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집
기시 유스케 지음 / 창해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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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쇼와생명보험에서 보전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와카쓰키 신지에게 어느날 한 여성이 전화를 걸어와 자살을 해도 보험금이 나오느냐고 묻는다. 신지는 어린 시절 쓰라린 기억이 떠오른다. 신지가 4학년이던 어느날 6학년이던 형이 학교 후미진 곳에서 동급생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우연히 발견한다. 하지만 자신도 함께 괴롭힘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형을 모른체 하고 그날 형이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것이다. 그 기억 때문에 신지는 여성에게 자살하지 말아줄 것을 간곡하게 설득한다.

얼마 후 고사카라는 남성이 회사로 불만을 제기하고 신지를 찍어서 자신의 집을 방문할 것을 요구한다. 신지는 그 남성의 집을 찾아가는데, 그 집은 온통 썩어들어가는 허름한 검은집이었고 집 안에는 개들이 수십마리나 있었다. 집 안에는 아무도 없는 듯 했는데 잠시 후 불만을 제기했던 고사카가 집으로 돌아와 신지를 집안으로 들인다. 집안에서는 무엇이 썩어들어가는지 불쾌한 악취가 가득했다. 고사카는 자신의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왔을텐데 손님에게 인사도 하지 않는다며 아들을 재차 부르다가 대답이 없자 신지에게 아들의 방문을 열어보길 권한다. 신지가 방문을 열자, 그 방 안에는 고사카의 아들이 목을 메어 죽어있다. 충격적인 광경에 놀라던 신지는 문득 고사카가 자신의 아들 시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경찰에게 기이한 느낌을 얘기하자 경찰 역시 살인이 아닌가 의심하고 쇼와생명보험에서는 사고보험금 지급을 사건이 확실히 종결된 다음으로 미룬다. 이에 고사카는 매일같이 같은 시간에 신지를 찾아와 언제쯤 보험금이 나오느냐는 질문만을 집요하게 되풀이한다. 차라리 화를 내거나 폭력을 휘두른다면 마음이 편할텐데 그는 좀처럼 태도에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고사카는 자신의 손가락을 깨무는 자해를 하게 되고 그 와중에 신지는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고사카는 과거에 자신의 손가락을 스스로 절단하여 보험금을 타내려한 경력이 있었고 초등학교 동창인 사치코와 결혼을 하였다. 사치코는 재혼인 듯 한데 죽은 아이는 사치코가 데려온 아이이다. 또한 고사카가 어렸을 적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토끼들이 목메달려 죽는 사건이 일어났었다는 것과 고사카가 쫓아다니던 여학생이 소풍 때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물에 빠져 죽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신지는 그 학생을 죽인 사람이 고사카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들이 졸업한 초등학교를 방문한다. 그곳에서 문집을 발견한 신지는 심리학을 전공하는 여자친구 메구미와 지도교수, 그리고 조교수에게 보여준다. 조교수인 가나이시는 고사카를 사이코패스인 것이 틀림없다며 신지에게 살해당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고사카와 직접 접촉을 시도하던 가나이시가 실종되었다가 시체로 발견된다.

본사에서 조사하던 고사카의 청구건은 뜻밖에도 지급 결정이 내려지고 경찰에서는 고사카의 알리바이가 확실했다고 답변한다. 납득할 수 없었던 신지는 이번엔 사치코가 위험해질 차례라고 생각하여 경찰을 사칭한 경고 편지를 보낸다. 그러나 그 편지를 보낸 후 메구미가 기르던 고양이가 목이 잘려서 발견되고 신지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끊기는 전화가 걸려온다. 그러던 중 신지는 1951년 서독에서 일어난 친자 독살 사건(틸트만 부인 사건)을 책에서 접하고 범인이 고사카가 아닌 사치코일 수도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친다. 그리고 심리학과 교수 역시 사치코의 그네의 꿈 작문에는 단순한 사실의 나열만 있을 뿐 아무런 감정도 들어있지 않다는 분석 결과 내놓자 신지는 그녀가 모든 것을 꾸민 것임을 알게 된다. 그 후 고사카가 양 손이 절단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사치코는 고도후유장해 보험금을 청구한다.

 

영화 <검은집>도 잘 되었고, 소설 <검은집>도 좋다. 영화는 좀더 극적인 측면에 촛점을 맞추어 사치코의 정체를 더 오랫동안 숨겼는데 영화적 어법으로 보자면 썩 괜찮았다는 생각이다. 소설에서는 사이코패스에 관한 신지와 가나이시, 메구미의 견해를 각각 제시하면서 인간 본성에 관한 의문을 제기한다. 기시 유스케의 <유리망치>는 꽤나 실망스러웠지만 <검은집>은 기대만큼은 되었던 듯 하다. 소설을 읽다보면 일본의 보험업계와 우리나라의 그것이 얼마나 비슷한지 놀랄 정도이다. 심지어 손님들의 양태마저 엇비슷하다. 아마도 일본 우체국 간이보험 등이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으로 일본적인 요소가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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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와 죽을 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6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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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의 패색이 점차 짙어지고 러시아 전선에서는 후퇴를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당은 비밀병기를 유리한 공격 지점으로 옮기기 위해 전선을 단축하고 있다고 선전하지만 병사들은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독일군 병사들은 자신들이 러시아에서 했던 것처럼 러시아군이 독일 국경을 넘어와 똑같은 짓을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 불안한 마음이다.

2년간 휴가를 가지 못한 그래버는 이번 휴가가 취소될 것 같은 느낌에 시달리다가 뜻밖의 휴가 통지서를 받는다. 그래버는 평온한 고향 마을을 생각하며 돌아왔지만 집은 폭격으로 날아가 버렸고 부모님의 생사도 알 수가 없었다.당장 잠 잘 곳도 없어져 버린 그래버는 이곳 저곳을 수소문하다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뵈트허라는 휴가병을 만난다. 그래버는 전쟁이 더 이상 전선에 한정되지 않고 독일 국내까지 폭격을 맞는 상황이 되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동창인 알폰스 빈딩 역시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는데 그는 돌격대장으로 훌륭한 저택에 온갖 전리품을 쌓아놓고 살아가고 있다. 빈딩은 그래버가 일선에서 오랫동안 참전했다는 점과 자신에게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 아첨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래버에게 존경을 표하고 그와 친해지려 한다. 

그래버는 어머니를 치료한 적이 있는 보건위원 크루제를 찾아가면 뭔가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크루제는 집단 수용소에 끌려갔고 그의 딸인 엘리자베스 크루제만이 당의 열렬한 신봉자이자 밀고꾼인 리저 부인과 살고 있었다. 그 후 빈딩에게서 좋은 술을 얻은 그래버는 엘리자베스와 함께 마신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그녀의 집을 방문하고 둘은 점차 사랑에 빠진다.

그래버는 엘리자베스를 장교들 전용의 최고급 호텔 '게르마니아'로 데리고 가서 훌륭한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둘은 전쟁과 고발과 죽음이라는 압박감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 애틋한 시간을 함께 한다. 한편 그래버는 양심을 지키다가 학교로부터 쫓겨난 옛 은사 폴만을 찾아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는 자신이 전쟁에서 저지를 죄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는지 묻는다. 참전이 곧 죄를 짓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휴가가 끝나면 다시 복귀해야 하고 그것은 공범이 된다는 것, 하지만 복귀하지 않으면 총살 당하기 때문에 일선으로 안 갈 수가 없으며 가서 아무런 방어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자살행위가 된다는 것, 그 딜레마에 대한 해답은 무엇인지 묻는다. 폴만은 자신도 거기에 대한 대답을 알지 못한다며 괴로워한다.

그 후 빈딩으로부터 다시 초대를 받은 그래버는 그곳에서 친위대원인 하이니라는 자와 알게 되는데 그는 러시아에서 파르티잔들을 불태워 죽인 이야기를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한적한 길에서 술에 취한 하이니의 뒤를 걸어가던 그래버는 그를 살해하여 더 큰 죄악을 없애야겠다는 상념에 빠지지만 결국 그를 죽이지는 못한다.

엘리자베스를 두번째로 게르마니아로 데려간 날 호텔이 폭격을 당하고 둘은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그 폭격은 안전하게 보이던 빈딩의 집도 덮쳐 빈딩이 사망한다. 그래버는 한 개인이 누군가에게 친절하고 상냥하면서도 돌격대장이라는 점에 대해 생각하면서 사람은 아주 작은 면만으로도 죄악을 저지르기에는 충분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 후 그래버와 엘리자베스는 결혼하기로 약속하는데 이들은 결혼을 위한 증명서류를 떼는 과정에서 혹시나 엘리자베스의 아버지와 연관된 일을 트집 잡히지 않을까 걱정한다. 하지만 우려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고 아이러니하게도 친위대장이 이들의 증인이 되어 서명을 한다. 대규모 폭격이 거듭되어 엘리자베스의 집이 폭격당해 불타버렸기 때문에 성당에서 밤을 세운 다음 날, 기적처럼 폭격을 피해간 카페를 발견한 둘은 그곳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마지막 밤을 보낸다. 그래버는 자기가 떠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싫다며 엘리자베스에게 기차역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고 혼자서 기차를 탄다. 그리고 떠나기 직전 역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엘리자베스를 발견한다.

일선으로 복귀한 그래버는 상황이 더 안 좋아졌음을 알게 된다. 러시아인 네 명이 포로로 잡혀오자

친위대 출신인 슈타인브레너는 트집을 잡아 그들을 살해할 생각만 한다. 이를 눈치챈 중대장은 그래버에게 포로들의 감시를 맡기고 그래버는 러시아인들에게 몰래 담배를 건내준다. 그날 밤 전세가 악화되어 독일군은 진지를 버리고 퇴각할 상황이 되고 슈타인브레너는 러시아인들을 죽이기 위해 온다. 그래버가 슈타인브래너를 제지하자 슈타인브레너는 그래버에게 직접 러시아인을 사살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래버는 자신은 러시아인을 쏘지 않을 것이며 슈타인브레너 역시 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하자 슈타인브레너가 총을 뽑아들고 그 순간 그래버는 슈타인브레너를 쏘아 죽인다. 그리고 풀려난 러시아인이 도망가기 직전 땅에서 총을 집어들어 그래버를 사살한다.

 

오랫만에 고속버스에서 레마르크의 소설을 읽었다. 예상대로 오고 가는 내내 한번도 손에서 떼지 않고 읽었다. <개선문>, <서부전선 이상 없다>, <그늘진 낙원> 모두 똑같은 경험을 했다. 그 이유가 뭘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레마르크 소설의 주인공은 항상 내가 닮고 싶은 면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으려 하는 점과 자기 성찰을 하는 점이다. 그리고 다르게 말하면 최악의 상황이 아닌데도 나에게는 그러한 미덕이 없는 것 같다.

한편 레마르크 소설을 읽다보면 우라사와 나오키의 <마스터 키튼>이 자주 연상된다. 오늘 밤에는 <마스터 키튼>을 읽다가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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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수집광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60
존 딕슨 카 지음, 김우종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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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탑 역적문 돌 층계 아래에서 시체가 한 구 발견되는데 시체는 필립 드리스콜이라는 이름의 신문기자이다. 그는 머리에 어울리지 않는 실크햇을 쓰고 가슴에는 커다란 무쇠화살이 박힌 채 숨져있었다. 

그는 숨지기 전 런던탑의 부장관인 메이슨 장군의 비서, 덜레이라는 사람에게 상의할 일이 있다며 전화로 약속을 잡았는데 잠시 뒤 약속을 취소하는 전화를 걸어온다. 그리고 덜레이에게 사정이 있어 탑으로 갈 수 없으니 자기 집으로 와달라고 하고 덜레이는 그의 집으로 향한다.

한편 드리스콜의 숙부인 윌리엄 경은 오래된 도서 수집광인데 최근에 에드거 앨런 포의 미발표 원고를 우연히 손에 넣게 된다. 그런데 그 원고를 도둑 맞았으며, 모자수집광에게 두번이나 모자를 도둑 맞는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조사를 하던 중 드리스콜이 윌리엄의 동생인 레스터 비튼의 아내와 불륜관계임을 알게 되고 비튼은 불륜을 조사하기 위해 래킨이라는 이름의 탐정을 고용했음이 밝혀진다. 그리고 무쇠화살이 비튼 부부의 소유물이었음도 밝혀지자 경찰은 레스터 비튼을 주요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압박을 가한다. 결국 레스터 비튼은 불륜을 저질렀던 아내 로라 비튼의 사진을 한 손에 쥔 채 권총으로 자살하고 사건은 마무리 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 때 덜레이가 사건의 진범은 자신이라며 자백을 한다. 

모자수집광 사건은 다름아닌 드리스콜이 벌인 자작극이었다. 기사로 출세하고 싶던 그는 사건을 일으키고 스스로 기사를 써 특종을 독점하려 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윌리엄 숙부에게 너무 큰 모자가 배달되자 집사가 모자를 줄이기 위해 에드거 앨런 포의 원고를 쓸모 없는 종이인 줄 알고 모자 안에 집어 넣어 크기를 줄였던 것이다. 드리스콜은 자신이 훔친 모자에 귀중한 원고가 들어있는 것을 알고 돌려주려 하지만 사정의 여의치 않았다. 이에 덜레이에게 문제를 상의하게 되었고 덜레이는 드리스콜로 부터 원고를 훔쳐 재정 문제를 해결하려 했었다. 그는 드리스콜이 런던탑으로 오자 자신이 드리스콜인 것 처럼 전화를 걸고 아파트로 가서 원고를 훔쳐낸다. 하지만 드리스콜은 윌리엄 숙부가 자신의 집에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부랴부랴 집으로 되돌아왔다가 덜레이의 범죄현장을 목격하고 난투극을 벌이다 과실치사로 사망한 것이다. 덜레이는 차에 시체를 싣고와 런던탑에 부려놓고, 실크햇을 씌워놓은 후 실재로는 존재하지 않는 모자수집광이 범인으로 여겨지길 기대한다. 그리고 목격자들은 모두 드리스콜이 런던탑 안에서 나가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건은 미궁에 빠졌던 것이다.

과실이 인정되고 스스로 원고를 태워 돈을 포기한 점과 애인인 실러 비튼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펠 박사와 경찰의 마음을 움직여 그들은 사건을 '미해결'로 남겨두어 덜레이를 체포하지 않는다.

 

1930년 <밤에 걷다>를 발표한 이래 63권의 작품을 발표한 존 딕슨 카는 밀실 범죄를 주로 다룬 소설가이다. 미국인이지만 영국인 아내와 결혼하여 영국에서 주로 생활했기 때문에 영국작가로 분류되곤 한다. 그의 다른 필명은 카터 딕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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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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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한 남자가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가 아무 이유도 없이 눈이 먼다. 눈 먼 남자와 아내는 안과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가, 집으로 데려다 준 남자가 자신들의 차를 훔쳐 달아났음을 알게 된다. 그를 진찰한 의사는 어떤 이상도 발견하지 못하자 밤 늦게까지 이유를 알기 위해 의학책을 뒤적인다. 그리고 다음 날 의사도 눈이 먼다. 그리고 차를 훔쳐간 남자도 눈이 멀자 눈이 머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전염된다는 사실만은 확실해진다.

정부는 눈이 멀어버린 사람, 그리고 그들과 접촉한 사람들을 정신병동에 격리 수용하고 군인들로 하여금 그들을 지키게 만든다. 의사 부인은 자신도 눈이 멀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자진해서 함께 격리 수용된다. 그녀는 자신도 곧 눈이 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유독 그녀만은 실명하지 않는다.

눈먼 자들과 접촉하여 전염될 것을 두려워 하는 군인들은 이들에게 식량을 지원하는 것 이외의 어떤 원호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나마 식량 배급도 원활하지가 않다. 눈먼 자들이 살아가는 병동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물로 뒤덮이고 이기심이 팽배해진다. 새로운 사람들이 계속 실명되어 수용되고 식량이 모자라자 일단의 무리들이 무장을 하고 식량을 독점한다. 그들은 어리석게도 다른 병실 수용자들의 귀중품을 거두어 들인다. 그리고 마침내 여성들을 자신의 병실로 보내라고 한 후 윤간한다.

이 과정에서 남자들은 여성들이 윤간 당하는 것을 식량을 위해 외면하고 만다. 결국 의사 부인은 무장세력의 우두머리를 가위로 찔러 죽이고, 후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 병실 사람들은 합심하여 무장세력이 점거하고 있는 병실을 공격한다. 하지만 공격이 여의치 않자 누군가가 그들의 병실을 가로막고 있는 침대를 불질러 정신병동 전체가 불에 타버린다.

군인들의 총에 맞아 죽건, 불에 타 죽건 마찬가지라는 생각으로 그들은 건물을 빠져 나오는데 군인들은 이미 사라졌고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던 거리로 되돌오는데, 가게들과 집들이 약탈 당하고 사람들은 먹을 것을 찾아 더듬거리며 배회하고 있으며, 온 도시가 오물과 시체로 가득찬 광경을 보게 된다. 의사 부인은 자신만 눈을 뜨고 있어 맡게 된 의무를 버리려 하지 않고 수용소에서 알게 된 나머지들을 돌본다. 이 와중에 자신의 몸을 쾌락과 돈을 위해 팔던 아가씨는 애꾸에 노인인 남자와 함께 살겠다고 한다.

식량을 구하러 갔다 온 어느날 가장 먼저 눈이 멀었던 남자가 역시 아무런 이유 없이 눈이 떠진다. 그리고 아가씨의 눈도 떠지고 사람들이 차례차례 실명에서 벗어난다. 아가씨는 눈을 떠서 노인의 겉모습을 제대로 보게 되었지만 그와 함께 살고자 한다.

그리고 의사의 아내는 사람들이 눈을 뜨게 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주제 사라마구는 예순에 가까운 나이에 <바닥에서 일어서서>를 발표하며 호평을 받기 시작하였고 역사와 환상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환상역사소설'이라는 문학장르를 개척하였다고 한다.

역자인 김용재에 의하면, 사라마구는 과거의 역사적 사건에 빗댄 현재의 재해석, 사실적 세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얽매이지 않으려는 듯한 초자연적이고 환상적인 요소, 문장 부호의 변화와 생략을 통한 새로운 문체의 시도, 마지막으로 외부 세계뿐만 아니라 상상력을 통한 내부 세계의 여행이란 네 개의 축이 사라마구 문학 세계를 구축하는 장치로 이를 통해 잃어가고 있는 현대인의 정체성을 세밀하게 파해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주제면에서 권위와 억압에 대한 개인의 저항, 파괴되어 가는 현대인의 윤리의식과 무지 등을 지적하며 사회와 개인의 갈등에 대한 치열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고 한다.

 

소설은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으면서 기존의 질서와 규범이 완전히 붕괴되는 상황을 보여 준다. 눈이 보이지 않음으로 해서 그들이 오랫동안 가꾸어 온 것들이 며칠 만에 완전히 붕괴되어 버리고 이로서 오로지 본능만을 중시하는 세계가 펼쳐진다. 그 와중에 오직 한 명, 눈이 보이는 의사 부인이 있어 이러한 인간성과 규범의 파괴가 얼마나 추악한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이 동물의 삶과 다를 바 없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애를 쓰기도 하고, 그러면서 그동안 중요하게 생각해 왔던 것들이 사실은 '보여지는 것'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인식도 하게 된다. 작가는 온 거리가 배설물로 넘쳐나는 혼돈의 도시를 보여주면서도 검은 안경을 쓴 아가씨가 눈을 뜨게 된 뒤에도 나이 많고 애꾸인 노인을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함으로서 인간에 대한 믿음은 버리지 않는 듯 하다.

 

지난 해 겨울에 <도플갱어>를 읽으면서 기회가 닿으면 사라마구의 작품을 또 읽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당시엔 순전히 그의 소개 중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용접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19년간 단 한 편의 소설도 쓰지 않고 공산당 활동에만 전념하다가...' 부분이 무척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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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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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TV에서 방영하는 「반짝반짝 빛나는」 의 원작일까, 아니면 아무 관련 없는 소설일까 궁금해 하면서 샀다. 원작이라면 그것대로 좋고, 아니라면 아닌대로 좋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드라마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소설이었다. 1991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1955년에 이리사와 야스오(入沢康夫)의 첫번째 시집 「倖せそれとも不倖せ―入沢康夫詩集」에 수록된 반짝반짝 빛나는(きらきらひかる)라는 시에서 제목을 따온 것이다. 


キラキラヒカルサイフヲダシテキ
반짝반짝 빛나는 지갑을 꺼내서 반
ラキラヒカルサカナヲカツタキラ
짝반짝 빛나는 물고기를 샀다 반짝
キラヒカルオンナモカツタキラキ
반짝 빛나는 여자도 샀다 반짝반
ラヒカルサカナヲカツテキラキラ
짝 빛나는 물고기를 사서 반짝반짝
ヒカルオナベニイレタキラキラヒ
빛나는 냄비에 넣었다 반짝반짝 빛
カルオンナガモツタキラキラヒカ
나는 여자가 손에 든 반짝반짝 빛나
ルオナベノサナカキラキラヒカル
는 냄비 속의 물고기 반짝반짝 빛나는
オツリノオカネキラキラヒカルオ
거스름 동전 반짝반짝 빛나는 여
ンナトフタリキラキラヒカルサカ
자와 둘이서 반짝반짝 빛나는 물고
ナヲモツテキラキラヒカルオカネ
기를 가지고 반짝반짝 빛나는 동전
ヲモツテキラキラヒカルヨミチヲ
을 가지고 반짝반짝 빛나는 밤길을
カエルキラキラヒカルホシゾラダ
돌아간다 별이 반짝반짝 빛나는 밤하늘
ツタキラキラヒカルナミダヲダシ
이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물을 흘리
テキラキラヒカルオンナハナイタ

며 반짝반짝 빛나는 여자는 울었다

 

내용은 알코올 중독의 쇼코와 동성애자 무츠키가 서로를 인정하고 결혼하여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무츠키는 쇼코가 술을 끊고 정신과 치료를 받길 원하지 않고, 쇼코 역시 무츠키의 성적 취향이 변하길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쇼코는 무츠키의 동성애인 곤이나 동료 동성애자 의사들과도 사이 좋게 지낸다. 하지만 부모님과 시부모님은 이들이 변하길 기대하고 동성애를 버리거나, 아이를 낳거나 하는 행동을 통해 '상식적인' 삶을 살아가길 원한다.

쇼코와 무츠키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도 좋은 지금과 같은 삶이 계속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더 현재를 소중하고 애틋하게 여긴다.

 

원서를 읽어보고 싶었지만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았다.「ホテルカくタス」는 원서로 사왔는데 괜한 짓 한게 아닌가 싶다. 게으름이 항상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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