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비뚤어진 집 -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08 -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사 크리스티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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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스미나르 출신의 그리스인이며 영국으로 이민 와 자수성가한 에리스티드 레오니데스가 사망한다. 사인은 안약으로 쓰이는 에제린 중독. 누군가 에리스티드가 평소 주사하는 인슐린과 바꿔치기한 것이다. 찰스는 자신의 애인 소피아의 할아버지가 사망하자 사건 해결에 뛰어든다.

 

첫번째 용의자로는 에리스티드의 젊은 새부인과 가정교사가 지목된다. 둘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는 증언에 따른 것이다. 게다가 둘 사이에 오고 간 연애편지에는 살인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문구도 적혀 있다.

다음으로 의심되는 사람은 에리스티드의 큰 아들이다. 그는 최근 아버지가 물려준 식당 체인점을 파산 직전에 이르도록 방만하게 경영했고, 아내와 함께 해외로 떠날 준비도 마쳤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큰아들의 아내 역시 남편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보여 시아버지에게 남편을 빼앗겼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듯 보여 수상했다.

또한,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이 그동안 큰아들에게 집중되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사라진 유언장이 공개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킨다. 자손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기로 했던 유산을 손녀인 소피아에게 모두 준다고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소피아 역시 의심 받는 상황이다.

 

한편, 탐정놀이를 하던 어린 손녀 조세핀이 크게 다친다. 그녀는 사람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범인을 알고 있다는 암시를 끊임없이 하던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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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사 크리스티 자신이 뽑은 베스트 10에 들어가는 작품이다. 작품 목록은 다음과 같다.

 

o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The Murder of Roger Ackroyd, 1926)

o 화요일 클럽의 살인(The Thirteen Problems(영), The Tuesday Club Murders(미), 1932)

o 오리엔트 특급 살인(Murder on the Orient Express(영), Murder in the Calais Coach(미), 1934)

o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Ten Little Niggers(영), And Then There Were None, Ten Little Indians(미), 1939)

o 움직이는 손가락(The Moving Finger, 1942)

o 0시를 향하여(Towards Zero, 1944)

o 비뚤어진 집(Crooked House, 1949)

o 예고살인(A Murder is Announced, 1950)

o 누명(Ordeal by Innocence, 1958)

 

주의 깊게 읽으면 범인 유추는 비교적 쉽다. 찰스의 아버지가 어린 아이의 심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과, 문 위에 돌을 올려놓아 부비트랩을 만든 장면에서 의자에 발자국이 찍힌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대목이 포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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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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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배원으로 일하다가 직장을 그만 두고 편지여행을 떠난 '나'의 기록이다. 당뇨로 시력을 잃은, 할아버지의 안내견 와조가 함께 하는 이 여행은 이제 3년에 접어 들고 있다. 

'나'는 원래 말을 심하게 더듬었다. 발명을 위해 물리교사를 그만두고 장난감 가게를 차린 아버지와 수학교사인 어머니, 전국 1등을 놓치지 않던 형과, 여러가지 재주가 많으면서도 외모에 컴플렉스를 갖고 있는 여동생이 '나'의 가족이다. 어느 날부터 '나'는 집을 견딜 수 없었기에 집배원 일을 그만 두고 여행을 떠난 것이다. 이 여행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주소를 물어보고, 주소를 가르쳐준 사람에게는 번호를 붙이는 것이다. 번호로 기억된 그들에게 '나'는 편지를 쓴다. 집으로 답장이 오는 날, 이 여행은 끝이 날 것이지만 나에게 '아무도 편지하지 않는'다.

 

어느 날 전철에서 책을 파는 751과 동행하게 된다. 751은 소설가였고, 자기 책을 팔았다. 얼핏 칠칠치 못해 보이는 751과 '나'는 사소한 일들을 가지고 틱틱 댄다. 하지만 751이 기본적으로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기에 여행은 한동안 지속된다. 남녀간에 일어날 법한 애정의 감정을 미묘하게 넘기지 않으며 함께 하는 동안, '나'는 헤어진 옛 애인을 만나기도 하고 고시원 화재를 겪기도 한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편지를 쓰며 사랑하는 마음을 솔직하게 전하기도 한다.

 

와조가 여행을 지속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나'는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제서야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지로 가던 차가 전복되어 '나'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죽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751로부터 편지가 오고, 옆집 아주머니가 골판지 상자 하나 가득 편지를 담아 온다. 집배원에게 부탁해 '내'가 없는 동안 편지를 자기 집으로 배달되도록 했다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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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에 다닌지 10년이 되었지만 나 역시 누군가에게 손편지를 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통상우편은 52억통을 정점으로 매 년 몇 억통씩 줄어들고 있다. 통수만 보면 여전히 많아 보이지만 그 중에 일반적인 의미의 편지는 1%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선거나, 카드회사의 대량 정보 유출 사과문이나, 공과금 고지서 등이 대부분이다.

 

편지를 쓴다는 행위는 욕망을 발현이다. 누군가에게 소식을 전하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서, 그 사람과의 관계 변화를 도모하는 행위다. 관계 변화를 도모하는 방식이 고전적인 손편지에서 이메일이나 SNS, 카카오톡 등 실시간 매체로 바뀌면서 우리의 욕망에 대한 성찰의 시간도 줄어든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소설엔 깜짝 반전이 있지만, 반전에 소설적 구성을 기대고 있지 않아 품격을 떨어뜨릴 정도는 아니다.

집배원 채용에 관한 부분은 발로 뛰어 알아본 흔적이 역력하다. 대무사역이니 상시위탁이니 하는 말은 일반인들이 모르는 말이다. 통상우편의 배달 기한에 대해서는 약간 착오가 있는 것 같다. 편지를 보내며 '이틀 안에 답장이 도착할 수 있게 해달라'는 문구가 있는데 일반우편은 D+3일이 배달 기한이다. 그러니 이틀 안에 답장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다. '내'가 전직 집배원으로 설정되어 있어 어색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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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에비타 1
토마스 엘로이 마르티네즈 지음, 권미선 옮김 / 자작나무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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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 라디오에서 Don't Cry For Me Argentina 라는 노래가 종종 흘러 나왔다. 에비타가 누구인지도 몰랐을 정도로 어린 나이였다. 누구에게 물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에비타가 누구냐고 물어봤더니 '육영수 여사' 와 비슷한 사람이라고 답해주었다. 당시엔 육영수도 누구인지 잘 몰랐다. 

대학에 입학해서 남미 혁명사 책을 읽다가 페론의 이름을 접하게 된다. 페론은 민중주의의 비극적 결말을 상징하는 인물로 쓰여 있었다. 페론주의의 비극은 '하층민을 대상화'한 필연적 결과라는 것이다. 에비타가 페론의 배우자라는 사실을 그 때 처음 알았다.

 

후안 페론은 육군 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1943년에 보수 성향인 라몬 카스티요 대통령에 반대한 쿠데타(시각에 따라 혁명으로 보기도 한다)를 통해 정치권에 뛰어 든 인물이다. 페론은 에비타(에바 두아르테)를 1944년 산 후안 지진 구호 활동에서 만나게 된다. 당시 에비타는 페론에게 "당신이 존재하는 것에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하여 깊은 인상을 남긴다. 1945년 둘이 결혼한 직후 페론은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경계한 군부 내부 세력에 의해 체포되지만 대중들의 강력한 반발로 풀려난다. 페론은 노동자계급과 하층민의 절대적 지지를 등에 업고 CGT(대규모 노동조합, 후에 노동부가 된다)를 조직하고 정권을 장악한다. 1952년 페론은 연임에 성공하지만, 에비타는 1952년 7월 26일 자궁암으로 사망한다.

페론은1955년 9월 군부쿠데타로 실각한 후 파나마와 스페인 등지로 망명을 떠나 재기를 노리다가 1973년에 또 다시 아르헨티나 대통령에 취임하지만 이듬 해 병사한다.

 

<산타 에비타>는 에비타의 사망과 그녀의 시신을 둘러싼 이야기를 추적하는 르뽀르타주 형식으로 구성된 이야기이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적 허구인지는 알 수 없다.

 

에비타는 사생아의 딸로 태어나 15살이 되던 해에 당시 인기 가수 마갈디를 따라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간다. 마갈디의 후광으로 라디오 데뷔를 꿈꿨지만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다. 마갈디에게 버림받은 후 그의 친구 카리뇨의 재정적 후원을 잠시 받았고, 어찌어찌 라디오 연속극 등에 출연한 후 영화에도 출연하지만 연기는 신통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에비타는 지독한 가난에도 불구하고 야심이 컸고, 그런 이유로 돈이 많은 유부남도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기꺼이 몸을 내맡기는 부류로 보인다. 그녀는 이 시기에 유부남의 아이를 베었고, 낙태수술 후유증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된다.

1944년 산 후안 지진 구호 활동에서 페론을 만난 에비타는 그를 유혹하는데 성공하여 퍼스트 레이디가 된다. 예전의 촌스러움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고 자선단체들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재조직하여 하층민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는 성녀의 이미지를 구축한다. 그녀의 정치적 본능은 페론을 능가하였고, 하층민들은 페론이 아니라 에비타를 지지하게 된다. 그녀는 하층민들에게 있어 희망의 아이콘이었다.

페론은 이러한 에비타의 이미지가 부담스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에비타는 부통령이 되고 싶어 했으나 페론은 이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 사건 직후 에비타는 급격히 병세가 악화되어 1952년 사망한다.

 

사망한 에비타를 스페인 출신의 아라 박사가 박제화한다. 그런데 CGT 건물에 보관된 에비타의 박제화된 시신이 곤란한 상황을 발생시킨다. 박제가 된 에비타가 신격화 되어 하층 페로니스트들 사이에 성녀가 되버린 것이다. 페론은 실각하기 전까지 자신의 이미지를 갉아 먹는 에비타를 보려하지 않았고, 페론 반대파들은 박제화된 그녀의 시신을 어디론가 치워버리고 싶어했다.

페론을 실각시킨 군부는 즉시 에비타의 시신을 처리하고싶어했다. 페로니스트들이 에비타의 시신을 손에 넣으면 하층 계급들이 결집할 계기가 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아라 박사는 시신을 자신 소유의 예술품으로 착각하여 기이한 행동을 일삼고, 시신 처분을 맡은 정보부 대령 무리 퀘닉 대령은 에비타를 증오하면서도 그녀를 사랑하는 기이한 집착 상태가 되어 인생을 망치게 된다. 무리 퀘닉 대령의 부하 중 한 명은 에비타의 시신 때문에 자신의 아내를 살해하기까지 한다.

 

에비타 이야기는 지금도 끊임 없이 재생산 되고 있다. 그녀는 창녀부터 성녀까지 다양한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기억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에비타가 '육영수와 닮았다'는 이야기를 생각해본다. 남아 있는 육영수의 자료 사진들 대부분은 고아원이나 학교를 방문하고 있는 것들이다. 박정희가 평화시장 노동자의 폐를 쥐어짜내며 고도 경제 성장을 외치는 한편 육영수가 고아원 시설을 돌며 '국모'의 역할 연기를 훌륭하게 해낸다. 에비타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안전판 역할은 해낸 것으로 보인다.

다만 페론과 에비타의 정치적 기반이 결말은 어쨌든간에 노동자계급과 하층민이었다면 박정희 육영수의 정치적 기반은 그렇지 못했다. 그 점이 어쩌면 가장 중요한 차이인지도 모른다.

http://blog.naver.com/rainsky94/220145846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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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의 대가 열린책들 세계문학 78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김수진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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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스페인은 정치적 혼란기를 겪고 있었다. 왕권이 약화되어 여왕을 폐위시키려는 움직임이 감지되었고 공화주의자들은 공공연히 혁명을 외쳐대고 있었다.

주인공 하이메 아스타를로아는 이러한 격변의 시대에서 한 걸음 떨어져 검술을 가르치는 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그는 유행이 지난 사람이었다. 검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예전과는 사뭇 달라져 있었는데, 총이 보급된 후 검은 살상 능력 면에서 효율이 떨어지는 무기 취급을 받았고 명예를 걸고 검으로 대결하는 결투 역시 사라진 지 오래였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하이메의 집으로 아델라 데 오테로라는 아름다운 여성이 찾아와 검술 사사를 부탁한다. 하이메는 검술이 남자들의 세계에 속했다고 여기는 약간 고지식한 사람이었기에 내켜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가 열성으로 부탁했고 검술 실력 역시 수준 이상이었기에 검술 지도를 수락하고 만다.

하이메는 그녀에게 검술을 가르치는 과정에서그녀를 향한 자신의 열정을 감지하고 당혹스러워한다. 늦은 나이에 찾아든 그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하이메는 '200 에스쿠도' 라는 필살의 검법까지 그녀에게 전수한다.

그 즈음 아델라가 하이메로부터 검술 지도를 받는 귀족 루이스 데 아얄라와 친분을 맺게 된다. 둘은 곧 거리에 소문을 뿌려대며 함께하기 시작했다. 아델라는 더 이상 하이메에게 검술을 배우러 오지 않는다.

 

얼마 후, 루이스 데 아얄라가 목을 찔린 시체로 발견된다. 200 에스쿠도 수법에 당한 것으로 보였다. 하이메는 루이스 데 아얄라가 아델라에게 당한 것이 틀림 없다고 생각하여 당황하지만, 그녀 역시 얼굴이 으깨어진 처참한 시체로 발견된다. 하이메는 죽기 전 루이스 데 아얄라가 자신에게 맡긴 서류가 사건과 관련이 있다 생각하여 검토해보지만 정치적인 편지들 속에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이메는 급진을 표방하며 혁명적 발언을 일삼던 친구 카르셀레스에게 서류의 의미를 파악해달라고 부탁하는데 그 역시 얼마 후 시체로 발견되고 만다.

 

범인들이 자신을 노릴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한 하이메는 명예롭게 싸우다 죽기로 각오하고 모든 준비를 마친 채 자신의 집에서 침입자들을 기다린다. 마침내 나타난 침입자는 놀랍게도 시체로 발견된 아델라 데 오테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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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러져가는 것들은 늘 안타깝고 애처롭다. 그것들은 자기 수양의 이미지와 어울린다. 새로운 것들은 체득해야 하는 것들이지만, 스러져가기 직전의 것들은 역사의 마무리를 위한 내적 성찰을 준비한다.

그래서 일본 사무라이 이야기들은 용도 폐기된 '신선조'들의 이야기를 거듭 소재로 사용한다. 총 앞에서 달려드는 신선조들의 이야기를 정치적 관점에서 다룬 소설은 거의 없다.

<검의 대가>의 하이메 아스타를로아 역시 이미 한 물 간 검술을 부여잡고 있다. 권총으로 원거리에서 '빵' 하면 지푸라기 처럼 쓰러져버리는 시대에 검술의 요체를 제자들에게 설명하며 명예와 긍지를 이야기하는 하이메 아스타를로아를 통해 작가는 내면의 성찰과 평화, 명예와 긍지야 말로 혼동의 시대를 견디어 낼 수 있는 힘이라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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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빌라 공주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17
E.T.A. 호프만 지음, 곽정연 옮김 / 책세상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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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는 <야콥 칼로를 따른 카프리치오>이다. 야콥 칼로(자크 칼로, Jacques Callot)는 17세기 초반에 활동하던 판화가이고, 카프리치오는 이탈리아 말로 '변덕스러움'을 뜻하는데 음악에서는 기상곡이나 광상곡이라는 우리말로 번역된다.

호프만이 생일 선물로 칼로의 <광인들의 춤 Balli di Sfessania>이라는 제목이 붙은 스물네 장의 동판화를 보고 떠오른 영감을 기술한 이 책을 호프만은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동화'로 보아달라고 독자에게 요청한다. 그러나 낭만주의의 주요 주제인 환상과 현실의 긴장 관계, 존재의 이원성, 반어, 알레고리, 해학에 대한 환상적이고 기묘한 이야기를 다룬 이 소설은 호프만의 작품 중에서도 난해한 편에 속한다.

 

소설은 배경은 이탈리아이고 배경은 사육제 기간이다. 

그저 그런 배우 지글리오는 재단 보조사 지아친타의 연인인데 사육제 기간 동안 성대한 행렬이 피스토야 궁전으로 들어가는 광경을 보게 된다. 지글리오는 이 화려한 행렬의 중심에 있는 이집트 공주 브람빌라에게 한 눈에 반하게 된다. 자칭 '현명하고 경험 많은 철학자이자 연금술사'인 첼리오나티가 지글리오의 환상을 부추기자 그는 자신이 브람빌라 공주가 사랑하는 키아페리 왕자라고 믿게 되는 분열 상태가 되고 만다. 

환상에 눈이 먼 지글리오는 극단에서 쫓겨나 빈털털이가 되고 뒤늦게 지아친타에게 돌아가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지아친타 역시 지글리오와 같은 환상에 사로잡힌 것이다. 

지글리오는 지아친타와 브람빌라 공주 사이에서 끊임 없이 진동한다. 하지만 브람빌라 공주를 만날 수 없고 지아친타라는 현실로 되돌아와야 하는 운명이다. 브람빌라 공주는 마치 카프카의 '성'과 같이 다다를 수 없는 곳을 상징하는 것 같다.

지글리오는 환상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키아페리 왕자와 결투하여 승리한다. 키아페리 왕자는 지글리오의 또 다른 자아로 지글리오는 이제 키아페리 왕자가 된 듯 하다. 하지만 정작 키아페리 왕자는 지글리오를 부정하기 때문에 분열 상태는 계속된다. 키아페리 왕자가 우르다르 샘물을 들여보고 존재의 이원성을 인정하고 웃는 것으로 왕자와 지글리오는 비로소 분열을 해소하게 된다.

 

호프만은 판타지와 해학적 인식이라는 두 가지 틀을 가지고 작품을 완성시켜 나가는데 판타지가 인간의 무한한 정신 세계를 열어주어 예술의 바탕을 마련하는 축이라면, 해학적 인식은 판타지가 목표를 잃고 떠돌면서 현실과의 연관성을 잃는 것을 막아주는 장치이다.

 

사법고시에서 합격하여 정부 관리로 인생을 출발한 호프만은 정부와 끊임 없이 불화했고, 음악 감독과 평론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1822년 46세에 경찰청장을 풍자한 <벼룩 대왕> 때문에 징계 처분 심사를 받던 중 척수 결핵으로 몸이 마비되어 사망한다.

도스토예프스키, 고골, 발자크, 보들레르, 포, 디킨스 같은 작가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음악계에서도 바그너의 <뉘른베르크 명가수>가 <세라피온 형제들>에서 영감을 받았고, 자크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파울 힌데미트의 <카르딜락크> 등이 호프만의 작품에서 차용하거나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음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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