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 벌레 이야기
이청준 지음, 최규석 그림 / 열림원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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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다리가 불편한 초등학교 4학년 일암이의 귀가가 늦어진다. 사교적이지 못하고 무언가에 열중하는 것도 없던 일암이가 최근 주산에 흥미를 보여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으니 거기부터 갔으려니 했으나 오히려 원장이 아이가 오지 않았다며 전화를 걸어온다. 하루가 지나고 경찰이 수사를 시작하고 나서도 별다른 소식 없이 시간이 흘러 간다. 아내는 교회와 절 등에 돈을 갖다 바치며 아이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무너지려는 자신을 다잡는다. 그러나 두달 스무 날이 지나고, 일암이의 시체가 근처 한 2층 건물 지하실 바닥에서 발견된다.

유력한 용의자로 주산 학원 원장이 지목되지만 그에게는 어느 정도의 알리바이가 있었다. 아내가 일암이를 찾겠다는 희망과 기원으로 자신을 지탱해 왔다면 이제 범인을 향한 원망과 분노와 복수의 집념으로 무서운 의지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일암이가 실종될 때부터 아내를 교회로 이끌고자 했던 이웃의 김집사 아주머니는 일암이가 죽고 난 후에도 전도를 계속했고, 아내는 마침내 교회에 의지하기 시작한다. 경찰의 집요한 수사 끝에 주산 학원 원장이 범인으로 밝혀진 후 김집사 아주머니는 아내에게 범인을 용서하라고 말한다. 사람을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은 주님만 가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김집사 아주머니의 말에 반발하던 아내가 그녀의 끈질긴 설득과 권유에 마침내 범인을 찾아가 용서하기로 마음 먹고 면회를 다녀온다. 범인의 사형이 집행되고 아내는 이틀 뒤 약을 마시고 자살한다.

 

범인은 옥중에서 신을 받아들이고 평온한 얼굴로 아내를 맞이한다. 그는 자신의 신장과 두 눈을 기증하기로 하였고, 자신이 피해자 가족의 어떠한 복수나 원망도 같은 신의 자녀로서 용서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범인의 평온한 얼굴을 대하고 돌아온 아내의 절규

 

그래요.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싫어서보다는 이미 내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게 된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나보다 누가 먼저 용서합니까. 내가 그를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 먼저 그를 용서하느냔 말이에요. 그의 죄가 나밖에 누구에게서 먼저 용서될 수 있어요? 그를 용서할 기회마저 빼앗기고 만 거란 말이에요. 내가 어떻게 다시 그를 용서합니까?

 

인간에게서 구원받지 못한 자가 신에게서 구원받을 수 있을까? 과연 범인은 평온을 얻었으니 신에게서 구원을 받은 것일까? 사람 사이에서 얽힌 매듭을 당사자들 사이에서 풀지 못했는데, 그가 얻은 평온이 곧 구원으로 이어질 것인가?

주의 기도문 중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란 구절을 다시 되새겨본다. 그 단순한 구절이 얼마만큼 큰 각오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 소설을 읽으며 깨닫는다.

 

이청준의 단편소설 <벌레 이야기>를 이창동 감독이 <밀양>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고,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자 최규석의 그림을 더해 책으로 발간했다. 낯간지러운 상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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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전쟁 메피스토(Mephisto) 8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임종기 옮김 / 책세상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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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화성이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과 반대쪽에 놓이는 충(opposition) 상태에 접근했을 때, 화성에서 거대한 가스 폭발이 관측된다. 얼마 후 한줄기 불꽃이 윈체스터 동쪽으로 사라진다.

사람들은 유성이 떨어진 것으로 생각하여 떨어진 장소로 몰려갔다가 거대한 원통에서 나온 화성인들에게 공격받아 사망한다. 그들은 문어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고 레이저 광선을 쏘며 사람들을 살해하고 건물을 파괴한다. 화성으로부터 추가로 미사일이 발사되어 지구로 속속 도착하자 군부대가 파견된다.

사람들은 화성인들이 중력에 적응하지 못해 그들이 추락한 구덩이로부터 기어나올 수 조차 없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 틀린 예측이었고, 군부대는 화성인을 상대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주인공 '나'는 아내를 사촌의 집으로 피신시킨 후 말을 되돌려주기 위해 다시 마을로 돌아온다. 거대한 삼각대 모양의 전투기계가 마을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살해하는 와중에 주인공은 아내와 떨어지게 된다. 더 많은 전투 부대가 배치되고 미미한 전과를 올리기도 하지만 화성인들은 독가스를 살포하며 군부대를 괴멸시키고 만다. 이제 정부도, 군부대도 없는 상태가 되고 화성인들이 뿌린 붉은 식물이 물이 있는 곳을 따라 급속도로 번식하기 시작한다. 화성인들은 자신들의 혈관에 직접 지구인들의 피를 주사하는 것으로 영양분 공급을 대신했다. 화성인들로부터 피난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도로 곳곳은 아비규환으로 변했고 약탈이 공공연히 자행된다.

'나'는 우연히 만난 목사와 빈집에 몸을 피했다가 그곳에 화성인의 비행선이 착륙하는 바람에 집안에 갖히게 된다. 목사는 굳건한 신앙으로 의연한 자세를 보이기는 커녕 미친사람처럼 횡설수설했고, 그로 인해 화성인에게 발각될 위험에 처한다. 그를 폭력으로 제압한 직후 화성인의 촉수가 집안으로 뻗어들어와 그를 죽인다. 극도의 공포로 집 안에서 기아와 갈증에 시달리던 '나'는 어느날 위험을 무릅쓰고 밖으로 나온다. 그런데 급속도로 퍼져가던 화성인들의 붉은 식물이 말라 죽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곳곳에 화성인들이 죽어있거나 무기력하게 서서 '올라 올라 올라'하는 신음을 내는 것을 보게된다. 화성인들은 지구인이 오랜 기간에 걸쳐 면역체계를 갖게된 박테리아에 감염되어 죽은 것이었다.

우연히 다시 만난 군인이 장황한 이론을 펼쳐 '나' 역시 처음에는 솔깃했지만 곧 그가 과대망상에 빠져 있음을 깨닫는다. 다시 집으로 돌아간 '나'는 그곳에서 아내와 재회한다.

 

1898년 발표된 <우주전쟁>이 쓰여질 당시 영국은 약소국을 침략하여 제국주의적 식민주의를 전세계에 펼치고 있었다. 침략당하는 약소국의 입장에서는 영국이야말로 화성인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아무런 필연도 없이 어느 날 무력을 앞세워 자신들을 살해하고 모든 질서를 붕괴시킨 후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는 영국인이 화성인과 무엇이 달랐을까. 다만 화성인이 박테리아에 의해 자연도태된 반면 영국인들은 피지배 사회 민중의 크나큰 희생 없이는 절대로 물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달랐을까?

그런 의미에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우주전쟁>에서 주인공 톰 크루즈가 작가가 아닌 노동자로 나오는 점은 우연일까 아니면 감독의 의도일까. 거기서 작업 기준 시간이 끝났다며 톰 크루즈가 크레인 조정을 그만 두는 장면이 생각난다. 화려한 볼거리와 달리 화성인들이 박테리아에 의해 자연소멸되어 버리는 것이 허무했던 이유는 소설과 달리 영화가 '침략과 극복'이라는 단선적인 전개로 이루어졌기 때문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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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스터를 먹는 시간
방현석 지음 / 창비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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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존재의 형식(창작과 비평 2002년 겨울호)

 

주인공 재우는 과거 진보운동을 했던 사람으로 현재는 베트남에서 살고 있다. 베트남 말 뿐만 아니라 역사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재우를 통하면 한국 기업들이 수월하게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베트남에 진출한 후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대하고 '돈이면 다'는 오만함에 빠져들어 우쭐거리기 시작했다. 재우가 이런 자들의 첨병 노릇을 한 자신을 주먹질하는 심정으로 쓴 글이 한국 신문에 보도되자 그는 한국인들로부터 배척받기 시작했고 일거리도 줄어들고 만다.

어느 날 베트남으로 함께 운동을 했던 친구 문태가 찾아온다. 문태는 단체일을 하다가 현재는 변호사가 되었다. 통역을 구해달라는 문태의 부탁에 친한 후배를 섭외해줬지만 문태 일행은 통역비가 비싸다며 재우에게 인간적인 모멸감을 주는 막말을 하면서 깎아댄다.

재우는 친구 문태의 속물적인 모습에 분개한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던 날, 재우가 시킨 음식값을 보고 함께 작업하던 베트남인 레지투이는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말한다. 왜냐고 묻는 재우에게 레지투이는 "몰라서 묻나. 자네들 지금 내 앞에서 돈자랑 하는 건가? 아니면 자네들도 서울에서 온 그 변호사들처럼 해보겠다 이건가. 자네가 하노이에 와 있는 변호사들에게 분개했던 이유는 도대체 뭔가?"라고 문는다. 

어느 날 레지투이가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분개한다. 그는 증선산맥을 자본주의적인 색채로 그릴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1966년 자원입대하여 베트남전쟁에 뛰어 들었고 호치민 루트를 타고 사이공으로 들어간 부대원이었다. 그의 부대원 300명 중 295명이 죽었다. 레지투이는 시를 쓰고 싶었던 친구의 이름인 '반레'라는 이름으로 시를 썼고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재우는 과거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문제로 대립했던 문태와의 찜찜한 기억이 베트남에서 통역료 문제로 얽혀들자 못내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그러나 문태가 다른 변호사들과 골프를 치러 가지 않고 해방전선이 사이공을 중심으로 250km에 걸쳐 만든 땅굴인 구치터널을 보러 갔다는 말을 듣고 몸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문태는 재우에게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를 베트남 말로 묻는다. "바이 꼬 떰 롬"이라고 알려주고 문태를 배웅한 재우는 택시를 탄다. 그리고 어디로 가느냐는 질문에 무심코 "명동성당"이라고 답한다.

 

o 랍스터를 먹는 시간

 

베트남에 있는 한국 조선소에 근무하는 건석에게는 째보인 형이 있었다. 형이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을 때 건석은 형을 옹호해주지 않고 부끄러워했다. 아이들은 형을 부추겨 나무에 올라가게 했고, 가지가 부러져 다친 형은 목숨은 건졌지만 귀가 잘 들리지 않게 된다. 건석은 자신이 형을 변호해 주지 않았다는 비겁한 마음보다는 형이 부끄럽다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에 어느 날인가 형이 집 밖에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일기를 형이 볼 수 있도록 펼쳐 놓는다. 일기를 본 형은 그날 이후로 집 밖에 나가지 않는다. 형은 그후 공고에 진학하고, 졸업 후에는 D중공업에 입사하여 건석의 대학 학비를 댄다. 어머니는 언제나 형을 원수처럼 대하면서도 여름내 일한 돈을 모아 세 번이나 째보 수술을 시켜준다. 건석은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베트남으로 온 건석은 리엔이라는 베트남 처녀와 사귀게 된다. 하지만 리엔의 집에서는 건석과 결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느 날, 베트남 노동자 보 반 러이와 회사 김부장 사이에 싸움이 벌어진다. 사태 수습을 위해 공안에 출두한 건석은 여느 때와 분위기가 다름을 느낀다. 설상 가상으로 김부장이 러이에게 '베트콩'이라는 말을 내뱉는다. 건석은 한국말을 아는 공안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뜻밖에도 시종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던 사복의 공안이 북쪽의 억양이 섞인 한국말을 한다. 그의 이름은 팜 반 꾹이었다. 그는 김부장들이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렸다고 했다.

러이와의 일을 겨우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했지만 러이는 사표를 내고 고향으로 돌아가버린다. 팜 반 꾹은 한국인들이 러이를 원직복직 시키지 않았다며 출두를 요구한다. 팜 반 꾹과 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대화를 나누다가 건석은 도대체 그가 누구이길래 공안이 이렇듯 그를 감싸는지 묻는다. 팜 반 꾹은 답을 원한다면 그의 집에 함께 가자고 말하고 건석은 꾹과 함께 러이의 고향 자딘으로 간다.

러이는 제사를 준비 중이었다. 그 마을은 한 집도 빠짐없이 그날이 제삿날이었고, 희생된 사람들은 '박정희군대'에 의해 학살당한 것이었다. 러이와 팜 반 꾹은 그날 살아남은 사람들이었다. 러이는 복수를 맹세하며 전투에 참가하고, 꾹은 호치민 장학생으로 북한에 유학을 떠난다. 러이는 전쟁 중 만난 이니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졌지만 그녀가 자신의 모험주의에 희생되었다고 생각하여 그녀를 찾는다.

러이의 고향에 다녀온 후 꾹은 건석의 진정성을 어느 정도 받아들여 사건을 유예한다. 리엔은 건석을 자신이 데리고 살아주겠다고 한다. 가족의 반대는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외삼촌이 도와줄거라고 말한다. 그녀의 외삼촌은 팜 반 꾹이었다.

건석은 파업중 의문사를 당한 형의 가족사진을 떠올린다. 아버지의 옷에는 러이가 찢어죽여야 한다던 부대 마크가 달려 있었고, 그 옆에는 아오자이를 입은 여인과 형이 있었다. 건석은 "우린 왜 랍스터처럼 자신의 일부를 스스로 잘라낼 수 없을까?" 중얼거린다.

 

o 겨우살이(현대문학 1996년 5월호)

 

서선생은 아침 나절 좁은 도로에서 경적을 울려대더니 자신의 차를 무리하게 추월한 후 쌍욕을 내뱉는 중형차 운전자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그 날 있는 집 딸인 최현미 엄마로부터 험한 말을 들은 후에는 작은 누님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전화까지 받는다.

5년간 해직교사로 살다가 항복하듯 탈퇴서를 제출한 서선생은 첫 해에 아이들에게 정성을 쏟은 덕에 진학률을 여느 해보다 높였었다. 그러나 올해에는 말썽이 생긴다. 반장을 성적 10% 안에 드는 아이로 선출하라는 학교측 방침에 반해 아이들이 뽑은 박송미를 반장으로 앉힌 것이다. 그나마 상식 있는 교장이 박송미를 반장으로 하되, 임명장은 주지 않는 것으로 타협했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창원으로 내려간 서선생 누나는 중환자실에서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었다. 가해자측인 여성운전자는 누나를 친 후 차를 후진까지 시켜 상태를 더욱 악화시켰고, 남편되는 사람은 합의를 위해 한 번 찾아왔을 뿐이다. 다음 날 오겠다던 남편은 오지 않았고 어찌 된 영문인지 묻는 전화 건너편에서는 '법대로 하라'는 대답이 날아온다. 법대로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 본 서선생은 아연해진다. 4만원짜리 벌금 스티커 발부가 전부였던 것이다. 이럴 수는 없다며 가해자 집을 찾아간 서선생은 가해자의 차량에 붙어있는 '내탓이오'라는 스티커에 망연해진다.

 

o 겨울 미포만(창작과 비평 1997년 가을호)

 

미포조선소 노조일을 하다가 해직된 상모는 언제나 믿음직했던 후배 최이현이 사표를 냈다는 소식에 아연해진다. 이현은 상모에게 "이만 이천명 중에 이만 천칠백오십명이 가만히 팔짱 끼고 앉았는" 모습이 견딜 수 없어서 떠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급부로 성과급 받아서 신정연휴 즐기고 와서 뺀들거리고, 정문에 드러누운 파업참가자들을 타넘고 가던 그들을 견뎌낼 수 없다고 말한다. 살고싶어서, 자살이라도 할까 무서워 떠난다는 이현의 결심을 바꿀 수 없음을 알자 상모는 이현에게 줄 오토바이를 조립한다. 상모에게는 믿음직했던 선배 윤봉식 역시 팀장이 되고 현장 과장이 된 후 노조와는 소원해지더니 최소한의 양심만 지키며 생활하고 있다.

해직자로 살아가는 상모 역시 신경이 날카로와져 아내에게 큰소리를 치고, 어느 날인가는 아이에게 손찌검까지 하고 만다. 그리고 자신의 실수에 보내는 아내의 눈길이 경멸의 그것임을 느끼자 상모는 끝장이라고 생각한다.

이현이 불우한 애들을 돕던 통장 비밀번호를 불러주고 강원도로 떠난다. 비밀번호는 공팔일칠, 87년 8월 17일 그들이 누런 수건을 한 장씩 목에 두르고 남목고개를 넘으며 새로운 세상을 보았던 날이었다.

상모는 미포조선소 정문에 매일같이 출근 한다. 상모는 정문 앞에 서서 현장을 바라보며 자신이 몸을 일으켜세워야 할 곳이 어딘지 확인한다. 현강과의 술자리에서 상모는 언제인지 모르게 댓가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는지 물으며 소모임에서 인간적 신뢰를 쌓는 노력도, 공부를 하는 노력도 사라져버렸다고 말한다. 현강은 수련회에서 "박을 때 같이 박고 개길 때 같이 개기자, 개길 때 혼자 대가리 처박고 열심히 해서도 안된다"고 발제를 한다.

얼마 후 상모에게 이현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전화가 걸려온다. 삼척을 8km를 남겨두고 상모와 봉식, 현강과 창연 등은 입을 굳게 다물고 길을 응시하고 있었다. 최도은의 노래가 차에서는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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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여는 집>이 필독서이던 시절이 있었다. 정태춘의 음울한 목소리가 아이들이 불장난을 하는 대목을 읊조릴 때에, 눈 안쪽으로 밀어 넣은눈물이 코를 막고 먹먹해진 목소리를 감추기 위해 헛기침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과거형으로 말해졌다는 것이 곧 그때와 지금이 다르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고쳐져야 할 모순들이 산적해 있다고 생각한다.

우연히 헌책방에 들렀다가 방현석의 책이 꽃혀 있어 집어들었다. 소설책을 펼치니 노동조합 위원장이 노조 간부에게 선물하며 쓴 편지가 적혀 있었다. 그런 책이 헌책방에 나와 있다는 사실에 약간의 자괴감이 일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간간히 접혀 있는 책 모서리가 나의 마음을 조금 가벼워지게 했다. 접힌 자국은 책의 마지막 부분까지 계속되었다.

<존재의 형식>과 <랍스터를 먹는 시간>은 베트남의 이야기를 주인공의 과거 아픔과 교차시켜 구성한 소설이다. <존재의 형식>은 약간 불만스럽다. 재우가 문태의 구치터널 방문에서 마음을 가볍게 하는 부분이 마음에 걸린다. 그것이 과거의 되새김으로서의 방문에 가깝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랍스터를 먹는 시간>은 이보다 정교하다. 소설적인 기교도 훌륭하고 세대를 건너 러이와 건석의 역사적인 아픔과 전망을 교차시키는 부분이 마음에 든다.

<겨우살이>는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법대로 하라'는 것이 '사람이 이럴 수는 없다'가 되는 상황을 통해 법이라는 것이 토대를 공고히 하기 위해 마련된 정교한 틀에 불과하다는 의식을 날카롭게 피력하고, 누님을 병문안 온 천주교 신자들과 가해자(그녀 역시 '내탓이오' 스티커를 붙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천주교 신자이다)를 대비시킴으로서 도덕률이라는 것이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환원되는 경우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겨울 미포만>은 방현석다운 작품이고, 그래서 반갑고, 그래서 불만족스러웠다. 책을 읽다가 문득 안성기가 선전하는 광고가 떠올랐다. 파업이 이십년 가까이 없다는 것이 자랑거리라던 그 광고, 그 회사에서 이십년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는 광고 말이다. 봉고차가 사람을 덮치고 식칼이 노조원의 옆구리에 박히던 회사는 이제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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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4
J.M.G. 르 클레지오 지음, 김윤진 옮김 / 민음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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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 아담 폴로는 작가가 스스로 밝히듯 성경의 아담과 신화의 아폴론을 연상시키는 이름을 갖고 있다. 그의 의식과 편지, 대화를 어느 정도 진실이라고 믿고 유추해본다면 그는 아버지와 다툰 열 두어살 즈음에 집을 나가려고 했던 적이 있고, 신이 창조하신 형태를 거꾸로 거슬러 오르다보면 신에 도달한다는 믿음을 가진 친구가 있었으며, 군대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 자신이 군에서 탈영한 것인지, 아니면 정신병원에서 나왔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여름 휴가로 비어 있는 집을 찾아내 그곳에서 살고 있다. 바닷가 언덕 위에 있는 그 집에서 아담은 때때로 미쉘이라는 여성에게 편지를 보내고, 만나기도 한다. 둘 사이의 대화로 추측건데 아담은 미쉘을 강간한 전력이 있다. 하지만 미쉘을 다시 만나려는 아담의 노력이 생각처럼 잘 되지 않고, 미쉘이 한 미국인과 만나고 있는 것을 아담이 발견하고 그들과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자 미쉘은 경찰에 신고를 한다. 이로서 미쉘이라는 여성이 특정된 한 여성인지, 아니면 불특정 다수 혹은 실체 없는 여성인지 알 수가 없게 된다. 게다가 강간을 했다는 대목도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면 일상적인 의미의 강간 행위와는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때로 아담은 바닷가에서 개를 쫓아 간다. 그는 자신을 개와 동일시한다. 아담이 남긴 쪽지를 본 어머니가 아담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이 편지 글이 소설 속에서는 몇 안되는 정상적인 글이다.

집 주인들이 돌아왔기 때문에 아담은 언덕 위의 집에서 나오게 되고 어떤 필연성 없이 길거리에서 연설을 하게 된다. 그의 연설을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는데, 어떤 이는 예언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는 경찰에 고발되고, 신문에 실리게 된다. 신문에는 그의 기사와 더불어 긴 기사가 하나 더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행동에 어떤 개연성이 있는지,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모호했지만 신문 기사로 옮겨진 그의 행동은 '정신병자의 이상 행동으로 경찰이 출동하였고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는 논리적인 말로 옮겨져 있다. 반면에 숨진 두 명에 관한 기사는 그 둘이 죽었다는 명백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왜 죽었는지에 대한 의문들로 가득하다.

정신병원으로 옮겨진 아담은 그를 인터뷰하려는 대학생들과 대화를 한다. 그는 '존재하는 대로 존재하는 것'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나, 대학생들은 이를 형이상학적인 유희, 수사학적인 장난쯤으로 치부한다.

 

정신병원 또는 군대에서 탈출했을지도 모르는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소설은 독자에게 보내는 작가의 글에서 기대하는 바, 즉 추리적 요소, 를 배반하며 일정한 줄거리가 없이 전개된다. 그리고 독자는 몇 번쯤은 책을 잠시 내려놓고 지금까지 읽고 이해한 것에 대해 수정을 해야만 한다. 문제는 책을 모두 읽고 난 다음에도 명확한 인상은 없다는 것이다.

대학 입학하던 해, 카프카의 <성>을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읽었을 때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후에 <변신> 등을 읽고 난 연후에야 독자의 당황이야말로, 카프카를 읽은 후 나타낼 수 있는 적절한 반응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반면 <조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음울한 분위기와 결락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카메라 기사가 자신이 찍고 싶은 것만 일정한 기준 없이 찍어댄 필름을 편집 없이 보고 난 느낌이다.

르 클레지오의 초기 소설에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하다고 하는데, 그는 방콕에서 군 복무를 하는 동안 선(禪)을 체험하였고, 남미 인디언들의 삶에도 매료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1년에는 방한하여 화순 운주사를 방문하였고, 그곳에서 받은 인상을 <운주사, 가을비>라는 시로 발표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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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구) 문지 스펙트럼 9
박태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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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어머니의 걱정을 뒤로 한 채 구보씨는 집을 나와 천변길을 광교로 향하여 걸어간다. 한낮의 거리에서 격렬한 두통을 느낀 구보는 '삼바스이'라고 하는 효험이 의심스러운 약을 떠올린다. 그는 귀 기능에도 의혹이 간다. 종로 네거리에서 몸 가는대로 걷는다. 전차를 탔다가 소개로 만난 여성을 우연히 본다. 객쩍은 마음을 느끼다가 조선은행 앞에서 전차를 내려 장곡천정으로 향한다.

다방에 들어가 가배차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다 어정쩡한 관계인 남자를 보고 불편한 상황에 처한다. 골동점을 경영하는 친구를 찾아갔다가 허탕을 치고 다시 걷는다. 옛 동무를 우연히 만나는데 그는 자신의 영락한 처지를 의식한 듯 서둘러 구보를 떠나버린다.

남대문을 안에서 밖으로 나가던 구보는 황금광 시대에 관해 생각해본다. 이번엔 금전적으로 출세한 친구를 만난다. 그는 애써 나를 다방으로 이끈다. 곁에 있는 예쁜 여성과 성공한 친구가 서로 황금과 육체를 소비하는 공상을 한다. 친구를 떠나 조선은행 앞에까지 간 구보는 다시금 친구를 만나기 위해 다방으로 간다. 마침내 벗을 만나고, 둘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논하는 등 담화를 나누다가 친구가 급한 약속이 있어 잠시 헤어졌다 다시 만난다. 다시 만난 둘은 대창옥에서 식사를 한다. 구보는 과거 연애하였던 여성에 관하여 생각한다. 벗과 여급이 있는 술집에 가서 상념에 잠기던 구보는 상복을 입은 여성이 생활에 쫓겨 여급을 모집하는 광고에 접하여 당황하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다. 오전 2시. 구보는 생활인으로서 좋은 소설을 쓰리라 다짐한다.

 

o 딱한 사람들

순구가 잠을 깨어보니 진수는 이미 방을 나갔다. 순구는 다섯 개 있어야 할 담배가 두개 밖에 없는 것을 보고 진수를 탓한다. 끼니 거르기가 일쑤인 요사이 둘은 대화도 줄어들고, 서로를 원망하는 마음마저 인다. 순구는 신문에서 구인광고를 보고 적당한 일자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문득 자신은 애초에 일할 의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구인광고를 보는 행위를 지속함으로서 자기 방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한편 진수 역시 배를 곯다가 집으로 돌아가 따로 떼어둔 담배 한개비 순구와 나눠 핀다.

 

o 방란장 주인

변변한 집기도 없는 다방 방장장은 개업 첫 달에는 손님이 많았지만 다음달부터 손님은 줄어들고 이년여 경영하는 동안 빚만 쌓인다. 화가인 주인장은 미사에라는 점원을 쓰고 있는데, 그녀는 월급이 밀렸음에도 불구하고 집안일과 가게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주인이 미안한 마음에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주려 하면 도리어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여 쫓겨나나 생각할 정도로 순진하였다.

주인은 수경 선생의 처지를 부러워하며 그를 방문하였는데, 실상 수경선생은 부인의 히스테리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뒤로 하고 떠나는 주인은 문득 고독을 느낀다.

 

o 성탄제

영이와 순이 형제는 사이가 좋지 못하다. 순이는 카페 여급인 영이를 불쾌해 했으며 몸까지 파는 것을 비난하였다. 한편 영이는 순이가 고등학교에 다니고 가족들이 밥술이나 뜨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희생 덕분이며, 몸까지 파는 것을 모르는 척 하는 집안이 미웠다. 영이가 손님의 아이를 임신하면서 카페에 나가지 않자 집안의 벌이가 끊긴다. 급기야 순이 역시 여급이 되자 영이는 순이를 한껏 비웃어 주고 싶다. 하지만 순이가 몸을 파는 날 방을 비우고 다른 방에 누운 영이의 눈에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o 최노인전 초록

최노인은 매약행상을 삼십여년 다닌 이다. 그는 본래 관비 유학생으로 동경에 유학하였으나 학업을 중도 작파하고 이런 저런 보잘것없는 일을 하다가 딸과 사이가 틀어진 후 결국 매약행상으로 낙착된 이다. 그는 자신의 신세를 탄하며 얼른 죽어야 겠다고 하면서도 실은 윤치호 옹의 영구를 자신이 따라나설 것이라는 말을 자꾸 하며 내심 유치호 옹보다는 오래 살 것을 궁리하는 것 같다.

 

o 춘보

어느 날 임신한 아내가 모시조개를 넣은 냉이국을 먹고 싶다고 한다. 춘보는 모시조개를 사겠다고 벼르지만 벌이가 없어 겨우 쌀말이나 사댈 뿐이고, 몸까지 다쳐 며칠 벌이마저 끊기고 만다. 게다가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궐 밑의 집들을 죄다 헐어낼 계획이라는 말까지 돌자 더욱 불안을 느낀다. 씨름씨름 앓고 있는 그에게 아는 이가 미장이 일을 따라 나서겠냐고 권하자 춘보는 몸은 고될 망정 안정적인 벌이가 낫겠다 싶어 그러기로 작정한다.

아내는 맹서방이 관을 욕했다가 잡혀간 이야기를 하며 춘보에게 술을 과하게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러나 춘보 역시 술에 취해 관을 탓하는 말을 했다가 잡혀가고 만다. 포청으로 끌려가 간 속에 갖힌 춘보는 잠이 들었다가 자신을 흔드는 기색에 잠을 깨니 꿈이었다. 미장이 일을 나가면서 춘보는 딸아이에게 산에 가서 냉이를 많이 해오라고 일러둔다. 오늘은 기어코 모시조개를 사올 결심인 것이다.

 

최혜실의 해설이 정갈하여 여기 발췌해 둔다.

 

모더니즘은 원래 현실을 추상화한다는 개념에서 나왔으나 현대에 이르러 그 범위가 확장되었다. 단순하게 말한다면 대체로 리얼리즘 문학은 현실 세계를 재현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모더니즘 문학은 인간의 정서를 중시 여기면서 언어 자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하나 덧붙이면 모더니즘은 근대 산업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는 바, 현대 사회는 기술과 산업의 복합체로 개인은 사회를 파악하지 못하고 낯설게 느낀다. 이에 작품에 나타나는 사회는 추상적이며 등장인물들은 상실감과 소외감을 드러낸다.

이런 징후를 상징적으로 잘 드러내는 것이 도시와 군중의 관계이고, 고독한 현대인의 모습을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잘 포착하고 있다. 경성은 1930년대 근대 도시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이는 한국인들의 생활 방식과 수준을 무시한채 진행된 것이었다. 지식인의 실업률이 심각하였고, 그들은 소외감을 느낀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전반에는 '행복'과 '고독'이라는 두 대립축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바, 도시 생활에 열중하는 평범한 군중들의 의식이 '행복'인 반면 식민지 지식인인 자신은 '고독'으로 대비된다. 하지만 '행복'은 산업 발전이 가져다 준 제도적 운용 방법을 배움으로써 생활의 안정을 누리고 있으나, 그 제도 속에 빠져 진실한 의미와 모순을 자각하지 못하고 폐쇄성 속에 빠져버린 평균인에 불과한 행복이다.

한편 경성역은 근대화와 식민 통치의 양면적 의미를 띠고 있는 곳으로, 이곳은 물자와 문명이 들어오는 통로이자 몰락한 농민과 도시 실업자들의 집합소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구보는 일제 강점기 지식인의 이중적 위치를 잘 드러내고 있는 룸펜 인텔리겐차이다. 이런 유형의 지식인상은 <딱한 사람들>에서 순구와 진수로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방란장 주인>은 일종의 예술가 소설로 구인회의 분위기가 잘 드러나는 모델소설이며, 소설 전체가 쉼표만 사용 한 문장으로 처리되는 모더니즘적 실험이 드러나 있다.(방란장 주인의 모델은 소설가 이상이다) <성탄제>는 생활고로 자매가 여급으로 전락하는 비극을 그린 소설인데, 박태원은 여급의 문제를 다룬 소설을 많이 발표했다. 한편, <최노인전 초록>은 훗날의 역사소설의 싹이 보이는 작품이고, <춘보>는 비록 단편이나마 그의 후기 역사소설의 출발점이 된다.

박태원은 일제 말기 친일 행위에 가담한 적이 있었으나 해방 이후에는 좌익 활동으로 돌아 선다. 이는 그가 친일 행위에 어쩔 수 없이 가담하였다는 정황과, 1930년대 모더니즘 문학을 하던 대다수가 좌익 단체였던 '조선문학가동맹'에 참가하였고 친구 이태준이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는 데서 원인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후 그는 리얼리즘 쪽으로 창작 방법을 변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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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감사가 끝나고 본감사가 이번 주 월요일 시작되었다. 감사가 시작되니 요청하는 자료의 양도 많아졌고, 심리적으로 편안하게 책을 읽을 경황을 만드는 것이 쉽지가 않다. 일제 강점기 소설을 읽다 보면 당시의 엘리트들이 얼마만큼 비상한 인물들이었는가 감탄하는 경우가 많다. 박태원 역시 예외가 아니다.

윤고은의 <무중력 증후군>에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일정한 주기로 리메이크 되며 현 세태를 반영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과연 박태원의 소설을 읽고 보니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겠다. 내가 읽었던 버전은 최인훈의 것이었고, 박태원은 오히려 나중에 읽게 되었는데 읽던 중 구보가 친구와 더불어 <율리시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과연 당시에 번역은 누가 했을 것인가, 번역이 아니라면 원전을 읽었을까 여러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율리시즈>에 도전했다가, 그 난해함에 두 손을 들고 말았던 기억이 있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62287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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