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 현상들 민음사 모던 클래식 40
리브카 갈첸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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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한살의 정신과 의사 레오 리벤슈타인은 12월 어느 날 자기 아내와 똑같이 생긴 여자가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본다. 그 여자는 아내 레마와 겉모습은 똑같았지만 미묘하게 달랐고, 개를 데리고 들어오기까지 했다. 레마를 사칭한 여자 때문에 당황스럽던 차에 병원에서 호출이 온다. 병원으로 달려간 레오는 남자 간호사와 대화를 나눈 후 레마가 그 간호사와 불륜 관계는 아니었는지 의심이 든다. 그리고 자신이 돌보던 환자 하비의 실종과 레마의 부재에 어떤 인과관계는 없는지 생각한다.

하비는 분열형 성경장애 환자로 자신이 기상 현상을 통제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여겼다. 그는 왕립 기상확회에서 <뉴욕 포스트>지 6면 기사를 통해 비밀 지령을 내리면 전국 각지로 달려가 임무를 수행한다고 말했다. 레마가 하비의 치료에 관해 한 가지 아이디어를 내는데, 레오 역시 왕립 기상학회의 비밀요원이며 고위급 요원인 기상학자 츠비 갈첸의 지령을 하비에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지령의 내용은 하비가 뉴욕 내에서만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이 연극은 꽤나 효과를 거두는 듯 했었다. 하지만 하비는 얼마 후 또다시 실종된다.

레오는 사라진 레마를 찾기 위해 아르헨티나로 가서 레마의 어머니 마그다를 만나고 그곳에서 잠시 머문다. 레오는 자신이 레마의 과거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었다는 점을 깨닫는다. 그리고 어쩌면 레마에게 전남편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레오는 츠비 갈첸이라는 인물이 레마의 실종에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그의 논문들을 읽어나간다. 그리고 논문 중간 중간 플라톤이나 가우스 등이 인용된 부분이 어떤 단서가 아닌지 의심한다.

사라진 하비에게서 연락이 온다. 그는 츠비 갈첸과 이메일을 주고받았다고 했다. 레오 역시 츠비 갈첸에게 이메일을 보내자 답장이 온다. 하지만 레마의 실종과 관련해서는 냉담한 반응이었다.

왕립 기상학회에서 함께 일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오고, 이에 응낙한 레오는 파타고니아로 떠난다. 레마를 사칭한 여자 역시 레오를 찾아 파타고니아로 온다. 그녀는 자신이 레마가 맞다는 무수한 증거를 들이밀고 츠비 갈첸이 이미 사망한 사람이라는 점을 이야기하지만 레오는 요령부득일 뿐이었다. 레마는 결국 자신이 진짜 레마가 아니라고 선언한다. 레오는 레마는 사라졌지만 레마를 사칭한 여자와 함께 생활할 수밖에 없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가짜 레마와의 삶이 진짜인 듯한 기분을 느낄 것이라고 예감한다.

 

작품의 원제는 이다. 작품 속 츠비 갈첸은 리브가 갈첸의 아버지로 실제 기상학자였으며 작품 속에 인용된 논문들도 실제로 발표된 논문들이다.

리브가 갈첸은 다니엘 파울 슈레버 판사의 회고록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에서 작품의 모티프를 얻었다고 한다. 슈레버 판사는 카그라스 증후군, 즉 자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나 동물, 물건이 똑같이 생긴 다른 것으로 감쪽같이 바뀌었다는 망상에 빠지는 병에 걸려 자신만이 유일한 인간 생존자이고 나머지는 모두 유령과 망령들이라 믿었다고 한다.

작품은 또한 루이지 피란델로의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에서 다분히 영향을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작품을 관통하는 작가의 의문은 츠비 갈첸의 논문에 인용된 플라톤과 관련된 문구에서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감지하고 있는 것은 진짜 세계의 이미지일 뿐임을 최초로 천명한 사람은 분명히 플라톤이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인지하고 감응하는 이 세계가 진짜 세계가 아니라 단지 이미지, 혹은 투사일 뿐이라면 진짜 이미지, 곧 이데아는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당도할 수 있는가.

레오는 아내 레마가 어느 날부터 진짜가 아니라고 느끼는데 그 순간부터 레마에 대한 미화가 시작된다. 실제 레마의 행동거지 하나 하나를 트집 잡으며 진짜 레마라면 저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행동의 이면에는 레마가 젊고 아름다운데 반해 자신은 쉰살이 넘었다는 인식도 한몫 한다. 그는 어쩌면 레마가 자신을 떠날 것을 두려워했을지도 모르고 그런 두려움에 대한 방어기재로 자신의 눈 앞에 보이는 레마가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현실의 레마를 트집 잡고, 이데아 속의 레마를 찾아 나선다. 그가 레마를 찾는 여행은 절반의 성공을 거둔다. 가짜 레마가 자신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며 레오는 가짜 레마와의 삶이 나쁠 것만도 아니라고 타협하는 것이다.

 

강아지가 자기 꼬리를 물어보겠다는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악몽이 시작되듯이 이데아와 현실을 혼동할 때 비극은 시작된다. 현실을 이데아와 동일시하는 순간 극단의 선택이 시작된다. 타인에 대한 억압의 시작이 바로 그러한 이데아에 대한 인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데아가 곧 절대진리, 절대선일 수밖에 없으므로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타인의 감정과 행동은 존중해줄 바가 못되는 것이다. 레마의 이데아를 떠올린 레오는 절대로 그녀를 되찾을 수 없을 것이며 현실 세계는 그가 죽는 순간까지 기껏해야 '견뎌낼만 한' 곳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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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빛
전수찬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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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창호가 어두운 밤중에 산에 올랐다가 실족하여 사망한다. 창호는 같은 반 기환이라는 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했었고, 그날 밤 산에 올라간 것도 기환이 불러내서였다고 했다. 창호의 아버지 조두용이 기환의 집을 찾아갔다가 기환의 아버지와 험악한 언사를 주고 받은 끝에 몸싸움이 일어나고 경찰이 출동한다. 기환의 아내는 상실감을 견뎌내지 못해 집을 나가기도 하고 아이를 갖자고 떼를 쓰기도 한다. 결국 늦둥이를 보기는 하지만 가족의 삶은 기우뚱 거리며 나아간다.

한편 기환의 가족 역시 창호가 죽은 날로부터 결락 속에서 살아간다. 기환은 창호가 싫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처음에는 호감을 갖고 다가가려 했었다. 하지만 창호는 기환을 '돼지'라 부르며 놀렸고 호감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불쾌감은 곧 괴롭힘으로 변질되고 만다. 이유없이 폭력을 행사했고 무서워 할 것 같아 필요하지도 않은 돈을 뺏는다. 기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창호의 죽음에 기환이 개입되어 있었다는 것을 느낀다. 기환의 아버지는 기환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아들의 나약한 삶의 방식에 못마땅해하는 감정을 표출했고, 어머니는 체념의 태도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다. 기환의 아버지는 이사를 가는 것으로 사건을 과거에 남겨둘 수 있다고 믿는다.

 

어느 날 조두용이 기환의 아버지를 길에서 만난 날, 그는 그를 쫓아가 복수할 마음을 먹는다. 가족들을 설득해 기환네 집 인근에 집을 얻은 후 흥신소를 통해 기환의 아버지가 공무원과 뒷거래를 했다는 증거를 잡는다. 그는 일주일 후 그 증거를 폭로해 기환의 아버지에게 복수를 하기로 마음 먹는다.

창호의 형 창수는 동생의 죽음 이후 겉으로는 큰 동요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이사간 마을에서 정비소 직원인 진태와 친구가 된다. 진태는 윗마을에 사는 개차반 대학생에 대해 투덜거리는데 툭하면 음주운전을 해서 사고를 내고 차를 수리하러 온다 했고, 동네 청년들이 벼르고 있노라고 말했다. 대학생이 또다시 과속으로 사고를 낸 후 문제를 일으키자 동네 청년들이 대학생을 산으로 끌고 가 린치를 가한다. 창호는 린치 현장에 입회했다가 그 대학생이 기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기환이 린치를 당한 후에 산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린치를 주도한 청년들이 기환을 찾으러 산으로 가지만 기환은 청년들을 따돌린다. 숨어 있떤 기환이 도로에서 청년들의 차를 기다렸다가 야구방망이로 가격해 차가 전복되고 그 현장을 바라보던 조두용은 증거가 담긴 CD를 부러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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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일주일>을 2년 전 이맘 때 읽었었다. 재작년엔 올해보다 날이 한결 따뜻했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주차장에 대어 놓은 차 유리창엔 벚꽃잎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는데 그림자의 색깔이 벚꽃 색깔로 보일 지경이었다. 차 안에서 <어느덧 일주일>을 읽으면서 너무나 평온한 한 때를 보냈고, 작가의 다음 작품이 무척 궁금했었다. <오래된 빛>은 불가해한 삶에 대한 불가지론적 태도를 견지하는 작품이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이 모두가 불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후기에서 우리 삶의 궁극적인 속성이 비극임을 감출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우리 삶은 충분히 아름답다는 알 수 없는 말을 하지만 작품이 항변하는 바는 삶의 불가해성일 뿐이다.

작품 속에서 유일하게 의지를 가지고 삶을 주도하는 인물은 린치를 주도한 상근이라는 인물 뿐이다. 그가 자신의 의지를 행동으로 관철 시킬 수 있는 이유는 그의 가학적인 성격 때문이다.

나머지 인물들은 모두 상황의 노예이다. 기환은 자신의 감정과 다른 행동으로 친구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기환의 아버지 역시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믿지만 아들에게 폭행을 행사할 뿐이다. 진태는 상근에게 휘둘려 린치에 가담했다가 곧 처벌이 두려워 머리를 조아린다. 창수의 아버지는 자신의 복수를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하고 불행과 행복의 경계선에서 혼란에 빠지고 만다.

여러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일주일>이 작가의 향후 행보를 궁금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면, <오래된 빛>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어느덧 일주일>은 작가가 쓰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가 분명히 느껴졌었지만, <오래된 빛>에서는 그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작가 자신의 독특한 색깔이 희미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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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멸
박일문 지음 / 민음사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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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雲水)는 종교시간에 법사님으로부터 <시인 이탁오의 생애>라는 책과 출가하게 된 경위를 듣는다. 법사님은 어느 날 풀잎 끝에 매달린 이슬이 강렬한 햇살을 받아 점점 작아지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허정과 적멸의 세계를 보았고, 그 길로 출가했다고 들려준다. 부모님을 잃은 후 의지하던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운수는 영주 부석사를 찾아가 출가의 뜻을 밝힌다. 

학능스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기 시작한 운수는 과격하고 파격적인 무애스님과 더불어 행동하다가 삼천배를 올리는 벌을 자주 받게 된다. 운수는 삼천배를 하면서 몸이 힘든 순간이 지난 후에는 어느 순간 힘듬을 잊게 되고, 자신의 내부로 침잠하여 궁구하고, 무언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경험 한다.

우란분절 법회에서 조실스님이 '<선(禪)의 자유>가 대채 무엇인가' 라는 화두들 던진다. 스님은 베트남의 광둑스님 이야기를 하며 삶과 죽음을 하나로 쓰는 용무생사(用無生死)야 말로 진정한 자유, 진정한 선의 자유, 진정한 인간의 자기해탈이며 유정 무정 인간해방이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다.

얼마 후 적묵스님이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소신공양을 한다. 적묵스님의 곁에는 선묘여인이 머물고 있었는데 그들은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했다. 선묘여인은 세속적인 사랑을 바랐지만 적묵스님은 자신이 움켜진 화두와 선에 몰두하여 묵언, 면벽, 단식을 반복하고 있었다. 

한편 무애스님은 스승인 조실스님을 찾아가 스승이 보시바라밀을 한 적이 있었는가 묻는다. 조실스님은 말이 없었고 무애스님은 스승의 귀를 취모검으로 베어낸다. 운수는 얼마 후 계를 받는다. 법명은 이름인 운수(雲水) 그대로를 쓴다.

운수는 승적을 유지한 채 대학생이 되고, 70년대 말과 80년의 혼란스런 시대 상황을 살게 된다. 운수는 불교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공부한다.

조실스님이 무애스님을 찾는다. 무애스님은 조실스님에게 왜 자신의 칼을 피하지 않았는지 묻는다. 조실스님은 그 칼을 피했더라면 무애스님이 설익은 지식을 갖고 세상으로 뛰쳐나가 식광(識狂)이 되었을 것이며, 그 칼을 받음으로 인해 당신 스스로도 반성을 했으니 둘 모두를 살린 것이라 담담히 말한다.

무애스님은 자신이 깨달은 바를 피력하는 바, 그것은 세상으로 나가 대승적인 불교를 실천하겠다는 것이었다. 조실스님이 자신의 의발을 무애스님에게 물려주고자 하나 무애스님은 그것마저 거절한다.

선묘여인이 끝내 자살하고, 사구재를 지내기 직전 운수와 무애가 함께 길을 걷는다. 무애는 운수에게 출가 전의 일을 묻는다.

적묵스님의 출가 전 속명이 운수라는 것, 선묘여인이 무애의 동생이라는 것, 운수와 그들의 고향이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든 것은 연기(緣起)의 법칙 속에 있는 것이다.

 

<적멸>은 구도소설이자 불교계의 자기모순을 고발한 소설이며, 작가 자신의 세계관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는 소설이다. 초반부의 불교적 구도(求道) 부분과 중반 이후의 대승적 불교에 대한 의견이 성긴 느낌이나, 이만한 수준의 불교적 구도(求道) 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는 고은 정도가 아닐까 한다. 박일문은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 십오년에 걸쳐 출세간과 출출세간을 거듭한 전력이 있는 작가로 불교와 그 세속적 실천에 대해 고민했던 작가이다.

<달은 도둑놈이다>에서 읽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도서관에 틀어 박혀 고시공부하듯 글을 썼던' 그는 표절 시비작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이후 몇몇 스타일리쉬한 작품을 남긴다. 하지만 지금은 문단에서 사라졌다.

장정일과의 표절 논쟁이 고발 운운으로 지저분하게 끝난 후, 역시 자신이 남긴 글들과는 전혀 다른 행보로 법정 구속되어 이름을 더럽힌 끝에 이제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적멸>에서 하이데거의 나치 옹호 행위와 관련해 '결국에는 그 사람이 가진 지식을 가지고 판단할 게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삶의 내용으로 판단해야 한다'라는 말빚을 남겼으니, 문단에 돌아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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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어 앉은 오후 - 제4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이신조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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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중년여인 윤자와 20대인 은해의 이야기다.

윤자는 비행기 사고로 딸을 잃는다. 딸은 미술사를 공부했었는데 유부남과 사귀고 있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된다. 딸의 죽음으로 받은 보상금은 남편의 부도 직전인 회사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된다. 남편과 아들은 딸이 죽은 후에도 일상을 어찌어찌 꾸려가는 듯 보였고,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윤자는 상실감을 왜곡된 형태로 표출하는가 하면 필요치 않은 물건들을 훔치는 도벽이 생긴다.

은해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두번째 부인이었다. 외양어선을 타는 아버지는 한 달에 한번 꼴로 집에 들렀고, 의붓오빠들은 공공연히 은해의 어머니를 화류계 여자 취급을 한다. 은해의 어머니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타인의 시선 때문에 은해에게 비뚤어진 성적 관념을 심어준다. 은해는 그런 어머니에 대한 반발로 포르노 영화의 더빙 아르바이트를 하는가 하면 수영강사에게 아무런 감동 없이 몸을 내맡기기도 한다. 

은해와 윤자는 몇 번인가 만난다. 수영 강습을 통해서, 백화점에서, 둘은 스쳐가기도 하고 쇼핑을 함께 하기도 한다. 은해가 수영강사와 함께 있는 것을 본 윤자는 위태로움을 느낀다. 수영강사에게 몸을 내맡긴 날로부터 얼마 후 은해는 수영장에서 윤자와 만난다. 은해가 하혈을 하고 응급실에 실려간다. 윤자는 환자와의 관계란에 母라고 적어 넣는다.

 

소설의 주제는 상실의 극복이다. 윤자는 딸아이를 잃은 후에 딸이 누구를 사랑했는지,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알게 된다. 자신만이 슬픔을 견디고 있다고 생각한 윤자는 남편과 아들에게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만들어 주는 비뚤어진 복수를 꾀한다. 그리고 높이 뛰기 선수를 보며 자신도 땅에서 훌쩍 벗어나고 싶다는 탈출의 욕구를 느낀다. 하지만 어느날인가 엉망으로 취한 아들의 모습을 보고 딸의 죽음을 견뎌내고 있는 것이 자신 혼자만이 아님을 깨닫는다. 윤자가 은해와의 관계를 母라고 적어 넣는 것은 그녀가 딸의 죽음을 고통스럽지만 극복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 같다.

은해의 경우는 재취 자리로 들어와 화류계 여자 쯤으로 취급받던 은해의 어머니가 은해에게 과도하게 성적인 순결을 강조한 것이 화근이 된다. 억압되고 비뚤어진 은해의 성(性)은 기형적으로 표출된다. 그녀는 돈이 목적이 아니면서도 포르노 영화를 더빙하고 그다지 호감을 느끼지도 않은 남자에게 몸을 허락한다. 은해는 수영강사가 자신의 처녀혈을 보고 만족해하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 아버지의 가죽 장갑을 끼고 자위행위를 통해 처녀를 파괴하는 모습이 내게는 그로테스크하게 보인다. 어머니의 성적 억압이 아버지에 대한 성적 동경으로 왜곡된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의 흠이라면 인물의 형상화가 부족하고 아픔의 깊이에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십줄에 접어든 윤자가 딸을 잃은 슬픔이 관념적으로 흘러가다보니 사춘기 소녀의 그것과 비슷하게 읽히고, 은해의 트라우마는 구체성이 부족해 그녀의 아픔이 와닿지 않는다. 무겁고 진중하게 소설을 써내려가려는 작가의 노력은 이러한 흠결로 인해 독자에게는 가볍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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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6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임종기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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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섭게 추운 2월 어느 날 이른 아침, 어떤 낯선 이가 코치 앤 호시스 여관을 들어선다. 그는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온통 옷이나 붕대로 감쌌고 그가 쓴 중절모는 코를 제외한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었다. 흥정이 끝난 후 손님은 비사교적인 태도로 주인을 몰아내더니 수상쩍은 실험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방에서는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났고 절망적인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수상쩍은 손님은 돈이 있는 동안은 여관 주인의 인내심을 돈으로 달래가며 정체 불명의 실험을 진행할 수 있었지만 돈이 떨어지자 여관 주인은 경찰을 불러 그를 방에서 쫓아내려 한다. 난투극 끝에 그가 투명한 인간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투명인간은 몸이 보이지 않는 이점을 이용해 토마스 마블이라는 변변치 못한 사내를 협박하여 자신의 연구노트를 여관에서 되찾은 뒤 돈을 훔치고 소동을 일으킨다. 하지만 마블이 달아나자 대학 동창인 켐프 박사를 방문하여 몸을 의탁한 뒤 자신이 연구한 결과와 계획을 털어놓는다.

켐프 박사는 투명인간을 안심시킨 뒤 은밀히 편지를 내어 경찰을 불러들이는 한편 그를 잡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자신이 속았음을 알게 된 투명인간은 켐프 박사에게 복수하려 하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사람들에게 잡혀 만신창이가 되어 죽고 만다.

 

옮긴이 임종기는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기게스의 반지 모티프를 이야기한다.

양치기 기게스는 심한 뇌우와 지진이 있은 뒤에 생긴 갈라진 틈에서 청동 말을 발견하는데, 그 말에 있는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니 손가락에 금반지를 낀 송장이 하나 있었다. 그가 반지를 빼어 끼게 되니 그는 투명인간으로 변신하게 된다. 반지의 위력을 깨달은 그는 결국 왕비와 간통하고 그녀와 공모하여 왕을 살해한 후 왕의 자리를 차지한다. 기게스가 반지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 그는 순박한 양치기의 모습으로 두 번 다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 이 기게스의 반지 모티프는 J.R.R.톨킨의 절대반지가 어디서 연원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투명인간은 자신이 보이지 않게 됨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달리 커다란 이점을 취하리라 믿었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다. 날씨에 저항할 수 없게 되었고 식사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으며 불의의 사고에 노출되고 만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는 괴물처럼 취급되었고 부당한 박해를 받는다. 그는 자신의 '다름'을 이용하여 공포정치를 행하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히고 이를 켐프에게 고백하는데 켐프는 투명인간을 배신하고 만다. 그는 기게스가 양치기가 될 수 없었던 것처럼 두 번 다시 정상인이 되지 못한채 죽고 만다.

제목의 적절한 번역은 어쩌면 <투명인간> 보다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 더 적합할 지도 모르겠다. '보인다'는 정상 범주와 '보이지 않는다'는 비정상 범주 사이의 긴장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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