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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4
J.M.G. 르 클레지오 지음, 김윤진 옮김 / 민음사 / 2001년 10월
평점 :
소설의 주인공 아담 폴로는 작가가 스스로 밝히듯 성경의 아담과 신화의 아폴론을 연상시키는 이름을 갖고 있다. 그의 의식과 편지, 대화를 어느 정도 진실이라고 믿고 유추해본다면 그는 아버지와 다툰 열 두어살 즈음에 집을 나가려고 했던 적이 있고, 신이 창조하신 형태를 거꾸로 거슬러 오르다보면 신에 도달한다는 믿음을 가진 친구가 있었으며, 군대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 자신이 군에서 탈영한 것인지, 아니면 정신병원에서 나왔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여름 휴가로 비어 있는 집을 찾아내 그곳에서 살고 있다. 바닷가 언덕 위에 있는 그 집에서 아담은 때때로 미쉘이라는 여성에게 편지를 보내고, 만나기도 한다. 둘 사이의 대화로 추측건데 아담은 미쉘을 강간한 전력이 있다. 하지만 미쉘을 다시 만나려는 아담의 노력이 생각처럼 잘 되지 않고, 미쉘이 한 미국인과 만나고 있는 것을 아담이 발견하고 그들과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자 미쉘은 경찰에 신고를 한다. 이로서 미쉘이라는 여성이 특정된 한 여성인지, 아니면 불특정 다수 혹은 실체 없는 여성인지 알 수가 없게 된다. 게다가 강간을 했다는 대목도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면 일상적인 의미의 강간 행위와는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때로 아담은 바닷가에서 개를 쫓아 간다. 그는 자신을 개와 동일시한다. 아담이 남긴 쪽지를 본 어머니가 아담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이 편지 글이 소설 속에서는 몇 안되는 정상적인 글이다.
집 주인들이 돌아왔기 때문에 아담은 언덕 위의 집에서 나오게 되고 어떤 필연성 없이 길거리에서 연설을 하게 된다. 그의 연설을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는데, 어떤 이는 예언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는 경찰에 고발되고, 신문에 실리게 된다. 신문에는 그의 기사와 더불어 긴 기사가 하나 더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행동에 어떤 개연성이 있는지,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모호했지만 신문 기사로 옮겨진 그의 행동은 '정신병자의 이상 행동으로 경찰이 출동하였고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는 논리적인 말로 옮겨져 있다. 반면에 숨진 두 명에 관한 기사는 그 둘이 죽었다는 명백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왜 죽었는지에 대한 의문들로 가득하다.
정신병원으로 옮겨진 아담은 그를 인터뷰하려는 대학생들과 대화를 한다. 그는 '존재하는 대로 존재하는 것'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나, 대학생들은 이를 형이상학적인 유희, 수사학적인 장난쯤으로 치부한다.
정신병원 또는 군대에서 탈출했을지도 모르는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소설은 독자에게 보내는 작가의 글에서 기대하는 바, 즉 추리적 요소, 를 배반하며 일정한 줄거리가 없이 전개된다. 그리고 독자는 몇 번쯤은 책을 잠시 내려놓고 지금까지 읽고 이해한 것에 대해 수정을 해야만 한다. 문제는 책을 모두 읽고 난 다음에도 명확한 인상은 없다는 것이다.
대학 입학하던 해, 카프카의 <성>을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읽었을 때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후에 <변신> 등을 읽고 난 연후에야 독자의 당황이야말로, 카프카를 읽은 후 나타낼 수 있는 적절한 반응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반면 <조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음울한 분위기와 결락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카메라 기사가 자신이 찍고 싶은 것만 일정한 기준 없이 찍어댄 필름을 편집 없이 보고 난 느낌이다.
르 클레지오의 초기 소설에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하다고 하는데, 그는 방콕에서 군 복무를 하는 동안 선(禪)을 체험하였고, 남미 인디언들의 삶에도 매료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1년에는 방한하여 화순 운주사를 방문하였고, 그곳에서 받은 인상을 <운주사, 가을비>라는 시로 발표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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