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한 백인들
마이클 무어 지음, 김현후 옮김 / 나무와숲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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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무어는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대학 다닐 때 한학년 위 선배가 "로저와 나(Roger & Me)"를 극찬하며 꼭 한번 보라고 하였지만 당시엔 기회가 닿지 않아 보질 못했다. 그러다가 3년 전에 동암에서 "볼링 포 콜롬바인(Bowling For Columbine)" 을 보게 되었다. 콜롬바인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였는데, 그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고 호도하는 지배층의 허구를 실증적으로 하나하나 파해쳐가는 내용이었다. 두시간을 정신없이 빠져들고 난 후 마이클 무어의 신랄함과 위트에 호감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은 그런 마이클 무어가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에 쓴 책이다. 당시 우리나라 TV에서도 얼핏 미국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말썽을 보도했던 어렴풋한 기억은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전후사정을 알게 되었고, 다시 한번 마이클 무어에게 빠져들게 되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내용들 중 중요하면서도 우리가 알지 못했던 몇 가지 사실을 간추려 보자.

 

1. 미국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사실들

1) 부시의 동생 잽 부시 는 '데이터베이스 테크놀러지'에 4백만 달러를 주고 선거인 명부를 조사하여 전과자를 삭제하게 사주한다. 플로리다 법에 의하면 전과자는 투표를 할 수 없는데, 엉터리 기준에 80%이상 근접하면(즉 실제 그사람이 아니더라도) 전과자로 간주하는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17만 3천면의 이름을 삭제하였으며, 조지 부시가 전에 주지사를 지냈던 텍사스 주에서는 가짜 이주자 명단까지 만들어 8천명의 이름을 더 삭제한다. 이들 중 다수가 흑인이며, 흑인은 민주당 지지성향이 강하다.

2) 아직 개표가 진행 중인 와중에 폭스사는 부시가 승리자라고 발표를 하고, 재집계를 주장하면 욕을 먹는 상황을 만드는데 이 폭스사의 당시 야간 취재 책임자인 존 앨리스는 조지 부시의 사촌이다.

3) 공화당 지지성향이 강한 파견 군인의 부재자 투표에서 344표는 등록 증거가 없고, 183표는 미국 내 소인이며(그렇다면 부재자가 아니다), 96표는 증인 연서가 없고, 169표는 미등록자이거나 타인의 투표용지에 투표를 하였고, 5표는 마감후에, 두장의 투표용지를 낸 투표자도 19명이었다. 이들 모두는 유효표로 인정되었다.

4) 상기의 사실 등으로 재집계가 이루어졌고, 재집계 결과 고어에게 유리한 상황이 계속되자 부시의 요청을 받은 연방대법원은 재집계 중지를 긴급 명하고 부시의 당선을 확정 짓는다. 연방대법원의 극우파 대법관 두 명은 부시와 개인적 이해가 깊은 인물이다.

 

*** 마이클무어는 그렇다고 고어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며, 민주당도 지지하지 않는다. 이는 책 후반부에 기술되어 있음

 

2. 부시 행정부 관료들의 충격적인 성향

1) 딕체니 부통령 : 남녀평등헌법 개정 반대, 5세이하 저소득층 유아 교육 프로그램 지원 반대, 넬슨만델라 석방운동 반대, 낙태 반대(비록 강간에 의할지라도)

2) 존 애쉬크로프트 법무부 장관 : 낙태 반대(강간에 의했을지라도), 동성애자 차별 찬성, 사형제도 찬성, 자신에게 기부금을 낸 제약회사의 처방약을 의료보험에 포함시키는 것에 반대, 총기 소지 적극 찬성(볼링 포 콜롬바인을 보면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알 수 있음)

3) 폴 오닐 재무부장관 : 기업세 폐지 찬성, 텍사스에서 가장 많은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알루미늄 회사인 알코아사의 전직 CEO, 사회보장과 의료보험 폐지 찬성

4) 앤 베네만 농림부장관 : 유전자공학을 이용한 식품 판매의 시초인 '칼지'사의 이사, 소규모 가족 단위 농부들 붕괴의 일인자

5) 돈 에반스 상공부장관 : 120억대 석유가스 회사인 톰브라운사의 CEO출신

6) 돈 럼스펠드 국방부장관 : 무기개발 제한에 극단적 반대

7) 스펜서 에이브러햄 에너지부 장관 : 재생가능 에너지 연구 반대, 알래스카 유전개발 찬성, 차량의 연료소비효율기준 증가에 반대

8) 토미 톰슨 보건복지부장관 : 낙태 반대(강간에 의할지라도), 흡연권장 문서를 배포, 필립모리스가 최대 후원인

9) 게일노턴 내무부 장관 : 멸종위기동물보호법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 납함유 페인트에 중독된 아이들의 소송에 맞서 기업을 변호한 전력

10) 일레인차오 노동부장관 : 극우보수파 공화당 상원의원 미치 맥코넬의 부인

11) 콜린 파월 국무부장관 : 걸프스트림 에어로스페이스와 AOL의 이사

12) 노먼 미네타 교통부장관 : 최대 후원자가 항공사임

13) 앤드류 H. 카드 주니어 비서실장 : 배기가스 규제 반대, '승객의 기본권리' 입안에 반대

14) 미치 데니얼스 주니어  기획예산부장관 : 메이저제약회사를 규합해 처방약에 대한 정부보조금 지급에 반대하는 로비를 펼침

15)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 쉐브론, 슈왑사, 트랜스아메리카사 등과 유착

16) 칼 로브 백악관 상임고문 : 필립모리스의 고문 전력, 인텔사 합병에 힘을 써준 후 인텔사 주식을 팔아 막대한 이득을 챙김

17) 케네스 L.레이 : 최대 전력회사인 엔론사의 회장이며 부시측에 막대한 기부금을 냄. 에너지 자유화 로비.

 

3. 부시대통령의 개인적인 문제

1) 문맹 여부와 대학 부정입학 : 부시가 어릴 적 좋아했던 책이라는 "배고픈 애벌레"는 사실 부시가 대학 졸업 후 출판된 책이며, 현재 읽는 책의 내용을 질문하자 대답을 하지 않음. SAT성적이 극히 낮았는데도 예일에 합격, 하버드 대학원 진학. 브리핑 서류는 반드시 타인이 읽게 함.

2) 알콜중독 문제 : 부시의 아내 로라는 17세 때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친구의 목숨을 빼앗았으며, 딕 체니는 음주운전 전과 2범. 딸들은 술 때문에 경찰에 구속 전력 있으며, 부시 자신도 1976년 음주운전으로 구속된 전력이 있으나 이를 숨기려하다 들통남.

3) 범죄여부 : 예일대 부정입학 의혹,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교 부정입학 의혹, 텍사스 공군 국방경비대 1년 반동안 탈영, 투자액의 1/100로 프로야구팀 구단주로 재직 의혹 등

 

4. 미국 대형 항공사 조종사의 연봉은?

첫해 연봉은 1만 5천~1만 7천(세금 전)에 불과, 일부 조종사들은 푸드 뱅크(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급식하는 곳을 생각하면 된다)를 이용한다. 반면 기업의 세금 혜택 때문에 일반 시민들이 부담하는 액수는 연간 100억 달러이며 연수입 2만 5천달러 이하 사람에 대한 세무 조사는 급증하고 10만달러 이상 수입자들에 대한 세무조사는 25% 하락했다. 기업이 내는 세금은 26%하락, 개인의 세금은 13%증가.

 

5. 흑인은 토끼보다 못하다?

영화 "로저와 나"에서 가난한 백인 여자가 고기를 팔기 위해 토끼를 방망이로 때려죽이는 장면에 대해 미국영화협회는 R등급을 매긴다. 그러나 바로 그 장면 2분뒤에 나오는 장면에 대해선 아무런 의의도 제기하지 않는다. 그 장면은 플린트 경찰이 슈퍼맨 옷을 입고 장난감 총을 든 '흑인'에게 총을 쏘는 장면이었다. 흑인의 연평균 수입은 백인보다 61% 낮으며, 이는 1880년 흑백간 수입 차와 변함이 없다.

 

6. 미국의 열악한 공립학교와 교육여건

부시는 취임 후 첫 예산에서 도서관을 위한 연방지출을 3천 9백만 달러 삭감시킨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내 로라는 도서관 사서로 미국 도서관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며 부시의 어머니 바바라 부시는 '가족 읽고 쓰기 재단'의 대표를 역임했다). 학교는 코카콜라, 펩시등의 회사와 독점계약을 맺어 수업시간에도 콜라를 마실 수 있도록 하라는 지침을 시달하며, 컴퓨터 설치를 해주는 대신 자사 광고를 보도록 만들고, 채널 원 TV는 교육채널이란 명목 하에 자사의 광고를 시청하게 만든다.

 

7. 세계경찰국가 미국의 이면

1) 이산화탄소 방출 제한을 위한 유럽연합과의 계약 파기

2) 1970년 소련과 맺었던 탄도탄요격미사일조약(ABM)위반

3) 유엔 인권위원회로 부터 퇴출당함

4) 이라크 민간인에게 폭격

5) 미사일방어체제(MD)구축 선언

6) 국제 인권협약들에 서명 안한 건수 1위 국가

7) 아이들 권리에 대한 유엔의 관례 승인하지 않기로 1위 국가

 

8. 유전무죄, 무전유죄

1) 크랙사용자는 코카인 사용자보다 3배의 형량을 받았다. 크랙은 흑민, 히스패닉 계열에 유통되고 코카인은 백인들에게 주로 유통된다.

2) '코크실업'이란 기업은 개인원유회사 중 가장 큰 회사이다. 이 회사는 91톤 분량의 벤젠을 유출시키는 등의 범죄를 저질렀지만 97건의 기소가 부시가 당선되면서 2건까지 줄더니 결국 절충안에 합의하는 것으로 끝났다. 반면 앤서니 리마 테일러는 타이거 우즈 행세를 하며 위조운전면허증과 신용카드를 사용하다 적발되어 종신형에 처해진다.(유죄판결을 세번 받으면 그것이 경범죄일지라도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종신형이다)

3) 캐리 샌더스는 남가주대학병원 밖 벤치에서 잠을 자다 불법침입으로 구속당한다. 신원조회 중 '로버트 샌더스'라는 지명수배자와 이름이 비슷하고 생일이 같다는 이유로 지문 대조 절차도 없이 엉뚱한 사람을 2년간 형무소에 가둬둔다. 관선 변호인은 캐리 샌더스가 지능이 모자랐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몰랐으며, 로버트 샌더스가 수감 중 캐리 샌더스가 불법 횡단으로 걸린 기록이 있음에도 이를 알지 못했거나, 알려고 하지 않았다. 또한 로버트 샌더스와 동일인이라는 문서에 서명까지 하게 하나, 정작 지능이 모자란 캐리 샌더스는 그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했다.

 

9. 빌 클린턴과 민주당의 공화당스러운 행태

1) 정부자금을 '종교 관련' 자선단체에 나눠주는 법안에 서명

2) 동성애자 결혼 불법화 서명

3) 1천만 미국시민의 복지혜택을 빼앗음

4) 사회복지 수혜자의 수를 줄이면 보너스 예산을 각 주에 지급

5) 양도소득세 줄이는데 지지

6) 사형 중지 제의를 거부

7) 3범 종신제도 지지

8) 지뢰사용금협정 서명 거부

9) 교토의정서 협의 자체 무력화 시도

 

10. 그 밖에 정치인들의 손바닥 뒤집기

1) 레이건이 알츠하이머에 걸리자 레이건과 이해관계가 있는 공화당 의원들은 줄기세포 연구를 적극 지지하는 입장으로 선회

2) 딕 체니는 동성애자에게 불리한 법안이 나오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바, 자신의 딸이 레즈비언임

3) 뉴욕시장 루돌프 줄리아니는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어린아이들의 의료비를 시에서 부담하는 것을 반대하였으나 자신이 암에 걸리자 심경의 변화를 일으킴

4) 기타 등등

 

마지막으로...

부시 행정부의 관료들과 그들이 지지하는 법안들과 현재 MB정부의 법안들을 비교하는 것도 꽤나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054554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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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치바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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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출퇴근 지하철에서 슬렁슬렁 읽었다. 일본소설의 만화적 상상력에 꽤 흥미를 느끼며 읽었다.

치바는 사신이다. 일주일간 죽어야 될 사람을 관찰하고 죽어도 괜찮은지 여부를 결정하는 일을 한다. 음악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좋아하고, 인간의 생사엔 별다른 관심이 없다. 일본독자 평에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것 같은 사신" 이라는 평이 있는데, 공무원인 나로선 전적으로 동감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관용적 의미에서라면 맞는 말이다.

몇 명의 죽어야 할 대상들을 만나서 일주일간을 같이 보내는 내용이 에피소드로 엮여 있다. 아직은 자신의 재능을 알지 못하는 가수, 형님의 복수를 해야 하는 야쿠자, 짝사랑을 하고 있는 부티크 직원, 유괴당한 적이 있는 살인 용의자, 그리고 산장살인사건과 관련된 몇몇, 마지막으로 치바가 사신임을 알아채는 노파...

에피소드 중간중간 그 전 에피소드의 이야기가 튀어나오기도 하고, 때론 연결된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두시간 정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잇는 책이다. 다 읽고 나면 만화책을 본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054503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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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1 밀리언셀러 클럽 51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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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제2의 창작'이란 말이 있다. 외국소설을 읽는 독자 중 원본을 읽을만한 능력이 되는 사람은 1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며, 설혹 외국소설을 원본으로 읽을 능력이 되는 독자라 할지라도 모든 책을 원본으로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 역시 대학시절 전공서적과 동아리에서 세미나를 위해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읽었던 책을 제외한다면, 영어원서를 읽어본 기억이 없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영어를 잘 못해서이다.

그런 이유로 번역가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에게 신세계를 보여줄수도, 지루한시간을 선사할수도 있다.

번역가에게 이를 부득부득 갈았던 기억이라면 2002년 청목사에서 출간된 존 스타인벡의 <불만의 겨울>을 읽었을 때였다. 도무지 두페이지 이상 자연스럽게 읽히지가 않는 것이다. 번역을 엉터리로 해놓은 것이다. 번역가는 자신이 번역했기 때문에 몇번을 다시 읽어본들 자연스러웠겠지만, 그 번역본을 읽은 나는 사실주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몽환적 분위기를 경험해야만 했었다.

<셀>을 빌려오자 옆자리 주사님이 책이 잘 안읽히더라는 얘기를 했었다. 다른 사람도 읽다가 비슷한 얘기를 했었는데, 직접 내가 읽어보니 그 이유가 번역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강하게 일었다. 인물들의 대화 도중 뜬금없는 대화가 등장한다든가(분명 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은 느낌), 욕을 뜻 그대로 해석해서 눈쌀을 찌푸리게 만든다든가(사람의 신체 관련), 1권과 2권의 인물들의 어조가 다른데 가서는 여러명이 나눠서 번역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결국 비오는날 독서실에 앉아서 공부는 안하고 꾸역꾸역 이 책을 읽긴 했지만, 번역이 이상한 것 아닌가 하는 의문만 남고 책 내용은 그다지 와닿질 않았다. 기존의 스티븐 킹 소설과 달리 영화를 의식했음인지 장면장면의 임팩트에 촛점을 맞춰 내용이 전개되서 다 읽고 나면 액션 영화 한 편 본 것처럼 별 기억이 남지 않았다. 그리고 애초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달리 그 해결책에 가서 웜바이러스가 서로 잡아먹는다는 건 처음 듣는 소리라 고소를 금치 못했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054422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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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시장 여자
정도상 지음 / 창비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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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시체' 라는 이미지가 각인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튀어나온 눈과 온 몸의 멍 자국, 그리고 사람의 그것이라고 보기는 힘든 부어오른 얼굴이 사진 속에 있었다. 토악질을 간신히 참으며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며칠간 그 이미지는 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훗날 대학에 가서야 내가 봤던 그 사진은 이철규열사의 사진이었음을 알았다. 이철규 열사는 수배중 경찰에게 검문 받은 것을 마지막으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온 몸의 멍자국에 대한 어떠한 해명도 없이 의문사가 되고 말았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후 나는 또 한번 의문사를 경험해야 했다. 강제로 노점상 철거에 저항하던 한 청년이 용역깡패들과 경찰을 피해 탈출하려 하였으나 행방불명이 되었다가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팔에 포승자국과 온몸의 멍은 의학적 상식이 없는 일반인이 보더라도 타살이었지만 시체는 인천 길병원 영안실에서 전경들에 의해 탈취되고 되돌아온 시신은 장기 모두가 들어내진 상태로 꿰매져 돌아왔다. 그리고 이덕인열사 역시 의문사가 되었다.

 

정도상의 소설은, 내가 당시 느꼈던 분노를 뭉근히 가라앉혀 주던 소설이었다. '십오방이야기'를 시작으로 정도상과 만난 나는 <아메리칸 드림>, <친구는 멀리 갔어도> 등을 읽으며, 내 안의 분노들이 침잠하여 정제되는 느낌을 느꼈다.

 

그로부터 15년이 훌쩍 흘러갔다.

정도상의 소설을 사면서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나는 변했을지라도 왠지 정도상이란 소설가만은, 옛날, 그 분노의 중심에 그대로 있기를 바랐던 것일까.

 

공지영같은 비루한 장사꾼이 된 것은 아니지만, 정도상은 자신이 가장 잘 쓸 수 있는 것을 쓰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위태로워 보이며, 그걸 드러내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예전에 산맥과 같이 우뚝해 보이던 그였는데, 지금은 인간적 고뇌가 느껴진다. 그리나 그 인간적 고뇌가 너무나 인간적임을 알기에, 나는 이후에도 정도상의 소설을 살 것이다. 전북대학교 총학생회 사회부장을 하던 때의, 시커먼 물을 들인 야상을 입은 정도상의 모습, 그리고 그 모습을 꼭 빼닯은 소설들을 나는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053895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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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김형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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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의 소설을 읽다보면 미우라 아야코의 말이 떠오른다.미우라 아야코의 소설에서 '책을 읽지 않으면 생각을 할 수 없다'는 문구를 읽고 고개를 끄덕인 기억이 나는데, 김형경의 책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판단과 선택을 해야만 한다. 때로는 마음 가는 대로, 때로는 마음을 다스리면서... 우리는 초등학교 때 살아가면서 해도 되는 것과 해서는 안되는 일들의 대부분을 배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신산하다. 삶은 '관계'에 기초하기 때문일 것이며, 그 '관계'를 이루는 우리의 '욕망'은 도덕을 거스르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외출>의 소재는 매우 자극적이다. 어느날 아내 수진의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강원도의 한 병원을 달려간 인수는 수진에게 동승자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인수는 수진이 출장을 갔던 것이 아니라 휴가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동승자 경호는 내연의 남자였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경호의 아내 서영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쳐 남편의 부정을 알게 된다. 아침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김형경의 소설이 가볍지 않은 이유는, 상처받은 인수와 서영이 어떻게 상처를 치유해 나가야 하는지 관심을 갖고 그들의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진지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순간순간 선택을 하며 그들이 겪어야만 하는 인간적 고뇌에서, 작가 역시 고뇌하는 것이 보이기에 더욱 그렇다. '나라면 어땠을까' 라는 의문을 끊임 없이 하며 자주 책을 덮어야만 했다는 데에서 이 책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마크 트웨인은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책은 당신으로 하여금 가장 많이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라는 말을 했다. 김형경의 <외출>에 어울리는 말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05389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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