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좋은 방 열린책들 세계문학 28
E. M. 포스터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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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루시와 사촌 샬럿은 이탈리아 피렌체로 여행을 떠난다. 펜션 베르톨리니에 도착한 그들은 예약한 방이 약속과 달리 전망이 형편 없다는 사실에 크게 실망한다. 이때 에머슨과 그의 아들 조지가 <전망 좋은 방>을 루시와 샬럿에게 양보하겠다고 말한다. 루시와 샬럿은 그들의 호의에 숨은 저의를 파악할 수 없어 선뜻 승락하지 못한다. 에머슨은 자신의 순수한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루시와 샬럿을 의아해 한다. 마침 그곳에 체류중이던 교구목사 비브가 에머슨에게는 별다른 저의가 없고 솔직한 성품으로 가끔 곤란을 겪을 뿐이라고 말하자 루시와 샬럿은 <전망 좋은 방>에 투숙하게 된다.

다음 날 루시는 산타크로체 교회에 소설가 래비시양과 함께 관광을 나간다. 래비시양은 자신이 피렌체에 대해 속속들이 알려줄 것처럼 여행안내서마저 빼앗아가더니 돌연 루시를 팽개치고 사라져버린다. 루시는 교회에서 다시 에머슨 부자를 만나는데 또 다른 영국인 목사인 이거는 에머슨을 백안시한다.

어느 날 루시가 알리나리의 가게에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같은 그림 몇 점을 사고 시뇨리아 광장을 거닐다가 살인 사건을 목격한다. 루시는 정신을 잃고, 마침 옆을 지나던 조지 에머슨이 루시를 부축한다. 깨어난 루시는 자신이 산 그림들을 찾고 조지는 그 그림들에 피가 묻었다면서 강물로 던져버린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루시는 자신의 내부에서 무언가 변화했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것을 부정하고 싶어한다. 한편 조지는 루시를 통해 음울한 비관주의에서 벗어나 삶의 생기를 느낀다.

 

비브 목사와 이거 목사, 에머슨 부자, 래비시, 샬럿과 루시가 소풍을 떠난다. 가는 도중 마부가 젊은 아가씨를 태운 후 서로의 열정을 몸짓으로 확인한다. 이거 목사는 이런 광경에 불쾌해하고, 에머슨은 젊은이들의 솔직한 행동을 불쾌해하는 이거 목사를 비난한다. 소풍지에서 일행과 떨어진 루시가 이탈리아인 마부에게 목사를 뜻하는 이탈리아어를 몰라 '좋은 남자'가 어디 있는지 묻고, 이탈리아인은 '좋은 남자'를 연애하기 좋은 대상으로 생각하여 조지에게 데려간다. 덤불 숲에서 미끄러져 떨어진 루시에게 조지가 열정을 참지 못하고 키스를 한다. 루시는 샬럿에게 모든 사실을 고백하고, 샬럿은 루시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조지에게 모든 일에 대해 입 다물어줄 것을 종용한 후 루시를 데리고 로마로 떠난다.

 

영국의 서머 스트리트의 윈디 코너 저택으로 되돌아온 루시는 로마에서 만난 세실로부터 청혼을 받는다. 루시가 응낙하여 둘은 약혼한 사이가 된다. 

세실은 문학과 예술 등에 조예가 깊었으나 운동을 싫어하고 타인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취했다. 루시의 어머니 허니처치 부인은 세실의 집안과 태도가 훌륭하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을 터놓지는 못했고 동생인 프레디는 세실을 싫어했다. 

어느 날 윈디 코너 저택 앞에 위치한 두 가구 연립형 빌라에 루시가 앨런 자매를 추천하자 세실은 서머 스트리트 사람들을 골탕먹일 작정으로 앨런 자매를 대신해 에머슨 부자를 추천하고 겉으로는 그들에게 호의를 베푼 척 한다. 비브 목사가 프레디를 조지에게 소개시켜주기 위해 빌라로 데려간다. 프레디는 소개받은 조지의 얼굴이 더럽기에 별 뜻 없이 '목욕이나 하러 가자'고 말한다. 그런데 조지 역시 흔쾌히 좋다고 대답하여 셋은 호숫가로 목욕을 하러 간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잊고 벌거벗은채 물장구를 치며 시간을 보내다가 허니처치 부인 등에게 목격되어 곤란을 겪는다.

허니처치 부인의 집에 조지 등이 초대를 받고 사람들은 테니스 경기를 한다. 잠깐 루시와 조지가 함께 있게 되었을 때 또다시 조지가 루시에게 키스를 한다. 조지는 세실과 같은 사람은 여성을 존중하지 않고 대상화할 뿐이라고 설득한다. 

복식 조의 인원이 모자라 세실에게 함께 테니스를 치자는 제안에 세실이 거절하자 루시는 세실에게 파혼을 통보한다. 그 하나의 사건을 통해 루시는 세실의 성격적 결함을 깨닫는다. 루시는 세실에게 지금껏 자신이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지지 못했고 앞으로 그것을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격분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세실은 고결한 태도로 자신이 지금껏 저질렀던 잘못을 깨달았다면서 루시의 앞날을 축복해준다. 세실과 헤어진 루시는 자신이 조지에게로 갈 경우 남자 때문에 세실에게 파혼을 통보했다는 오해를 받을 것이 두려워 앨런 자매를 따라 여행을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여행을 떠나기 직전 목사관에서 에머슨을 만난 루시는 에머슨의 이야기를 듣고 조지와 함께 하기로 결심한다. 둘은 펜션 베르톨리니의 전망 좋은 방으로 신혼여행을 떠난다.

 

소설의 종장 제목은 <중세의 종말>이다. 영국 사회의 계급간 갈등과 가치관의 충돌을 지적한 소설이라는 평을 받는 <전망 좋은 방>은 E.M.포스터의 작품 중 가장 밝고 유머러스한 작품이라고 한다. 작품은 곳곳에 아이러니와 반전, 유머를 배치해두고 있다. 가장 솔직하고 꾸밈 없는 성품의 에머슨은 가장 예의범절이 없다고 평가받고, 에머슨을 옹호하던 비브 목사가 막상 조지와 루시가 연결되자 불쾌해하는가 하면, 도덕가연 하는 노처녀 샬럿이 마지막에는 에머슨과 루시의 만남을 주선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프레디와 조지, 그리고 비브 목사가 연못에서 목욕하는 장면이다. 옷을 벗고 목욕을 하는 그들의 눈부신 모습은 온갖 인습을 벗어던지고 사회 계급을 잊은 채 한데 어우러질 수 있다는 작가의 믿음을 시사하는 듯 하다. 

작가 연보를 보니 E.M.포스터는 급진적 정치 성향을 지녔고 동성애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존 쿳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에 인용된 그리스 시인 C.P.카파비 등과도 교류하였고, 기사 작위를 거절한 전력도 있다. 

작품은 제임스 아이버리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어 1986년 아카데미 각색, 미술, 의상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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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문
폴 알테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시공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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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50년대 영국 옥스퍼드 교외의 한 마을에서 기괴한 사건이 일어난다. 빅터 단리의 아내가 저택 꼭대기 층 다락방에서 온 몸이 난자당한 후 손목이 그어져서 사망한 것이다. 석연치 않은 사건이었지만 그 방은 밀실이었기 때문에 경찰은 자살로 결론을 내린다. 그 후 그 방에서 불빛이 보이거나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유령의 집이라 부른다. 세입자들은 몇 달을 넘기지 못하고 도망치듯 이사를 갔다.

빅터 단리의 이웃에는 아서 화이트라는 유명 작가가 살고 있었는데 그 역시 아내를 교통사고로 잃는다.  빅터 단리와 아서 화이트는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간다.

 

어느 날 빅터 단리의 집에 앨리스와 패트릭 부부가 이사를 온다. 앨리스 부인은 영매로서 자신이 접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빅터 단리는 자신의 부인을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만나고 싶어했기에 그녀의 능력에 기대를 건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밤 아서 화이트가 봉인한 편지 봉투 내용을 앨리스가 알아맞추자 그녀는 영매로서 인정받게 된다.

그 즈음 부터 아서 화이트와 그의 아들 헨리가 다투기 시작한다. 어느 날 아서 화이트가 심하게 머리를 다치고 헨리가 사라지는 사건이 벌어진다. 아서 화이트는 자신이 시체를 짊어지고 가는 누군가에게 공격당했다고 주장했지만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고 사람들은 헨리가 범인일거라고 막연히 짐작한다. 헨리가 사라진 후 같은 시간에 동시에 다른 곳에서 헨리를 보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사건은 미궁으로 빠지고 헨리는 완벽히 사라진다.

 

헨리가 사라진지 3년이 지난 후 하나의 실험이 진행된다. 죽은 빅터 단리 부인과 접신하여 사건을 재구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녀가 죽은 방에 패트릭이 들어가고 문이 봉인된다. 시간이 흐른 뒤 패트릭으로부터 아무런 대답이 없자 사람들은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러나 그곳에는 페트릭이 아닌 헨리의 시체가 놓여있었다. 패트릭은 자신이 방에 들어가기 전 헨리에게 공격당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서 화이트는 시체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과연 얼마 후 진짜 헨리가 나타난다. 그는 죽은 시체의 정체는 자신과 꼭 닮은 미국인 밥 파르이며 함께 공연을 하며 돌아다녔다고 말한다. 

얼마 후 아서가 머리에 총을 맞았다며 빅터 단리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아서의 집 부근에는 눈이 두텁게 내려 있고, 범인이 나간 흔적은 없었다. 또 다시 밀실살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사라진 패트릭과 앨리스를 범인으로 지목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집 소파 속에서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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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로널드가 쓴 추리 소설의 전반부이다. 로널드가 트위스트 박사에게 절대 풀리지 않을 추리소설의 전반부를 써서 건내면 트위스트 박사가 이 불가해한 추리소설의 후반부를 쓰기로 한 것이다. 트위스트 박사는 다음과 같은 후반부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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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단리 부인은 의심할 나위 없이 자살한 것이고, 그 후 단리 부인의 유령이라도 만나고 싶은 빅터 단리가 다락방에 올라가 서성이자 사람들은 유령이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앨리스와 패트릭은 빅터 단리와 아서 화이트에게 사기를 치기로 한다. 봉인된 편지는 가장자리에 작은 틈을 만들고 날카롭고 긴 핀셋을 넣어 종이를 말아서 뺐다가 다시 집어넣는 방법을 사용한다. 

아서 화이트는 막대한 돈을 앨리스와 패트릭에게 갖다 바치기 시작하고 헨리와 사이가 나빠진다. 헨리는 그들의 사기행각을 눈치 챘지만 앨리스에게 푹 빠져 있어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마침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헨리가 모든 것을 폭로하려 하자 앨리스와 패트릭은 헨리를 죽여 파묻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아서에게 발각되자 아서를 때려 실신시킨다. 하지만 헨리는 칼이 급소를 피한 덕분에 살아났고 그 길로 멀리 떠난다. 패트릭은 헨리가 멀리 사라졌다고 믿게 만들 요량으로 보지도 못한 헨리를 보았다고 주장하는데 그 시간이 공교롭게 제임스가 본 시간과 겹쳐 두 군데에서 헨리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3년 뒤 헨리는 자신과 꼭 닮은 밥 파르를 먼저 영국으로 보내 앨리스와 패트릭의 사기행각을 폭로하려 하나 밥 파르를 발견한 패트릭이 먼저 손을 써 그를 죽이고 만다. 조명과 가짜 손잡이를 이용하여 방을 바꿔치기 하고 똑같은 봉인을 두 개의 방에 만들어 놓아 사건을 밀실살인처럼 보이게 만든다. 

헨리는 희대의 마술사 후디니의 이야기에 영감을 얻어 자신이 후디니의 환생이라 생각한다. 앨리스와 패트릭을 살해한 헨리는 총을 소제하다가 사고가 났다는 아버지의 전화를 무시함으로서 아버지를 죽음에 빠뜨린다. 헨리는 드루 반장에게 쫓기다 제임스와 마지막 대화를 나누고 템즈강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제임스는 사라진다. 

 

로날드는 소설 말미에 왜 제임스가 사라졌는지 트위스트 박사에게 묻는다. 트위스트 박사는 로날드에게 그가 쓴 소설이 사실에 근거하고 있었으며 로날드가 소설 속의 인물 중 한 명, 제임스일 것이라 말한다. 로날드는 자신이 과거의 기억을 잃었다고 시인한다. 트위스트 박사가 경찰에 의뢰한 사진을 들고 온다. 거기에는 로날드의 젊을 적 사진이 들어있다. 로날드는 자신이 제임스라는 사실에 놀라워한다. 하지만 트위스트 박사는 그 사진의 뒷면에 헨리라는 이름이 써 있는 것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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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살인과 불가능 범죄의 대가 폴 알테르의 초기작으로 1987년 코냑 상을 수상했다. 전형적인 수수께끼 풀이를 액자식으로 구성하고, 희대의 마술사 후디니의 이야기를 그림자처럼 드리워 음산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황금시대(1930년대 추리소설의 전성기)의 본격 스타일로 대부분 밀실살인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 

우연히 파주 출판단지의 시공사에서 사온 책인데 의외의 성과다. <네 개의 문>은 국내에 최초로 번역된 폴 알테르의 책이다. 그의 작품이 계속 번역되어 출판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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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망
정도상 지음 / 실천문학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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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암에 걸린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여자는 사랑했던 한 남자를 떠올린다. 그리고 준비한 칼을 들고간 여자는 엘리베이터에 탄 장군을 찌른다. 여자는 40년간 장군을 잊은 적이 없지만 장군은 여자를 까맣게 잊은 듯 했다. 살인미수범으로 체포된 여자는 국선 변호사 채운주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희망보육원 출신의 영식은 곱상하게 생긴 외모 때문에 예삐라는 별명으로 불렸지만 깡다구가 있어 싸움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잭나이프를 잘 써 별명이 '재크'인 병수가 같은 보육원의 길자를 건드린 것이 발단이 되어 영식과 싸움이 벌어진다. 영식은 그 싸움에서 귓바퀴 일부를 잘리우고 짝귀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재크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둘은 친구가 된다.

서울로 올라온 짝귀는 씨라이막에 들어가 넝마주이가 되는데, 짝귀가 속한 남산구쫘 양동 씨라이막의 조마리인 찐따는 식구들을 갈취하여 제 잇속만 채우려 드는 자였다. 짝귀는 먼저 서울에서 자리를 잡은 재크의 도움을 받아 찐따를 몰아내고 고향 후배인 '사타'와 '구니', '찌끼미'와 '토깽이' 등과 더불어 씨라이막을 정비한다. 

씨라이막은 점차 틀이 잡혀 갔지만 짝귀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양동 사창가에서 몸을 파는 길자의 마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길자는 한사코 짝귀의 마음을 외면했다. 짝귀는 한달에 두어 번 술에 취하면 몽둥이를 들고 양동으로 가 온 골목을 휘저의며 손님을 몰아내고 행패를 부렸다. 그러나 짝귀의 성깔을 아는 팸프며 둥기들은 말릴 수가 없었고 고스란히 장사를 공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자 길자의 주인이 짝귀를 고발하고, 짝귀는 국가재건위원회에 끌려가게 된다. 재크와 함께 강원도 산골에 갇히게 된 짝귀는 혹독한 중노동에 시달린다. 재크와 짝귀는 악질상사인 '단춧구멍'의 비위를 맞추지 않아 심한 괴롭힘을 당했고, 급기야 짝귀가 국기게양대에 묶여 구타를 당하다 기절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재크는 분을 이기지 못해 나이프로 단춧구멍의 눈을 찌르고 자신은 대검에 찔려 죽고 만다. 짝귀는 제주도로 강제 전출 된다. 

한편 짝귀가 잡혀가자 사타는 짝귀를 서슴없이 배신하고 씨라이막을 예전의 찐따 시절처럼 운영한다. 거기에 한 술 더 떠 길자에게 치근덕대기까지 한다. 길자는 그제서야 짝귀의 마음을 받아주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길자는 자신의 몸이 더러워졌다고 생각했고 그런 이유로 짝귀의 순정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느 날 사타가 길자를 사러 오자 길자는 양동 사창가를 도망쳐나온다. 하지만 방을 얻고 취직을 한 길자를 사타가 찾아낸다. 찌끼미는 짝귀에 대한 의리로 사타를 살해한다. 길자는 강원도로 짝귀를 찾아 가지만 이미 제주도로 전출이 된 후였다.

제주도로 전출 간 짝귀는 오로지 단춧구멍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탈출을 감행하지만 온몸에 동상을 입고 만다. 동상에 걸려 의무대에 입원한 짝귀는 기회를 틈타 다시 탈출을 시도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군인들에게 포위되고 결국 자신이 학비를 대어 사관학교에 가도록 도와준 보육원 동기 영필의 총에 맞아 숨진다.

 

장군이 된 영필은 길자의 칼을 맞았지만 목숨은 건진다. 그는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고 아들의 병역면제 혐의도 받고 있다. 찌끼미는 사타를 살해한 죄로 무기징역을 받고 20년을 복역했으며 그 후로 금고털이 전과 3범으로 다시 20년을 복역한다. 길자는 암이 온 몸에 퍼져 재판을 받을 수 없는 상태로 판정받아 병원에 수감된다. 세 명의 수양딸을 길러낸 길자는 자신이 모은 돈 3억을 희망보육원에 기증하는 유서를 남긴다.

 

중학교 때 작은형의 책꽂이에 꽂힌 대학교 교지에서 소설을 한 편 읽은 적이 있다. 시골에서 홀어머니가 농사를 지어 대학을 보냈는데 그 아들은 시대의 현실을 인식하고 운동권이 된다는 이야기로,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를 그대로 표절, 혹은 필요에 의한 한국적 변용(?)이었는데 당시에는 그런 것을 몰랐었다. 다만 당시에는 소설이라는 것이 그렇게 사실적이어도 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따옴표 안의 왁살스럽게 느껴지는 전라도 사투리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정도상의 <아메리카 드림>을 읽고 충격을 받았었다. 정의라든가 도덕이라든가 그런 것들이 이 땅에는 없는 것인지, 이대로 사회가 계속 유지되어도 괜찮은지, 무수한 의문을 갖게 되었다. 정도상은 나에게 그런 작가였다. 

그의 소설을 읽다보면 '돌직구'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우직하게 포수의 미트를 향해 혼신의 힘을 다해 뿌린 직구 말이다. 철저히 역사, 그리고 그 속의 인간을 담아내는 정도상의 소설은 기교라든가 상징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별로 없다. 그래서 정도상의 소설을 읽으면 언제나 <친구는 멀리 갔어도>의 책 날개에 실린 물들인 군용 야상을 입은 작가의 사진이 떠오른다. 

 

소설의 결말을 보자면 역사적으로 해결된 것은 별로 없어보인다. '단춧구멍'은 복수를 당하지 않고 천수를 누렸을 것이고, 친구를 밀고한 후 여자친구를 가로채고, 학비를 대어준 영식을 살해한 영필은 길자의 칼에 죽지 않는다. 그리고 영필이 구속당한 이유는 과거의 죄과 때문이 아니라 현재의 부정 때문이다. 

<누망縷望> 은 한가닥 실낱같이 가늘게 남아 있는 희망을 말한다. 정도상은 작가 후기에서 자신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영식과 길자의 사랑 이야기였다고 말한다. 실낱같은 희망은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후기에서 자신이 걸어갈 길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시대와의 불화를 택해 길을 걸었다고. 가끔 길을 벗어날 때도 있었지만, 시대의 유행을 쫓지 않았고 앞으로 걸어갈 길 역시 순탄치 않으리라고 이야기 한다. 그것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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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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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년 전인 AD 1986년, 과야킬은 남미의 작은 공화국 에콰도르의 항구였다. 항구의 한켠에는 호텔 엘도라도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곳의 투숙객들은 '세기의 자연 유람' 여행에 참가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원래 갈라파고스는 '무가치한 곳'으로 인식 되고 있었는데 한 사업가가 수완을 발휘하여  '무한한 가치가 있는 곳'으로 사람들의 견해를 바꾸어 놓았다. 

당시 인간들은 수시로 견해를 바꾸곤 했는데 화폐의 가치에 대해서 견해를 갑자기 바꾸어 공황이 일어났다. 또 너무나 거대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100만년이 지난 지금의 인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곤 했다.

어쨌든 '세기의 자연 유람'은 유명 인사들이 참석하기로 한 덕분에 전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예약을 했다. 하지만 세계 경기가 불황으로 돌아서자 대다수의 사람들이 예약을 취소하였고 '다윈호'에 탈 사람은 얼마 남지 않게 되어 취소가 불가피해보였다. 그런데 그 때 파산한 페루가 에콰도르에 선전포고를 한 후에 폭격을 하는 사태가 일어났고 이 혼란통에 다윈호로 피신한 사람들이 갈라파고스로 준비되지 않은 항해를 하게 된다.

한편 갈라파고스를 제외한 전 세계에 인류의 난자를 갉아먹는 바이러스가 퍼져 인류는 멸종되고 갈라파고스에 도착한 사람들이 100만년이 지난 오늘날의 인류가 된다. 인류는 갈라파고스에 적응하면서 손이 퇴화되어 지느러미가 되고 두뇌는 헤엄치기 적당하게 유선형으로 바뀌면서 크기가 작아지고 만다. 

 

이러한 모든 일들의 기록자인 레온은 SF 소설가인 아버지가 생계는 책임지지 못하면서도 어머니를 업신여겼다고 생각하여 가출을 했고, 그 뒤에 해병대에 들어가 베트남전에 참전한다. 베트남에서 레온은 자기편 병사를 죽인 노파를 총으로 쏘아죽였인 후 그 마을에 살고 있는 남녀노소 모두를 무차별적으로 살육한다. 그 후 레온은 성병에 걸리고 병을 치료해주던 스웨덴인 의사가 자신의 아버지를 훌륭한 소설가로 알고 있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린 후 스웨덴으로 정치적 망명을 한다. 그곳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던 레온은 다윈호를 용접하다가 철판이 떨어지는 사고로 목숨을 잃고 그 후로 유령이 된다. 그는 인간들의 본성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저 세상으로 떠나지 않고 다윈호와 갈라파고스를 살펴보았으며 그것을 기록한 것이다. 

 

커트 보네거트는 '모방을 불허하는 이 시대 최고의 풍자문학가', '환상의 세계를 창조하여 인류의 멸망을 경고하는 주술사', '20세기 포스트모던 시대의 마크 트웨인' 등 갖가지 찬사를 받으며 무라카미 하루키 등 다른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갈라파고스>는 인간이 거대한 두뇌를 갖고 있으면서도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한 결과 이성이 없는 동물과 같은 상태로 퇴화되고 만다는 풍자적인 이야기이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레온'은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자신의 동료를 잃고 그 복수로 죄없는 마을사람 전체를 몰살시킨 미군 병사다. 레온은 인간의 본성이 과연 무엇인지 알기 위해 기꺼이 100만년을 유령으로 떠돌고 그 결과 최후의 인간들이 멸종되고 신인류가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본다. 

 

우수고객 초청행사가 있어 안성의 서일농원에 가게 되었는데 가는 차 안에서 읽었다. 서일농원은 <신들의 만찬>이라는 드라마 촬영 장소라고 하는데 장독이 2,000여개 늘어서 있는 것이 장관이었다. 그곳에서 나오는 음식은 달거나 감칠맛이 나지 않아 입맛에 맞는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남사당패의 공연까지 보고 오니 밤 10시가 넘었다. 피곤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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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 - 2005년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무삭제 개정판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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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옥진과 영실 사이에 묘도가 나고 그 묘도가 낳은 딸이 미실이다. 미실의 집안은 대원신통으로 색공지신(色供之臣)이었다. 

지소는 태종과 상간하여 세종을 낳았고 후에 입종갈문왕과 정식 혼인하여 태후가 된다. 세종은 진군의 위를 갖게 되며 진흥제와 형제가 된다. 지소태후는 세종이 성장하였으므로 여인을 알게 하였고 세종이 선택한 여자가 미실이었다. 세종은 미실과 상통한 후 그녀의 아름다움에 도취된다.

한편 미실의 이모가 되는 사도황후는 진흥제의 정식 부인으로 시어머니 지소태후의 심한 견제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미실에게 방책을 묻는다. 미실은 진흥제만이 사도황후의 지위를 보존해주리라 간하고 사도황후는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난다. 지소태후는 미욱한 사도황후에게 꾀를 내준 사람이 미실이었음을 알고 그녀를 궁에서 쫓아낸다. 미실은 울며 쫓겨나고 세종은 그날로부터 미실을 잃은 슬픔과 괴로움에 잠긴다.

쫓겨난 미실은 화랑 사다함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사다함이 전쟁에 나가기 전 둘은 혼인을 언약한다. 하지만 상사로 죽을 지경에 이른 세종을 구하기 위해 지소태후가 미실을 다시 불러들인다. 하지만 세종을 향한 미실의 마음은 이미 식어있었다. 미실이 궁으로 돌아갔음을 안 사다함은 깊은 슬픔에 잠기고, 자신을 사모하는 무관랑이 죽자 그 뒤를 따라 명을 다한다. 지소태후에 대한 깊은 원한을 갖게 된 미실은 사도황후의 권고에 따라 동륜태자를 유혹한다. 

어느 날 진흥제가 미실을 보고 한눈에 반하고 미실은 진흥제에게 색공을 바치게 된다. 이후 진흥제는 미실에 취해 미실 이외의 여자가 눈에 차지 않는다. 미실은 사다함의 동생 설원과 상간하여 설원을 손에 넣는다. 한편 동륜태자가 진흥제의 품으로 간 미실을 잊지 못해 때때로 미실에게 관계해줄 것을 요구하여 미실은 자신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했음을 알게 된다. 미실은 동생 미생에게 동륜태자를 여색에 빠지게 만들어 관심을 돌리도록 한다. 계교는 성공했으나 동륜태자가 보명에게 너무 깊이 빠진 나머지 보명궁을 지키던 개에게 물려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동륜태자의 죽음을 캐던 진흥제는 미생과 미실의 이름이 수시로 나오자 분노한다. 미실은 모든 것을 버리고 또 다시 궁 밖으로 나간다. 미실은 진흥제가 모든 진실을 알고 싶어하지는 않을 것이고, 시간이 흐른 후에는 자신을 다시 찾을 것이라 믿는다. 

세종이 다시 미실을 찾아와 함께 지내기를 간청한다. 세종은 미실의 마음 방향과는 무관하게 곁에 있을수만 있다면 족한 상태였다. 미실은 세종에 대한 미안함에 그렇게 한다. 진흥제가 미실의 예상대로 다시 찾아오고 미실은 세종과 함께 궁으로 돌아간다.

세월은 진흥제만 비껴가지 않았고 진흥제가 기력을 잃기 시작하고 마침내 자리보전하기에 이른다. 미실과 사도황후는 금륜태자를 색으로 회유하기로 한다. 하지만 막상 보위에 오른 금륜태자는 미실을 내치고, 미실은 속 깊은 앙심을 품는다. 금륜태자는 선대왕의 위업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다가 막상 자신의 뜻대로 세상을 다스리게 되자 색에 빠져들고 만다. 

세종에게는 문노라는 강직한 화랑이 수하에 있었다. 문노는 미실이 남자를 미혹하여 독을 뿜는 존재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세종에 대한 의리와 충성심으로 미실이 금륜태자를 폐하는 거사에 참여한다. 금륜태자는 폐위되어 유폐되고 진평이 제위에 오른다. 미실은 진평제에게 색공을 올린 후 궁을 떠난다. 떠나는 미실을 따른 것은 설원이다. 미실이 병에 걸려 오랫동안 앓다가 꿈을 꾼 후 가까스로 몸을 추스린다. 미실은 설원이 남은 생을 자신에게 주고 생을 마감했음을 알게 된다. 설원의 관 뚜꼉을 덮는 미실은 법구경의 한 구절을 읊조린다.

 

이 집 지은 사람 이제 보았으니

너는 다시 집을 짓지 마라

너의 모든 서까래는 부서지고

기둥과 대들보도 내려앉았다

이제 내 마음을 짓는 일 없거니

사랑도 욕망도 말끔히 사라졌다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미실이라는 여인이 김별아의 손 끝에서 되살아났다. 유가적 성도덕이 채택되기 이전의 미실은 철저히 현세적이고 즉자적인 가치관에 충실하다. 사실 소설 속 미실이 독자에게 시사하는 바는 그다지 새롭지 않다. 김원일은 "여성 인권 신장에 한 켜를 보탠 혁신적 성과"라 하였고, 성석제는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자유혼, 모성의 관능을 느끼게 해준다"고 하였지만 나는 이러한 평가에 동의할 수 없다.  

미실의 행적은 단순히 말하자면 방중술을 익힌 총명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여색을 무기로 한바탕 신명난 삶을 산 궤적이며, 그 궤적이 공교롭게도 왕실과 닿아 있었던 까닭에 권력을 능히 손아귀에 쥔 과정이다. 이러한 미실의 삶이 여성 인권이나 자유혼과 어떤 연관을 갖는지는 사실 의문이다. 

심사평을 쓴 소설가와 평론가들은 미실의 삶을 자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으로 해석하나 미실의 삶은 제한된 선택권 중 가장 권력과 근접한 것을 택해온 삶에 다름 아니다. 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사다함을 미실이 버리는 장면이야 말로 이를 웅변한다. 그녀는 자유로웠던 적도 없고 무언가로부터 해방된 적도 없다. 다만 권력과 색욕이 시키는 바에 충실했을 뿐이다. 유교적 성도덕이 채택된 이후의 여인들과도 다른 점이 없다. 그 이후로도 왕권의 주변에서 색을 무기로 권력을 좌지우지하던 여성은 존재했고, 그런 여성에 대해 여성인권이니 자유혼이니 하는 것은 우습다. 남성이 가진 것을 여성이 좌지우지 할 수 있었다고 하여 그것이 곧 여성인권이나 자유혼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조악한 페미니즘이다. 

작가는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서문에 나오는 미학에 충실하다. "아름다운 사물에서 추한 의미를 찾아내는 사람은 아무런 매력 없이 타락한 인물이다"로 시작되는 그 현세적이고 즉자적인 미학 말이다. 

그래서 미실이 마지막으로 설원을 묻고 법구경을 읊조리는 장면은 뜬금 없다. 결국 미실이 깨달은 것이  공(空)이란 말인가. 알 수 없는 결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실이라는 인물을 재구성해내는 작가의 솜씨는 발군이다.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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