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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브 연락 없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0
에두아르도 멘도사 지음, 정창 옮김 / 민음사 / 2012년 6월
평점 :
두 명의 외계인이 지구, 그 중에서도 에스파냐 북동부 카탈루냐의 작은 소도시 사르다뇰라에 착륙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두 외계인은 '착륙 지점 일대의 생활 형태에 관한 현실적이고 능동적인 탐사'를 수행할 예정이었다. 화자인 외계인 '나'는 이 임무를 구르브에게 일임한다. 구르브는 지구인의 이목을 끄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1966년 마드리드 출생 여가수 마르타 산체스라는 인물로 변신한 뒤 지구인들 사이로 스며 들어갔는데 그 뒤로 '구르브, 연락 없다' 상태가 되어버린다.
남겨진 외계인 '나'는 구르브를 직접 찾아 나서기로 마음 먹은 뒤 유명했던, 혹은 현재도 유명한 지구인의 모습으로 변신해 가며 바르셀로나를 돌아 다니기 시작한다. 하지만 구르브를 찾는 일은 생각만큼 수월치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거처를 마련한 뒤 지구인의 생활을 흉내내기 시작하는 데 어느덧 즐기는 지경에 이른다. 옆집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기는가 하면, 술집 주인 부부와 친해져 가게 인수를 고민하기도 하고, 간단한 조작으로 큰 돈을 벌어 들이거나 강도를 당하기도 한다. 그렇게 이십여 일이 지났을 때, 초대장이 날아든다.
'나'는 초대장이 지시한 장소로 가서 드디어 구르브를 만나게 되는데, 구르브는 완벽한 지구 여인으로 분해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지만 구르브는 이미 시큰둥하다. 게다가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결국 '나'와 구르브는 지구에 남기로 결심한다. 구르브는 즉시 지구인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상관인 나를 무시하고 택시를 날름 집어타고 먼저 출발해 버린다. 02:00 구르브, 연락 없다.
에두아르도 멘도사가 1991년 발표한 이 풍속소설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있는 바르셀로나의 혼란한 풍경을 그려낸 소설이다. 대중문화의 상징적 인물과 사건들을 나열하며 연상 작용을 불러일으키는 수법은 같은 해 브렛 이스턴 앨리스가 발표한 <아메리칸 사이코>를 떠오르게게 한다. 물론 <아메리칸 사이코>가 주로 상품 브랜드를 사용한 연상을 주로 사용한다면 멘도사는 인물과 풍경을 주로 사용하며 코믹한 터치로 그려낸다는 점이 다르다.
한편, 외계인이 지구에 불시착해 색다른 시각으로 기존 질서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설정은 라지쿠마르 히마니 감독의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를 연상케 한다.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것을 '외계인이라는 낯선 존재의 시각'을 통해 다시 바라봄으로써 무엇이 진실이고 진리인지 고민해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렇다. 개인적인 선호도는 <피케이> 쪽이다. 사실 <구르브 연락 없다>는 90년대 초반을 에스파냐의 풍경을 담담하게 보여줄 뿐 이렇다 할 드라마나 탐구는 없는 편이다. 그 문화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풍속소설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몰라도 나의 경우 그다지 기억에 남는 장면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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