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성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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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베네치아에서 나폴리로 항해하던 중 터키 함대에 사로잡혀 노예가 된다. 중노동을 면하기 위해 의학 지식을 내세운 '나'는 우연한 기회에 파샤의 병을 치료하게 된다. 파샤는 자신의 병에 차도가 나타난데다가 '내'가 여러가지 지식도 갖고 있는 것을 알고 호감을 표한다. 그는 만약 '내'가 무슬림으로 개종한다면 자유를 주겠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죽이겠다고 위협한다. 살해 위협 앞에서 '내'가 개종을 거부하자 파샤는 불쾌해 하면서도 '나'를 호자라는 남자에게 넘겨준다.

호자는 '나'와 외모가 놀랍게도 흡사했다. 하지만 호자는 그에 관해서는 별다른 언급 없이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에만 관심을 나타냈다. 그는 '내'가 가진 모든 지식을 배워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와 '나'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이 흘렀다.

호자는 파디샤에게 영향을 미치고 싶어했다. 파디샤는 동물을 사랑하는 군주였는데 호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호자는 천문학 지식을 이용하여 자신을 예언자처럼 보이도록 꾸미기도 하고, 그의 꿈을 해석해주면서 자신의 의도대로 파디샤를 몰고 가려 한다.

 

그 즈음 이스탄불에 흑사병이 돌아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나'는 호자에게 흑사병의 두려움과 전염성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호자는 좀처럼 '나'의 말을 믿지 않는다. 호자가 벌레 물린 자국을 보여주며 '나'를 위협한다. '나'는 그 자국이 혹시라도 흑사병의 징후가 아닌가 생각되어 섬으로 도망간다. 

호자로부터 벗어났다고 생각했던 '나'의 기대는 호자의 방문과 함께 깨어진다. 그는 처음부터 '내'가 어디로 도망갔는지 알고 있었다. 호자는 파디샤가 흑사병이 언제쯤 물러갈 것인지 예언하라는 명을 내리자 '나'의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이다. '나'와 호자는 힘을 합해 흑사병을 물리칠 방안을 연구하는 한편 흑사병으로 죽어나가는 사람들의 통계를 내가며 흑사병이 물러갈 날짜를 예측한다. 그 과정에서 '나'와 호자는 주인과 노예 관계에서 동지적 관계로 변모하고, 그후 '나는 왜 나인가?'라는 질문과 이에 대한 탐구의 일환으로 서로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고 과오를 고백하는 과정을 거친다.

 

파디샤는 흑사병이 물러간 날짜를 예측한 공으로 호자를 황실 점성술사의 자리에 앉힌다. 자신의 이상을 파디샤에게 투영시킬 기회를 잡은 호자는 강력한 무기를 개발할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한다. 갖은 어려움 끝에 무기를 완성시킨 호자는 파디샤의 출정에 따라나선다. 하지만 상황은 호자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파디샤의 측근들은 그 무기를 불길하게 생각했고 적들의 작은 요새를 습격하는데 투입된 무기의 성능이 예상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호자는 강박적으로 점령된 마을 주민들에게 자신이 저지를 죄과를 실토하라며 가혹 행위를 일삼는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성에 혼란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하얀 성에 대한 공략이 쉽지 않자 파디샤는 무기의 투입을 명한다. 무기는 제대로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 분명해보였고, 파디샤의 측근들이 이교도인 '나'를 희생양으로 삼을 것이 분명해보였다. 호자는 파디샤와 긴 대화를 나눈 다음 새벽에 돌아온 후 '나'와 옷을 바꿔 입은 뒤에 베네치아로 떠난다. 쌍둥이처럼 닮은 외모에 서로의 어린 시절과 과오까지 공유한 둘은 누가 봐도 구분하기 어려워보였다. '나'는 호자 행세를 하며 파디샤의 측근에 머물며 황실 점성술사 행세를 한다. 하지만 파디샤는 시간이 흐르자 '내'가 호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암시를 한다. 

7년의 시간이 흐른 후 황실에서의 생활에서 위협을 감지한 '나'는 황실을 떠나 은거하며 지낸다. 어느 날 베네치아로 간 호자의 소식을 듣는다. 그는 '나'의 행세를 하며 그곳에서 터키에 관한 책들을 써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했다. 또 다른 '나'의 독자인 베네치아에서 온 손님에게 '나'는 이 이야기를 읽힌다. 모든 이야기를 읽은 손님은 혼란에 빠지고 만다. '내'가 꾸며놓은 방은 베네치아의 어린 시절 집과 똑같은 모습으로 꾸며져 있었다.

 

'닮은 꼴-쌍둥이' 모티프를 기반으로 쓰여진 <하얀 성>은 동양과 서양이 만나 갈등하고 융합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화자 '나'와 호자는 닮은 외양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서로 다른 지식과, 그 지식에 대한 태도 때문에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공통의 해결과제인 흑사병 앞에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힘을 합하게 된다. 

17세기 터키는 찬란한 영광을 뒤로 하고 그 위세가 점차 기울어가는 상황이었다. 호자는 그런 터키를 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무기를 개발해야 하고, 그 무기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나'의 지식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인식은 파디샤의 측극들에게 불길하게 받아들여졌고 무기 역시 실패하고 만다. 그는 계속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다만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베네치아로 떠나고 그곳에서 자신의 조국 터키에 관한 이야기를 쓴다. 한편 '나' 역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터키에 남아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으며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영위한다.

오르한 파묵은 1986년 판 제5쇄에 수록된 일종의 '작가 후기'를 통해 자신이 영향받았던 이야기와 아이디어,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 말한다. 그는 러디어드 키플링의 시에서 "동양은 동양이고, 서양은 서양이다"라고 말한 대목을 인용하며, 자신은 그러한 진부하고 구태의연한 태도에서 벗어나 "동양은 동양이 되지 말며, 서양은 서양이 되지 말라는 바람을 내포했다"고 말한다. 동양과 서양, '나는 왜 나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진지한 작가의 탐구가 담긴 이 작품으로 오르한 파묵은 세계적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2006년 "문화들 간의 충돌과 얽힘을 나타내는 새로운 상징들을 발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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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 무라카미 하루키 최초의 연작소설, 개정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유곤 옮김 / 문학사상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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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쿠시로에 내린 UFO 

   - 어떤 '이혼 선언' 이후

 

고무라의 아내가 이렇다할 이유도 없이 닷새 동안 텔레비전 앞에서 앞에 앉아 고베 지진에 관한 보도만 보던 끝에 집을 나갔다. 그녀는 고무라에게 '마치 공기 덩어리와 함께 살고 있는 것 같'다는 메모를 남긴 채 친정으로 돌아갔고, 얼마 후 이혼 서류를 보내온다. 고무라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서류에 인감을 찍어 돌려보낸다.

일주일간의 유급 휴가를 얻은 고무라에게 동료 사사키가 홋카이도에 가줄 수 없는 지 묻는다. 사사키는 고무라가 직접 어떤 물건을 여동생에게 전달해 주었으면 한다면서 왕복 항공권을 마련해 주겠다고 제안하고, 고무라는 별달리 할 일도 없었으므로 응낙한다.

홋카이도에 도착한 고무라는 사사키의 여동생 게이코와 그녀의 친구 시마오를 만난다. 물건을 전달해 준 후 호텔에서 시마오와 맥주를 마신다. 시마오는 심상한 말투로 고무라의 아내에 관해 질문하고, 고무라 역시 담담한 어조로 이혼에 이르기까지의 간략한 사정을 들려준다. 공기 덩어리와 함께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아내의 말을 되뇌던 고무라는 자신이 알맹이 없는 사람이 아닌가 문득 생각한다.

시마오는 장난 삼아 고무라가 전해 준 물건 안에 그의 알맹이가 들어있었고, 고무라는 그것도 모른채 자기 손으로 다른 사람에게 알맹이를 줘버렸다고 말한다. 아주 먼 곳에 온 것 같다는 고무라의 말에 시마오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o 다리미가 있는 풍경

  - 모닥불이 꺼지면 같이 죽어요

 

쥰코에게 미야케 아저씨가 모닥불을 피울거라며 전화를 건다. 동거하는 게이스케는 투덜거리면서도 쥰코를 따라 나선다. 미야케는 바다에 쓸려 내려온 유목을 모아 모닥불을 피우곤 한다. 쥰코는 그 모닥불이 좋았다. 쥰코는 고등학교 시절 잭 런던의 <모닥불>이라는 소설의 독후감에다 '사실은 주인공이 죽음을 간절히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력을 다해 거기에 싸우는 내용'이라고 써서 냈다. 하지만 교사는 쥰코의 그런 감상에 대해 어처구니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쥰코는 집을 나와서 록밴드에서 기타를 치는 게이스케와 동거하게 되었다. 미야케는 어떤 이유로 그 고장에 흘러들어온 화가였고 냉장고 없이 살아가며 가끔 유목을 모아 모닥불을 피웠다.

그날 밤 쥰코는 미야케에게 최근에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묻는다. 미야케는 <다리미가 있는 풍경>을 그렸지만 사실은 다리미를 그린 그림이 아니라고 했다. 쥰코는 미야케에게 다리미는 다른 어떤 것 대신 있을 뿐 그렇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에 다리미가 있는 것인지 묻는다.

쥰코는 미야케에게 자신의 속이 텅텅 비어 있다고 말한다. 함께 죽자는 미야케의 말에 쥰코는 상관 없다고 말한다. 모닥불이 모두 꺼질 때 까지 기다린 후에 죽자는 미야케의 말에 동의한 쥰코는 잠이 든다. 모닥불은 의외로 쉽게 꺼지지 않는다.

 

o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 개에게 물어뜯긴 귀를 가진 아버지

 

요시야의 어머니는 요시야를 열여덟에 낳았다. 그녀는 지금 마흔 셋이지만 여전히 30대 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한 아들의 어머니라는 자각이 거의 없는지 요시야가 중학생이 되어 성적 호기심에 눈을 뜬 후에도 태연하게 속옷 바람, 혹은 알몸으로 집안을 돌아다녔고 때로는 아들 방으로 기어들어가 요시야를 강아지처럼 껴안고 잤다. 요시야는 발기한 성기 때문에 부자연스럽게 잠들 수밖에 없었고, 어머니와 치명적인 관계에 혹시라도 빠져드는건 아닌가 두려워 쉽게 섹스를 할 수 있는 여자를 필사적으로 찾아다니기도 했다.

요시야의 어머니는 한때 방탕하게 몸을 놀렸고 그 때문에 임신을 하게 되었다. 임신 중절을 위해 찾아간 산부인과 의사는 한바탕 훈계를 늘어 놓았고 그녀는 조심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돌아간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임신을 하게 되어 병원을 찾는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의사와 사귀게 되었는데 피임에 대한 의사의 해박한 지식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임신을 하게 된다. 의사는 자신의 피임법이 완벽했으므로 그녀가 부정을 저질렀다고 매도하며 그녀를 버린다. 요시야의 어머니는 절망에 빠져 거리를 걷다가 다바다씨를 만난다. 다바다는 그녀를 종교로 이끈다. 그는 요시야의 어머니가 피임을 계속 하는데도 아이가 생기는 것은 바로 신의 의지라고 설득한다. 그래서 요시야는 어머니에게 신의 자신으로 취급받았고, 요시야의 성기가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큰 것도 그 증거라고 생각했다.

성년이 된 요시야가 전철에서 귀 한쪽이 물어뜯긴 사나이를 발견한다. 요시야는 자기의 생물학적 아버지에 관한 특징이라고는 그것밖에 몰랐다. 사나이는 요시야 아버지 또래였고 의사 분위기를 풍겼다. 그를 뒤쫓던 요시야는 막다른 골목에서 사나이가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골목 끝은 야구장으로 이어져 있었다. 투수 마운드에 올라선 요시야는 춤을 춘다. 그러면서 다비다가 임종 때 그동안 자신이 요시야의 어머니를 마음 속으로 탐했음을 고백하던 장면을 떠올린다. 요시야는 다비다가 미안해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멀리서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바람이 불어 풀을 춤추게 하고, 풀의 노래로 축복하다가 멈춘다. 신이여, 하고 요시야는 소리내어 말한다.

 

o 태국에서 일어난 일

  - 마음속의 돌

 

갑상선 병리전문의 사쓰키는 방콕의 회의에 참가한 후 일주일간의 휴가를 보내게 된다. 메르세데스 벤츠 리무진을 가진 니밋이라는 태국인이 가이드였는데 그는 알기 쉬운 영어를 사용했고 재즈를 들었다. 니밋은 자신이 노르웨이인 밑에서 오랫동안 일했는데 그가 죽으면서 메르세데스 벤츠와 재즈 카세트 테이프를 물려 주었다고 말했다. 세심한 니밋의 배려로 사쓰키는 풀장을 이용하고 맛있는 샌드위치를 먹는다.

니밋이 사쓰키를 태국인 노파에게 데려간다. 노파는 사쓰키의 손을 쥐고 10여분간 있더니 사쓰키의 몸 속에 돌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가까운 시일 내에 커다란 뱀이 나오는 꿈을 꿀 것인데, 뱀이 구멍에서 1미터 정도 나왔을 때 목을 잡고 놓치 않는다면 그 뱀이 돌을 삼켜줄 것이라고 말한다. 떠나는 사쓰키블 불러세워 노파는 '그 남자는 상처 하나 입지 않았는데, 그것이 사쓰키가 바란 일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사쓰키는 고베에 큰 지진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그 남자가 혼란 와중에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랐었다.

노파를 만나고 돌아온 사쓰키는 그 남자에 대해 니밋에게 털어놓고 싶었지만 니밋은 꿈을 기다리라며 만류한다. 그리고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북극곰은 1년에 딱 한번 교미를 하는데 수컷과 암컷이 우연히 만나 잠깐 교미를 한 후 수컷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난다고 한다. 그리고 1년간을 깊은 고독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니밋은 이 이야기를 해준 노르웨이인에게 그렇다면 북극곰은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 건지 물었고, 노르웨이인은 니밋에게 그렇다면 인간은 대체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지 반문한다.

일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사쓰키는 잠을 자고, 꿈이 다가오기를 기다려보기로 마음 먹는다.

 

o 개구리 군, 도쿄를 구하다

  - 대지진 막은 마법의 개구리

 

카타키리가 어느 날 집에 돌아오니 거대한 개구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당당한 체구의 개구리는 자신을 '개구리 군'이라 불러 달라고 말한 후, 카타키리를 오랫 동안 지켜본 바 자신과 더불어 지진을 막을 수 있는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개구리군에 의하면 카타키리가 일하는 신용 금고 지점 지하에 '지렁이군'이 살고 있는데 지렁이군이 화가 나서 곧 지진을 일으킬 것이라 했다. 개구리군은 자신이 지렁이군과 싸울 때 카타키리가 응원해준다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카타키리는 그러마하고 개구리군에게 약속 했지만 정작 거사일에 저격당한다. 병원에서 깨어난 카타키리는 자신이 저격당한 적이 없고 단지 노상에서 갑자기 쓰러졌을 뿐이라는 간호원의 말에 어떻게 된 일인지 의아해 한다.

그날 밤에 개구리군이 병실로 찾아온다. 개구리군은 카타키리가 자신을 도와준 덕분에 지렁이군과의 승부를 치룰 수 있었다고 말한다. 개구리군은 자신이 혼탁 속으로 되돌아간다고 말하더니 몸 여기저기가 터진다. 카타키리는 소리를 지르며 꿈에서 깨어난 후 간호사에게 두서 없이 개구리군에 대해 이야기한다.

 

o 벌꿀 파이

  - 소설가 쥰페이의 사랑

 

경제학부에 입학했다고 집에는 거짓말을 하고 문학부에 입학한 쥰페이는 다카스키, 그리고 사요코와 친해진다. 셋은 함께 어울려다녔는데 쥰페이와 다카스키 모두 사요코에게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먼저 고백한 것은 다카스키였고 둘은 사귀기로 한다. 쥰페이는 그 사건 때문에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집에 틀어박힌다. 사요코가 쥰페이를 찾아와 이런 저런 얘기 끝에 친구로 남아있어 달라고 말한다. 그 말을 하는 사요코는 울고 있었고 쥰페이는 저도 모르게 사요코에게 키스를 한다. 하지만 그것 뿐, 대학 졸업 후 다카스키와 사요코는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 후에도 쥰페이는 그들과 함께 어울렸고 사요코가 아이를 낳게 되자 쥰페이가 사라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사라가 태어나던 날 다카스키는 쥰페이에게 사요코를 대신할 여자는 없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다카스키는 직장 동료와 바람이 나서 사요코와 헤어진다. 헤어진 후에도 그들은 종종 함께 모인다.

다카스키가 쥰페이에게 사요코와 결혼하라고 권한다. 쥰페이는 모든 것이 너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 같고 자신이 결정할 사항은 아무 것도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느 날 밤 사라를 재우고 난 후 쥰페이와 사요코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몸을 탐한다. 그때 잠들었던 사라가 문을 열고 그들을 보게 된다. 사라는 지진아저씨가 자기를 깨워 엄마에게 가서 '모두를 위해 상자뚜껑을 열고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전하라고 했다고 말한다.

쥰페이는 사라에게 들려주었던 마사키치와 동키치가 나오는 곰 이야기를 해피앤드로 고쳐 들려주기로 결심한다. 상대가 누구든, 정체 모를 상자 속에 처넣어지게 해선 안된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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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5년 2월이란 시기에 일어난 일을 쓴다.

2. 모두 3인칭으로 쓴다.

3. 한 편의 길이는 200자 원고지 80매 정도로 압축한다.

4. 여러가지 유형의 사람들을 등장시킨다.

5. 고베의 지진이 큰 테마가 되지만, 고베를 무대로 하지 않고, 지진도 직접적으로는 다루지 않는다.

 

이상과 같은 원칙 하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연작 소설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는 고베 지진을 테마로 쓰여진 소설이다.

<언더그라운드>를 통해 옴 진리교의 충격적 사건을 이야기 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고베 지진을 통해 또 다른 실존적 부조리에 직면한 듯 하다. 어쨌든 옴 진리교는 사람이 관련한 사건이다. 수많은 인명 피해가 일어났지만, 사건 이후에도 통제와 제어를 벗어나 독자적이고 우연적으로 발생되는 일은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작가도 그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남은 자들을 취재하고 자신의 감상을 적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진은 그것과는 다르다. 지진은 제어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다. 언제 어떤 형태로 또다시 '상자가 입을 벌릴지' 모른다. 사람들은 지진에 의해 피해를 입었을 때 억울하다는 느낌은 들 지언정 왜 자신이 피해를 입었는지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하소연할 곳도 없고 보복 할 대상도 없다.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을지라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거대한 다리가 엿가락처럼 휘고, 사람이 땅 속에 삼켜지는 상황을 책임질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부조리한 상황은 사람들의 인식 체계를 휘젓고 말 것이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고, 확고했던 관계도 사실은 우연의 산물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여섯 편의 단편은 그런 영향들에 관한 무라카미 하루키 식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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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 Ⅱ
돈 드릴로 지음, 유정완 옮김 / 창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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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키 스타디움에서 수천쌍의 남녀가 합동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통일교의 문선명 총재가 재림예수의 권한을 갖고 짝지어준 남녀들이다. 캐런 역시 그들 중 한 명이고, 그녀의 부모는 도무지 현재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캐런의 아버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세뇌된 자신의 딸을 제자리로 돌려놓겠다고 다짐한다. 캐런은 한국인 남성과 결혼했지만 함께 살 수는 없다. 그녀는 일군의 여자들과 꽃 파는 앵벌이로 내몰리고, 남편은 선교를 위해 다른 나라로 파견된다.

 

브리타는 작가들의 사진을 찍는다. 그녀는 은둔한 작가와 정치권의 탄압으로 은둔 당한 작가들의 사진을 찍는다. 그녀는 은둔 작가 빌 그레이를 찍을 기회를 잡는다. 빌의 비서 스콧은 브리타가 빌의 집을 다시 찾을 수 없도록 납치하듯 데려와 빌과 대면시킨다.

빌은 삼년 째 완성된 소설을 고치면서 지내는 중이다. 그의 소설이 출간된 것은 아주 먼 옛날 일이고, 독자들은 신비주의 속에서 그를 거의 신격화시켜 놓았다. 스콧은 빌이 소설을 완성하여 출간한다면 엄청난 인세 수입이 생기겠지만 그것을 원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새로 출간된 소설은 대중들이 신격화해 놓은 빌의 위상을 지상으로 끌어내릴 빌미를 제공할 것이고 과거에 쓰인 소설도 재평가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빌이 스콧의 견해를 싫어하면서도 거부하지 못한다는 데 있었다. 사진을 찍고 대화를 나눈 작가는 브리타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는 브리타의 자동응답기에 자신도 알 수 없는 긴 메시지를 남긴다.

출판업자 찰리 에버슨이 빌에게 납치된 문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인 한명이 테러리스트에게 인질로 잡혀 있고 빌이 그의 시를 읽으며 석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한다면 시인이 풀려나리라는 것이다. 빌은 이에 동의하며 스콧과 캐런에게는 비밀에 붙인 채 기자회견장에 갔다가 폭탄테러에 휘말린다. 기자회견은 미뤄지고, 인질을 잡고 있는 단체의 대변인 죠지 하다드와 직접 만난다. 죠지 하다드는 테러리스트 단체의 리더 아부 라시드가 시인 대신 빌을 인질로 잡는 계획을 꾸미자 빌을 꼬여내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빌은 죠지의 계획을 알면서도 그를 따라 나서고, 선뜻 따라 나서는 빌 때문에 죠지는 곤혹스러워하며 자신들의 계획에 반드시 동참할 이유는 없다고 만류하기까지 한다.

빌은 죠지와 지내는 동안 교통사고를 당하고 간이 심하게 훼손된다. 하지만 그는 아부 라시드를 직접 만나기 위해 배를 탄다. 배 위에서 그는 사망하고, 그의 신분증과 소지품들은 도난 당한다.

빌이 없어진 사이 스콧은 그의 자료들을 정리하는데 온 시간을 보내며 그를 찾아내려 했지만 불가능함이 입증되었을 뿐이다. 캐런은 톰킨스 스퀘어의 노숙자들에게 통일교의 지상왕국을 설파하려 했지만 열 네살난 오마르에게조차 여성으로서 관심 받지 못한 채 스콧에게 되돌아온다.

 

브리타가 아부 라시드의 사진을 찍기 위해 베이루트로 간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작가들의 사진을 찍지 않는다. 아부 라시드의 사진을 찍은 날, 창 밖으로 T-34 탱크가 보인다. 탱크는 한쌍의 신혼 부부를 위해 동원된 것이었다. 사진이 찍히며 터지는 플래시에 죽은 도시가 찍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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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개최된 통일교의 합동 결혼식,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샐린저를 추적한 사진 기자가 찍은 사진 한장(그 사진에서 샐린저는 사진 기자를 물리치며 손사래를 치는 뒷모습이 찍혀있다고 한다), 호메이니가 살만 루시디에게 내린 '파트와(율법에 따른 판결)', 그리고 호메이니 자신의 죽음 등이 작품의 모티프가 되어 집단과 개인, 테러와 소설, 이미지를 통한 대중세뇌 등의 문제가 그려지고 있다.

 

작가는 소설가와 테러리스트가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대중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온 전통적인 권위가 소설에 있었다면, 이제는 테러리스트들의 파괴 행위가 뉴스를 통해 대중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소설의 권위를 빼앗아 오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런 제로섬 게임에서 소설가들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듯 하다. 빌 그레이는 3년째 작품 발표도 하지 않은 채 썼던 글들을 고치며 출간을 의도적으로 늦추고 있다. 그는 과거의 좋은 평가를 새로운 작품을 발표함으로서 무너뜨리지 않고 싶어한다. 그는 과거의 승자일 뿐 현존하는 챔피언은 아닌 것이다.

그런 빌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사진을 찍는다. 권투 시합을 앞둔 챔피언이 포스터 제작을 위해 사진을 찍듯이. 하지만 그는 테러리스트를 상징하는 아부 라시드에게 접근조차 못하고 선상에서 객사하고 만다. 소설가는 용기를 내어 현실 세계에서 테러리스트에게 빼앗긴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오히려 아부 라시드와 대면하는 것은 사진을 찍는 브리타이다. 그녀는 심지어 아부 라시드 아들의 두건을 벗겨내어 플래시를 터뜨리기까지 한다. 이미지와 대중조작의 세계에서 테러리스트와 같은 자극적인 적들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소설이 아니라 사진과 같은 시각예술이라는 것을 항변하는 것 같다.

 

소설 속에서 문선명, 마오, 호메이니는 모두 전체주의적인 대중조작자들로 그려지고 있다. 그들 사이의 경중이란 없으며 무니(Moonie), 홍위군, 테러리스트 모두가 같은 층위에서 다루어진다. 그것은 부당하다. 계급 없는 개인을 같은 층위에서 언급하는 것이 부당한 것처럼 말이다.

<화이트 노이즈>와 <마오2>를 함께 사서 꽂아만 놓았다가 안양 출장갈 일이 있어 읽었다. 내일은 일산 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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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테의 수기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41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박환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이 도시로 모여든다. 하지만 내게는 도리어 죽기 위해 모인다는 생각이 든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남긴 단 한편의 장편소설 <말테의 수기>는 말테라는 이름의 젊은 덴마크 시인이 위와 같은 감상을 이야기하며 시작된다. 그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보는 것을 배우고 있다......모든 것은 지금까지보다도 마음속 깊이 파고들어 언젠가 머물던 곳보다도 더 깊숙이 안으로 들어간다. 오늘까지 나 자신도 몰랐던 마음의 구석이 있어, 지금은 모든 것이 그곳으로 들어간다. 그 구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말테는 '보는 것'을 배우고 있다. 그는 시인의 시각을 갖고 싶어 한다. 그에게는 병원에서 사람들이 살아 나가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대량 생산' 이 이루어 지는 것처럼 보이고, '자기 특유의 죽음이 자기 특유의 생활과 같은 정도로 드물게 될 것......(죽음도) 기성품으로 충당되는 시대'로 보인다. 그리고,

 

나는 공포와 맞설 수단을 강구했다. 아침까지 자지 않고 밤을 세워 글을 쓰기로 했다.

 

라고 결심한다.

 

말테의 이야기들은 지극히 불규칙적이고 사변적인 것들이다. 병원에서의 경험, 조국 덴마크에서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유년 시절의 유령 체험, 어머니와 누이 아벨로네에 대한 사랑, 잃어버린 연필을 찾던 공포스러운 기억 등이 1부에 기록되어 있다.

2부에서는 유년 시절의 회상이 이어지면서 좌절된 왕들의 이야기, 죽은 자들의 이야기, 성자와 신, 독서를 통해 알게된 인물들, 여인들, 그리고 '돌아온 탕아'의 새로운 해석 등이 두서 없이 이어진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내재적 필연성 없이 나열된다. 다만 그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것은 공포와 죽음, 그리고 말테의 여린 감수성이다.

 

젊어서 시를 쓰면 훌륭한 시는 쓸 수 없다. 시 쓰는 것을 여러 해 기다려 오랜 세월, 자칫하면 늙은이가 될 때까지 깊이와 향기를 모아서 써야 하는데, 결국 최후에는 겨우 훌륭한 시를 10행쯤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윤동주가 프란시스 잠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별 헤는 밤>에서 부르고, <쉽게 씌여진 시> 중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 부끄러운 일이다

 

라고 고백하는 것을 볼 때 <말테의 수기>에서 그의 여린 감수성이 공감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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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흥신소 사건일지
박치형 지음 / 푸른여름 / 2012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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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전문 행운흥신소에 실종 사건 의뢰가 들어온다. 실종자는 김정현 , 나이는 서른 둘이고 광고 회사에 다니다가 1년 전 퇴사 이후 무직으로 지내왔다고 한다. 의뢰인 홍윤아는 김정현의 아내로 뛰어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광고 회사를 조사하던 '나'는 김정현이 수상쩍은 이유로 퇴직한 정황을 발견한다. 회사 사장이 자금난에 허덕이자 과장이 연대 보증을 서 주었는데 그 직후 김정현의 컴퓨터 파일이 삭제 된 것이다. 고객의 마감 시한을 지키지 못해 회사에 얼마간 손해가 있었고 그 직후 김정현의 빈 자리를 연대 보증을 서준 과장의 인척이 입사한 것이다. 사장과 대화를 나누던 중 김정현이 소설가였다는 말이 나오자 '나'는 그쪽을 더 조사해 볼 필요를 느낀다.

김정현이 쓴 <사랑은 두 번 울지 않는다>는 유치한 제목에도 불구하고 입소문을 타고 2만부 가량 판매된 책이었다. 그러나 홍윤아는 남편이 소설을 썼다는 사실을 모르는 눈치였다. 게다가 출판사 사장에게 듣기로는 인세가 2천만원 가량이었다는데 그 부분도 깜깜이었다.

그즈음 동료 소설가인 윤철민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한다. 실종되기 전 김정현이 인터넷 악플 때문에 괴로워했다는 것이다. '나'는 김정현의 메일을 조사해 그의 안티 카페 개설자가 보낸 메일을 입수한다. 메일은 '찾아올테면 찾아오라, 대신 죽을 각오로 오라'는 내용이었고, 날짜는 김정현이 실종된 날짜였다. 유력한 용의자로 카페 개설자인 최정원의 집을 방문한 '나'는 가스검침원을 가장하여 마당을 살피다가 흙무더기의 색깔이 다른 부분을 발견하고 파해친다. 그곳에는 최정원의 시체가 있었다. 흙을 다 파해쳤을 때 최정원도 마당으로 나와 시체를 발견하는데 그는 별다른 동요도 하지 않았지만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어쨌든 의뢰받은 실종 건은 해결되었고 잔금까지 입금 완료되었지만 어쩐지 뒷맛이 좋지 않은 '나'는 김정현의 딸이 '아빠가 아니네'라고 했던 말에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다섯살 난 아이가 3개월이나 아빠를 만나지 못했다가 심상하게 내뱉을 말로는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혹시 다른 사내가 아빠 역할을 이미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시작된 '나'는 홍윤아의 집 앞에서 잠복한다. 한밤중에 한 사내가 집에 들어갔다가 다음날 새벽에 나오자 '나'는 그를 미행한다. 그가 들어간 곳은 메이저 출판사인 '동틀녘' 출판사였고, 뜻밖에도 윤철민이 사내와 함께 걸어나온다. 윤철민은 머쓱해 하면서도 사내가 '동틀녘' 출판사의 기획 1팀장 구민석이라 소개한다.

최정우가 무죄를 주장하다 받아들여 지지 않자 '나'와의 면담을 요청한다. 최정우는 돈이 떨어져 먹을 것도 없던 차에 어떤 여자가 카페 개설을 의뢰하며 돈을 주었다고 했다. 최정우가 설명한 여자의 인상착의는 홍윤아와 거의 흡사했다. 게다가 형사반장이 자신의 의도와 상관 없이 '내'가 떠넘긴 불륜 사진 찍기에 나섰다가 다른 흥신소 직원으로부터 알게 된 사실을 전한다. 김정현이 홍윤아의 불륜 사실을 밝혀달라며 흥신소에 의뢰를 했었고 흥신소에서 알아낸 바에 의하면 상대 남자가 구민석이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반장을 대동하고 홍윤아를 찾아간 날은 김정현과 홍윤아의 결혼기념일이었다. 그러나 집에는 구민석이 있었다. '나'의 추궁에 홍윤아는 범행 일체를 자백한다.

 

결점이 몇 가지 보인다. 사소한 결점으로는 김동인의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로 짐작되는 소설을 원용하며 교과서에 나온다고 언급하는데 내가 알기로 <발가락이 닮았다>의 주인공은 타고난 호색한으로 성매매 일삼기를 밥먹듯 하며 양에 있어서 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겠다고 호언하다가 결국 성병에 걸리는 인물이다. 이런 내용으로 교과서를 채우기는 좀 민망하지 않았겠는가 싶고, 따라서 모든 국어와 문학 교과서를 섭렵한 바는 아니지만 일단 작가의 착각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주인공이 홍윤아의 딸 민지의 신발을 벗겨보고 발톱 모양을 김정현과 유사하게 잘라낸 것을 발견하며 결정적인 단서를 얻는 장면인데, 빈약한 기억력을 다시 되살려 봐도 <발가락이 닮았다>의 주인공은 '발가락 모양이 닮았'기 때문이 아니라 '가운데 발가락이 다른 발가락 보다 더 긴 점'이 자신과 같아서 아이의 친부임을 주장한다. 이 부분도 소설을 일껏 원용한 보람이 없어지는 대목이다.

그건 그렇고 아이의 발톱이 억지로 짧게 깎여진 부분이 나오는데 김정현은 사망한 지 3개월이나 지난 시점이다. 발톱이 3개월 동안 자라지 않았을 리 없고, 강제로 짧게 깎인 흔적도 그렇게 오래 가지는 않는다.

또 윤철민이 살인과 연관되었다는 점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작가는 홍윤아가 김정현을 교살한 것을 단독 범행인 듯 처리한다. 구민석에게는 사체의 처리 때문에 홍윤아가 어쩔 수 없이 알렸겠지만 윤철민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추리소설가이므로 범행 후 사후처리를 위해 조언을 구했을까? 그렇지만 단순 절도나 폭행이 아닌 살인의 사후처리를 위해 조언을 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명확히 처리되지 못한 부분이다.

그 외에도 '15년 뒤에 찾을 수 있는 예금' 얘기가 나오는데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그런 예금 상품이 없다. 또 모텔 주인에게 강력범죄자 추적 때문이라는 이유를 대며 마스터키를 받아 문을 열고 들이닥쳐 사진을 찍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역시 작가의 바람일 뿐이다. 괜히 흥신소가 살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얼음공주는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아쉬운 점은 종장에 '나'와 얼음공주가 연인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행운흥신소>는 그 소재의 무한한 가능성으로 시리즈물로 나와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얼음공주의 매력이 연인으로 발전한 시점에 없어져버렸으니 통탄할 노릇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92437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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