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4
서머싯 몸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화자인 '나'는 소설가로 어느 정도 명성을 얻은 인물이다. 화자에게는 엘리엇 템플턴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는 미술 거간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한편 사교계에 선을 대고 있다. 본래는 미국인이지만 영국과 프랑스에 체제하며 귀족주의적 태도를 견지하는 등 속물적인 인물이지만 남을 돕기 좋아하는 일면도 있다.

'나'는 엘리엇 템플턴, 그의 여동생 루이자, 그리고 그녀의 딸 이사벨과 친교를 맺게 된다. 엘리엇과 루이자의 걱정은 딸 이사벨이 래리라는 청년과 약혼을 한 상태인데 그가 도통 직업을 얻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래리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고깃덩이처럼 변해버린 전우의 시체를 보고 삶의 근간이 흔들리는 경험을 했었다. 그 후로 삶의 목적이라든가 악이 존재하는 이유 등에 관한 해답을 얻고자 한다. 이런 이유로 래리는 프랑스 파리로 떠나고 만다. 엘리엇은 자신의 조카가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청년과 약혼했다는 것이 못내 못마땅했다. 

 

엘리엇을 만나러 루이자와 이사벨이 파리로 온다. 래리와 이사벨은 파리에서 서로의 견해 차이를 확인한 후 파혼에 이른다. 래리는 자신이 인생의 해답을 얻기 위해 정진하면서도 이사벨과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사벨은 물질적인 풍요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얼마 후 이사벨은 대부호의 아들 그레이와 결혼하고 래리는 프랑스의 탄광과 수도원, 독일의 농장,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떠돌며 구도의 길에 나선다.

 

마냥 계속될 것만 같았던 증권시장의 상승세가 1929년 대공황으로 폭락한다. 그레이는 파산하고 루이자 역시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는다. 엘리엇은 대공황 직전 교황청의 조언에 따라 주식을 모두 금으로 바꾼 덕에 훨씬 부자가 된다. 엘리엇의 권고로 그레이와 이사벨은 파리로 이주한다. 하지만 그레이는 파산의 여파로 신경쇠약과 극심한 두통을 얻게 되고 되고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래리는 화자인 '나'와 우연한 만남을 몇 차례 갖는다. 래리는 자신이 신비주의와 가톨릭 등 해답을 찾기 위한 경험과 공부 등을 이야기한다. 모두가 파리에 머무르던 어느 날 소피 맥도널드가 나타난다. 그녀는 래리, 이사벨, 그레이와 함께 자란 아가씨이다. 그녀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교통사고로 남편과 아이를 잃고 그 후로 심각한 타락을 거듭하다가 추문을 견디다 못한 시댁에서 쫓겨나 유럽에서 생활비를 얻어 쓰는 처지였다. 그녀는 알코올과 마약에 중독된 상태였고 아무하고나 잠자리를 가졌다. 

래리는 어렸을 적 소피와 시를 읽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녀의 내면에 숭고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 래리는 결혼을 결심한다. 이 소식은 이사벨에게 충격을 가져다 준다. 이사벨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나'는 결혼을 반대하는 이사벨의 견해에 동조하지 않는다. 또한 그녀가 물질적인 풍요 때문에 래리를 버렸으면서도 겉으로는 자신이 대단한 것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피해자인척 했고 래리에 대한 욕정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사벨은 소피가 알코올 중독에서 헤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자신의 집에 초대한 후 술병을 남겨 놓는다. 그녀의 의도대로 소피는 술을 마신 후 결혼식 3일 전에 잠적하고 만다. 

 

래리는 인도로 여행을 떠나고 그곳에서 흰두교와 구도자들에게 매료된다. 5년간의 인도 체제를 마치고 돌아온 파리에서 래리는 소피가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나'와 래리는 경찰서에 불려가 신원확인을 해준다. 래리는 자신이 그동안 공부한 내용을 정리하여 한 권의 책을 발간한다. 그 책은 성공한 인물들에 관한 에세이였다.

래리는 인도 여행을 계기로 모든 사람은 자신의 내부에 신적인 성스러움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고 이제 미국으로 건너가 그런 삶을 살겠다고 말한다. '나'는 그런 래리의 삶이 과연 얼마만큼 세상에 변화를 가져올지 의문시하지만 래리는 아주 작은 변화라 할지라도 수면에 파문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이사벨과 그레이 역시 엘리엇이 죽으면서 남겨준 유산으로 미국에서의 삶을 다시 시작한다. 래리의 미국행을 전해 들은 이사벨은 자신이 이제 영원히 래리를 잃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인간의 굴레에서>,<달과 6펜스>와 함께 서머셋 몸의 3대 장편소설로 꼽히는 <면도날>은 1944년도에 발간된 소설이다. 작품 제목인 <면도날>은 카타 우파니샤드에의 "면도칼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기는 어렵나니, 그러므로 현자가 이르노니, 구원으로 가는 길 역시 어려우니라" 에서 인용된 말이다. 

소설의 중심 인물은 역시 래리이다. 그는 전쟁을 통해 죽음을 목격한 후 인생의 의미에 관해 심각한 고민에 빠지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동서양을 여행하고 많은 공부를 한다. 작가는 소설에서 미국을 유럽과 동양의 중간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제3의 가능성을 지닌 나라로 설정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패권국이 되기 전, 미국은 양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물질적인 면에서는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정신적인 가치관에 있어서는 심각한 위기를 겪게 된다. 유럽의 카톨릭이라는 완결된 형식의 가치관은 스스로 거부한 상태였고 동양적인 가치관 역시 마련할 여유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래리처럼 전쟁과 죽음을 경험한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겪은 일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없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엄청난 경험을 한 래리는 따라서 스스로 답을 찾는 여행을 할 수밖에 없다. 

물론 래리는 완결된 형식의 해답을 얻지는 못한다. '도를 아십니까'라는 역전 앞 사기꾼들의 질문에 '알고 있다면 그것이 도이겠느냐'라고 되물었다는 말처럼 한 권의 소설 속에서 인생의 근원적 질문에 대한 해답이 제시될 수는 없다. 하지만 래리가 결국 동양적인 선(善) 사상을 받아들이는 부분은 역시나 서양적인 선입관이 작용된 바가 크다고 느낀다. 이러한 선입관이 결국 서양은 물질적인 면, 동양은 정신적인 면이라는 잘못된 이분법적 구분을 낳고 제국주의적인 침략과 그 결과도 용인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는데 일견 타당한 지적이다.

작품 속 인물들은 각자 추구하는 바에 따라 인생을 살아간다. 래리처럼 인생의 근원적 질문에서 해답을 얻고자 노력하는 인물도 있지만 이사벨과 같이 물질적인 풍요와 욕정을 동력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엘리엇은 사교계와 귀족사회를 자신의 세대에서 다시금 부활시키고자 하고 그레이는 직업을 통해 성취감을 맛보고 싶어한다. 작가는 그들 모두가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고 말한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766818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리키 단편선 범우문고 97
막심 고리키 지음 / 범우사 / 200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o 스물 여섯 사내와 한 처녀

 

음침한 지하실의 지저분한 환경 속에서 크렌젤리를 만드는 스물 여섯 명의 사내들은 빵을 얻으러 오는 타냐를 연모하고 있다. 모두들 그녀가 왔다 가면 유쾌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자신의 타냐' 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흰 빵 굽는 작업장에 멋쟁이 사나이가 나타난다. 그는 말쑥하게 차려입고 여자들을 후리는 것을 업으로 삼는 자였다. 크렌젤리 작업장에서 뻐기던 그에게 한 사나이가 타냐만은 넘어오게 할 수 없을 것이라 말한다. 오기가 생긴 멋쟁이 사나이는 정해진 기한 내에 타냐를 넘어오게 만들겠다고 큰소리친다. 그의 말이 사실임이 증명되자 스물 여섯 명의 사내는 타나에게 욕설을 퍼붓고 비난한다.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하던 타냐는 곧 자세를 가다듬더니 사내들에게 더러운 불량배라 욕을 한 후 두번 다시 크렌젤리를 얻으러 오지 않았다.

 

o 에밀리얀 필랴이

 

돈도 떨어지고 일자리도 없는 '나'와 에밀리얀 필랴이는 제염소(製鹽所)에라도 가서 일을 얻어야 할 판이다. 우크라이나 양치기들에게서 담배와 베이컨을 넣은 빵을 얻어 먹고 피운 후 에밀리얀 필랴이는 한 가지 이야기를 해준다.

에밀리얀 필랴이가 폴바타에 있을 때 주인의 돈을 60루블쯤 꿀꺽한 죄로 재판을 받고 석달 간 강제노역을 한다. 그는 형기를 마치고 난 다음에도 불법적인 일을 하는 파벨 페트로프 등과 어울리다가 자신이 일하던 상점 주인이 수금해오는 날 강도짓을 하기로 계획을 세운다. 밤중에 다리에 엎드려 쇠몽둥이로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는데 한 소녀가 울면서 다가왔다. 그 소녀는 자살하기 위해 다리로 온 것이었다. 에밀리얀 필랴이는 열심히 소녀를 설득해 자살을 만류한다. 소녀는 에밀리얀 필랴이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강도짓은 유야무야 되고 만다. 자초지종을 들은 파벨 페트로프는 에밀리얀 필랴이를 비웃고 쫓아낸다. 

 

o 첼카슈

 

부두 부근에서 불법적인 짓을 일삼는 첼카슈가 시골 출신의 가브릴라를 꼬드겨 도둑질에 가담시킨다. 가브릴라는 농촌 출신으로 처음엔 도둑질에서 걸려 신세를 망치게 되지나 않을까 겁을 냈으나 막상 도둑질이 성공하고 첼카슈가 200루블을 나누어줄 테니 한 탕 더하자는 말에 마음이 바뀐다. 첼카슈가 40루블을 보수로 나누어주자 가브릴라는 별안간 첼카슈에게 덤벼들더니 나머지 돈도 모두 자기에게 달라고 애걸복걸한다. 둘은 돈 때문에 서로 다투고 가브릴라가 모질게 던진 돌에 첼카슈가 머리에 큰 부상을 입는다. 쓰러진 첼카슈에게 달려들어 용서를 빌던 가브릴라는 첼카슈가 던진 돈을 비굴하게 주워든다. 둘은 각기 반대 방향으로 걷고 비와 물보라가 둘이 머물렀던 흔적을 모두 지워버려 그들 사이에 벌어졌던 비극도 추억할 수 없게 만든다.

 

o 마카르 추드라

 

마카르 추드라가 로이코 조바르라는 젊은 집시 이야기를 해준다. 조바르는 용감무쌍하고 무엇도 귀중히 여기지 않는 사나이였다. 마카르 추드라가 다닐로 일행과 함께 부코비나에서 유목할 때의 일이다. 다닐로에게는 랏다라는 아름다우면서도 도도한 딸이 있었다. 랏다에게 반한 한 부호가 감언이설과 막대한 부로 꼬드겼지만 랏다는 비웃으며 거절할 뿐이었다.

조바르가 다닐로 등이 머물던 곳에 찾아온다. 조바르가 뛰어난 바이올린 솜씨를 뽐내며 노래를 부르지만 랏다는 조바르를 무시하고 도도하게 굴 뿐이었다. 조바르는 자존심이 상해서 랏다와 같이 사나운 말에는 강철 재갈을 물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랏다의 채찍에 걸려 넘어졌을 뿐이다. 상심한 조바르가 혼자 앉아 있는데 랏다가 다가와 자신 역시 조바르를 사랑한다면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릎 꿇고 청혼한다면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

다음 날 조바르는 랏다에게로 간다. 조바르는 자신이 랏다의 앞에 무릎을 꿇고 청혼할 것이라고 공언한다. 그러자 랏다가 손으로 자기 발을 가르켰고 사람들은 조바르가 랏다 앞에 무릎 꿇는 것을 보기가 어쩐지 창피하기도 하고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조바르는 랏다가 자신에게 보여준 것과 같은 강철 심장이 있는지 보겠다는 말을 한다. 잠시 후 랏다는 쓰러졌고 그녀의 가슴에는 조바르의 구부러진 비수 자루가 꽂혀 있었다. 랏다의 아버지 다닐로가 비수를 들어 조바르의 등을 찔렀고 조바르 역시 죽고 만다.

이야기를 다 들은 나는 조바르와 랏다를 떠올린다. 그들 두 사람은 밤의 어둠 속에서 두둥실 소리 없이 떠다녔지만 미남 로이코는 도저히 도도한 랏다와 어깨를 견줄 수 없겠다고 생각한다.

 

<스물 여섯 사내와 한 처녀>는 더럽고 비참한 환경 속에서 허구의 미를 추구하는 사내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타냐가 '얼굴이 예쁘기' 때문에 좋아하면서 그녀의 내면도 아름다울 것이라고 마음대로 상상한다. 물론 다른 비교 대상이 나타나지도 않으므로 그녀가 과도한 숭배를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애써 모른 척 한다. 말쑥한 녀석이 타냐를 꼬시자 그들이 마음대로 지어낸 타냐의 이미지가 산산조각난다. 화풀이는 고스란히 타냐의 몫이 되고 타냐는 그들에게 더러운 불량배라고 욕한다. 

<에밀리얀 필랴이>는 한 사내가 살인강도짓을 하러 갔다가 엉뚱하게도 한 소녀의 목숨을 구한 이야기이다. 파벨 페트로프가 강도짓에 실패한 에밀리얀을 비웃는다. 비웃음의 이유는 자명하다. 에밀리얀은 그 후로 20년간 부랑자와 같은 삶을 살고 있고, 현재도 제염소에서 일할 처지까지 전락했다. 하지만 에밀리얀은 그때의 일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첼카슈>에서 흥미로운 인물은 첼카슈가 아니라 가브릴라이다. 그는 도둑질을 하는 동안에는 겁에 질려 어쩔줄을 몰라하다가 막상 돈이 생기자 광분을 하며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려 한다. 막심 고리키가 가브릴라를 농민으로 설정한 것은 어쩌면 혁명 시기에 농민 계급이 혁명에 적극 투신하지 않고 역관계를 저울질하는 속성을 나타내려고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카르 추드라>는 다분히 자기모순적인 이야기이다. 조바르는 랏다를 일컬어 사나운 말과 같다면서 강철 재갈을 물려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바르가 도리어 랏다에게 굴복하게 되자 랏다를 죽이고 만다. 그는 랏다에게 예속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조바르는 자유/사랑의 구도 속에서 자유를 택한 것이 아니라 지배/예속의 구도 속에서 죽음을 택한 것이다. 

 

막심 고리키의 혁명적인 작품은 출판이 금지된 시기, 상호 연관성이 희미한 그의 초기 단편들이 김영국의 조악한 번역을 만나 막심 고리키의 소설이 난해하게 읽히는 놀라운 결과를 빚어낸 책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7657483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돛배를 찾아서 - P
김남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6년 9월
평점 :
절판


진부령 골짜기에서 한 남자의 주검이 발견된다. 그는 윤도균이라는 이름의 무명 동양 화가였다. 유류품으로는 <한국 청년 화가 공모전> 전시회 포스터 외에는 특이할 만한 것이 없었다.

사건 조사에 착수한 서병진 형사는 버스 기사로 부터 남자가 1월 16일 진부령을 통과하는 버스를 탔다가 휴게소에서 쉰 후 줄곧 뒤쫓아 오던 빨간색 소형차로 옮겨 탔다고 진술한다. 빨간 소형차 운전자가 곧 유력한 용의자가 되고, 서병진 형사는 윤도균의 거주지인 서울로 출장 수사를 나온다.

윤도균의 주변을 조사하기 시작한 서병진 형사는 그가 강원도 산골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로 와서 화가의 꿈을 키워 왔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 최근에는 호구지책으로 차재용이 운영하는 <서일 갤러리>에 덤핑으로 그림을 처분해왔다는 점을 알게 된다. 윤도균은 한때 <숙 화랑>의 나숙미 대표로부터 기대를 받아 제대로 된 그림을 그려달라는 부탁과 함께 은근한 추파도 받았던 것으로 보였다. 또 그가 입고 있던 스웨터 역시 나숙미가 손수 짜서 선물한 것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윤도균은 제대로 된 그림을 그려주지 않았고 패배자의 어두운 의심 때문에 관계는 발전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또 윤도균은 화단의 원로인 수경 화백의 화실을 드나들었던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그 목적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밝혀지지 않는다.

한편 <한국 청년 화가 공모전>의 대상작은 차재용의 동생 차재만이 수상했다. 차재만은 수경 화백의 사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 차재만이 수경 화백의 화실에서 비서로 일했던 희숙과 애틋한 관계로 발전한다. 희숙은 수경 화백에게 2년간 몸을 허락하는 댓가로 일정한 돈을 받아오다가 최근 윤도균이 자신들의 정사 장면을 훔쳐본 사건을 겪은 후로 수경 화백에게 '팽'을 당한 처지였다. 희숙은 앙심을 품고 수경 화백의 뒷조사를 시작한다. 희숙은 수경 화백의 그림 복제품이 존재한다는 점을 알게되고 그런 내용이 차재만에게 편지로 낱낱이 보고 된다.

차재만이 6개월간의 파리 채제를 마치고 돌아온 날 희숙과 호텔에 들고 나오는 순간 차가 둘을 덮친다. 희숙이 즉사하고 차재만 역시 중상을 입는다. 서병진 형사는 빨간 소형차가 나숙미의 이웃 차량이라는 것을 알아내고 그녀를 체포하려 하지만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다. 병실의 차재만 역시 사라지고 편지가 한 통 배달된다.

 

차재만은 형님 차재용의 권고로 그림을 시작하지만 번번히 국전에서 미끄러지던 중 나숙미와 관계를 갖게 된다. 마지막 출품으로 생각하고 낸 <한국 청년 화가 공모전>에서 뜻밖에도 대상을 받은 차재만은 주최를 맡은 G일보로 갔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이 낸 그림이 아니었던 것이다. <망망대해>라는 제목의 그 작품은 윤도균이 나숙미의 요청에 그려준 그림이었는데 나숙미와 관계가 흐지부지 되면서 잊혀진 작품이었다. 나숙미는 <한국 청년 화가 공모전>에 그 그림을 차재만의 이름으로 출품했고 대상에 선정된 것이다.

문제는 윤도균이 수상 작품 전시회에 와서 자신의 작품을 알아본 것에서 시작된다. 차재만은 윤도균에게 모든 내막을 실토하고 선처를 호소했지만 윤도균은 신문사에 사실을 밝히든가 5천만원을 댓가로 지불하든가 양자택일할 것을 종용한 후 고향으로 떠난다. 나숙미는 윤도균을 쫓아가 애원을 했지만 말다툼으로 번지고 진부령 고개 한 복판에서 윤도균을 차에서 내리게 한다. 그 순간 살의가 일어 나숙미가 윤도균을 들이받아 살해한 것이다.

사건을 전해들은 차재만은 괴로워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희숙을 만나 구원을 얻었다는 감정에 사로잡혀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귀국 후 호텔에 들어간 둘을 본 나숙미가 희숙과 차재만을 차로 들이받아 사망케 한 것이다.

 

작가 김남은 소설가로 등단했으나 주로 TV드라마 근본 작업을 더 많이 한 작가이다. <수사반장>을 비롯해 <김형사, 강형사>, <제5열>, <전원일기> 등의 극본을 맡았다. 파주에 출장갈 일이 있어 돌아오는 길에 오랜만에 파주출판단지 안에 있는 <보물섬>에 들렀다가 들고 와서 읽었다. 

연말이다. 오늘은 영하 14도였다고 한다. 내일부터 말일까지 단 하루도 빼지 않고 회식이 있다. 괴롭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7640748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어수프
야마다 에이미 지음, 김난주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소설을 쓰고, 놀기 좋아하고는 주인공은 따끈하고 달콤한 것을 추구하듯 남자들을 만나고 다닌다. 그런 생활에 만족해하던 어느 날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이번에는 마음까지 얽혀들었고 남자에게 집착하고 질투심을 느끼기도 한다. 결국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알고 지내던 남자 친구의 권유에 따라 '나'는 발리섬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 도착한 후 택시 기사를 비롯해 여러 남자들과 관계를 맺는다. 호텔 종업원인 와양과 관계를 맺게된 후에는 그와 조건 없는 상태를 유지한다. 차츰 '나'는 일본에서의 괴로웠던 일을 잊게 된다.

와양에게는 친구 유진과 그의 동생 토니가 있었다. 유진은 호주 스폰서를 갖고 있는 동성애자였고 토니는 벙어리였다. 토니는 '나'와 와양이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토니가 어느 날 '나'의 손을 이끌어 데리고 가 낙조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의 얼굴에서는 환희의 표정이 떠올랐을 것이고, 토니가 원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음을 깨닫는다. 토니는 '내'가 와양에게서 얻은 성적 만족으로 표정이 변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다른 수단을 통해 '나'의 표정을 변화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가룽간 축제 기간 중 유진의 스폰서가 발리섬에 온다. 토니는 유진과 스폰서가 행위에 몰두해 있는 동안 방갈로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나'는 그런 토니를 위로한다. 

신들을 배웅하는 구닝간 기간이 오기 직전 토니는 죽는다. 유진은 토니가 귀가 들리지 않아 큰 파도를 타지 말라는 자신의 말을 듣지 못했다며 오열한다. '나'에 대한 사랑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토니가 인어같다고 생각했기에 그가 죽어 바다에 녹아 <인어수프>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한다.

 

1987년에 씌여진 이 소설에서 야마다 에이미는 '시작은 늘 육체, 그런 후 마음' 이라고 말한다. 주인공은 육체적인 쾌락만을 추구하다가 한 남자와 마음이 얽혀들고 그로 인해 소유욕과 질투심에 사로잡혀 괴로워한다. 그녀가 도피처로 택한 곳은 신들의 나라 발리다. 인도네시아 본토와는 달리 대부분이 흰두교도인 그곳에서 주인공은 아무런 조건 없이 남자들과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와양과 토니를 만난다. 와양은 주인공이 일본으로 돌아갈 것을 알지만 언제 돌아가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묻지 않는다. 단지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소개시켜줄 뿐이고 그들은 주인공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준다. 한편 토니는 주인공을 사랑하면서도 원하는 것은 단지 환희의 표정을 보는 것이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인 발리에서 몸과 마음에 대해 생각한 주인공은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다.

 

발리섬, 특히나 우붓에 가면 일본인들이 무척 많다. 듣기로 몽키포레스트 거리의 건물은 소유주가 대부분 일본인이라 했다.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이번엔 호주인들 천지다. 그들은 파도를 타기 위해 발리로 온다. 

작년 10월경 발리 우붓에서 일주일을 지냈는데, 가보면 왜 그곳을 신들의 나라라고 하는지 알 수 있다. 집집마다 신들을 위해 올리는 향불과 제물이 놓여 있고 거리는 향냄새로 가득하다.

거품경기가 꺼지기 직전에 씌여진 이 소설은 몸과 마음의 문제에 집중할 수 있었던 시기의 일본인 여성 이야기이다. 내일 일본 대선에서 자민당의 압승이 예상된다고 한다. 이제 좀 더 집단적인 문제가 일본의 개인을 괴롭힐 것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76114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열린책들 세계문학 46
존 르 카레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60년대 영국 정보부의 베를린 지부를 담당하는 리머스는 카를 리메크가 장벽을 통과하기 직전 사살 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것으로 리머스가 담당하던 동독 내 영국 첩보망은 괴멸되었고, 리머스는 영국으로 소환된다.

현장 업무에서 제외된 리머스는 금융국에 배치되어 경리 업무나 다름 없는 일을 배정받고, 그때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금융국에서 쫓겨난 리머스는 도서관 사서 보조로 취칙한다. 리머스의 무감동한 일상에 리즈라는 아가씨가 끼어든다. 리머스는 그녀에게서 '하찮은 것에 대한 관심과 애정', '평범한 생활이 가치 있다는 믿음' 등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리머스는 리즈에게 자신이 떠나게 되면 절대로 찾지 말라는 말을 한다.

리머스가 식료품점 주인과 사소한 다툼 끝에 그를 폭행하고 3개월간 수감된다. 출소한 리머스에게 정보를 사겠다는 자가 접근한다. 그는 리머스의 과거에 대해 1만 5천 파운드, 추가 질문에 대해 5천 파운드를 제시한다. 리머스는 1만 5천 파운드에 대해서만 응낙한다.

 

그들은 리머스를 네델란드로 데려가 심문을 시작한다. 리머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이야기하는 중간 중간 정보부의 책임자인 관리관의 언급들이 떠오른다. 리머스가 어떻게 이야기 해야 그들이 관심을 갖게 되는지, 그리고 함정에 빠지게 될는지에 대한 언급들이다. 

리머스와 영국 정보부는 동독 첩보망이 문트에 의해 괴멸되었으므로 그에게 복수하고 싶어했다. 리머스는 거짓 전향을 위해 그동안 술을 마시고 민간인을 폭행했으며 정부에 불만을 품은 듯 행동했던 것이고, 그를 감시하던 자들이 마침내 입질을 시작했던 것이다.

심문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영국 내에서 리머스가 횡령 혐의로 수배 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사전에 합의된 사항이 아니었으므로 리머스는 당혹해한다. 심문하던 자들은 리머스를 동독으로 데려가 추가 질문을 하고 싶어했고 리머스가 이를 거절할 경우 의심을 사게 될 것이었다.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동독으로 간 리머스를 심문하게 된 자는 피들러였다. 그는 문트 다음가는 권력자였다. 피들러는 세심하게 리머스에게 질문을 던졌고 리머스 역시 주의 깊게 답변한다. 

리머스는 자신이 어떻게 카를 리메크를 포섭한 후 돈을 지불했는지, 첩보망이 붕괴된 후 금융국에서는 어떤 일을 했는지 답변한다. 피들러가 진정 알고 싶어했던 사항은 독일 내 또다른 배신자가 누구였는가 하는 것이었다. 살해당한 카를 리메크 보다 윗선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정보 역시 새어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리머스는 자신이 베를린의 책임자였고 자신이 모르는 제3의 정보제공자는 있을 수 없다고 단호히 진술한다. 피들러는 리머스가 자존심 상해 하는 모습에서 진실성을 발견했다고 믿는다. 

 

피들러는 리머스의 진술을 바탕으로 영국정보부가 그려준 대로 그림을 그린다. 문트는 영국에서 첩보 활동을 하던 중 두 사람을 살해했다. 그 사건으로 영국 정보부는 문트를 수배하지만 문트는 너무나 손쉽게 동독으로 탈출한다. 피들러는 문트가 당시 영국 정보부에 체포당한 후 포섭당했다고 믿는다. 

그 근거는 중동 쪽에서 영국정보부에 고급 정보를 팔려고 했을 때 영국 정보부가 단호히 거절한 점이다. 이미 갖고 있는 자료를 살 이유는 없는 것이다. 또 리머스가 예치한 돈을 외국은행에서 누군가가 찾아간 시점과 문트가 출장간 시점이 일치하고 있었다. 피들러는 문트를 고발한다. 사문회가 열리고 피들러의 진술이 시작된다. 문트는 이제 조국의 배신자로 사형을 받기 직전이다. 모든 것이 영국 정보부와 리머스의 계획대로 진행되는 듯 했다. 그들은 문트를 제거하기 직전이다.

문트의 변호인 측이 반격에 나선다. 그들은 증인으로 영국에서 리즈를 데려온다. 아무것도 모르는 리즈의 입을 통해 리머스가 스파이 업무를 계속하고 있었다는 정황을 끌어낸다. 리머스는 식료품점 주인을 때리기 직전 리즈에게 작별인사를 했고, 그가 떠난 후에는 제3자가 방세를 갚아주고 리즈에게 지원을 해주었다. 모든 것이 영국정보부의 계획대로라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계획은 실패한다. 문트는 지위를 공고히 하게 되었고 피들러가 처형당하게 된다.

 

구금되어 있던 리즈를 누군가가 풀어준다. 그를 따라 나가자 리머스가 차 옆에 서 있다. 운전수는 그들이 어떻게 서독으로 넘어갈 수 있는지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들을 풀어준 것은 문트였다. 

리머스가 알고 있는 계획은 문트를 영국정보부의 첩보원으로 몰아가 그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리머스가 알지 못했떤 영국 정보부의 또 다른 계획은 문트에 대한 동독 내 의심을 말끔히 제거해주고 덧붙여 피들러까지 제거하는 것이었다. 문트에 대한 피들러의 의심은 모두 사실이었던 것이다.

서독으로 넘어가는 도중 계획보다 일찍 서치라이트가 둘을 비추고 리즈가 총에 맞아 장벽에서 떨어진다. 총성이 멈춘다. 리머스가 넘어가도록 배려하는 것 같다. 리머스는 동독 쪽으로 떨어진 리즈의 시신 쪽을 택한다.

 

------

 

"내가 지금껏 읽어온 스파이 소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제3의 사나이>의 작가 그레이엄 그린의 말이다. 이론의 여지가 없다. 스타일리쉬한 문체와 분위기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그것에 비견할만 하고, 장르 문학이 가질 법한 한계에 머물지도 않았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리머스는 돌아가지 못한다. 자신이 제거 대상이라고 여겼던 문트가 사실은 영국에 포섭된 고급 정보원이었고 자신과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 리즈가 영국 정부에 의해 소모품처럼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리머스가 돌아갈 곳은 없었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마지막 장의 제목에서 다시 한번 사용되는데 그 장의 제목은 <추운 바깥에서 돌아오다> 이다. 마지막 순간 리즈는 '약속과 달리' 사살되었고 -그녀는 민간인이다-, 리머스는 여전히 필요한 장기말이었으므로 사격이 잠시 그치고 도망갈 시간이 주어진다. 하지만 리머스는 돌아갈 곳을 잃었다고 생각했고 리즈와 운명을 같이 한다. 

그렇다면 소설에서 이야기 하는 '추운 나라'는 소련과 동구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냉정한 세계, 곧 냉전세계와 그에 파생하는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를 지칭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에 반대되는 세상은 곧 피들러나 리즈가 추구하는 세계, 진실된 세계일 것이다.

리머스는 죽기 직전 유리창을 통해 쾌활하게 손을 흔들던 아이들의 모습을 본다. 그 모습은 리머스가 아직 스파이로 활동하며 냉전세계의 논리를 내면화했던 시기에 본 모습이다. 과속으로 추월한 후 본 아이들의 모습과 리즈가 제시한 '하찮은 것에 대한 관심과 애정', '평범한 생활이 가치 있다는 믿음' 등이 추운 나라와 대비되는 나라이다. 리머스는 죽기 직전 돌아왔다. 

소설은 피들러, 리즈, 리머스를 모두 죽는 운명에 처하게 만든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냉전세계의 논리는 일개 개인이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훌륭한 소설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7608614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