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폴 오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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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67년, 컬럼비아 대학 2년생인 애덤 워커는 파티에서 루돌프 보른이라는 인물을 만난다. 그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나오는 프로방스 시인 베르트랑 드 보른을 연상 시켰다. 드 보른은 자신의 잘린 머리통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기다란 램프처럼 앞뒤로 흔드는 자, 환각과 고문이 횡행하는 '지옥편'에서 가장 기괴한 인물 중 하나였다.

어쨌든 서른 여섯의 보른은 콜롬비아 대학 정경학부 대학원에서 국제정치를 강의하는 교수였고, 마고라는 이름의 프랑스 여자와 동거하고 있었다.

얼마 뒤 다시 만난 보른은 워커에게 잡지사를 창간해 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한다. 자신의 애인 마고가 워커를 도와 달라 했고, 마침 유산을 상속 받아 그 정도 돈을 댈 수 있다는 석연치 않은 이유였지만, 워커에게는 솔깃한 제안이었다.

워커는 문학 청년 다운 열정으로 잡지 창간 준비에 열의를 보였지만, 마고와 자고 싶지 않냐는 보른의 교묘한 부추김과 마고의 유혹하는 듯한 태도 때문에 마고와 5일간 정사를 나눈다.

프랑스에 갔다 되돌아 온 보른은 워커와 마고 사이에 있었던 일을 모두 아는 눈치였는데도 화를 내기는 커녕 마고를 떼어낼 좋은 핑계가 생겼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밤길을 걷던 둘 앞에 갑자기 흑인 소년이 나타났다. 소년의 손에는 총이 쥐어져 있었고 워커는 공포에 사로 잡혔다. 하지만 보른은 평온한 태도로 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내 소년을 찌른다. 소년이 손에 든 총에는 총알이 들어 있지 않았다. 워커는 공포에 사로잡혀 구급차를 부르려 했지만 보른의 냉혹한 태도에 기가 질려 그러지 못한다. 다음 날 보른이 워커에게 경찰에 신고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는 협박 편지를 보냈기에 워커가 마음을 다잡고 경찰에 신고한 것은 그로부터 며칠 지난 뒤였다. 하지만 이미 보른은 프랑스로 떠나버린 후였다.

이상의 원고는 애덤 워커가 쓴 자전적 소설 일부로, 원고 수취인은 콜롬비아 대학 시절 동기로 지금은 소설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짐이었다. 워커는 자신이 백혈병으로 천천히 죽어가고 있고, 남은 생이 1년을 넘지 않을 것 같다고 밝힌 뒤, 짐이 자신을 방문해 줄 수 있는지 궁금해 한다.

짐이 애덤 워커를 방문하기로 약속한 뒤 두번째 원고가 도착한다. 원고에는 <여름>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그 사건이 일어난 뒤, 애덤 워커는 도서관 부사서로 일하면서 누나인 그윈과 함께 자취한다. 둘은 어렸을 적 죽은 막내 동생 엔디를 추모하면서 생긴 묘한 동료 의식을 공유했다. 어느 날, 애덤 워커는 루돌프 보른의 이야기를 그윈에게 하는데 누나인 그윈은 어쩌면 보른의 행동들이 동성애적 갈망일 수도 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웨스트 107번가의 그 허름한 아파트에서 애덤 워커와 그윈은 묘한 동료 의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적인 비밀을 공유하기 시작하다 마침내 근친상간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둘은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못했고 그런 일들이 매우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온갖 성적 언사들을 뇌까리며 둘은 서로의 몸을 탐닉했고 이런 일들은 애덤 워커가 교환학생으로 파리로 갈 때까지 계속 되었다.

<여름>을 읽은 짐은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 있는 워커의 집을 찾아 갔지만 그는 이미 사망한 뒤였다. 워커가 의붓딸 레베카에게 컴퓨터에 있는 모든 원고를 삭제해 달라고 유언을 남겼기에 짐이 받은 <가을에 대한 노트> 가 유일한 원본이었다.

프랑스에 가난한 고학생으로 간 워커는 파리에서 마고를 다시 만난다. 보른과 마고는 예전과 같이 몸을 섞는다.

마고는 때로 보른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가 스파이 일을 했던 것 같다고 말한다. 또한 그에게 잔혹한 면이 있었고, 마고와 마고의 전 남친이 성행위하는 것을 보고 엄청나게 흥분했던 것으로 보아 그런 쪽의 도착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워커의 기대와 달리 뜻밖의 장소에서 보른과 재회한다. 보른은 여전히 어딘가 잔혹한 냄새를 풍기며 워커에게 접근했고, 워커는 그런 보른을 안심시키며 화해를 제안한다. 하지만 워커의 속마음은 보른에게 어떤 식으로든 복수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워커는 보른이 결혼할 예정인 엘렌과 그녀의 딸 세실에게 접근해 자연스러운 관계를 형성한다. 관계가 깊어지고 신뢰가 구축되면 보른의 만행을 백일하에 드러낼 계획이었다. 문제는 문학을 좋아하는 세실이 보른에게 반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어쨌거나 워커는 자신이 택한 어느 시점이 되자 엘렌과 세실에게 보른이 과거 흑인 소년을 잔인하게 칼로 찔러 살해했다는 사실을 밝힌다. 그러나 엘렌과 세실의 반응은 워커가 기대한 그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보른이 이 사실을 알고 교묘한 계략으로 워커를 옭아매 워커는 프랑스에서 추방당하고 만다.

마지막 <겨울> 원고를 워커가 쓰지 않았으므로 짐은 그 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짐은 워커의 누나 그윈을 찾아가 워커의 원고 이야기를 했지만 그윈은 근친상간은 없었다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짐은 그녀가 거짓말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의 말처럼 근친상간 하는 부분은 어쩌면 워커가 '일어나길 원했던', 그러나 '일어나지 않았던' 일일지도 몰랐다.

세실은 소설에 등장했던 인물 중 유일한 생존 인물이었다.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된 세실에게 워커 이야기를 하자 그녀는 아주 어릴 적 사랑했던 워커를 여전히 마음 깊숙이 간직하고 있었다면서 눈물 짓는다.

세실의 어머니 엘렌은 끝내 보른과 결혼하지 않았다. 세실은 그 뒤 보른에게 연락하는데 보른은 자신이 외딴 섬에서 한가롭게 노후를 보내고 있다면서 꼭 한번 휴가를 보내러 오라고 초대한다. 세실도 그 제안이 매력적으로 느껴져 섬으로 가는데 보른은 그녀에게 결혼하자며 질척대며 온갖 주접을 떨었다. 결국 산 중턱에 있는 보른의 집에서 세실은 차도 없이 걸어 나온다. 평지로 나오니 50-60명의 흑인들이 한 손에는 망치를 들고 다른 손에는 끌을 잡고 돌을 쪼개고 있었다. 그 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오래도록 세실의 몸에 머물렀고, 여생 동안 그녀를 따라다닐 것이라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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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독특한 구성의 소설인데, 1부와 2부는 애덤 워커가 작성한 원고이고 3부는 편집자로 등장한 짐이 원고를 재구성한 것이며 4부는 원고 없이 생존자의 후일담을 듣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1967년으로 반전 구호가 전 세계를 휩쓸던 시기이며, 세계적으로 혁명 분위기가 고조되는 1968년, 지미 헨드릭스가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일렉트릭 기타로 사이키델릭한 사운드를 분출하던 1969년으로 이어진다.

문학에서 길을 찾으려던 애덤 워커는 냉전시대를 상징하는 냉혹한 스파이 보른이 제시하는 잡지사 창간 유혹에 마구 휘둘린다. 어린 워커는 교수로 분한 보른의 본성을 파악하지 못했고 그가 칼을 꺼내들어 흑인 소년을 죽인 뒤에야 실체를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때도 응당 해야할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머뭇대서 사실상 소년의 죽음을 방조하고 만다.

또 보른이 마고를 권하자 별다른 죄의식 없이 그녀와 관계를 맺는다. 마고는 아무런 정치적 편향성도 없는 무색무취의 부르주아였다.

결국 1부의 워커는 냉전시대 힘에 굴복하고, 부르주아적 향락에 취해 해야할 일을 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인물이다.

2부의 워커는 막내의 죽음을 애도하며 근친상간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사후 밝혀진 바와 같이 근친상간은 그의 바람에 불과했을 뿐 실제 일어나지는 않은 일이었던 것 같다. 가족에서 위로와 안식처를 찾고자 했으나 실패한 워커는 파리로 떠난다.

3부에서 워커는 자신이 하지 못했던 일을 해내고자 한다. 하지만 아직 미성숙한 세실은 워커에게 침을 뱉고, 엘렌 역시 워커의 말을 믿지 않는다. 게다가 워커는 보른의 간계에 휘말려 파리로부터 영구히 추방 당한다.

되돌아온 워커는 문학을 버리고 법률가로 평생을 살며 밥벌이를 하지만 끝내 4부를 완성하지 못한다. 인생의 마침표를 제대로 찍지 못한 그를 대신해 세실이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세실은 보른에게 침을 뱉었고, 그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평생 그를 기억했던 인물이다. 세실이 보른과 결별한 뒤 듣는 노동하는 자들의 망치 소리는 애덤 워커로 상징되는, 냉전과 반전운동, 그리고 68혁명을 거친 세대들의 시대에 종언을 고하는 소리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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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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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미네 시게키는 아내를 여읜 뒤, 딸 에마가 커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낙으로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학교 친구들과 불꽃놀이를 보러 간 에마가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나가미네는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지만 메뉴얼에 따른 미온적 대처 외 적극적 개입은 없었다.

며칠 뒤, 아라카와 강 하류에서 에마의 시체가 발견된다. 벌거벗은 채 발견된 에마의 사인은 급성 신부전. 마약 과다 투여에 의한 사망이었다.

범인은 동네 양아치 일당 스가노 가이지, 도모자키 아쓰야, 그리고 이들에게 협박 당해 자가용을 빌려주고 심부름을 하는 나카이 마코토였다. 스가노 가이지는 클로로포름으로 에마를 질식시켜 납치한 뒤 각성제를 먹이고 강간 하였으며, 이 과정을 비디오로 찍어 보관하는 엽기적 행각을 벌였다. 마약이 과다 투여된 에마가 정신을 잃고 사망하자 가이지와 아쓰야는 에마의 시신을 마코토 아버지의 차에 싣고 가 강가에 유기했다.

뉴스를 통해 가이지와 아쓰야가 납치한 여자애를 죽이기까지 했다는 것을 알게 된 마코토는 고민 끝에 나가미네에게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변조한 뒤, 범인은 스가노 가이지와 도모자키 아쓰야라고 밝히고, 주소와 열쇠를 숨겨두는 장소를 알려준다. 나가미네는 익명의 제보자 말에 따라 아쓰야의 집에 잠입해 들어갔다가 딸이 강간 당하는 장면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발견하고 분노에 휩싸인다. 귀가한 아쓰야와 맞닥뜨린 나가미네는 식칼로 아쓰야를 찔러 사망케 한 뒤 분을 참지 못해 성기를 절단하고, 공범 가이지가 나가노의 펜션으로 몸을 숨기기 위해 떠났다는 말에 따라 엽총을 들고 추격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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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법은 피해자를 위한 것도 아니고 범죄 방지를 위한 것도 아니다. 소년은 잘못을 저지르기 마련이라는 전제 아래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피해자의 슬픔이나 억울함은 반영되지 않고 실상은 무시되었다. 공허한 도덕관일 뿐이다..... 범인 체포로 이어진다 해도 자세한 경위는 설명해주지 않을 게 뻔하다. 그 범인을 만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그리고 뭐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는 채 재판이 시작되고 유족 입장에선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범인은 대단한 벌을 받지 않을 것이다.(89p)

도모자키 아쓰야를 죽인 것을 저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원한이 풀렸냐고 물으시면 그럴 리 없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더 분했을 겁니다.

도모자키는 미성년자입니다 게다가 고의로 에마를 죽인 게 아니라, 예를 들어 알코올이나 마약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판단력이 없었다고 변호사가 주장하면 도무지 형사처벌이라 할 수 없을 가벼운 판결이 내려질 우려가 있습니다. 미성년자의 갱생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피해자 측의 마음을 완전히 무시하는 상황이 벌어질 게 빤합니다...... 한번 생긴 '악'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가령 가해자가 갱생하더라도 그들이 만들어낸 '악'은 피해자들 속에 남아, 영원히 마음을 갉아먹습니다. (183-184p)

<방황하는 칼날>은 2004년 12월 일본에서 출판된 후 갱생을 주 목적으로 하는 소년법에 대한 찬반 양론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나가미네를 돕는 펜션 여주인 와카코의 불안과 안타까움, 나가미네 체포는 곧 강간살인범 가이지에 대한 낮은 처벌로 이어지는 걸 알고 고뇌하는 형사들의 양가적 감정 등이 소설의 결말까지 이어져 시종일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민의 법감정과 동떨어진 법과 제도가 있으니, 바로 촉법소년과 주취감경 문제다. 피해자나 유족의 상처와 아픔이 가해자의 나이가 어리다 해서 회복되는 것도 아닌데 처벌을 면하게 해주거나, 술 취해 저지른 행동이라는 이유로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감경시켜 주는 이러한 제도에 공감하는 국민이 얼마나 있을까.

특히 법 집행 기관인 경찰과 최종 판결 기관인 법원이 객관성을 담보하기는 커녕 그들만의 권력 유지를 위해 주권자 국민 위에 군림하려 하였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난 지금, 대한민국에는 '방황하는 칼날'을 붙들어 줄 제3의 존재가 아예 없는 공(公)권력 부재 상태나 다름 아니다. 이런 상황 하에 <방황하는 칼날>과 같은 사건이 일어난다면 어느 부모가 형사와 법의 판단을 믿고 시스템에 의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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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 번은 살려드립니다 어쩌다 킬러 시리즈
엘 코시마노 지음, 김효정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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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로멘틱 미스터리 작가 도노번 핀레이는 전편 <당신의 남자를 죽여드립니다>에서 살인청부업자로 오인 받지만, 보모이자 친구인 베로니카와 함께 사태를 잘 수습하고 그 경험을 소설로 써 인세 수입을 짭짤하게 올린다.

그런데, 여성들만 드나드는 웹사이트에 전 남편 스티븐 도노번을 죽여달라는 글이 올라오면서 핀레이의 평화로운 생활이이 깨지고 만다. 아이디 '진저리'와, 이에 응답하는 전문 킬러 '싹쓸이'는 게시판을 통해 살인 계획을 구체화 시켜 나갔다. 어쨌든 두 아이의 친아빠인 스티븐이 죽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던 핀레이는 스티븐의 주변을 맴돌며 관찰하는데, 과연 남편은 갖가지 사건에 휘말리고 있었다. 쇼핑하던 중 뒤통수를 강타 당하고, 그가 머무는 임시 사무실에 화염병이 날아드는가 하면, 가스 배관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핀레이와 베로니카는 스티븐을 죽이려 하는 '싹쓸이'가 누군지 알아내기 위해 스티븐븐의 사무실과 휴대전화를 뒤지기로 한다. 우여곡절 끝에 수상쩍은 종이이 하나를 발견하는데, 웨스트버지니아에 1.5x2.5미터 창고를 임대했다는 계약서였다. 계약서에 적힌 주소에 찾아간 핀레이와 베로는 상자형 냉동고를 발견하고 내용물을 뒤지다 기겁 하고 만다. 사람의 머리가 압축비닐에 포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창고 임대업자를 구슬러 전남편 스티븐의 내연녀 테리사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핀레이와 베로는 테리사를 찾아가 위협한 끝에 시체가 칼 웨스터버라는 자백을 받아낸다. 스티븐은 칼 웨스터버, 테드 풀러 등과 함께 마피아들의 시체 무덤이자 잔디 사업에 쓰인 땅에 공동투자한 바 있었다. 칼은 마피아인 펠릭스가 살해했지만 테리사의 입을 막고 사업 지속성도 확보하기 위해 그녀에게 시체 처리를 떠맡긴 것이었다.

시시각각 스티븐을 조여오는 싹쓸이의 위협, 전편에 좋아 지냈던 줄리언과 서먹해진 대신 형사 닉과 새롭게 형성된 러브라인, 그리고 베로의 도박빚 등 소소한 사건들이 겹치면서 갈수록 이야기는 복잡하게 꼬여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성들이 드나드는 사이트가 사실 마피아 펠릭스 지로프의 수입원이라는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사태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이 변한다.

미스터리 소설로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없지만 여성들간의 우정과 연대에 기초한 코믹한 스토리가 그럭저럭 읽히는 편이다. 2편 마지막에 마피아 펠릭스가 자신을 귀찮게 하는 싹쓸이를 죽여달라고 핀레이에게 의뢰 하면서 3편을 예고하는데, 솔직히 3편 까지 읽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살인을 의뢰한 '진저리'는 핀레이의 어머니다. 그녀는 말 그대로 사위가 꼴보기 싫어 여성들 사이트에 험담을 올렸을 뿐인데 사이트 성격이 성격이다 보니 살인청부업자들 눈에 그 글이 살해 청부 의뢰글로 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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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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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자명종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K는 어딘지 모를 낯선 감각 때문에 혼란을 느낀다. 그날은 토요일이었고, 토요일에는 자명종이 울리지 않도록 조치해 두었기 때문이다. 화장실에서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던 K는 거울에 비친 자신이 벌거벗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그는 한번도 벌거벗은 채 잠자리에 든 적이 없었던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K는 지난밤 발기 부전으로 아내와 성행위에서도 실패를 맛보았다. 아내에게서 느껴지는 서늘한 감촉이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면도 후 스킨을 바르려던 K는 평소 쓰던 스킨이 아닌 사실을 깨닫고 또 다시 불쾌해진다.

딸 MS도 어딘지 모르게 낯설고, 기르던 개마저 K를 향해 이빨을 드러낸다. 딱 꼬집어 무엇이 이상한지 말할 수 없지만 K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낯설기만하다. 처제의 결혼식에서 만난 장인이라는 사내도 생뚱맞고, 처제와 결혼하기로 한 신랑도 어디선가 본 듯하다. 휴대폰을 보관하고 있던 사내는 택시기사가 되었다가 보험판매원이 되는 식으로 겹치기 출연을 하고, 죽었다던 장인이 나타나기까지 한다. K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정교하게 K를 속이기 위해 배치된 장치와 배우 같다.

K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도시는 간간히 지진이 발생하고, K는 자신이 누군가 다른 사람과 바꿔치기 된 것 같다는 기이한 느낌에 사로잡혀 부쩌지를 못한다. 그러다 자신과 똑닮은 또 다른 '나'를 대면한 K는 뒤바뀐 삶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로 한다.

최인호는 고등학교 2학년인 1963년에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한 후 순수하게 소설로 밥을 먹고 산 몇 안 되는 전업작가였다. 1982년도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인 <깊고 푸른 밤>의 감각적이고 도시적인 문체가 준 강렬한 인상은 이어지지 못했다. 최인호는 이후 자신의 본령인 현대소설에서 멀어져 역사소설, 대하소설, 종교소설을 30년 이상 집필했기 때문이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작가의 말'에 따르면 암으로 투병하면서 집필한 작품으로, 손톱이 빠져 골무를 손가락에 끼우고 매일같이 20매에서 30매 분량을 원고를 써내려갔다고 한다. 그리고 드디어 자신의 본령인 현대소설로 회귀하여 신문이나 잡지의 청탁이 아닌닌 순수하게 '나 혼자만의 독자'를 위해 소설을 완성했다고 술회한다.

소설은 카프카의 소설을 비롯해 부조리적인 성향을 띠는 소설들이 사랑하는 이니셜 K를 주인공으로 하여 진행된다. 스토리는 어딘지 모르게 주제 사라마구의 <도플갱어>와 유사하다. 현대소설로 회귀했지만 작가는 이미 현대적이지 못하다. 문체는 고루하고, 젊은이들의 어투는 어색하다. 성서적 알레고리 역시 진부하다.

후배작가 김연수가 발문에서 선배 소설가의 작품에 보내는 동업자적 찬사는 그래서 그런지 안쓰러운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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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브 연락 없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0
에두아르도 멘도사 지음, 정창 옮김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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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외계인이 지구, 그 중에서도 에스파냐 북동부 카탈루냐의 작은 소도시 사르다뇰라에 착륙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두 외계인은 '착륙 지점 일대의 생활 형태에 관한 현실적이고 능동적인 탐사'를 수행할 예정이었다. 화자인 외계인 '나'는 이 임무를 구르브에게 일임한다. 구르브는 지구인의 이목을 끄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1966년 마드리드 출생 여가수 마르타 산체스라는 인물로 변신한 뒤 지구인들 사이로 스며 들어갔는데 그 뒤로 '구르브, 연락 없다' 상태가 되어버린다.

남겨진 외계인 '나'는 구르브를 직접 찾아 나서기로 마음 먹은 뒤 유명했던, 혹은 현재도 유명한 지구인의 모습으로 변신해 가며 바르셀로나를 돌아 다니기 시작한다. 하지만 구르브를 찾는 일은 생각만큼 수월치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거처를 마련한 뒤 지구인의 생활을 흉내내기 시작하는 데 어느덧 즐기는 지경에 이른다. 옆집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기는가 하면, 술집 주인 부부와 친해져 가게 인수를 고민하기도 하고, 간단한 조작으로 큰 돈을 벌어 들이거나 강도를 당하기도 한다. 그렇게 이십여 일이 지났을 때, 초대장이 날아든다.

'나'는 초대장이 지시한 장소로 가서 드디어 구르브를 만나게 되는데, 구르브는 완벽한 지구 여인으로 분해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지만 구르브는 이미 시큰둥하다. 게다가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결국 '나'와 구르브는 지구에 남기로 결심한다. 구르브는 즉시 지구인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상관인 나를 무시하고 택시를 날름 집어타고 먼저 출발해 버린다. 02:00 구르브, 연락 없다.

에두아르도 멘도사가 1991년 발표한 이 풍속소설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있는 바르셀로나의 혼란한 풍경을 그려낸 소설이다. 대중문화의 상징적 인물과 사건들을 나열하며 연상 작용을 불러일으키는 수법은 같은 해 브렛 이스턴 앨리스가 발표한 <아메리칸 사이코>를 떠오르게게 한다. 물론 <아메리칸 사이코>가 주로 상품 브랜드를 사용한 연상을 주로 사용한다면 멘도사는 인물과 풍경을 주로 사용하며 코믹한 터치로 그려낸다는 점이 다르다.

한편, 외계인이 지구에 불시착해 색다른 시각으로 기존 질서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설정은 라지쿠마르 히마니 감독의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를 연상케 한다.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것을 '외계인이라는 낯선 존재의 시각'을 통해 다시 바라봄으로써 무엇이 진실이고 진리인지 고민해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렇다. 개인적인 선호도는 <피케이> 쪽이다. 사실 <구르브 연락 없다>는 90년대 초반을 에스파냐의 풍경을 담담하게 보여줄 뿐 이렇다 할 드라마나 탐구는 없는 편이다. 그 문화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풍속소설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몰라도 나의 경우 그다지 기억에 남는 장면이 없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041334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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