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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칼의 날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93
프레데릭 포사이드 지음, 석인해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1950년대말에서 60년대 초에 프랑스는 알제리 문제로 골치를 썩이고 있었다. 알제리민족해방전선(FLN)의 저항을 억누르기 위한 비용이 매년 증가하여 프랑스 자국의 경제까지 휘청일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제4공화정은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었고, 이때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샤를 드골이 다시 등장한다. 1958년 6월 총리가 된 드골은 이듬해 1월에 대통령에 취임하고, 1962년 4월알제리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다.
드골에 대한 평가는 즉각 양분된다. 탁월한 식견과 리더십으로 기약없이 비용만 잡아먹던 알제리 문제를 해결했다는 평가와, 수년간 알제리 전쟁에서 뿌린 군인들의 피를 아무런 댓가 없이 방기해버린 배신자라는 평가가 그것이다. 군부와 우익 기업인 일부는 드골에 대해 극심한 혐오를 품고 비밀군사조직 OAS를 결성한다.
OAS는 드골을 제거하고 쿠데타를 일으켜 알제리전쟁을 재개하고 강력한 프랑스를 만들고자 하는 극우적 성향을 띠고 있었다. OAS는 드골 암살을 여섯 차례나 시도하는데 일부는 실행 과정에서 발각되기도 했고, 일부는 계획 과정에서 무산되기도 했다.
프랑스 정부는 SDECE 요원들을 OAS에 침투시켜 내부 정보를 캐내고 코르시카 출신이 다수를 차지하는 행동파를 이용해 OAS 단원을 납치, 고문하기도 하는 등 소리 없는 전쟁을 시작한다. 다른 나라에 잠입하여 납치를 하는 통에 외교 마찰이 일기도 했고, 범죄조직인 유니온 코르스의 힘을 빌기도 한다.
OAS는 조직이 SDECE에 거의 노출되자 드골 암살을 위한 살인청부업자를 외부에서 찾는다. 몇 명의 후보자군에서 선택된 것은 영국인 출신 암살자였다. 그의 출생이나 실명 등은 모두 명확하지 않았고, 다만 암호명 자칼만이 아는 것의 전부였다. 그가 제시한 금액은 5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금액. 25만달러가 스위스 은행에 입금되는 즉시 착수하되 계획과 실행 모두 독자적인 판단 하에 진행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
OAS는 자금 마련을 위해 위해 은행, 우체국 등을 동시 다발적으로 습격하고 25만 달러를 송금한다. 자칼은 프랑스를 향해 떠난다.
세 명의 위조 신분증과 변장 도구, 그리고 목발에 숨긴 저격 라이플을 들고 떠난 자칼은 OAS의 통제권에서 벗어나 있었다. SDECE에 의해 자칼의 존재가 드러나자 OAS는 황급하게 계획을 취소하려 했지만 이미 자신만의 계획 속에서 행동을 개시한 자칼은 연락조차 쉽지가 않았다. OAS는 그의 성공을 비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한편 프랑스 정부는 암살 계획이 외부 전문가에 의해 실행될 예정이라는 정보를 드골에게 전하며 경호 강화와 공식 행사 취소를 요청하지만 자존심 강한 드골은 공개 수사마저 거부할 정도였다. 이에 내무부장관은 대통령 경호와 관련된 각부처와 경찰기구 수장들을 모아 대책 마련에 부심한다. 그 결과 총경 르벨이 자칼 체포의 실행 책임자로 지명된다. 르벨은 암호명 하나만을 듣고 그가 누구이며 어떤 경로를 통해 프랑스에 잠입해 드골을 살해하려 하는지 알아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1938년 영국 켄트 주에서 태어난 프레드릭 포사이스는 독일, 프랑스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스포츠에 능했다고 한다. 기자와 특파원 생활을 하던 그는 로이터에 입사한 뒤 공산권 국가였던 동베를린에 주재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후 BBC로 이직한 뒤 퇴사하여 쓴 처녀작이 <비아프라 이야기>이다.
<자칼의 날>은 1970년에 쓴 작품으로 발간 직후 언론으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경계가 모호할 정도로 사실적인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이는 프레드릭 포사이스가 1962년부터 로이터통신 특파원으로 파리에서 드골 전문반으로 활동했던 경력에서 이유를 찾을 수가 있는데 퇴직 후에도 그는 당시 관련자들에게서 많은 후문을 얻어 들을 수 있었고 이를 절묘하게 조합하여 소설에 녹여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