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키 단편선 범우문고 97
막심 고리키 지음 / 범우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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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스물 여섯 사내와 한 처녀

 

음침한 지하실의 지저분한 환경 속에서 크렌젤리를 만드는 스물 여섯 명의 사내들은 빵을 얻으러 오는 타냐를 연모하고 있다. 모두들 그녀가 왔다 가면 유쾌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자신의 타냐' 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흰 빵 굽는 작업장에 멋쟁이 사나이가 나타난다. 그는 말쑥하게 차려입고 여자들을 후리는 것을 업으로 삼는 자였다. 크렌젤리 작업장에서 뻐기던 그에게 한 사나이가 타냐만은 넘어오게 할 수 없을 것이라 말한다. 오기가 생긴 멋쟁이 사나이는 정해진 기한 내에 타냐를 넘어오게 만들겠다고 큰소리친다. 그의 말이 사실임이 증명되자 스물 여섯 명의 사내는 타나에게 욕설을 퍼붓고 비난한다.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하던 타냐는 곧 자세를 가다듬더니 사내들에게 더러운 불량배라 욕을 한 후 두번 다시 크렌젤리를 얻으러 오지 않았다.

 

o 에밀리얀 필랴이

 

돈도 떨어지고 일자리도 없는 '나'와 에밀리얀 필랴이는 제염소(製鹽所)에라도 가서 일을 얻어야 할 판이다. 우크라이나 양치기들에게서 담배와 베이컨을 넣은 빵을 얻어 먹고 피운 후 에밀리얀 필랴이는 한 가지 이야기를 해준다.

에밀리얀 필랴이가 폴바타에 있을 때 주인의 돈을 60루블쯤 꿀꺽한 죄로 재판을 받고 석달 간 강제노역을 한다. 그는 형기를 마치고 난 다음에도 불법적인 일을 하는 파벨 페트로프 등과 어울리다가 자신이 일하던 상점 주인이 수금해오는 날 강도짓을 하기로 계획을 세운다. 밤중에 다리에 엎드려 쇠몽둥이로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는데 한 소녀가 울면서 다가왔다. 그 소녀는 자살하기 위해 다리로 온 것이었다. 에밀리얀 필랴이는 열심히 소녀를 설득해 자살을 만류한다. 소녀는 에밀리얀 필랴이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강도짓은 유야무야 되고 만다. 자초지종을 들은 파벨 페트로프는 에밀리얀 필랴이를 비웃고 쫓아낸다. 

 

o 첼카슈

 

부두 부근에서 불법적인 짓을 일삼는 첼카슈가 시골 출신의 가브릴라를 꼬드겨 도둑질에 가담시킨다. 가브릴라는 농촌 출신으로 처음엔 도둑질에서 걸려 신세를 망치게 되지나 않을까 겁을 냈으나 막상 도둑질이 성공하고 첼카슈가 200루블을 나누어줄 테니 한 탕 더하자는 말에 마음이 바뀐다. 첼카슈가 40루블을 보수로 나누어주자 가브릴라는 별안간 첼카슈에게 덤벼들더니 나머지 돈도 모두 자기에게 달라고 애걸복걸한다. 둘은 돈 때문에 서로 다투고 가브릴라가 모질게 던진 돌에 첼카슈가 머리에 큰 부상을 입는다. 쓰러진 첼카슈에게 달려들어 용서를 빌던 가브릴라는 첼카슈가 던진 돈을 비굴하게 주워든다. 둘은 각기 반대 방향으로 걷고 비와 물보라가 둘이 머물렀던 흔적을 모두 지워버려 그들 사이에 벌어졌던 비극도 추억할 수 없게 만든다.

 

o 마카르 추드라

 

마카르 추드라가 로이코 조바르라는 젊은 집시 이야기를 해준다. 조바르는 용감무쌍하고 무엇도 귀중히 여기지 않는 사나이였다. 마카르 추드라가 다닐로 일행과 함께 부코비나에서 유목할 때의 일이다. 다닐로에게는 랏다라는 아름다우면서도 도도한 딸이 있었다. 랏다에게 반한 한 부호가 감언이설과 막대한 부로 꼬드겼지만 랏다는 비웃으며 거절할 뿐이었다.

조바르가 다닐로 등이 머물던 곳에 찾아온다. 조바르가 뛰어난 바이올린 솜씨를 뽐내며 노래를 부르지만 랏다는 조바르를 무시하고 도도하게 굴 뿐이었다. 조바르는 자존심이 상해서 랏다와 같이 사나운 말에는 강철 재갈을 물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랏다의 채찍에 걸려 넘어졌을 뿐이다. 상심한 조바르가 혼자 앉아 있는데 랏다가 다가와 자신 역시 조바르를 사랑한다면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릎 꿇고 청혼한다면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

다음 날 조바르는 랏다에게로 간다. 조바르는 자신이 랏다의 앞에 무릎을 꿇고 청혼할 것이라고 공언한다. 그러자 랏다가 손으로 자기 발을 가르켰고 사람들은 조바르가 랏다 앞에 무릎 꿇는 것을 보기가 어쩐지 창피하기도 하고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조바르는 랏다가 자신에게 보여준 것과 같은 강철 심장이 있는지 보겠다는 말을 한다. 잠시 후 랏다는 쓰러졌고 그녀의 가슴에는 조바르의 구부러진 비수 자루가 꽂혀 있었다. 랏다의 아버지 다닐로가 비수를 들어 조바르의 등을 찔렀고 조바르 역시 죽고 만다.

이야기를 다 들은 나는 조바르와 랏다를 떠올린다. 그들 두 사람은 밤의 어둠 속에서 두둥실 소리 없이 떠다녔지만 미남 로이코는 도저히 도도한 랏다와 어깨를 견줄 수 없겠다고 생각한다.

 

<스물 여섯 사내와 한 처녀>는 더럽고 비참한 환경 속에서 허구의 미를 추구하는 사내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타냐가 '얼굴이 예쁘기' 때문에 좋아하면서 그녀의 내면도 아름다울 것이라고 마음대로 상상한다. 물론 다른 비교 대상이 나타나지도 않으므로 그녀가 과도한 숭배를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애써 모른 척 한다. 말쑥한 녀석이 타냐를 꼬시자 그들이 마음대로 지어낸 타냐의 이미지가 산산조각난다. 화풀이는 고스란히 타냐의 몫이 되고 타냐는 그들에게 더러운 불량배라고 욕한다. 

<에밀리얀 필랴이>는 한 사내가 살인강도짓을 하러 갔다가 엉뚱하게도 한 소녀의 목숨을 구한 이야기이다. 파벨 페트로프가 강도짓에 실패한 에밀리얀을 비웃는다. 비웃음의 이유는 자명하다. 에밀리얀은 그 후로 20년간 부랑자와 같은 삶을 살고 있고, 현재도 제염소에서 일할 처지까지 전락했다. 하지만 에밀리얀은 그때의 일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첼카슈>에서 흥미로운 인물은 첼카슈가 아니라 가브릴라이다. 그는 도둑질을 하는 동안에는 겁에 질려 어쩔줄을 몰라하다가 막상 돈이 생기자 광분을 하며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려 한다. 막심 고리키가 가브릴라를 농민으로 설정한 것은 어쩌면 혁명 시기에 농민 계급이 혁명에 적극 투신하지 않고 역관계를 저울질하는 속성을 나타내려고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카르 추드라>는 다분히 자기모순적인 이야기이다. 조바르는 랏다를 일컬어 사나운 말과 같다면서 강철 재갈을 물려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바르가 도리어 랏다에게 굴복하게 되자 랏다를 죽이고 만다. 그는 랏다에게 예속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조바르는 자유/사랑의 구도 속에서 자유를 택한 것이 아니라 지배/예속의 구도 속에서 죽음을 택한 것이다. 

 

막심 고리키의 혁명적인 작품은 출판이 금지된 시기, 상호 연관성이 희미한 그의 초기 단편들이 김영국의 조악한 번역을 만나 막심 고리키의 소설이 난해하게 읽히는 놀라운 결과를 빚어낸 책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76574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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