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그네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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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7세의 레오는 오리나무 공원과 넵툰 수영장에서 '랑데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레오는 동성애자라는 '목덜미에 두른 불편한 침묵'을 벗어 던지고 가족으로부터 떠날 수 있다면 수용소로 끌려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레오가 수용소로 끌려갈 때 할머니는 '너는 돌아올 거야'라고 말한다.

수용소에서의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 질병에의 노출 등은 사람들을 생존 이외의 것에 대해 무신경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동료가 죽으면 슬픔을 느끼기 보다는 옷가지를 벗겨내는 데 골몰했다. 강제노동수용소 사람들을 가장 괴롭힌 것은 굶주림이었다. 굶주림은 '배고픈 천사'의 모습으로 모든 이들에게 깃들어 있었다. 주식인 양배추수프는 '몸에서 살을, 머리에서 이성'을 앗아갈 정도로 형편 없는 것이었고, 음식물 쓰레기 더미를 뒤져 감자 껍질을 먹어야 했다. 그렇게 하더라도 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다.

굶주림은 남자와 여자의 구별을 없앤다. 그들은 뼈와 살만 남아서 성적인 정체성이 제거된 동류가 된다. 때때로 물물교환을 위해 석탄을 들고 나선다. 석탄은 흔전만전이었다. 어느 날 레오는 구걸을 하다가 러시아 노파에게서 한 번도 쓰지 않은 깨끗한 하얀 수건을 선물 받는다. 물물교환에서 먹을 것으로 바꿀 수도 있었지만 흰 손수건을 간직하는 행위를 통해 고향에 돌아갈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만성적인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고 벼룩에게 피를 빨리면서도 그들은 언제 자신들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러시아인들은 '곧'이라는 애매한 말만 했으므로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자신들이 계속 일 하도록 사육당하기만 할 뿐 집에는 돌아갈 수 없는게 아닐까 불안해한다.

5년째 접어들자 러시아인들이 임금을 지급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위를 만족시키기 위해 그 돈으로 기름진 음식을 사먹었다. 그러자 뼈에 살이 붙기 시작했고, '남자'와 '여자'로 변모하여 상대편 성에게 잘보이고자 했다. 눈(目)의 허기가 온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레오에게 편지가 온다. 어머니가 보낸 편지에는 어린 아이의 사진이 붙어 있고 출생 연도가 쓰여 있을 뿐 아무런 설명도, 안부인사도 없었다. 부모님은 레오에게 몇 년만에 보낸 편지에 스무살 넘게 차이 나는 동생의 출생을 알렸을 뿐이었다. 레오는 대체물이 생겼으니 이제 자신은 필요 없다는 얘기라 생각했고 고통을 느낀다.

갑자기 레오는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러시아인들은 아무런 얘고도 없이 갑자기 그들을 풀어주었다. 수용소에서 체득한 두려움들 역시 레오를 따라 고향으로 돌아왔기에 레오의 가족은 레오를 불편해했고 레오 역시 가족들을 불편해한다. 수용소에서 알게 된 그들은 서로를 아는 척하지 않았고, 오직 고생 없이 수용소 생활을 한 이발사만이 편지를 보내온다.

레오는 자신이 '풀려난 몸으로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외톨이가 되었고 자기를 기만하는 증인이 되었다. 그것은 내 안에서 일어난 커다란 불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읽다 보면 쥘 르나르의 <홍당무>가 생각난다. <홍당무>처럼 소소한 일들에 대한 소소한 단상들이 이어진다.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니 극적인 사건 같은 것이 전개될 법도 하건만, 그런 이야기는 거의 없다.

레오는 시종일관 '담담한' 어조를 유지한다. 문제는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것들이 모두 수용소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특수한 의미를 띤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특수한 의미를 표현할 말이 적당치 않을 때에는 작가가 만든 새로운 단어들이 등장한다. 숨그네(Atem+Schaukel) 역시 그러한 단어다. 

 

1944년 여름 소련 적군이 루마니아를 점령한 후 파시스트 독재자 안토네스쿠를 처형한다. 루마니아는 소련에 항복했고, 소련은 나치에 의해 파괴된 국가 재건을 위해 루마니아에 거주하는 독일인들을 넘겨달라고 요구한다. 루마니아에 살던 17세에서 45세 사이의 독일인은 남녀를 불문하고 소련의 강제수용소로 유형을 간다. 

독일인이 소련 강제수용소에서 노역을 했다는 것은 소련이 1917년 혁명 기간에 견지했던 세계주의를 폐기 처분하고 스탈린의 국가사회주의 틀 안에서 민족이라는 허구의 개념을 통치 수단으로 휘두르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독일 민중과 러시아 민중은 2차 세계대전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 기본적으로 2차 세계대전은 자본의 팽창 때문에 발생한 자본가들의 힘겨루기였지 민족 전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의 참혹한 결과에 대해서는 패전국 민족에게 책임을 물었다. 이러한 견해에 쌍심지를 켜고 반박을 하는 사람들과 굳이 토론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도 나는 애매한 개념이라고 생각할 뿐더러 국가라는 것도 레짐을 비롯한 여러 층위에서 말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이 연일 독도와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며 민족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사람들은 '일본놈들' 운운 하며 적개심을 드러낸다. 사실 아베와 일본 자본가들은 독도와 위안부, 센카쿠 등 극우적이고 자극적인 문제를 화두로 삼지 않으면 자국 민중들의 지지를 획득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버블 시대처럼 흘러가도록 내버려 둔다면 자민당으로 대표되는 일본 자본가들은 여러가지 문제에 직면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본의 극우적인 발언과 입장 표명에 대해 중국과 한국 정부가 겉으로는 반발하고 있지만 사실 손해날 것은 없는 장사이다. 독도, 센카쿠열도, 위안부, 신사참배 그런 자극적인 단어들만으로도 골치 아픈 여러 문제들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기 마련이고 얼마든지 민족적인 감정을 자극하여 분열을 야기할 소지가 있는 민감한 문제들을 뭉개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나라 정상들은 짜고 치는 고스톱에서 어떤 얼굴 표정을 지을 것이냐가 고민이지 고스톱 판을 엎을 생각은 전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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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사랑
김영현 / 실천문학사 / 199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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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에서 기독교를 믿는 지주 집안에서 나고 자란 최덕근은 젊었을 적 남하하여 서북청년단에 들어갔다. 지리산은 물론이고 제주도까지 '빨갱이를 때려 잡기' 위해 뛰어다니며 총질을 해댔다. 포목점을 벌여 한때는 제법 돈을 손에 쥐기도 했고, 재혼을 하여 가정도 새로 이루었다. 아내도 재취자리였는데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영훈을 데리고 온다. 얼마 후 영민이 태어났고 네 식구는 그런대로 무던하게 지냈다. 이제 육십줄에 접어든 최덕근은 '주님 섬기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막내 영민이 출세하기를 바라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처남 문상사가 덕근의 집을 찾는다. 문상사는 월남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 후 세상에는 절대적인 진리나 가치는 없으며 결과만이 중요하다고 믿게 된 속물적인 사람이었다. 아들 경식이 대입에서 미끄러지자 서울의 매형 집에서 재수를 시키면 돈도 아끼고 결과도 좀 더 좋지 않겠는가 하는 맘에 부탁을 하러 온 것이다. 최덕근은 내심 거절하고 싶었지만 체면상 거절하지 못한다.

 

시절은 5공화국 말기였고 영민은 소위 운동권 대학생이었다. 방에는 레닌과 전봉준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고 써클활동을 하며 사회과학책을 학습했으며 데모에 참가하고 있었다. 반면 서른 중반의 영훈은 한때 러시아 시인 예세닌을 암송하며 삶을 예찬했으나 이제는 니체에 빠져 얼핏 보면 께느른한 삶을 살고 있었다. 경식은 입시 학원에서 고향 친구 태수를 만나고 서울 생활에 점차 적응하게 된다.

 

영민은 현장으로 들어간 재희를 향한 애틋한 마음 때문에 자신이 나약한 감상주의자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을 다잡지 못하다가 시위의 지도부 역할을 맡게 된다. 영민은 시위 도중 끌려가 구속되지만 6.29 이후 유화 조치 덕에 풀려난다. 영민은 울산으로 내려가 단체일을 하고 있는 재희에게 애틋한 마음을 털어 놓고 재희 역시 영민을 향한 그리움을 인정하며 둘은 하룻밤을 함께 보낸다.

한편 경식은 재수학원 근처에서 은숙을 만난다. 은숙은 강원도 간성에서 함께 초등학교를 다녔던 동창으로 대대장의 딸이었다. 은숙이 대학생인것 같아 보여 경식은 자기도 모르게 국립대생이라고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 후로 은숙에 대한 짝사랑을 키워간다.

 

6.29로 직선제는 쟁취했지만 부패한 정권이 언론과 군대, 경찰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잠시 유화조치를 통해 국민의 마음을 진정시킨 정권은 곧 폭압적인 본성을 드러내 노동조합 파괴에 나선다. 노조파괴꾼 제임스 박이 이끄는 일단의 무리들이 재희가 일하는 단체를 한밤중에 급습하고, 재희가 그들에게 윤간을 당한다. 재희는 정신병원에 입원해 가까운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 이를 본 영민이 복수를 맹세한다.

영훈은 동생이 복수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고, 성공하더라도 그에 대한 댓가가 너무 크기 때문에 허무주의자인 자신이 대신 복수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호텔을 나서던 제임스 박을 살해한 영훈은 현행범으로 체포된다. 영훈은 진정한 사랑이란 악령처럼 이 땅 위를 거니는 모든 죄악들과 싸우는 일이며, 그러나 이 모든 일들도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그저 그림자가 스쳐가듯이 무의미할 뿐이라는 의견을 피력한다. 경찰은 그의 죄의식 없음과 허무주의적인 견해 때문에 정신병 감정을 의뢰한다.

은숙은 경식에게 자신이 쓰던 손 때 묻은 영어사전을 선물로 주며 미국으로 떠난다. 영어 사전 속에는 은행잎 하나가 곱게 말려져 있었는데 거기 쓰여 있는 날짜는 그 언젠가 경식이 국민학생일 때 은숙에게 은행잎을 주워준 날짜였다.

영민이 구속될 때 쓰러졌던 덕근은 몸이 회복되자 아들 영민의 방에서 북한과 관련된 책들을 읽기 지작한다. 그리고 황해도 남천, 자기 고향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알아보기 시작한다.

 

퇴근 후 운전을 하다가 문득 대학 입학 시절이 떠올랐다. 가슴 두근 거리던 그때가 벌써 20년 전이라는 사실이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그리고 <풋사랑>의 이야기들이 매우 먼 옛날 일처럼 치부되고, 역사의 진보는 우연의 산물인 것처럼 여겨지고, 진실과 정의를 왜곡하는 일이 마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처럼 눙쳐지는 작금의 현실에 묵지근한 분노가 느껴졌다.

 

도대체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가. 우리를 그토록 분노와 슬픔과 열정에 떨게 했던 그 시대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렇게 많은 젊음들이 불꽃처럼 사라지고 난 뒤에, 그 대신에, 우리들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런 추억도, 그리움도 없이, 마치 버스를 갈아타기라도 하는 것처럼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러 나서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인가.

 

작가는 책머리에서 회고담류 소설을 쓸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욕망은 어쩌면 억울함인지도 모른다. 한 시대의 불의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젊음을 송두리채 바쳤던 사람들, 하다 못해 그런 사람을 아는 사람들은 '버스를 갈아 타듯'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러 갈 수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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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의 함정 동서 미스터리 북스 119
세바스티앙 자프리조 지음, 지정숙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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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신데렐라의 함정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아가씨가 병상에서 깨어난다. 손과 얼굴에 화상을 입고 기억을 잃었지만 목숨은 건진 것이다. 의사들은 그녀의 집에서 화재가 일어났고, 함께 지내던 돔므니까 로이(도)라는 아가씨는 안타깝게도 죽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이 미셸 이졸라(미)라고 했다. 보모 잔느 뮈르노가 미의 신병을 인수하러 병원으로 온다.

미는 자신의 기억을 찾기 위해 친구들을 만나보려 하지만 잔느 뮈르노는 좋은 생각이 아니라면서 꺼리는 태도를 보인다. 보모를 따돌리고 기억을 찾기 위해 노력하던 미는 과거의 자신이 방탕하고 제멋대로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던 중 보모와 언쟁 중에 묘한 이야기가 나온다. 미는 자신이 사실은 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미는 억만장자 상드라 라페르미의 양녀였다. 그녀에게는 도라는 사촌이 있었는데 미의 처지를 부러워했다. 도는 상드라 라페르미에게 편지를 보내 아첨을 떠는 한편 미의 흠을 일러바쳤다. 만약 미가 죽는다면 모든 유산은 도의 것이 될지도 몰랐다.

그때 미의 보모 잔느 뮈르노가 도에게 접근해온다. 그녀 역시 미가 죽기를 바라고 있었다. 도는 미와 외모가 흡사했으므로 미를 죽이고 도가 얼굴에 화상을 입은 후 미인척 행세한다면 사람들은 속아 넘어갈 것이었다.

이제 깨어난 아가씨는 자신이 미가 아닌 도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 프랑소와 샹스라는 청년이 접근한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가씨를 다시 혼란에 빠뜨린다. 그는 깨어난 아가씨가 미일 것이라고 말한다. 청년은 우체국에서 일했는데 우연히 도와 잔느 뮈르노의 계획을 엿듣게 되었고 이를 미에게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가 오히려 선수를 쳐서 도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깨어난 아가씨는 이제 자신이 도인지, 아니면 미인지 알 수가 없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사건을 조사하는 탐정이자, 증인이었다. 또 피해자이자 범인이기도 했다. 유서가 공개되어 유산을 받을 사람이 미가 아닌 도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미가 도를 죽인 후 도 행세를 했을 가능성도 커진다.

 

o 살인급행 침대열차

 

마르세유 발 열차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화장품회사 외근 사원인 조르제뜨 또마라는 이름의 매우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경찰은 같은 침대차에 탄 가로디, 까브르, 봉방, 리보라니, 달레스 등을 참고인으로 조사하려 하는데 참고인들도 차례로 살해당하기 시작한다.

조사 중 침대차에 사실은 한 명이 타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누군가 그 자리에서 잤다고 증언하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은 여자였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남자라고 증언했다. 그 자리에서 잤던 사람은 시의원의 아들 다니엘로 가출하여 기차에 몰래 탔던 것인데 다니엘이 살해 현장을 목격했었다. 범인은 누구인가?

 

나는 20살 처녀, 억만장자의 상속인입니다.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것은 교묘하게 위장된 살인사건 입니다. 나는 그 사건의 탐정입니다. 또 증인입니다. 그리고 피해자입니다. 게다가 범인이기도 합니다. 나는 그 네 사람 모두입니다. 도대체 나는 누구일까요?

 

부알로&나르스잭을 거느리고 있던 '크라임 클럽'에서 1962년 5월 <살인급행 침대열차 The 10:300 from Marseille>로 데뷔한 자프리조의 두번째 작품 <신데렐라의 함정 Trap for Cinderella>을 소개하는 이 선전문은 당시 미스터리 팬들에게 강렬하게 어필했고,  책이 나온지 48시간 만에 영화판권의 권리가 팔렸다. 자프리조의 본명은 장 바띠스트 로시(Jean Baptiste Rossi)로 미스터리 소설을 쓰기 전에는 일반소설을 썼다.

함께 실린 <살인급행 침대열차>는 살인의 모티프 측면에서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ABC 살인 사건(1936년 발표)>의 아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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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 재습격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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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o 빵가게 재습격

 

어느 날 '나'와 아내는 참을 수 없는 공복감 때문에 깨어난다. 당시 '나'는 법률사무소에 다니고 있었고, 아내는 디자인스쿨에서 사무를 보고 있었다. '나'는 친구와 빵가게를 습격했던 이야기를 꺼낸다. 꼭 그 이야기를 해야 할 필연성 따윈 없었지만, 어쩌다보니 얘기가 나온 것이다.

10년도 전에 친구와 빵가게를 습격했을 때 빵가게 주인은 바그너의 <서곡집>을 틀어놓고 있었다. 가게 주인은 자신과 함께 레코드를 끝까지 들어준다면 가게 안의 빵을 마음껏 가져가도 좋다고 제의했고, '나'와 친구는 별다른 생각 없이 <탄호이저>와 <방황하는 네델란드인>의 서곡을 들은 후 빵을 가방에 쑤셔넣고 나왔다.

아내는 지금 느끼는 공복감은 분명 당시의 기묘한 상황에서 온 저주라고 하며 다시 한번 빵가게를 습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은 24시간 운영하는 빵집을 열심히 찾지만 끝내 못 찾고 맥도날드를 습격하여 빅맥 서른 개를 강탈한 후 적당한 빌딩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말없이 먹어치운다. '나'는 꿈 속에서 보았던 해저 화산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음을 깨닫고, 보트 바닥에 누워 밀물이 적당한 곳으로 실어다 주기를 기다린다.

 

o 코끼리의 소멸

 

마을 교외에 있던 작은 동물원이 경영난을 이유로 폐쇄되자 마을에서 코끼리를 떠안는다. 함께 온 사육사는 와타나베 노보루라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노인이었는데 코끼리와 의사소통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별일 없이 1년쯤 시간이 흐른 후 어느 날 코끼리가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나'는 그 코끼리에 관해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신문기사를 빠짐 없이 스크랩하고 있었고, 때로 코끼리를 보러 뒷동산에 오르기도 했었다. 코끼리는 발자국도 남기지 않았고, 족쇄가 풀린 흔적도 없었기 때문에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 옳았지만 모두들 그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고 열심히 코끼리를 수색했다. 코끼리는 끝내 발견되지 않는다.

 '나'는 코끼리가 소멸했다는 사실을 마음 속으로 받아 들이고 있었고, 가전 제품을 파는 세일즈맨이 된 후에 이 이야기를 호감을 갖게 된 여자에게 들려준다.

 

o 패밀리 어페어

 

여동생과 그런대로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해 주며 평화롭게 살아왔지만, 그녀에게 와타나베 노보루라는 이름의 남자 친구가 생기자 평화가 깨어진다. 여동생은 '나'의 시각이 편협하다고 비난했고, '나'는 여동생의 남자 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동생이 남자친구를 소개시켜 주는 자리에서 '나'는 최소한의 할 도리만 한 후 여자를 만나 술을 먹고 관계를 맺는다.

어느 날 밤 늦게 집에 돌아가자 여동생이 와타나베 노보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다. '나'는 '나쁜 사람 같진 않고 집 안에 한 명쯤 그런 사람이 있는 것도 괜찮다'는 평이한 답을 내놓는다. 여동생은 오빠를 아주 좋아하지만 세상 사람 모두가 오빠와 같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렇겠지'라는 답을 한 나는 주름 하나 없는 시트에 누워 너무 지쳤다는 생각과, 눈을 감으면 잠이 어두운 그물처럼 머리 위에서부터 소리 없이 내려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o 쌍둥이와 침몰한 대륙

 

쌍둥이와 헤어진 지 반년 정도 지났을 즈음에 '나'는 그녀들의 모습을 우연히 사진 잡지에서 발견한다. 잡지를 깨끗이 잘라내 주머니에 넣은 후 사무실에 돌아오니 동업자 와타나베 노보루는 나가고 없었다. 어질러진 사무실을 기계적으로 치운 후 옆 치과에서 일하는 메이라는 아가씨와 잡담을 나눈 후 그녀에게 저녁이라도 함께 하지 않겠냐고 제의하지만 그녀는 선약이 있다고 했다. '나'는 처음본 여자와 잠자리를 한 후 꿈 이야기를 한다. 매번 꿈의 내용은 엇비슷했는데, 어떤 인부가 벽 앞에 또 다른 장식벽을 쌓고 벽과 벽 사이에 쌍둥이가 있다는 내용이다. 여자는 꿈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만은 참을성 있게 들어준다.

'나'는 결국 사람은 어떤 상황에도 스스로를 동화시켜 가고, 아무리 선명한 꿈도 결국은 선명하지 못한 현실 속으로 들어가 소멸해 마침내 그런 꿈이 존재했다는 것조차 떠올릴 수 없게 되리라 생각한다.

 

o 로마 제국의 붕괴, 1881년의 인디언 봉기, 히틀러의 폴란드 침입, 그리고 강풍세계

 

기상도에는 어디에도 태풍 표시 따윈 없어서 전성기 로마제국처럼 평화로워 보였지만 강풍이 불어온다. 2시 36분에 전화가 걸려 와서 '나'는 여자친구일 거라 생각하고 받았지만 전화기 속에서는 "휘이이이이이잉" 하는 바람 소리만이 1881년에 일어난 인디언의 봉기처럼 일제히 수화기 속에서 날뛰고 있었다. '나'는 어제 메릴 스트립의 <소피의 선택>을 보았는데 영화 속에서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입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어제의 일이라고 착각한다. 3시 48분에 또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이번엔 여자친구다. 여자친구는 굴 전골 재료와 눈가리개를 가지고 우리 집으로 올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일기를 쓰기 위해 오늘 하루 일어난 일을 간단히 메모한다. ① 로마제국의 붕괴 ② 1881년의 인디언 봉기 ③ 히틀러의 폴란드 침입

 

o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

 

스파게티를 삶고 있을 때 여자가 전화를 걸어 온다. 그 여자는 막무가내로 10분만 얘기하고 싶다고 하지만 나는 이런 저런 핑계로 전화를 끊는다. 당시 '나'는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다가 그만 둔 상태였고, 해야 할 일은 없었다. 아내는 고양이 와타나베 노보루를 골목에 가서 찾아보라고 했었다. 다시 여자가 전화를 걸어온다. 여자는 '나'에 대해 잘 안다고 했고 음담패설을 늘어 놓았다. 전화를 끊은 후 골목을 탐험하던 나는 오토바이 사고에서 아직 회복되지 않아 다리를 저는 소녀를 만난다. 소녀는 고양이를 보았다고 말한다. 잠시 소녀와 잡담을 하던 나는 소녀의 권유로 낮잠을 잔다. 일어나보니 소녀는 없었고 '나'는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돌아온 아내는 '나'에게 '당신이 고양이를 죽였다'는 억지를 쓰고, 나는 뭔가 항변하려다 그녀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만둔다. 와타나베 노보루와 태엽감는 새에 관해 생각하던 차에 전화가 울린다. 음담패설을 늘어 놓았던 그녀 같다. 아내도 나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읽는 내내 들국화의 노래 <오후만 있던 일요일> 가사가 떠올라 흥얼거렸다. 단조로운 피아노 선율과 전인권의 한숨 같은 목소리가 자꾸만 머리 속을 맴돈다.

 

오후만 있던 일요일 눈을 뜨고 하늘을 보니
짙은 회색 구름이 나를 부르고 있네
생각 없이 걷던 길옆에 아이들이 놀고 있었고
나를 바라보던 하얀 강아지 이유 없이 달아났네
나는 노란 풍선처럼 달아나고 싶었고
나는 작은 새처럼 날아가고 싶었네
작은 빗방울들이 아이들의 흥을 깨고
모이 쪼던 비둘기들 날아가 버렸네
달아났던 강아지 끙끙대며 집을 찾고
스며들던 어둠이 내 앞에 다가왔네
나는 어둠속으로 들어가 한 없이 걸었고
나는 빗속으로 들어가 마냥 걷고 있었네
오후만 있던 일요일 예쁜 비가 왔네
오후만 있던 일요일 포근한 밤이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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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하오 미스터 빈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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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교육은 5년 밖에 받지 못했지만 스스로 글씨와 그림에 힘을 쓴 결과 어느 정도 예술가연 할 수 있게 된 샤오 빈의 직업은 정비공이다. 그와 아내 메이란의 유일한 걱정거리는 집이 너무 좁다는 것. 단칸방에서 두 살짜리 딸아이와 생활하며 예술적 성취까지 이루기에는 무리가 있는 넓이었다.

빈은 자신이 6년간 근속했으므로 새로 지은 아파트가 자신에게 배정되리라 기대했지만 결과는 예상을 빗나간다. 겨우 3년간 일한 호우 니나에게는 아파트가 배정된 반면, 자신은 명단에 없었던 것이다. 당서기 리우와 공장장 동이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른 결과 편파적인 배정이 이루어진 것이 분명했다. 빈은 당장에 지역 신문에 리우와 동의 부패를 고발하는 그림을 그려 그들을 압박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 한다. 하지만 리우와 동 역시 만만치 않아 빈을 도리어 공장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인격장애로 몰아간다. 빈은 자신이 갈고 닦은 모든 예술적 기예를 총동원에 신문과 잡지에 투고와 고발을 시작하고, 그럴수록 리우와 동의 반격도 거세진다.

어떻게든 공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빈은 대학에 지원하고, 운 좋게 예술대학 입학원서가 날아오지만 리우와 동은 그마저 꼼수를 부려 무효로 돌리자 빈은 북경의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낸다. 사태는 일파만파가 되어 전국적으로 배포되는 잡지에 빈의 딱한 처지가 게재되고, 결국 인민공사의 당서기 양 첸의 중재로 빈은 인민공사 본부의 선전일을 맡게 된다.

 

1956년생 하진은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브랜다이스대학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각종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2차례 오르기도 했다.

<니하오 미스터 빈>은 평이한 문장으로 빈의 악전고투를 그리고 있는데 소소한 사건들이 독자를 웃음 짓게 만드는데, 그 이유는 인간의 여린 부분을 잘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우와 동은 빈을 박해하지만 그들의 부정이란 실상 자본주의 사회의 여러 사건에 견주어 보면 소박할 정도이고, 빈이 악의에 차 손자들에게 해꼬지 하겠다고 했을 때는 내심 불안해 어쩔 줄 모르는 등 여린 심성을 지닌 필부들이다. 양 첸 역시 결과적으로는 빈을 박해했지만 사실 관료적 속성 때문에 빈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했던 행동들이다. 그래서 소소한 사건들도 궁둥이를 빈이 깨물어 멍이 든다든가 하는 해학적인 양태를 띠고 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어제 읽은 <주저하는 근본주의자>와 <미스터 빈> 모두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작가가 영어로 쓴 소설이고, 왕은철이 번역했다. 왕은철은 쿳시의 소설 <야만인을 기다리며>로 접하고 호감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에 읽은 두 소설도 번역이 만족스럽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2057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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