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의 태양 아래 대산세계문학총서 36
조르주 베르나노스 지음, 윤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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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베르나노스는 파리 대학과 가톨릭 대학에서 수학했고 문학과 법학 학사 학위를 취득한 후, 왕당파 단체인 악시옹 프랑세즈에서 활동하다가 투옥되기도 한다. 왕당파 기관지 <노르망디의 전위대> 주필로 활동하던 중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자원 입대했고, 종전 후 그의 첫 작품인 <사탄의 태양 아래>를 집필하기 시작한다. 

<사탄의 태양 아래>는 총 세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체적인 내용만으로 보자면 프롤로그인 <무셰트 이야기>와 도니상 신부를 주인공으로 하는 1장 <절망의 유혹>, 2장 <룅브르의 성자>로 구분할 수 있다.

<무셰트 이야기>는 캉파뉴 마을의 상인 가정에서 자란 열 여섯살 된 소녀 무셰트(=제르멘)에 관한 이야기다. 어느 날 딸이 쓰러진 후 배를 만지며 눈물을 쏟자 무셰트의 아버지 말로르티는 딸이 임신한 것을 알아차린다. 말로르티는 무셰트를 얼르고 달래며 누구의 아이인지 알아내려 하지만, 무셰트는 완강히 입을 닫은 채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말로르티는 마을의 몰락한 카디냥 후작이 딸을 건드린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여 그를 찾아가 변죽을 울린다. 하지만 카디냥 후작은 무셰트의 임신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며 완강히 부인한다. 말로르티는 무셰트가 모든 것을 불었다며 후작을 협박한다. 하지만 후작에게서 별다른 동요가 보이지 않자 서둘러 집으로 돌아간다. 후작은 후작대로 무셰트가 모든 것을 불어버린 것이라 생각하여 초조해한다.
그날 밤, 무셰트가 집을 나와 후작의 집으로 간다. 후작은 무셰트를 책임질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무셰트는 발작 상태에서 후작에게 총을 발사하고, 후작은 즉사한다.
이제 무셰트는 캉파뉴 마을의 또 다른 유지이며, 지역 의원이자 의사인 갈레를 유혹한다. 무셰트는 소심한 갈레를 위협하고, 윽박지른다. 어느 날, 무셰트가 갈레의 집으로 불쑥 찾아가 갈레에게 자신이 후작을 죽인 범인이라며 발광을 한다. 그 와중에 갈레의 아내가 예고 없이 집으로 돌아오자 갈레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다행히 무셰트가 발작 끝에 기절하여 위기가 지나간다. 그날 밤 무셰트는 뒤슈맹 박사의 병원으로 후송되어 아기를 사산하고, 이후 한 달이 지난 후 완전히 회복되어 병원을 나선다.

<절망의 유혹>과 <룅브르의 성자>는 마찬가지로 캉파뉴 마을의 부제로 오게 된 도니상 신부에 관한 이야기이다. 도니상 신부는 신학교에서 여러가지 문제가 드러나 사제 서품을 받은 것도 어려울 정도의 인물이었다. 다행히 캉파뉴 교구의 주임 사제 므누 스그레가 그를 부제로 받아들이다.
도니상 신부의 유일한 미덕은 우직하다는 것이었다. 므누 스그레 신부의 권유로 신학서적을 탐독해보기도 했지만 아둔한 그의 머리로는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도니상 신부는 육체적인 헌신으로 교구에 봉사하기로 한다. 하지만 큰 키의 그가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모습은 성스럽다기 보다는 천박하게 보이기 일쑤였다.
그는 신에게 귀의하기 위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둔하고 모자란 그는 그즈음 자신의 신체를 학대하기 시작한다. 쇠사슬이나 가죽 채찍으로 등을 후려치는 과정을 통해 그는 신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시일이 흐른 후 사람들은 도니상 신부의 말을 진지하게 귀담아 듣기 시작한다. 그는 현학적인 말을 할 줄도 몰랐다. 그저 자신이 느끼는 바를 어눌한 어투로, 애둘러 가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부정할 수 없다고 느낀다.
어느 날 이웃 교구에서 고해 신부가 부족해 므누 스그레 신부에게 도니상 신부를 파견해 달라는 부탁을한다. 도니상 신부는 이웃 마을까지 터벅 터벅 걷기 시작한다. 한밤중에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을 걷던 도니상 신부는 자신이 같은 길을 계속 빙글빙글 돌고 있음을 깨닫는다. 육체적인 피로와 고통으로 절망할 즈음, 말 중개인이 나타난다. 그가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말 중개인은 자신이 눈을 감고도 길을 찾을 수 있다며 도니상 신부를 인도한다. 말 중개인은 도니상 신부의 피곤과 절망을 이용하려 했다. 그러나 도니상 신부의 우직한 면 때문에 그는 신부를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말 중개인은 사탄이었다. 사탄과 조우하고 난 뒤부터 도니상 신부는 다른이의 영혼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도니상 신부가 무셰트와 만나게 된다. 도니상 신부의 눈에는 무셰트가 저지른 죄가 모두 보였다. 신부는 그녀의 죄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셰트는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살인에 대해 준엄하게 이야기하는 도니상 신부를 만난 후, 면도날을 들어 목에 갖다 댄다. 면도날이 살 속에서 서걱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피가 솟구쳐 팔목을 적신 것이 그녀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시간이 흘러 도니상 신부는 룅브르의 사제가 된다. 그를 사람들은 룅브르의 성자라 일컬었다. 여전히 신부는 우직하게 기도했고, 자신의 몸을 학대했다. 많은 사람들이 도니상 신부에게 고해를 했고, 도니상 신부는 그들이 고해한 온갖 죄로 괴로워했다. 성자였지만,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성자였다.
어느 날, 옆 교구에서 한 사내가 찾아와 아들을 살려달라고 했다. 뤼자른의 주임 사제는 도니상 신부가 죽어가는 아이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지는 않았다. 하지만 도니상 신부가 어떤 계시를 받았다고 말하자 뤼자른의 사제는 도니상 신부에게서 특별한 무엇을 느낀다. 
도니상 신부가 죽은 아이를 들어 올린다. 계시대로라면 아이는 되살아날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끝내 되살아나지 않았고, 도니상 신부는 아이를 침대에 놓아둔 채 방을 나간다. 아이 어머니는 미쳐버리고 만다. 계시를 준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사탄이었는지도 모른다. 얼마 후 도니상 신부는 고해실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절망과 자기학대로 도니상 신부는 하느님에게로 가고자 했지만 사탄의 의지와 하느님의 계시를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지 끝내 알 수가 없다. 
도니상 신부의 생애는 절망과 자기학대로 점철되어 있다. 그가 사람의 영혼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후 처음 만난 무셰트는 아이러니하게도 자기가 저지른 죄를 환기한 후 분열 상태에서 자살한다. 그가 갖게 된 능력이 사탄이 준 능력인지, 하느님이 준 능력인지도 알 수가 없다. 도니상 신부는 기쁨 없는 성자의 삶을 살다가 고해실에서 쓸쓸히 죽어간다.
만약 하느님의 의지를 인간이 명백하게 알 수 있다면 인간의 삶에 고뇌라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사탄의 태양 아래 인간이 살고 있다. 태양은 그 강력한 빛으로 인간의 시선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약한 인간은 태양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조르주 베르나노스가 소설 속에서 그려낸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이 아니다. 인간의 고뇌와 절망에 대해서 즉각적인 응답도 해주지 않는다. 도리어 응답하고 위로하는 것은 사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니상 신부가 끝내 자기학대 속에서도 간구했던 것은 하느님이었다. 조르주 베르나노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과정, 그 과정 자체가 아니었을지. 끝내 인간은 사탄의 태양아래서 살아가지만 그 태양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비참한 자각을 소설 속에 풀어낸 것은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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