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민음사 모던 클래식 60
모신 하미드 지음, 왕은철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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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수한 성적으로 프린스턴을 졸업한 파키스탄인 찬게즈는 기업 재정을 평가하는 언더우드샘슨에 입사 지원서를 낸다. 사장 짐은 찬게즈의 능력을 높이 사 그를 채용하고, 찬게즈 역시 회사의 기대에 부응해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럴싸한 직장에서 높은 연봉을 받고 안정된 미래를 약속받은 찬게즈는 자신이 미국에서 꽤 잘해냈음을 인식하고 우쭐해진다.

한편 찬게즈는 미국인 여성 에리카에게 매혹되는데 에리카 역시 찬게즈의 이국적인 면모에 호감을 느낀다. 에리카는 첫사랑 크리스를 잊지 못해 한동안 불안한 생활을 했었는데, 찬게즈를 통해 그런 아픔을 치유하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즈음 찬게즈가 필리핀의 기업을 평가하기 위해 출장을 떠난다.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평가 대상 기업은 언더우드샘슨의 칼질 아래 난도질되기 직전이었다. 그때 뉴욕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붕괴된다. 찬게즈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붕괴되는 뉴스를 본 순간 자신도 모르게 통쾌함을 느낀다. 그것은 찬게즈에게 혼란스러운 경험이었다. 그는 미국식 교육을 받고 미국이 약속한 안정된 미래를 기꺼이 받아들였으나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붕괴를 보며 미국인들의 죽음을 슬퍼하기 전에 미국을 무릎 꿇린 사람들에게 환호를 보낸 것이다.

사건 이후 미국은 강력했던 과거로 되돌아가기 위한 구호로 넘쳐나기 시작한다. 찬게즈와 같은 사람들에 대한 공항 검색이 강화되고, 인종적인 위협도 늘어난다.

파키스탄의 이웃 나라인 아프가니스탄이 미국의 폭격 아래 놓이고, 인도는 미국의 보이지 않는 지원을 받아 파키스탄을 침공하려는 듯 보였다. 찬게즈는 자신이 파키스탄인임을 자각하게 되고, 미국이 제공한 것들은 '자기에게 맞지 않는 옷'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부사장과 함께 칠레의 기업을 평가하러 간 찬게즈는 일에 집중할 수 없었고 네루다 시인의 집을 방문한 직후 사표를 던진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에리카를 찾아 갔지만 그녀는 자살한 뒤였다.

모든 것을 버리고 되돌아 온 찬게즈는 파키스탄으로 돌아가 대학 강사 자리를 얻은 후 자신이 깨달은 바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찬게즈는 반미분자로 분류되어 위협을 받기 시작한다.

 

소설은 찬게즈가 파키스탄을 방문한 미국인 관광객에게 자신의 과거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독자는 찬게즈가 단순한 호객꾼으로 관광객에게 차와 음식을 더 많이 팔기 위해 떠벌이고 있는 것으로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점차 그의 이야기가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하게 된다.

이야기가 계속 됨에 따라 독자는 찬게즈가 미국인이 무엇 하는 사람인지 알기 위해 애를 쓰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점차 긴장이 고조된다. 미국인의 양복 안주머니에 권총이 있을 수 있다는 암시 이후에 찬게즈가 반미인사로 분류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다시 미국인이 찬게즈를 암살하기 위해 파견된 사람일 수 있다는 암시가 계속된다.

소설은 결말에 이르러서 미국인이 권총을 꺼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가 권총을 꺼내 찬게즈를 암살하게 될지, 아니면 그들을 따르던 파키스탄인들이 역습을 가할지는 알 수 없다. 긴장은 끝내 해소되지 않는다.

 

소설의 다른 한 축은 에리카와 찬게즈의 연애담이다. 에리카는 America에서 취한 알레고리적 이름이고 찬게즈는 Chingiz Khan에서 따온 알레고리적 이름이다. 에리카는 찬게즈에게 호감을 갖지만 크리스라는 첫사랑을 잊지 못해 병을 얻는다. 에리카가 크리스를 잊지 못하는 것은, 미국이 과거 경찰국가로 세계를 호령하던 시기를 끝내 잊지 못하는 것으로 읽힌다. 에리카는 끝내 찬게즈에게서 성적 만족을 얻지 못하고 크리스로 화한 찬게즈에게 몸을 열 뿐이다. 반면 찬게즈는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하지 못한 채 크리스의 가면을 빌려 쓰고 에리카의 몸에 들어간다. 따라서 둘 사이에 최초의 성적 결합이 있은 직후 헤어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공상 속에서 맺어진 관계가 현실 속에서 이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에리카가 정신적인 붕괴 속에 자살하는 것은 미국이 곧 그러하리라는 작가의 예견일지도 모른다. 에리카가 이미 죽어버린 크리스 때문에 현실의 자기 몸과 정신을 망치듯 미국도 팍스 아메리카나의 환상 속에서 국가 지반의 붕괴를 못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미 붕괴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팍스 아케리카나의 환상을 지속시킬 이유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찬게즈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붕괴에 통쾌함을 느꼈다고 술회하는 자신을 불쾌하게 바라보는 미국인에게 묻는다. "당신도 미국의 무기가 적의 건축물을 폐허로 만들어 버리는 비디오클립을 보면 즐겁지 않나요?" 모신 하미드는 이 질문을 통해 미국적인 시각이 절대선이 아니라는 것, 그것이 절대선인 것처럼 통용되는 것은 미국이 전세계를 집적이며 반대 시각을 가진 곳에 폭탄을 떨구어대기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9.11.테러와 관련된 여러가지 음모설의 진위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그 사건으로 가장 이득을 얻은 사람은 부시와 보수우익들이다. 그들은 엄청난 부를 거머 쥐었고, 원하는 모든 법안들을 통과시켰다. 그들은 역사를 거꾸로 돌리고 있었지만 이에 저항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을 덮어 씌우기 위해 눈을 빛내는 부시와 보수우익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힘이 진보진영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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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 2015-05-17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면으로 맞설힘이 없어서 라기 보다는 비겁해서 용기가없어서 그랬죠. 모신 하미드는 무슨힘이 있어서 이런 얘기한게 아니잖아요. 힘이 없으면 말이라도 해야되는데 침묵했었죠. 그때는.. 테러는 안좋다는둥,미국도 너무한다는둥 분명하게 얘기하지않았고 대다수사람들의 판단에 명확한 일침을 놓아주지않았습니다.
 
철도원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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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o 철도원

 

하루 세 번 기차가 서는 호로마이 역장 오토마츠는 45년을 철도원으로 근무했다. 이제 호로마이 역은 타산이 맞지 않아 오토마츠의 퇴임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질 예정이었다.

오토마츠와 오랜 세월 함께 일하다 이제는 비요로 중앙역장이 된 센지가 정월을 함께 보내기 위해 호로마이 역을 찾는다. 오랜 지기인 둘은 함께 술을 나눠 마신다.

오토마츠에게는 아픈 과거가 있었다. 십 칠년 전,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자신의 딸 유키코를 평소 하던 그대로 수신호를 하여 기차에 태워 보냈고 그날 밤 기차로 유키코가 싸늘한 몸이 되어 돌아왔던 것이다. 그날 아내는 죽은 아이까지 깃발을 흔들며 맞이해야 하냐며 울었다. 그리고 아내도 얼마 전 죽어 오토마츠는 쓸쓸해지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어린 아이들을 보면 오토마츠는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그날 밤 어린 꼬마 여자 아이가 호로마이 역을 찾는다. 아이는 인형을 가지고 한참을 놀다가 돌아갔다. 다음 날 그 꼬마 아이의 언니인 듯 싶은 여자아이가 놀러 온다. 오토마츠는 마을 주지의 손녀인가보다 하고 그 아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 다음 날이 되자 놀러 왔던 아이들의 언니인 듯 싶은 여자 아이가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역을 찾는다. 그때서야 오토마츠는 자신의 딸 유키코가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러 자신을 찾아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토마츠는 유키코에게 '네가 죽었을 때에도 플랫폼의 눈만 쓸고 있었고, 책상에서 여객일지에 아무 이상 없다고 쓰고 있었다'며 울먹인다. 유키코는 '아버지 직업이 철도원이니까 저는 아무렇지도 않았다'며 오토마츠를 위로한다. 둘은 저녁을 함께 먹는다. 다음 날, 호로마이 역 홈 끝의 눈더미에 손깃발을 꼭 쥔채 쓰러진 오토마츠가 발견된다.

그의 운구를 위해 오래된 기차가 동원되고, 기차의 운전대를 손에 쥔 지기 센지는 눈물이 나려 할 때마다 경적을 힘차게 울린다.

 

o 러브 레터

 

가부키 거리에서 이십 여년을 쓴맛 단맛 다 겪은 다카노 고로가 포르노 숍 전무직을 맡아 일한 죄과로 경찰에 잡혀 갔다가 풀려난 날, 뜻 밖의 소식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가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사실 그는 아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 빚에 쫓긴 중국 여자들을 정식으로 일본에 입국시키기 위해 호적을 빌려주는 일에 오십만엔을 받고 동원 되었을 뿐, 그 여자와는 일면식도 없었던 것이다. 여자의 이름은 칸 파이란(康白蘭) 이라고 했다. 여자는 죽기 전 다카노 고로에게 서툰 일본어로 편지를 써 보냈고, 그 편지가 다카노 고로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편지에서 여자는 다카노 고로에게 몇 번이고 결혼해 주어 고맙다고 했고, 주변 사람들이 친절하다고 했다. 그 서툰 일본어와 고맙다는 말이 다카노 고로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조직의 똘마니와 함께 치바의 치쿠라로 간 다카노 고로는 그곳에서 파이란의 시신을 대하고 오열한다. 그리고 또 한 통의 편지. 파이란은 야쿠자에 걸려 몸을 팔면서도 자신의 호적상의 남편인 다카노 고로를 생각하며 미안해 했고, 자신이 죽으면 고로의 묘에 합장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고로를 사랑한다고 서투른 글씨로 말하며 몇 번이고 고로의 이름을 편지에 쓰고 있었다. 그리고 슬픈 인사, 짜이쩬(再見).

짜이쩬은 '다시 보자'는 의미지만 다시 볼 수 없는 파이란을 생각하며 다카노 고로는 오래 오래 울었다. 그리고 유골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생각한다.

 

<철도원>은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 다카쿠라 켄과 히로스에 료코 주연으로 영화화 되어 성공을 거두었고 <러브 레터>는 <파이란>이라는 제목으로 송해성 감독, 최민식과 장백지를 주연으로 국내에서 제작되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둘 다 영화로는 접하지 못했다.

<러브 레터>는 무척 아름다운 작품이다. 애틋함은 언제나 이루어질 수 없음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이루어질 수 없는 것 보다 더욱 애틋한 것은 '뒤늦게 알게 되는 것' 이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 레터>의 애틋함도 '뒤늦게 알게 되는 것'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운명이 교차하는 그 지점에서 인간은 울 수밖에 없다.

그 밖에 가정교사가 악마의 모습으로 나타나 한 집안을 풍비박산하게 만들어 그를 비난하지만 막상 가정교사 말고 거대한 쥐가 집 안에 있었다는 괴기스러운 내용의 <악마>,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와 자기를 살뜰히 거두어 돌보아준 아저씨 내외, 그리고 아내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츠노하즈에서>, '캬라'라는 뷰티크샵을 운영하는 신비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세일즈맨의 시각으로 그려내는 <캬라>, 바람이 난 남편과 그런 남편을 두둔하는 시댁 식구들에게 한 마디 하기 위해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찾아온다는 내용의 <백중맞이>, 구치소에서 알게 된 어리벙벙한 도금업자의 식구들에게 크리스마스 이브에 선물을 사가지고 가는 소매치기 이야기 <메리크리스마스, 산타>, 별거 중인 부부가 어릴 적 함께 가곤 했던 극장이 폐업하기 전 마지막 영화 상영을 하자 고향으로 내려 갔다가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오리온 좌에서 온 초대장> 등 여덟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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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슨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67
S.S. 반 다인 지음, 정광섭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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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의 주식중개인 벤슨이 자정이 30분쯤 지난 후 자택에서 살해 당한다. 소파에 앉아 책을 읽던 상태에서 정수리에 총을 맞고 살해 당했는데, 평소 착용하던 가발은 벗어놓았고 틀니도 빼 놓은 상태였다.

뉴욕 지방검사 메컴은 현장에서 여성이 피운 담배 꽁초가 발견된 점, 여성의 핸드백과 장갑이 벽난로 선반에 놓여 있다는 것을 근거로 벤슨이 살해 당하기 직전 함께 식사했던 세인트 클레어라는 여성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진행 시킨다.

하지만 메컴의 친구이자 미술애호가인 파이로 번스는 경찰들이 헛다리 짚고 있다면서 증거보다 우선시 할 것은 심리분석이라며 대립각을 세운다.

세인트 클레어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파이로 번스에 의해 깨어지자 그녀의 약혼자인 필립 리콕 대위가 범인으로 부각되고, 수상쩍은 행동을 보이던 그가 마침내 자백을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번에도 파이로 번스는 그의 자백에는 허점 투성이가 많은 것으로 보아 세인트 클레어가 벤슨을 죽인 것으로 믿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말한다.

엘빈의 친구인 리앤더 파이피, 엘빈의 가정부인 플래트 부인 등이 차례로 동기와 기회, 증거까지 갖춘 유력한 용의자로 부상하지만 파이로 번스는 전혀 엉뚱한 인물을 진범으로 가려내는데...

 

반 다인에 의해 탄생된 파이로 번스는 동기와 기회, 증거를 중시하는 기존 수사법을 반대하고 심리적 요인에 집중하는 인물로 대단한 미술애호가이며 철학과 심리학, 심지어 골상학까지 두루 섭렵한 박학다식한 탐정이다.

 

파이로 번스는 다분히 반 다인이 살아온 이력이 반영된 인물이다. 반 다인의 본명은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Willard Huntington Wright)로 본래 예술 평론가였다. 세인트빈센트 및 포모너 대학에서 수학하고, 1906년 하버드 대학원에서 영어학을 전공한 그는 고고학 및 인류학에 뛰어났고 미술과 오케스트라의 지휘에도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졸업 후 <로스엔젤레스 타임즈>지의 문예비평 담당자로 일을 시작한 후 여러 신문과 잡지에서 예술 평론과 고전 연구에 몰두하던 그는 몇몇 순문학 작품과 평론집을 발간하였는데 그다지 큰 성공은 거두지 못한다.

그러다 1923년에 신경쇠약에 걸려 병원 신세를 지게 되는데 의사는 일체의 독서를 금지시킨다. 하지만 독서광이었던 그가 책을 못 읽는 것은 너무나 큰 고통이었기에 의사에게 미스터리 소설과 같은 가벼운 소설은 허용해 주도록 요청했고, 의사가 이를 승낙하자 병상에서 일어날 때까지 미국과 유럽에서 출간된 거의 모든 미스터리 소설을 섭렵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동안 읽었던 미스터리 소설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을 마친 후 자신만의 새로운 미스터리 소설 집필 계획을 세운 후 세상에 내 놓은 작품이 바로 <벤슨 살인사건>이다.

 

파이로 번스는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이 지금까지의 탐정과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드러낸다.

 

진실을 아는 오직 한 방법은 범죄의 심리적 요인을 분석하여 그것을 개인에게 적용하는 일일세. 즉 진실한 단서는 심리적인 것이지 물적인 게 아닐세.

 

파이로 번스에 의하면 범죄는 일종의 예술작품과 같아서 마치 그림처럼 창조적 개성과 착상이 녹아나 있으므로 그러한 특성에 착안하여 수사하지 않고 드러나 있는 증거에 천착할 경우 진실에 다가갈 수 없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무엇을 하든 저마다의 성격에 따라 얼마간 독자적인 방법을 취할 수 밖에 없고, 범죄 역시 그러한 개성의 직접적 표현이라는 것이다.

 

다소 참신하게 느껴지는 파이로 번스의 이러한 주장은 그러나 <증거에 의한 범죄의 입증>이라는 문제에 이르렀을 때는 다소 모호하게 얼버무려 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두번째 작품인 <카나리아 살인사건>과 세 번째 작품 <그린 살인사건> 이후에는 반 다인도 심리적 요인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기 보다는 다소 완화된 입장으로 한 걸음 물러서게 된다. 

 

12권의 미스터리 소설을 남기고, 미스터리를 '지적 게임'이라고 주장하며 '미스터리 작가가 깨우쳐야 할 20조항'을 남긴 반 다인은 1939년 4월 11일, 51세의 나이에 관상동맥혈전으로 세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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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도둑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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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수국꽃 정사(情死)

 

사진학교를 졸업한 후 대형 출판사 사진부에서 이십 년 남짓 일해온 기타무라는 버블이 무너지자 정리해고를 당한다. 가족들에게는 프리랜서 카메라맨으로 나설 것이라 큰소리를 쳤지만, 불가능한 얘기라는 것은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새로운 디지털 장비를 사서 심기일전해 보려 했지만 오래된 수동식 카메라에 익숙한 몸은 잘 따라주질 않았고, 잔뜩 남은 장기주택불입금과 불투명한 미래가 기타무라를 주눅들게 만들었다. 

기타무라는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경마장을 찾아 도쿄 근교로 떠난다. 경마에서 탈탈 털리고 온천장 여관을 찾은 기타무라는 온천 지역이 자신의 처지처럼 전락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신칸센이 생기자 사람들은 여관에서 묵어갈 바에야 집으로 돌아가버렸고, 떠나야할 때 떠나지 못한 사람들만 남아 쇠락해가는 여관과 술집을 지키고 있었다.

술집을 찾은 기타무라는 그곳에서 스트립걸을 만난다. 손님은 기타무라 한 명 뿐이었다. 스트립쇼는 쇼걸이 옷을 다 벗은 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는 사람이 쇼걸과 관계를 갖는다는 식의 프로그램으로 진행 되었다. 하지만 기타무라는 그럴 기분이 아니었고, 여자 역시 기타무라의 마음을 눈치 챈다. 둘은 따로이 술을 마시러 간다.

 

여자의 이름은 릴리였다. 릴리는 기타무라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왠지 기타무라의 분위기가 여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 것 같았다. 릴리는 자신이 어릴 때 유부남을 만나 사랑에 빠진 일, 아이를 낳은 일, 그리고 아이를 빼앗기고 쇼걸로 돌아와 밥벌이를 하다가 손님으로 온 자신의 아이를 만난 기구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 놓는다. 그리고 기타무라에게 자신과 함께 죽어달라고 부탁하고, 기타무라는 자연스럽게 좋다는 대답을 건낸다. 장기불입금에는 생명보험이 딸려 있었다.

정사를 위해 둘은 여관에 들고 그곳에서 술을 마신다. 릴리는 기타무라가 찍어준 폴라로이드 사진을 보며 자신이 그처럼 예쁘게 나온 사진은 처음이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린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여관 종업원이 둘이 든 방 문을 노크한다. 릴리가 일하는 술집 주인이 목을 메달았다고 했다.

릴리는 폴라로이드 사진을 기타무라와 나눠 가진 후 닷짱의 장례를 치러주기 위해 떠난다. 택시를 잡아탄 기타무라는 젊었을 적 그랬듯 양손의 검지와 엄지손가락으로 프레임을 만들어 앞 유리를 향해 구도를 잡아본다.

 

o 나락(奈落)

 

12월 어느 날, 신주쿠 동양물산 본사 38층 엘리베이터에서 총무부 가타기리 타다오가 추락해 사망한다. 엘리베이터 문은 열렸지만 실제 승강기는 도착하지 않았는데 기타기리 타다오는 그것을 모르고 발을 내딛은 모양이었다.

가타기리는 처음 입사할 적에는 총망받는 사원이었지만 어찌 된 이유인지 총무부에 들어간 이후 사원들 경조사나 챙기며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과장 대리에 머물고 만다. 입사 동료 둘은 그동안 임원으로 차근히 승진해 사장 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타기리가 죽고 난 후 그의 죽음에 모두들 일말의 책임을 느낀다. 가타기리와 다툰 직원, 그의 청을 매정하게 거절한 동료 등 그의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타기리의 죽음은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모두들 애써 자위하며 남에게 책임을 미루는 과정에서 다툼이 일어난다. 그 와중에 회사 전체의 비리를 폭로하겠다는 발언까지 나오고, 동양물산 회장은 가타기리가 회사를 망하게 하기 위해 전심전력을 기울여 주도면밀한 계획을 짠 후 자살한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한 생각마저 든다.

 

o 죽음 비용

 

"만약 죽는 순간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면 자네는 얼마를 내겠나?"

 

오우치 소지는 친구 고야나기를 명부에 보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고야나기가 내뱉었던 말을 생각해 낸다. 오우치 소지는 그 말이 못내 가슴에 고여 신경이 쓰였는데, 얼마 후 고야나기의 아내가 오우치 소지를 찾아와 고인의 통장에서 사망 직전 1억엔이 인출되었다는 말을 전한다. 오우치 소지는 그 돈이 틀림 없이 죽음 비용이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비서를 시켜 알아보게 한다.

라이프서비스라는 이름의 회사는 곧 사람을 보내 죽음에 이르는 길을 소개한다. 고통없이 즉사하는 방법, 편안하게 잠이 든 뒤에 죽는 방법, 인간의 오감이 전부 완전한 행복감을 맛보면서 나름한 봄날의 햇살을 받는 천천히 생을 마감하는 방법 세 가지가 있으며 각각의 방법에 따른 비용이 다르다고 했다. 오우치 소지는 자신도 죽음과 멀지 않은 처지였기 때문에 사기에 불과하다는 비서의 말보다 라이프서비스 사원의 말에 관심이 가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얼마 후 늦게 얻은 후처의 부정, 둘째 아들이 비서를 농락한 일 등 오우치 소지가 원치 않았던 일들이 일어난다. 특히 비서 미야코는 오랫동안 자신을 보필해 오고 있었으며 나이와 격식을 버렸다면 부부의 연을 맺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기에 더욱 가슴이 아팠다. 

마침내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오우치 소지는 라이프서비스를 기억해 낸다. 하지만 그 회사는 사기업체로 판명되어 경찰 수사가 시작된 뒤였다. 마지막 희망이 사라진 채 죽어가던 오우치 소지는 비서 미야코가 자신을 안아주자 라이프서비스가 제시한 마지막 죽음의 길이 지금이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눈을 감는다.

 

o 히나마츠리

 

도쿄올림픽을 앞 둔 2월, 야요이는 오히나사마는 2월에 꼭 바람을 쐬어줘야 시집을 갈 수 있다는 할머니의 말씀을 떠올리며 히나마츠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술집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야요이 혼자서 저녁을 차려 먹고 쓸쓸히 잠드는 일이 많았다.

그때 요시이 아저씨가 야요이의 집을 찾는다. 요시이 아저씨는 엄마보다 열 살이 어렸는데 예전에 옆집에 살던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엄마에게 구애를 했지만 엄마는 나이차가 너무 많다며 거절했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하게 된 후로는 가끔 요시이 아저씨가 야요이를 찾아와 선물을 주고 갔다. 때로는 함께 목욕탕에 가기도 했다.

그날도 함께 목욕탕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전파사 앞을 지나게 되었다. 요시이 아저씨는 텔레비전을 사주겠다고 약속한다.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야요이는 요시이 아저씨 같은 아빠를 달라고 부탁한다. 삼짓날이 지나버렸고 오히나사마는 2월 바람을 쐬지 못했지만, 야요이는 하느님도 하룻밤 정도는 대충 눈감아 주시겠지 하고 생각한다.

 

o 장미도둑

 

메이프린세스호를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아버지에게 '나'는 영어로 편지를 쓴다. 자주 쓰지는 못하지만 기항하는 곳에서 받으실 수 있도록 애를 쓴다.

선생님이 바뀐 일, 옆집 헬렌 패트릭과 좋아 지내는 일, 애써 가꾼 장미가 도둑 맡는 일 들을 쓰는 동안 '나'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어린 아이의 시각으로 해석하는데, 그 와중에 엄마의 불륜 사실이 편지를 통해 전달된다.

 

o 가인(佳人)

 

어머니의 취미는 어머니가 사시는 시골 동네 처녀들을 중매하는 일이었다. 신이치는 자신의 부하 직원 요시오카 히데키를 떠올린다. 훤칠한 키에 운동도 잘했고 업무 능력도 뛰어났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서른 여덟이 되도록 애인이 없었다. 신이치는 그에게 동성애자인지, 혹은 성불능자인지 묻는다. 신이치는 단호히 아니라는 답변을 한다. 흡족해진 신이치는 어머니에게 인사를 시키는데, 어머니를 본 신이치가 당황하더니 잠시 후 어머니와 드라이브하고 식사를 하겠따며 모시고 나간다. 롤리타 컴플렉스의 반대인 연상(年上) 컴플렉스를 떠올린 신이치와 아내는 어지러운 마음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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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꽃 정사>가 가장 마음에 든다. 아름다운 작품이다. 퇴락해 가는 사람과 지역을 배경으로 정사(情死)를 결심하고 여관에 들어 술을 마시는 두 사람. 담담하게 그려지는 그 모습에서 절제된 슬픔을 느끼게 된다.

그 외의 작품은 딱히 마음이 가지 않는다. 하나의 소설집으로 묶이기에는 일관성이 부족해 보이는데 국내에서 따로이 선집으로 만든 것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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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들러 리스트 - 상
토마스 케닐리 / 오월 / 1994년 3월
평점 :
절판


1939년 9월 6일, 지그문트 리스트 장군의 기갑 사단이 주데텐란트에서 북쪽으로 진격하여 폴란드 남쪽의 그라쿠프를 점령한다. 모든 유태인에게 강제적인 호적 및 주거 등록, 이주가 명령된다.

오스카 쉰들러는 1908년 오스트리아의 모라비아 산악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의 고향은 즈비타우라는 산업 도시였고 아버지 한스 쉰들러는 50여명의 직공을 거느린 사업가였으며 종교는 가톨릭이었다. 에밀리라는 품격 있는 여성과 결혼 했는데, 사이는 데면데면 했던 것으로 보인다. 쉰들러는 다른 여자들과의 관계를 굳이 에밀리에게 숨기려 하지 않았다. 그는 화려한 옷차림과 좋은 술을 사랑했고, 천성적으로 주목 받는 것을 좋아했다. 초기에는 국가사회주의에 찬성했던 것으로 보이고 나치 당원이었다.

그런 오스카 쉰들러가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크라쿠프로 가서 이츠학 슈테른을 만난다. 그는 유태인 회계사였다. 그들이 처음 만날 때 슈테른은 법에 의해 자신이 유태인이라는 것을 쉰들러에게 밝힌다. 쉰들러는 대수롭지 않게 자신은 독일인이라고 소개했을 뿐이다.

쉰들러는 레코드라는 이름의 파산한 회사를 슈테른을 통해 인수한 후 유태인 자산가들에게 지분을 나누어 주겠따며 투자를 권한다. 어짜피 모든 재산을 빼앗길 것이 자명한 이치였으므로 유태인들은 쉰들러의 '말'이 지켜지길 기대하며 그에게 돈을 건낸다. 

회사를 인수한 쉰들러는 좋은 술과 담배, 소시지, 갖가지 과일과 통조림 등 블랙 마켓에서 사들인 물건으로 두루 환심을 사고 회사를 법랑 공장으로 변모시킨다. 군부에 줄이 있었고, 특히 군부에 같은 성을 쓰는 장군이 있었기 때문에 종종 쉰들러가 장군의 인척이라는 고마운 착각의 혜택도 누린 덕에 쉰들러는 군부에 식기를 독점 공급하는 계약을 따낸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유태인에 대한 처우가 점점 나빠지더니 공공연한 학살이 자행되기 시작한다. 쉰들러 공장에 출근하는 노동자들은 유태인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에 살도록 강제되었는데, 나치 친위대들은 수시로 유태인 지구에 들어가 병든 노인과 어린아이를 사살했다. 그들이 노동력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쉰들러는 그들이 살해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숙련노동자이며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 뿐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아무런 기술이 없는 자들에게도 카드를 발급해 주었다. 쉰들러의 법랑 공장에 일하러 오는 유태인들은 공장에 와서야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수용소장으로 아몬 괴트가 임명된다. 그는 국가사회주의를 맹신했고, 유태인은 지구상에서 멸종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 자였다. 그는 수용소 내에 있는 자신의 저택에서 저격 총으로 마음 내키는 대로 유태인을 쏴 죽였다. 쉰들러는 그의 광기를 조절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뇌물을 쓰고 다른 한편으로는 권력의 진정한 사용이 어떠해야 하는지 대해 반복적 주입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일시적인 효과만 발휘했을 뿐이다.

쉰들러는 유태인들을 근본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조치를 강구한다. 바로 공장 내에 자신만의 수용소를 짓는 일이었다. 아몬 괴트에게 오랫동안 공을 들인 끝에 쉰들러는 자신이 바라는 바를 이루어 낸다. 쉰들러 공장의 유태인들은 2천 칼로리 이상의 식사를 했고 담배를 피웠다. 친위대원들은 쉰들러의 허가 없이 공장에 들어올 수 없었다. 유태인들은 쉰들러의 공장으로 가는 것이 곧 살아남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 들자 유태인들을 대량으로 아우슈비츠에 이송시켜 독가스로 살해하는 일이 빈번해졌고, 법랑 공장을 계속 유지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쉰들러는 자신이 벌어들인 돈의 대부분을 들여 고향에 포탄 공장을 짓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숙련 노동자들의 충원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공장에 데려갈 유태인 명단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쉰들러 리스트' 이다. 리스트의 작성 과정에서 끊임 없이 수정과 변경이 이루어진다. 이송 중 착오로 여자들이 아우슈비츠행 기차를 타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쉰들러의 노력으로 유태인 1천명 이상이 포탄 공장에 안착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 낸 포탄과 탄피들은 모조리 검사에서 불합격 된다. 쉰들러는 그런 상황을 유쾌하게 받아들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포탄들이 합격한다는 것은 곧 살상 무기로 사용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6개월 이상을 쉰들러 공장은 쓸모 있는 아무것도 생산해내지 못했다. 검사에 계속 탈락할 경우 가해질 조치들에 대비해 다른 공장에서 반제품을 사다가 검사를 맡는다.

처칠의 음성으로 전쟁이 종료되었음이 라디오를 통해 선포되자 쉰들러는 공장 노동자와 친위대원들을 모아 놓고 긴 연설을 마친 후 도피길에 오른다. 떠나기 전 유태인 노동자들 중 한명이 자신의 금이빨을 뽑아 녹여 만든 반지를 선물한다. 그 반지에는 히브리어로 '한 사람을 구함은 세계를 구함이로다'라는 탈무드 경구가 세겨져 있었다. 그리고, 쉰들러가 잡혀 전범 취급 당할 것을 우려하여 그를 두둔하는 편지를 쥐어준다.

 

작가가 1980년 캘리포니아 베벌리힐스의 한 가방 가게에서 우연히 '쉰들러 생존자'인 레오폴트 페페르베르크를 만나 오스카 쉰들러에 대해 듣고난 후 흥미를 느껴 각국에 흩어져 있는 50여명의 생존자들을 면담하고 쿠라쿠프 등을 답사한 후 르포르타쥬 형식으로 구성한 소설이다. 소설은 다양한 일화를 다양한 시각으로 담고 있다. 소설적 상상력은 개연성 있는 선에서 억제되고 있다.

쉰들러는 나치 당원이었으나 적극 동조한 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그가 사회주의적인 사상이나 그 밖의 특정한 정치적 신념을 훈련받은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성자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고 오히려 돈과 술, 그리고 여자를 좋아한 어찌 보면 속물적인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태인들의 생존을 위해 네 번의 체포를 감수했고 끝내 자신의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을 구출한다.

쉰들러의 행동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은 그가 이츠학 슈테른을 만나 나눈 대화에 있을 지도 모른다. '법에 의해 제가 유태인임을 밝히고자 한다'는 슈테른의 말에 쉰들러는 심상히 '나는 독일인이니 유태인과 독일인이 이제 대화를 나누고 있군요' 라고 답한 대화 말이다. 그는 상대편이 유태인이든 자신이 독일인이든 그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둘 다 인간이고 욕망하는 것은 누릴 권리가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쉰들러는 그 이외의 구분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동의하지 못했고 심상한 태도로 유태인들의 보호에 자신의 재산과 안위를 희생했다. 그는 유태인을 구조한 자신의 행위를 구태여 기록으로 남겨 과장한 적이 없다. 훈련된 정치적 신념이나 도덕적 당위에 메달린 행위가 아니었고 본능적인 행위였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생각한다.

 

쉰들러는 전 후 아르헨티나로 가서 10년간 들쥐를 키우고 농사를 짓는다. 사업들은 모두 실패한다. 아내 에밀리와 헤어진 후 다른 여인을 만나는데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던 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쉰들러의 생존자들은 그를 위해 모금을 벌였고, 그가 독일 정부로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애 쓴다. 1974년 10월 프랑크푸르트 철도 역 근처 자신의 조그만 아파트에서 쉰들러는 숨을 거둔다. 예루살렘은 쉰들러를 '정의로운 사람' 으로 선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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