에서 불법적인 짓을 일삼는 첼카슈가 시골 출신의 가브릴라를 꼬드겨 도둑질에 가담시킨다. 가브릴라는 농촌 출신으로 처음엔 도둑질에서 걸려 신세를 망치게 되지나 않을까 겁을 냈으나 막상 도둑질이 성공하고 첼카슈가 200루블을 나누어줄 테니 한 탕 더하자는 말에 마음이 바뀐다. 첼카슈가 40루블을 보수로 나누어주자 가브릴라는 별안간 첼카슈에게 덤벼들더니 나머지 돈도 모두 자기에게 달라고 애걸복걸한다. 둘은 돈 때문에 서로 다투고 가브릴라가 모질게 던진 돌에 첼카슈가 머리에 큰 부상을 입는다. 쓰러진 첼카슈에게 달려들어 용서를 빌던 가브릴라는 첼카슈가 던진 돈을 비굴하게 주워든다. 둘은 각기 반대 방향으로 걷고 비와 물보라가 둘이 머물렀던 흔적을 모두 지워버려 그들 사이에 벌어졌던 비극도 추억할 수 없게 만든다.

 

o 마카르 추드라

 

마카르 추드라가 로이코 조바르라는 젊은 집시 이야기를 해준다. 조바르는 용감무쌍하고 무엇도 귀중히 여기지 않는 사나이였다. 마카르 추드라가 다닐로 일행과 함께 부코비나에서 유목할 때의 일이다. 다닐로에게는 랏다라는 아름다우면서도 도도한 딸이 있었다. 랏다에게 반한 한 부호가 감언이설과 막대한 부로 꼬드겼지만 랏다는 비웃으며 거절할 뿐이었다.

조바르가 다닐로 등이 머물던 곳에 찾아온다. 조바르가 뛰어난 바이올린 솜씨를 뽐내며 노래를 부르지만 랏다는 조바르를 무시하고 도도하게 굴 뿐이었다. 조바르는 자존심이 상해서 랏다와 같이 사나운 말에는 강철 재갈을 물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랏다의 채찍에 걸려 넘어졌을 뿐이다. 상심한 조바르가 혼자 앉아 있는데 랏다가 다가와 자신 역시 조바르를 사랑한다면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릎 꿇고 청혼한다면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

다음 날 조바르는 랏다에게로 간다. 조바르는 자신이 랏다의 앞에 무릎을 꿇고 청혼할 것이라고 공언한다. 그러자 랏다가 손으로 자기 발을 가르켰고 사람들은 조바르가 랏다 앞에 무릎 꿇는 것을 보기가 어쩐지 창피하기도 하고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조바르는 랏다가 자신에게 보여준 것과 같은 강철 심장이 있는지 보겠다는 말을 한다. 잠시 후 랏다는 쓰러졌고 그녀의 가슴에는 조바르의 구부러진 비수 자루가 꽂혀 있었다. 랏다의 아버지 다닐로가 비수를 들어 조바르의 등을 찔렀고 조바르 역시 죽고 만다.

이야기를 다 들은 나는 조바르와 랏다를 떠올린다. 그들 두 사람은 밤의 어둠 속에서 두둥실 소리 없이 떠다녔지만 미남 로이코는 도저히 도도한 랏다와 어깨를 견줄 수 없겠다고 생각한다.

 

<스물 여섯 사내와 한 처녀>는 더럽고 비참한 환경 속에서 허구의 미를 추구하는 사내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타냐가 '얼굴이 예쁘기' 때문에 좋아하면서 그녀의 내면도 아름다울 것이라고 마음대로 상상한다. 물론 다른 비교 대상이 나타나지도 않으므로 그녀가 과도한 숭배를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애써 모른 척 한다. 말쑥한 녀석이 타냐를 꼬시자 그들이 마음대로 지어낸 타냐의 이미지가 산산조각난다. 화풀이는 고스란히 타냐의 몫이 되고 타냐는 그들에게 더러운 불량배라고 욕한다. 

<에밀리얀 필랴이>는 한 사내가 살인강도짓을 하러 갔다가 엉뚱하게도 한 소녀의 목숨을 구한 이야기이다. 파벨 페트로프가 강도짓에 실패한 에밀리얀을 비웃는다. 비웃음의 이유는 자명하다. 에밀리얀은 그 후로 20년간 부랑자와 같은 삶을 살고 있고, 현재도 제염소에서 일할 처지까지 전락했다. 하지만 에밀리얀은 그때의 일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첼카슈>에서 흥미로운 인물은 첼카슈가 아니라 가브릴라이다. 그는 도둑질을 하는 동안에는 겁에 질려 어쩔줄을 몰라하다가 막상 돈이 생기자 광분을 하며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려 한다. 막심 고리키가 가브릴라를 농민으로 설정한 것은 어쩌면 혁명 시기에 농민 계급이 혁명에 적극 투신하지 않고 역관계를 저울질하는 속성을 나타내려고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카르 추드라>는 다분히 자기모순적인 이야기이다. 조바르는 랏다를 일컬어 사나운 말과 같다면서 강철 재갈을 물려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바르가 도리어 랏다에게 굴복하게 되자 랏다를 죽이고 만다. 그는 랏다에게 예속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조바르는 자유/사랑의 구도 속에서 자유를 택한 것이 아니라 지배/예속의 구도 속에서 죽음을 택한 것이다. 

 

막심 고리키의 혁명적인 작품은 출판이 금지된 시기, 상호 연관성이 희미한 그의 초기 단편들이 김영국의 조악한 번역을 만나 막심 고리키의 소설이 난해하게 읽히는 놀라운 결과를 빚어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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돛배를 찾아서 - P
김남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6년 9월
평점 :
절판


진부령 골짜기에서 한 남자의 주검이 발견된다. 그는 윤도균이라는 이름의 무명 동양 화가였다. 유류품으로는 <한국 청년 화가 공모전> 전시회 포스터 외에는 특이할 만한 것이 없었다.

사건 조사에 착수한 서병진 형사는 버스 기사로 부터 남자가 1월 16일 진부령을 통과하는 버스를 탔다가 휴게소에서 쉰 후 줄곧 뒤쫓아 오던 빨간색 소형차로 옮겨 탔다고 진술한다. 빨간 소형차 운전자가 곧 유력한 용의자가 되고, 서병진 형사는 윤도균의 거주지인 서울로 출장 수사를 나온다.

윤도균의 주변을 조사하기 시작한 서병진 형사는 그가 강원도 산골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로 와서 화가의 꿈을 키워 왔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 최근에는 호구지책으로 차재용이 운영하는 <서일 갤러리>에 덤핑으로 그림을 처분해왔다는 점을 알게 된다. 윤도균은 한때 <숙 화랑>의 나숙미 대표로부터 기대를 받아 제대로 된 그림을 그려달라는 부탁과 함께 은근한 추파도 받았던 것으로 보였다. 또 그가 입고 있던 스웨터 역시 나숙미가 손수 짜서 선물한 것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윤도균은 제대로 된 그림을 그려주지 않았고 패배자의 어두운 의심 때문에 관계는 발전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또 윤도균은 화단의 원로인 수경 화백의 화실을 드나들었던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그 목적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밝혀지지 않는다.

한편 <한국 청년 화가 공모전>의 대상작은 차재용의 동생 차재만이 수상했다. 차재만은 수경 화백의 사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 차재만이 수경 화백의 화실에서 비서로 일했던 희숙과 애틋한 관계로 발전한다. 희숙은 수경 화백에게 2년간 몸을 허락하는 댓가로 일정한 돈을 받아오다가 최근 윤도균이 자신들의 정사 장면을 훔쳐본 사건을 겪은 후로 수경 화백에게 '팽'을 당한 처지였다. 희숙은 앙심을 품고 수경 화백의 뒷조사를 시작한다. 희숙은 수경 화백의 그림 복제품이 존재한다는 점을 알게되고 그런 내용이 차재만에게 편지로 낱낱이 보고 된다.

차재만이 6개월간의 파리 채제를 마치고 돌아온 날 희숙과 호텔에 들고 나오는 순간 차가 둘을 덮친다. 희숙이 즉사하고 차재만 역시 중상을 입는다. 서병진 형사는 빨간 소형차가 나숙미의 이웃 차량이라는 것을 알아내고 그녀를 체포하려 하지만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다. 병실의 차재만 역시 사라지고 편지가 한 통 배달된다.

 

차재만은 형님 차재용의 권고로 그림을 시작하지만 번번히 국전에서 미끄러지던 중 나숙미와 관계를 갖게 된다. 마지막 출품으로 생각하고 낸 <한국 청년 화가 공모전>에서 뜻밖에도 대상을 받은 차재만은 주최를 맡은 G일보로 갔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이 낸 그림이 아니었던 것이다. <망망대해>라는 제목의 그 작품은 윤도균이 나숙미의 요청에 그려준 그림이었는데 나숙미와 관계가 흐지부지 되면서 잊혀진 작품이었다. 나숙미는 <한국 청년 화가 공모전>에 그 그림을 차재만의 이름으로 출품했고 대상에 선정된 것이다.

문제는 윤도균이 수상 작품 전시회에 와서 자신의 작품을 알아본 것에서 시작된다. 차재만은 윤도균에게 모든 내막을 실토하고 선처를 호소했지만 윤도균은 신문사에 사실을 밝히든가 5천만원을 댓가로 지불하든가 양자택일할 것을 종용한 후 고향으로 떠난다. 나숙미는 윤도균을 쫓아가 애원을 했지만 말다툼으로 번지고 진부령 고개 한 복판에서 윤도균을 차에서 내리게 한다. 그 순간 살의가 일어 나숙미가 윤도균을 들이받아 살해한 것이다.

사건을 전해들은 차재만은 괴로워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희숙을 만나 구원을 얻었다는 감정에 사로잡혀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귀국 후 호텔에 들어간 둘을 본 나숙미가 희숙과 차재만을 차로 들이받아 사망케 한 것이다.

 

작가 김남은 소설가로 등단했으나 주로 TV드라마 근본 작업을 더 많이 한 작가이다. <수사반장>을 비롯해 <김형사, 강형사>, <제5열>, <전원일기> 등의 극본을 맡았다. 파주에 출장갈 일이 있어 돌아오는 길에 오랜만에 파주출판단지 안에 있는 <보물섬>에 들렀다가 들고 와서 읽었다. 

연말이다. 오늘은 영하 14도였다고 한다. 내일부터 말일까지 단 하루도 빼지 않고 회식이 있다. 괴롭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76407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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