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번째 밀실 작가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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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가 마케베 세이치는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면 가까운 지인들을 자신의 별장에 초청하여 파티를 한다. 추리소설가인 아리스가와 아리스, 그의 친구이자 임상범죄학자인 히무라 히데오, 동료 추리소설가들과 편집자들이 그의 집에 모여 조촐한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그러나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 이브, 두 건의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의문의 사내가 밀실인 서재에서 벽난로에 몸이 반쯤 탄 채 발견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밀실인 지하 서고에서 마카베 세이치가 벽난로에 몸이 반쯤 탄 채 발견된다. 

눈이나 비로 고립된 장소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은 아이러니하게도 독자를 안도하게 만든다. 내가 읽고 있는 것은 소설이라는 인식과 나는 그런 극한의 상황에 처해있지 않다는 데서 오는 안도가 결합해 만들어내는 감정일 것이다. 

아쉽게도 <46번째 밀실>은 사실 범작 수준에도 들기 어려워 보인다. 본격물의 핵심인 수수께끼 풀이가 엉성하고 범인들의 동기가 하나 같이 공감이 되지 않아 억지스럽다. 범인을 밝히는 점에 있어서도 반칙이 개입하고 있다. 미스터리 마니아라면 소설을 중간쯤 읽다가 밀실 트릭과 살인 방법을 눈치 챌 것이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와 아야츠지 유키토는 여러 면에서 닮은 점이 많다. 둘 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미스터리에 심취하여 일찌감치 미스터리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고, 대학 시절 추리소설연구회에서 활동하였으며, 에도가와 란포상에서 미끄러진 작품으로 데뷔한다. 둘 다 엘러리 퀸을 최고의 추리소설가로 꼽는다. 그리고 신본격의 선두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 아래는 트릭과 범인 

o 밀실 트릭

  - 서고는 문이 고장나 마카베 세이치가 스스로 잠근 것임
  - 서재는 스카치 테이프와 낚싯줄을 이용한 트릭

o 살해 방법

  - 벽난로 안을 들여다보게 만든 후 굴뚝에서 낚싯줄에 묶은 항아리를 떨어뜨려 살해

o 범인 및 동기
  
  - 이시마치
  - 사실은 마카베 세이치와 동성 애인이었으나 야스나가 아야코와 사랑에 빠짐. 
     이에 마카베 세이치가 모든 사실을 폭로할 것을 우려함(이 부분은 '사실은~' 식의 반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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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해자 1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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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하이텍스라는 회사에서 화재가 발생한다. 최초 발견자는 회계과장 시게노리였는데, 당직을 서다가 화재가 발생한 것을 인지하고 진화하려다 실패했다고 진술한다. 경찰은 화재 현장 주변에서는 휘발유를 담았던 것으로 보이는 페트병이 발견된 점과 날카로운 스쿠터 소리를 들었다는 시게노리의 진술에 따라 방화로 단정한다.
하이텍스 회사와의 원한 관계를 조사하던 경찰은 지역 야쿠자 조직인 기요카즈회에 주목한다. 기요카즈회는 하이텍스사에 정치 후원금을 빌미로한 찬조금을 강요하다가 조직원 몇 명이 구속당한 전력이 있었다. 체면을 살리기 위해 방화를 했다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었다.

혼조 서의 형사 구노는 본청의 하토리와 파트너가 되어 수사에 참가한다. 구노는 칠년전 아내를 잃고난 후 장모님을 때때로 찾아뵙는 것 외에는 일체의 인간관계가 단절되다시피 한 상태였다. 불면증을 앓고 있었기에 신경안정제를 상용하고 있었다. 
구노는 하이텍스 지사가 최근 감사를 앞두고 있었고, 회계과장 시게노리가 당직을 자진해서 바꾸었다는데 주목한다. 하이텍스 지사가 반품 들어온 물품을 빼돌려 할인판매점에 넘긴 정황이 포착되었는데 시게노리가 감사에서 이 사실을 적발당할까 우려하여 일부러 방화를 저지른 것은 아닌지 의심했던 것이다.
얼마 후 관내에서 추가 방화사건이 벌어진다. 본청 관리관들은 기요카즈회가 범인임을 확신하고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이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구노와 하토리는 시게노리가 범인이라는 정황을 속속 포착하고 있었다. 구노는 관리관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싶어 하지만 하토리는 관리관과 다른 라인을 타고 있었기에 최대한 보고를 늦추려 한다. 보고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기요카즈회를 설건드린데 대한 책임은 전부 관리관이 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편, 시게노리의 아내 교코는 평범한 일상을 누리며 소박한 꿈을 꾸던 주부였다. 동네 슈퍼마켓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보탰고, 얼마 전 구입한 아담한 주택에 화단을 만드는 것이 삶의 낙이었다. 그런데 경찰들이 시게노리의 주변을 서성이자 그녀의 생활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얼마 전 구입한 남편의 블루버드가 전액 현찰로 샀다는 사실과, 과거 남편의 소소한 부정들이 떠오르면서 회계감사를 앞둔 시게노리가 방화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즈음, 교코가 일하는 슈퍼마켓의 다른 지점에서 일하는 고무로라는 여자가 전화를 걸어온다. 그녀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법으로 보장된 근로조건을 나열하면서 그녀가 동참해준다면 유급휴가와 퇴직금, 고용보험 가입이 꿈과 같은 일도 아닐 것이라고 설득한다. 망설이던 그녀는 고용조건 개선을 위한 투쟁에 동참하면서 잠시나마 남편의 일을 잊게되고 자신이 삶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기요카즈회에 대한 수사가 완전히 헛다리라는 것이 증명되었지만 귀찮은 물건이 압수수색 도중에 나오고 만다. 기요카즈회는 자동차금융에도 손을 대고 있었는데 경찰들에게 터무니 없이 낮은 가격에 차량을 판매하고 유착 관계를 맺어왔었다. 그 장부에는 스물 다섯명의 혼조서 경찰들이 올라 있었다.
기요카즈회와의 연결 고리였던 부패 형사 하나무라는 경찰을 그만두게 되었지만, 스물 다섯명이라는 부패 경찰을 모두 징계할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경찰은 순차적으로 다른 사유를 들어 핵심 인물만을 징계하기로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구노가 희생양이 된다. 하나무라는 야쿠자와 경찰의 유착에 대해 입다물고 퇴직하는 대신 개인적 원한이 있던 구노도 사표를 쓴다는 조건을 내건 것이다.

기요카즈회가 하이텍스사의 추문을 가려주는 대신 2억엔을 받고 범인을 제공하기로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고등학생을 자진 출두시켜 자수하게 만들자 구노는 시게노리를 자수시키려 한다. 시게노리의 범행으로 자녀들이 피해입고 자신의 소박한 삶이 깨어질 것을 두려워한 교코는 시게노리의 범행을 덮기 위해 제3의 방화를 준비한다. 교코의 범행을 막으려는 구노와, 구노를 살해하려는 하나무라가 한밤중에 격투를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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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사마(邪魔​)로 2002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 선정된 작품이다. 수수께끼 풀이 보다는 총체적인 부패로 썩어 문드러진 일본 사회의 실상에 주안점을 둔 작품이다. 
경찰은 야쿠자와 밀착되어 상호 편의를 보아주고, 사건 해결보다는 자기 라인의 성과 내기에 급급해 정보를 독점하고 범인을 조작한다. 기업 역시 경찰과 야쿠자의 도움을 얻어 손쉽게 조직을 방어하려 할 뿐 사원을 보호하려는 노력은 전혀 기울이지 않는다.
진보를 표방하는 시민단체도 전혀 다를바가 없다. 노동법을 들먹이며 아르바이트생의 처우 개선을 내걸지만 실상은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가해 자기 단체에 찬조금을 내게 하는 것이 목적일 뿐이다. 그들은 더 큰 대의를 위해서라고 외장 치지만 실상 도그마와 자기도취에 빠진 추악한 사기꾼 집단에 불과하다. 
등장 인물들 대부분은 이런 부패한 사회에서 능동적으로 자기 몫을 취하고 있다. 시게노리와 하나무라는 조직에서 소소한 부정을 일으켜 자기 배를 채우고 있었고, 본청 관리관과 부서장 등은 출세를 위해 줄세우기에 여념이 없다.
교코나 구노는 능동적으로 부패에 참가하고 있지는 않지만 자신도 모르게 참여하고 있다. 교코는 시게노리가 부정을 일으켜 돈을 벌어오는 동안에는 그 돈의 출처에 대해 불안해 하면서도 소시민의 삶을 한껏 누리다가, 막상 시게노리가 어떻게 돈을 벌어왔는지 알게 되자 가차없이 시게노리를 밀어낸다. 작가는 냉정하게 그녀 역시 타락하도록 몰아부친다. 논바닥 한가운데 세워진 모텔에 슈퍼마켓 사장과 밀어넣은 후 그녀 스스로 몸을 팔도록 만든 것이다. 결국 부패한 이 사회에서는 누구나 기회와 조건만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타락할 수 있다는 것을 항변하는 듯 하다.
구노 역시 마찬가지다. 부서장의 명에 의해 하나무라를 감시하는 구노는 동료를 감시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조직인으로서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다. 구노의 결말도 좋지 않다. 조직에 수동적이나마 충성을 했건만 사표를 강요 받는다.
소설 속에서 유일하게 자기 발로 땅을 딛고 선 사람은 사에키 주임이다. 사에키 주임의 자녀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출세를 위해 출퇴근 거리가 먼 본청으로 전보발령을 받는 것이 달갑지 않다. 승진을 포기하고 지역에서 뼈를 묻기로 결심한 사에키에게 두려운 것은 별로 없다. 바라는 것이 별로 많지 않으므로 그를 유혹할 수 있는 것도 거의 없다. 그런 이유로 사에키 주임만이 타인의 고민과 삶에 진정한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것이다.

화요일부터 여름 휴가였다. 월요일부터였지만 일이 밀려서 쭉 쉴 수가 없었다. 기다리던 결과가 금요일 오후에야 나와서 편하게 쉴 수가 없었다. 결과는 좋게 나왔지만, 3개월간 교육을 받아야 해서 마음이 무겁다. 빈자리를 메꾸어야 할 선배와 동료들에게 면몫이 없다.
소설 속 사에키 주임과 같은 사람이 되고자 했으나, 이유야 어쨌든 진급을 위해 올해 여름을 헛되이 보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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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의 태양 아래 대산세계문학총서 36
조르주 베르나노스 지음, 윤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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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베르나노스는 파리 대학과 가톨릭 대학에서 수학했고 문학과 법학 학사 학위를 취득한 후, 왕당파 단체인 악시옹 프랑세즈에서 활동하다가 투옥되기도 한다. 왕당파 기관지 <노르망디의 전위대> 주필로 활동하던 중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자원 입대했고, 종전 후 그의 첫 작품인 <사탄의 태양 아래>를 집필하기 시작한다. 

<사탄의 태양 아래>는 총 세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체적인 내용만으로 보자면 프롤로그인 <무셰트 이야기>와 도니상 신부를 주인공으로 하는 1장 <절망의 유혹>, 2장 <룅브르의 성자>로 구분할 수 있다.

<무셰트 이야기>는 캉파뉴 마을의 상인 가정에서 자란 열 여섯살 된 소녀 무셰트(=제르멘)에 관한 이야기다. 어느 날 딸이 쓰러진 후 배를 만지며 눈물을 쏟자 무셰트의 아버지 말로르티는 딸이 임신한 것을 알아차린다. 말로르티는 무셰트를 얼르고 달래며 누구의 아이인지 알아내려 하지만, 무셰트는 완강히 입을 닫은 채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말로르티는 마을의 몰락한 카디냥 후작이 딸을 건드린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여 그를 찾아가 변죽을 울린다. 하지만 카디냥 후작은 무셰트의 임신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며 완강히 부인한다. 말로르티는 무셰트가 모든 것을 불었다며 후작을 협박한다. 하지만 후작에게서 별다른 동요가 보이지 않자 서둘러 집으로 돌아간다. 후작은 후작대로 무셰트가 모든 것을 불어버린 것이라 생각하여 초조해한다.
그날 밤, 무셰트가 집을 나와 후작의 집으로 간다. 후작은 무셰트를 책임질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무셰트는 발작 상태에서 후작에게 총을 발사하고, 후작은 즉사한다.
이제 무셰트는 캉파뉴 마을의 또 다른 유지이며, 지역 의원이자 의사인 갈레를 유혹한다. 무셰트는 소심한 갈레를 위협하고, 윽박지른다. 어느 날, 무셰트가 갈레의 집으로 불쑥 찾아가 갈레에게 자신이 후작을 죽인 범인이라며 발광을 한다. 그 와중에 갈레의 아내가 예고 없이 집으로 돌아오자 갈레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다행히 무셰트가 발작 끝에 기절하여 위기가 지나간다. 그날 밤 무셰트는 뒤슈맹 박사의 병원으로 후송되어 아기를 사산하고, 이후 한 달이 지난 후 완전히 회복되어 병원을 나선다.

<절망의 유혹>과 <룅브르의 성자>는 마찬가지로 캉파뉴 마을의 부제로 오게 된 도니상 신부에 관한 이야기이다. 도니상 신부는 신학교에서 여러가지 문제가 드러나 사제 서품을 받은 것도 어려울 정도의 인물이었다. 다행히 캉파뉴 교구의 주임 사제 므누 스그레가 그를 부제로 받아들이다.
도니상 신부의 유일한 미덕은 우직하다는 것이었다. 므누 스그레 신부의 권유로 신학서적을 탐독해보기도 했지만 아둔한 그의 머리로는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도니상 신부는 육체적인 헌신으로 교구에 봉사하기로 한다. 하지만 큰 키의 그가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모습은 성스럽다기 보다는 천박하게 보이기 일쑤였다.
그는 신에게 귀의하기 위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둔하고 모자란 그는 그즈음 자신의 신체를 학대하기 시작한다. 쇠사슬이나 가죽 채찍으로 등을 후려치는 과정을 통해 그는 신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시일이 흐른 후 사람들은 도니상 신부의 말을 진지하게 귀담아 듣기 시작한다. 그는 현학적인 말을 할 줄도 몰랐다. 그저 자신이 느끼는 바를 어눌한 어투로, 애둘러 가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부정할 수 없다고 느낀다.
어느 날 이웃 교구에서 고해 신부가 부족해 므누 스그레 신부에게 도니상 신부를 파견해 달라는 부탁을한다. 도니상 신부는 이웃 마을까지 터벅 터벅 걷기 시작한다. 한밤중에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을 걷던 도니상 신부는 자신이 같은 길을 계속 빙글빙글 돌고 있음을 깨닫는다. 육체적인 피로와 고통으로 절망할 즈음, 말 중개인이 나타난다. 그가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말 중개인은 자신이 눈을 감고도 길을 찾을 수 있다며 도니상 신부를 인도한다. 말 중개인은 도니상 신부의 피곤과 절망을 이용하려 했다. 그러나 도니상 신부의 우직한 면 때문에 그는 신부를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말 중개인은 사탄이었다. 사탄과 조우하고 난 뒤부터 도니상 신부는 다른이의 영혼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도니상 신부가 무셰트와 만나게 된다. 도니상 신부의 눈에는 무셰트가 저지른 죄가 모두 보였다. 신부는 그녀의 죄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셰트는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살인에 대해 준엄하게 이야기하는 도니상 신부를 만난 후, 면도날을 들어 목에 갖다 댄다. 면도날이 살 속에서 서걱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피가 솟구쳐 팔목을 적신 것이 그녀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시간이 흘러 도니상 신부는 룅브르의 사제가 된다. 그를 사람들은 룅브르의 성자라 일컬었다. 여전히 신부는 우직하게 기도했고, 자신의 몸을 학대했다. 많은 사람들이 도니상 신부에게 고해를 했고, 도니상 신부는 그들이 고해한 온갖 죄로 괴로워했다. 성자였지만,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성자였다.
어느 날, 옆 교구에서 한 사내가 찾아와 아들을 살려달라고 했다. 뤼자른의 주임 사제는 도니상 신부가 죽어가는 아이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지는 않았다. 하지만 도니상 신부가 어떤 계시를 받았다고 말하자 뤼자른의 사제는 도니상 신부에게서 특별한 무엇을 느낀다. 
도니상 신부가 죽은 아이를 들어 올린다. 계시대로라면 아이는 되살아날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끝내 되살아나지 않았고, 도니상 신부는 아이를 침대에 놓아둔 채 방을 나간다. 아이 어머니는 미쳐버리고 만다. 계시를 준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사탄이었는지도 모른다. 얼마 후 도니상 신부는 고해실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절망과 자기학대로 도니상 신부는 하느님에게로 가고자 했지만 사탄의 의지와 하느님의 계시를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지 끝내 알 수가 없다. 
도니상 신부의 생애는 절망과 자기학대로 점철되어 있다. 그가 사람의 영혼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후 처음 만난 무셰트는 아이러니하게도 자기가 저지른 죄를 환기한 후 분열 상태에서 자살한다. 그가 갖게 된 능력이 사탄이 준 능력인지, 하느님이 준 능력인지도 알 수가 없다. 도니상 신부는 기쁨 없는 성자의 삶을 살다가 고해실에서 쓸쓸히 죽어간다.
만약 하느님의 의지를 인간이 명백하게 알 수 있다면 인간의 삶에 고뇌라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사탄의 태양 아래 인간이 살고 있다. 태양은 그 강력한 빛으로 인간의 시선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약한 인간은 태양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조르주 베르나노스가 소설 속에서 그려낸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이 아니다. 인간의 고뇌와 절망에 대해서 즉각적인 응답도 해주지 않는다. 도리어 응답하고 위로하는 것은 사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니상 신부가 끝내 자기학대 속에서도 간구했던 것은 하느님이었다. 조르주 베르나노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과정, 그 과정 자체가 아니었을지. 끝내 인간은 사탄의 태양아래서 살아가지만 그 태양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비참한 자각을 소설 속에 풀어낸 것은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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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칼의 날 동서 미스터리 북스 93
프레데릭 포사이드 지음, 석인해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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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말에서 60년대 초에 프랑스는 알제리 문제로 골치를 썩이고 있었다. 알제리민족해방전선(FLN)의 저항을 억누르기 위한 비용이 매년 증가하여 프랑스 자국의 경제까지 휘청일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제4공화정은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었고, 이때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샤를 드골이 다시 등장한다. 1958년 6월 총리가 된 드골은 이듬해 1월에 대통령에 취임하고, 1962년 4월알제리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다. 
드골에 대한 평가는 즉각 양분된다. 탁월한 식견과 리더십으로 기약없이 비용만 잡아먹던 알제리 문제를 해결했다는 평가와, 수년간 알제리 전쟁에서 뿌린 군인들의 피를 아무런 댓가 없이 방기해버린 배신자라는 평가가 그것이다. 군부와 우익 기업인 일부는 드골에 대해 극심한 혐오를 품고 비밀군사조직 OAS를 결성한다. 
OAS는 드골을 제거하고 쿠데타를 일으켜 알제리전쟁을 재개하고 강력한 프랑스를 만들고자 하는 극우적 성향을 띠고 있었다. OAS는 드골 암살을 여섯 차례나 시도하는데 일부는 실행 과정에서 발각되기도 했고, 일부는 계획 과정에서 무산되기도 했다.
프랑스 정부는 SDECE 요원들을 OAS에 침투시켜 내부 정보를 캐내고 코르시카 출신이 다수를 차지하는 행동파를 이용해 OAS 단원을 납치, 고문하기도 하는 등 소리 없는 전쟁을 시작한다. 다른 나라에 잠입하여 납치를 하는 통에 외교 마찰이 일기도 했고, 범죄조직인 유니온 코르스의 힘을 빌기도 한다. 

OAS는 조직이 SDECE에 거의 노출되자 드골 암살을 위한 살인청부업자를 외부에서 찾는다. 몇 명의 후보자군에서 선택된 것은 영국인 출신 암살자였다. 그의 출생이나 실명 등은 모두 명확하지 않았고, 다만 암호명 자칼만이 아는 것의 전부였다. 그가 제시한 금액은 5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금액. 25만달러가 스위스 은행에 입금되는 즉시 착수하되 계획과 실행 모두 독자적인 판단 하에 진행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
OAS는 자금 마련을 위해 위해 은행, 우체국 등을 동시 다발적으로 습격하고 25만 달러를 송금한다. 자칼은 프랑스를 향해 떠난다.
세 명의 위조 신분증과 변장 도구, 그리고 목발에 숨긴 저격 라이플을 들고 떠난 자칼은 OAS의 통제권에서 벗어나 있었다. SDECE에 의해 자칼의 존재가 드러나자 OAS는 황급하게 계획을 취소하려 했지만 이미 자신만의 계획 속에서 행동을 개시한 자칼은 연락조차 쉽지가 않았다. OAS는 그의 성공을 비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한편 프랑스 정부는 암살 계획이 외부 전문가에 의해 실행될 예정이라는 정보를 드골에게 전하며 경호 강화와 공식 행사 취소를 요청하지만 자존심 강한 드골은 공개 수사마저 거부할 정도였다. 이에 내무부장관은 대통령 경호와 관련된 각부처와 경찰기구 수장들을 모아 대책 마련에 부심한다. 그 결과 총경 르벨이 자칼 체포의 실행 책임자로 지명된다. 르벨은 암호명 하나만을 듣고 그가 누구이며 어떤 경로를 통해 프랑스에 잠입해 드골을 살해하려 하는지 알아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1938년 영국 켄트 주에서 태어난 프레드릭 포사이스는 독일, 프랑스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스포츠에 능했다고 한다. 기자와 특파원 생활을 하던 그는 로이터에 입사한 뒤 공산권 국가였던 동베를린에 주재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후 BBC로 이직한 뒤 퇴사하여 쓴 처녀작이 <비아프라 이야기>이다. 
<자칼의 날>은 1970년에 쓴 작품으로 발간 직후 언론으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경계가 모호할 정도로 사실적인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이는 프레드릭 포사이스가 1962년부터 로이터통신 특파원으로 파리에서 드골 전문반으로 활동했던 경력에서 이유를 찾을 수가 있는데 퇴직 후에도 그는 당시 관련자들에게서 많은 후문을 얻어 들을 수 있었고 이를 절묘하게 조합하여 소설에 녹여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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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이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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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와 연간 초기 무렵 서로의 손을 겐지 이야기에 나오는 에피소드가 염색된 수건으로 묶어 떨어지지 않도록 한 후 동반 자살한 이야기에 얽힌 <꿈속의 자살>, 
아들과 며느리가 어머니를 감옥방에 가두고 굶겨 죽이려 하자 대행수가 마님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살해한 사건을 다룬 <그림자 감옥>, 
여동생이 이불방의 귀신에게 홀려 혼을 빼앗기지 않도록 죽은 언니가 지켜준다는 내용의 <이불방>, 
불길한 신점 제비를 뽑자 다른 사람에게 액운을 떠넘겼다가 자신도 불행해지고 만다는 <매화 비가 내리다>, 
모두들 꺼리는 도깨비가 어쩐지 가여워서 함께 하다 보니 평생을 도움 받고 살게 된다는 내용의 <아다치 가의 도깨비>, 
호박 덕분에 나쁜 망령으로부터 벗어나자 평생을 호박을 먹지 않게 된다는 <여자의 머리>, 
강도 살인 후 찾아온 손님에게 지금 나쁜 남자로부터 발을 빼지 않으면 자기처럼 된다고 태연히 훈계하는 <가을비 도깨비>, 
화로의 재티가 사람에게 들어가 나쁜 짓을 하게 되는 <재티>, 
나이도 먹지 않고 죽지도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바지락 무덤>

이상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씌여진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사실 에도시대 분위기가 물씬 묻어나지는 않는다. 그저 직업소개소와 상인들의 풍습 정도가 간단히 배경으로 차용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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