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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빌라 공주 ㅣ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17
E.T.A. 호프만 지음, 곽정연 옮김 / 책세상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부제는 <야콥 칼로를 따른 카프리치오>이다. 야콥 칼로(자크 칼로, Jacques Callot)는 17세기 초반에 활동하던 판화가이고, 카프리치오는 이탈리아 말로 '변덕스러움'을 뜻하는데 음악에서는 기상곡이나 광상곡이라는 우리말로 번역된다.
호프만이 생일 선물로 칼로의 <광인들의 춤 Balli di Sfessania>이라는 제목이 붙은 스물네 장의 동판화를 보고 떠오른 영감을 기술한 이 책을 호프만은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동화'로 보아달라고 독자에게 요청한다. 그러나 낭만주의의 주요 주제인 환상과 현실의 긴장 관계, 존재의 이원성, 반어, 알레고리, 해학에 대한 환상적이고 기묘한 이야기를 다룬 이 소설은 호프만의 작품 중에서도 난해한 편에 속한다.
소설은 배경은 이탈리아이고 배경은 사육제 기간이다.
그저 그런 배우 지글리오는 재단 보조사 지아친타의 연인인데 사육제 기간 동안 성대한 행렬이 피스토야 궁전으로 들어가는 광경을 보게 된다. 지글리오는 이 화려한 행렬의 중심에 있는 이집트 공주 브람빌라에게 한 눈에 반하게 된다. 자칭 '현명하고 경험 많은 철학자이자 연금술사'인 첼리오나티가 지글리오의 환상을 부추기자 그는 자신이 브람빌라 공주가 사랑하는 키아페리 왕자라고 믿게 되는 분열 상태가 되고 만다.
환상에 눈이 먼 지글리오는 극단에서 쫓겨나 빈털털이가 되고 뒤늦게 지아친타에게 돌아가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지아친타 역시 지글리오와 같은 환상에 사로잡힌 것이다.
지글리오는 지아친타와 브람빌라 공주 사이에서 끊임 없이 진동한다. 하지만 브람빌라 공주를 만날 수 없고 지아친타라는 현실로 되돌아와야 하는 운명이다. 브람빌라 공주는 마치 카프카의 '성'과 같이 다다를 수 없는 곳을 상징하는 것 같다.
지글리오는 환상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키아페리 왕자와 결투하여 승리한다. 키아페리 왕자는 지글리오의 또 다른 자아로 지글리오는 이제 키아페리 왕자가 된 듯 하다. 하지만 정작 키아페리 왕자는 지글리오를 부정하기 때문에 분열 상태는 계속된다. 키아페리 왕자가 우르다르 샘물을 들여보고 존재의 이원성을 인정하고 웃는 것으로 왕자와 지글리오는 비로소 분열을 해소하게 된다.
호프만은 판타지와 해학적 인식이라는 두 가지 틀을 가지고 작품을 완성시켜 나가는데 판타지가 인간의 무한한 정신 세계를 열어주어 예술의 바탕을 마련하는 축이라면, 해학적 인식은 판타지가 목표를 잃고 떠돌면서 현실과의 연관성을 잃는 것을 막아주는 장치이다.
사법고시에서 합격하여 정부 관리로 인생을 출발한 호프만은 정부와 끊임 없이 불화했고, 음악 감독과 평론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1822년 46세에 경찰청장을 풍자한 <벼룩 대왕> 때문에 징계 처분 심사를 받던 중 척수 결핵으로 몸이 마비되어 사망한다.
도스토예프스키, 고골, 발자크, 보들레르, 포, 디킨스 같은 작가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음악계에서도 바그너의 <뉘른베르크 명가수>가 <세라피온 형제들>에서 영감을 받았고, 자크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파울 힌데미트의 <카르딜락크> 등이 호프만의 작품에서 차용하거나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음악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